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세워진 율법 (2)

요한 웨슬리(John Wesley)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입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로마서 3:31)

1. 믿음으로 율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가장 통상적인 방법은 앞에서의 설교 속에 밝혀져 있습니다. 즉, 첫째로는, 율법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번에 율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방법으로서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비록 여기에는 그리스도에 대해 설교하고, 복음을 확장한다는 구실이 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모두 파괴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직접적이든지 간접적이든지 간에) 믿음이 성결의 필요성과 대치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지금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보다 성결의 필요성이 거의 없거나 또는 그 필요성의 정도가 줄어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성결의 필요성이 요청되겠지만믿고 있기 때문에 성결이 우리에게 거의 필요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인의 자유란 어떤 종류나 어떤 정도의 성결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것입니다.(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선행이 아니라 은혜의 계약아래 있다는 것, 사람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것, 그리고 '행하는 자가 아니라 믿는 자에게 그의 믿음이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 는 진리를 외곡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 이러한 사실들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비록, 원칙에서는 아니지만 행동으로 율법을 무용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마치 믿음 때문에 성결이 우리에게 불필요한 것처럼 생활하거나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아래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죄를 지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떻게 보다 나은 방식을 따르면서, 사도 바울과 같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무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논의하는 문제만이 남게 됩니다.

2. 실제로 우리는 낡은 의식적 율법을 세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율법이 영원히 폐지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 전체를 수립할 수는 더욱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율법을 완성하고 모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마치 우리가 의롭게 되는 조건인 것처럼 생각하여 도덕법 (너무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걱정이 됩니다만)을 세우자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생전 의롭게 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직도 사도 바울이 의미한 바와 같이 '율법' 즉 도덕법을 '세우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첫째로, 도덕법을 따라 율법을 세웁니다. 우리는 위대한 바울 사도가 지상에 살 동안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방법으로 전면적으로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 사도가 훈계하신 바와 같이 '어떤 사람이라도 말을 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하게 하시오' 하는 말씀을 따름으로서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 가르치고 이것을 기록했던 그 옛날 경건한 성도들처럼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동일한 성령의 지시에 따라 자비하신 주님의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동일한 성령의 지시에 따라 자비하신 주님의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숨김없이 말하게 될 때 언제든지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가르치심을 어떤 제한이나 유보함이 없이 사람들에게 선포함으로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효과적으로 율법을 수립하기 위하여 매우 분명한 말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혀 온 많은 사람들과 같지 않습니다.' 즉 (나쁜 포도주를 가공하는 사람들처럼)가 아닙니다. 우리는 청중들의 구미에 맞게 하기 위하여 율법을 불순하게 하거나, 뒤섞거나, 질을 떨어뜨리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말씀으로,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만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양심에 따르도록 진리를 표명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2. 우리가 이와 같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율법을 선포하게 될 때 교리에 따라 율법을 세우게 됩니다. 우리의 자비하신 주님과 사도들에 의해서 율법이 전해진 그 충만함 가운데서, 그리고 우리가 그 율법을 고도로, 깊게, 길게 그리고 넓게 공포하게 될 때 율법을 세우게 됩니다. 우리가 율법을 충분하게, 그리고 문자적인 의미에서 뿐만 아니라 내적 원리와 마음 속의 생각, 욕구, 의도에 유의하여 선포하게 될 때 비로서 율법을 세우게 됩니다.

3. 그리고 참으로 우리가 율법이 가장 심오한 중요성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즉, 나무가 악하다면, 그리고 마음의 성향과 기질이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다면, 모든 열매, 즉 모든 언행은 계속적으로 악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들이 중요한 것 만큼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도 않고 이해를 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보다 열심히 율법을 전하게 됩니다. 즉, 거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영적인 의미에서 율법을 고찰한다면 역시 '율법은 창조 때부터 시시대대로 숨겨져온 것 이라고' 진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이방인들의 세계에서는 완전히 감추어졌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자랑스러운 지혜를 가지고서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기록된 글로서는 물론 율법의 정신은 더욱 더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은 더욱 더 어두워졌습니다.' '스스로 현명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우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유대민족에게 있어서도 거의 동일하게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알지 못하는 백성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그렇게 즐겨 선포했던 사람들 조차도, 이로서 자신에게 대하여도 선고를 내리게 되는 것은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똑같은 저주와 똑같이 지독한 무지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크게 곡해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자들일지라도 주님의 끊임없는 질책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십시오. 이것은 그들이 율법을 너무나 엄청나게 곡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결함을 사함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거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게된다는 사실을 증거하십시오. 그들이 단지 컵의 겉만을 깨끗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실, 그리고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만 드리면, 즉 외적인 정확성만 기하게 되면, 공정과 자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등한히 해도 내적인 불결함을 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을 말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 중 가장 현명한 자들에게도 율법의 영적인 의미가 너무나 절대적으로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 중 가장 유능한 랍비의 한 사람도 시편의 말씀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그는 '만일 내 마음이 불의를 즐거워한다면 주님은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오직 내 마음 속에서만 그렇다면, 그래서 내가 외적인 죄악만 범하지 않는다면 주님은 여기에 대해 개의하지 않으시며', 내가 외적인 행동으로 죄를 짖지 않는 한 주님은 나를 벌하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4. 아! 그러나 내적이고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율법은 단지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에게만 감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소위 기독교 세계에서도 감추어져 있으며, 적어도 그들 대다수에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영적인 의미는 아직까지 이들에게도 역시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암흑과 무지로 가득찬 캐토릭 국가들에 있어서만 이런 사실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위 개신교들이라고 불리우는 대다수에 있어서도, 그 율법의 순수함과 영적인 면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5. 그러므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율법은 종교의 능력이 아니라 형식만을 소유하고, 자신의 눈에서만 일반적으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의견으로만 의롭다고 생각해온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말을 듣고 마음 속에 분노를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의 종교에 대해 말할 때 그들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마음의 종교가 없이는 '우리가 가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먹이기 위해 나누어 준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밝혀주게 될 때 그들은 더욱 더 화를 내게 됩니다. 그들이 화를 내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나타난 그대로의 진리를 말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듣든지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있는 말을 참든지 간에 우리의 영혼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성서 가운데 있는 모든 말씀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 안에서 발견된 모든 약속 뿐만 아니라, 모든 경고들도 다같이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 예배하신 모든 축복과 특권을 선포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모두 다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유용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즉, 잠자는 자들을 일깨우고, 무지한 자들을 가르치고, 빈약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위로하고, 또한 성도들을 일으켜 세우고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요 참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의로 교육하는 일에 유익한 책' 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과정에 있어서 그가 마침내 완전해지고 결국 그가 그것으로 '모든 선한 일을 하기에 합당하도록' 하기 위해 성경의 모든 부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6. 하나님께서 계시하셨던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모두 다 선포하여,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때 참으로, 아무런 비난도 없이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 속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다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의 의이신 주님을 증거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 세상과 화해하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상세히 설명해야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그가 상하심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는 그런 주님을 높이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여기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리스도를 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모든 직능을 선포하지 않는 한 하나님 앞에서 깨끗할 수 없습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길을 위해 사람 가운데서 택함을 받고 사람을 위해 성별 된' 우리의 위대한 대 제사장으로서, 즉 '주님의 보혈로서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고 지금까지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재하시는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해야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혜가 되시는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즉 그분의 말씀과 영으로써,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며'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예언자로서 그리스도를 전해야 하며, 또한 영원히 살아 계시는 왕으로서, 즉 그의 피로 사신 모든 사람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의 은혜를 처음 회복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는 왕으로서, 그리고 '모든 만물이 그의 발아래 복종할 때까지, 즉 모든 죄를 완전히 물리치시고 영원한 의를 가져올 때까지 모든 믿는 자들의 마음을 지배하시는 왕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1. 둘째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이 성결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성결을 가져온다고 선포하게 될 때, 즉 소극적이건 적극적이건 간에 마음과 생활에 모든 종류의 성결을 가져온다고 선포하게 될 때 율법을 세우게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서, 믿음 자체, 기독교적인 믿음까지도, 하나님의 선택인 믿음, 하나님의 역사인 믿음까지도, 단지 사랑의 시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계속 선포해야 됩니다. 이 사실은 '믿음으로 율법을 무용하게 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들이 자주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것이지만 계명의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단지 사랑에만 이런 명예를 주셨습니다.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사라질지라도 '사랑'은 계속될 것이고 사랑만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믿음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영원한 비죤속에서 삼켜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사랑은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본질과 직무는 여전히 같은 것이네.
그 불빛은 영원히 불타오르고,
그 불꽃은 소멸되지 않네.
죽음이 없는 승리 속에 영원히 살게 될 것이며,
그리하여 끊임없는 선함이 넘쳐 흐르고,
영원히 찬양을 받게 되네.

2. 매우 훌륭한 일들이 믿음에 대해 언급되어 집니다. 그리고 믿음의 동참자는 누구나 사도 바울과 같이 '주님의 말할 수 없는 은사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도 사랑과 비교하게 되면 그 모든 우수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의 영광이 율법의 영광보다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아주 적적하게 피력한 것은 사랑의 영광이 믿음의 영광보다는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영광스러운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보다 우월한 영광 때문에 영광을 상실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라지는 것이 영광스럽다면 남아 있는 것은 더욱 영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사라지기 전에 있었던 믿음의 모든 영광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사랑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영원한 목적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제정하였던 아주 일시적인 수단입니다.

3. 모든 일을 삼켜 버릴 정도로 정도에 지나치게 믿음을 찬양하는 사람들, 그리고 믿음이 사랑에 대치될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믿음의 본질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은 믿음 후에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서 믿음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더욱 생각하십시오. 창조된 순간부터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게 된 천사들은 일반적인 개념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평가되는 믿음을 소유한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보다 특별한 의미에서, 신앙, 즉 예수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소유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천사들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의 본성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의미에서나 특수한 의미에서 이 세상의 기초가 놓여지기 전에는 믿음이 설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설자리가 있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 안에, 즉 위대한 사랑의 대양 안에, 영원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창조의 순간부터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에게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은혜로운 창조주로부터 즉시 이를 받아들여 존재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4. (많은 사람들이 교묘하고 그럴 듯하게 이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믿음이, 일반적인 의미에서까지도, 낙원에서는 설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단편적이고 상세하지 못한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께 대해 반항하기 전에는 아담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동행했던 것이지 믿음으로 동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때에 이성의 눈은 강하고 맑았기 때문에
(태양을 바라 볼 수 있는 독수리처럼)
그리고 총명한 천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주 가까이서 창조자의 얼굴을 바라 볼 수 있었다네.

그때, 아담은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얼굴을 지금은 우리가 볼 수가 없고 그 얼굴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아담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시력의 결핍을 충족시키는 것이 믿음의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5. 다른 한편, 특수한 의미에 있어서의 믿음이 그 당시 불필요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의미에서는 죄와 죄인들에 대해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진노가 필연적으로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이 없다면 죄인들을 하나님께 화해시키기 위하여 속죄의 행위가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타락 이전에는 속죄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속죄에 대한 신앙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사람이 당시에는 모든 죄의 허물로부터 깨끗해졌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했기 때문에 사랑이 사람의 마음 속을 채웠고, 어떤 경쟁자도 없이 인간을 지배했었습니다. 단지 사랑이 상실되었을 때에만이 믿음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은 인간이 타락시킨 그 사랑을 인간에게 회복시키기 위한 목적에 응답한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도록 계획되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시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인 믿음이 첨가되었는데 이것은 그 전에는 전혀 불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구속적인 사랑에 대한 이 확신은 '여자의 자손들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라는 약속이 맺어질 때까지는 그 설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6. 그런고로, 믿음은 사랑의 율법을 다시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본래적으로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한다고 해서 믿음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거나 그것의 당연한 칭송을 빼앗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면에 그것의 진가를 들어내고 믿음을 적합한 위치로 끌어올리고, 태초로부터 하나님의 지혜가 부여한 바로 그 자리에 믿음을 놓는 것입니다. 믿음은 인간의 본래적으로 창조되었을 때 그 속에 있었던 거룩한 사랑을 회복시키는 위대한 수단입니다. 비록 믿음 자체는 어떠한 가치가 없을지라도(어떤 다른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믿음은 그러한 목적,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의 율법을 새롭게 세우는 목적으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 있어서 믿음이 이 세상에 있어서 사랑의 법을 나타나게 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이런 이유로 믿음은 사랑에 말할 수 없는 축복이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1. 그리하여 셋째로, 이것은 자연적으로 율법을 세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합니다. 즉, 율법을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세우는 일입니다. 사실 이것 없이 다른 모든 일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교리로서 율법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율법을 전면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율법의 모든 부분을 설명하고 강조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영적인 의미에서 율법을 들어 내야 하고,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직무를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의 모든 보화를 더하게 하여 주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동안에도 만약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가 전한 율법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가리로' 보다도 하나님 앞에 쓸데없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의 모든 선포는 우리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고 오직 우리의 파멸만을 증가시킬 뿐입니다.

2. 그러므로 '어떻게 우리의 마음 속에 율법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우리의 생애에 율법이 충분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를 고찰하는 것이 중요한 요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배운 바와 같이 이러한 목적에 답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우리는 민첩하게 성결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을 꾸준히 바라보는 동안 우리는 더욱 더 세상에 대해 못박히고 세상은 우리에게 못박힌 바 됩니다. 우리의 영혼의 눈을 일시적인 것들이 아니라 영원한 것들을 향해 끊임없이 고착시키고 우리의 애정을 세상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여 위의 것에 집착하게 합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믿음은 모든 의와 진정한 성결을 증진시키며, 믿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룩하고 영적인 율법을 세우는,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수단인 것입니다.

3. 그리고 보다 특수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 때문에 우리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으로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 주님의 율법을 세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우리를 그렇게 강하게 이끄는 동기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강력한 확신보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께 우리의 마음을 바치도록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 넘친 사랑의 원리로부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역시 생기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랑을 진실하게 믿는다면 우리가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믿음에 근거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며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랑입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바울이 관찰했던 바와 같이 사랑은 부정적인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하는 계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어떤 다른 계명이 있다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 이웃에게 어떤 악행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시간과 기회가 있는데로 선을 행하도록 우리를 격려합니다. 가능한 한 모든 종류와 정도로 모든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라고 재촉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의 율법을 이와 같이 소극적으로 완성시킬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4. 단지 외적인 면으로만, 믿음이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인 율법을 성취 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게 하고 모든 악한 감정으로부터 율법을 께끗게 하기 위해 사랑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은 '주님께서 깨끗하신 것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세속적이고 관능적인 모든 욕구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악하고 과격한 감정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육욕적인 마음 전체로부터 우리를 깨끗게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믿음이 완전하게 역사하게 된다면 모든 선과 의와 진리로 인간을 가득 채웁니다. 믿음은 사랑의 영혼에 모든 천국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속에 계신 것처럼 사람으로 하여금 빛속에서 걸어가게 합니다.

5. '우리가 은혜 아래 있다'고 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받은 모든 능력을 사용함으로 우리 자신 속에 율법을 세우도록 노력 합시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할 때 하나님께로부터 우리가 받은 빛을 마음 속에 회상하면서, 그 빛을 우리가 끄지 않도록 조심합시다. 그때 우리가 성취한 것을 단단히 붙들도록 합시다. 어떤 것이라도 우리가 파괴한 것을 다시 세우지 않도록 하고, 크건 작건 간에, 우리가 분명하게 깨달았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닌 것, 또한 우리 자신의 영혼에 유익한 것이 아닌 것은 어떤 것이라도 다시 계속하지 않도록 하고, 또는 크건 작건 양심의 가책이 없이는 등한히 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무시하지 않도록, 하여 어떤 것에도 유혹을 받지 맙시다. 이전에 받았던 빛을 더 증가시키고 완전케 하기 위하여 이제 믿음의 빛을 첨가합시다. 주님께서 전에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보다 깊은 의미로, 보다 온유한 양심으로, 죄에 대해 보다 날카로운 감각을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전에 주신 은사를 확신하도록 합시다. 지금 우리가 기쁨을 가지고 영원한 두려움이 없이 이것들을 분명히 확고하게 바라보며 살아 간다면 우리는 쾌락, 부귀, 칭찬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물 위에 뜬 거품처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즉, 아무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아무것도 바랄 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아무것도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단지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장막 속에' 있는 것 만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6. '당신은 나의 불의에 대해 자비로우신 분이시니 내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마십시오'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장차 도래하는 그 때를 위해 뱀의 얼굴을 보고 피하듯이 죄를 보고 피하도록 하십시오. 죄가 당신에게 지금 심각하게 죄악적으로 보입니까! 이 죄는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얼마나 흉악한 것입니까! 다른 한편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한 뜻을 지금 당신은 얼마나 자랑스러운 빛 속에서 바라다 봅니까! 그러므로 지금 당신 안에서 그 뜻이 성취되도록 하고, 당신에 의해서 성취되도록 하며, 당신에게 성취되도록 노력하십시오. 더 이상 죄를 짖지 않도록 조심하고 기도하십시오. 또한 주님의 율법의 가장 적은 부분이라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피하십시오. 태양이 어두운 곳을 비출 때 당신은 전에 볼 수 없었던 티끌까지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의 태양이 당신의 마음 속에 비칠 때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죄를 보게 됩니다. 이제부터 모든 면에서 당신이 받아 들였던 빛을 따라 살기 위해 부지런히 행하십시오! 매일 매일 빛을 받으며,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사랑, 그리스도의 영, 그분의 생명,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더욱 더 받도록 열심을 내십시오! 이제 여러분이 이미 얻은 모든 지식, 사랑, 생명, 능력을 사용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믿음이 목격함으로 삼켜진 바 되고 사랑의 법이 영원히 성취될 때까지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속해서 전진하고 거룩한 사랑 안에서 매일매일 성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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