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한국----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칼을 쓴 죄수
칼은 중죄를 지은 죄수의 목에 씌우는 형구로 마른 나무널조각으로 만들었다. 칼을 쓰면 죄수는 보행이 불가능한데 원칙적으로 양반에게는 칼을 씌우지 않았다. 사진의 죄수들은 동학농민군이라는 설명도 있는데, 의병들이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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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笞刑)
길이 1m 정도의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 가벼운 죄를 처벌하는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일제 초기까지 존속되다가 3·1운동 직후인 1920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태 10부터 여러 등급이 있었고, 속형(贖刑)이 허락되어 주로 가난한 민초들에게 집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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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형
교수형은 중죄인의 목을 형구로 옭아매어 죽이는 형벌이다. 사진에서 교수형을 당한 사람들은 의병이 아닐까 추측된다. 1910년 전후 10여명이 공개적으로 교수형을 당할 만한 사안은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의병 외에는 달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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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수와 하인
간략한 사진 설명에는 ‘죄수’라고만 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혹 귀양살이하는 양반 죄인이 하인을 데리고 가는 광경일 수도 있겠지만, 옆의 담장으로 미루어 시골풍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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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개다리소반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있다. 벽에 두루마기가 걸려 있고 신선도 병풍이 쳐진 것으로 보아 여염집은 아닌 듯하다. 여인네는 음식을 덜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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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막
두 남자가 장터 주막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돗자리 위에 놓인 개다리소반이며 엉거주춤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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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발굽 갈기
소를 이용한 농경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게 된 것은 농업기술 발달에 획기적인 일이었다. 소를 쓸모 있게 활용하려면 굽갈이는 필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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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청하는 관리
조복을 갖춰 입은 관리가 의자처럼 생긴 남여(籃輿)를 타고 관청에 출근하고 있다. 뒤에는 서류를 넣은 궤를 짊어진 하인이 따른다.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오히려 구경거리였던 듯 집안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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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공사
세 명의 인부가 담장을 쌓고 있다. 나무틀에 돌과 진흙을 개어 넣어 토담을 쌓는 광경이다. 나무틀 안에서 흙을 밟아 다지는 인부가 흙을 쏟아 붓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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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활터에 나가 활 쏘는 일은 한량들의 스포츠였다. 멀리 있는 과녁을 겨누어 막 활을 당기고 난 모습이다. 몇 사람은 아직 시위에서 화살이 떠나지 않았다. 시합을 마친 뒤엔 술 한잔씩 마시고 헤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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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간
말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말은 주로 군용(軍用)이나 역마(驛馬)로 사용되었지만 일반에서는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끌게 하고 농사에도 동원했다. 값이 비싸 농가에서 기르기는 쉽지 않았다. 사진은 말을 길러 삯짐을 실어 나르던 곳의 마구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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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장례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권세 있는 개성 상인이 세상을 떠난 듯 상점가 깃발이 펄럭인다. 지붕에 올라앉은 아이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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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기생
기생이 부채춤을 추고 뒤에서 악사들이 장구와 징을 쳐 장단을 맞추고 있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은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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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패
인간 피라미드를 이룬 놀이패. 아마도 동네에 큰 잔치가 있었던 모양으로, 사당패가 동네에 들어와 갖은 재주를 부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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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구질
두 아낙이 나무로 만든 절구통에 곡식을 넣어 공이로 빻고 있다. 나무절구는 통나무의 속을 파내 만들고, 공이는 손으로 쥐는 부분을 파내 둥글게 만든다. 혹 명절날 쓸 떡을 만들려고 절구질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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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다녀오는 여인네
동네 아낙들이 장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젊은 아낙들은 장옷을 입고 머리에 물건을 이었고, 나이 든 아낙들은 장옷도 물건과 같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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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갓을 쓴 여인
먼 길을 떠나는 젊은 여인이 방갓을 썼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여인을 옆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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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이를 인 여인
두 손으로 물동이를 이고 있다. 배경이나 분위기로 보아 현장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실내에서 연출해 촬영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자식을 낳은 여인의 가슴 노출은 큰 흉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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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 닦기
요강은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주택이 보급되기 전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생활용품이다. 신분이나 경제력에 따라 놋이나 도기, 자기, 목칠기 등으로 요강을 만들어 썼는데 사진에 보이는 것은 자기로 만든 것 같다. 연출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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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동이를 인 여인
동네 어귀에 우물이 있었을 것이다. 아낙이 물을 길러 왔다가 사진을 찍게 되었다. 한 손으로 물동이 손잡이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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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다녀오는 여인
장에 나가 채소라도 팔고 오는 길일까. 동생을 들쳐 업고 엄마를 따라 나섰던 아이의 손에는 채소가 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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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이질
여자아이 둘이 다듬잇돌에 세탁된 옷감을 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다듬고 있다. 옆에서 동생들이 구경을 한다. 옷 손질과 바느질은 여성들의 일상이었다. 두 사람이 네 개의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하는 리듬감 있는 소리는 이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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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네 아이가 연 날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시선이나 표정이 부자연스럽다. 이미 1890년대 초부터 널리 퍼진 연출기법에 따른 사진이다. 한 아이는 얼레에 연줄을 감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종이에 대오리를 붙이고 실을 매어서 공중에 날리는 연 놀이는 당시 어린이에겐 최고의 겨울 스포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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