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민 칼빈대학교 교수(조직신학)

 

최근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영서(靈書)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만나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꼭 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들어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들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음성은 왜 들어야 하는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신앙의 핵심이 하나님을 아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했다(전 12:13).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명령을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앎은 일반적인 인생경험이나 세속적인 학문연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신령한 일에 속한다. 그런데 신령한 것은 오직 신령한 것으로라야만 알 수가 있다(고전 2:13, 14). 따라서 우리는 신령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명령에 관해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만 신령한 것들을 분명하고 자세하게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진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참된 신앙생활과 사람다운 삶이 가능할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만 알고, 서로 수군거리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자기에게로 나아와 영생을 얻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요 6:44). 그리고는 이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사람이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이라고 덧붙이셨다(45). 이 말씀은 신앙의 핵심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둘째, 사람은 생활 속에서 알고 싶은 것에 부딪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론적인 지식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과 관련해서도 그 아는 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과거나 현재의 일도 물론이지만,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여러 가지의 갈래 길에 부딪쳐서 어느 길을 선택을 해야 할지를 몰라 주저해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그냥 지나치려 하지를 않고, 그것을 알아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다가는 자기 스스로 알아내기 어려울 때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곳에는 점술가들의 신통력을 의지하려는 일이 거의 자취를 감추지 않아 왔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문명이 발달했다는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성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람의 본성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미신을 죄로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 구체적인 증거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성경적 사례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사례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직접 음성으로 들은 경우: 아담, 족장들, 모세, 선지자들, 사도들 등.
꿈으로 들은 경우: 야곱, 요셉, 아비멜렉, 솔로몬 등.
환상으로 들은 경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요한 등.
우림 둠밈으로 들은 경우: 출 28:  30, 민 27:21의 엘르아살, 신 33:8 등.
제비뽑기로 들은 경우: 사울, 요나, 맛디아 등.
글자로 들은 경우: 모세, 다니엘, 벨사살 등.
하나님 사자의 나타남을 통해서 들은 경우: 아브라함, 마노아, 이사야 등
천사를 통해서 들은 경우: 요셉, 마리아, 동방박사 등.
상징물을 통해서 들은 경우: 모세(불), 욥(폭풍), 엘리야(세미한 바람), 광야 이스라엘 백성 (불기둥 또는 구름기둥).  

 

우리들 주변에도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이나 선지자들, 또는 사도들처럼 영적 음성이나 환상, 꿈, 또는 글씨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보거나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 같으시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를 만난다고 해서 조금도 놀라거나 이상해 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때, 매우 조심하여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바라는 심리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사탄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하여서, 아직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죄를 범하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또 반드시 들어야 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다가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때에, 다음 몇 가지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대부분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친히 사람들에게 계시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계시하실 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러 가지 방법들을 다양하게 이용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례들로 나타난 것들은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해주기 위한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이용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이후로는 구원에 관한 지식들이 온전하게 다 밝혀졌다.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서 더 이상의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심은 모든 날의 마지막에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심이요(히 1:2),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심이요(요 19:30), 또 마침이었다(마 5: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일 성경에 계시된 것 이외의 또 다른 구원의 진리를 보거나 들었다면, 그것은 원수가 몰래 뿌려놓은 가라지 즉 거짓된 것이요, 적그리스도에 불과하다.

 

우리는 구원에 관한 것이라면, 성경 이외의 무엇을 들으려고 하는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일 성경 이외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면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우리에게는 오직 이미 계시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성령의 조명하심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할 따름이다. 그러면 이와 관련된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하면 들을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음성은 주로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중에 들려진다.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고 또 운동력도 가지고 있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좌우에 날이 예리하게 선 칼에 찔리는 것과 같이 그 마음과 생각에서 찔림을 받는다(히 4:12). 또 구원에 필요한 진리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 필요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으로 교육을 받는다(딤후 3:16). 왜냐하면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들이 잊고 있었던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몰랐던 것을 밝히 드러내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걸어가야 할 발자국을 비춰주는 등불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확실성을 벗겨주는 빛이라고 하는 것이다(시 119:105).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도, 그 대부분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속에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출이나 이혼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리대금업이나 주일출근은 해도 좋을까 하는 등에 대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듣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은 설교자를 통해서 들린다.
하나님의 음성은 많은 경우에 성경을 풀어 전해주는 설교자를 통해서 들린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말씀을 옛날 선지자나 사도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친히 설교자들의 입에도 넣어 주시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죽은 이후에 가서야 아직 살아 있는 다섯 형제들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부자에 관한 말씀이 있다. 그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저희에게 들을지니라" 하는 말씀을 들었다(눅 16:29).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씀을 풀어서 전해주는 설교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잘 알 수가 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나팔과 같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오직 하나님의 충실한 나팔이 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설교에 귀를 기울이되,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들을 수 있는 귀만 준비한다면, 우리는 설교를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은 기도와 묵상하는 중에 들린다.
기도는 주로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죄의 용서와 우리에게 필요한 간구의 내용을 아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기도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는 형식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시는 것도 포함을 하는 쌍방적인 형식이 더 바람직하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는 시내산의 모세나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들렸던 것과 같은 음성이나, 베드로나 요한이 보았던 환상, 또는 다니엘이 보았던 벽에 새겨진 글씨가 없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큰 소리를 지르며 외치는 기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감동으로 임하여 주시기를 조용하게 기다리는 자세를 가질 필요도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시라면 이런 경우에 과연 어떻게 말씀을 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와 같은(눅 24:32), 감동의 형식으로 임하는 하나님 음성이 들릴 수 있다.

 

다윗 임금은 묵상 중에도 이러한 경험을 했다. 그는 뜨거워진 마음으로 자신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여호와께서 알게 하여 주시기를 묵상하며 기다렸다(시 39:3-4).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밑에서 묵상을 하다가 예수님께로부터 그가 묵상을 하고 있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알게 되는 응답을 받았었다(요 1:50). 묵상을 즐기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여지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한 시인의 노래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시 1:2-3).

 

하나님의 음성은 섭리적 사건들 중에서도 들린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과 목적을 따라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졸거나 주무시는 일이 없이 항상 다스리고 계신다. 우리는 이것을 섭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는 사람들을 향하는 소리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깃들여 있다.

 

자연계에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수고의 떡을 먹는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각종 재난들 속에는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의롭게 살아야 명예를 얻는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불의는 분쟁과 전쟁을 낳고야 만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우리의 양심 속에는 하나님 안에서라야 인간의 참된 행복이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때로는 우리의 나아가는 길이 형통하거나 막히는 행사 속에, 또는 이웃과의 만남이나 대화 속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아니 우리들 주변 사방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 즉 하나님의 음성이 가득히 넘쳐흐르고 있다(롬 1:10~21).

 

하나님의 음성이 과연 어떤 식으로 들려오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우리의 자세가 문제이다.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흐르는 물이나 지저귀는 새, 터지는 화산,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 이웃의 운명 등에 스며져 있는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시 19:4),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글을 읽었고, 해와 달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했다(시 8:3). 우리도 시인처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 특히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본분을 다할 수 있고,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경우들처럼, 반드시 신기한 소리나 환상이나 글씨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대부분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의 메시지나 기도와 묵상,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넘쳐나게 들려오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문 밖에서 우리에게 많은 음성을 들려주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음성이 그리울 때는,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문 굳게 닫아두니 참 나의 수치라"고 부르는 찬송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보자.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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