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렉 시리즈에서 최초로 벌칸족 스팍을 연기한 유태계 배우 Leonard Nimoy가 유행시킨 손사인인데, 대중들에게 "Live Long and Prosper(만수무강하소서)"라는 뜻으로 알려진 이 손사인이 실제로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인 Vulcan을 찬양하는 일루미나티의 손사인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히브리어 알파벳 쉰(שׁ)을 흉내 낸 이 손사인은 히브리 신비종교 카발라에서 중요시 여기는 ‘쉐키나’(사악한 영의 임재, 뉴에이지의 포스)를 기원하는 손사인인 동시에,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불의 신 Vulcan(불카누스)에 대한 기독교식 이름인 Devil(악마, 사탄, 루시퍼)을 의미하는 손사인이기도 하다.
V를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두 개의 손가락이 영어 알파벳 DE를 그리고 오른쪽 세 개의 손가락이 IL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알파벳들이 합쳐지면 DEVIL 즉, “악마를 찬양한다.” 혹은 “악마의 축복을 빈다”는 의미가 된다.
대중들에게 장수와 번영을 비는 사인으로 소개했지만 실제로는 카발라 신앙에서 쉐키나(악한 영의 임재)를 기원하는 사인으로 쓰여지고 있다.
V를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두 개의 손가락이 영어 알파벳 DE를 그리고 오른쪽 세 개의 손가락이 IL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알파벳들이 합쳐지면 DEVIL 즉, “악마를 찬양한다.” 혹은 “악마의 축복을 빈다”는 의미가 된다.
33도 프리메이슨이요 사탄주의자로 알려진 처칠이 벌칸 손사인을 보여주고 있다.
타로 카드에 등장하는 악마(바포멧)가 벌칸 손사인을 보여주고 있다.
일루미나티들은 스스로를 벌칸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스타트렉의 배우가 전시안과 악마(deVil)를 찬양한다는 의미의 손사인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여하튼 카발라 신앙을 믿는 세계정부주의자들이 저들이 믿고 따르는 DEVIL을 찬양한다는 의미를 가진 벌칸식 인사가 일루미나티의 어젠더를 담은 스타트렉에 열광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세상은 이미 Vulcan(Devil)을 영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에게는 하늘의 아버지와 땅의 어머니가 계셨다. 그분은 완전한 인간이셨다. 왜냐하면 그분은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성장하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죽으셨다. 또한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신의 본질을 가지셨으며, 영원히 성부 하나님 및 성령 하나님과 동등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는 두 본질, 즉 인간의 본질과 하나님의 본질이 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位格)이 한 하나님이시다. 위대한 교부(敎父)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는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을 때 그분의 신성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그분이 인성을 더 취하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인간이 되셨을 때 예수님은 ‘무엇인가 부족한 하나님’이 되신 것이 아니라, 완전한 하나님이면서도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 그분은 본래 영원 전부터 그분에게 없었던 본질, 즉 인간의 본질을 취하신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세 분이 하나의 본질을 가진 존재’를 의미한다면, 그리스도는 ‘두 개의 본질을 가진 하나의 존재’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인간의 본질을 취하실 때 그분은 본래의 신적 본질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본질을 갖게 되신 것이다.
삼각형의 비유를 통해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양성(兩性)을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삼각형의 꼭대기 각(角)은 성부를, 아래의 두 각들 중 왼쪽의 각은 성자를, 오른쪽의 각은 성령을 나타낸다고 하자. 그리고 왼쪽 아래의 각에 원이 하나 붙어 있는데, 이 원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한다고 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삼각형의 본질을 갖고 계시며, 또한 인간이시기 때문에 원의 본질을 갖고 계시다.
인간이 되신 예수님 예수님이 인간이셨다는 증거들이 성경 곳곳에서 발견된다. 먼저 그분의 탄생에 관한 모든 성경 구절들은 그분이 인간이심을 증명한다. 성경은 그분이 여자에게서 나셨고(갈 4:4) 성장하셨으며(눅 2:52) 눈물 흘리셨다(요 11:35)고 기록한다. 그분은 배고픔을 느끼셨고 시험 받으셨으며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또한 네 복음서들은 모두 그분이 감정을 느끼셨다고 증거한다.
한편 성경은 예수님이 참하나님 되심을 증거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요 1:1,2).
예수님은 구약의 주인이시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사 40:3)는 구약의 예언은, 예수님을 위한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광야로 나갔던 세례 요한에 의해 성취되었다 (마 3:1-17 ; 막 1:1-8 ; 눅 3:1-17 ; 요 1:19-28).
다윗은 하나님에 대하여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다”(시 23:1)라고 말했는데,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이다”(요 10:14)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슥 12:10)라는 말씀은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요 19:37)는 말씀에서 예수님에게 적용되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사 44:6)는 말씀은 예수님이 요한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다”(계 1:17)라고 말씀하신 내용과 연관된다.
예수님이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증거하는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요 1:3 ; 골 1:16). 예수님은 자신에게 죄를 사하는 신적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셨다(막 2:1-12).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요 5:21), 여러 번 사람들의 경배를 받아들이셨다(요 20:24-29). 그리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도마의 고백을 받아들이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나님의 속성들이 있으며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행동한다고 주장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오직 하나님만이 받으실 수 있는 경배를 받으셨다. 그분은 말씀과 행동들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주장하고 밝히셨다. 예수님이 인간이 되신 이유 예수님이 두 가지 본질을 가지신다는 교리, 즉 그리스도의 양성의 교리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며, 만일 그분이 인간이 아니시라면 우리에게 오실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고 증거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화목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인간이셔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두 가지 본질을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즉, 우리는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과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모두 믿고 인정해야 한다. 그분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 14: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시다.
종종 사람들은 “그 아이는 아버지를 꼭 닮았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그 아이의 말과 행동이 그의 아버지와 똑같을 때 하는 말이다. 이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을 꼭 닮으신 분, 즉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성경은 “이는(아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골 1:15)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인간이시다. 그분은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먹고 자고 죽으셨으며 동시에 하나님의 속성들을 보여주셨다. 그분이 높으신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낮은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과 일체감을 가질 수 있다.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와 동떨어진 천상적(天上的) 존재가 아니시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 마 1:23)이라고 불리시는 것이 당연하다.
올림픽 경기가 시작되었지요? 이번 올림픽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아름다운 항구도시에서 열렸다고 하는데 그 도시에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예수님 동상 아래서 열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예수님 동상이 올림픽을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들도 성경을 통해 올림픽을 무엇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지를 살펴보도록 하려고 합니다.
올림픽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종족들이 4년마다 올림픽이란 곳에 모여 종교, 예술, 운동경기를 한데 묶어 자기들이 섬기는 제우스신께 경배하는 행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올림픽 경기를 할 때 올림피아란 곳에서 태양의 신 제우스의 불을 채화해서 성화를 올림픽 열리는 도시까지 운반하여 꺼지지 않도록 불 밝히고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올림픽은 이방 신을 경배하는 경기이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도 아닌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너무 올림픽 경기에 푹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TV 방송국에서는 무슨 큰 일이 있으면 시청자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위해서 그래서 광고비를 따내기 위해서 대대적으로 선전합니다.
88올림픽이나, 2002년 월드컵 대회 때 얼마나 요란했습니까?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당 기도실 같은 곳에 TV를 볼 수 있는 영상물을 가져다 놓고 한국 선수들이 승리하기를 위해 기도했다는 말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에선 슈퍼볼 열리는 때는 예배를 쉬기도 하는 교회가 있고 아예 교회당에다 대형 스크린을 걸고 예배는 잠깐 드리고 경기를 시청한다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걸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올림픽이 열리면 자기나라 사람들이 잘하는 경기가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있습니다. 한때 동계 올림픽 때는 김연아 선수, 하계 올림픽 때는 박태환 선수, 그리고 양궁 축구 야구 등에 관심이 있어 밤잠을 썰 쳐가며 경기를 보고 열광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즐겁게 보십시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시각으로 올림픽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봅시다. 2장 5절 시작 <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
올림픽 출전선수들은 도핑 검사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수들이 경기력 향상을 위하여 금지하는 약물을 복용하면 선수로 출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출전해서 메달을 딴다고 해도 나중에라도 그 사실이 밝혀지면 메달이 박탈되고 출전금지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박태환선수도 출전정지를 당할 뻔 했는데 다행스럽게 출전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러시아 많은 선수들이 출전권을 박탈당했고 장대높이뛰기 세계 신기록 보유자도 이번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여러분들, 운동경기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도 법대로, 하나님 뜻대로 하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주 예수께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 친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때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목사생활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을 가볍게 여기면 안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혹시 도핑검사를 무마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천국 심판대에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우리가 앉고 일어섬을 알며 무슨 뜻으로 어떤 동기로 일을 행했는가? 까지를 면밀하게 살피셔서 심판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행여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는 허망한 꿈은 꾸지도 말기를 바랍니다. 전도서 12장 14절 <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 라고 기록하여 놓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봐야 할 것은 경기를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뭐라고요?) 전심전력을 다해야. 성경 고린도 전서 9장 24절 <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 고 했고, < 그러기 위해서는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 라고 하고 있습니다.
선수가 자기 하고 싶은 짓 다하는 자는 정상에 설 수 없을 뿐 아니라 오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타이거 우즈란 걸출한 골프선수도 사생활이 문란하니 성적이 형편없이 떨어졌다가 정신 차리고 노력해도 쉽게 옛날 수준이 되지 못하고 아직까지도 고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그와 같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방심하고 시험에 들면 쉽사리 옛날 수준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는 것입니다. 104동 놀이터에 전도하러 가면 시험이 들어 믿음생활 교회생활을 중지하고 쉬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아직까지 방학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조차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이 목사들이 설교, 우습게 알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싸우고, 10, 20년 일까지 기억하고 그때 그랬잖아 하는 사람은 시험에 들기 쉬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늘 깨어서 기도하고~. 시험에 드는 일이 없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도핑검사에 걸리면 적어도 3-4년 길면 아예 선수생활 끝내야 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우리도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해야 할 것인 것입니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운동경기나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 그러므로 나는 목표가 없는 것처럼 달리지 않고 나는 허공을 치듯이 권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말하였던 것입니다.
사도바울만 신앙생활에 대해 경기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쓴 것이 아니라 히브리서 12장에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2절 366페이지 읽읍시다.
<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우리들 앞에 앞서 살다 가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이제는 관중석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천국에 먼저 가게 되면 우리 자녀 손자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 지켜본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의 옷을 벗어 버리고 인해함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 길을 달리되 예수님을 바라보고 달리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과 땅의 권세, 모든 만물이 무릎을 꿇은 자리를 얻기 위해 사명의 길, 믿음의 길을 가되 십자가를 지는 부끄럼도 수모도 참았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9장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 하며, 나도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올림픽 경기하는 것과 믿음 생활하는 것과 비슷한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만 그런 말 한 것이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빌립보 3장 14절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고 하신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아멘입니까? 아멘 안하시려면 고개라도 끄덕여보라니까요. ^^
사도바울도 하늘에서 주시는 상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고초를 많이 당했습니까? 사도 바울도 십자가를 지셨으나 부활의 영광과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고 앞서 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길을 걸으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선 우리를 얽어매어 천국의 상을 받지 못하도록 하려고 하는 사단의 방해들, 죄의 욕망들에서 벗어나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지난 시간에도 말씀 드렸지만 또 한 번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 믿음이 잘못되었다고 바깥에서 불어오는 강력한 시대 조류- 무신론 공산 사회주의, 무신론의 진화론, 성의 혁명과 안에서부터 사단마귀가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흔들어대는 자유주의 신학, 인본주의 신앙으로 우리 믿음을 빼앗아 가려는 것들을 알고 정신을 차리자는 것입니다.
이게 무엇과 같은가 하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것이 맞는 길인가? 옳은 길인가? 라고 의문이 날 정도로 우리 신앙을 사정없이 흔들어 대는 일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올림픽 경기를 보노라면 시합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응원단의 함성을 볼 수 있습니다. 힘을 내라고 기죽지 말고 fighting 하라는 응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열리는 브라질은 지구 반대편 비행기만 해도 하루 정도를 타야만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성 팬들은 그곳까지 가서 응원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싸우며 나가는 믿음의 길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가는 좁은 길입니다. 거기다가 반대자들의 비웃는 소리, 심지어는 나라의 법까지 우리들의 가는 것을 막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과연 가는 길이 맞아? 라는 회의감까지 들기도 하는 길이란 것입니다.
이번 주만 해도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주며 안티 기독교인들이 좋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방송국하면 그래도 명망 있는 분인데 CTS 기독교방송국 회장이 3년형의 구형을 받은 일이 있는가하면 총회장까지 하고 신학교 이사장을 하면서 학교 돈을 가지고 카지노에 다니며 돈을 탕진해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사실로 들어나고...
책들만 해도 여러 권을 썼고 기독교 간증 프로에도 여러 번 나오고 그래서 일반 방송인 KBS, MBC, SBS에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내로라하는 기업에 가서 강의를 했는데 한번 강의에 백만에서 오백만원까지 받으면서 6,000이상 강의했다는 조00목사 알고 보니 다 거짓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기독교. 이거 맞나? 는 말이 나올 정돕니다. 도대체 믿을만한 기독교인이 누구냐는 말이 나올 정돕니다. 제가 제 얼굴에 침 뱉는 이런 말을 왜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악한 영들이 교회 안에 까지 들어와 목사들에게 돈과 이성과 명예에 대한 욕망을 부채질하여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터질 것입니다. 다른 종교와도 손잡는 것이 좋다고 할 목사들도 나올 것입니다. 동성애가 죄라고 성경만이 진리라고 말하지 말라고 그러면 벌금 내라고 하는 날도 올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통돌이 세탁기에 넣고 전후좌우로, 상하로, 밖에서 안으로, 안에서부터 흔들며 이래도 예수님만이 진리냐? 교회만이 제대로 된 것이냐? 며 흔들어 댈 거란 것입니다.
여러분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할 거라고 베드로 사도가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들, 올림픽 경기 구경 잘하십시오. 구경을 하면서도 선수들 저 정도 되기까지 얼마나 노력했겠는가? 그러면서 우리도 하늘나라 상을 받기 위해 부름 받은 선수인 것을 알면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올림픽 선수들이 메달을 따려고 몇 십 년 아니 몇 년 동안 애쓰면 나라에서 알아주고 메달을 따면 국위를 높였다고 체육연금이 나오고 명예가 따르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따르면 하늘의 기업, 땅에서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원히 변치도 않고 시들지도 않는 상급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시청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올림픽 선수들은 응원을 받아가며 시합을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이 가진 믿음이란 시합은 내외로 우환들이 찾아오고 유혹과 핍박이 조롱이 때로는 회의감까지도 드는 혹독한 시험들도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목자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실 때도 있지만 지금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교회를 안팎에서 흔들고 쥐어짜는 시험의 때요 알곡과 쭉정이를 고르기 위해 테스트하는 시기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불같은 시험 많으나 정금같이 단련한 자들을 골라내는 시험 기간인 줄 알고 정신 차리고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습니다.
스타 목사의 타락을 보며, 통탄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수년 전 부터 개독이라는 말로, 목사들의 비리로, 성추문으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기독교의 이미지. 과연 크리스챤의 삶이 무엇인지..깨어있는 분들은 고민하고 회개하고 행동을 해야하지 아니하겠습니까? 이 땅에 수 많은 교회와 수 많은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단 1%로라도 예수님을 정말 닮아가려고 하는 모습으로 신앙생활하고, 목회하는 분들이 있을까 하는 의아함이 있습니다. 전 목사도 아니고 직분자도 아니고 그냥 신자 입니다. 예수님이 돈 밝히시고, 자신을 따르던 무리를 데리고 건물을 지어서 머무르려고 하시고, 교만하시고, 상석에 앉으시려고 하고, 배부르게 게으르게 얼굴에 기름이 좔좔 흐르고 여자를 밝히시고 탐욕에 눈이 어두우셨나요? 왜? 지금의 목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복음+마귀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까요? 내 교회만 특별한거야 다른 교회는 틀렸어 라는 주된 성격으로 전도하고, 교회의 머릿수 채워서 물질을 부풀리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고, 복음이 무언지, 예수님이 어떻게 행하라고 했고, 가르치라고 했는지는 까먹은 채, 학교에서 가리켜 주는 그 교리대로만 배워서 그냥 앵무새 마냥 말하고, 능력은 찾아볼 수 없는 이 현 시대..이래서 말세라는 겁니다.. 말세니까 이 토록 타락하는 것이지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멸망의 가증한 것은 이단이 1순위 겠지만서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멸망의 가증한 도구로 사용되기가 아주 쉽답니다. 성도님들, 그냥 동호회 모임 가듯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안주하지 마시고,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목회자가 과연 예수님의 뜻대로, 예수님의 모습대로 사역을 하는 곳인지 세상을 향하고 자신들이 영광받고 있는 곳인지 문화단체 인지 똑바로 보시고,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해 정신차리시고 올바로 구분하셔서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큰 건물에, 수많은 군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 버리시고, 손가락에 꼽히는 숫자의 성도가 있더라도, 참 그리스도의 모습과 향기와 빛과 소금같은 곳을 찾으세요. 교회다닌다고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한 부부라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그냥 이 땅에 머물게 되는 것 처럼,,, 손해보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섬기고, 베풀어 주고, 기도해 주고, 축복해 주고, 예수가 당신의 구주이심을 알려주고, 갇힌자에게 자유를 주는 것. 그리스도인이 해야할 사명입니다.
피카소의 유머 2차대전 이후 피카소의 그림 값이 폭등했다. 한 부유한 부인이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서 추상화를 보고 물었다. "이 그림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습니까?" 피카소가 말했다. "20만 달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흐의 유머
어떤 사람이 고흐에게 물었다. "돈이 없어서 모델 구하기가 힘드시다고요?" "하나 구했어." "누구요?" "나. 요즘 자화상 그려."
모파상의 유머
모파상은 파리의 경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에펠탑 세우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 모파상이 매일 에펠탑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모파상에게 에펠탑이 싫다면서 왜 여기서 식사를 하냐고 물었다. 모파상이 대답했다. "파리 시내에서 에펠탑이 안 보이는 유일한 곳이 여기니까요."
드골 대통령의 유머
드골 대통령과 정치 성향이 다른 의원이 말했다. "각하, 제 친구들은 각하의 정책을 매우 마음에 들어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드골이 말했다. "아, 그래요? 그럼 친구를 바꿔 보세요."
헬무트 총리의 유머
독일의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총리는 정원을 청소하다가
수류탄 세 개를 주웠다. 아내와 함께 그 수류탄을 경찰서로 가져가는데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여보, 가는 도중에 수류탄 하나가 터지면 어떡하죠?" 그러자 콜 총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경찰에게 두 개를 주웠다고 말하면 되니까."
아인슈타인의 유머
기차 여행 중이던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기차표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차장이 승객들의 승차권을 검사하고 있었다. 표를 검사하던 차장이 아인슈타인에게 말했다. "선생님이 누구인지 잘 압니다. 틀림없이 표를 사셨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끄떡이며 고맙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나 이 위대한 물리학자는 바닥에 엎드려 좌석 아래를 살피기 시작했다. 차장은 "박사님, 걱정하실 것 없다니까요. 전 선생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거듭 말했다. 그러자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내가 누군지는 나도 알아요.
그런데 내가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 모르겠단 말이요."
슈바이처의 유머
슈바이처 박사가 모금 운동을 위해 오랜만에 고향에 들렀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마중하러 역에 나왔다. 그가 1등 칸이나 2등 칸에서 나오리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슈바이처 박사는 3등 칸에서 나타났다. 사람들이 왜 굳이 3등 칸을 타고 왔냐고 묻자 박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 열차엔 4등 칸이 없더군요."
엘리자베스 여왕의 유머
독일군의 포격으로 버킹엄 궁이 무너지자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독일의 포격 덕분에 그동안 왕실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마거릿 대처의 유머
딱딱하게만 보이던 '철의 여인' 대처가 600명의 지도자들이 모인
한 만찬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홰를 치며 우는 건 수탉일지 몰라도 알을 낳는 건 암탉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유머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대식가로 알려져 있다. 어느날 쇼펜하우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2인분의 식사를 혼자서 먹고 있었다. 그때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혼자서 2인분의 밥을 먹다니..."라며 비웃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상류 사회에서는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전 늘 2인분의 밥을 먹습니다. 1인분만 먹고 1인분의 생각만 하는 것보다
2인분을 먹고 2인분의 생각을 하는 게 더 나으니까요."
카네기의 유머
카네기가 어렸을 때의 이야기다. 그가 어머니 손을 붙잡고 과일가게에 갔다. 가만히 서서 뚫어져라 딸기를 쳐다보자
주인 할아버지가 한 웅큼 집어 먹어도 된다고 했다. 카네기는 계속 쳐다만 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자기 손으로 딸기를 한 움큼 덥석 집어서 주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얘야, 할아버지가 집어 먹으라고 할 때 왜 안 집어 먹었니?" "엄마, 내 손은 작고 할아버지 손은 크쟎아요."
바다보다 거의 10배나 더 짠 사해의 극단적인 환경에서 생명체가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과학자들이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은 사해 밑바닥에서 생명체가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럼에도 해변 가까운 곳에서는 혹독한 환경으로 인해 그 어떤 생명체의 징후도 발견되지 않았다. 성경 예언서에 기록된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 젊은 여성이 이곳에서 하이킹을 하다가 사해 바닷가에서 민물샘이 솟구치고 그 안에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Samantha Siegel이라고 하는 유대 여성은 종종 사막과 사해 바다를 여행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에 그녀는 이곳을 방문했다가 성경의 예언이 눈앞에서 실현되는 듯 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에스겔 47장에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예루살렘에서 만방을 다스릴 때,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솟구쳐 죽은 바다(사해바다)가 살아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에스겔 47장8,9절)
최근에 물이 줄어들고 5,000개 가량의 싱크홀이 생겨난 사해 바닷가에 이 죽음의 바다를 되살리는 샘물들이 솟구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성경(에스겔)의 예언이 성취될 날(메시아의 재림의 날)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시대의 징조인 것인가? 적어도 사해 바닷가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광경을 목격한 Samantha Siegel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에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에스겔 47장 8,9절)
삼위일체론에 관한 교리를 바르게 알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통신앙 또는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을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에 이단들이 범람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도 삼위일체 신앙이 희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교리는 우리에게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를 구별할 뿐 아니라 거짓 신자나 중생된 척하는 신자, 거짓된 교회를 구별하는 기준을 제공한다.
교리에서 가장 오래된 논쟁되어 1차 니케아 범종교회의(325년)와 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범종교회의(381년)에서 결정되므로 올바른 삼위일체 설명이 선언되었다가, 다시금 4세기에 3명의 카파도키아인들과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에 의해 마무리 되므로 초대교회에서 가장 먼저 또 가장 중요하게 세워진 교리이다.
삼위일체론은 지성의 이해를 목적으로 삼지 않고 설명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해시키려는데 초점을 맞추면 실수하거나 실족하는 경우가 있기에 아리오스주의(Arianism)나 소찌니주의(Socinianism)가 등장하였던 것이다. 이 두 이단사상은 모두 이해와 설득에 목적을 두었다.
이러한 중요성을 알고 있던 신앙의 선배들은 삼위일체론을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4~6문,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서> 8~11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장, <벨지카 신앙고백서> 8~9항,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24~25문 등에서 설명하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1권 13장에서 자세하게 이 교리를 설명한다.
삼위일체론 설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계명에서 선언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수(基數)로 비교하여 ‘한 분’으로 여기는 오해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기수적 의미로서의 ‘한 분’이 아니라 “유일하시고 살아계시는” 분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맥은 ‘구별된 세 위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래서 ‘구별되는 세 위격과 한 본질’이신 하나님이라 우리는 고백한다.
첫째 유일하신 하나님, 즉 한 분이라 할 때에는 지난주에 설명한 하나님의 속성 중 비공유적 속성을 삼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지니고 계시다는 것이다. 사역을 비롯한 모든 것에서 삼위 하나님은 동등하시다. 곧 본질-영원, 무한, 불변, 전지, 전능 및 편만함-에 있어 동등 또는 동일하시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 6문). 이런 면에서 축복기도에서 삼위 하나님의 순서를 굳이 성부, 성자 및 성령의 순서를 밟지 않아도 된다(고후 13:13 참고).
둘째, 유일하시고 참된 하나님은 구별된 삼위, 즉 세 위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위격을 영어로 섭시스탄스(subsistence)로 표기하지, 섭스탄스(substance)로 표기하지 않는다. 전자는 본체라 번역되고, 후자는 본질(essence)이라 번역된다. 신앙의 선배들은 삼위 하나님을 구별하기 위해 라틴어 숩시스텐티아(subsistentia), 즉 본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의미하는 숩스탄티아(substantia), 즉 본질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세 본체를 지니신 한 본질이라고 하지 않고 세 위격을 지니신 한 본질이신 하나님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위격이란 단어가 그리스어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스어 히포스타시스는 위격이라 번역되는데 그 의미는 ‘특성’이다. 라틴어 본체 또는 그리스어 인격이란 단어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스어 위격이란 단어는 성경적 용어이다. 성경에선 ‘실상’(히 11:1)과 ‘본체’(히 1:3)이라 표현되어 있다. 위격이란 말이 특성이란 뜻이 있으니 삼위 하나님은 세 특성을 지니신 분으로 특성으로 서로 구별된다고 말해야 한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구분된다고 해선 안 된다. 구분이란 단어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강력하게 칼빈은 강조한다(1권 13장 17항).
간단히 말해서 삼위 하나님은 한 (동일 또는 동등하신) 본질이시고, 구별된 세 위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구별된 세 위격, 즉 세 특성에 따라 ‘아무에게서도 나시지 않으시고 나오시지 않으신 분’을 성부, ‘영원토록 성부에게서 태어나신 분’을 성자, 그리고 ‘성부와 성자로부터 영원토록 나오시는 분’을 성령이라 고백한다. 그렇다고 그 특성에 따라 그분을 정의 내려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구분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런 특성을 지니신 분이라 여기는 것이지, 아버지이기에 성부이며, 아들이기에 성자이고, 보내졌기에 성령이라고 구분한다면 이미 이단성을 갖게 된다.
동시에 세 위격은 차별이나 차등이 있지 않다. 만일 영어공부의 3요소로 삼위일체라든지, 3인조 행동 지침으로 삼위일체라든지 또는 삼중이란 의미로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결코 사용해선 안 된다. 아버지이니 어머니가 있고, 아들이니 아버지보다 열등하거나 저급하다는 것은 이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에서 이단이다. 아무쪼록 삼위일체론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단성을 구별하는 준거기준이기 위한 설명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자(<벨지카 신앙고백서> 9항).
비교하면 행복은 멀어집니다
가난해도 마음이 풍요로운 사람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든 것을 소유하는 사람입니다.
남이 보기 부러워할 정도의
여유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일듯하지만
실제로는 마음이 추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려움을 아는 사람은
행복의 조건을 알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은
만족을 모를 터이니
마음은 추운 겨울일지도 모릅니다.
몸이 추운 것은 옷으로 감쌀 수 있지만
마음이 추운 것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사는 기준이 다 같을 수는 없는 것처럼
행복의 조건이 하나일 수는 없답니다.
생긴 모양새가 다르면 성격도 다른 법
가진 것이 작지만 행복을 아는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지요.
남과 비교할 때 행복은 멀어집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실 것입니다
- 좋은생각 中에서 -
Just Loving You (그저 당신만 사랑해요) / Mary Duff
밴드이름이 생소하기도 하거니와 웬지 찜찜하여 들어가지않고 있었는데 전에 있던 교회 집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느 목사님의 밴드초대 문자를 받지 않았냐고.. 좀 이상한데 같아 내게 문의차 온 것이었다.
그 목사님이 아마 전화번호 아는 사람들에게 모조리 문자를 보낸것 같은데 뭔지를 알아야 묻는 이들에게 대답해줄 말이 있겠다싶어 일단 수락하고 들어갔더니
그 목사님 프로필 글이 가관이었다
~ 사람 팔자 한 순간이다! ~
이게 뭔가?
내용을 보아하니 본인을 전직목사라 소개하며 복음을 접할수록 자기는 죄인인것을 깨달았고(여긴까진 좋았다) 그 복음대로 살기에는 돈이 없으면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 복음으로 바로 살려고 하면 돈이 필요하다..라고 말하고 있는지??)
그래서 어찌어찌해서 노숙생활까지 했고 얼마전 이 정보를 접하고 자기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짧은 시간에 돈을 최대한 많이 벌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보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일명 네트워크마케팅. 다단계. 또는 가상화폐시장이라 하여 원코인인지 비트코인인지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지금은 단 몇천원짜리가 몇만원 혹은 그 이상 되고 첨에 얼마 보유해야되고 자기 밑에 사람들이 죽죽 연결되면 될수록 도움이 되는..
내가 너무 놀란 것은 이 분이 목사님일때 함께 훈련도 받고 김용의 선교사님이 하는 복음학교도 갔다오고 나름 청년목회를 열심히 잘 하고 계시던걸 보았는데 몇해만에 이렇게 사람이 확 바뀌어버린 것에 너무 놀랐다.
이제는 복음이나 말씀을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이 사업에 동참시키고자 사람을 모으고 완전히 거기에 빠진 것. 밴드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집하고 설명회를 열고 아주 왕성한 활동이 밴드안에 다 드러나있었다. 좌악 읽어보고 훑어본 뒤에 조용히 그 밴드를 탈퇴했다. 혹여 회원명부에 있는 내이름을 보고 누군가 혹하거나 신의를 갖게될까봐서라도 얼른..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같은 말. 확신에 찬 말을 자꾸 들으면 거짓신념도 신념이라서 단체로 세뇌당하는 경향이 생기고 마치 거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은 경제도 모르고 세계정세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자기들만 아는 이 정보로 곧 부자가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내가 보기엔 그 목사님이 그랬고 그 밑에 댓글을 단 사람들.. 호칭으로 보아 거의 믿는 사람들.. 집사님 장로님 권사님 등등.. 그 사람들이 다 한테 눈이 멀어 돈을 쫓고 있다는 사실.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분명 맘몬의 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람 팔자 한 순간이니 인생 대박 맞으면 그걸로 헌금 많이 해서 교회도 새로 세우고 복음으로 진짜 살게 (?) 될란지는 몰라도 그들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옛날 우상들이 다 풍요의 신을 추구했듯이 자기욕심을 따라 신을 만들고 부요함을 추구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미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맘몬이라는 우상에 무릎을 꿇은 것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자기 욕심. 자기 의를 따라 교묘하게 파고드는 세상방식에 그토록 아무 거리낌 없이 젖어들다니. 그것도 정통교단에서 신학을 하고 멀쩡히 목회 잘 하던 목사님까지.. 그 밑에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안 믿는 사람들이야 돈이 인생의 목적인 사람들이 많으니 그렇다고 치자. 카지노나 도박게임 등에 빠져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오죽 많은가.
그런데 어떻게 해서 하나님을 알고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토록 분별력이 없고 자기욕심에 눈이 가리워 돈 없으면 복음으로 제대로 못 산다는 괴변까지 늘어놓는단 말인가.
의외로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다는 것에 나는 또한번 놀란다. 은퇴목사님이 받은 은퇴금을 어찌 좀 불려보고자 이런 다단계에 혹해서 초기자금 다 밀어넣고 야금야금 까먹고 다 날렸다는 소식 심심찮게 들을 뿐더러, 지금도 건강식품이니 기구니 하면서 이 사업에 동참해야 마치 제대로 사는 것처럼 강요하고 권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다.
제발 속지 말자. 설령 그렇게 해서 돈을 벌었다치더라도 하나님은 그런돈을 기뻐하시겠는가? 땀흘려 정직하게 번 돈도 아니고 내 밑에 사람 새끼쳐서 남이 활동한 것으로 내 이익이 생긴다고 하는 구조는 처음에 들으면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누구든 지인들 통해 그 인맥 이용하여 가담케 하고 헛된 성공신화 불어넣어 자기주머니 털게 만드는 일은 결국 다단계회사만 배불려 주는 일이다.
과거 내 주위에도 이런 데 혹해서 처음엔 강의니 영상이니 들으며 세뇌당해서 나도 할수 있다..될수 있다 외치며 야심차게 시작한 사람 중에 한 사람도 지금까지 꾸준하게 해서 성공한 사람이 없다.
회사에서 보여주는 일년에 한두번 이벤트식의 성공신화는 마치 보험회사 보험왕 뽑듯이 극히 일부분일 뿐. 대부분의 서민들은 그 밑밥만 되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기욕심에 이끌려 다들 현혹이 되니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하여간. 다단계에 대한 이런 분명한 태도를 가지고 밝힌 이후. 내게 이런 일 같이 하자고 오던 연락이 끊겼음이 참 다행한 일이고, 나만 분별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여기에서도 활동하는 사람.. 해볼까 유혹받는 사람..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 있을것 같아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아무리 공부 많이 하고 훈련 많이 받고 과거 은혜 생활 잘 하면 뭐하는가. 내 마음 한번 뺏기면 하나님도 이용대상으로 만들어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사업에 아무말 말고 축복만 해달란 식이 되고 자기 욕심에 눈이 가리워지면 모든 사람이 자기눈에는 섬겨야 할 영혼. 복음의 대상으로 보이지않고 이 사업에 동참시켜야 할 사업파트너로밖에 보이지않는 것을.
누가 말했다. 대중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확신이고. 그 확신이 거짓이라 할찌라도 자꾸 신념에 차서 반복해서 얘기하면 대중들은 믿게 되어있다고.
옛날 히틀러가 그랬고 지금의 김일성 가문이 대중의 그 심리를 잘 이용한 케이스다.
그 거짓신념에 속아 다단계니 네트워크마케팅이니 가상화폐이니 하는 그럴듯한 말에 넘어가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이들이여. 속히 거기서 빠져나오기를 강력히 권한다!
사람 팔자 한 순간은 돈 대박 맞아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믿고 구원받고 천국가게 되는 것이 진정한 인생 대박인 것이다.
하나님과 견줄만한 강력한 힘. 맘몬의 신이라까지 불리우는 그 돈에 대한 욕구가 우리 죄성인 욕심과 연합할때 우리 마음 쉽게 뺏기고 세상과 연합하는 것을 볼때 너무나 안타깝고,
분별없는 인생들이 너무 많고 그렇게 공부 많이 하고 인생을 지도할 목사까지 넘어가 대장질을 하고 있으니 이 사태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쪽발이라도 담궜든지 한쪽귀라도 팔랑귀로 들썩거리거든 아예 그 싹을 잘라버리길 권한다.
그 사업 한다고 쫓아다니는 열정과 열심으로 우리 하나님 사랑해보라. 만물의 금과 은이 다 내것이라는 하나님 품에서 놀기로 작정하면 들풀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굶겨죽이시겠는가. (또 굶어죽은들 갈 곳이 천국이니 그것도 감사하고!....좀 이런 배짱으로 살아보자!)
설사 굶게된다 할찌라도 그럴때는 그럴만한 그분의 섭리. 가르치심이 있을터. 우리는 죽으나 사나 그분안에서 자족하고 살면 된다. 오늘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변질되어 버림받는 사역자가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두려워할 일이다.
변질의 도구는 흔히..그러나 너무나 우리도 잘 알고 있는 두가지!
첫째. 돈을 쫓아가거나 둘째. 성적으로 타락할때..
이 단 두가지 메뉴만으로도 사단은 우리 죄성이 은밀히 추구하는 바를 기막히게 알아내어 연결시키니 이런것에서 깨어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똑같은 패턴이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돈을 운용할 책임을 맡았다. 필요하면 주실 것이고 안 주실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다.
다단계도 사업이니 열심히 하는것이 무슨 죄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차라리 노가다판에서 땀을 흘릴지언정 쉽게 앉아 사람들 이용하여 돈 벌 생각은 그 자체가 이미 잘못되었다. 사람만나는 관계가 전에는 주님 얘기 복음 얘기 영혼 사랑하는 통로가 되었다면 이제는 내 주머니 채워줄 도구로만 보이기때문에 우리 삶이.. 특히 사역자로서 삶 전체가 복음의 통로 되어야할 사람이 돈의 욕심의 통로로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이것이 잘못이 아니고 무엇인가.
주님만 사랑하자. 세상의 법칙. 더 많이 가진 자가 성공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만을 최고 최대 전심으로 사랑하는 자가 진짜 성공하는 자인 것이다.
주여 우리를 도우소서! .............
디모데전서 6장 8절 :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아멘.
인간의 정(情)
꽃은 피어날 때 향기를 토하고
물은 연못이 될 때 소리가 없다
언제 피었는지 정원에 핀 꽃은
향기를 날려 자기를 알린다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 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난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과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 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정이란 주고 받음을 떠나서
사귐의 오램이나 짧음과 상관없이
사람으로 만나 함께 호흡하다 정이 들면
더불어 고락도 나누고
기다리고 반기고 보내는 것인가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또 아쉬우면 아쉬운대로
그렇게 소담하게 살다가
미련이 남더라도
때가 되면 보내는 것이 정이던가
대나무가 속을 비우는 까닭은
자라는 일 말고도 중요한 게 더 있다고 했다
바로 제 몸을 단단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나무는 속을 비웠기 때문에
어떤 강풍에도 흔들릴지언정
쉬이 부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며칠 비워둔 방 안에도
금세 먼지가 쌓이는데
돌보지 않은 마음 구석인들 오죽 하겠는가?
누군가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