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 시절, 교정에서 애국가를 열창할 때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란 소절에서는 아주 신나하며 목청을 돋우어 힘차게 불렀던 기억이 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애국가에도 나온다는 것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이런 나를 바라보는 내 친구들은 종종 ‘하나님이 맞냐, 하느님이 맞냐’하고 물었다. 그럴 때면, 나는 주저함 없이 ‘하느님’이시다, 왜?”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하늘에 계신 분이니까, 하느님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현대도 같은 질문으로 성도들 간, 혹은 목사님들 간에 서로 심각한 대립현상을 보이며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 주요 논점으로 대두하고 있음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그 문제를 두고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잠시 고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하느님'의 사전적이나 일반적 의미:

과연 국어사전은 ‘하느님’과 ‘하나님’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종교어로서 '하느님'은 '우주를 창조하고 주재한다고 믿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됨.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 짐. 하늘. 황천'이라고 정의된다. 이를 살펴보면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고유한 이름으로 불리어 진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하느님’이란 모든 종교인이 사용하는 용어이며 '그리스도교에서 신봉하는 유일신. 천지(天地)의 창조주(創造主)이며 전지전능하고 영원한 존재로서, 우주 만물을 섭리로써 다스림, 천주(天主), 하느님'이라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사전에서 '하나님'이란 단어를 찾아보니 '하느님을 개신교(改新敎)에서 이르는 말'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 참조)
 
일반적인 천공신(天空神) 개념으로 볼 때 ‘하느님’은 우리말로는 하늘, 한자로는 천(天)의 존칭어인데, 광활하고도 높은 창공은 종교적 궁극자 및 최고원리의 상징으로서 인류 종교현상 속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종교표현이다. 종교학자들은 고대인들이 하늘이나 땅을 단순한 현상이나 물체로 예배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나타나는 신적인 힘을 보고 그 거룩함의 신성을 경외한 것임을 밝혀내었다. 가장 오래된 문자문화를 지닌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아누(Anu)신, 가나안 지방의 엘(El)신, 그리스의 제우스(Zeus)신들은 모두 천공신(天空神)으로서 다신(多神)들 중에서 그들이 아버지 혹은 천상회의의 임금으로서 권위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하느님’은 다신(多神)주의자들 개념으로서 절대주권자, 천주님으로 보면 무리가 없겠다.
 
구약에서의 하나님:

이 이름은 모세에게 4개의 히브리어 자음(YHWH)으로 계시되었다. 바벨론 유수(BC 6세기)가 끝난 뒤, 특히 BC 3세기부터 유대인들은 2가지 이유에서 '야훼'라는 이름을 더는 사용하지 않았다. 첫째, 유대교는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개종자들을 얻어 보편종교가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다른 모든 신에 대해 보편적인 주권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신'이라는 뜻을 지닌 일반적인 명사 '엘로힘'을 '야훼'라는 이름 대신 사용하게 되었다. 둘째, 야훼라는 이름은 너무 거룩하여 발언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회당 예배에서는 아도나이('나의 주')로 발음했는데, 〈구약성서〉 그리스어 번역본인 70인 역은 이 단어를 '키리오스'(주)로 번역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하나님이 지니는 이 고유한 이름은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많은 학자들은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케 한다'(Yahweh-Asher-Yahweh)는 것이 가장 정확한 뜻이라고 믿는다. 사무엘 상에서 하나님은 야훼 테바오트(Yahweh Teva-'ot), 즉 '그는 만군(萬軍)을 존재케 한다'는 뜻으로 알려지는데, 여기서 '만군'은 하늘의 왕국 또는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듯하다. 하나님의 이 고유한 이름은 모세 시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을 것이다. 모세의 어머니 이름은 '요게벳'인데, 이것은 '야훼'라는 이름에 바탕을 둔 이름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기독교는 왜 ‘하느님’ 대신 ‘하나님’이라 부르기를 더 선호하는가?

기독교는 공식적인 '하나님' 칭호에 대한 태도는 시대별로 사용한 성서기록에 따랐다. 우리들의 '하나님' 칭호에 대한 변천은 성서 번역사와도 연관되어 있다. 먼저 대체로 한글성서의 번역과 사용시기를 구별해 보면 개인역 시대(1882-1903), 공인역 시대(1904-36), 개역 시대(1937-51), 맞춤법 통일안에 따른 개정판 시대(1952-70), 신.구교공동번역 시대(1971-현재)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런데 한글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칭호를 채택할 때 계속적으로 상관된 개념은 곧 '하늘'(heaven)과 '하나'(one)이다. 그리고 이들 개념의 복합, 지역적 방언, 한글맞춤법과 한국어 발음의 변천 등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서 완벽하다. 하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란 명칭이 옳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은 '하나'를 의미하므로 유일(唯一)신을 의미하는 것이며, '크다'를 의미하는 '한'에 통하는 말이므로 신의 위대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명칭보다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올바르다고 본다. ‘하나님’과 ‘하느님’ 사이에 무슨 근본적 차이는 없는 것으로 인정하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기독교는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이 더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현재 '하나님'이라고 하면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나 '하느님'이라고 부르면 그리스도교의 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통속적인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무당 종교의 신으로 오해한다는 것이 개신교도들의 입장이다. 이렇듯 기타 토속, 외래종교도 사용하는 신 명칭인 '하느님'과 구별, 기독교의 하나님을 선별 호칭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는 하나, 유일(唯一)신되심을 천명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사 45: 5-7 참조), (출 20: 1-17참조),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은 유일한 신이심을 강조하셨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막 12:29절 말씀), (요 5: 44절 참조), (요 17: 3절 참조 ).
 
‘하나님’이란 용어가 ‘하느님’이란 용어보다 부적절하다는 견해: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하나님’이란  표현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다고 하며, 그 이유로는 하나라는 수사에 존칭 명사인 님을 붙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글쎄, 나는 수사학자가 아니기에 그것은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라는 것이 수사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그 숫자에다 님자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이신 분, 한 분, 곧 유일(唯一)하신 참 하나님으로 생각할 때, 하나에다 님자를 붙여 부르는 것에 무슨 문제가 된다는 것인지 오히려 그런 발상이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그분 주장에 따르면, 또 다른 이유로는 ‘하나님’으로서는 하나이기에, 삼위일체 신앙을 충분히 표현하기에 부족하며, 하나는 하나이지 삼위가 될 수 없고 단일 신이 되기 때문에, 여호와 하느님의 삼위를 설명하기 부족하다고 한다. 이것 역시, 글쎄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신을 제대로 이해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하나란 숫자를 표기하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본다. ‘하느님’이란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 본 바로는, 천공 신이요, 다신(多神)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부 성자 성령을, 한 분 하나님 속에 든 다른 위로 보지 않고 각각 다른 세 분의 신으로 본다는 것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다신(多神)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랴? 성부 하나님 따로, 성자 하나님 따로, 성령 하나님 따로 분리하여 생각할 때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부터 알아야하지만, 다 설명하기에는 지면이 짧고 우선 간단히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삼위일체란:
성부, 성자, 성령, 이 셋은 곧 하나이며, 하나 속에 포함된 세 가지 다른 역할로 본다는 그런 의미다. 성서적 근거로는, 요1서 5:7절 말씀을 영어성경에는 한글 번역판보다 더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다 “ For there are three who bear witness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Spirit: and these three are one (N.K.V)” 라고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다. the Father= 성부, the Word= 말씀이 육신을 입으신 성자, the Holy Spirit = 성령님. these three are one = 이 셋은 하나이니라. 삼위일체란 말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 역할 분담의 정의는, 에베소 1: 3-10절을 근거한다.
성부 하나님= 창세 전에 인간 구원을 예정하시고 계획하신 분, 성자 하나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그 몸으로 십자가 위에서 인간 구원을 이루심, 성령 하나님 = 예수의 그날까지, 구원받은 백성을 인치시고 지키시고 견인하심. 이렇듯, 한 분 하나님께서 삼위로 나뉘어져서 일하시는 그 목적은 오직 하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고로, 우리는 한 분 하나님, 유일(唯一)하신 하나님을 다신(多神) 종교와 혼합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본다. 이외에 신학적인 논쟁은 더 많이 일어날 수 있지만, 필자는 신학자가 아니기에 그 어떤 논쟁도 피하려고 하며, 여기에 필자가 근거한 것은 신학적 자료가 아닌, 일반 사전적 의미와 성경에서 주는 교훈을 그대로 적용한 것일 뿐으로 더 이상의 깊은 신학적 질문은 나에게 물어보아야 대답할 여력이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바라기는 우리가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 하는 것을 따져서 설왕설래 다투며 변론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신앙양심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고 다만 우리가 어떠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각자가 성경에 입각해서 올바른 선택을 잘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조명하심을 간절히 구할 따름이다.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무리로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 45:5-6절 말씀).”

아멘넷: 별똥별/최송연 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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