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길(道)을 걷자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5. 4. 11. 00:20
바른길(道)을 걷자
나는 지금 섬기는 교회로부터 3주간이란 긴 휴가를 허락받은 남편과 함께 넓디넓은 "시카고"를 여행 중이다. 아름다운 미시건 호수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호텔에 머무는 특권을 얻고 아침저녁으로 바람결 따라 은빛으로, 잿빛으로 물의 무늬가 달라지는 화려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쉬는 시간도 행복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과는 그 규모부터 판이한 "시카고", 이곳처럼 길이 여러 곳으로 갈라진 곳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쭉쭉 곧게 뻗은 길이 여러갈래로 난 낯선 곳을 렌터카로 운전하며 이곳저곳 누비는 즐거움 또한 쏠쏠하다.
이곳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도우미가 없다면 발이 호텔에 묶여 있어야 하겠지만, 다행하게도 네비게이션(GPS)이 자동차마다 부착돼 있어서 그 네비게이션(GPS)이 가르쳐주는 데로만 가면 초행길의 운전이라고 하여도 길을 잃을 염려가 전혀 없음을 배우고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바른길(정도)을 안다는 것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금 바른길과 잘못된 길에 대한 귀한 교훈을 배우는 계기를 얻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 또한 즐겁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달아나는 듯 작은 행복감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했던가? "전체란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는 것이다.”(A whole is that which has beginning, middle and end.) 라고. 모든 길도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겠지만, 신앙생활 역시,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앙생활을 전체(whole)로 본다면, 이 또한 시작과 중간(과정)과 끝이 일괄적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 시작과 중간(과정) 그리고 그 끝을 분명히 알고 있다면 신앙생활에 실패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이 아침에 부어주신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그 끝은 무엇이어야 할까?
필자는 오래전 이단에 빠진 한 청년이 그 이단 신학교(신학원)를 수료하면서 소감문을 발표한 것을 어느 글에서 관심 있게 읽어본 기억이 있기에, 여기에 옮겨본다.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끌어내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 교회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고, 그리고 군대에 갔을 때는 군종병들이 교회 다니는 상관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병들을 억지로 교회에 데리고 가려 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습니다. 성인이 된 후, 다니던 교회에서는 담임 목사님이 여자 문제로 사모님을 버리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가 이단 단체에 속하게 된 동기라고 했고, 이단 신학 과정을 마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닌가?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이단에 빠진 자)는 본질보다 비본질에 눈길을 돌렸고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사냥꾼의 덫에 걸려든 것이다! 신앙생활 출발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중간이 잘못된 것이다. 살펴보면, 그가 말하는 중에서, 지금 우리가 믿는 주님이 잘못되었다거나, 우리의 신학이나 교리가 잘못되어서 기독교를 버린 것이 아니다.
이 청년은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다고는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관한 것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듯 하다. 즉, 본질보다는, 비본질, 그러니까 죄인 된 인간들 삶의 한 단면이라고 볼 수 있는 비본질(거듭나지 못한 장로님들의 부족함, 열심만 있는 군종 상관, 타락한 삯군 목자) 이런 인간의 부족한 부분에 자신의 신앙생활의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들이 실수할 때 함께 넘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결국, 그는 하나님을 떠났고 이단이 쳐둔 덫에 걸려들게 된 것이다.
그는 또 이단 신학교 졸업식사 서두에 "천지의 대 주재이신 창조주 하나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들을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주신 예수님, 그리고 오늘날 약속의 실체가 되셔서 영적 새 이스라엘 12 지파를 창설하신 우리의 이기신 者, 총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라면서 하나님께가 아닌, 그 단체의 교주에게 영광을, 그리고 찬양을 올렸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경험들이 어느 정도로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실망하고 좌절하였다는 것이 결국은 “예수님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무지(無知)”때문이란 것이다! 이단으로 넘어가 이단의 교리를 배우고, 성삼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이긴 者(그들의 교리에서 '이긴 자'는 복수 형태로 사용될 때에는 그 신도들을 가리키며, 단수로 사용될 때는 인간 교주를 그리고 인간 교주를 가리킬 때 '이긴 자'라는 존재는 보혜사, 사도 요한격 목자, 약속의 목자 등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에게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는 것은 분명히 뭔가를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가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고 하면, 무엇을 알아야만 하는 것일까? 다른 말로, 그가(이단으로 빠진 청년) 잘못 알고 있던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우리의 구원자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성삼위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배우지 못한 탓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로 하려고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신관(神觀)을 재 정립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의 신관(神觀):
그리스도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섬겨야 할 분은 오직 우리 ‘ 주 예수 그리스도’한 분 뿐이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알아야만 한다. 무슨 뜻인가?
하나: 예수님을 개인의 주(The Lord)로 믿어야 한다.
'주(主)'님이란, 원어로 '아도나이'(ynda)이다. 그 뜻은'주권자', 인간의 또는 신적인 '통제자', '주인', '소유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대명사'이다. 하나님은 죽어서나 만나보는 그런 염라대왕이 아니다. 지금도 살아 계셔서 현재 내 삶에 주인이 되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개념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삶에서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하며, 이런 자세를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 16 참조)
둘: 예수님(Jesus)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뜻은 구원자란 뜻이다(마1: 21절 참조).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요, 그분만이 우리의 구속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 12절 말씀)” 그렇다. 석가도, 공자도, 여호와 증인 창시자 럿셀도, 모하멧도, 문선명도.. 요즘 각광하고 있는 사이비 자칭 이긴 자(이만희 ),그들 중 그 누구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 없음은 그들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준 사람이 아니며, 또 죽어줄 수도 없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죄인, 자기의 죄로 인하여 저주(요 3: 36절 참조) 아래 놓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와 꼭 같은 신세일 뿐이다. 이 세상에 “내가 하나님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어 주노라”라고 말씀하셨고 실행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밖에 없다. 그런고로, 예수님만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올바른 신관(神觀)이다.
셋: 하나님을 그리스도(Christ)로 믿어야 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에 대해서 잠시, 그리스도(Christ)란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다. 구약 성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을 살펴보면, 1. 선지자 2. 제사장 3. 왕 이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는 다음 세 가지 의미 “당신은 나의 선지자요, 제사장이요, 왕이시니이다.”하는 선명한 뜻이 함축돼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선지자란, 하나님 편에서 하늘의 소식을 인간에게 전해 주는 사람이다. 제사장이란, 사람 편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주는 사람이다. 왕이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통치자이다. 육신 적으로는 국가를 통치하는 군주, 영적으로는 그의 백성된 나 개인을 통치하시는 왕이시다. 이런 사실 하나만 정확하게 알고 바로 믿으면, 결코 이단에게 속아 넘어갈 일도 없고 미혹의 영에 이끌려 탈선할 일도 없다고 믿는 것이다.
넷: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의 심판 主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딤후: 4: 1) 첫 번째 오신 주님은 사랑의 주님, 하나님의 희생양으로 오셨지만, 두 번 오실 주님은 심판 주로 오심을 믿고 그분 앞에서 살아가는 훈련을 하여야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추상적인 하나님도 아니며, 하늘 어딘가에 앉아 계시면서, 우리가 잘하면 복을 주시고 잘못할 때는 벌을 내리시는 분,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변하는 우리네처럼 변덕스럽거나 괴팍한 하나님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이런 잘못된 개념에서 탈피하지 않는 한, 각종 이단 사설, 하나님은 다 같은 하늘의 신, 하늘님이라고 믿는 다신교나 여러 혼합종교의 유혹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는, 성령의 조명 하심을 힘입어, 우리의 신관(神觀)을 재정립해 보아야 할 시점에 와있다고 보는 것이다. 당신과 내가 믿고 섬겨야 할 하나님은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창세 때부터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 그 구원의 계획을 십자가 위에서 자기 몸으로 성취하신 성자 하나님,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 찾아와 내주하고 계시며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한 분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 한다! 이렇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바로 믿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신관(神觀)을 제대로 정립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요즘처럼 교계의 형편이 바닥을 치는듯하고 세인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반기련이나 이단 사설에 미혹되는 이들이 많이 생기는 이유는 인간적, 지성적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이요, 우리 신앙의 근간이 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 신가?” 정확한 개념을 배우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 설교 준비를 위해서 성경을 인용하는 정도의 지도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무리한 소리일까?
현대는 신학교도 많고, 교회도 많고, 종교 지도자라 칭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는 사람이 많지 않고, 지도자 자리에 들기 좋아하여 싸우며 다투기를 즐기지만, 막상, 그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여 우왕좌왕이다. 흔히들 말하는 대로, 머리로만 아는 예수가 아니라 가슴으로 믿고 받아들인 신앙인이 매우 드문 현실이다. 육으로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영의 일이다. ( 요 6: 63 참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無知)는 자신 뿐아니라, 수많은 영혼을 지옥 백성이 되도록 하고, 이단이라고 하는 무서운 구렁텅이로 밀어넣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이나 오는 세상에서 무한한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분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성삼위일체가 되신 하나님 한 분밖에 계시지 않으며(롬 11:36),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롬 3:23-2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아야 할 존재들이란 것(롬 5:8; 벧전 3:18), 이 사실 하나만 분명히 알고 있다면, 결코 이단으로 미혹되거나 빠질 이유가 없을텐데....
우리 신앙생활은 출발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하여야 하고, 가는 길, 중간(과정)도 주 예수 그리스만 바라보아야 하며, 신앙생활의 끝(Final)도,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게 되는, 올바른 신관(神觀)을 세워야 한다. 고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되, 힘써 알고, 분명히 알도록 가르치고 지켜야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사순절이다. 절기에 연연하기 이전에 사순절의 주인이 되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배운다면 좋겠다. 신앙생활의 정도(道)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Knowing Christ)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Christ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롬 3: 22-26)"
출처: USA아멘넷 / 별똥별/최송연의 신앙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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