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은 지도자(목사)의 사랑을 받기를 갈망하고 있다-
성도와 문제가 발생됐을 때 진실게임을 하지 말고
먼저 안아주고 용서를 구하라

지난주일.
A 집사님으로부터 너무도 황당한 말을 들었다.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들었다.
평소의 내 가치관과는 너무 동 떨어진,
아니,생각도 할 수 없는 말을 내가 성도들 앞에서 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A 집사님의 부인인 B 집사님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단호하게 “그런 일 없노라고, 집사님이 나를 잘 알지 않느냐고,
또 그런 말을 성도들 앞에서 했다면 기억하는 성도들이 있을텐데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데 A 집사님의 말인즉슨 몇몇 성도들에게 전화해 봤는데
들은 사람을 확인할 수가 없었노라고,
하지만 자신은 아내의 말을 믿는다고 했다.
평행선이었다.

그 자리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당사자인 B 집사님이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고 외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일 B 집사님이랑 함께 만나서 얘기해보자”고 한 뒤 돌아왔다.
머리속이 하해지는 느낌이었다.

어제,A 집사님 집을 찾았다.
잠시 묵도한 뒤,B 집사님께 자초지종을 얘기해 보라고 했다.
처음부터 격앙된 목소리로 두서없는 말을 쏟아냈다.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 마디 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집사님이 다른 성도들에게
전화해서 이미 확인까지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그럼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이냐"고 B 집사님이 소리쳤다.
‘평행선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다

'문득 이것은 진실게임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B 집사님이 상처를 안고 있고
그로 인해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님이 고통 받고 있고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진실을 밝히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사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안아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느껴 울였다.

그 순간, 조금 전까지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던 B 집사님이 따라 울었다.
그러면서 “죄송하다고,잘못했다고,용서해 달라고” 했다.
“사랑받고 싶어서 인정받고 싶어서 그랬노라”고 했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랑하는 성도가 애정 결핍을 느꼈다는 사실 앞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고,더 잘 섬겨 드리지 못하고
더 사랑해 드리지 못하고 인정해 드리지 못한 것 용서해 달라”고 했다.
이에 B 집사님은 “아니라고,제가 잘못 했다고” 눈물로 고백했다.
그것으로 상황 끝 이였다,

이번 일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 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성도 간에 벌어지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목회자가 먼저 무릎 꿇는 데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진실 게임을 벌이기 전에
직면한 모든 상황을 송두리째 떠안고 먼저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인정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회복 된다는 것이다.

진실게임을 해서 목사가 이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 성도는 마음의 상처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 성도는 그 상처로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

그 성도가 다른 교회가 가서 잘 정착하면 좋지만,
영원히 주님의 곁을 떠나버릴 수도 있다.
많은 경우 오해로 인하여 문제들이 발생된 것들임을 보게 됩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장난(이단자들 등)이 아니라면
목사는 100% 껴안고 목사가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이
서로에게 유익이 될것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하면 모든 문제는 회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 새벽,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성도들이 돌아간 뒤,
화분에 물을 주다가 창 쪽의 군자란에서 여린 꽃대 하나를 발견했다.
그 순간 내 입에서는 ’와!’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이내 나의 관심은 건너편 군자난에게로 쏠렸다.
나는 얼른 자리를 옮겨 난 잎을 해쳐 가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나 꽃대는 보이지 않았다.
내심 실망이 되었다.

결코 넓지 않은 한 공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개의 화분이
이처럼 차이를 보이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은 바로 ’일조량(日照量)의 차이’였다.
여린 햇살이나마 닿은 창 쪽과 그렇지 못한 안쪽과의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꽃을 피우고 못 피우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나는 우리 성도 중에 지금까지 신앙의 꽃을 피우지 못한 채
영적 음지〔陰地)에만 머물러 있는 성도는 없는지 생각해 보았다.

B 집사님이 떠올랐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지금까지 입으로는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니 운운하면서도
성도들의 고민이 뭔지 관심 있게 보다는 “집사가 왜 저 모양일까?’ 생각하며
속상해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아,그 때문이었을까?
문득 꽃대를 내밀지 못한군자란위로 B 집사님의 얼굴이 포개졌다.
나는 한동안 난 잎을 손으로 쓸어주다가 B 집사님의 삶속에 믿음의 꽃이
활짝 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꽃대 없는 군자란을 창가로 옮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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