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

이승구 목사(국제신대원 교수)

 



우리 나라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사는 일을 흔히 "예수 믿는다"고 표현합니다. 너무 많이 사용되어서 그 의미가 손상되어 사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생각해 보면 좋은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은 다른 존재나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을 믿으며 산다는 의미를 함의하니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존하거나, 돈과 재화에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거나,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거나, 과학 기술을 믿거나, 이 세상을 의지하거나, 그 어떤 다른 것들을 믿는 이들이 아니고, 바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 믿는 이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도대체 이 "예수 믿는다"는 말로서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1) 구원의 방도로 예수님과 그의 사역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하고(예수님을 "구주, 구원주"[Saviour]로 믿음) (2) 삶 전체를 예수님을 의존해서 살아간다(예수님을 "주님"[Lord]으로 믿음)는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차례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번 호에는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말을 우리의 구원의 방도로 예수님과 그의 사역을 의존한다는 뜻으로 사용한다는 점, 즉 예수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원주로 믿는다"는 뜻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과 관련 없는 우리의 상태가 구원받아야 할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스스로의 힘으로서는 전혀 구원함을 받을 수 없는 상태(total inability)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상태를 성경이 말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믿기 이전의 우리 상태를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에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엡 2:1). 이를 영적인 죽음(spiritual death)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는 그 사람 안에 영혼이 없다거나 영혼이 전혀 활동하고 있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그의 영혼이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기 이전의 상태를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보는 것은 사실 그리스도를 구주로 바르고 온전하게 인정하는 데서 나오는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 한 사람만이 예수님과 관계되기 이전의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인 사람은 자신의 이전 상태를 성경을 따라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또는 다른 인간들의 힘에 의존해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직도 인간적인 것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지 않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자신을 철저하게 심각한 상태에 있다고 여기는 이들만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들은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해서 참으로 철저하게 절망한 이들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전적 부패(total depravity)에 대한 바른 인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상태를 생각하지 않는 이들은 결국 어느 정도는 자신이 구원에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바르지 못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스스로에게 어떤 기여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직 자신과 모든 인간적인 것에 대해서 철저히 절망하고 성경이 말하는 대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방도를 하나님께서 구원 사건을 일으키신 그대로, 또 성경에 기록한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시어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후에 우리의 자리, 우리의 형벌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는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대리 구속[代贖]의 방도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고, 그런 방식으로 구원 사건을 이 세상 역사 가운데서 이루셨습니다.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고전 15:3, 4).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내신 이런 구원의 방도를 그대로 받아들이고서, 그가 이루신 구원의 방도에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복음 사건과 그것을 전하는 말인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고전 15:2).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구원의 방도를 마련하시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든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방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든지, 하나님의 구원 방도는 너무 쉬워서 그런 식으로 구원하려 하신 것은 옳지 않다든지 하는 식의 말과 태도를 나타내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는 십자가와 그를 통한 구원의 방식을 어리석은 것이라거나,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는 이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십자가를 하나님의 지혜의 표현이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연약하여 죽고 돌아가신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고전 1:18, 24), 그 수욕의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이는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든지, 있지 않았어도 되는 것이라든지, 실제 역사 가운데서의 부활은 없이 그 의미만이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라는 말과 태도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는 이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 역사 가운데 오셔서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어 주시고 다시 사신 것에 온전히 의존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을 위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롬4:25).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의존하며 최후의 심판 자리에서도 그것에 근거해서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고 십자가와 부활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는 십자가와 부활이 바로 자신을 위해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들은 자신들의 유일한 구원의 근거가 예수님께서 이루신 대속에 있음을 믿으면서, 언제까지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의존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구원을 이 역사 가운데서 이루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분의 구원을 이루시는 방식에서 지혜를 발견하고 영원을 다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이는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든지 구속해 주신 예수님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이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일찌기 죽임을 당하셨던 그러나 다시 사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어린 양 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찬양과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돌려 드리며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이들은 이렇게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을 찬양만 하고 있는 이들은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의 뒤를 따라가며, 그의 손발이 되어 그가 이루시려는 일을 열심히 이루어 가는 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에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말의 또 다른 부분인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좀더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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