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적응력이
아주 뛰어난 것 같습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거나 우리 민족은 모두
있는 그곳에서 뿌리를 잘 내리고 열심히 그리고 아주 부지런히 살아들
가고 있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네들이 어디를 가건, 결코 버리지 못하고 적응을 하지
못하는게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끼리니까
살짝 알려 드릴게요, ㅎㅎㅎ) 그것은 하루에 한 끼라도 반드시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어야만 겨우 밥을 먹은 것 같은 음식습관이랍니다.

스테이크가 아무리 맛있다곤 해도 두 끼만 연거푸 먹으면 코에서 냄새가
난다니깐요, 후훗….

우리 부부도 예외는 아니어서 젊었을 때부터 선교사로 외국의 이곳저곳을 수없이 돌아다닌지가 벌써 20년이 넘어가고 있건만, 우리는 여전히 하루에 한 끼라도 꼭 김치와 된장찌개를 먹어야만 겨우 밥을 먹은 것만 같으니….그런 우리를 가리켜서 남편 친구인 백인 선교사 한 사람이 “야, 너희들의 배는 김치 탱크구나…내 배는 "슬라피조" 탱크인데…(음식 위에 올려서 먹는 양파와 고기를 섞은 서양요리의 일종)” 하면서 크게 웃던 생각이 납니다.

이렇게 그리운 것이 김치와 된장찌개이건만 러시아에 온 후, 거의 1년이 넘도록 김치와 된장찌개는 구경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재료들을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몸이 튼튼하여 입맛도 좋은 남편에 비해, 저는 몸도 약한 편이라 그런지 아무거나 썩썩 먹지를 못하는 골골이거든요. 얼마나 힘이 들던지요…훌쩍~

된장찌개는 그런대로 안 먹고도 견디겠는데…이놈의 김치만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보니…난 아무래도 순종(?) 김치
탱크인가 봅니다.

그런 내가 근 일 년 동안 김치를 먹지 못하고 살려니까, 거의 미칠(죄송^^*)지경이었습니다. 자나깨나 김치, 김치생각뿐이었고 꿈에도 김치를 먹는 꿈을 다 꾸게 되더라니까요.

그렇게 고심하는 우리를 본 어떤 중국 조선족 상인이 배추가 있는 곳을 아르켜 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선뜻 따라나섰다가 어느 늦가을의 노오란 배추밭을 보게 되었고, 그곳 들판에 흐드러진 배추가 새빨간 고추잠자리 떼들과 함께 어우러져 벙글거리고 있는 것을 본 우리는 얼마나 반가웠던지요…(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다 글썽거린다니깐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닥치는 대로 배추를 끌어 담았는데요, 글쎄, 대책도 없이 30여 포기나 끌어 담았지 뭐예요.

이렇게 어렵게시리 배추를 구해다 놓긴 했는데…아뿔싸, 이 김치를 또 어디에다 담근담?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김치를 담글 마땅한 통이 어디 있어야지요,때 마침, 우리는 학교 (언어 연수생으로서 극동대학에 다녔음)에 갔다 오던 길에 어느 술집 옆을 지나오게 되었는데, 그 술집 뒷마당에 나무로 된 큰 술통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빈 술통 속에다 비닐로 된 쓰레기봉지를 집어넣으면 훌륭한 김치통이 될 수가 있겠다는 아주 기발(?) 한 아이디어가 내게 떠 올랐고…남편을 졸라 거금? 을 지불하고 그것을 욕심껏 아예 두 통이나 사긴 샀는데…그 큰 술통을 집으로 가지고 갈 길이 또 막연했습니다.

“자, 이걸 어떻게 집으로 가지고 간담?” 아무리 둘러보아도 묘책이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길가에 그 빈 통을 세워놓은 채 지나가는 차를 세워보려고 애를 쓰며 손을 흔들어댄 지가 벌써 몇 시간이 지났건만… 그 누구도 차를 세워 주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북쪽 하늘의 해는 유난히도 짧은지, 주위는 어느새, 어두컴컴해 오고 있는데…초겨울의 얼어붙은 땅 위에서 추위를 이겨보려고 우리 부부는 발을 동동 굴러보았지만 여전히 뼈가 쑤시듯 차가운 바람에 한기마저 느끼며 몸은 오들오들 떨려 오고... 배에선 쪼르륵 소리마저 들렸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학교 가기 전 커피 한잔과 빵 한 조각 먹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곧 시베리아의 무서운 밤이 닥칠 텐데…이 일을 어쩐다? 이 술통만 없다면야 ‘뜨람바이’(전차의 일종)를 태워 주겠지만, 그래도 김치통에 대한 미련만은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술통만은 꼭 가지고 가서 김치를 담구어야 러시아의 긴긴 겨울을 속이 니글거리는 눈물의 밥을 먹지 않을 테니깐요.

다급해진 우리는 “오, 하나님, 우린 꼭 김치를 먹어야만 해요. 우리는 한국사람이요, 김치 탱크인 것도 주님이 다 아시잖아요. 제발 이 술통을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속히 천사라도 좀 보내어 주세요.” 우리 부부는 그곳에 서서 두 손을 붙잡고 기도를 했고…나는 거의 필사적인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기도를 막 끝내고 눈을 들어보니 이상한 일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아주 낡고 큼직한 군인용 지프차 한대가 우리 앞에 오더니 딱 멈추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젊은 러시아인이 고개를 내밀고 손짓으로 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지프차를 보는 순간 반가움과 함께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생활 한 지가 1년이 넘도록 이런 군인 지프차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혹시 마피아단 중의 한 명이나 아닌가...해서였지요.

지금부터 13년 전, 그러니까 그때 당시의 러시아는 70년의 사회주의를 막 끝내고 개방된 직후라 문자 그대로 마피아단의 천국이었습니다. 도시 곳곳에서는 마피아단이 들끓었고, 특히, 외국인 선교사들은 몸에 달러를 지니고 있다는 소문이 돌아 그들의 표적의 대상이 되었고, 선교사들의 피해사례가 만발하던 그런 때였던 만큼 두려운 것도 무리는 아니었답니다.

우리는 머뭇거리며 얼른 차에 오르지를 못하고 차 안에 누가 타고 있는가? 의심의 눈으로 차 안을 기웃거렸습니다. 뒷좌석을 보니 그곳에 한 대여섯 살이나 먹었을까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아이가 작은 장난감 자동차를 의자 위에 쭈-욱 늘어놓곤 그것을 가지고 혼자서 놀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 보였습니다.

착하게 생긴 어린아이를 보는 순간, 우리는 마음이 놓였고, 그 차에 올라탈 수 있는 용기도 생겼지요. 우리를 태운 그 지프차의 운전사는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웃는 얼굴로 앞만 보면서 달렸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달려서 우리가 살고 있는 낯익은 동리가 보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그 지프차는 우리가 머물고 있던 선교부의 아파트 앞마당에 차를 세우는 것입니다. “아니, 우리가 이 아파트에 사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지? 우린 그저 아직도 익숙지 못한 짧은 발음으로 우리가 사는 동네의 이름만 겨우 버벅거리는 러시아어로 말했을 뿐인데…”그저 정신이 다 몽-롱하기만 했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스빠시바, 스콜까 스토엣?” (감사합니다.얼마입니까?) 하고 묻는 우리를 향해서 그는 또 빙그레 웃는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우리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한사코 돈을 쥐여주려고 했지만 끝내 거절한 채 그는 어느새 차를 돌려 부르릉 힘찬 기어 소리와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운전석에 앉은 사람도, 그 어린애도 우리가 타고 내리는 동안, 정말이지 단 한 마디의 말도 하지를 않았다는 것입니다!(당신의 자녀가 너무 다급하다고 졸라대니...아직 인간의 언어를 채 배우지 않은 천사들을 급하게 파송하신 것인지...ㅎㅎㅎ.)

“아, 주님. 당신은 김치 탱크들의 고통도 아시고 김치를 담아 먹으라고 천사를 보내어 주셨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종들이 김치를 먹어야만 살 수가 있는 김치 탱크임도 아시고 천사를 보내어서 김치통을 실어다 나르게 배려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시커먼 지프차를 보면 우리가 두려워서 타지를 못할까봐 사랑스런 어린아이까지 대동시켜서 말입니다! (^^*)

우리는 우리 주님의 이런 멋진 배려에 코끝이 찡~해 옴을 느끼며 낡은 지프차가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그렇게 오랫동안 넋을 읽고 서 있었습니다. 와, 정말 멋있는 나의 주님, 당신을 사랑해요, 이 생명 다하도록….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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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천사들의 이름도 다양하다고 하던데...글쎄요, 저는 제 수호천사의 이름도 모르네요.(ㅋㅋㅋ) 우리는 성경에 나와 있는 천사의 이름 이외에는 알 필요도 없고, 또 알아서도 안 된다고 나는 믿습니다! 말씀에 의거한 영분별을 하지 않고 무조건 모든 천사들을 다 받아들이려 하다가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죽음의 천사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별똥별/최송연


 

찬양하라 내 영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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