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위대한 건국정신과 성공의 역사를 바로 알자.>

 


자유민주주의대한민국의 건국은 오천년 민족사에 가장 올바른 선택이요 위대한 국가의 탄생이다.

36년간 일제치하의 민족적 비극과 가난에서 1945.8.15해방과 함께 찾아온 민족의 독립이 사상적 이념대결로 갈라져 남북분단이란 뼈아픈 역사를 벌써 잊은 것인가?

1.) 20세기 초 마르크스 공산혁명이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소련의 레닌혁명을 시발로 동유럽과 동아시아에.

소련과 중국 조선의 절대왕조가 무너지고 소련과 중국의공산주의 혁명의 바람이,

일제치하의 한반도에도 불어와 극소수지주계급의 자식과 선각자들의,

일본유학으로 공산주의 사상과 일제의 식민지배로부터,

민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민족주의정신이 신분의 평등과 富의 공동분배를 주장한 공산주의사상에 물들어,

2.) 1945.8.15해방당시 지식층의80%이상이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공산주의이념에 물든 상태에서,

일반백성은 이념의 가치관 없이 지식인의 사상에 동조된 것이 해방과 대한민국 건국 당시의 상황이다.

3.)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1945.8.15.해방과 동시에 한반도에 미국과,

이승만 박사로부터 유입된 자유민주주의사상은 한복을 입는,

한국인에게는 미국인의 양복처럼 생소한 새로운 제도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건국당시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은 오천년 민족사에 가장 올바른 선택이요 위대한 국가의 탄생이다.

4.) 1945.8.15해방 당시 우리민족의 생활수준은 배고픔으로 죽어가는 餓死者가 넘쳐나 아프리카보다 못한 민족이요,

일반백성의90%가 문맹률인 당시의 시대상황에 뿌리 깊은 봉건주의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해방정국에 갑자기 들이닥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란 이념의 사상적 혼돈으로,

민족의비극적 암흑기나 다름없는 이념의시대가 된 것이다.

5.) 1945.8.15.해방과 동시에 공산주의이념집단은 이차대전의 승전국인 공산주의 혁명의 종주국인 소련공산당이,

한반도에 위성국가 건설을 위해 파견한 소련공산당의 꼭두각시 김일성의 소련파와,

중국공산당에서 활약한 김두봉의 연안파, 일제치하 국내를 근거지로 암약한 골수공산주의자인 박헌영의 국내파,

서양의 공산주의사상에 물든 이강국의 독일엘리트유학파와,

공산주의사상을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에 치우친 여운형파가 해방과 동시에

지하운동과 해외에서 돌아와 한반도와 일부는38선 북쪽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공산주의 정부건립에 앞장서고,

6.) 1945.8.15.해방과 동시에 민주주의이념집단은 이차대전을 일으킨,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이끈 이차대전의 승전국인 동시에,

세계최대 패권국인 미국에서 귀국한 임시정부 초대대통령이승만과,

상해에 근거를 두고 활약한 김구주석의 임시정부세력과,

일제치하 국내에서 활약한 조만식선생과 김성수세력이 해방과 동시에 지하운동과,

해외에서 돌아와 한반도와 38선 남쪽에 근거지를 마련하여,

민주주의 정부건립을 목표로 활약하니,

7.) 해방과 동시에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경계로 한반도 배후세력으로 남북에 동시에 진주하여,

한반도는 20세기 초강대국의 패권싸움과 사상의 이념적대결의 장이되어 한반도 38도 이북에 진주한,

소련군은 김일성을 앞세워 공산주의 정권을 세울 기반을 만들고,

8.) 해방과 동시에 한반도 38도 이남에 진주한 미군정은 무정부상태에서 치안 확보와 건국준비를 위하여,

국내의 정치적기반과 비교적 온건한 사회주의자인 여운형에게 건국준비위원회를 구성하게 하여,

전국적으로 건준의 결성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당시 건준의 사상적 이념은,

공산주의에 치우쳐 당시국내에 거주한 김성수를 위시한 보수층의 불만과 건준에 대한 반대운동이 일어나는 과정에,

9.) 이승만박사의 귀국과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의 귀국으로 정국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한 가운데,

여운형의 암살로 건준의 뜻은 좌절되고 이승만을 위시한 친미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 건국의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10.) 1945.8.15. 해방이후 한반도에는 건국의 주도권 싸움으로,

소련공산당의지시에 따라 공산주의세력과 좌파에 물든 절대다수의

일반백성들은 1946년1월 신탁통치의 찬성에 동참하는 시위에 대항하여,

11.) 미국의 민주주의국가 건국에 동조한 보수 세력과 북한에 진주한 김일성치하의 공산주의 학정에 반대하여,

탈출한 탈북 민으로 결성한 서북청년단의 반공단체가 반탁운동에 동참하여,

12.) 신탁통치의 찬반충돌로 약2천명에 이르는 젊은이의 목숨을 건 희생으로,

반탁세력이 성공하여 공산주의 좌파세력을 물리치고 사상적 이념의 대결에서 목숨을 건 무서운 투쟁으로 승리하였으나,

13.) 국내에 잔존한 박헌영 일당의 공산주의 좌파세력이 전국철도, 광산노동자를 선동하여,

집단폭동과 공산주의 지하조직을 위한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위조지폐를 남발한,

조선 노동당 정판사위폐사건 등으로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1946.10.1일 대구 폭동사건과 계속되는 무장폭동으로 4.3.제주폭동사건과,

1948.5.10여수반란사건으로 큰 혼란과 동족상잔의 민족적 아픔을 겪고 민족의 숙원인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14.) 민족분단이란 불씨를 않고 해방 후 3년만에 38선을 경계로 1948년 8월15일 유엔의 승인으로,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이승만정권의 건국과,

1948년9월9일 북쪽의 소련공산주의 김일성괴뢰정권이 건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15.) 1948년8월15일 대한민국을 건국하였으나 공산주의 잔존세력의 지하투쟁은 계속되어,

1949년3월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정국은 혼란의 연속이었으나 이승만대통령의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으로 정국이 안정화 되어갈 무렵,

16.) 1950년6월25일 소련의 지원을 받은 공산주의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김일성괴뢰정권의 남침으로,

일순간에 대한민국 전국토가 유린 당하여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려는 순간,

미국을 비롯한 유엔16개국의 참전으로 3년간의 전쟁으로 전 국토는 폐허가 되고,

3백만 국민의 희생과 미국을 비롯한 참전16개국의 사만명의 전사자와,

10만명의 부상자와 천만이산가족을 남긴 민족최대의 비극적이 전쟁이,

1953년7월27일 휴전협정으로 현재의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이 대치한 상태에서 전쟁은 휴전상태로,

오늘날까지 70년동안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민족통일의 불씨를 않고 있는 것이다.

17.) 1953.휴전협정체결로 전쟁은 멈추었으나 이후6년동안 지리산무장공비폭동과 진압으로,

대한민국은 한시도 평화로운 날이 없이 공산주의의 사상전에 국력이 소모되어 민생은 도탄에 허덕이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18.) 임시정부의 초대대통령이며 위대한 민족지도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승만 박사의 미국유학과 미국에서의 민족독립운동을 통하여

자유민주주의가치를 건국이념으로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우리민족의 가장 위대한 건국정신의 선택이라 할 수 있다.

19.) 대한민국건국과 동시에 국가경제는 餓死之境(아사지경)의 빈곤상태에서 막대한 무상원조와 6.25.전쟁의 참화에서,

대한민국을 지켜주고 한미동맹으로 국토의 유린을 지켜 오천년 민족의 역사에 가장 위대한 국가를 건설한 국민과,

20.) 오늘의 선진대한민국을 있게 한 미국의 은혜에 대하여 대한민국국가와 국민은 감사와 동맹의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恩惠를 모르는 국민은 역사에 살아남을 수 없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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