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의 ‘아름다움’

- 권혁승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자기자리를 지키면서 본인의 몫을 다하는 것은 아름답다. 냄새나는 소 여물통을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외양간 제 자리에 놓여있다면, 최소한 가치적 측면에서는 아름답다고 평가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본연의 임무와 역할이 있다. 제 몫을 다하는 세상 모든 것은 ‘아름다움’의 주체들이다.

장 프랑수아 밀레가 남긴 명적 ‘만종’에는 노동의 신성한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멀리 교회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오자 감자캐던 일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기도하는 농사꾼 부부의 모습은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답다. 

이 그림에서 ‘아름다움’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들이 입고 있는 의복이 고와서도 아니고 외모가 뛰어나서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흙과 땀이 밴 작업복 차림의 평범한 농부들이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것은 종일토록 일한 삶의 한복판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경건한 모습 때문이다. 하나님 경외의 신앙 곡선과 열심히 일하는 성실 곡선이 서로 만나는 교차점에 거룩한 모습으로 서있는 그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사람은 일을 하도록 창조되었다. 사람에게 주어진 본연의 사명은 다른 피조물을 보살피는 다스림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26)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것도 그 때문이다. 

히브리어로 ‘첼렘’인 ‘형상’은 고대 사회의 통치 관습과 관련이 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멀리 떨어진 변방 책임자를 임명하면서 자신의 형상을 가져가도록 하였다. 왕의 형상은 곧 위임된 왕의 통치권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들도 위임받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다. 위임된 통치권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엇보다도 긴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자신이 직접 창설하신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고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경작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 ‘아바드’는 땅을 기경하며 가꾸는 노동을 뜻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주인에 대한 종으로서 섬김을 의미한다. 

그런 뜻에서 ‘예배’라는 전문용어가 파생되기도 하였다. ‘경작하다’와 ‘지키다’가 서로 짝을 이루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담이 에덴동산을 가꾸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의도대로 그 땅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아담에게 위임된 하나님의 통치권이 행사된 대표적인 예는 생물들에게 이름을 부여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 이름은 곧 존재라는 것이 성경시대의 사고방식이었다. 이름의 부여는 존재를 실제화 시키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 이름을 부여받은 대상의 운명까지도 책임지는 전인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지배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큰 민족을 이루며 창대케 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복의 근원이 된다는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다(창 12:2). 아브라함은 자신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다른 민족들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 고대 시대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역할은 제사장들의 몫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 사명을 받은 것은 그런 약속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출 19:6).

사명과 함께 축복의 약속이 주어지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운 배려이다. 아담에게 다스림의 사명을 주실 때에 축복이 선행되었으며(창 1:28),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는 명령 역시 그곳에서의 풍성한 삶을 마련하신 이후였다(창 2:9).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는 사명을 주시면서도 큰 민족을 이루며 창대하게 된다는 보장이 있었다(창 12:2).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나라 시명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값진 보물 ‘세굴라’로서 절대 보호를 받게 된다는 약속과 함께였다(출 19:5).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그 사명을 감당할 능력도 함께 보장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들에게 주어진 기본적 능력은 각자가 타고난 은사이다. 은사를 따라 사는 것이 바른 봉사의 길이며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행복한 삶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요즈음 우리 가치관의 혼란으로 인하여 성실히 자신의 사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아름다움이 점차 퇴색되고 있다. 주변 분위기가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이 은사의 활용으로 주신 사명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그것이 산 위의 동네의 동네처럼 숨기우지 못하고 널리 드러나는 ‘세상의 빛’(마5:14) 곧 소명의 ‘아름다움’이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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