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의 즉각성 - 박영돈 교수

출처: 고신대  http://www.kts.ac.kr

 


 

성화의 즉각성

선지동산 45호 게재 / 성화의 복음(5) / 박영돈 교수



오늘날 강단에서 전파되는 성화에 관한 많은 설교들은 온통 신자의 책임과 사명, 그리고 열심을 고취시키는 윤리적인 지침과 권면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예수와 그의 십자가에 대해, 그리고 예수 안에 주어진 은혜의 풍성과 영광에 대해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다. 칭의 뿐 아니라 성화에 관해서도 우리는 예수와 그의 십자가를 전해야 한다. 예수보다 윤리를 더 전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설교에 예수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가 경고했듯이, 예수보다 성화를 전하려는 것까지도 복음사역의 초점이 빗나간 것이다(Osward Chambers, My Utmost for His Highest(Westwood, NJ: Barbour and Company, 1963), p. 52.).
  
단번에 이루어진 성화: 결정적인 성화
성화의 설교도 예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예수가 성화의 근원이며, 능력이자, 목표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6장에서 바울사도는 성화도 칭의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구속사역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성화와 어떻게 밀접하게 연관되는가를 잘 보여 준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신자의 성화는 신자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부터 신자가 죄에 대해 단번에 죽고 새 생명 가운데 다시 살게 하는 효력이 유출된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써 죄에 대해 죽고 새 생명 가운데 다시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롬 6:2-6). 여기서 죄에 대해 죽었다는 말은 우리 안에 죄가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죄와 결정적으로 결별했다, 죄의 지배에서 전격적으로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예수 믿을 때 우리는 신분적으로 의롭게 되었을 뿐 아니라 죄와 획기적으로 분리된 거룩한 자가 되었다. 칭의와 함께 ‘결정적인 성화(definitive sanctification)’가 일어난 것이다. 보통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신약에서 성화에 대한 용어들은 주로 “어떤 진행과정이 아니라 단번에 완성된 결정적인 사건을 의미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John Murray, Collected Writing of John Murray, vol. 2, Systematic Theology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1977), p. 277.).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하여 우리 안에 근본적인 성화를 이루어 주셨기에 오직 그 바탕 위에서만 점진적인 성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바울서신에서 죄를 이기고 거룩하게 살라는 성화의 명령(imperative)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거룩하게 되었다는 복된 사실(indicative)에 항상 기초한다(Herman Ridderbos, Paul(Grand Rapids: Eerdmans, 1975), tr. John R. De Witt, pp. 253ff.). 그러므로 성화과정에서 ‘행함’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이 사실에 대한 ‘믿음’이다. 예수 구속의 은혜가 우리 안에 얼마나 놀랍고 획기적인 변화를 이루어 주었는가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한다. 우리의 영적빈곤은 이 복된 사실에 대한 인식과 믿음이 결핍된 것과 이 믿음을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영성훈련이 부족한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

성화의 비결
  어떻게 매일의 삶 속에서 죄의 세력을 극복하고 옛사람의 욕심과 구습에서 자유할 수 있을까? 죄에서의 자유, 우리의 옛사람을 죽이는 것은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몸부림쳐도 우리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주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 주셨다. 우리는 주님과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이루어 주신 죄로부터의 자유함과 승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삶 속에서 죄를 이기는 유일한 비결은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이다. 스펄젼이 그의 설교에서 자주 강조했듯이 우리는 구원받는 것과 똑같은 방법, 즉 예수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믿음으로써 우리 옛 성품, 교만과 정욕에서 자유할 수 있다. 그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 외에 다른 방법으로 결코 죄를 죽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펄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죄사함을 위해 예수께 나아가면서 죄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위해서는 율법으로 돌아갑니까? 당신은 그다지도 어리석은가요.”(C. H. Spurgeon, The Metropolitan Tabernacle Pulpit, vol. 10(Pasadena, Texas: Pilgrim Pub., 1991), p. 130.).
  우리의 죄와 옛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보혈의 권세와 부활의 능력밖에 없기에 우리는 성화과정에서도 계속 예수를 바라보아야 하며, 예수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성화의 은혜를 의존해야 한다. 그와 함께 이렇게 변화된 사람으로 살도록 인도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의존해야 한다. 성령은 예수 안에 일어난 결정적인 성화의 사실을 신자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실현하신다. 성령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서부터 유출되는 거룩하게 하는 효능을 우리 안에 적용하여 우리가 실제 죄에서 자유한 삶을 살게 하신다. 이와 같이 결정적인 성화와 성령의 사역은 상호 긴밀하게 연결되어 성화의 근본 바탕을 이룬다.

은혜와 책임
  성화의 명령(imperative)을 따라 사는 것은 우리 자신의 힘과 노력에만 맡겨진 사안이 아니라 오직 이 예수의 은혜에 대한 믿음과 성령의 은혜에 대한 의존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성화 과정에서의 신자의 책임은 반드시 이 은혜의 토대 위에서 강조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성화의 메시지는 복음적인 특성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모든 율법적이고 경직된 윤리적 가르침과 확실히 구별될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화가 우선적으로 인간의 행함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행하심에 근거한다는 진리에 좀 더 깊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위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행하셨고 지금도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서 강력하게 행하시기에, 오직 이 신적 사역의 토대 위에서만 우리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성화에 대한 설교 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경륜과 부르심, 그 뜻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내포된 성화론적 함축과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는 성령사역의 다이내믹을 심도 있는 고찰을 통하여 밝히 증거함으로써 이에 대한 확신 있는 믿음 위에 서게 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이 믿음의 채널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의 바탕 위에서 신자의 책임의 특성과 중요성을 선명하게 밝혀 주어야 한다.
  성화 과정에서 신자는 부단히 경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신자의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자가 그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는 믿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정적주의 신앙이 아니라 은혜를 힘입어 능동적으로 책임을 수행해가는 역동적인 신앙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자의 노력은 ‘은혜를 향한’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인한’ 행위이다. 은혜를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은혜의 산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조건이 아니라 그 은혜의 결과이며 열매인 것이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신자의 책임보다 앞선다. 그리하여 신자의 노력을 헛된 수고가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산출하는 생산적인 수고가 되게 한다. (다음호에)

출처: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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