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가 무엇인가?

뜨거운 한 여름 낮, 한 할머니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신작로를 걷고 계셨습니다. 지나가던 트럭기사가 그 할머니가 측은하여 짐칸에 태워드렸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기사가 뒤를 돌아보니 그 할머니 트럭 짐칸에서 여전히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계신 겁니다. 흔들리는 트럭 짐칸에서 무거운 짐을 이고 계시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할머니, 그 짐 내려놓으세요.” 그 할머니가 대답하셨습니다. “아이구, 제가 탄 것만도 미안한데 짐까지 어떻게......”

우습습니까? 무지해서 저지르는 실수가 실수로 끝난다면 이해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지해서였다 해서 용서되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 때문에 사고라도 난다면 그 사고가 모르고 그런 것이라고 할머니를 봐 줄 것 같습니까? 사고는 인정사정 없습니다. 하와가 속아서 따먹었다 해서 그 범죄가 돌이켜질 수가 있습니까? 죄는 인정사정 없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것도 죄요, 속는 것도 죄입니다. 그래서 악한 자들이 우리를 속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모르는 것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이 속아서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렇게 무지하냐고 꾸짖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자가 율법으로 되돌아가 할례를 받겠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무지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가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 줄 아느냐?’고 힐문합니다. 할례를 받는 자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진다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버리는 것이요, 복음을 버리는 것이요,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버리고 도로 멍에를 메고 율법의 종이 되겠다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버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겠다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려는 자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는 것입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원래 할례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약속의 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밤하늘의 별을 가리키며 후손을 약속하신 다음 아브람이 ‘제가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고 증표(證票)를 달라고 하자 아브람으로 하여금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여 그것들을 쪼개도록 하셨습니다. 쪼개는 것은 히브리어로 "브릿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브릿트 한 고기를 지키느라 솔개를 쫓았습니다. 그리고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쪼개는 것, 곧 ‘브릿트’로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브릿트'는 똑같은 발음으로 '쪼개다, 가르다, 자르다.'라는 뜻과 '약속하다'라는 뜻을 가지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내가 쪼갠다, 아니, 약속한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아브라함에게는 지켜야 할 게 없고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고기를 쪼개는 "브릿트"를 하고 하나님은 약속하는 "브릿트"를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밤하늘 별과 같은 무수히 많은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그렇게 하나남과 "브릿트"를 해 놓고도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 하고 여종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브릿트 한 소와 염소와 새를 솔개는 쫓았지만 까마귀가 오서 다 쪼아먹어 버린 모양입니다. 그 때가 아브라함이 86세 되던 해였습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과 ‘열국의 어미’ 사라로 고치시고 모든 남자들로 하여금 할례를 하도록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허어, 이거 나만 '브릿트'하고 나만 약속한 꼴이 됐구나, 너 '브릿트' 다시 해야겠다.. 이번엔 어디다 브릿트 할까? 그래, 아들의 약속이니까 거기에다 브릿트 하자."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후손을 기다리는 하나님과 약속한 백성이라는 표시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때 그저 후손이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는 약속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3:16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의미하신 후손은 '단수'의 아들, 곧 온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후손, 곧 그리스도를 기다리겠다는 '브릿트' 약속인 할례는 율법과 함께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의 상징이 되고 말았고, 이제 갈라디아 교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버리고 떠나 도로 율법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올무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약속인 할례가 그리스도를 떠나 율법으로 되돌아가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으로 악용되니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입니까? 예수님께서 일찍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신 것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느니라.’ 하신 주님의 경계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할례와 율법을 가지고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스스로를 베어버리기(브릿트)를 원하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 거짓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향한 저주입니다.

"브릿트".......,
그렇습니다. 우리도 모두 브릿트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빼앗아가려는 모든 잘못된 가르침과 미혹과 이단을 단칼에 잘라버리는 "브릿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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