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의 경악할 실체를 벗기다

 

임헌원 목사(한돌교회 담임. 예장합동)


하나님을 인격화 신(神)으로 생각지 않고 기(氣) 수준으로 보는 것은

인격적인 성령하나님을 에너지(기,氣)로 약화시킬 수 있다.

자기 암시를 주어 집단 최면을 거는 관상기도행태 속에서 생각나는 것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합당한 것인가?

그러므로 사실상 관상기도는 허구적이며 비성경적인 자기고백 수준이라 하겠다.



경악할 관상의 실체 앞에 이래도 머뭇거리며 망설일 것인가?


필자는 2007.5.1.오후6시30분경 한국의 G 대형교회 별관 8층 목회자 리더쉽연구센터 입구에서 영어담당 목사(남, 관상을 안 함)와 모 전도사(남, 현재 관상을 하고 있음)를 동시에 만나 관상에 관하여 물었다. 다행히 모 전도사는 G 대형교회의 담임 L 목사의 관상기도 가르침을 받아 담임 L 목사와 함께 현재 관상을 실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G 대형교회의 담임 L 목사의 관상기도 가르침(관상기도 세미나는 일정기간하며 유료 약 30만원)의 일부를 그 교회 모 전도사(남)가 고백하는 것 중의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글은 2007.5.3.오후3시경 G 대형교회 관상기도세미나 실제 운영 담당 J 전도사와의 핸드폰 통화에서도 2007년5월1일 모 전도사가 고백한 사실에 동의하며 필자에게 확실하다며 재확인 하여 준 내용으로 틀림이 없다)



들숨에서 하나님과 성령을 마시고 날숨에서 죄악을 몰아낸다?


“우선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눈을 감은 상태에서 숨(호흡)기도의 방법은 이런 것”이다 하며 알려 주었다. “들숨(흡吸, 숨을 들이마심)에서는 하나님과 성령을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며 하나님과 성령을 인지하고, 날숨(호呼, 숨을 내쉼)에서는 내 속의 죄악을 몰아낸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상기와 같이 생각하며 ‘관상기도 놀이’를 하라는 것은 '상징적으로 죄를 몰아내겠다며 애쓰는 모습으로 차분히 성령하나님과 교제하는가보다' 라고 그저 이해를 하고 싶으나 그렇게 단순하게 보고 넘길 사안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 심각한 신학적문제가 다음과 같이 발생할 수 있게 되어 위험한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양종교 기(氣)운동의 기(氣)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만 대입


이미 한국 개신교회들 중 여기저기에서 실행하는 관상기도에는 동양종교 기(氣)운동의 기(氣)에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만 대입을 시키는 것이 다를 뿐 나머지는 동양종교의 기(氣)운동 단학 선(禪)과 다를 것이 없다. 하나님을 인격화 신(神)으로 생각지 않고 기(氣) 수준으로 보는 것은 인격적인 성령하나님을 에너지(기,氣)로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실상 관상기도는 허구적이며 비성경적인 자기고백 수준이라 하겠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라!’ 하신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 성자하나님께서 성령하나님을 파송하시기 때문에‘성령을 받으라!’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는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으라!’라고 하며 카리스마를 좌지우지 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비성경적이다.


또한 죄는 내 기분으로 생각하면서 내 마음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인위적으로 내보내어지는 것도 아니다. 호흡(숨)으로 내 자신의 마음이 스스로 죄악을 내보낸다고 생각하는 인본주의적 발상은 죄의 속성을 물량적인 것으로 속이는 것이다. 죄는 무형체이며 영적인 것인데 육적이며 물량(에너지)적인 것으로 표현하려는 비성경적인 의도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이 없애주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 하나님께서 죄를 씻어 주시며 불가항력적으로 구원하시는 것이다. 죄까지도 제 자신이 마음대로 내보내 없앤다는 것은 교만한 것을 뛰어 넘어 예수님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 동일시하려는 것으로 비성경적인 해괴한 일이다.




신비주의 자아최면 행각의 실체 드러나!


그리고 “복음서의 변화산 말씀을 마음으로 생각할 때는 2000년 전의 변화산의 현장에 자신이 가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그때 그 주님을 마음에서 느끼며 그 당시의 제자가 된 내 마음에 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며, 또 “혈루병을 앓는 여인의 현장에서 그 말씀을 생각하고 그때 그 주님을 자신의 마음에 생각하고 있으면 역시 그 순간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르는 일체의 행위가 경험 되는데 그것을 관상이라”고 한다.


“그룹으로 모여 할 때는 관상을 인도하는 리더가 반듯한 자세로 눈을 감은 상태의 사람들에게 ‘자! 지금 산을 올라갑니다’라고 하면 마음으로 함께 산을 오르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하면 모두가 그 아름다움을 본 것처럼 마음으로 느끼며 마음으로 여행과 등산과 산보를 함께 행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관상리더가 말과 분위기를 어떻게 인도하느냐에 따라서 많이 다르다”고 고백을 하였다.



자기암시를 준 최면상태에서 인식되는 생각이 주님의 음성으로 합당한가?


여기에서 우리는 마치 최면을 거는 모습하고 너무 흡사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암시를 주어 집단 최면을 거는 관상기도행태 속에서 생각나는 것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으로 합당한 것인가? 이것은 존재론적으로 슐라이마허의 감정의 신학이요, 무신론이요, 영매를 쓰는 뉴에이지의 흐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교도인들의 명상과 다름없는 행태에서 때로는 자기 생각 속에서 자기 없음(무無)현상이 나타나는 캄캄한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태고의 고요함을 느끼는 자아(Ego)와의 대화가 마치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교제와 안식을 얻는 것으로 착각을 하게 만드는 비성경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더 위험한 것은 자기 생각 속에서 자기 없음(무無)현상이 나타나는 캄캄한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태고의 고요함을 느낀다며 평안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심지어 영혼이 무(無)가 되는 것, 자아(Ego)가 없어짐 즉 영혼의 멸절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는 비약이 얼마든지 가능한 비성경적인 행각이 나올 수가 있다.



관상기도에 대해 비상경계령을 발효함이 옳다


관상을 이끄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배가 고프지 않다. 그저 성경적인 설교만하고 있어도 비행기타고 해외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는 탄탄한 재력도 있다. 그들은 실제생활에서도 전혀 아쉬운 것이 없는 부요한 사람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이 관상기도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머무르는 기도로, 이 세대 영성의 새로운 모태가 될 수준 높은 영성기도로 치켜 올리며 수많은 성도들을 관상의 허구 속으로 몰아가려는지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관상에 참여하면 시대가 요청하는 진보개혁 엘리트 교인이고 관상에 반대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수구보수 세력으로 비아냥을 해서는 안된다. 시대정신을 따라하지 말고 무엇이 성경적으로 옳고 그른지 건전한 비판을 통하여 교통정리를 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제 개신교가 관상기도를 받아들인다는 것이 왜 위험한 도박이고 한국교회를 망치는 지름길인지 확연히 드러난 이상, 관상기도에 대해 비상경계령을 발효하는 것은 지극히 옳다.


유행하는 시대정신(최근의 시대사조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이 느낌(Feeling), 즉 감성을 강조하여 원시 고대 문명의 부활(회귀)을 강조하여 힌두교, 불교식의 명상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에 동양종교 단학 선 같은 기(氣) 운동이 합세하여 서울한국에 우후죽순처럼 들어 선 것이 벌써 10년 이상 되어 한국의 문화적 강산을 변하게 하였다.


그래서 관상은 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정신의 사도들(동참한 목회자들 포함-그 사도들은 누구의 종들로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인지 모르지만)이 역사적인 사명감에 도취되어 열려진 감성적 느낌문화(Feeling Culture)의 물결로 개신교의 근간을 바꾸려하는 비성경적인 큰 흐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성경적 진리는 시대정신(시대사조,포스트모더니즘과 뉴-에이지)이 제아무리 요동을 쳐도 달라질 이유가 없다. 아직 늦질 않았으니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정신을 진리로 알고 분별없이 따르려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앞에서 죄악의 씻음을 받고 성경으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림헌원 목사>


총신대원 졸

명지대학교 학부와 사회교육원 및

협성대학교 학부 강의

성남시 건강가정지원센터 가족상담팀 면접상담원


제13호 • 2009년 4월 21일 화요일


* 출처 : 크리스천인사이드  http://www.ci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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