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sybook.org/newsletter/read.asp?ccode=502&No=17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
유해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교의학)

 

축하의 메시지


독립개신교회가 개혁 교회의 대표적 요리문답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각고의 수고로 완역하여 출판한 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독립개신교회는 교회와 신조의 관계를 바로 파악하고, 번역 과정에 모든 교인들을 참여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독립개신교회를 사랑하셔서, 참 신앙을 사모하게 하시고 이 신조를 번역함으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열심을 잘 표현하게 하셨으니, 살아 계신 우리 하나님은 송축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성약출판사도 여러모로 아주 아름다운 작품을 일구어 냈습니다. 모두에게 축하를 보내오며, 이 책이 독립개신교회뿐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에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요리문답


신앙고백은 성도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행하는 것이다. 교회의 역사에서 신앙고백은 구두(口頭)와 문서의 형식을 취했다. 특히 종교개혁의 교회는 새롭게 발견하고 회복한 옛 신앙을, 로마 교회와 군주들을 향하여 입술과 문서로 새롭게 고백하였다. 고백은 교회가 교회 바깥을 향하여 행한다. 교회는 이렇게 고백하는 믿음을 교회 안을 향하여 요약하고 교육적인 안목으로 잘 정리하였다. 교리 교육을 목적으로 신앙 내용과 행위의 기준을 주로 문답 형식으로 정리하였기 때문에 흔히 요리문답이라 부른다. 이번에 독립개신교회가 공식적으로 번역하고 출판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종교개혁의 교회가 교회의 아동들과 교인을 가르치기 위하여 작성한 대표적인 요리문답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례 의식에 선행하는 구술 교육을 요리문답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 예로 세례 요한의 설교나 빌립이 내시에게 행한 설교를 들었다. 그런데 유아세례가 정착되자 집례자가 부모에게 문답 형식으로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을 전수하면서 이것들을 나중에 아이에게 전수하겠다는 약속을 하게 하였다. 그런 내용을 아이에게 교육함으로써 가장 먼저 지향하는 목표는 성찬 참여였다. 이를 구체적이고 효율적으로 행하기 위하여 신앙의 내용을 문답의 방식으로 담은 요리문답이 발생하였다. 상당히 초기부터 사도신경이 주요 내용이었고 점차 주기도문도 포함되었다. 십계명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처음으로 부각시켰지만, 13세기가 되어서야 교육의 내용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 세 가지는 고해 의식에 필요한 자료로서 15세기경에 정착되었다. 종교개혁자들, 특히 루터는 이 전통이 이미 고대 교회에서부터 정착된 것이라고 여겼으나 이는 역사적인 오해에 불과했다. 그는 이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이를 고해가 아니라 성례와 연관시켰다.


개혁자들도 교리 교육을 강조하였는데, 초기에는 왈도파의 것이나 프라하의 루카스가 작성한 보헤미아 형제단의 요리문답서를 이용하고 응용하였다. 루터에 따르면 요리문답은 장차 신자가 되기 원하는 자에게 믿고 행하고 따르고 알아야 하는 바를 오늘 가르치고 양육하는 교육이다. 성경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루터는 요리문답을 ‘교인을 위한 성경’이라 불렀다. 이 또한 주로 구전으로 행하여졌다. 루터는 1516-17년에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강해하면서 아동 신앙 교육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개탄했고, 1520년에는 구원받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위의 세 가지에 대한 개요를 출판하였다. 아동용 교재는 아니었지만, 루터가 쓴 최초의 교리 교육서였다. 비슷한 시기에 츠빙글리도 주로 구약과 신약을 언약의 일체성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소책자를 썼다. 루터는 1529년에 대요리문답서와 소요리문답서를 작성하였는데, 이 두 가지는 루터 교회의 공식적인 신조가 되었고, 1580년의 협화신조에 수록되었다. 취리히나 스트라스부르크와 제네바에서도 요리문답서가 계속 작성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런 개혁파 문답들을 참고하였다.



요리문답의 구성


주로 종교개혁의 교회가 교리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로마 교회와 동방 교회도 그 영향을 바로 받았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가 요리문답을 구성하는 내용을 이룬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배열에 따라 문답의 순서를 다양하게 전개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주기도문-십계명-사도신경의 구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실제적으로 개신교 최초의 교리 대화서를 1526년에 작성한 요한 바더(Johannes Bader)는 주기도문-사도신경-십계명의 순서를 취하였다. 십계명-사도신경-주기도문의 순서는 루터의 요리문답, 그리고 이를 본받은 칼빈의 첫 제네바 요리문답(1537)과 라스코의 엠덴 요리문답에 나타난다. 사도신경-주기도문-십계명의 순서는 루터파의 군소 요리문답이나 로마교의 요리문답이 취한다. 이는 믿음, 소망과 사랑의 순서를 상기시킨다(고전 13:13; 롬 5:1-5).


대부분의 주요 요리문답이 취하는 순서는, 사도신경-십계명-주기도문인데, 이는 바울이 자주 언급하는 믿음, 사랑과 소망의 순서를 따른다(살전 1:3, 5:8; 롬 12:6-12; 골 1:4 이하). 보헤미아 형제단의 요리문답서(1502), 왈도파의 문답서(1524), 개신교 최초로 문답서라는 이름을 붙인 알트하머(A. Althamer)가 1528년에 작성한 문답서, 그 이후에 나온 독어권 스위스 교회의 문답서들이 이 순서를 채택하였다. 이런 전례에 의거하여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사도신경-십계명-주기도문의 순서를 따르면서, 중간마다 연관된 성경의 교훈을 삽입하는 형식을 취한다.


참고로, 독립개신교회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서는 좀 독특한 면을 지니고 있다. 이 문답서는 성경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믿을 바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의무를 나누어 가르친다. 후반부인 의무의 부분에서 십계명과 주기도문을 다룬다. 그런데 전반부인 믿음의 내용에서는 예상과 달리 사도신경을 다루지 않는다. 즉, 요리문답서의 일반적인 구성 요소 중 하나가 없는 예외성을 지닌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성


우리의 요리문답은 위에서 말한 대로, 사도신경-십계명-주기도문의 순서를 취하면서,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잘 요약 정리한다. 또한 죄와 비참, 구속, 감사라는 삼중 구조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죄와 비참은 율법으로부터 알고(3문답), 구속과 구속주에 대한 지식은 거룩한 복음에서 안다고 천명한다(19문답). 율법과 복음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양면이다. 이 요리문답은 복잡한 중세 신학의 미로를 벗어나서 모든 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향하게 하여, 쉽고 경건하게 자신의 구속이 오직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아니라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그의 모든 은덕을 받는 자들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면서, 참된 믿음을 요약하고 있는 사도신경을 소개한다(20-22문답). 사도신경이 고백하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행하신 사역을 가지고, 이 요리문답은 우리의 창조와 구속과 성화를 설명한다. 그런데 이 요리문답은 바로 이 믿음이 주는 유익으로서 의롭게 하심과 영원한 상속자 됨을 말한다. 그리고 모든 은덕에 참여하게 하는 믿음은 성령께서 말씀과 성례로 일으키신다고 계속 가르친다. 삼위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원의 주인이시고, 이를 은혜의 방편을 통하여 직적 시혜하신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본 요리문답이 작성된 당시에 선행은 큰 논란거리였는데, 이를 구원받은 자가 감사의 삶을 사는 관점에서 설명한다. 회개를 새사람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며, 자기의 형상을 닮게 하심이 곧 감사의 삶이다(86, 115답). 죄와 비참을 알게 하던 율법이 이제는 감사의 기준이 되며, 기도는 감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하나님께서는 구하고 감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특색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로마 교회의 주장을 거부하는 점에서 종교개혁 교회의 신조이다. 요리문답은 제2판에서 성찬과 미사를 구분하고, 제3판에서는 미사를 “저주받을 우상 숭배”로 규정하였다.


동시에 개혁파 전통에 서 있다. 몇 가지 특색을 살펴보자. 첫째로, 기독론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인성으로는 더 이상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성령으로는 잠시도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47답).


둘째로, 성찬론에서도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의 역사로 우리가 그의 참 몸과 피에 참여한다(79답). 이러한 성찬론은 루터 교회의 ‘공재설’(共在說)과 구분된다.


셋째로, 요리문답의 고백자는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이 영생을 위하여 선택하신 교회의 지체임을 믿는다(54답). 개별적인 선택론이 아니라 교회의 선택과 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선택을 확신한다고 고백한다.


넷째로, 십계명의 분류가 개혁파적이다. 루터는 둘째와 셋째 계명을 합하여 제2계명으로 보고, 열째 계명의 앞부분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를 9계명으로 삼고, 그 뒷부분을 제10계명으로 본다.


요리문답 설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본 고장인 독일의 개혁파 교회에서 사랑을 받았지만, 화란 개혁교회의 역사에서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화란 교회는 작성된 해에 나온 2판과 3판을 바로 그 해에 번역하였다(1563년). 1566년에는 3판 번역을 시편 찬송 뒤에 넣어 출판하였다. 1568년부터 교회 회의는 여러 차례 이 요리문답에 대한 결정을 하였다. 1571년의 회의는 이 요리문답을 공적(公的)으로 가르칠 것을 결의하였고, 1578년의 회의는 오후 예배 시에 요리문답 설교를 할 것을 결의하였다.


‘요리문답 교육’은 성찬 참여를 위한 준비이며, 동시에 설교를 깨달을 수 있도록 성경의 대의를 가르치는 교리 교육이다. 이에 비하여 ‘요리문답 설교’는 교리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에서 교제와 경외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번에 독립개신교회에서 택한 번역은 원본과 그 이후에 나온 여러 번역본이 취한 증거 성구를 검토했고 성경 본문도 그대로 실어 놓았다. 이것은, 도르트회의의 결정처럼, 이 요리문답이 성경 말씀과 일치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교리 교육의 교재가 되며, 요리문답 설교를 위해서도 아주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독립개신교회는 요리문답 설교를 한국에 최초로 도입한 교회가 아닌가 생각한다. 부디 이 오랜 전통을 한국 교회 안에서도 잘 정착시킬 것을 간절하게 기대한다.


한국 교회와 신조


교회가 외적으로 정체성을 밝히는 문서가 신앙고백서라면, 정체성의 내적인 확립은 요리문답으로 이루어진다. 이 양자는 항상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 교회가 고백서와 요리문답서의 작성을 공적으로 결정하고, 작성의 과정을 거쳐서, 교회가 다시 공적으로 채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절차이다. 그러나 이런 교회 회의가 아직 정착하지 못한 초기 단계에서 종교개혁의 교회들은 말씀의 사역자가 실제적인 필요에 따라 작성한 문서를 사후에 교회의 공식적인 문서로 채택하였다. 즉, 신조의 작성을 결정한 회의는 없었지만, 채택을 결정함으로써 그 문서가 교회의 공식적인 신조의 위치를 갖도록 하였다.


한국에 복음을 전한 미국 교회도 초기에는 신조가 없었다. 미국 회중교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작성된 바로 다음 해인 1648년에 이 고백서를 채택하였다. 1706년에 조직된 미국 최초의 장로교 노회인 필라델피아 노회는 1729년에 이 신앙고백서를 약간 수정하여 채택하였다. 필라델피아 노회는 1787년에 뉴욕 노회와 연합했고 다음 해에는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그리고 권징 조례와 예배 모범을 채택한다. 이후에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들은 미국의 상황에서 여러 차례 개정의 과정을 거친다. 개정에 대한 우리의 평가와는 관계없이, 채택과 개정은 교회의 공적 회의에서 이루어졌다.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들은 장로교 신조들을 한국 교회 초기에 바로 소개하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조직한 연합공의회는 인도에서 작성된 12신조를 1905년에 채택하였고, 1907년에 조직된 독노회도 이 신조를 채택하였다. 그런데 1901년에 설립된 평양 장로교회신학교는 1920년에 학교의 목적과 신경을 신앙고백문으로 작성하여 발표하면서 “장로교회의 역사적 표준 즉 신경, 요리문답, 정치/권징 조례와 예배모범…이것들을 교육의 표준으로 받는”다고 천명하였다. 이처럼 신학과 신앙의 현장, 목사와 교인 간에 신조의 일치가 아닌 괴리가 한국 교회의 초기부터 형성되었다.


한국의 장로교단은 대부분 1960년대에 웨스트민스터 신조들을 채택한다. 각 장로교 총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결정하고, 위원회를 임명하여 번역을 위임하고, 번역 작업이 끝난 뒤에 번역된 신조와 교회 정치와 예배모범을 공식적인 문서로 채택하였다. 그렇지만 총회는 번역 과정에 깊이 개입하지 않았고 진지하게 검증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번역되어 채택된 문서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독립개신교회는 비록 그 교회가 채택한 신조 전부가 아니라 먼저 하나의 신조를 번역한 것이지만 아주 모범적인 선례를 남겼다. 1998년 초부터 1999년 5월까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번역하고 난 뒤에, 그 교단에 속한 각 교회가 번역된 초고를 사용하여 공부하고, 5년 간의 수정을 거쳐서 인쇄된 형태의 번역을 공식적으로 채택한 것이다. 교회의 공식적인 결정 과정과 번역 과정과 최종 작품의 완성까지, 교회가 공식 문서인 신조를 어떻게 대하고 번역하고 사용해야 한다는 좋은 본보기를 보였다.


번역의 어려움


김헌수 목사는 사도신경의 재번역에 대한 해명을 하면서, 좋은 번역에 가담할 수 있는 언어학자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토로한다.1) 그렇다면 십계명과 주기도문도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취했거나 또는 사도신경처럼 성경의 교훈들을 취합하여 정리한 것이다. 그런데 선교지 형편상, 성경이 완역되기 이전에 이 세 가지가 먼저 번역되었다. 성경이 완역될 때, 이미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는 세 문서의 번역을 조정했어야만 했는데,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는 그런 용의주도한 작업이 없었다. 이런 일반적인 관찰에 근거하여 다른 두 가지의 면밀한 재번역도 필요하다는 것을 먼저 지적한다.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언어학자의 협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먼저, 한국어가 많이 오염되었고, 표준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 줄어 가는 상황에서, 좋은 언어학자가 성경의 언어와 신조의 언어를 한국인의 사고 구조에 합당한 정확한 한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둘째, 이 번역은 여러 형편상 ‘목사’들이 주도한 번역이라는 인상을 받는데, 직분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어에 조예가 깊은 교우를 이런 공적 작업에 초청하여 그가 받은 은사를 교회를 위해 사용할 기회를 조성할 필요가 크게 있다.


그럼에도 이룬 좋은 번역


독립개신교회 목사들은 독일어와 라틴어 공인본뿐 아니라, 화란어나 영어 번역본들까지 살펴 가면서 번역 작업을 진행시켰다. 한국 교회 안에서 이전에 이런 식으로 했던 신조 번역 작업은 찾기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서평의 성격상, 하나의 역어(譯語)만을 지적하면서 앞으로의 토론거리로 삼아볼까 한다. 본 번역에는 ‘죗값을 치르다’는 표현이 여러 차례 나온다(1, 12, 16, 40, 42, 79답). 그러면서도 ‘만족’이라는 역어도 동시에 사용한다(12, 56, 60, 61답). 같은 문맥에서 다른 역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역자들이 이 용어의 번역이 어렵다는 것을 인지한 증거이리라. 전자는 합당한 번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만족’은 좀 통상적인 어휘로서 이 용어가 담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기에는 약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우리 신학 용어로는 ‘속상’(贖償)이 있다. 천주교회에서는 ‘보속’(補贖)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비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어 신학 용어의 빈곤을 고려할 때, 이 지적은 불가피하지만, 부정적인 평가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이 번역은 여러 면에서 귀감이 될 만한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이 한국 교회에 크게 기여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전망과 기대


한국 교회는 요리문답보다는 성경 공부를 선택했다. 양자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겠지만, 한국 교회의 역사적 배경에는 ‘신조보다는 성경’이라는 미국 부흥 운동의 영향이 작용하고 있다. 부흥 운동의 일반적 경향은, 단순한 원시 기독교를 흠모한다는 명목에서, 교회 분열의 중요 원인으로 신조를 꼽았다.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삭막한 영적 상황을 고려할 때, 전도 대상에게 성경에 앞서 신조를 가르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조가 신자에게 정체성을 가르쳐 확립시켜준다는 원래의 존재 이유가 부흥 운동 이후 미국 교회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다.


전도의 본격적 상황이던 사도행전에서는 전도와 설교가 잘 구별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한국 교회는 여전히 계승하고 있다. 항상 전도하는 교회의 전통이 있기에, 설교자는 설교에서 예배에 참석한 불신자의 존재를 의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예배 중에 전도가 아니라 교인들을 향한 설교를 하기가 쉽지 않다. 전도 집회와 예배가 구별되지 않고 뒤섞여서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구역 모임이나 다양한 종류의 성경 공부 또는 소그룹 모임 등으로 성경을 가르치려고 부단히 애를 쓰지만, 대개 피상적이거나 일시적인 행사로 그치고, 성경을 전반적으로 가르치고 공부하는 차분한 전통은 정착되지 못했다.


한국 교회 안에서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던 전통은 정착하자마자 사라지고 말았다. 청소년은 대학 입시라는 중압감에 시달리면서, 신앙의 개요를 획득하기에 앞서 암기와 지식 습득 위주의 학습 방식에 몰두한다. 삼위 하나님을 깊이 알고, 자신의 죄와 비참, 자신의 구속과 감사의 삶을 깨달아 그 삼위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가는 삶을 확립하기도 전에, 세속적 가치가 이들을 지배한다. 대학생이 된 이들을 영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하여 요란한 형태의 음악과 율동, 소란한 기도와 이른바 극적인 말씀이 그들을 자극하고 주도한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복음의 설교로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기보다는 인간의 감정이 주도권을 잡도록 유도하는 부흥 운동 특유의 바람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외적으로 요란한 프로그램 위주의 신앙생활이나 또는 신비주의적인 사설(邪說)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런 젊은이들이 목사가 되려고 신학교로 오는데, 집회를 구상하고 집회 자체를 인도하는 데에는 대단히 능숙하다. 그렇지만 요리문답에 대한 지식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성경 지식 또한 천박하다.


인간적으로 볼 때, 한국 교회의 이런 전반적인 상황이 갱신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 대안은 성경의 내용을 주지주의적으로 암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셨을 뿐 아니라, 자기의 성령님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여 자기의 형상을 닮게 하신다(86답). 참된 믿음은 교리를 암기하여 나열함에 있지 않고, 그 교리를 가지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하게 살아가는 데에 있다(91답). 곧 우리가 지식과 삶에서 삼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온 세계에 충만하게 하는 것이다.


요리문답, 성령님의 인도를 받은 개혁 교회는 이 좋은 요리문답을 유산으로 남겼다. 이 요리문답이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을 말씀으로 깊숙이 인도할 것을 기대한다. 요리문답, 개혁 교회는 이것을 본문으로 삼은 요리문답 설교로 모든 교인을 말씀으로 양육하였으니, 한국 교회 교인들에게 이 번역이 복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소개 (II) - 독립개신교회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성약출판소식」 제44호. 2004. 6. 25.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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