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헨리 나우웬의 정체와 그가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끼친 악영향들
헨리 나우웬을 이단 타종교인들보다 더 추앙하는 기독교 종교혼합주의자들

1.  보편구원론자(만인구원론자)
헨리 나우웬을 백과 사전에서 조사해보면 그는 이단 타종교사제이자 작가로 나온다. 그는 1957년 이단 타종교로부터 사제로 서품을 받은 자이다. 헨리 나우웬은 보편구원론자이다. 보편구원론은 예수님을 알든 모르든 누구나 구원받는다는 이단 신학 사상인데, 헨리 나우웬의 마지막 저서에는 그의 보편론적 구원관을 잘 설명하는 글귀가 있다.


“오늘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집 대문을 열려고 오실 때, 모든 인간이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예수를 알든 모르든. 각 사람 나름대로 신께 나아가는 길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소명임을 깨닫는다.”(‘Sabbatical Journey’ 1998년판. p.51).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님’뿐이라고 정확하게 말한다[행4:12],[요14:6].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 즉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헨리 나우웬은 또한 이단 뉴에이저이다. 뉴에이지는 모든 만물에 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누구든지 신이 될 수 있다는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 뉴에이지는 근본적으로 세상의 ‘죄’를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불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비기독교적인 모든 종교의 합일 내지 세계 단일종교를 추구하며 기독교의 타락 및 종교혼합주의화를 바라고 있다.



2. 동성애자, 동성애 옹호론자인 헨리 나우웬
헨리 나우웬은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이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는 1932년 1월 24일에 네덜란드의 네이께르크(Nijkerk)에서 세무법학자였던 Laurent Jean Marie Nouwen과 Maria Huberta Helena Ramselaar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57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64년부터 81년까지는 노틀데임, 니메건, 예일대 등에서 강의를 했다. 그리고 인생의 후반부에서 말년까지 정신장애인을 위한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서 일을 했다.


그는 “동성애 감정을 지니지 않은 척 하는 사람은 심장이 없이도 살 수 있는 척 하는 사람과 같다”고 말할만큼, 동성애는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서인 것처럼 언급했다. 그러나 동성애자가 아니거나 성령과 물로 거듭난 진정한 크리스찬이라면 헨리 나우웬의 이러한 언급은 전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는 불행하게도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동성애의 영’에 사로잡혀 이 악령으로 벗어나지 못했다. 만일 헨리 나우웬이 진정으로 거듭난 참된 크리스찬이었다면, 그는 이 죄악의 수렁에서 건짐을 받고 그 죄로부터 돌이켰을 것이다.


이런 종교혼합주의자, 동성애자(Gay ; 사실에 근거로 하여 모든 사람들이 믿을 수 있는 ‘Wikipedia’(위키백과)에 헨리 나우웬은 남성 동성애자인 ‘Gay’로 등재됨)이며 보편구원론자인 이단 헨리 나우웬의 삶을 ‘참다운 인생의 성공’이라고 말하는 기독교 목사를 비롯하여, 헨리 나우웬의 책을 팔아 수익을 올리는 자칭 기독교 출판사(두란노[대표 OOO씨 ; 前職원장 故 하용조목사]를 비롯한 일부 출판사들)들의 정체는 성경에 근거한 것일까 아니면 뉴에이지 종교혼합주의 및 보편구원론에 두고 있는 것일까?  동성애를 하더라도 장애인들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면 그것을 ‘참다운 인생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일각에서는 헨리 나우웬이 정신장애우들을 피부에 닿게, 살갑게 돌봐준 것이 ‘동성애’의 애욕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는 최고의 영성가가 아닌 사단에게 사로잡힌 영적 장애우였다.



3. 뉴에이지적 관상기도 열풍을 불러온 장본인 헨리 나우웬, 그가 이 시대에 하고 있는 역할
헨리 나우웬은 스스로가 관상기도를 즐겨했고 적극 지지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이 시대 교계에 ‘관상기도’ 바람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헨리 나우웬의 관상기도는 중세 때 기독교가 아닌 타종교(=카톨릭) 수도원에서 동방 신비주의를 도입하여 특히 힌두교의 만트라를 기도의 도구로 활용하여 생겨난 관상기도를 더욱 더 종교혼합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헨리 나우웬이 소개하는 관상기도는 성경 묵상이 아닌, 하나님이 아닌 뉴에이지 영성과 직결된, 다른 영적 존재에게 나가는 것이며 극히 위험한 것이다. 관상기도에 심취한 이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카톨릭, 불교, 힌두교와 연계된 종교혼합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세계크리스천관상커뮤니티(WCCM)’의 디렉터인 ‘로렌스 프리먼’은 타종교 신부인데, 그는 관상기도를 이끄는 궁극적인 목적이 ‘세계종교의 단일화’에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주로 추구하는 것은 ‘세계 평화, 세계 단일화’로서, 종교합일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프리먼은 기도모임을 이끌 때 ‘요가 교습’도 함께 하고 있다. 알다시피 요가는 힌두교에서 몸으로 하는 기도이며, 요가를 지속할 경우 악한 영, 특히 음란의 영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다. 개신교의 ‘유스스페셜티즈’ 역시 요가를 수시로 보급하고 있다.


헨리 나우웬의 영적 스승인 ‘토마스 멀튼’은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에 앞장선 사람이며, 도교와 불교와의 대화를 추구하며 동서양의 종교 합일을 지향했던 사람이다. 나우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제자인 ‘로벗 조나스’는 미국 보스턴 인근에 기독교, 불교 혼합식 영성수련 기도처 ‘빈종’(관상기도수련센터)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말씀이 아닌, 말씀을 벗어난 신비적 영적 체험을 통해 종교혼합주의 결과물을 양산하는데 힘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단들인 리차드 포스터, 필립 얀시, 유진 피터슨은 관상기도 보급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모두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유명 인사들이다. 또한 이단 리차드 포스터, 이단 달라스 윌라드, 이단 유진 피터슨, 이단 래리 크랩, 프리메이슨 로버트 슐러, 이단 브라이언 맥클라렌, 이단 릭 워렌, 이단 필립 얀시 등은 헨리 나우웬을 열렬히 숭배하는 자들이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들이 추구하는 영성이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영(다른 예수)을 좇는 자들이다.


관상기도를 적극 추천하는 인물들은 토마스 멀튼, 헨리 나우웬, 리차드 포스터, 브라이언 맥클라렌, 필립 얀시, 유진 피터슨, 댄 킴볼, 레너드 스위트, 릭 워렌, 로렌스 수사, 리처드 모우 등은 관상기도를 적극 추천하고 있으며, 이머징처치, 유스스페셜티즈, 한국의 일부 기독교 서점, 일부 기독교 언론들이 관상기도를 보급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 서울 지구촌교회(이동원목사)에서는 ‘관상기도 세미나’도 개최했었다.


나우웬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기도는 우리의 영혼의 작업입니다. 이 성스러운 센터에서 모두는 하나가 됩니다…그곳은 하느님의 마음 속이므로 우리는 모두의 연합을 온전히 구현할 수 있게 됩니다.”(‘여로를 위한 양식’에서), “우리의 내성소 안에 계신 하느님은 각 인간의 내성소에 있는 분과 똑같습니다.”(‘여기와 지금’에서)


나우웬의 말대로라면 관상기도를 통해 모든 종교는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종교를 떠나 각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은 다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뉴에이지적 사고이며, 종교혼합주의 정체를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나우웬은 “관상기도 훈련을 통해 크리스찬 지도자들은 사랑의 음성 듣기를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 리더십이 미래에 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도덕론자들로부터 신비주의자들까지 망라한 운동이 요청되기 때문입니다.”(‘예수의 이름’에서 1989년)라고 말한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뉴에이지적 종교합일운동이다. 그는 모든 것들 안에 신성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신에게로 가는 길이 많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동성애를 버리지 않았다. 나우웬의 바탕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단’이다. 그와 함께 하는 자들 역시 영적으로 일맥상통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가 지적장애인들을 위해 말년을 살았기 때문에 그의 인생을 참다운 성공이라고 추앙하는 기독교 목사도 있다.


이와같은 논리는 장애학교인 ‘인화학교’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가르치며 살아왔다 하면서 ‘성추행’을 하더라도 장애인을 섬겼기 때문에 ‘참다운 인생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과 별 다를 바 없다.  이단 보편구원론자이며 Gay인 나우웬의 추종자들, 그리고 그의 추앙 세력들이 저항없이 나우웬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나우웬의 추종자들 역시 같은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행4:12]. 그 외에도 길이 있다고 믿거나 다른 길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나우웬이 인간의 감성과 지적 정서에 혹할 만한 달콤한 글을 잘 썼는지는 몰라도, 그는 지금 많은 사람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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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져온 곳 : 
카페 >선지자와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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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salt34| 원글보기
힐러리가 사망했다는 뉴스 특보. 점점 안개속으로 치닫는 2016 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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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ust one 님의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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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ABC 방송에서 9/11에 힐러리의 사망을 보도, 그리고 힐러리의 대타


지난 일요일(2016년 9월 11일) 아주 경악할 만한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힐러리가 질병으로 인하여 결국 9월 11일에 사망하였고 민주당에서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하여 힐러리를 대체할 새로운 후보를 지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힐러리의 대체인물(힐러리와 꼭 닮은 사람)이 활동한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ABC 방송은 2016년 9월 11일에 힐러리 클린턴의 사망소식을 발표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iYrlIZvMCc


아나운서는 긴급속보로 들어온것을 읽은 것일까요? 아니면 실수 였을까요?


2016년 9월 13일 잡지 Sun은 힐러리의 사망가능성에 대하여 보도 하였습니다, 



"Montefiore 병원에서 치료도중 힐러리 클린턴이 사망했다고 전해집니다."


Express지 도 역시 이와 관련된 내용을 보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 9월 14일 Daily Mail은 힐러리 클린턴 처럼 행동하는 대체 인물의 가능성에 대하여

보도를 하였습니다, 




위 사진중 좌측(Double)로 표시된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의 대역이며 오른쪽이 힐러리 클린턴입니다, 

과연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동일 인물로 보이시는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좌측 여인이 더 날씬하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8G5HGCMGQs

마지막에 힐러리로 나오는 여자는 위 사진에서 좌측(Double) 여인입니다, 


어떻데 한 시간만에 힐러리는 자신의 딸인 첼시아의 아파트에서 기력을 회복한 것일까요?

위 동영상을 보면 힐러리가 나올때 첼시아는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병약한 엄마와 함께 나와 엄마가 안전하게 귀가 하는지 확인 안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문화의 차이일까요?

그리고 힐러리가 나왔을떼, 힐러리를 보호하여야 하는 비밀 경찰들이 안보입니다, 



폐렴과 힘들게 싸우는 여인은 자신의 딸 아파트에서 귀걸이를 바꾸었나 봅니다, 

그런데 귓볼은 완전히 틀립니다, 다른 사람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은 항상 왼쪽에 핸드백을 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딸의 아파트에서 나와서

오른쪽으로 매었습니다, 과연 동일인 일까요?



그리고 갑자기 옷도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 굵기도 틀리다고 하네요

(자세히 보시면 얼굴 형이 아예 틀립니다, )


2016년 9월 12일 Jeff Rense 지에서는 힐러리 클린턴의 대역에 관한 보도를 했습니다. 

" 첼시의 아파트에서 나온 여인은 단연코 힐러리 클린턴이 아니다"




동일인으로 보이시는지요?


힐러리 클린턴의 대역은 Teresa Barnwell 이라는 여인입니다, 




힐러리 클린턴과 Teresa Barnwell이 프리메이슨 악수를 하고 있습니다, 


Teresa Barnwell은 힐러리 클린턴 흉내, 대역등으로  큰 돈을 벌어 왔습니다, 


원문 : http://new.euro-med.dk/20160914-abc-news-new-york-hillary-clinton-died-on-911-whether-true-or-not-she-has-thereafter-been-deceptively-replaced-by-her-impersonator-theresa-barnwell.php




백제의 꿈 결론


대한민국의  선거도 참 엉망이지만, 미국의 이번 대선도 참 Dog Stage(개판) ..................

세상이 어디로 가는지 ...





출처 : 다음블로그-백제의 꿈

추석의 끝자락에서....
은혜받구 감사해서 올립니다.

 

-목사는 목사다-

1.목사는 목사(牧師)여야 한다.

목사란 말 그대로 맡긴 양을 치는(牧-칠 목, 혹은 돌볼 목) '양돌보미'이다. 양치기라 하면 격이 낮은 듯 해서 잘 안 쓰는데, 그러면 목자 혹은 목동이라 부르면 격이 맞을까.

예수님 당시에 목자들은 사회적 약자였다. 단순히 약자이기 이전에 비천한 직업이 목자였다. 예루살렘에 분뇨 처리하는 직업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었던 직업군이었다. 오히려 주인의 양새끼를 도둑질 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양새끼를 슬쩍한다는 오해를 받았던 것이다.

이러한 오해와 사회적 편견 속에서 목자들은 밤에 잠도 못 자고 양떼를 지켰다. 혹, 양을 잃거나 이리에 찢기기라도 한다면 물어주어야 했기에 가난한 목자들은 온 힘을 다해 양들을 돌봐야 했던, 실로 고달픈 직업이었다.(세리가 소문난 도둑놈이었 듯이 일설에는 목자도 도둑놈 취급받았다고 한다)

목사는 벼슬이 아니다. 사(師)자 붙어서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사실 '놈(者)' 이상이 아니다. 놈이란 단어가 '사람'을 비하해서 부르는 것이긴 하지만 아무튼 존경을 한 몸에 받아야 할 직업은 아닌 것이다.

이 땅에서는 '들판에 목자처럼' 밤낮 수고해야 하는 직업 아닌 직업이 목사다. 바울이 그렇게 살지 않았던가. 존경을 받고 높임을 받고 명예를 얻고 돈과 인기와 명성을 얻고 싶다면 목사직을 내려놓는 것이 어떨까. 목사란 그런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다가 죽어야 할 이름이 목사'란 사실을 한국교회가 진즉에 알았더라면 지금처럼 세상으로부터 욕을 먹진 않았으리라.

주인이 맡긴 양들을 목숨바쳐(죽도록 충성하며) 잘 섬긴 목자들은 비록 이땅에서는 고난을 겪고 아픔을 당하고 애통의 눈물을 삼킬지라도 훗날, 주님이 친히 눈물을 닦아주시고 품에 안아주시며 '착하고 충성 된 종'이라 칭찬하실 것이란 믿음으로 사명을 바르게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목사라 불리워도 좋다고 본다.

1.목사는 목사(目四)라야 한다.

다시 말해 눈이 '네 가지'라야 한다는 말이다.

눈이 멀지 않아야 한다. 눈이 멀면 사물을 잘 구별하지 못 한다. 육신적으로도 건강한 눈을 가져야 한다. 눈이 침침해서 김집사인지 이집사인지도 알아보지 못하면 교인들이 시험에 든다. 목사는 사역하는 동안에 건강해야 한다.

상식의 눈이 있어야 한다.
이성적 판단은 나쁜 것이 아니다. 상식이 풍부해야 바른 이성적 안목을 가질 수 있다. 요즘 상식이 부족한 목사들이 많은 것같아 안타깝다. 세상사람들은 영적인 눈으로 교회와 목사를 바라보지 않는다. 상식의 잣대로 판단한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목사를 사회가 인정하겠는가.

사례비도 사는 모습도 상식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억대 연봉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근로자 평균임금 정도로 사례비를 정하고 그것으로 족하게 여겨야 한다.(70-80% 목회자들은 그 것에도 못 미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성경을 바르게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목사가 성경도 제대로 보지 못 하고서야 어찌 말씀의 꼴을 먹일 수 있겠는가. 말씀을 말씀답게 볼 줄 아는 목사가 바르게 목양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말씀을 공부해서 지력(知力)을 키워야 한다.

말씀으로 말미암는 혜안(智慧의 눈)이 있어야 양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말씀의 푸른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양들을 인도하는 목사가 되려면 말씀의 눈을 부단히 길러야 한다. 그래야 목사다운 목사가 된다.

주님의 눈을 가져야 한다.
아무리 육신의 눈이 밝고 상식의 눈이 있고 말씀의 눈이 있다고 해도 주님의 마음을 품지 않으면 목사로서는 말짱 도루묵이다. 주님의 눈으로 양들을 보게 될 때 양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더하여, 목사는 온 양떼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선도양(先導羊)으로서 양무리를 주께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을 늘 자각해야 한다. 또한 마음이 깨끗하여 늘 주님을 볼 수 있어야 바른 목양을 할 수 있다. 주님의 눈으로 양떼를 돌보고 주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주님의 눈빛만 봐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목사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목자일 것이다.

1.목사는 목사(木死)해야 한다.

무슨 말인가. 십자가(十字架)는 형상화 된 글이다. 한자문화권에 사는 우리로서는 의미를 잘 알기에 그대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성경에는 나무기둥(스타우로스)으로 기록하고 있다. 페니키아인들의 사형법을 로마인들이 가져다가 사용했다고 한다. 형장에 세워놓은 나무기둥을 우리는 십자가로 번역해서 쓰고 있다. 가로목을 지고가게 해서 손과 발에 못을 박고 나무기둥에 매단다. 윗 부분에는 죄목을 적은 판대기를 붙인다. 형상이 '열 십자'를 닮았다.

우리 주님이 이 나무기둥에 달려 돌아가셨다. 그런데 신약을 눈여겨 보면 나무기둥(스타우로스)이라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냥 나무(크실론)라 하고 있다. '사도행전', '베드로서'.. 등에서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리셨다는 것을 강조코자 함이다. 율법에, 저주를 받은 자는 나무에 매달았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우리 주님이시다.

그런데 그 나무는 단순한 나무기둥이 아니라 실로 생명나무이다. 자신의 피와 살을 죄인들을 위해 내어주신 것이다. 과일이 과육과 과즙으로 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다시 말해 나무에 달려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생명나무 과일같이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떡(주식으로서-밥 혹은 빵)이요, 생명의 음료(생명을 위한 물)로 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는 생명나무 이전에 선악의 지식나무였다. 모든 사람은 선악의 지식나무의 실과를 먹어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다. 마지막 아담 예수님이 그 나무(크실론)에 달리셨다. 자기와 및 자기를 믿는 모든 자가 선악의 지식나무(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나무요, 그것을 기록한 말씀이 십자가의 복음 곧 나무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인은 선악의 지식나무에 대해(향해)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 선악의 지식나무도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에 대해 죽었다. 믿는 자에게는 더 이상 '선악의 지식나무'는 없다.

영적으로 보자면,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은 죄악된 세상의 중앙, 에굽 혹은 소돔이였다. 세상 중앙에 우뚝 선 그 나무에 달리신 그리스도이신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온 세상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

이것이 예수님이 나무를 지신(달리신) 이유요, 의미인 것이다. 그 나무가 생명나무가 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역설적 신비다.(바울의 복음도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죽은 자 살리는 생명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일반 신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목사는 특별히 나무에 달려 죽으신 주님의 그 죽음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삼아 날마다 죽어야 하는 직분을 맡은 자이다. 그래서 나무에 달려죽었다는 의미로 목사(木死)라 이름해 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시퍼렇게 살아서 목회하는 자가 누군가. 목사도 안 죽는데 누가 누구보고 죽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제발 좀 죽자! 주님 죽으신 그 나무에 함께 달려죽은 우리가 아니던가. 그러데 어찌하여 산 냄새 풀풀 풍기는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날마다 죽자. 그래야 부활 할 것이 아닌가.


*6년 전에 쓴 칼럼인데 오타수정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이 칼럼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은 순전히 별사모님의 덕분입니다. 왠고하니 필자가 즉흥적으로 아멘넷 독자게시판에 올린 글을 별사모님이 추천해서 초대칼럼란으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글:구 자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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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으로 거처를 옮기다가 시날평지(바벨)를 만나 정착생활을 하게 된 인류... 그들은 그 곳에 성과 도시와 나라를 건설하고 바벨탑이라는 흉물을 쌓아올렸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 11:4) 


바벨탑을 쌓아올리는 그들의 마음의 동기는, 이 세상을 향한 사탄마귀의 사악한 꿈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꿈은 마귀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의 꿈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죄와 사망 권세 아래 포로가 되어 마귀가 부추기는 이 더럽고 추악스러운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미친듯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1. 성과 대를 쌓아 하늘 대기에 닿게 하여

- 사탄마귀가 결코 포기하지 않은 꿈은,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지극히 높으신 자와 비기는 것입니다(사 14:14). 하늘 꼭대기에 올라 결국 자기자신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경배를 한 몸에 받기 위해 그렇게 악착같이 오르고 또 오르는 것입니다.


번번이 하나님께서 막으심으로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높아지고자 하는 그 교만은 멈추질 않습니다. 이것이 사탄마귀의 본질적인 속성이며 마귀에게 속하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방식과 가치관인 것입니다.


2. 우리 이름을 내고

-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자기 이름을 내는 삶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중심에는 자기 자신이 철옹성처럼 버티고 있습니다.


언제나 내 장래, 내 건강, 내 돈, 내 가족, 내 뜻, 내 야망, 내 소유, 내 자식, 내 직장, 내, 내, 내게 속한 무엇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무수히 많은 '내'가 모여 '우리'가 되고 세상 욕심으로 쩔어 있는 죄악 짱아치가 된 '나'와 '우리'가 모여 결국 자기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자기들의 영광을 위하여 살다가 허망하게 인생을 마감합니다.


3.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 마귀의 나라는 흩어지지 않고 집착하는 나라입니다. 자기 것을 포기할 줄 모르기 때문에 움켜 쥐고 삽니다. 남을 위해 사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악착같이 긁어모으며 삽니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일평생 뼈빠지게 일하여 안정적인 노후와 장래를 추구합니다. 도무지 내려놓는 법을 모르고 흩어질 줄을 모릅니다. 그렇게 장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으로 경직된 삶을 살면서 도무지 흩어지지 않는 나라... 참 자유가 없는 나라... 


이것이 바로 공중의 권세잡은 사탄마귀가 왕이 되어 통치하는, 지금도 건재하고 있는 이 세상 나라인 '바벨론 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1. 성과 대를 허물고 바닥 골짜기로 내려가는 나라입니다.

2. 우리 이름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는 나라입니다.

3. 온 세상 땅끝까지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흩어지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하나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 나라에 합당한 삶과 가치관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단코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난 사람이 여전히 교만하게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려고 하고, 자기가 주인되어 자기의 이름으로 살고, 두려움과 염려에 휩싸여 모든 것을 움켜잡고 내 것을 잃을까봐 흩어지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는 아직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복음을 만나고 천국과 지옥이 실제가 된 사람은 결코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아니, 그렇게 살려고 해도 살아지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되어 내려오셔서 날 위해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값을 치르시고 지옥의 형벌에서 건져주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자기가 주인되어 살아갈 수 있을까?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성령님을 모시고 모든 능력과 권세와 자원을 넘치도록 채움받는 사람이 여전히 죽기를 무서워함으로 죄와 사망에 매여 종노릇하며 살 수 있을까?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없어도 너무 없습니다.


반드시 회개하고 돌이켜 자신이 쌓고 있는 바벨탑을 허물고 각 사람 안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기까지 부지런히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또 전해야 합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죽은 뒤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 세상 공중의 권세잡은 자에게 속아 바벨탑을 높이높이 쌓아올리며 살아가던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제게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이 놀라운 복음을 만나게 하시고 이 복음이 제 삶에 실제가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이제 제 인생, 제 꺼 아닙니다.


주님의 소유된 제 자신과 제게 주신 모든 것들주님의 뜻대로 영혼구원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남은 생애동안 더 낮은 곳을 향해 내려가기를 선택하며,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구하며 주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겠습니다.


더 많이 내려놓고 더 많이 흩어져 내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제 힘으론 절대 안되는 거 주님 아시죠? 내가 죽고 주님이 내 안에 사심으로 가능한 일이니 오늘도 제 안에서 당신의 삶을 살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 곰팅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29
람들은 하나님의 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한 가지 일, 즉 믿음에 대해 일깨워 주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 주님은 사람이 믿음 없이 행동하는 모든 일은 헛되고 무용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 하나만을 요구하시므로 믿음 하나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에는 믿음과 인간의 공로 및 노력 사이에 암묵적인 대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람이 믿음 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애쓰면, 말하자면 주로(主路)를 벗어나 달리다가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같아서 그런 고는 아무 소용이 없다" 이는 사람들이 평생토록 불쌍할 만큼 자기를 괴롭게 해도 자신의 삶의 기준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다 헛 수고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믿음 외에는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웃 사랑도 경시해선 안 될 것이고 그 밖의 다른 신앙의 의무들도 그 위치와 영예를 잃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다른 선행이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믿음은 이웃 사랑이나 그 밖에 다른 선행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그 안에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유일한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해지는 까닭은, 믿음을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유하며 그 결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스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믿음과 믿음의 열매를 분리하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과연 믿음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삼으셨는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출처: http://thevine21.hompee.com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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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 미 교도소 수감자로는 처음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게 될 매닝(좌)과 수술 후의 예상 모습 

미군 교도소 내에서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허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AP통신에 따르면 13일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이 성명을 통해 “미국내 교정 시설을 통틀어 재소자가 성전환 수술을 한 사례가 없었는데, 이번 캔사스주 군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전 육군 일병 첼시 매닝(28)이 첫 번째 이정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며, “군 당국이 마침내 옳은 일을 한 것에 무한히 안도하고 있고 그들의 결정에 갈채를 보낸다”고 보도했다.
 
원래 이름이 브래들리인 매닝은 2013년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에 이라크전 군사 기밀과 국무부 자료, 동영상 등을 빼돌린 죄로 징역 35년을 선고받고 군 교도소에 수감 중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여성이라고 밝힌 뒤 성전환 수술을 받게 해달라고 당국에 요청해 왔다.
 
지난 9일부터는 최소한의 인권존중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시작했고 5일 만인 13일 미군 당국으로부터 성전환 수술을 약속 받고 단식을 중단했다. 매닝은 앞으로 1-2주 후 의료진을 만나 성전환 수술을 상담 받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10월부터 시행되는 새 국방부 정책에 따르면 성전환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군인은 의학적인 치료와 병행해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출처: 크리스챤 투데이

아롱진 자, 점 있는 자, 검은 자를 내게 주소서.

 

  야곱이 집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아내와 열 한 아들, 그리고 딸 디나를 데리고 양과 소 두 떼를 이끌고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기까지 몇 년이나 걸렸을까요? 훗날 야곱은 바로왕 앞에서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 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곱이 바로왕 앞에 선 때는 아직도 7년 흉년 중 2년이 지나고 아직 5년의 흉년이 더 남아 있을 때입니다.

  창세기 37장을 보면 야곱은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합니다. 그 요셉은 열 일곱 살 때 형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종으로 팔려갔고 보디발을 섬기다가 보디발의 아내로 인하여 집 옥에 갇혔다가 바로의 두 신하의 꿈을 해몽해 준 일로 인하여 풀려나 바로왕 앞에 섰을 때가 30세 때였습니다. 요셉은 바로왕의 꿈을 해몽해 주었고 이때부터 요셉이 애굽총리를 맡아 풍년 7년과 흉년 2년이 지났으므로 이 때 요셉의 나이는 40세 정도라고 계산이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바로에게 자신이 130세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요셉을 낳은 때가 90세 때라는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한 "이십년 동안"이라는 말로 미루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러나 만일 야곱이 90세일 때 라헬이 요셉을 낳았고, 그 때 야곱이 라반에게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면, 그 후 야곱이 자신의 양떼와 소떼를 이루어 100세 무렵, 즉 요셉이 10살 때쯤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났다면,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무려 50년 세월을, 반평생을 외삼촌 라반을 섬겼다는 계산이 가능합니다.  

  20년인지 50년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속이고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면서 어떻게든 야곱을 붙잡아 두어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내리시는 복을 차지하려는 교활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수십년을 이용당하며 살고 나서, 마침내 그곳을 떠나자 이번에는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마주 오고, 두려움에 떨며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부러지고, 다시 세겜땅에서는 딸이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이 세겜족속 남자들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고, 사랑하는 라헬은 아비집에 이르기도 전에 베들레헴 길가에서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다시 목숨처럼 아끼던 아들 요셉까지 잃었으니 어찌 이 모든 것이 “험악한 세월”이 아니었겠습니까? 어쨌든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아비집으로 데리고 가기 위하여 반평생을, 자신의 모든 젊음과 힘과 열정과 생명을 바친 것입니다. 아버지 집으로 데려가는 길은 이렇게도 멀고 험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오직 라헬을 연애하여 기쁨으로 이 모든 고난을 감수한 것입니다.

  야곱의 이 “험악한 세월”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여 데리고 가시려고 이 땅에 오셔서 당하신 온갖 고난을 예표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2-3)”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치 아내를 아비 집에 데려가려는 신랑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신부를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는 길은 자신의 몸과 목숨을 바쳐야 하는 험한 희생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에게 자신의 품삯으로 태어나는 양의 새끼 중 ‘아롱진 자, 점 있는 자, 검은 자’를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무의 푸른 가지를 취하여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앞에서 새끼를 배게 합니다. 하나님의 손길로 인해서이겠지만 희한하게도 아롱지고 점 있고 검은 새끼들이 많이 태어나 야곱은 심히 풍부한 부자가 됩니다.

  더러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해 보면 재미 있습니다. ‘아롱진 자, 점 있는 자, 검은 자’가 무슨 뜻일까요? ‘푸른 가지’는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 자신을 ‘푸른 나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눅23:31)” 하셨지요. 야곱이 세워둔 껍질 벗긴 푸른 나무 앞에서 태어난 ‘아롱진 자, 점 있는 자, 검은 자’는 야곱의 양떼가 되어 아버지 집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흠 없는 흰 양 새끼는 라반의 집에 남게 될 것입니다. 껍질 벗기운 푸른 나무 처럼 옷을 벗기우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고 자복하며 통회하는 아롱지고 점 있고 검은 죄인들은 그 푸른 나무 앞에서 배어지고 다시 거듭 나서 아버지의 집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흰 자가 되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 하는 자, 스스로 의인인 자는 라반의 집에 그냥 남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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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인 셈, 함, 야벳을 통하여 새로운 인류의 번성과 확장이 전개됩니다. 그 이전에 창세기 9장에서 한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함이 술에 취해 누워 있는 아버지(노아)의 하체를 보고 경망스럽게 형들에게 떠벌리고 다닌 일이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합니다.


아버지의 저주를 받은 함은, 마치 곡식제물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아 분노하여 아벨을 살해했던 가인과 같이 그 마음이 분노와 상처로 뒤틀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근원으로 좀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천상에서 하나님 보좌를 경망스럽게 넘보다가 쫓겨난 사탄마귀의 악한 영이 고스란히 되물림되어 내려오는 사탄의 계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 10:8-9)


가나안의 아들 구스가 낳은 니므롯...

그는 창세기의 족보 중에 유심히 들여다보고 경계해야 할 요주의 인물입니다.


성경은 니므롯에 대하여, '세상에 처음 영걸',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라고 묘사합니다. '니므롯'이라는 이름의 뜻은 '반역자'라는 뜻이며, 사탄마귀의 이름(루시퍼)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인물인 것입니다.


그는 홍수 이후 인류에게 당면한 의식주 문제와 각종 짐승으로부터의 위협을 탁월하게 해결해 준 카리스마 넘치는 능력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도 대단한 사냥꾼이 되어 당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도시와 나라를 건설합니다.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 (이는 큰 성이라) 을 건축하였으며" (창 10:10~12)


인류 스스로가 만든 최초의 나라는 니므롯을 통하여 '바벨'에서 시작합니다. 세상의 왕은 '하나님'밖에 없고, 세상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 나라'만이 유일한 나라인데 니므롯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자기의 나라를 만들고 훗날 바벨탐을 높이 쌓아  자기를 신격화하여 이름을 높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숭배하게 합니다.


사탄마귀는 인류 역사 속에서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전세계를 지배하고 장악하려는 시도들을 일삼아 왔습니다. 바벨론제국, 이집트왕국, 페르시아제국, 메대와 바사제국, 로마제국, 비잔틴 제국 등...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시도들을 해 왔지만 번번이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흩으심으로 인해 실패해 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사탄이 그토록 원하고 원했던 세계정부를 세워 전세계의 정치, 문화, 경제를 장악하고 이스라엘에 세워질 제3성전 위에 앉아 멸망의 가증한 짐승이 되어 하나님 대접을 받고 경배를 받고자 할 것입니다.


사탄의 나라,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그 세력을 확장하고 온 세상을 죄악으로 물들이고 있는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온 세상을 복음을 물들이는 삶에 올인해야겠습니다.


내 자신이 먼저 복음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주신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복음이 진정 복음되도록 간절히 기도하며 정확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세울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는 사탄의 포로된 영혼들에게 부지런히 복음의 말씀을 들려줄 것입니다. 지금은 치열한 영적 전투상황임을 직시해야 합니다.


사탄마귀는 이미 엄청난 미혹을 통하여 심지어 믿는 사람들까지도 교묘히 최면을 걸어 천국과 지옥, 구원의 개념과 확신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재림을 준비하거나 장차 각 개인에게 임하게 될 개인종말(죽음)을 대비하며 살지 못하도록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조금씩 사람들의 영혼에 잠식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살 것처럼 생생한 실체가 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아무런 대책없이 당장 눈앞에 닥친 현실에만 매몰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잠시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조만간 도래하게 될 하나님 나라를 코 앞에 두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더욱 힘써 살아가야겠습니다.


흐릿한 것들을 선명하게 하고 신부단장의 마지막 화장을 서둘러 끝마쳐야겠습니다. 그리고 내게 맡겨주신 사람들을 복음안에 견고히 세워주는 삶을 힘써 살아가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제 안에 임하여 나의 왕되신 주님께서 성령님으로 들어와 계심을 감사합니다. 사탄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지만, 마귀보다 더 열정적으로 복음을 나누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전하셨던 참된 복음의 핵심을 놓치지 않겠습니다. 날마다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내가 죽고 그리스도로 살겠습니다.


또 이 삶을 내게 맡겨주신 사람들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세상을 향하여서는 눈과 귀를 막고 오직 하나님과 천국을 향해서만 눈과 귀를 열고 살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하기 좋은 날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곰팅이의 하늘우체통 / 곰팅이

      전환(Conversion) 최송연 당신 사랑이 봄비처럼 보슬보슬 꽁꽁 얼어붙었던 내 영혼을 적셔 흐를 때 그제야 내 마음속에도 사랑의 눈(眼)이 싹 터기 시작했나 봐요 당신 사랑을 내가 느끼던 그때부터 모든 만상(萬狀)이 어찌 이리도 곱고 어찌 이토록 사랑스러운지요 그동안 내가 문제였었나 봐요 이쁘게 보이는 것 별로 없고 날 괴롭게 하는 사람은 많아 세상이 정말 싫다며 원망한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한 1서 16)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왕께 바치는 내 노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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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재림의 때를 과연 아무도 모를까? / 박신 목사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호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재림하시어 이 땅을 완전히 심판하는 시점은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은 지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당신께서 부활 승천하여 천국보좌에 앉으신 성자 하나님으로서 그 때를 모른다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유대 땅에 오시어 제자들에게 종말에 관해 가르치고 있는 인자 랍비의 상태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재림의 정확한 시기는 삼위 하나님 외에 어떤 인간도 알 수 없습니다. 아무리 영성이 뛰어난 신학자라도 일단 그 날짜를 지정하면 무조건 잘못된 것입니다. 언제쯤이라고 추측을 하거나, “몇 주일 몇 달 몇 년 안에”라고 시간대로 제안해도 틀린 것입니다. 불시에 홀연히 재림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대비나 도피할 여유라곤 전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어서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40절)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무도 재림의 때를 모르기에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중에 구원과 심판으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계속해서 경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인자의 임함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기에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아도 언제 심판이 닥칠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다 짓게 되면 곧바로 심판이 임하리라 짐작은 했을 것입니다. 나아가 동물들이 종류별로 한 쌍씩 방주로 몰려올 때에는 정말로 곧 닥치겠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문제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노아가 처음 방주를 지을 때는 틀림없이 미친 사람이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들이 자발적으로 방주 안으로 몰려 들어가는 것을 보았을 때는 반드시 이상하다고 여겼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노아가 마술을 사용해 동물들을 불러 모은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창7:4) 하나님은 드디어 노아에게 심판의 날을 일주일 전에 통보해주었습니다. 노아는 480 세에 홍수 심판의 예언을 들었습니다.(창6:13) 그 후 120년이 지난 600세에 홍수가 임했습니다. 그 동안 그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이며 마지막 7일 간은 정말 목청이 터지도록 외쳤을 것입니다. (방주 속에 들어갔다 해도 열린 창이 있었습니다.)

그가 심판의 시기는 정확히 몰라도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식양대로 방주를 지어 나갔기에 언제쯤 완성되리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또 방주가 완성되자 동물들이 몰려왔고 결국에는 7일 후라는 최후통보도 받았습니다. 요컨대 그는 심판의 때를 거의 근사치로 미리 추측할 수 있었고 7일 전에는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다른 말로 노아의 때는 사람들이 심판의 시기를 몰라서 멸망당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노아의 경고를 믿지 않고 코웃음 치며 먹고 마시다가 명확하게 제시된 구원의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렸습니다.

그럼 예수님 재림의 때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노아 같은 선지자를 보내어 구체적인 심판 시기를 미리 경고케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종말의 징조들이 너무나 명료하기에 누구나 보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의 죄악이 온 세상에 관영하여 선한 구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극소수의 하나님의 남은 자들은 세상의 비방과 조롱과 핍박을 받으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명료하게 보이는 그 종말의 징조가 무엇일까요? 지진, 해일, 화산폭발, 쓰나미, 이상기후, 공해오염, 테러, 핵전쟁 등일까요? 그런 것은 재난의 시작이자 종말의 징조일 뿐이지 막상 종말은 아닙니다.(마24:8)

노아의 때에 마음 놓고 먹고 마신 자들은 아무리 노아가 회개를 외쳐도 심판은 아예 없다고 여겼습니다. 자기들이 회개할 일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심판 받을 만큼 죄 지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의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겉으로 드러나는 타락상의 정도나 세기로 판단해선 안 됩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면 회개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고픈 소망이나 찔림이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 짓을 해도 죄가 아닐 때에는 죄에 대한 심판이나 구원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그냥 기독교인들이 종교 장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겁주려고 지어낸 “Fiction Horror”물일뿐입니다.

한국에서 드디어 그저께 간통죄가 무효화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죄가 아닙니다. 마음 놓고 간통해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대법원이 동성애 결혼에 대한 심의를 앞으로 일절 중지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전체 50개 주의 합법화가 이뤄진 셈입니다. 나아가 어제 한 크리스천 신문에 따르면 마리화나를 담배처럼 합법화 하는 주가 서서히 늘어나고 미국 전체가 마약에 취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분명한 죄로 남을 것은 아마도 연쇄살인 정도 아닐까요? 그러나 그것도 정신이상으로 치부하던지 아예 뇌를 조종해서 그런 범죄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는 정말로 죄를 죄로 여길 것은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심판은 없으며, 회개도 필요 없고 하나님은 더더욱 동화 속의 할아버지로 전락할 것입니다.

작금 한국과 미국의 뉴스를 접하니까 노아가 120년 후의 홍수에 대비해 방주를 짓기 시작한 단계는 훨씬 지난 것 같습니다. 저에겐 마지막 일주일을 남기고 더 늦기 전에 하루 속히 회개하라고 외쳐대는 소리로만 들립니다. 단순히 목사의 노파심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말입니다. 노아의 때와 비교하여 가만 따져 보니까 예수님 재림의 때를 신자가 전혀 모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도 이단인가요?

2/27/2015

 

출처: http://whyjesusonly.com/

가져온 곳 : 
블로그 >생명나무 쉼터
|
글쓴이 : 한아름| 원글보기

◈평양기생과 대동강 물장수등 생활◈

평양 구시가,

멀리 대동강이 보이고 오른쪽에 대동문과 왼쪽의 련광정이 보인다.

련광정과 종각,

련광정은 평안감사가 기생들과 연회를 벌이던 곳이다.

모란대와 대동강, 평양에서 경치가 가장 좋다는 곳이다.

모란봉정상에 최승대가 보이고 아래 강변 쪽의 건물이 부벽루다.

부벽루와 평양의 명물 기생

강을 건너 시집가는 행렬, 멀리 모란대가 보인다.

모란대의 입구, 전금문

나룻배가 대동강을 건너고 있다.

대동강 물을 길어 나르던 물장수

아낙들이 대동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보통문 아래의 빨래 풍경

아버님 어머님 보세요.


어느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그에 답하는
시어머니 편지 내용...


아버님 어머님 보세요.


우리는 당신들의 기쁨조가 아닙니다. 나이들면 외로워야 맞죠. 그리고 그 외로움을 견딜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요.

자식 손자 며느리에게서 인생의 위안이나 기쁨이나 안전을 구하지 마시고 외로움은 친구들이랑 달래시거나 취미생활로 달래세요.

죽을 땐 누구나 혼자입니다.

그 나이엔 외로움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고

나이들어서 젊은이 같이 살려하는게 어리석은 겁니다.

마음만은 청춘이고 어쩌고 이런 어리석은 말씀 좀 하지마세요. 나이들어서 마음이 청춘이면 주책바가지인 겁니다.

늙으면 말도 조심하고 정신이 쇠퇴해 판단력도 줄어드니 남의 일에 훈수드는 것도 삼가야하고
세상이 바뀌니 내 가진 지식으로 남보다 특히 젊은 사람보다 많이 알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편견도 버려야합니다.

나이든다는 건 나이라는 권력이 생긴다는게 아니라 자기 삶이 소멸해 간다는 걸 깨닫고,혼자 조용히 물러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몇개월에 한 번을 하든, 1년에 한 번을 하든 아니면 영영 하지 않아도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세요~ 그것 가지고 애들 아빠 그만 괴롭히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설날에 승훈이랑 병훈이 데리고 몰디브로 여행가니까 내려가지 못해요.
그렇게 아시고 10만원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해 놓았으니 찾아 쓰세요.



시어머니의 답장 편지 내용..


고맙다. 며느라...
형편도 어려울텐데 이렇게 큰돈 10만원씩이나 보내주고..
이번 설에 내려오면 선산판거 90억하고 요앞에 도로 난다고 토지 보상 받은 60억 합해서 3남매에게 나누어 줄랬더니..

바쁘면 할수없지뭐 어쩌겠냐? 둘째하고 막내딸에게 반반씩 갈라주고 말란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살겠니? 여행이나 잘다녀와라. 제사는 이에미가 모시마.


큰 며느리 답장
시어미에게 카카오톡으로 답장을 보냈다.
어머님!
아까 보낸 메일은 친정어머니에게 보내는 건데
잘못 발송되었네요.
그리고 송금하려던 돈이 500만 원이었는데
잘못 클릭되어 10만 원만 나갔네요.
어머니 죄송해요!
다시 송금 합니다.
500만 원이라구요.
그리고 여행 포기하고 추석 전에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꼭 기다려 주세요!
아이 러브 유, 우리 어머님!!!

얼마 후, 시에미의 답장.
큰며늘아 500만원 다시 받았다.
그래서 합이 510만 원이구나.
너무 고맙구나,
그리고 아까 나도 서툰 카톡질이라
선산 판돈하고 도로로 편입된 토지보상비 포함
합계한 금액의 단위가
천'자를 억'자로 잘못 올렸구나.
이 시에미의 서툰 카톡이니 이해하거레이~~
그리고 둘째와 막내는 니가 온다하니까
급한 여행을 간다고 지금 막 공항으로 출발했구나.
니가 와서 수고 좀 해라.
우리 착한 며늘아!


반추동물-소 이야기

반추동물이 어디 소뿐이겠는가. 양, 염소, 사슴, 노루, 말, 낙타...

오늘은 소 이야기 좀 하련다. 흔히들 소는 미련한 동물이라고 한다. 미련한 게 아니라 우직하고 동작이 느릴뿐이다.

소걸음은 급할 게 없다. 느릿느릿 걷는다. 요즘은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비육우이지만 예전엔 대부분 일소였다. '이랴~ 자랴~ 워워~' 소부리는 소리다. 소몰라치면 이 세 가지 단어는 필수다. 앞으로 갈 때는 이랴~, 좌우로 방향을 틀 때는 꼬삐를 잡고 자랴~, 서야 할 때는 워워~, 재미있지 않은가.

황소는 특별한 경우 성전의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다. 정결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소나 양이나 염소, 비둘기는 다 정결한 동물로서 제물로 드려졌다. 하나님은 왜 굽이 갈라진 반추동물 그것도 온순한 가축을 제물로 받으셨을까.

거룩이란 죄악된 세상과의 분리를 뜻한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거룩한 삶의 시작이다. 굽이 갈라지듯 세상과 완전히 갈라서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나 이 사회를 일컫는 게 아니다. 하나님 없이 지멋대로 살아가는 체계를 말하는 것이다.

되새김질은 말씀의 묵상을 뜻한다. 딱딱한 말씀도
먹고 계속 반추함으로써 소화가 되어 영적인 살과
피가 되어 힘을 얻고 그리고 소처럼 밭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란 밭을 기경해서 복음의 씨를 열심히 뿌려야겠다. 때가 되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덧붙이자면, 하나님의 창조명령을 거스르지 않고 지금까지 풀을 뜯는 동물로 살아남았기 때문이리라.(창세기 1장 참조)

염소는 이미지가 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길들여진 유순한 가축이다. 산에 방사하면 지금도 야생성이 살아나 스스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작년 초가을에 고향에 갔다가 깊은 산골짜기에 간 일이 있었는데 염소가 있더라고. 주인 없는 야생염소 말이다. 어찌나 날랜지 잡을 엄두가 안 나더라. 음메헤헤~ 우는소리가 참 정겹더군. 염소 울음
들으면서 예닐곱 유년으로 돌아갔었지.

한두 살 많은 동무들은 등교하고 나는 아침을 먹고 염소몰고 뒷산으로 향한다. 아버지가 연전에 염소 두 마리를 사왔는데 그게 새끼를 쳐서 무려(?)13마리나 되었다.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염소먹이는 일은 내 몫이다. 염소먹이는 일이라 해야 별 것 아니다. 아침나절에 염소를 몰고 가서 동네 뒷산 골짜기에 풀어놓고 집에 온다. 낮에는 동무들과 놀고. 해거름 때 다시 산에 가서 몰아서 오면 되는 것이다.

대장염소 꼬삐를 잡고 앞서가면 다른 놈들은 졸졸 잘 따라온다. 그러던 어느 초겨울날 해질무렵, 염소 몰러갔다. 대장염소를 찾아 꼬삐를 잡고 산길에 서서 음메헤헤~ 하고 부르면 여기 저기서 풀(시들지 않는 겨울초를 좋아한다)을 뜯던 염소들이 몰려온다.

한 마리 두 마리... 어? 열두 마리네? 그러고 보니 지난 가을에 태어난 새끼가 안 보인다. 대장염소를 작은 나무가지에 묶어놓고 골짜기로 내려가서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여기 저기 헤매다가 다시 산길로 와서 어린 염소새끼를 불러본다. 음메헤헤~

날이 어둑해진다. 애가 탄다. 그래도 계속 불러본다. 음메헤헤~

동짓달 짧은 날이라 이내 온 사방이 캄캄해졌다. 무서운 마음도 살짝 든다. 그러나 그 어린 염소새끼 걱정에 무서움도 잊었다. 그러다가 울음이 터졌다. 염소새끼가 산짐승한테 잡혀먹을까봐 걱정이 돼서다.

저 아래서 햇불이 보인다. 웅성거림이 가까이 들린다. '아무개야~ 아무개야~'

'어무이~' 하고 답을 한다. 동네 어른들 두어 분도 함께 왔다. '아니 여기서 여태 뭐하고 있노?' 울먹이며 염소새끼 얘기를 하니까 걱정말고 내려가잔다. 염소새끼 못 찾으면 안 내려가겠다고 버텼다.

내일 아침에 찾으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내려가자고 달랜다. 집에 와서 늦게 밥먹고 자야 하는데 잠은 쏟아지지만 걱정이 돼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다가 꿈결로 빠져들었다. 다행히 출타하고 늦게 집에 오신 아버지가 듣고 이른 아침 산에 가서 염소새끼를 찾아왔다.

바위틈에 웅크리고 있더란다. 어찌나 안심이 되고 반갑던지... 꼭 안아준 기억이 새롭다.

하나님은 그날, 염소새끼 찾으려고 산길에서 애타하며 울던 그 어린 아이를 보셨습니다. 세월이 지나 '잃은 양 찾으시는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시고 목회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천국가는 그날까지 이 사명 잘 감당케 하소서!'

*소 이야기 하다가 엉뚱한데로 빠졌네요. 하기사 '염소'도 '..소'니까요. 다음 번에는 못다한 소 이야기 하겠습니다.

*고향가는 흔들리는 버스 안입니다. 벌초하고 그 골짜기에 가볼 생각입니다. 제피 좀 따려고요.

독자 여러분, 즐거운 추석 명절되십시오~

 

 

글: 구 자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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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목사 사진.jpg

(김한길 목사)




양국주 선교사의 “순교가 말처럼 쉽더냐?"를 읽고서

       

요즘 한국 교계는 참으로 어수선하다. 목사들의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가 터지더니만 동성애 문제가 불어졌고, 거기에 더하여 이단들을 사면해주겠다는 교단까지 나섰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어디에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할 지를 모를 지경이다. 물론 주(Lord)께 희망을 두고 살아야 하겠지만 참으로 답답하고 어지럽다.

이러한 때에 열방을 섬기는 선교사 양국주 대표께서 발표한 글이 내 시선을 사로 잡았다. 왜냐하면 예장통합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단사면 대상자(11) 가운데는 인터콥(최바울 대표)도 끼어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인터콥과의 인연이 깊은 것 같다. 6년 전 인터콥이 어떤 단체인가를 살펴 볼때 최바울 형제는 인터콥에서 용퇴하라(2009.03.17.)는 양국주 선교사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 글을 통해 인터콥의 정체성 가운데는 이단성 외에도 교회와의 문제와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몇일 전 양 선교사가 발표한 또 다른 글을 통해 인터콥에 대한 새로운 사실 몇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주님 보다도 아내를 더 사랑하는 목사 이야기

 

양 선교사의 글 서두에 S 목사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는 인터콥 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S 목사가 왜 인터콥에 개입했는가를 알수가 없었다. 목사이자 신학대학 학장인 그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인터콥 후원회장과 인터콥 지도위원장이 되었나? 인터콥의 신학사상이 베레아 김기동의 사상이란 것을 알고있다는데 왜 그럴까? 하나의 미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양 선교사의 글을 보면서 그 의문이 풀렸다. 아내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내가 인터콥에 빠졌기에 할 수 없이 인터콥을 하게 되었고, 인터콥 책임자까지 되었다 니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이러면 되는 것일까? 더우기 인터콥은 베레아 이단사상인 데 말이다.

 

(Lord)께선 베레아 이단사상을 싫어하신다. 그러하기에 한국 7개 교단과 1개 기관은 인터콥에 대해 이단규정을 내렸다. 그렇다면 S목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내를 사랑하기에 주님이 싫어하시는 인터콥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님의 말씀이 생각 난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어떻게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마가복음 10장과 요한복음 21장 그리고 창세기 22장은 보여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어떤 사본에는, '아버지나' 아래에 '아내나'가 있음)(10:29)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21: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22:1-3, 12-17)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랑하는 아내가 인터콥에 빠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아내보다는 주님의 편에 설 것이다. 아내를 인터콥에서 구출해 낼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이 이단에 빠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식과 결별하는 한이 있을 지라도 주님의 편에 설 것이다, 이삭을 버리면서라도 복음의 편에 설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계의 문제가 무엇인가? 지도자(Leader) 문제이다. 지도자가 성경 말씀대로만 산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이단사설이 아닌 주님의 편, 복음진리의 편에 과감히 서는 지도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도해 본다.

 

중동과 중앙아시아의 거리를 배회하는 인터콥 선교방식

 

두번째로 언급된 것은 인터콥의 선교방식이었다. S목사의 아내가 중동지역에 단기선교를 가서 길거리 전도를 하고 있을때 현지 경찰들이 다가와 무엇들을 하고 있느냐?고 묻었다. 이때 너희 나라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칭찬을 해주기 위함이다이라는 거짓말을 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는 그런 이야기다.

 

필자는 인터콥의 선교방식을 모른다. 그러나 Youtube를 보니 초기엔 많은 숫자가 중동거리를 걸어다님을 보았고 그러다가 말썽이 일고 문제가 되자 소수단위로 바뀐 것을 보았다. 즉 군대의 일(1)개 소대 단위처럼 작은 숫자 몇 명이 거리를 걸어가며 배회하는 것이다. 그 것이 인터콥의 선교라는 것이다. 이번에 양 선교사의 글을 보니 확실히 인터콥의 선교방식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이런 인터콥의 선교방식에 의문을 품는다. 왜냐하면 전도/선교는 그런 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도/선교란 복음의 열정을 가진 한 사람이 주께 헌신되어 해외에 나가 거주하면서 복음을 모르는 한 사람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영접한 후에, 그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까지 꾸준히 키우며 섬기며 양성하는 것이 제자양성이다. 이것이 전도이고 선교이지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 사람을 전도하여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잘 안다. 그런데 낯설은 이역만리 중동 땅, 중아아시아를 걸어다니며 선교한단 것이 말이 되는가? 인터콥은 이런 것을 선교라고 하는 것 같다. 선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중동구경 관찰팀이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것이 훨씬 더 정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순교의 기회를 상실한 인터콥 선교팀

 

인터콥의 슬로건 가운데 하나는 순교이다. 특히 중동이나 중앙아시아로 땅밟기 위해 나가는 팀은 순교를 외친다. 옆에서 구경하는 청년이나 사람들은 순교를 외치는 저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 양 선교사의 글을 보니 그들은 그렇게도 자랑하던 순교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길거리를 가다가 주위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뭔가를 전한 것 같다. 그랬더니 현지 경찰이 다가 와 뭘 하고 있는거냐?고 물었다. 복된 소식 복음을 전했다고 답변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런 정직한 답변이 아닌 둘러쳐 거짓말을 한 것이다. 너희 나라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한 칭찬을 해주기 위함이다는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그리하여 목숨은 살렸는지 모르겠으나 순교의 기회를 상실하고 만 것이다. 저들이 그토록 원했던 순교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양국주 선교사는 순교가 말처럼 쉽더냐?"라고 지적한 것이었다.

 

크리스천은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거짓말은 십계명에 위배된다. 일전에 얼핏 들은 말인 데, 중동이나 중앙아시아로 나가는 땅밟기 선교팀에겐 위기 상황 시에 대처할 답변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행여라도 거짓말이 들어 있는 요령을 가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요령이 아닌 모든 것을 정직하게 말하고 답변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심을 가르친다면 좋겠다.

 

샘물교회 인질 사건에 대한 언급

 

양 선교사는 과거에 있었던 샘물교회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2007년 아프간에서 샘물교회 사건이 터졌지만 한국교회가 선교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범하고 일하는지 아십니까? 겉으로 드러난 샘물교회 인질사건에는 마자리에 샤리프에서 일하는 인터콥 사역지를 방문하는 일과 인터콥과 연관된 아프간 사역자들의 인도로 빚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마자리 샤리프에서 일하는 인터콥 사역지를 방문하는 일과 인터콥과 연관된 아프간 사역자들의 인도로 빚어진 일이라고 함으로서 샘물교회 사건의 배후에는 인터콥이 깊이 관여되었단 것을 밝히고 있다.

 

샘물교회 인질사건이 발생했을 대에 초미의 관심은 인터콥의 개입여부였다. 그때 인터콥측은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완강히 버텼다. 그러나 (1) 손석희 아나운서와 인터콥 최바울 대표와의 대화에서 처음엔 인터콥 관여가 없었다고 하였으나 계속 추궁된 손석희 아나운서의 질문 앞에 개입되었음이 드러났다. (2) 샘물교회팀의 한 자매가 샘물교회의 교인이요 동시에 인터콥 멤버였음이 드러나 인터콥의 개입은 확실해졌고, (3) 교계중진들 조차도 인터콥 개입이 있었음을 인정하고서 성명서를 발표하였다.(9/2007). (4) 이번에 밝힌 양 선교사의 글로 인해 인터콥의 개입은 확실해진 것 같다.(9/2016)   "사건에는 마자리에 샤리프에서 일하는 인터콥 사역지를 방문하는 일과 인터콥과 연관된 아프간 사역자들의 인도로 빚어진 일.

 

필자가 볼 때 인터콥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거짓말이다. 거짓말 습성을 좀 버렸으면 좋겠다. 거짓말의 반대는 정직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정직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오직 거룩하고 깨끗하게 생활하는 사람만이 신을 기쁘게 할 수 있다. 남들의 눈에 띄게 겉으로만 신을 충실하게 섬기는 사람은 옳지 못하고 자신을 치욕스럽게 만드는 것이며 나아가 큰 거짓을 행하는 것이고 신에게 그릇 봉사하는 것이다.     

                                    

9 10 2016

 

In Christ

 

김한길 목사 (은퇴)

마 남침례 한인 총회


    한 번쯤의 대판 싸움과
    열 번 이상의 자잘한 다툼들
    서로 사이에
    자존심은 필요없다는 생각

    가장 추한 모습으로 만나도
    가장 예쁜 모습으로 만나도
    변함없는 재미
    공유하고 있는 추억거리들

    '상대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자신감과 그 후
    그것에 따라오는 좌절감

    특별한 일이 있든 없든
    연락하는 습관

    돈 없이도 만날 수 있는 여유
    서로의 단점을 얘기해도
    섭섭해하지 않는 마음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하다는 건
    묻지않아도 알아야 할 사실
    무조건적인 이해와 믿음
    그리고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
                      - 담아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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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 채.jpg


                     



                    통합교단 소속 목사님과 성도님들께! 

                    (교회 성도인 칸타빌레님이 예장통합에 告하는 글)


                    백주 대낮에 두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채영남이라는 총회장과 사면위, 이대위가 이단으로 규정된 몇몇 단체를 풀어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을 호구로 알거나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습니까?

                    또한 복음을 알고 이단의 폐해를 안다면 어떻게 교활하게 이단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까? 이번일을 심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통합을 우습게 여기지 않는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게으르게 대처하고 복음에 충실하지 않은 바로 우리들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함부로 이단을 해제하는것 아닙니까?

                    바보로 알고 장님으로 여기니까 이런 행동을 하는것 아닙니까?


                    우리들이 무엇때문에 크리스찬입니까, 우리의 정체성이 분명한 크리스찬이라면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사안입니다.


                    지난번에는 한기총이 그러더니 이제는 통합측에 이런 자들이 들어와서 분열을 일으키는군요. 그리고는 그 책임을 적반하장으로 이단을 거절하는 건전한 성도들에게 화목을 깨는 악한자라고 몰아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신앙을 관두세요. 그런게 신앙이면 그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헛 죽으셨습니다.

                    이단들의 말을 듣고 이단해제하는 이런 사람들이 사면위라니 또 이런 사람들이 통합의 핵심층에 있다니! 그들의 말만 듣고 해제 할거면 연구는 왜 하냐고 묻고 싶습니다. 회개도 없이 수정도 없이 확인도 없이 이단해제를 한다는 것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이렇게 신중하지 못한 사람들이 신중을 논하고 윗자리에 있는데 소경의 인도를 받겠습니까?

                    12일 담화문은 뻔합니다. 다락방이나 박윤식을 영입했던 사람들의 논리를 답습할것입니다. 사과? 사과를 들먹이려면 해제를 취소해야하는데 그러지 않는것은 역풍을 최소화하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이단문제가 아무렇게나 되어지는 문젭니까? 함부로 규정할 수 없는것이고 이단적요소가 해소 되었을 때 풀어야하는 일이지 화목이니 용서니 듣기좋은 말이나 행동으로 해제할 일이 아니라는것은 식견 있는 분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마음으로 그린 90년 전 한국과 한국인

                     

                    엘리자베스 키스

                    1887-1956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도서관에 들렀다 우연히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란 책을 발견하고 놀라 마지않았던 라라와복래 또한 벅찬 감동으로 이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그림들은 인터넷 아트 갤러리인 hanga gallery(http://www.hanga.com)에서 스크랩했으며, 그림 설명은 주로 위 책에 실린 엘리자베스 키스의 육성을 그대로 옮겨 전합니다(큰따옴표로 처리). 무단 전재하여 저작권자에게는 죄송하지만, 이 책이 더욱 많은 독자들을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 아닌가 합니다. 책 소개는 글 말미에.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ㆍ을밀대ㆍ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다음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 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엘리자베스 키스, 로버트슨 스콧 지음 l 송영달 옮김 l 책과함께 l 2006-02-06

                     

                    무릇 책이란 돌려 읽고 놓아 주어야 할 때는 놓아 주어야 한다는 게 평소 라라와복래의 지론입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 1920~1940'> 같은 책입니다. 누군가 이 책을 빌려달라고 하면 되돌아올 때까지 노심초사하게 될까봐 차라리 한 권 따로 사서 선물할지언정 선뜻 빌려주지 않을 것 같네요~~

                     

                    엘리자베스 키스와 로버트슨 스콧 자매의 <Old Korea>를 완역한 이 책은 키스의 그림과 여동생 스콧의 기행문으로 구성됐습니다. 이 책에 실린 키스의 그림은 비록 일본의 우키요에(浮世畵) 분위기가 나지만, 한국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과 풍광을 대단히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해내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마치 김홍도와 신윤복의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고 할까요? 이처럼 이 책은 화집으로서만이 아니라 당시 한국인들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그린 생활사 복원의 역할도 맡고 있으며, 이 책이 독자들을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키스의 여동생 스콧의 기행문은 1919년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보고 들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스콧 역시 단순히 사람과 풍속, 풍경 등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일제 치하의 조선 현실을 상세하게 보고하는 한편 일제의 야만적 지배에 대한 분노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잠시 글을 소개합니다.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

                    배유안 지음 l 책과함께어린이 l 2008-12-05

                     

                    “한국 여자들은 뼈대가 작으며 얼굴 표정은 부드럽다. 인내와 복종이 제2의 천성이 된 듯하다. 하지만 온순하기만 한 한국 여자들에게도 의외로 완고한 구석이 있다. 가령 이들에게 새로운 문물을 강요한다든지 오랫동안 쌓아온 그들의 생각이나 생활신조를 바꾸려 든다면, 차라리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들 허물어 옮기는 것이 더 쉬울지 모른다. 그러므로 한국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선의 방법은 오직 한국 풍습을 존경하며 끈기와 친절로 대하는 것뿐이다.”

                     

                    "학교에서 루스라고 불리는 이 여학생은 반질거리는 까만 머리를 등 뒤로 땋아 내렸다. 기품이 고고한 얼굴이었고, 치아는 하얗고 뺨을 불그스레했으며 새까만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슬픈 표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환희에 넘친 표정이었다. 여학생은 왜 자기가 학교의 명령을 어기고 독립운동에 참가했는지 또 어떻게 체포되었는지 말했다. (…) 동정을 구하는 표정이라기보다는 승리한 자의 모습이었다."

                     

                     

                    "한국인의 자질 중에 제일 뛰어난 것은 의젓한 몸가짐이다. 나는 어느 화창한 봄날 일본 경찰이 남자 죄수들을 끌고 가는 행렬을 보았는데, 죄수들은 흑갈색의 옷에다 조개 모양의 삐죽한 짚으로 된 모자(용수를 가리킵니다)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줄줄이 엮여 끌려가고 있었다. (…) 죄수들은 오히려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그들을 호송하는 일본 사람은 초라해 보였다."

                     

                    이처럼 자매의 글과 그림은 한결같이 조선에 대한 애정과 존경의 마음을 표시하고 있으며,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인간의 따듯함과 의젓함을 저버리지 않았던 우리 선조들을 경탄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을 만나야 할 이유는 또 있습니다. 옮긴이 송영달 선생의 노고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전적으로 송영달 선생 혼자만의 노고로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1962년 유학길에 오르며 한국을 떠난 후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정치학ㆍ행정학 교수로 30여 년간 근무한 후 은퇴했는데, 우연히 엘리자베스 키스를 발견하고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한 그의 고군분투가 눈물겹습니다.

                     

                    참, 같은 출판사에서 학생용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 그림에서 우리 문화 찾기>도 출간하였는데, 동화작가 배유안이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주제별로 나누어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내놓은 책으로 이 또한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입니다.

                     

                     

                    안익태/한국 환상곡 (Symphonic Fantagia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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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槿蕙 大統領 訪中 記錄寫眞

























































































































                    ♬ 흐르는 곡 : 희망의 나라로 / 경음악 ♬
                    사진 잘보셨습니까. 건강하세요. = 윤 성 =

                     

                    특별기도 바랍니다
                    오늘부터 구원설교 하면
                    300만원 법안추진♧
                    오늘 tv뉴스에는 동성애 합법화 추진과 더불어 예수님만 구원이 있고,
                    다른 종교를 믿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설교하면 벌금 300만원을 물게되는 법안을 박원순이 추진중이라고 나왔어요.
                    나라를 위한 기도가 절실히 필요한 때에요.

                    [드디어 미국에서 본색 드러낸 박원순 시장]
                    - 美 지역신문 일간지와 인터뷰 -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시아 최초로
                    한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길 원한다"   “여호와의 증인 대체복무 허용해야"

                    박 시장은 “개인적으로,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에선 기독교의 힘이 매우 강하다. 정치인들에게 쉽지 않은 문제다. 동성애를 포함시키도록 보편적 인권 개념의 범주를 넓히는 일은 활동가(activist)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들이 대중을 설득하고 나면 정치인들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지금 그런 과정에 있다."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10월12일)

                    [전문보기] http://iii.im/aOnG
                    박시장은 "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만들겠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대다수 시민들의 반대의견을 묵살한 채 동성애 옹호
                    조항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동성애 합법화를 막지 못하면 우리 모두와 한국교회는 엄청난 값을 치루게 될 것입니다

                    뼈저린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항의 전화와 항의 글이 절실히 요청됩니다

                    부디 동참해 주십시오!
                    1. 항의 전화하기
                    1) 02-2133-6046 (시장직속)
                    2) 02-2133-6399 변상우 주무관
                    3) 02-2133-6386~7 인권
                    4) 02-2133-6322~4 사회혁신

                    ■ 동성애 확산→에이즈 급증→치료비100%국민혈세→ 국민 세금 폭탄!

                     

                    지인에게서 받은 글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 5:24)


                    에녹은 엘리야와 함께 성경의 인물들 중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워간 사람입니다. 엘리야는 불병거에 실려 혼자 올라갔지만, 에녹은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그를 데려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러운 삶이란 말인가!


                    에녹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므두셀라를 낳은 시점부터 갑자기 돌변하여 하나님을 한결같이 300년 동안이나 동행하며 살다가 들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과연 므두셀라를 낳을 때 도대체 무슨 사건이 있었길래, 에녹의 삶이 이토록 180도로 바뀌어졌을까요?


                    유다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유 1:14-15)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은 수만의 천군천사가 내려와 죄악이 관영하고 경건치 않은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거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그의 아들 므두셀라의 이름은 '창을 던지는 자'라는 뜻입니다.


                    당시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할 때 성곽 밖으로 창을 던지는 행위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은 '다 끝났다'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에녹에게 아들 므두셀라가 죽는 날에 온 세상에 큰 심판이 있을 것이니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계시를 하셨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위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노아가 600세 되던 해는, 정확히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가 죽는 해였습니다. 므두셀라가 죽는 바로 그 날에 홍수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에녹은 자기 아들 므두셀라를 볼 때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점점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인식하며 하루하루 주와 함께 동행하며 죄를 멀리하는 삶을 힘써 살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그 삶을 살아가다가 점차로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 경외하는 삶의 기쁨을 맛보면서 주님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즐거워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 11:5)


                    하늘로 옮기우기 전에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고 더 이상 그는 홍수심판 속으로 들어갈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이 임하기 이전에 하늘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삶을 통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조명해 주고 계십니다.


                    - 에녹처럼 끝을 바라보며 반드시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
                    - 에녹처럼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순종)


                    이런 자들은 더 이상 앞으로 임하게 될 대환란이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당연히 에녹처럼 공중으로 끌어올려 주와 함께 영원토록 거하는 놀라운 특권을 누리게 될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적용>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며 주님의 음성듣기에 귀기울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품기 위한 기도를 세밀하게 드려야겠습니다. 부지런히 전도하고 양육하며 참복음의 메세지를 각 사람의 마음심비에 새기는 일에 올인해야겠습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에녹의 삶을 통해 재림의 소망을 더욱 견고히 하며 마지막 때를 소망가운데 살아가고자 하는 동기력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끝을 바라보며 죄를 멀리하고 한결같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던 에녹처럼 저 또한 그렇게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캄캄한 어둠이 지나고 이제 새벽동이 터오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슭할지라도 아침에는 밝은 햇살이 비출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 주와 함께 거하게 될 찬란한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끝을 보며 달려갑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글/곰팅이

                     


                    지카 바이러스를 옮기는 모기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모기의 한 종족을 완전히 제거하는 일이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gene drives”라고 알려진 유전자 조작 기술을 통해 한 종족을 완전히 멸절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외딴 섬에서 새들을 해치는 쥐를 대상으로 유전자 조작 기술을 적용해 수컷새끼만 낳도록 만들면 얼마 지나지 않으면 이 종족 자체를 멸절시킬 수 있다.

                     

                    CRISPR-CAS9이라고 알려진 이 유전자 조작 기술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 기술은 모든 종의 운명을 결정함으로 진화의 과정을 중단시키고 환경시스템 자체를 극적으로 조작할 수 있게 해준다.

                     

                    하와이에서는 지금 the International Union for the Conservation of Nature에서 진행하는 컨퍼런스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는 옥수수에다 다양한 질병에 견딜 수 있도록 유전자를 조작하는 고전적인 유전자 조작 기술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법률가 Claire Hope Cummings씨는 그의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이는 GMO로 알려진 일상적인 유전자 조작 기술이 아닙니다. 이 기술은 ‘돌연변이 반응’을 통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삶의 변화를 가져올 급진적이고 새로운 기술입니다."


                    기사원문 >> What?! Scientists now can engineer extinction



                    * 인간의 편리함(?)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연구되고 상업화되어 온 유전자 조작 기술이 이제는 특정한 한 종의 멸절까지 가져올 수 있는 재앙적 단계까지 발전하고 있다.


                    기술은 이미 완성되었고, 이 기술의 적용에 대한 도덕적 논쟁만 남았다고 하니 조만간 실제로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인류를 지킨다’는 그럴 듯한 명분을 앞세워 ‘종의 멸절’을 위한 사악한 시도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존재하는 유전자는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설계도이다. 이 창조의 설계도에 인위적인 조작을 가하여 변종 괴물을 양산해내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요 도전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아 네피림을 낳았던(창 6:2,4) 노아의 시대가 홍수의 심판을 받았던 것처럼, 유전자 조작을 통해 현대판 네피림(변종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세대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종의 변질과 멸절’을 막기 위해서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노아의 때’와 같은 이 세대를 심판하실 것이다. 



                    출처: 이 세대가 가기 전에 /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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