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장 자유의 문제 (1) / 안토니 A. 후크마

 

 

크리스챤 인간론에 관계된 중요한 문제 중 이제 생각해야 될 것은 자유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때때로 이 논의는 이 문제 논의에 사용되는 다양한 용어들이 갖는 모호성 때문에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켜 왔다. 자유로운(free), 자유(freedom), 자율(liberty), 의지(volition), 뜻(will)과 같은 단어들이 때때로 너무도 다앙한 의미로 쓰여지기에 인간의 자유를 논의하고 있는 사람들도 심지어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왔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타락한 인간이 오늘날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자유의지라는 이 두 단어 모두가 문제가 된다.

 

우선 의지란 단어가 아주 명백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러기에 오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말은 인간 속에는 "의지"라 불리는 구분된 형태의 "기능"이 있으며 이 기능의 역할은 선택하며 걸정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자아낸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은 "강한 의지" 즉, 예컨대 강한 의지의 기능을 갖고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약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의지"가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을 할 때, 그는 이미 의지는 행동에 있어서 자유롭거나 그렇지 못한 어떤 사람 속에 있는 구별된 동인(動因)이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기능 심리학"이라 불리는 것과 병존할 수 없는 것이다. 기능 심리학에 있어서 인간의 다양한 능력과 재질과 재능은 마치 이 모든 것들이 어떤 행동을 실행하는 사람 가운데 있는 구별된 동인 혹은 "인성들"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의지"라 부르는 것은 전인에 의해서 실행된 어떤 행위에 대한 다른 이름일 뿐이다. 즉 결정을 하는 과정 중에 있는 전인을 말하는 것이다.1 그러므로 의지가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을 하여야 하는 것이다.2

 

또한 자유란 용어 역시 분명치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양한 것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된 바 있는 질문자가 그의 질문을 통해 의미하는 바는 이와 같은 것들인 것이다. 타락한 인간이 오늘날도 여전히 "선택의 피조물"(creature of option) 즉 이러한 종류의 결정을 할 수 있거나 동시에 그러한 결정들을 하고 있는 자일까? 혹은 타락한 인간이 오늘날, 하나님의 특별은총을 떠나서도 여전히 하나님이 보시기에 전적으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다시 말하면 만약 그가 대단히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죄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들일 것이다. 자유란 단어의 이러한 두 의미는, 비록 서로 연관되어 있긴 하지만 피차 아주 다른 내용을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용어들을 조심스럽게 정의내린다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이 용어들을 사용할 때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를 바르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혼동을 피하고자 "의지의 자유"와 같은 표현 대신에(비록 이 표현이 인용구문에서 간혹 나타나긴 하지만) "선택""참자유"란 단어들을 사용할 것이다.

 

"선택" 혹은 '선택하는 능력"이 의미하는 바는 양자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인간의 능력 즉 이러한 선택들에 대한 책임을 내포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선택 혹은 결정들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할 수 있으며 그에게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일 수도 있다. 참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의 계시된 뜻에 맞는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며 행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말한다.3 우리가 우리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우리의 "의지"와 "자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 왔는가라고 질문할 때마다 자유의 개념에 대한 이러한 두 개의 구별된 이해를 분명히 염두에 두어야 한다.

 

 

1. 선택하는 능력

 

이제 우리의 관심을 두 표현 중 첫번째인 즉 선택할 수 있는 능력(혹은 선택에 대한 능력)에 두기로 하자. 이 능력은 정상적인 인간 본성의 하나의 지울 수 없는 측면이다. 앞에서 이미 이 점을 지적한바 있다. 2장에서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피조된 인격체"라는 사실 속에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살펴본 일이 있다.4 또한 선택의 능력은 광의의 혹은 구조적 의미의 하나님의 형상의 한 측면이라는 것도 지적된 바 있다.5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선택에 대한 능력을 갖고 있으며 이 능력을 심지어 인간타락 이후에도 보유하고 있다는 인식이 기독교적 인간론에 있어서 본질적인 역점사항이다. 성경은 항상 인간을 결정할 수 있으며 그가 결정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마치 "지팡이"나 "돌"처럼 취급하지 않으시며 인간을 그에게 필연적으로 반응하며 그의 반응이 갖는 특성에 대해 책임성을 지니는 자로 취급하신다.6

 

벌두인(Leonard Verduin)이 표현하듯이, 크리스챤의 시각으로 볼 때 "사람은 본질상 선택의 피조물이요, 또한 그렇게 존재하며 계속적으로 양자택일에 직면하여 어느 하나에는 예라고 다른 하나에는 아니오라고 말해야 하는 자"이다.7 이 선택의 능력이 인간을 지상의 모든 다른 피조물들ㅡ산, 식물, 동물ㅡ로부터 구분짓는다.

 

사실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함으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닮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가장 중요한 재능 중 하나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기본적인 것이다. 이것을 떠나선 어떠한 책임도 어떠한 신뢰도 그리고 어떠한 계획도 있을 수 없다. 이것이 없이는 교육도, 종교도, 예배도 있을 수 없으며 이것이 없이는 예술도, 학문도, 문화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모든 인간 삶의 본질 그 자체이다.

 

 

2. 참 자유의 기원

 

이제 자유에 대한 좀 더 높은 차원의 이해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인 참된 자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는 선택에 대한 능력과 참 자유를 소유했었다. 어거스틴의 잘 알려진 말을 빌자면 그 당시 인간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그의 도덕적 완전성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도 있었으며 뱀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비록 심지어 유혹에 대한 이러한 저항도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로 했었지만).8

 

그러므로 태초에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중립적 존재가 아니였으며,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전적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인간은 "온전한 상태"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선택할 수 있는 능력 뿐만 아니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때의 인간은 참된 자유를 갖고 있었다ㅡ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죄를 지을 수 있었으며 사실상 죄를 지었다. 우리의 첫 조상은, 예컨대 그들의 순결성이 깨어질 수 없는 그러한 더 높은 단계까지 진보해 나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낮은 단계로, 즉 죄와 타락의 단계로 떨어졌던 것이다.

 

 

안토니 A. 후크마의 '개혁주의 인간론'에서 발췌(375-382p)

각주 1

1) 기능 심리학에 관한 훌륭한 비판서로는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k. II. Chap. 21, Secs. 6, 14-17.

각주 2

2) '의지'라는 단어는 선택의 과정 혹은 무엇을 하려는 과정을 의미한다-이 과정은 전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의지는 합리적 고려와 감정적 충동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지적 행동은 항상 전인적 기능이다.

각주 3

3) 그러나 종종 '자유' '자유스러운'이라는 용어를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의 자유'니 '자유스러운 세계'니 하는 용례들과 같다.

각주 4

4) 본서의 pp. 14~22을 보라.

각주 5

5) 본서의 p. 125을 보라.

각주 6

6) 이러한 사상은 특별히 에밀 부른너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본서의 pp. 95~103을 보라).

각주 7

7) Somewhat Less than God, p. 84.

각주 8

14) 이 점에 관해 Bavinck, Dogmatiek 2:600을 보라.

  1. 1) 기능 심리학에 관한 훌륭한 비판서로는 John Locke, 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Bk. II. Chap. 21, Secs. 6, 14-17. [본문으로]
  2. 2) '의지'라는 단어는 선택의 과정 혹은 무엇을 하려는 과정을 의미한다-이 과정은 전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의지는 합리적 고려와 감정적 충동을 떠나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의지적 행동은 항상 전인적 기능이다. [본문으로]
  3. 3) 그러나 종종 '자유' '자유스러운'이라는 용어를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기도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언론의 자유'니 '자유스러운 세계'니 하는 용례들과 같다. [본문으로]
  4. 4) 본서의 pp. 14~22을 보라. [본문으로]
  5. 5) 본서의 p. 125을 보라. [본문으로]
  6. 6) 이러한 사상은 특별히 에밀 부른너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본서의 pp. 95~103을 보라). [본문으로]
  7. 7) Somewhat Less than God, p. 84. [본문으로]
  8. 14) 이 점에 관해 Bavinck, Dogmatiek 2:600을 보라. [본문으로]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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