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나의 목자(1),

위험한 결단

 

 

간밤에 심하게 몰아친 진눈깨비에 심술이 난 걸까? 시계는 벌써 열 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잔뜩 찌푸린 하늘… 금세라도 다시 진눈깨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12월의 매서운 바람은 윙! 윙! 소리를 지르면서 다 낡은 선교부의 창문을 오늘만은 꼭 부서뜨려놓고야 말겠다는 듯, 무서운 기세로 부딪히며 마구 흔들어 대고 있었습니다.

“아니, 운전사 ‘싸샤’가 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지…”반쯤 마시다 만 커피잔을 손에 든 남편이 연신 바깥을 내다보면서 걱정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정말 그렇네, 운전사 ‘싸샤가 안 온다면 오늘만은 어쩔 수가 없겠네…, 그래, 어쩌면 오늘은 포장도 안 된 러시아의 저- 지긋지긋한 얼음길을 왕복 여섯 시간이나 흔들리면서 달려가지 않아도 될런지 몰라…아, 신난다. 무엇을 한다? 옳지,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집에 남아 있는 어린 딸에게 편지라도 한 장 써야지…," 나는 집에 남아 있는 어린 딸을 생각만 하여도 코끝이 찡- 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왔습니다.

매 주일 아침 7시가 되면 우리는 선교부에서 얻어준 집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서 ‘우수리스크’로 갑니다. 그곳에는 중국 조선족들이 많이 몰려나와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러시안교회의 방 하나를 시간대로 빌려서 그들을 모아놓고 성경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가 벌써 반년이 훨씬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유일한 보디가드 겸 운전사로 사용하고 있는 러시아인 기사 ‘사쌰’아저씨가 어젯밤에 내린 폭설 때문에 하얗게 얼어붙은 길을 보고 운전이 불가능하다고 혼자서 판단을 했던지 10시가 다 되도록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 집에는 전화도 없으니 알아볼 재간도 없습니다.

부엌에서 커피를 끓이며 간단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나는 남편이 걱정하는 말에, 솔직히 걱정보다는 오히려 오늘 하루를 좀 편하게 쉴 수가 있겠다고 하는 생각 때문에 내심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더니 성경찬송과 성경공부 교재들을 가방에 주섬주섬 주워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내가 “아니 여보, 지금 당신 무엇을 하세요? 운전사도 오지 않고 날씨도 이런데, 설마…, 당신 오늘 ‘우수리스크’에 가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응, 여보, 우리 기차로 한번 가 봅시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 추운 날씨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그들을 실망하게 해서는 안 될 것만 같소. 그들은 아직 주님을 잘 알지를 못하지 않소. 그러니 그들은 그리스도인 된 우리를 먼저 바라보거든…” 남편의 결심은 이미 굳게 서 있는 모양인지 담담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 기차로요? 여보, 우리는 러시아 어도 잘 알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기차를…, 그건 말도 안 돼요. 하루쯤 쉰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야단치실 것도 아니니 우리 그러지 마요, 네? 그리고 요즈음같이 마피아단들이 외국인을 많이 노리는 때에…저는 싫어요. 꼭 가시고 싶으면 당신 혼자서나 가세요!” 마른행주로 젖은 손을 닦으면서 단호한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지만, 나는 이미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그래 왔으니까…
그 일이 무슨 일이 되었든지 또 어떤 일이 되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세워졌다면 아무도 못 말리는 왕 고집쟁이 내 남편…, 때문에 이민교회로서는 제법 큰 교회 측에 들던 우리 교회와 이제 갓 대학에 들어간 아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반인 어린 딸을 버려두고 이곳에 오게 되었고 남편을 아끼는 그의 친구들은 그런 그를 ‘우직하다고’ 나무라지 않았는가…, 그런 남편이니, 혹시나가 역시나였습니다. 그는 오늘도 아내의 현명한? 조언을 귓등으로 흘려버린 채, 어느새 두꺼운 외출용 점퍼를 걸치고 털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있었습니다.

 

언어도 모르고 길도 낯선 그곳을 굳이 가야겠다고 우기는 것은 참으로 괘씸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동역자로 붙여 주셨으니 나도 나의 사명을 감당해야지 어찌 남편 혼자만 사지로 보낼 수가 있단 말인가? 나는 하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털모자가 달린 내 따뜻한 외투를 꺼내어 입고 앞서 가는 그의 뒤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깥에 나오니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대고 그놈의 시베리아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라던가… 코가 얼어서 떨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우리는 한 손으로 코를 감싸 쥐고 두 눈만 겨우 내어 놓은 채 길가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서 손을 흔들기를 한 시간 이상, 다 낡은 승용차 한 대를 어렵게시리 잡아탈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극동대학에서 육 개월째 언어연수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나이도 있고 하여 이제 겨우 숫자나 제대로 구사할 수 있을 정도의 형편없는 러시안 실력…, “기차역으로 갑시다.”하고 점잖게 말하고 싶은데 가엾게도 입에서는 버, 버, 거리면서 말보다는 손발이 더 먼저 나가는 것을 어찌하랴….

다행히 그 러시아인이 우리의 끙끙대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하라쇼!(좋다!)" 하고 흔쾌히 대답하며 우리를 차에 타라고 고갯짓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운전사가 우리를 기차역으로 제대로 데려다 줄 수가 있을까? 아니면 딴 길로…? 위장된 마피아단…? 소심한 나는 온갖 걱정으로 마음에 심한 갈등을 느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어쩌랴… 마지못해 남편의 뒤를 따라 차에 올라타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진 나는 차 안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고슴도치 모양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채, “주님, 제발 이 운전사가 우리를 무사히 기차역으로 데리고 가게 도와주세요.”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면서 옆에 앉은 남편을 흘낏 바라보니 그도 역시 은근히 걱정되는지 입을 굳게 다물고 앉아서 애꿎은 창밖만 뚫어지게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려갔을까? 저-건너편에 종탑이 우뚝 솟은 기차역이 나타났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안심이 되든지… “쓰바씨바!(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면서 우리는 그 운전사에게 루불(러시아화)을 듬뿍 쥐여주고는 도망치듯 뛰어내렸습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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