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미/2004년 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
문학/詩 2009. 6. 16. 11:32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
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
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여 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
준다.
- 문태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