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회 4.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공중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 사이에는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성회(윤영일) 2014. 7. 8. 11:27

4.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방언으로 말하는 것”과 공중에서 “방언으로 말하는 것” 사이에는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또한 신자의 개인 기도 생활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신약 성경에 의하면 알지 못하는 방언에는 네 가지 사용 혹은 목적이 있습니다.(1) 성령 세례의 최초의 증거로서 (사도행전 2:4; 10:46; 18:6); (2) 방언이 통역될 때에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은사로서 (고린도전서 12:10); (3)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믿게 하는 표적으로서 (고린도전서 14:33); 그리고(4) 효과적인 기도와 찬양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도구로서 (고린도전서14:2, 4; 14:18). 이모든 경우에 방언은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목적은 다릅니다. 이러한 독특한 사용과 목적에 관한 오해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 왔습니다.

초기의 신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그들이 알지 못하는, 그러나성령님께서 나누어 주신 방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언은 오늘날도 신자들이성령 세례를 받을 때 나타나는 똑같은 증거입니다. 모든 신자들은, 그들이성령 세례를 받을 때, 예배를 위해 교회에서 모였을 때 방언으로 말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증거를 가질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방언 통역의 은사가 함께 역사하는것을 필요로 하는 공중에서의 방언의 은사를 행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12, 13).

처음에, 공중 예배에서 어떤 사람이 감동을 받아 방언으로 말을 합니다;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떤 사람이 성령에 감동을 받아 그 방언의 해석을 말합니다. 이 영역에서 역사하시면서, 성령님은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을마련해 줍니다. 방언과 방언 통역의 은사의 목적은 교회의 덕을 세우며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고린도전서 14:2-12).

개인의 경건의 시간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령님의 또하나의 사역입니다.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영적 생활을 매우 부유하게 만든다고 증거합니다. 성령님이 예배와 사랑의 영광에 넘치는 표현 가운데 인간의 영혼을 북돋우면서 지성의 한계는 극복됩니다. 제한된 어휘와 영혼의 감정과 관심을 표현할 수 없는 무능함의 곤혹함이 성령님께서 주시는 언어가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올 때 사라져 버립니다.그것은 마치 하늘과 땅이, 시간과 영원이, 하나님과 인간이 예배의 영광에 넘치는 행동을 통하여 모두 함께 하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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