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점의 오물도 허용할 수 없다!

 

 

앞서 말한대로 여리고성은 해발 마이너스 250 여 미터의 낮은 곳에 있고 이스라엘 백성이 진군하는 방향인 벧엘은 약 16 킬로미터 거리에 해발 400 여 미터의 높은 곳에 있습니다. 표고차 650 미터 정도의 오르막길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리 올라가는 도중에 아이성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땅이 비옥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며 큰 성을 이루었던 여리고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그만 성입니다. 여호수아는 늘 하던 방식대로 미리 정탐을 보내어 아이성을 탐지하게 하였습니다. 돌아온 정탐군들은 아이성이 작으므로 모든 사람을 수고롭게 할 게 아니라 이삼천 명만 보내면 능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말대로 삼천 명 가량의 군사를 보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패였습니다. “아이 사람이 그들의 삼십 륙인쯤 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와서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습니다.

간혹 여호수아가 조그만 아이성을 우습게 여기고 전쟁에 임했기 때문에 패한 것으로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첫 절부터 명확하게 그 이유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패한 것은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이라는 것, 즉 온전히 바친 물건을 빼돌려 숨긴 범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교만하거나 자만했던 것 때문도 아닙니다. 이삼천 명의 군사가 너무 적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패배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놀라고 당혹하고 슬퍼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붙여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편을 족하게 여겨 거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나이다.” 하고 비통하게 고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성결케 하고 내일을 기다리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지파대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됩니다. 유다 지파가 뽑혔고, 세라 족속이 뽑혔고, 삽디 가족이 뽑혔고, 아간이 뽑혔습니다. 성경은 제사장이나 여호수아가 제비뽑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으로 나아오게 하였더니 뽑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흰 보좌 심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철옹성 같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셨지만 가나안 땅에서 새로이 출발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죄에 대해서 극렬하게 분노하시는 것으로 시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간의 죄에 왜 이렇게 극렬하게 진노하셨을까요? 아간의 탐심과 도적질 때문이었을까요? 하나님의 것을 훔쳤기 때문에 화가 나신 것이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과 순종을 요구하신 것일까요? 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전체를 버리신다는, 극단적인 공동체의 순결을 요구하시는 것일까요? 그렇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적으로 완전하고 거룩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었을까요? 우리는 사도행전 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밭 판 돈 일부를 숨겼다가 죽임당하는 것도 떠올립니다. 하나님이 너무 심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완전무결과 거룩함을 요구하신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래 패역하고 부족하고 죄많은 것을 모르셨던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빼놓고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 생명, 곧 독생자의 예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점 죄악도 흠도 없는 거룩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 독생자의 몸, 거기에 한 점의 흠도 더러움도 허용할 수 없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습게, 경홀히 여김 받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죄인들이 감히 주님의 몸, 그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은 오직 순종함으로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입니다. 다시금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스스로 성결케 하고 내일을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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