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부활 中 - 부활의 '본질'에 관해.. (‘개혁주의 종말론‘에서 발췌) / 안토니 후크마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자들도 영화로운 육체들로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자들이 중간기 상태 동안 잠정적 행복을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행복은 그들의 육체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게 될 때에 비로소 완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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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부활의 본질에 관한 문제를 취급하려 한다.

우리가 예측하는 바이지만, 육체 부활에 대해 신약은 구약보다 더 구체적이며 상세하다. 이 책의 9장에서 우리는 이미 구약으로부터 사후에 경건한 자들의 운명과 악인들의 운명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배웠다. 앞에서 인용되었던 성경구절에서도 우리는 육체의 부활에 대한 암시를 던져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보게 하지 아니할 것임이라”(참조. ASV). 오순절 설교에서(행2:27, 31) 베드로가 이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데 그는 이 구절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선지서들 중 두 곳에서 육체의 부활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 곳이 있다. 첫 번째 구절은 이사야 26장:19이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는 두 개의 무리의 운명을 대조시키고 있는데 하나는 믿고 죽은 자들의 미래의 운명(주의 죽은 자들)이고 또 다른 하나는 14절에서,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고 사망이 되었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대상인 유다의 원수들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26:19은 신자들의 미래의 육체 부활, 특별히 이스라엘 중 신자들의 미래적 육체 부활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 12:2은 불신자와 신자 모두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구절이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라.” 영생(olam)이란 표현이 구약성경 중에 유일하게 나타나는 곳이 여기뿐이다. 다니엘은 분명히 미래에 육체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으며 영원한 생명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수치에 대해서도 함께 말하고 있다. 히브리어 영원(olam)이란 단어가 경건한 자들의 축복상태나 불경건한 자들의 불행한 상태를 동일하게 수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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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관한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보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신약 부활교리의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성경은 매우 분명히 말하기를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미래적 부활에 대한 증표와 보증이라고 한다.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그리스도 전의 모든 부활들은 다시 죽음이 찾아왔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의 부활만은 죽음이 뒤따르지 않았다. 이 부활의 모형을 신자들은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셨으므로 신자들 역시 일어날 것이다.

 

이런 진리는 신약의 여러 곳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고린도전서 15:20에서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선포하고 있다. 첫 열매(aparche)란 단어는 추수의 첫 부분을 의미하는데 이 첫 부분은 추수의 미래적 완성을 보증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의 증거요 보증인 것이다. 골로새서 1:18에서도 그리스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prototocos, the first-born)”라고 부르고 있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먼저 나신 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리스도의 형제자매들도 장차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럼으로써 로마서 8:29에서처럼, 그리스도가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었다.” 사실상 요한복음 14:19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도 살겠음이니라”고 하셨던 것이다.

 

로마서 8:11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신자들의 부활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을 배울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부활이 성령의 사역이라는 사실도 배우게 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빌립보서 3:20~21에서 바울은 신자들의 부활한 육체가 그리스도의 부활육체와 비슷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참조 ASV). 현재 우리 육체를 “우리의 낮은 몸” 혹은 “우리의 비천한 육체”라고 부르고 있다. 낮고 비천한 것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인 것이다. 아마도 고통, 고난, 병마, 질병 그리고 죽음 등을 연상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통해 신자들의 육체는 모든 죄의 결과들, 즉 사망까지도 제거된 그리스도의 영광의 육체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 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완전히 그와 같이 될 것인데, 우리의 영들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체까지도 그렇게 될 것이다.

 

육체의 부활에 관해 수많은 질문이 제기되어 왔고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부활의 육체는 물질적인 육체일까? 현재의 육체와 미래의 부활육체와는 어떠한 동질성이 있는 것일까? 부활육체가 현재의 육체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동질성이란 전혀 없는 것인가? 만일 다르다면 무슨 방식으로 부활육체가 현재의 육체와 다르단 말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변하려 할 때, 우리는 먼저 성경 중에서 육체의 부활에 관해 가장 충분하게 다루고 있는 고린도전서 15장을 살펴야 할 것이다. 그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이 대항하여 논쟁하려던 고린도 교회의 잘못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12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라고 바울이 반문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구절을 살펴 볼 때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이 고린도에서 부인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린도인 중 얼마가 신자들의 육체 부활을 부인하고 있었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아마 그들이 그랬던 것은 영혼의 불멸성을 인정하면서도 육체의 부활을 부인했던 헬라 사상의 영향이었다고 짐작할 뿐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오류에 대해,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는 신자들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가진 자들에 대항하면서, 먼저 부활이라는 사실(fact)에 대해 말하고(12~34절), 그 다음에는 부활의 양태(manner)에 관해 말한다(35~49절). 그리고 끝으로 부활과 살아 있는 신자들의 변화 등의 필연성에 관해 말하고 있다(12~14절). 신자들의 부활이라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부활을 들어 증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라”(12~14절). 다른 말로 하자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지 않고서는 신자들의 부활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 사실은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한다면 그의 신앙은 헛될 것이며 그는 아직도 그의 죄 가운데 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바울은 이미 말하고 있던 요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는데,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들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라는 것이다. 20절에서 이미 그리스도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하고 있다. 21절에서는 말하기를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고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예수 그리스도)으로 말미암는다고 한다. 22절에서 분명히 말하기를,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던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는다고 했다. 이 구절 중에서 첫 번째 모든 사람은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자들, 즉 모든 인류를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 모든 사람이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를 가리키고 있으니 곧 신자들을 말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불신자들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바울의 관심은 여기서는 신자들의 부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요점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은 그와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들의 부활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중보적 사역의 필수적인 국면인 것이다. 왜냐하면 “맨 나중 멸망받을 원수는 죽음”이기 때문인 것이다(26절).

 

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 ‘몸의 부활’에서 발췌 (338~350p)

 

 

참조:

바울이 고전 15장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신체적 육체부활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를 통해서도 이것은 입증되는데 그리스도는 분명히 육체적인 부활을 하셨기 때문이다(그의 육체는 만져질 수도 먹을 수도 있는 육체였다. 눅24:38~43). 또한 비육체적 의미의 “부활” 사상은 헬라인들의 “영혼불멸” 사상과 일맥 상통하기 때문에 “죽은 자들의 부활”을 육체부활로 생각해야 한다. 더욱이 고린도의 오류자들은 육체부활을 대치하기 위한 개념으로 비육체적 부활 사상 내지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을 받아들였던 것 같다.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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