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적인 경험 속에서 맛이 나는 교리다. 오웬은 내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논할 수 있지만 거기서 내 마음속에 어떤 맛이나 달콤함이 없다면, 그분이 내 영혼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라는 것이 내게 더 좋은 것이 무엇이겠는가?”라고 말했다.

패커의 요약이다. “오웬에 따르면, 우리가 묵상, 기도, 적절히 규제된 생활 속에서 신격의 세 인격과 규칙적인 교제를 갖는 패턴이 되어야 한다. 우리를 향하신 각 인격의 특별한 자비와 사역을 유념하고, 특별히 각 인격과의 사랑 및 교제에 대해 적절한 반응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충분한 교제를 유지해야 한다.”

 

나아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 믿음을 확증하고 강화시킨다. 오웬의 말이다. “이것이 모든 복음 진리의 본질이고, 그것들은 믿는 영혼이 경험하는 데 적합하고 합당하다. 은혜로운 영혼이 그 모든 것 속에서 탁월함, 실재, 능력, 효능을 경험하는 것만큼 --- 장엄하고 웅대한 것은 없다. 항상 은혜로운 삼위일체 교리만큼 고귀하고 영광스럽고 신비로운 것이 또 어디에 있을까? 묵상할 때 성부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중보와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자의 크신 역사 속에서, 영혼 속에 은혜와 위로를 창조하시는 성령의 전능하신 사역을 통해 주님이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인지를 맛본 신자가 되고, 그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하심과 능력을 경험해 보라. 그러면 그는 일천 명의 논쟁가가 단지 마음속에 그 관념만 갖고 있는 것보다 이 신비로운 진리를 더 견고한 확신을 갖고 붙들고, 몇 마디 평범한 증언의 말씀만으로도 그 진리 속에 들어가, 그 진리를 확증하게 될 것이다.”

 

한편 오웬은 그리스도인의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하나님의 삼위일체 자기 계시에 따라 형성된다고 하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교리가 왜 그토록 기독교적 경험에 중요할까?

첫째,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예배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과의 교제, 이것이 우리의 영적 예배다. “이는 그(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2:18) 오웬은 경고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배에 나아오지 않거나 예배가 성령의 힘으로 진행되지 않거나 예배 속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예배의 모든 규칙을 위반하게 될 것이다.”

 

둘째, 삼위일체적인 영성이 유일하게 참된 복음적 영성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경륜은 성자가 유일하게 성육신하신 중보자로 오셨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상호 작용을 직접 드러낸다. 오웬의 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격들은 창조와 섭리 사역에서 반드시 협력하시지만, 삼위일체적인 관계들이 외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음의 경우,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직분은 삼위일체를 계시하고, 삼위일체에 따라 복음에 반응하도록 우리를 규제한다. 우리는 성자로 말미암아 성령의 능력을 통하지 않으면 성부께 나아갈 수 없다.” 삼위일체가 없는 영성은 복음이 없는 영성으로, 단순한 자연 종교에 불과하다.

 

셋째, 삼위일체 교리는 영성을 심원하게 관계적인 것으로 만들고, 영성이 비인격적 신격, 아니 심지어는 범신론적 신격에 대한 신비적 경험이 되지 않도록 방비하기 때문이다. 이 세 인격 안의 한 하나님 교리는 우리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원하게 인격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것은 참된 교제에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오웬은 교제를 서로 연합하는 인격들 간에 선하고 즐거운 것을 공유하는 것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오웬의 신적 교제 교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 간의 상호 관계를 강조한다. 이 상호 관계 속에서 주권적인 주님이 이끌면 신자들은 이에 반응한다.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들이 인격적 조우 속에 함께 들어간다. 웬의 삼위일체적인 교제 교리는 우리에게 풍요롭고 따스하게 성경적이고, 교리적이고,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개혁파 기독교의 훌륭한 모델을 제공한다.

 

오웬의 언약 신학은 하나님과의 정서적 상호 관계로 충만하다. 오웬의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된 것 가운데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신비나 동일한 신적 본성의 단일성 속에 존재하는 세 인격의 위격에 대한 신비보다 더 영광스러운 신비는 없었다. 그리고 이 계시는 우리의 지성이 이에 대한 관념을 소유하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향유하도록 하나님 안에 신뢰를 두는 법,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법, 하나님과의 교제를 얻고 행하는 법을 올바로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 조엘 비키, 마크 존스, 청교도 신학의 모든 것, pp 141-143

 

출처: 청교도 아카데미/강대식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