(창세기 37장) 아버지의 통곡

 

(창 37:33-35) 아비가 그것을 알아보고 가로되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삼하18:31)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로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자녀가 먼저 죽거나 눈앞에서 자녀가 죽는 것을 보는 심정이 어떠할까요? 성경에는 몇 군데 그런 참혹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광야에서 하갈이 이스마엘이 목말라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 하고 우는 장면이나, 입다가 무모한 서원을 하였다가 딸을 죽게 하는 장면도 안타깝지만 가장 끔찍한 장면은 그 아들들이 모조리 눈앞에서 참살당하고 자신은 두 눈이 뽑힌 다음 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시드기야가 아닐까 합니다. 아들이 죽임당하는 것, 그것은 누구도 견딜 수 없는 잔혹한 형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 아들은 이 낮은 땅에 내려와 악한 죄인들에게 수모를 당하고 가장 극악한 처형도구인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십자가에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하나님께서 슬퍼하셨다거나 아파하셨다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 두 군데에 아버지의 통곡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야곱의 통곡, 다른 하나는 다윗의 통곡. 이 두 대목을 저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단 한 번도 눈물을 내비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간접적으로 나타내신,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통곡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내 아들의 옷이라,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가로되 내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비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늙은 야곱은 슬퍼하며 음부에 내려 아들에게로 가겠다고 울부짖었습니다.

압살롬을 피하여 다윗 왕과 그 신하들은 황급히 도망하였고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으로 기진맥진 하였습니다. 만일 쉴 틈을 주지 않고 그 뒤를 추격하자는 아히도벨의 계략대로 되었다면 다윗은 압살롬의 손에 거의 틀림없이 잡혀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후새의 모략에 의하여, 또 여러 돕는 손길과 암몬족속에 의하여 다윗은 극적으로 위기를 벗어납니다. 전열을 정비한 다윗과 백성들은 뒤쫓아 온 압살롬 군대와 전쟁을 하게 됩니다. 다윗은 성에 머물고 다윗의 부하들은 전장으로 나갑니다. 그런데 다윗이 출전하는 그들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 원수가 된 아들을 오히려 걱정하는 못난(?) 아비의 모습입니다.

에브라임 수풀에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다윗 군대는 압살롬 군대를 패배시킵니다. 압살롬은 도망하다가 그의 자랑인 긴 머리가 걸리는 바람에 대롱대롱 상수리나무에 매달리고 맙니다. 요압의 부하는 다윗의 부탁대로 압살롬을 죽이지 않고 요압에게 가서 보고합니다. 그런데 요압은 작은 창 세 개를 들고 가서 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의 심장을 찌르고 그 부하들은 에워싸고 압살롬을 쳐 죽입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압살롬의 시체를 구덩이에 던지고 그 위에 큰 돌무더기를 쌓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은 대성통곡을 합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너무나 애절하고 처절한 다윗의 통곡에 승전한 다윗의 군사들은 풀이 죽고 마음이 슬퍼서 슬금슬금 죄지은 사람들 같이 성으로 도망하여 들어갑니다. 다윗은 얼굴을 감싸 안고 계속 슬피 웁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보다 못 한 요압이 다윗에게 따집니다. “왕이시어, 그럼 우리가 몽땅 죽고 압살롬이 이겼어야 하는 겁니까? 백성들 앞에 이 무슨 망발이십니까?” 그제야 다윗은 마음을 추스르고 백성들 앞에 나섭니다.

죽어 마땅한 원수 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왕의 통곡....., 우리는 성경의 이 대목을 읽으며 참 슬프고도 착잡한 복잡한 심정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다윗은 패역한 아들, 아버지인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압살롬마져 사랑하여 그 죽음 앞에 통곡하였는데, 이를 어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것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저는 이 말씀을 통하여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아픔을 생각합니다. 하필이면 압살롬이 나무에 매달려 세 개의 창에 가슴을 찔려 죽는 것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어디에도 하나님의 통곡을 나타낸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우리에게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마음과 고통을 모릅니다. 그러나 원수 된 죄인들을 살리기 위하여 품안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내어주셔야 했던 그 아픔과 그 고통이 하나님께는 없었을까요? 죽어 마땅한 원수 된 죄인들이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하나님의 눈에서 어찌 피눈물이 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그 순간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고통과 죄인 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그 사랑과 기쁨이 범벅이 되어 또한 하나님의 가슴은 얼마나 큰 통곡으로 미어졌겠습니까?

요셉을 잃어버리고 애곡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며,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의 통곡을 들으며, 우리는 독생자를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통곡하시며 세상의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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