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와 떡의 약조

 

홍수가 나서 물이 밀려 내려오는데 강 아래에 대책 없이 앉아 있으면 쓸려 내려갈 것입니다. 산불이 나서 타들어오는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타 죽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14장에서 주님께서는 누가 망대를 쌓으려면 먼저 앉아서 망대를 쌓는데 드는 돈과 자기가 가진 돈을 계산해 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가진 군사는 일만인데 이만의 군사를 거느린 왕이 쳐들어온다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승산이 없으면 빨리 사신을 보내어 화친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대책 없이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린다면 미련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미련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세상이라는 뜨뜻한 욕조에 느긋이 들어앉아 즐기고 있습니다. 세상은 어두워가고 멸망과 심판이 다가오는데도 빛을 찾고 진리를 찾고 자신의 생명길을 찾는 고민은 없습니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는데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고민하거나 두려움 가운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도 없습니다.

기브온 족속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면 그들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의 칼날을 피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와 아이를 진멸한 것을 듣고 대책을 강구하고 머리를 짜내어 묘수를 찾아내었습니다. 사신의 모양을 꾸미고 낡은 옷을 입고 낡은 신발을 신고 해어지고 찢어진 가죽포도주 부대와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가지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본진이 있는 길갈로 찾아와 화친조약을 맺자고 청합니다. 여호수아가 누구냐고 묻자 그들은 멀리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무리는 하나님께 여쭈어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속아 그들과 불가침 화친조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삼일 뒤에 그들이 바로 가까운 곳에 사는 진멸대상인 기브온 거민이라는 알게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맹세 때문에 그들을 어찌하지 못 하고 살려 주어야 하게 됩니다. 기브온 거민들은 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물 긷는 자와 나무 패는 자들이 됩니다. 그리고 가나안 다섯 왕들이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을 치려고 쳐들어오자 여호수아는 구원군을 이끌고 달려가서 기브온 족속을 구해내는데 이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도우시고 우박을 적군에게 퍼부어 죽게 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 온종일 해가 지지 않도록 하여 그들을 진멸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도망쳐 굴 속에 숨었던 가나안 족속의 다섯 왕을 쳐 죽여 나무에 매답니다.

설사 기브온 족속이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과 맺은 약조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족속에게 손을 대지 못 하게 하셨고 그 약조를 깨뜨리지 못 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약속을 나타내시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것은 포도주와 떡이었습니다. 그들의 포도주는 낡은 가죽주머니에 담기고 그들의 떡은 마르고 곰팡이가 났지만 주님의 보혈을 의미하는 포도주, 주님의 살을 의미하는 떡은 결코 변질되지 않으며, 주님의 언약은 영원히 변함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진멸당해야 할 기브온 족속이고 거짓말로 속임수를 쓴 교활하고 악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여호수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 예수와 발음이 비슷함) 앞에 포도주와 떡의 언약을 들고 나아온 그들은 생명을 얻은 것입니다. 훗날 다윗왕 때에 혹심한 기근이 삼년이나 계속됩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간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울왕 때 사울과 그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학살한 죄로 인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기브온 족속에게 학살과 학대를 자행한 일곱 사람을 끌어내어 기브온 족속에게 내어주어 목매어 달게 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진노가 그치고 기근이 그쳤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아니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편에 속해야 삽니다. 어떻게 해서든 메시아의 계보에 속해야 생명을 얻습니다. 말세의 징조와 심판의 그림자가 가까울수록 말입니다. 거기엔 도덕과 체면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속여 메시아의 계보에 들어갔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을 숨겨주고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구했으며 메시아의 계보에 속하게 됩니다. 룻은 죽기 살기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랐고 보아스를 만났습니다. 밧세바는 남편을 배신한 부정한 여자로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면, 체면을 생각하고 도덕을 지켰더라면 그들에게는 결코 구원이 주어지지 못 하였을 것입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것은 모든 기준을 뛰어넘는 최고지선(最高至善)입니다. 우물쭈물 따질 일이 아닙니다. 무슨 짓을 해서든 살고 봐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의 생명을 구원해야 합니다. 떡과 포도주,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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