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회가 예외 없이 예배의 마지막 순서에 목사가 하는 축도로 예배를 종료한다.
그런데, 현재 행해지고 있는 축도는 그 방법에 있어서 두 가지로 대별된다.

그 하나는 순서를 맡은 목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된 기도문 (축도자의 간구) 후에 ‘있을찌어다’ 또는 '축원합니다'하고 명령형식으로 선포하는 형식이다.

다른 하나는 순서를 맡은 목사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된 기도문 (축도자의 간구)을 간구한 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축원합니다로 끝마치는 축도다.

일반적으로 상기의 두 경우 중에서 첫 번 째의 방식을 취하는 목사들이 대부분이다.

두 번째 방식으로 축도를 하는 교회나 목사는 그 숫자가 적다.
적다기 보다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희귀한 형편이다.

그렇다면, 이 두 방법 중 어느 방법이 성경적일까?
내 생각으로는 두 번째 방법, 즉 축도의 마지막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축도 하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의견이다.

이것은 목사 개인의 권위를 무시한다거나 불인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축도도 엄연히 기도의 한 형태이므로, 반드시 <주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하나님이 받으신다고 믿는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하는 방법-주님의 이름을 뺀 축도-은 축복권이 목사에게 있는 것처럼 오해할 수도 있으므로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약성경 민수기 같은 곳에서는 ‘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고 약속하셨고, 대상 23: 13에서는 ‘영원토록 그 이름을 받들어 축복하였다고’ 증명하고 있다.
요 14:13-14에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신구약을 통하여 야훼의 이름이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 수 있게 되어 있고, 그 기도에 응하여 하나님은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이스라엘의 민족 지도자로 선택된 모세에게도 허락된 바 없는 엄청난 권한을 목사들은 임의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겨우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서 복을 내려 주십사고 부탁하는 처지에 있는 인간이 마치 복을 내려 주는 권한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빼앗는 월권행위인 것이다.

내가 출석하는 교회의 교역자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축도를 드릴 때, 언제나 <주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린다.

그리고, 설교 중에도 축원을 할 경우에는 예외 없이 <주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린다.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권한과 능력이 있으신 분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도를 받을 때마다 아멘이 절로 나온다.

축도 때에 올려 드리는 모든 아름답고 귀하고 좋은 복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내게 확실히 응답될 것을 생각하면 그 축도가 한없이 은혜가 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지 않고 ‘있을찌어다’하고 끝나는 축도를 받을 때의 허전함과 무례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비는 목사의 축도를 받고 있으면 복은 고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유린하고 농단하는 죄에 대하여 책망을 들을 것을 생각하니 내가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불안할 정도다.

우리나라 말의 어감상 ‘있을찌어다’ 또는 '축원합니다'하는 표현은 신이 사람들에게 또는 임금이나 왕이 백성들에게 또는 주인이 하인들에게 내리는 극하칭(極下稱) 명령형이어서 최상의 권위의식과 거드름이 잔뜩 묻어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없이, <있을찌어다><축원합니다>의 말 속에는 자기의 우월감이 짙게 배어나고,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권위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일부러 무게를 잡고 목에 잔뜩 힘을 주어야 하기에 듣기에 민망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축도의 내용이 아무리 훌륭한 내용과 간절함일지라도 잘 못 드려지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도 못하고, 하나님과는 무관한 것이니 무익하고도 무용한 것일 뿐이다.

우리의 기도가 위대한 것은 능치 못하심이 없으신 이 세상의 주인 되신 하나님이 들으시고 이루어 주신다는 믿음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으로는 가장 심각한 고난과 순교를 당하는 것이 축도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교회마다, 수많은 목사들로부터 예배시간마다 하나님의 이름이 훼손되며 짓밟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축도를 할 때, 하나님의 이름 대신 목사 개인의 권위를 내 세우는 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했던 것과 동일한 범죄의 연결선상에 있음도 알아야 한다.

아담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유혹 때문에 선악과를 따 먹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것> 곧 그것은 <하나님이 되고자>한 것이다.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위임권이 없는데도 <네게 복이 있을찌어다>하고 말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 역할을 대행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실체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표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신다.

그래서 십계명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했음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추시고, 겸비하고 겸손히 무릎 꿇는 사람을 존귀하게 높여 주심을 알아야 한다.




축도도 하나의 기도다.

그러므로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기도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사들의 축복권을 인정할 경우, 축복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이 목사가 '복이 있을지어다'하는 명을 받들어 복을 내려야 하는 입장이 되어 버리니 심각하다는 것이다.

출처: USA아멘넷/박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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