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에 구원이 있을까?
이응한 목사 2017. 5. 15. 07:06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침몰, 안산 단원고교 학생을 포함, 3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세월호가 구원파 이단 유병언의 청해진해운 소속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구원파 신도들의 맹신적 복종과 헌신을 통하여 온갖 교묘하고 야비한 수단을 동원, 재산을 축적해온 유병언의 파렴치한 행태가 밝혀지면서 세상을 아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무엇인가요?
박신찬-유병언 계열, 박옥수 계열, 그리고 이요한 계열로 나누어지는 그들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어째서 그들은 구원파에 몸을 담고 평생토록 교주 유병언에게 충성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과연 구원파에 구원이 있기는 한 것일까요?
가급적이면 짧게, 간략하게 간추려 이 문제에 대하여 쓰고자 합니다.
1. 구원파 교리
구원파의 교리는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받았다고 할 수 없고 구원의 핵심을 깨달아야 비로소 온전히 구원에 이른다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하고 믿음의 비밀, 죄사함의 비밀을 깨닫고 이를 입으로 시인할 때 그 사람은 진실로 모든 죄를 벗은 의인으로 거듭난다는 것이 구원파의 핵심교리이다.
2. 구원파의 교리가 먹혀드는 이유
구원파의 교리가 먹혀드는 이유는 바로 “아하!” 하고 깨달을 때 오는 충격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 죄를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한다.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는 믿음이 영생에 이르는 길이라고 선언한다. 크리스천들은 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들은 이를 선포하고 가르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 구원을 받아 거듭나도 별다른 변화나 감동이 없다. 예수를 믿으면 뭔가 확 달라지고 마음이 뜨겁고 기쁨으로 펄쩍펄쩍 뛰고 삶이 뒤집어지면 좋겠는데 믿기 전이나 믿음 후에나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마음에 의심이 생기거나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를 믿고 나서 다시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가, 지금까지 지은 죄는 용서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죄를 지으면 예수님을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가, 예수 믿고 다시 죄를 지으면 도로 구원을 잃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과 불안에 휩싸이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교인들이 구원파의 밥이다.
구원파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연약한 크리스천들에게 다가가서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하고 물어 혼란스럽고 두렵게 만든 다음 “죄사함의 비밀”과 “의인으로 거듭나는 감격”을 가르쳐 깨닫게 한다. 그러면 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고 “죄사함 받고 의인으로 거듭난” 그 감격에 일평생 구원파의 충성된 신도가 되는 것이다.
사실 구원파가 생겨나고 날뛰게 만든 것은 성도를 바로 세우지 못 하는 기성교회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구원이란 기쁨, 감동, 감격이나 확신, 징표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유가 없어진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있다는 것을, 성도가 죄를 지었다고 도로 지옥으로 끌려간다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죄의 능력을 이기지도 못 한다는 말이냐, 성도가 구원을 얻지 못 한다면 예수님이 헛 죽으신 것이냐고 확실히 가르치지 못 하고, 바른 믿음 위에 확고히 세우지 못 했기 때문이다.
3. 죄사함의 비밀, 의인으로의 거듭남
구원파가 가르치는 “죄사함의 비밀, 의인으로 거듭남”의 교리에는 교묘하고 무서운 함정이 들어있다. 그것은 “말씀 살짝 비틀기와 바꾸기”다. 그들은 죄의 해결에 있어 “안수”와 “전가”를 이용한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인류의 모든 죄가 세례요한의 안수를 통하여 세상 죄, 인류의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이다(박옥수). 그리고 그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한다. 그리고는 되묻는다. “이 손에 있던 죄가 안수를 통해 어린양에게 옮겨졌다면 이 손에 죄가 남아있습니까?” 그리고 답한다. “그럴 수가 없지요. 하나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넘겨지지 않고 남는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이제 예수님께 믿음의 코드를 꽂으십시오. 마음으로 당신의 죄를 예수님께 안수하십시오. 자, 이제 당신의 모든 죄는 한 점도 남김없이 넘어갔습니다.”
그러고서는 이어서 설명한다. “그렇다면, 죄가 남김없이 예수님께 넘어갔다면 죄인이 그냥 죄인으로 남을 수 있습니까? 없지요? 모든 죄가 넘어갔다면 죄가 없는 사람, 곧 의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자가 의인입니다. 이것이 죄사함의 비밀입니다. 당신은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모든 죄가 사해졌다니, 의인이 되었다니, 구원의 확신이 없던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감동이겠는가?
4. 교묘한 비틀기와 바꾸기
잠깐! 여기에서 우리는 구원파의 교묘한 말 비틀기(왜곡)를 끄집어내어야 한다.
과연 세례요한이 세상 죄를 예수님께 안수하였는가?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무슨 자격으로? 세례요한이 무슨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죄를 예수님 어린양에게 안수하는 대제사장? 예수님은 세상죄를 안수 받은 죄인이 되어 삼년동안 공생애?
말도 안 되는 왜곡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구원파는 바로 ‘우리 죄를 지시고’를 이용, 세례요한으로부터 세상 죄를 안수 받은 ‘죄인’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가 해결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렇다면 질문해 보자.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신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으셨는가? 아니면 죄 없으신 어린양으로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는가?
죄인 예수의 피는 더러운 죄인의 피인가, 흠 없는 어린양의 피인가?
또 물어보자.
예수님은 우리를 의인으로 만들어 주려고 오셨는가? 우리를 죄의 저주, 곧 사망에서 구하려고 오셨는가?
당신은 의인이 되어서 천국에 가는가, 아니면 주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가?
그렇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 없는 몸을 속죄제물로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를 기쁘게 받으셨다. 만족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죄 없고 흠 없는 예수 어린양 제물을 만족하게 받으시고 죄인들을 향한 진노를 푸시고 용서하셨다는 증거이다. 그렇다. 모든 죄인들이 용서받은 것이다. 이것이 대속(代贖 Redemption)이다.
구원파는 이 대속교리를 “죄속함”, 아니 “죄씌움 교리”로 바꾸었다.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어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그리고 죄인들이 의인들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하신 게 아니라 죄인이 아닌 의인이 되고 말았으니 용서고 뭐고가 있을 수도 없다.
5. 의인이 되었으니
자, 어쨌든 구원파 교인들은 감격 속에 “죄사함의 비밀을 깨달아 거듭난 의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들도 안다, 진짜로 의인이 되지는 못 한 것을. 여전히 죄인의 속성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말(言語)’이다. 말의 능력.... 하나님은 ‘네 입으로 말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대로 된다는 것이다. 입으로 시인하면 시인될 것이요 부인하면 부인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말로 ‘의인 됨’을 지킨다. “죄인입니까, 의인입니까?”, “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죄를 죄라고 하면 죄가 된다. 그러나 죄가 아니라고 하면 죄가 아니다. 말대로 되기 때문이다. 의인이 죄를 지을 수 없다. 의인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 의인이 행하는 모든 것은 죄가 아니다. 심지어 살인을 저질러도 입으로 그것이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한 죄가 아닌 것이다.
구원파에서 늘 다그치는 이러한 가르침이 너무하다 싶었는지 이요한이라는 사람이 구원파에서 뛰쳐나와 대한예수교침례회라는 단체를 만들면서 좀 다른 교리를 만들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영적구원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죄를 짓는 것은 육신이 아직도 사단마귀의 지배를 받기 때문입니다.” 영혼만 구원 받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히 초대교회 때 교회를 어지럽힌 영지주의자들의 이원론(二元論)적 이단사상이다. 이요한의 그 외의 가르침은 박신찬-유병언이나 박옥수 계열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연예인 유진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저희 교회는 기독교복음침레회와 뿌리는 같지만 구원파와는 무관해요. 생명의말씀선교회 홈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어이없고 안타깝다.
6. 구별과 종말론
이단의 공통된 행태는 자신들만이 진리에 속하고 구원을 받은 특별한 무리라고 구별하고 기성교회를 멀리하거나 심지어 공격한다는 점이다. 기성교회는 구원받지 못 한 어리석은 무리요, 타락한 종교집단이요, 그들이 구원해 내어야 할 선교의 대상이다. 거짓선지자들이 누룩을 뿌리고 사단이 가라지를 뿌린 기성교회는 심지어 바벨론이요 음녀이다. 그들은 십사만사천에 속한다. 신천지가 그렇고 구원파도 그렇고 많은 이단들이 그렇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종말론이 대단히 중요하다. 임박한 종말과 심판. 모든 교회들이 무너지고 무화과 잎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떨어지는 그 두려운 날 그들은 들림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세대주의자들의 종말론을 받아들여 유럽공동체가 단일국가로 이어지고 중동의 평화협정과 전쟁이 지구최후의 아마겟돈 전쟁과 칠년환난, 천년왕국으로 이어지는 종말론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고 가르친다. 이러한 종말론이 압박감과 공포분의기를 조성하여 신도들이 이탈하지 못 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또한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해석하는 이단성도 유사하다 할 것이다.
7. 구원파에 구원이 있을까?
구원파는 명백히 이단이다. 그런데 이단이라도 믿음과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 그들의 믿음에 다소 오류가 있다 할지라도 구원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잘못 된 생각이다. 이단이 무서운 것은 아주 작은 차이, 사소한 견해차이로 보이는 것이 엄청난 차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차이를 가져오는 데 있다.
아들을 죽이려는 도적이 있다. 그 아들은 어두운 광야에서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아버지와 비슷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바로 그 때 다른 쪽에 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 둘의 모습은 매우 비슷하나 하나는 아버지고 하나는 도적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아버지가 아닌 도적을 따라간다면 그 아들은 죽게 될 것이다.
사단의 모습은 광명한 천사이다. 그의 말은 달콤하고 그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들의 속임수는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처럼 매끄럽다.
예수님을 죄인 만들어 죽이고 자기들은 의인이 되었다고 하는 그들,
의인이 된 그들이 천국에 갈 때 예수님의 보혈이 필요가 있을까?
구원파에 과연 구원이 있을까?
(짧게 쓰려고 노력했는데도 길어졌네요. 아무튼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2014. 5. 9, 이응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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