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4가지 자질이 있다-월터 마샬

개혁주의 신학 2016. 5. 18. 08:33

어떻게 하면 거룩한 삶이라는 위대한 목적에 이를 수 있는가? 거룩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방편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려면, 우리가 율법을 준행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준비시켜 주셔야 한다.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 네 가지 자질이 있다. 이런 자질을 다 가지고 있어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러나 이런 자질은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14:31). 모든 어둠의 권세와, 세상과 세상의 유혹들과, 자기 안에 남아 있는 죄와 타락을 대적하여 싸움에 나가면서, 악한 세대와 맞서 싸울 영적인 준비가 바로 되었는지 점검하지도 않고 나갈 것인가?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있는 본성적인 능력만을 가지고 싸우러 나간다. 그 결과, 항상 패할 수밖에 없는 불신자들만큼이나 영적인 싸움을 싸울 능력이 없다. 이 말을 믿으라. 우리가 가진 본성적인 능력으로는 절대 죄와 악에 맞설 수 없다! 그보다 훨씬 더 탁월한 무엇이 필요하다!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주셔야 하는 첫 번째 자질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심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맹목적인 충동으로 복종할 수 없다. 이성 없는 동물과 같이 본능대로 행동할 수 없다. 죄를 피하고 하나님께 복종하고자 하는 총체적인 내면의 성향이 있어야 한다. 자연적인 상태로라면 우리 마음은 악을 향해 치닫는다. 그러므로 자유의지로는 죄와 사탄의 종 노릇하는 것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계명을 미워하는 사람이 그것을 지킬 리 없다! 계명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저 그런 관심만 가지고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위대한 계명은 온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분께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분의 뜻과 그분의 방식을 사랑하고, 세상에서 그분을 가장 탁월한 분으로 여긴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든 일을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 사로잡혀서 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 행하기를 기뻐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송이꿀보다 더 달콤해야 한다(19:8). 평생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기뻐하고 바라고 목말라해야 한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된 정욕을 이겨야 한다. 우리 자신의 죄와 싸우고, 그것을 미워해야 한다(5:17, 36:4).

 

참된 순종은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즐겨하는 것을 말한다! 노예가 자유를 갈망하듯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진실로 하나님의 뜻을 즐거워하지 않고서는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없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이 되어야 하고, 온 마음을 다해 죄를 미워해야 한다.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청결한 마음에서 흘러나온다(딤전1:5). 우리의 마음이 먼저 악한 성향과 더러운 생각에서 깨끗해져야 한다. 마음이 새롭게 된 다음, 거룩을 향해 돌아서야 한다. 거룩한 삶을 갈망하는 마음이 있어야 죄의 정욕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우리의 영혼에서 다뤄야 할 가장 큰 악은 남아 있는 죄이다. 남아 있는 죄로 인해 우리는 본성적으로 악을 향해 나아간다. 남아 있는 죄에서 모든 실재적인 죄악이 나온다. 죄짓는 것을 멈추고 싶다면 먼저 이런 본성적인 성향이 사라져야 한다. 이런 성향을 없애려면 먼저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내적인 갈망이 다시 회복되어야 한다. 이런 새로운 마음의 성향이 없다면 계속 뒤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선한 일은 전혀 할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설사 자유의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죄를 향한 자유일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역사를 통해 죄에 종 노릇하는 우리를 풀어 주신다.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서 거룩으로 회복하신다. 돌과 같은 마음을 제하시고, 어린아이의 살과 같은 마음을 주신다(36:26,27).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마음에 할례를 베푸신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고 하신다(12:2). 이런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내면의 생명이 가진 경향을 바꾸신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든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우리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악을 향한 갈망을 선을 향한 갈망으로 바꾸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향한 모든 참된 순종의 원천이다.

 

경건한 삶을 위한 두 번째 자질은, 하나님과 화평케 되고 하나님께 용납되었음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의 구렁이 완전히 채워졌고,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아래 있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결과요 가장 큰 복이다.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고,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과 완전히 화평케 되었다(4:5-7). 일단 의롭게 되면, 진실로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거룩한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루실 구원 역사를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와 화평케 된 것을 분명히 확신하지 않으면서, 내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복음 진리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구원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선한 일에 힘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룩한 삶을 이야기할 때는 우리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진실로 율법에 순종하고 싶다면,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케 된 것과, 그분의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그분의 은총 아래 사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순종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먼저 자기 백성을 죄책에서 풀어 주사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후에,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신다. 용서는 선행이라는 마차를 끄는 말이다. 마차를 말 앞에 두지 말자! 자신의 노력으로 거룩한 삶을 살려고 생각해 낸 모든 방법을 버리자!

 

거룩한 삶을 위한 세 번째 자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행복하고 영원한 장래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원한 안전이다. 영원한 안전을 확신함으로써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첫째, 천국에서 누릴 복된 장래에 대한 확신 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며 살기란 불가능하다. 진정한 순종은 바로 이 확신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 아담의 타락 이래로 하나님께서 천국의 영광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통해 자기 백성들을 순종으로 독려하시는 것을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12:2).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도들은 무수한 고난을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고후4:16-17). 히브리서의 그리스도인들이 갇힌 자를 동정하고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알았기 때문이다(10:34). 사도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자기가 당하는 모든 고난도 헛것이고,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세상에서가장 불쌍한 자들이라고 했다. 부활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고 말한다(고전15:58). 하나님은 영광의 소망을 주셔서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신다(6:11-12,요일3:3).

 

셋째, 영원한 하늘의 복락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삶과 조화를 이루는지 깨닫고 이 복락을 확신하는 사람은 죄악된 삶을 살지 않는다. 거룩한 삶은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일부다. 영생을 확신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과 육체보다 하나님을 더 바라게 된다. 왜 그런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얼마나 선한 분인지 알수록 하나님이 더 사랑스러워지고, 하나님이 사랑스러울수록 우리 마음은 더욱 하나님을 향해 타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한 성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치 않다(11:16). 하나님은 사랑의 사슬로 우리를 그분께로 이끈다. 그중 한 가지 방법이 바로 이 놀라운 특권과 은택을 우리 앞에 펼져 놓는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가장 위대한 은총 가운데 하나는, 경이롭고 영원한 기업을 값없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기업을 앞에 두고도 그분을 더욱 사랑하지 못할 사림이 누구인가?

 

거룩한 삶을 위해 필요한 네 번째 자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대로 살기 바라고 또 살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주셨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하는 열망뿐 아니라 살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순전히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건하게 사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쁜 습관을 조금 바꾸고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될 줄 안다. 거룩하게 살려고 한다면,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께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야 한다.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진실로 겸비해진 적이 없는 사람이고, 자기 마음이 얼마나 악한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입으로는 원죄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것을 믿지 않는다.

 

우리의 진짜 목표는 단순히 몇 가지 습관을 바꾸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나쁜 습관을 만들어 내는 타락하고 죄악된 욕망을 죽이는 것이 진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죄악된 탐심을 충족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대신 거룩한 사랑과 거룩한 욕구로 채우도록 부르심을 입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때에 비로소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쉽고즐거워진다!

 

우리를 부르사 하게 하신 일을 우리가 바라고 또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지혜를 따라 충분한 능력을 주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불러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실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도 주신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하시는지 성경은 잘 보여준다.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을 생각해 보라.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의 삶을 살라고 격려하기 전에, 그들이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죄가 그들을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시켰다(6:13-14). 그는 마귀의 궤계를 대적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 안에서 강건하라고 말한다(6:10-11). 요한은 신자들이 이미 강하고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할 필요가 없다고 격려한다(요일2:14-15).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우리를 독려하신다.

 

- 월터 마샬, 성화의 신비, pp 39-61

 

출처: 청교도 아카데비/강대식

가져온 곳: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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