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적 위로가 주는 과도한 기쁨에 대한 지침(크리스토퍼 러브)

기독교인들은 세상이 주는 과도한 기쁨에 대해 주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 세상에서 주시는 외면적 편안함들에 대해서 즐길 수 있도록 허용하셨다는 사실이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도서 3:4). 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라"(전도서7:14) 그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신명기12:7) 이러한 결론은 슬프고 우울한 크리스챤들, 다시말하면 세상적 편안함의 풍요를 누리지만, 결코 ...기뻐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기뻐해도 된다라고 하셨습니다.

경건이란 것이 세상적 즐거움을 뿌리채 뽑거나 멸절시키지 않으며, 다만 그것을 조절하는 데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당신의 기쁨의 싹을 흔들어 뿌리채 뽑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싹을 잘 다듬어 주어서 과도하고 호사스러움을 제거하는 데 있는 것이며, 그러함으로써 당신의 기쁨이 그 적절하고 어울릴만한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데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경건은 멸절이 아니라 기쁨의 조절에 있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기쁨을 절감시키기 보다는 더욱 증대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결론을 가져야 한다. 경건한 사람에게 있어서 세속적인 즐거움은 때때로 악인의 세속적 즐거움에 비한다면 보다 내적인 슬픔과 영적인 아픔과 혼합되어 있다. 마치 "웃을 때에도 마음에 슬픔이 있고 "(잠언14:13)라고 말한 것과 같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사도들이 외면적으로 치장하지 말고 내면에 치장하라고 말한다.(고후5:12) 악인의 즐거움은 단지 외면적인 것이며, 실제가 아니다. 그들이 가장 기뻐하고 환희에 차 있을 때라도 그들의 내면은 양심의 가책과 온갖 복잡함이 마음에 가득하다. 악인의 즐거움은 마치 경건한 자의 슬픔과 같다. 악인의 기쁨이 단지 겉보기에 머물며 진실이 아닌 것처럼, 경건한 자의 슬픔은 사실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단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는"것이다.(고후6:10)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잠언10:22)

악인은 작은 한가지 사건에도 세속적 기쁨을 지속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건한 자의 기쁨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말하자면, 여기 이 세상에서 갖게되는 외면적인 세속적 기쁨은 아합이 온 왕국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지 못해 그 안에서 만족을 누릴 수 없었던 것처럼, 아주 작은 일이 악인의 기쁨을 반전시키고 만다. 그러므로 그들의 기쁨은 마치 "솥 밑에서 가시나무가 타는"(전도서 7:6) 소리와 같다. 그들은 잠시 소란을 피우고 불타는 것 같을 뿐이다. 하지만 곧 식어 없어질 것이다. 벨사살이 금술잔으로 폭음을 하고 있었을 때, 그 잔치의 중간에 한 손이 나타나 벽에 글을 쓰는 순간 일순간 그의 기쁨은 사라졌고 그의 머리는 힘을 잃었다.(다니엘5)

당신이 세속의 편안함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용납하신 합법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몇가지 즐기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특별히 대여섯가지 항목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자신의 죄를 즐겨서는 안된다.
당신이 범한 죄들은 결코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악인들은 그들의 범죄함이 그들의 기쁨이 된다. "너는 악한 짓을 하고 기뻐하는구나"(-쉬운성경,예레미야11:15). 그러므로 솔로몬은 말하기를 "행악하기를 기뻐하며"(잠언2:14), 시편에서도 "포악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가"(시편52:1,3). 하나님은 우리가 죄악을 기뻐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2. 남의 죄를 즐겨서도 안된다.
다른 사람들의 죄악도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즐거움으로 허락받지 못했다. 사랑에 대해서 고린도전서13:6에 보면 "불의(iniquity:불법,사악)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라고 되어 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을 향한 사랑이란 그 사람의 죄를 기쁨으로 삼지않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반대인 그의 정직한 행위를 기뻐하는 것이다. 로마서 1:30-32에 보면 "악인과 동일한 행위를 하는 자들"만 정죄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자들도 정죄를 받고 있다. 즉, 언약의 배약자들, 무자비한 자들, 뒤에서 수군수군하는 자들,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자들, 능욕하는 자들, 교만하고 자랑하며 악을 발명하는 자들만이 아닌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자들뿐 아니라 그런 것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자들도 정죄를 받습니다.(역자주-한글개역판에는 그들을 "옳다고 하는 자"라고 표현되어 있다. KJV는 그들과 함께 "기뻐하는 자"로 표현되어 있음) 이것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시편119:136). 베드로는 말합니다.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벧후2:7-8)

3. 비이성적인 피조물들의 죄에 대한 처벌에 대해 기뻐해서는 안된다.

이것과 관련해서 퍼킨스는 소와 닭싸움들에 대해 비난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의 결과를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왜 죄인가하면 곰과 개를 서로 증오하게 만드는 죄, 즉 피조물과 피조물사이를 싸움질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불법으로 얻은 물건을 기뻐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주께서 기뻐하지 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시편62:10). 그러므로 주께서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그가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리고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하박국1:13-15). 주님께서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고리대금과 같은 것으로 잘못 행하여 그들의 가산을 탈취하는 것에 대해 정죄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남에게 사기를 쳐 빼앗은 것에 대해 보상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자신의 명성과 헛된 자랑을 하기 위해 세상에서 번창하고, 병원을 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당신은 합법적인 상거래를 통해 기쁨을 얻고 정직한 이득을 취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즐기고 누려도 되지만 잘못되게 얻은 것을 즐겨서는 안됩니다. "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잠언20: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이것을 싫어하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신명기23:18). 비록 돈 그 자체는 좋은 것이라도 사악함과 부정으로 취득하였다면 주께서 그것을 혐호하십니다. 주께서는 그들의 사악함을 기뻐함으로 주께 가져 오는 자들을 업신여기십니다. "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미가1:7).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자 크게 낙심하였을 때, 그의 아내는 악한 일을 꾸밈으로써 포도원을 탈취하여, 남편을 상쾌하고 기쁘게 만들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속이고 사기침으로써 얻은 재물을 기뻐하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입니다.

5. 하나님의 백성들의 고통과 고난을 기뻐해서는 안된다.
이는 주께서 오바댜의 예언 속에서 에돔사람들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며"(오바댜1:12). 그러므로 주께서 세일산과 이두메를 경고하셔서 이스라엘이 곤고할 때 기뻐한 사실을 책망하십니다. "이스라엘 족속의 기업이 황폐하므로 네가 즐거워한 것 같이 내가 너를 황폐하게 하리라 세일 산아 너와 에돔 온 땅이 황폐하리니"(에스겔35:15) 미가는 그곳 교회에게 말하기를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미가7:8).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하지 못할 자니라"(잠언17:5)

6. 당신의 대적이 비참에 빠지고 고통 당할 때 기쁨의 소재로 삼으면 안된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언24:17). 욥은 이 특별한 일에 대해 양심적이어서 이러한 행위를 멀리하였습니다.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을 당함으로 즐거워하였던가"(욥기31:29-30) 욥은 이러한 일들을 철저히 부인하였습니다. 당신도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대적의 고통과 고난을 기쁨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실로 만일 당신이 그들을 하나님의 대적이요 교회의 적으로 여긴다면, 하나님의 대적으로서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하였습니다.
"주를 미워하는 자를 내가 싫어하며 가장 완전한 미움으로 그들을 미워합니다." 당신의 원수이기에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혹은 당신에게 해를 끼쳤기에 미워해서도 안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적은 당신이 반드시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멸망을 기뻐해야 합니다.
이 여섯번째 특별사항의 어느 것도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결론을 가지십시오. 때때로 어떤 때에는 합법적인 것들을 기뻐해서도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에 대해 대략적으로 언급하겠습니다.

먼저, 공적이며 거룩한 금식과 겸손히 해야할 때에, 신부는 그 방에서 나와야 하며 신랑은 그 침실에서 나와야 합니다. 기쁨의 표현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두번째, 땅이 심판으로 황폐해 지고 피폐해질 때입니다. (이사야 24:8)

세번째, 하나님의 손이 특별한 가족과 사람에게 크게 임하여 크게 애곡해야 할 때. (전도서 7:2)

네번째, 하나님을 배역하고 신앙을 버린 후에, 죄나 어떤 사악한 범죄에 빠질 때, 그런후 기뻐해서는 안됩니다. 가장 합당한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음행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하였느니라"(호세아9:1)

개혁주의마을/Grace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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