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법은 본성의 법과 다르다/스테판 차녹

율법, 복음 2014. 11. 27. 13:11
. 마음의 법은 본성의 법과 다릅니다 / 스테판 차녹

 

 

1) 마음의 법은 회심한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의 법입니다

마음의 법, 마음에 새겨진 법은, 본성(nature)의 법칙과 전적으로 같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단지 올바른 이성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잘못되었습니다. 그것은 은혜의 법입니다.

 

본성의 법이 행위언약의 법이라면, 마음의 법은 은혜언약의 법입니다. 본성의 법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있지만, 이 은혜의 법은 특정한 사람들 속에만 있습니다. 본성의 법은 바울이 회심하기 이전에도 있었지만, 마음의 법은 그의 회심 때에 주어졌습니다. 본성의 법에는 중보자에 대한 믿음이 없지만, 은혜의 법에서 믿음은 중요합니다. 본성의 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죄와 불신앙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은혜의 법은 이러한 것들을 깨닫게 합니다. 죄와 불신앙을 깨닫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8,9).

 

본성의 법은 성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은 사람 속에 육신으로 태어난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법은 성화의 한 부분이 되어서, 몸의 지체의 법과 싸웁니다. 물론, 본성의 법도 사악한 범죄들에 대항해서 전쟁과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체들 속에 있는 죄의 법 자체에 대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죄가 '방향 제시의 법'으로서의 마음의 법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과 같이, 마음의 법, 또는 은혜의 법은, 죄에 대항해서 싸웁니다. 죄는 마치 자기가 사람의 인생을 지도하고 질서를 잡아 주는 것처럼 흉내 내고 있는 하나의 법인 것입니다.

 

2) 타락 이전에는 본성의 법과 마음의 법이 같았습니다

마음의 법은 원래 본성의 법이었던 그 법의 회복입니다. 처음에 아담의 마음속에 새겨졌던 그 법을 거듭난 사람들의 마음속에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4).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았다'라는 말은, 아담이 창조될 때 지니고 있었다가 잃어버린 그 의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회복하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지니고 있었던 그 의는 율법의 의였습니다. 십계명의 첫째 돌판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 둘째 돌판에 있는 인간에 대한 의무를 포함하는 의, 그리고 (아마도 그 거룩과 의, 두 가지 모두에 대하여) 더해진 진리가, 하나님을 향한 거룩과 인간에 대한 그 의의 표현 방식과 목적에 있어서 회복된 마음의 성실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원래 창조되었을 때에 마음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하여 그 법이 희미하게 되었습니다. 인간 속에 이 법의 작은 흔적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중재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듭남을 통해서 영혼 속에 새롭게 새겨지는 것이 바로 이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속에 다른 법을 두시겠다고 하시지 않고 '나의 법'을 두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불변의 법, 곧 아담과 우리의 선조들에게 주셨던 '나의 법'을 말합니다. 마음에 새겨지는 법은, 아담의 본성에 있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인하여 인간이 이 법을 지워 버리고, 그분의 의를 잃어 버렸으며, 오히려 마음속에 그것에 대한 적대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법에 대하여 본성적으로 복종하지도 않고, 복종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자기 속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법에 대한 적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법 대신에 죄의 법이 자리를 차지해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란 죄의 법을 그 자리에서 쫓아내고, 하나님의 법을 그 합당한 위치에 두는 것입니다.

 

3) 마음의 법은 마음속에 전체적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모든 법과 모든 명령이 쓰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명령을 돌판에 새기셨던 것처럼, '마음의 판(심비, 心碑)'에도 전체의 법을 새기셨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거룩하고 참으로 의로운' 것입니다. 또한, 본질적으로, 그리고 전체적으로 참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율법의 한 부분만을 새기시고 나머지는 새기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명령의 반쪽만을 새기시고 나머지 반쪽은 새기시지 않고 남겨 두어서, 흠이 있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마음에 새겨진 그 법이 전체의 법이 아니라면, 새로운 피조물의 본질에 속한 무엇인가가 결핍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괴물에 가까울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의 형상을 따라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아닙니다. 본성 속에 다른 어떠한 것과 일치되는 요소가 있다면, 그 둘은 전체의 본성에 있어서도 일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본성이 그 법의 본성과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4) 마음의 법은 외적인 법을 필요 없게 만들지 않습니다

외적인 법은 여전히 하나의 규칙으로서 가능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새겨지는 이 내적인 법은 외적인 규칙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내적인 법은 구칙 자체가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법은, 성령의 손길에 의해서 외적인 말씀이 새겨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적인 법의 진리를 실행하기 위하여 외적으로 기록된 법을 의뢰해야 합니다.

 

만약 사람이 어떤 인간적인 법률적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개념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 그리고 그의 행동이 그 법의 문자와 목적을 따르는 것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하여, 외적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해야 합니다. 사람 안에 있는 죄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죄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규칙이 되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진 은혜의 법이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규칙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만이 그 기준이 됩니다.

 

마음속에 있는 법은 비록 그 본질적인 부분에 있어서 외적인 율법과 조화를 이루지만, 아직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규칙이 되려면 기록된 율법과 같이 완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생활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말씀 속에 기록된 법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 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이 말씀에는 주의 법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약속되어 있으며, 또한 내적인 가르침도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렘31:34). 이것은 복음의 빛이 비춰지는 시대에 있어야 할 지식의 풍성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한 지식은 유대인의 제의(祭儀)들의 여명(黎明) 속에서 희미하게 비춰졌던 것들입니다. 그래서 복음 아래에서 가장 미천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임하시기 이전의 유대의 박사들보다도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속성에 대하여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가르치는 것을 전혀 무의미하게 보셨던 것은 아닙니다. 만일 그러하셨다면 왜 사도, 목사, 교사 등을 세우시고 세상 끝 날까지 그들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겠습니까? 이러한 내적인 가르침의 약속이 외적인 가르침을 무용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음에 법을 새기는 것은 문자로 쓰인 법을 무용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외적인 법을 확립하고 진전시키며, 또한 존중하게 만듭니다. 외적인 법은 목수가 집을 지을 때 규칙으로 삼는 집의 모델과 같습니다. 그 규칙에 따라서 목수는 마음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그 생각에 맞춰서 집을 짓습니다. 자기 마음속에 가지게 되는 그 생각이나 그림은 그에게 이미 주어져 있던 외적인 규칙에 맞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수는 그 규칙을 항상 상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의 법도 그러할 것입니다. 모든 이성적인 피조물들이 어떠한 조건 속에 있든지, 자연 상태에있든지 은혜의 상태에 있든지, 아니면 영광의 상태에 있더라도 순종해야 할 법인 것입니다.

 

 

스테판 차녹의 '거듭남의 본질' 162~167p 에서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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