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중생

(조직신학 개론, 존 M. 프레임, 개혁주의신학사, 266p~269p에서 발췌)

 

 

구원의 첫 번째 축복이며, 구원의 서정의 두 번째 단계는 중생 또는 거듭남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와의 교제로 우리를 부르실 때, 그는 우리에게 새 생명, 새 마음을 주십니다. 중생은 효과적인 부르심의 첫 번째 효과입니다. 그리고 중생은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순서 중 첫 단계입니다.

 

우리가 8장에서 보았듯이 성경의 전제조건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엡2:1-3). 이는 우리 안에서, 스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임신과 탄생이 새로운

육체적 생명을 가져오는 것처럼, 중생의 사역은 새로운 영적 생명을 가져옵니다. 거듭남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려는 새로운 소망과 능력을 얻습니다. 그래서 중생에 대한 저의 정의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을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입니다.

 

거듭남의 언어는 요한복음 기자로부터 나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만약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29, 3:9, 4:7, 5:1, 4절, 18절에서 요한은 유혹에 대항하는 거룩한 삶 안에서 자라는 성도 안에 심으시는 씨에 대해 말합니다.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의 언어를 사용합니다(고후5:17; 갈6:15; 엡2:10; cf 약1:18). 또 동일한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따라 함께 살아 있게 되는"자의 언어를 사용합니다(엡2:5).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는 자로 말하는 로마서 6장과 같은 본문에서 부활의 사상 또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그와 함께 죄로 인해 죽고, 그와 함께 의로 인해 살아났습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이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에로 부르시는 것처럼, 중생도 그의 부활 생명 안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이 모든 표현은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합니다. 거듭남은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겔36:26-27; 요3:8). 여러분은 스스로 태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탄생과 연관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태어나게 했습니다. 여러분의 출생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거듭남은 하나님의 선물, 즉 이런 경우에는 성령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일반적으로 성경이 표현하는 것처럼, 효과적인 부르심이 성부의 사역인 것처럼, 중생은 성령의 사역입니다).

 

새로운 피조물과 유사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창조는 "무로부터"(out of nothing)입니다. 창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는 무언가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모든 실재는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에 의해서 발생합니다. 부활도 동일합니다. 부활 전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죽음은 생명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남 안에서 우리는 수동적입니다.

 

더욱이 거듭남 없이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것들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만약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3:3)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은 우리의 의지와 생각을 바꿉니다. 로마서 1장과 죄인들이 진리를 거스르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중생은 우리로 진리를 거스르는 것을 멈추게 하시며, 하나님을 진실로 바라보게 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발생시키는 거듭남은 믿음에 선행됩니다. 때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으면, 다시 태어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성경적으로 부정확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축복의 통로라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거듭남이 믿음의 원인이지, 그 역은 아닙니다. 다시금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도 태어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여러분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며, 믿음을 가지도록 하십니다. 이는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중생이 믿음의 원인인 것처럼, 우리의 선한 행위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앞서 요한일서로부터 작성한 본문들을 기억하십시오. 요한일서 2:29은 "너희가 그가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말합니다. 의를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은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중생 없이 의를 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효과적인 부르심처럼 중생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복음을 들을 때 발생합니다. 베드로전서 1:23은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cf 벧전1:25)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거듭남을 주시는 성령의 위대한 능력은 전형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통해서 옵니다. 야고보서 1:18은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누군가 거듭났는지, 거듭나지 않았는지 어떻게 아십니까? 이는 보이는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중생케 하시는 역사가 바람 부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여러분은 이것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혹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물론 중생이 틀림없이 발생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바람처럼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신앙과 선행들은 중생의 결과입니다. 믿음과 선행은 중생의 효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선 요한일서 3:9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4:7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진술하며 사랑과 모든 성령의 열매를 말합니다.

 

우리는 명백하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의 삶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부터 순종으로 바뀔 때, 거듭남을 주시는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직신학 개론, 존 M. 프레임, 개혁주의신학사, 266p~269p에서 발췌)

 

 

 

존 M. 프레임
프린스턴 대학교(A.B.),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B. D.), 예일 대학교(A.M., M.Phil.)를 졸업하였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과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대학원에서 재직하였으며, 현재는 미국 오랜도에 위치한 개혁신학 대학(Reformed Theological Seminary)교수로서 조직신학과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신학, 변증학, 윤리학 그리고 예배에 관련된 많은 글들을 저술하였다. 그 저술에는 [주권에 관한 신학] (Theology of Lordship) 시리즈의 [하나님의 지식에 관한 교리] (The Doctrine of the Knowledge of God)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변증](Apologetics to the Glory of God)과 [코넬리우스 반틸: 그의 사상에 대한 분석] (Cornelius Van Til: An Analysis of His Thought)도 수록되어 있다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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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둥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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