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 유명한 말을 남긴 사람은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1818~1883)다. 그는 지배 계급이 종교를 '아편'처럼 이용하여 피지배 계급이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여 이용하려고 꾸며낸 것으로 종교가 단지 정신적인 욕구 해소의 역할만을 할 뿐이라는 의미에서 종교를 아편에 비유했던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종교는 아편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허황되다 할 수 있는 것이, 그들은 인간이 신을 만들어서 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에서 제외된다. 무엇 때문인가? 엄밀히 따져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님을 섬기는 산 생명의 길이며, 인간이 신(神)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신(神)이 인간을 찾아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해가 잘 안 되는가?

어쨋거나, 마르크스의 말을 그대로 신앙하여 자신의 정치 세계를 쌓아올렸던 ‘레닌’과 그를 추종하던 공산 세력은 철저하게 망했다. 그가 숭상하던 공산 세계의 체계는 인간의 영혼 속에서 신을 죽인 대신, 인간의 두뇌를 로봇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시켜버렸다는 것을 공산 세계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 러시아인들은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다. 나는, 뒤늦게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국민의 분노가 하늘 찌르는 듯, 레닌 동상을 향해 침을 뱉고 돌을 던지고 끝내는 무너트리며 울부짖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고 그들이 레닌을 두 번 죽이는 그 처절한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산 증인이다. 인간의 영혼 속에서 하나님을 말살시켜버리자는 사상은 이렇듯 허망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의 사상을 모든 사람의 머리에서 온전히 사라지게 하지 못하는 것은 칼 마르크스의 사상 체계는 그만큼 깊고 매력적인 사상이기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칼 마르크스'를 철저한 무신론자 정도로 치부하지만 실상 그는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새로운 종교의 창시자로 볼 수 있다. 엄밀히 따지면 그를 ‘휴머니즘적 유물론’을 탄생시킨 교주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그를 따르는 무리가 많고 그의 사상은 설득력 또한 강렬하기에 어쩌면 세상 종말까지 사람들,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뒤흔들어놓을 수도 있는 ‘악마적 사고의 씨앗’이라고 보는 것이다.(이것은 단지 필자의 견해로서 객관성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반대자님들은 너무 열받지 마시길...^^) 

이런 시점에 아멘넷의 오랜 독자이며 합리주의를 지향한다는 한 분의 입에서 “종교는 아편이다”라는 망발(지송~^^)이 나왔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런 그분의 말을 누구 하나 반박하는 사람이 없더란 것이다. 아니 오히려 모두 재미있다는 듯, 희희낙락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나는 거의 기절할 뻔하였다.

하나님의 아들딸이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고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다가 이토록 변질하기까지 되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야 많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신앙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개인의 삶이나 정신세계, 영혼 속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실제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방종과 부도덕한 삶, 종교 사기꾼들의 가짜 성령행전을 바라보게 된 영혼들이 그들에게서 입은 상처가 너무도 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제대로 된 이유를 꼽자면, 그것은 자신의 나태함(안일함)이 산출해낸 부산물일 뿐이다. 이런 변절자들의 일이 처처에 일어나는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다. 이미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세적 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것이며, 이런 것들이 모두 말세적 한 징조임을 성경이 말씀해주고 경계를 높여주고 있건만, "딱딱하다, 고리타분하다." 등등...이유를 대면서 성경은 읽어보려고조차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란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성경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통독하여 읽어본 사람이라면 사실 이런 일은 전혀 놀랄 일만도 아니란 것이다. 말세에는 저 배도하는 자가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그런 자들이 횡행하는 속에서 성도는 참된 믿음을 지켜야만 그 믿음이 진주처럼 빛나는 것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가짜들은 이미 예정된 길을 걷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성경인가? 우리 함께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1)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지금까지 쓰여진 책 중 가장 놀라운 책이라고 한결 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사실, 성경이 놀라운 것은 나라와 직업이 다른 40 여명이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의 3개 언어로 1, 500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쓰여졌다. 다양성 속에서 그 위대한 주제와 중심 인물이 한결 같이 예수 그리스도란 점이 일치된다는 점이 놀랍고,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신 구약 66권 속에서 하고자 하는 그 정의, 그 뜻이 한 치도 어그러짐 없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는 점, 일관성, 연속성, 그리고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은 인간 이성의 한계로서는 도저히 꾸며댈 수가 없는 경이로움이 숨쉬는 책이 성경이다.

그 이유가 바로, 성경의 저자는 여느 인간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라고 천명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 16)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성령)께서 이것들을 모으셨다고 하는 것이다.

“성경은 오직 성령의 감동 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니라.” (벧후 1: 21) 이 말씀이 그러하지 않다고 비방하는 사람은 많으나 그것을 증명하고 입증해 낸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고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 그 자신이심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2) 성경의 주제는 무엇인가?

무슨 책이든지 그 책에는 흐름의 주제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초등학생이 읽는 어린이 동화책 한 권 속에서, 이솝 이야기 속에서도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흐름의 주제가 분명히 있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그 주제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 주제가 선명히 들어나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성경의 핵심, 곧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 5: 39)

한 걸음 더 나아가 성경의 흐름은 예수 그리스도, 삼위일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책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성경에서 삼위일체란 말이 없다라고 주장하고 목사님들이(모국어 번역문으로 된 성경만을 읽을 때) 그렇게 믿고 또 그렇게 가르친다. 그러하기에 이런 목사님들의 말을 인용하여 이단들, 반기련 소속 첩자들이 성도들을 미혹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삼위일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변적 교리가 아니다.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모든 형태의 이단은 삼위일체에 대한 공격인 것이다. 바빙크는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의 본질,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자기 계시, 성령 안에서의 그 근거와 원리를 가질 때에야 주장될 수 있는 것들이다" 여기서 바빙크는 본체론적 삼위일체를 말한다. 이것은 중요하다. 모든 비기독교적 사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체로서 우주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모든 이단들은, 이런 저런 방식으로 시 공간적 실존을 전체로서 우주의 다른 측면으로 도입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여기에 고대의 이단과 현대의 이단의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본체론적 삼위일체(the ontological Trinity), 즉 피조된 우주와의 관계를 떠나서 그 자체 안에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the Trinity as it exists in itself)가 그 스스로 온전하며, 그 안에 단일성과 복수성의 동등한 궁극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삼위일체의 이 높고 고귀한 교리에 이르게 된 것은 오래고도 힘든 노정을 통해서였다.

삼위일체 교리사의 첫 시기, A.D. 1-325은 역사의 그리스도가 신성의 제2위이심을 밝히려는 노력의 시기였다고 특징지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경배하였을 때, 그들은 다신론자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지주의자들의 로고스와 동일시하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 일종의 중간적 존재로 여기려고 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영원과 시간의 통일성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희랍 사상은 하나님을 말없는 심연으로, 이 세상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것으로 여기어 그렇게 말했고, 로고스에 대해서는 우주 안에서 하나님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말하였었다. 자연스럽게 이런 형태의 사변은 하나님이 자충족적 존재되심에 반하는 것이었다.”- 코넬리우스 반틸의 [개혁주의 신학 서론] 중에서

3) 마지막으로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라고 말씀드렸고, 성경의 핵심, 곧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드렸다. 이제는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시고 성령님께서 그 책을 모아다가 우리(인간)손에 들려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삶의 잣대로, 생활규범으로 말들을 하지만, 축약하면 “인간 구원”이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또 무엇인가? 구원론을 잠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구원((救援)의 뜻: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구원’은 각각 ‘예수-아’와 ‘소-테-리아’인데, 보편적으로는 임박한 악과 위험으로부터 구출해 낸다는 뜻이다. 신약에서는 그 의미를 좁혀 ‘죄로 말미암아 오는 형벌과 죄의 권세와 죄 된 생활에서 구해 내는 것을 가리키며 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구원, ‘소테리아’는 신약성경에만 약 150회 정도 나온다. (막3:4, 행27:20참조)

2. ‘쏘테리아’의 원형 동사는 영원한 의미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과 육체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질병을 고치는, 다시 말해 구원이란: 영과 육이 질병과 진노로부터 동시에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함 (롬5:9절 참조).

3. 마지막으로 ‘소테리아’는 종말적인 점인데 그 완전한 성취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비로소 실현을 보게 될 것이다 (롬13:11,고전5:5, 히9:28절 등, 참조).

기본 구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절 말씀), (요 5:24, 요1서5:12, 요3:36, 요10:28-29 절을 읽고 참조)
**믿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 영원히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기본 구원론이며, 한번 구원, 영원 구원의 법칙이 성립 된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자가 죄를 지으면 구원을 잃게 되는가? 아니면 죄와는 상관없이 영원 구원인가? 하는 것이 주요 쟁점으로 남게 된다.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 우리는 먼저 그가 진실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인가? 거듭나지 못한 사람, 교회의 마당만 밟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부터 연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성도)가 교회의 어떤 직위나 직분에 상관없이 반드시 거듭난 성도가 되어야만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3: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친히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기에 성도라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한다.

중생: (重生, born again) 중생이란 ‘파링게네시아’인데 그 뜻은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거듭난 성도가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러 가지 욕심과 미혹에 이끌려 (이때도 반드시 고의성이 없고, 실수라야만 하며 짐짓 죄나 고의적인 죄는 거듭난 성도의 할 일이 아니다.)죄를 지을 수도 있다. 그것은 이미 목욕한 사람이 발을 씻는 것,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기도를 올리고 그 죄에서 돌이켜 다시는 그런 범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 그럴 때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요13:6-9절 참조 )

결론적으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종교 그 자체만으로는 인간에게 구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과 내가 잠시 살펴본 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기에 생명을 살리는 책이다. 생명과 아편은 동일시 될 수도 없고 동일시 되어서도 안된다. 인간이 살아나갈 수 있는 생명의 양식은 오직 성경 말씀 한 권만이 유일무이한 책이다 ㅁ

우리가 주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면, 신학 책을 읽는데 할애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성경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해야 하고, 인터넷상에 떠도는 많은 설교자의 설교를 청취하는데 보내는 시간보다 성경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은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에게 필수다. 자기 자신이 직접 하루에 한 장이라도 성경을 읽어야 산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영혼의 금서(金書)인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내 마음속에 담아야 한다. 말세에 성도가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은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성경을 많이 읽고 그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 역사 하는 사람만이 마지막 때는 살아남을 수가 있을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늘 중심을 잡아 주고, 마지막 환난 날, 그리고 극심한 일상 속의 환난 속에서도 그 말씀이 나를 지켜주신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 10-11)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딤후 3: 14-17)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브리서 4장12절 말씀)

USA 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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