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회 1. 특유의 교의_ 성령세례

하나님의 성회(윤영일) 2014. 6. 10. 01:41

하나님의 성회
우리들의 특유의 교의

성령 세례

 - 20가지 질문과 대답 -

미국 하나님의 성회 한국총회

 

내 용

성령 세례: 그것은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성령 세례의 목적

1. 기독교인이 구원을 받을 때에 성령 세례를 받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체험이 성령 세례와 어떻게 다릅니까?

2.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도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들은 왜 성령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까?

3. 사람이 한번 성령 세례를 받으면 왜 후에 재충만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까?

4.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공중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또한 신자의 개인 기도 생활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방언과 은사의 사용

5. 성경의 기준에 의해 공중석에서 방언으로 말할 때, 항상 방언 통역이 있어야만 합니까? 누가 방언 통역을 해야 합니까?

6. 방언으로 말함과 그 후에 따르는 방언 통역은 누구에게 유익함이 있으며, 무슨 목적이 있습니까?

7.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방언 통역이 가능합니까?

8. 교회에서 방언과 다른 은사들이 역사할 때에 우리들이 한 역할을 담당합니까?

 

혼돈되는 질문들에 대한 성경적 답변들

9. 사람이 방언으로 말하지 않고도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10. 신약 성경에 기록된 첫번 째 성령이 임하였을 때에,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과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왜 이러한 것이 오늘날에는 일어나지 않습니까?

11. 동시에 구원을 받는 것과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가능합니까?

12. 고린도전서 13:8절은 “방언도 폐하고”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성령 세례가 단지 2000년 전 초대 신자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까?

13. 바울은 고린도전서 14:19절에서 교회에서 “깨달은 마음으로 . . . 말하는 것이 . . .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라고 말했는데, 이 말씀은 방언의 체험이 오늘 날에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14. 오늘날 체험하는 성령의 부으심이 진정으로 성경적이라는 증거가 있습니까?

15. 왜 오순절파는 사도행전과 고린도전서 12-14장에서 오직 몇 번 언급한 방언으로 말하는 것에 대해서 강조합니까?

 

성령 세례 받기

16. 누가 성령 세례를 받아야만 합니까?

17. 사람들이 성령에 충만함을 받을 때 그들은 절반은 의식이 없는 상태입니까? 아니면 그들은 완전히 정신이 있으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의식하고 있습니까?

18. 왜 어떤 사람은 즉시 성령 세례를 받으며,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갈망하여도 받지 못합니까?

19. 개인이 성령 세례를 받기를 원할 때 성령 충만함을 빨리 받기 위해 그의 생활이나 주위 환경에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까?

20. 방언이 성령 충만함에 대한 유일한 증거입니까?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 그 사람의 태도나 행동에 어떤 의미있는 변화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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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세례: 그것은 무엇이며, 누가 그것을 체험할 수있습니까?

교회의 그 어떤 교의 보다도 더 많은 질문과 논란을 일으킨 것은 없습니다. 러한 논쟁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날의 이적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 그러한 일을 처음 본 사람들은 질문을 했으며,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성령님에 대한 깨달음을 갖게하기 위해서 구약 성경의 선지자들에 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성령의 바람은 결코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2세기의 터툴리안으로 부터 10세기의 시메온, 18세기의 요한 웨슬리, 그리고 19세기의 미국 부흥사들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령님의 강력한 나타내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가장 위대한 역사는 20세기 초에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보다 완전한 체험을 갈망하던 몇 개의 작은 경건한 모임의 회원들은 성령의 은사의 회복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의 모임에서 그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것과 비슷한 이적들을 보았습니다. 령 세례를 체험한 사람들은 방언으로 말을 하였으며, 예언을 하였고 병자를 위하여 기도했을 때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으며, 새로운 선교 사역의 물결이 일어나서 곧 전 세계로 뻗어 나갔습니다.

이러한 20세기의 오순절파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체험이 사도행전 1:4, 5에 기록된 예수님의 약속이 실현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들은 이 “아버지의 약속”이 “모든 신자들이 받을만 하고, 또 열렬히 고대하고 진정으로 구해야만 하는” (P. C. Nelson, 성경 교의, 774) 체험으로 믿었습니다.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그들의 강조는 거의 모든 기존 기독교 단체들과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오순절파 사람들은 조롱을 받고 기존의 교회들로부터 내어 쫒김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부흥은 계속되었습니다. 이들 “거룩한 무리들”은 야외에서 모이거나 점포를 임대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치유와 구원의 이적들은 군중을 끌어들였습니다. 그들을 비웃던 호기심에 찬 사람들은 흔히 기도하기 위해서 남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무리들은 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그러한 이적이 계속됨에 따라 모이는 사람들은 사업가나 전문가들로 불어났습니다.

그 후 50년 동안 오순절파 사람들은 교회와 대학들을 설립하고 사역자들을 훈련시켰습니. 그들은 주일 학교를 조직하였고 선교사들을 파송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사역에 중점을 두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1960년대에는 또 다른 부흥의 물결이 오순절의 축복을 전파했습니다. 많은 루터교 신자들이 방언으로 말을 하고 병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로마 캐토릭 신자들이 예배 중에 손을 들고 성령 안에서 기도했습니다. 장로교 신자들, 성공회 신자들감리교 신자들, 침례교 신자들, 형제교 신자들, 그리스도의 제자회 신자들 --- 성령의 바람은 모든 교회들에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그들의 믿음에 대해 진지한 모든 교파의 신자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바라봅니다.

이 체험은, 구원과 별개의 것으로 구원 후에 따르는 것으로, 성령 충만한 삶의 부요함으로 신자를 인도합니다.

성령님으로 하여금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그 영혼이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갖도록 함으로서 질문에 대해서 가장 잘 대답을 하며, 논란을 가장 잘 해결하게 됩니다.

그러나 많은 신실한 신자들이 이러한 복된 체험을 하는 것으로부터 방해하는 성령 세례의 교의에 관한 오해가 있습니다. 대답을 요구하는 진정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위에 언급한 역사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에 대한 성경적 해답을 찾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령세례_ "20가지 질문과 대답" 중 1번 입니다.
 

성령 세례의 목적

1. 기독교인이 구원을 받을 때에 성령 세례를 받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체험이 성령 세례와 어떻게 다릅니까?

,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성령님이 그들의 삶에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성령님은 그들의 죄에 대하여 책망하시며, 의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그들과 함께 거하십니다 (요한복음 6:44; 14:17; 로마서 8:9; 고린도전서 12:13). 아무도 성령의 자비로운 역사하심이 없이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라고 불리우는 성령의 또 다른 그리고 특유의 사역이 있습니다. 세례는 모든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있게 만드는 선물입니다 (마태복 3:11; 누가복음 11:13; 24:49; 사도행전 2:33, 38). 그것은 기독교인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새로운 헌신적 애정을 갖게 해주며, 그것은 예수님을 매우 사실적이고 귀한 분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 세례의 주된 목적은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더욱 큰 능력을 베풀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8). 다른 유익한 점은 영적 예배에 있어서 가지는 더욱 큰 기쁨과 세계를 향한 우리의 사명에 대해 더욱 고무된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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