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아버지!"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이 성경말씀은 우리가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으며, 그 영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종의 영은 헬라어로 “프뉴마 둘레이아스”입니다.
종은 그 주인에게 생사여탈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일반적인 해석은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이 종의 영을 받았지만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양자의 영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양자의 영’을 어떤 영어성경은 Spirit of son ship, ‘아들 됨의 영’으로, 또 어떤 영어성경은 Adoption, ‘양자로 삼는 영’으로 번역하는데, 헬라어 원어는 ‘프뉴마 휘오데시아스’이므로 “아들 됨의 영”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무래도 옳을 것 같습니다.
남의 아들을 데려다가 자기 아들 삼는다면, 죄인이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변경이 된다면 ‘양자 삼는 영’이 맞겠지요.
그러나 죄인이었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다면, 새 생명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양자가 되며 ‘양자의 영’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계속 읽어보면 “양자의 영(아들됨의 영이 보다 합당한 번역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부르짖는 것일까요?
“아바 아버지”에서 ‘아바’라는 헬라어는 ‘αββα’로 두 알파 사이에 베타가 두 개가 쓰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바’ 보다는 ‘아빠’가 더 가까운 발음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아들 됨의 영’ 안에서, 성령 안에서 “아빠, 아버지”라고 크락소멘, 부르짖는다, cry, 운다는 것입니다.
왜 헬라어 ‘크락소멘(동사원형은 크락소), 운다, 부르짖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갓난아기로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서 운다는 것입니다.
금방 태어나서 안 우는 아이 있습니까?
갓 태어난 아이가 울지 않으면 큰일 납니다.
성령 안에서 거듭 난 아기가 우는 것입니다. “아빠, 아버지!”

억지로 우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부르짖는 것도, 지어내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속으로부터 저절로, 억제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울음이요 부르짖음일 것입니다.
옛사람은 죽고, 그 옛사람을 벗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 이 죄악 된 세상, 죽음과 멸망의 파도로 넘실대는 세상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가 멸망으로 끌고 가는 더럽고 무서운 죄에서 벗어나,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나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 부르며 우는 것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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