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 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이다.
아버지가 먼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마을에는 백인이었던 펄 벅의 어머니가
신을 분노하게 만들어 가뭄이 계속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람들의 불안은 점점 분노로 변했고,
어느 날 밤 사람들은 몽둥이, 곡괭이,
도끼, 쇠스랑 등 무기가 될 만한 농기구를 가지고
펄 벅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따르게 하고
케이크와 과일을 접시에 담게 했다.
그리고 대문과 집안의 모든 문을
활짝 열어 두고는 마치 오늘을 준비한 것처럼
어린 펄 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게 하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들었다.
잠시 뒤 몽둥이를 든 사람들이
단숨에 거실로 몰려왔다.
굳게 잠겨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문이 열려 있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때 펄 벅의 어머니는
"정말 잘 오셨어요. 어서 들어와서
차라도 한 잔 드세요." 하며 정중히 차를 권했다.
그들은 멈칫거리다가 못 이기는 척
방으로 들어와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그냥 돌아갔다.
그리고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의 두려움을 들려주며
만약 도망칠 곳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 아니었다면
그런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고 말했는데,
그것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시작"이란 말이 생각난다.
인간이 절망하는 것은 살아계신 주님을 믿지 못하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절망적 상황을 만났을 때, 당장 그곳에서 건져주시는 체험,
이적과 기사, 기적만 추구하는 신앙은 병든신앙이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불에서 건져주실 주님을
바랐지만,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고백으로 승리했다.
바른 신앙이란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 속에서
당장 건져주시라고 떼쓰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를 고백하는 믿음일 것이다.
내가 당한 나의 어려움 때문에 좌절하여 주저앉기보다
나의 당한 모든 일에 주님의 섭리하심이 있음을 믿고
잠잠히 순응하며 풀무불 속까지 뛰어들어갈 그때,
결과는 주님께서 영광받으신다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 예수님께서 절망의 십자가를 피한 것이 아니라
그 십자가 뒤에 있을 영광을 바라고 잠잠히 참으심을 기억하고
주님의 참된 용기를 본받는 자...
그가 바로 절망에서 용기를 얻는 참 믿음의 사람일 것이다!
바른 신앙생활이란 기쁜 일을 만나거나 어렵고 슬픈 일을 만나거나
그 속에서 매일 매 순간을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런 믿음의 사람은 절망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 담대함을
주님께로 공급받게 되는 것임을 믿는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이 너와 나,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를.....
- 글: 최송연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