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는 하나님 (존 오웬)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측면에서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므로 그의 백성을 향한 사랑에도 변함이 없다.



1. 그의 속성

2. 그의 목적

3. 그의 언약

4. 그의 약속

5. 그의 맹세



성도의 견인은 이 다섯 가지에 각각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앞으로 몇 장에 걸쳐 이 다섯 가지 면들을 다룰 것이다. 먼저 본 장에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속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말라기 3:6에서 하나님은 "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고 계속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야곱의 자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분명히 야곱의 모든 육체적 자손들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9:6)라고 말했다. 자신들의 죄악으로 인해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면서도 아브라함의 자녀임을 자랑하며 그 이유만으로 구원받을 줄로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다(말3:5). 그리스도 예수는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로 돌아오게"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사49:6). 야곱의 진정한 아들들은 "혈통으로나 육적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거듭난 자들이다(요1:13).



하나님은 친히 부르시고 은사를 주신 것에 대해서 마음을 바꾸는 일이 절대로 없으시다. 로마서 11:29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바울은 단언하고 있다.



야곱의 진정한 자손은 야곱의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새로 선택받은 자들이다. 그들의 열조들이 파한 옛 언약 대신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새 언약을 세우셨다(렘31:31-34, 겔36:24-28, 히8:8-12). 하나님의 새 언약을 즐거워하며 그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로부터 자유롭다.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셨을 때 그들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는가?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무지와 어둠 그리고 죽음 가운데 있었다. 그들 속에는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실 만한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칭의와 성화를 얻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주시는 가장 큰 위로 중 하나는 그들은 이제 영원토록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는다는 약속이다. 이사야 40:27-31에서 야곱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타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는가?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고 있느냐고 하나님은 반문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놀라운 능력을 가지셨으며, 변역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다는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신다. 이것이 바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것들이다. 그들은 새 힘을 얻어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창세 전에 택하였다. 너희는 벌거벗었고, 쓸모 없으며, 바싹 말라 시들어 죽게 되었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내 신을 너에게 주어 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으리라. 너는 내 것이고 나는 영원토록 너의 주가 되며 왕이 되고 구속자가 됨을 너로 알게 할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를 향한 사랑이 영원함을 확신시켜 주실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유대인과 같은 한 민족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개인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은총에 대해 명확하게 구별해야 한다. 하나님은 다른 민족들과 구분해서 유대 민족에게 외적인 복을 주시고 심판에 있어서 특별히 다루셨다. 그러나 그들이 한 민족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그들의 운명이 좌우되었다. 따라서 가끔씩 하나님은 세우셨던 것들을 허물기도 하셨다. 또 어떤 때는 전에 허물었던 것들을 다시 세우기도 하셨다. 하지만 이 민족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외적인 변화까지도 결국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의 속성은 변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값없이 구속해 주신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구속받은 자들은 결코 회개치 않는 배교자가 될 수 없다.

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대선 후보들 "동성애 동성혼 반대"

 

제19대 대선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 답변 

 

지난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에 이어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서도 각 당 후보들이 한국 기독교계가 제안 기독교 공공정책에 대하 답변을 당선이 되면 공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기독교 공공정책을 제안하여 답변을 받아낸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총재 김삼환 목사, 대표회장 소강석 목사)와 8000만민족복음화대성회(대표대회장 이영훈 목사)는 20일 오전 7시 서울 여의도 CCMM빌딩 12층 루나미엘레 컨벤션에서 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 교계 지도자 초청 조찬기도회 및 제19대 대통령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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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 한국교계국회5단체협의회(상임대표 김영진 장로), 세계성시화운동본부(총재 김인중 목사, 공동총재 전용태 장로)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모임은 먼저 김원철 목사(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 준비위원장)의 사회로 이태희 목사(8천만민족복음화대성회 명예총재)의 환영사, 예장통합 부총회장 최기학 목사의 대표기도, 김영남 목사(예장합동 기독신문사 이사장)의 성경봉독에 이어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가 “진리와 자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젆했다.

 

이 목사는 “요즘 거짓뉴스를 만들어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나라는 거짓뉴스를 만들어 배포하면 70억원의 벌금을 물게 하고 있다.”며 “거짓을 통해 표를 얻고자 하는 행태를 뿌리 뽑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진실과 진리를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나라가 가난과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인권의 자유,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자유를 지켜내는 대선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이동석 목사(예성 총회장)가 ‘한국교회 연합과 회복을 위하여’, 김상길 목사(8000만민족복음화대성회 동원준비위원장)가 ‘남북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함덕기 목사(8000만민족복음화대성회 행사준비위원장)가 ‘8천만민족복음화를 위하여’, 장영백 장로(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정책위원장)가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위하여’ 각각 기도했다.

 

축사는 김선규 목사(예장합동 총회장), 전명구 목사(감리교 감독회장), 이종승 목사(예장대신 총회장)가 전했다.

 

김선규 목사는 “한국 교회가 안 된다는 것은 하지 말고, 하라고 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한국교회가 제안한 기독교 공공정책을 이행해 줄 것을 당부했다.

 

전명구 목사는 “남북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때 이 나라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기를 기도하자.”고 밝혔다.

 

이종승 목사는 “이 나라를 살리고, 한국 교회를 살리고, 우리 후손이 잘 살게 만들 대통령이 당선되기를 기도하고 투표하자.”고 말했다.

 

이어 김승규 장로(전 국정원장)는 대선 후보들이 동성애문제를 옹호 조장하는 법안을 만들지 말 것과 이슬람의 침투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헌법에 명시하려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영규 목사(8000만민족복음화대성회 사무총장)의 광고와 조용기 목사(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대표고문)의 축도에 이어 김성영 목사(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 집행원장)의 사회로 제19대 대통령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가 진행됐다.

 

소강석 목사(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대표회장)는 공공정책 메시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교회도 중요하지만 공교회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은 공교회 의식을 회복하고 교계 공익을 추구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며 기독교 공공정책을 세워야 할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정부는 교회의 고유영역을 침범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오히려 교회가 역할을 원활하게 펼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한다.”면서“교회 역시 통치자와 정부가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지 않는 한, 그들을 반대하지 말고 협력하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아마르티아 센은 세계 역사를 보면 한 국가가 부흥할 때는 그 배후에 기독교의 영적 부흥이 선행이 되었다고 말한다.”면서 “또한 중국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인 엔써 교수도 20세기 초 교회가 부흥되고 기독교 복음 전파가 활발하게 전파됐던 곳이 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했다.”면서 교회의 부흥이 곧 국가의 부흥과 직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 목사는 “국가는 교회의 생태계를 잘 지켜주어야 한다.”며 “특별히 동성애가 과연 정상적인 행위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인권인지, 더 나아가 국민 건강과 사회와 교회에 위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대통령 후보와 정당에서는 기독교 공공정책협의회가 제안한 10가지 내용을 잘 살펴보고 반드시 수용해 줄 것을 강조하고, “한국 기독교가 제안한 기독교공공정책을 가장 많이 수용한 정당과 후보가 대선에 승리할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철영 목사(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사무총장)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경과보고를 했다. 김 목사는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2012년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한국기독교 최초로 기독교 10대 공공정책을 제안해 답변을 받아냈다. 그 가운데 주일시험을 토요일로 변경을 요구한 것 등이 수용이 되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또 “차별금지법안 철회운동, 동성애 옹호조장 교과서 시정운동, 역사교과서 기독교 서술 왜곡 축소문제 대처 등 활동을 해왔으며, 이번에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후보 등에게 10대 정책을 제안하여 심 후보만을 제외하고는 모두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제안한 10대 정책을 소개한 전용태 장로는 “교회가 침묵하면 국가가 망한다.”고 강조하고 “한국 기독교계가 정책을 제안한 목적은 흑색비방을 벗어나서 정책으로 승부하도록 돕는 것과 대선 후보들에게 한국 교계의 입장을 제안하여 정책으로 반영하여 건강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교회가 그동안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동성애동성혼 합법화 반대와 자살예방, 4대중독문제 해결, 기독교학교의 종교교육권 보장, 근대 기독교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을 위한 균형잡히 지원, 종교인 과세 시행 유보, 종교평화법 반대 등 한국 교회의 입장을 정리해서 대선 후보들에게 제안해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제안한 10대 정책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측의 김진표 의원,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측의 안상수 의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측의 문병호 최고위원,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측은 이혜훈 의원이 참석하여 질의에 대한 답변을 했다.

 

김진표 의원은 “더불어민주당은 생명존중운동을 비롯한 출산장려, 자살예방, 낙태방지 운동 등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동성애자들에 대한 불합리한 사회적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원칙은 지켜나가되 동성애 동성혼의 법제화에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면서 동성애 동성혼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종교평화법 제정에 반대하는 기독교계의 의견에 경청하여 앞으로 입법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에 억류중인 임현수 목사(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를 비롯한 선교사의 석방을 위해 유엔과 우방국가와의 협력 및 남북대화 등을 통해 최우선적으로 해결되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측의 안상수 공동선대위원장은 “종교 갈등을 겪는 학생의 전학 허용을 찬성한다.”고 밝히면서도 “다만 종립학교 학생 선발에 있어서 선지원 후추첨에 대해서는 진학 형평성에 문제가 있는지를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했다.

 

또 동성애, 동성혼 문제는 적극 반대 입장을 밝히고, 성적지향 등 차별금지사유가 있는 차별금지법 제정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안 위워장은 “종교인 과세의 시행 유보는 당론이고,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가 제시한 정책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측의 문병호 최고위원은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를 절대 반대한다. 헌법, 법률, 조례에 동성애 동성혼이 허용되지 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동성애 동성혼 합법화는 성평등이 아니라 역차별이라면서 성평등이 아닌 양성평등을 지향하겠다.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한치의 오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교과서 동성애 동성혼 미화 부분 삭제와 인성교육 강화 그리고 공교육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종립학교의 종교교육권 보장 요구에 대해서는 “다문화, 다종교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이 시대에 학교 내 종교교육은 미래의 올바른 심성과 가치관을 심어주고 종교관을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하다."“국민의당과 안 후보는 장기적인 교육개혁의 방향으로 교육부의 해체와 학제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학생의 교육권과 종교의 자유의 균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종립학교의 선지원 후추첨제를 포함하여 지원순위 개선방안도 검토 중이며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학을 요청할 권리를 인정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위원은 역사교과서 기독교 서술 축소. 왜곡 시정과 교과서 동성애, 동성혼의 미화서술을 삭제해야 한다는 한국 기독교계의 입장을 수용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지역 종교시설을 이용한 종교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종교문화 유산 보존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공직자종교차별신고센터 폐지 요구에 대해서는 문제점이 있다면 보완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유승민 후보측의 이혜훈 의원은 “근대 기독교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 및 균형지원” 제안에 대해 “한국 내 기독교 문화유산 유적지를 보호하는 일은 각 종교와 종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한국문화자산의 가치 보존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면서 “따라서 양화진 외국인 묘지,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애양원 등과 같은 기독교 문화유산 유적지를 연결시켜 ‘한국 기독교 성지순례 코스’로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한국 기독교 성지순례 코스’는 1,370여만 명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 정신과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동시에 국민들이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문화관광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종교인 과세문제에 대해서는 “2018년 시행 예정인 종교인 과세의 공정한 집행을 위해서는 종교기관들의 각종 회계처리 시스템, 세무교육 등의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각종 인프라를 먼저 구축하고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유보 입장을 밝혔다.

 

‘반사회적 사이비집단 규제법 제정’ 요구에 대해서는 “반사회적 사이비집단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기존의 법체계로 처리할 수 있는 여부를 판단하여 새로운 법 제정을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의원은 또 “다문화, 탈북민, 동성애자 등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되, 혼인은 양성간의 결합임을 분명히 하는 헌법의 정신을 존중하고 수호한다.”고 밝혔다.

 

이어 “헌법 제 3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고 명시함으로써 혼인이 양성간의 결합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떤 법률도 헌법의 정신에 부합되지 않고 위배되어서는 아니 된다.”며 동성혼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음은 소강석 목사의 공공정책 메시지 전문.

 

교회는 개교회로서의 존재 의미도 있지만 개교회가 연합된 공교회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신경을 보면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거룩한 공회는 ‘공교회주의’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영어로 하면 “I believe in catholic Church”라는 말입니다.

 

천주교에서 가톨릭이라는 말을 자기들만의 전유물인 것처럼 독점적으로 쓰는데, 사실 이 가톨릭이라는 말은 요즘 우리 개신교회에서 더 자주 써야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하나의 ‘연합된 교회’요, ‘보편적인 공교회’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로마 교황을 중심으로 한 보편적 공교회를 가톨릭교회라고 하지만, 우리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의 집합체를 공교회요, 보편적이고 연합된 하나의 교회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개교회도 중요하지만 공교회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모든 목회자들은 공교회 의식을 회복하고 교계 공익을 추구하는데 앞장서야 합니다. 여기에 기독교 공공정책을 세워야 할 의미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에 의하면 교회는 국가와 통치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할 뿐만 아니라 통치 행위에 협력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통치자는 교회를 보호하고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아브라함 카이퍼는 칼빈의 교회와 국가와의 관계 이론을 더 발전시켜 영역주권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카이퍼의 영역주권사상에 의하면 국가와 교회 간에는 서로 영역들이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신분과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타원입니다.  타원입니다. 그러므로 정부는 교회의 고유영역을 침범하거나 억압하지 말고 오히려 교회가 역할을 원활하게 펼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역시 통치자와 정부가 하나님과 교회를 대적하지 않는 한, 그들을 반대하지 말고 협력하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타원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와 국가가 전혀 상관이 없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상호협력하고 의존하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국가 통치자와 정부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는 국가와 사회에 축복의 전달자가 되고 통로자가 되게 되는 것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아마르티아 센은 세계 역사를 보면 한 국가가 부흥할 때는 그 배후에 기독교의 영적 부흥이 선행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한 중국 베이징대 경제학 교수인 엔써 교수도 20세기 초 교회가 부흥되고 기독교 복음 전파가 활발하게 전파됐던 곳이 경제가 발전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영국과 구라파 뿐 아니라, 미국도 1, 2차 대각성 운동 이후에 세계 최강국 일류국가가 되었지 않습니까? 이렇듯 세계 어느 나라이든지 교회가 들어가는 곳은 경제가 발전하고 국력이 신장되었습니다. 특별히 우리나라도 그랬습니다. 한국교회는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루는 정신적, 영적 동력이 되고 진원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찌기 김구 선생님은 “우리나라에는 경찰서 10개를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를 세우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활천1946, 1참조) 그러므로 국가는 반드시 교회 생활에 자유를 보호하고 교회가 잘 발전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 역시 국가 통치자와 정부에 협력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국가 통치자는 이단들의 가르침을 배제해야 합니다. 표를 얻기 위해서 사교나 이단과 모종의 결탁을 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물론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들도 투표권이 있고 시민으로서의 권리 행사를 할 수 있지만, 국가 통치자는 적어도 이단과 사교의 가르침은 구분하고 배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는 교회의 생태계를 잘 지켜주어야 합니다. 특별히 동성애가 과연 정상적인 행위인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인권인지, 더 나아가 국민 건강과 사회와 교회에 위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를 잘 살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정상이 아닐진대, 그들을 선도하고 치유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왜 다수에게 역차별을 당하게 하고, 또 그러한 것들을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하고 군대에서도 정상적인 행위로 간주하는 법을 만들려고 하느냔 말입니다. 또 아무리 경제적인 협력관계가 필요하다 해도 필요 이상으로 이슬람 종교의 확대를 초래해서 테러의 위험을 양산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가 통치자는 교회를 보호하고 교회 생태계를 지켜 주는 정책을 펴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9대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대통령 후보들에게 기독교공공정책 10가지를 제안하는 바입니다. 모든 대통령 후보와 정당에서는 기독교 공공정책협의회가 제안한 10가지 내용을 잘 살펴보시고 반드시 수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장담컨대 저희가 제안하는 기독교공공정책을 가장 많이 수용한 정당과 후보가 대선에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제안하는 내용이 수용될 때 교회의 공익이 이루어질 것이고, 더 나아가 국민행복으로 연계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부디 하나님과 교회의 뜻에 가장 근접한 후보가 되셔서 당선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 경과보고 전문.

 

1.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이하 ‘기공협’이라함)는 기독교공공정책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구현과 국가발전의 정신적 원동력이 됨을 깊이 인식하고 2012년 2월 6일, 기독교공공정책 첫 모임을 갖다. 이후 매주 금요일마다 학자, 법조인, 목회자, 시민단체 등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책위원모임을 갖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 각 당에 제안할 기독교 공공정책을 준비하다.

 

2. 2012년 3월 26일, 연동교회 다사랑에서 30여 단체 대표자 초청 4.11총선에 제안할 기독교 공공정책 공청회를 갖다.

 

3. 2012년 3월 30일, 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2012 총선 기독교 공공정책 제안 기자회견’을 갖고 새누리당, 민주통합당에 10개 분야 43개 항목의 정책 제안서를 전달하다.

 

4. 2012년 4월 5일 민주통합당, 4월 6일 새누리당으로부터 정책 제안에 대한 긍정적인 회신을 받다.

 

5. 2012년 4월 20일, 국민일보사 우봉홀에서 ‘한국 교회 지도자 초청 기독교 공공정책 설명회’를 갖다. 이영훈 목사의 긴급동의로 조용기 목사와 김삼환 목사를 대표고문과 총재로 추대하다.

 

6. 2012년 6월 29일 국민일보사 우봉홀에서 기독교공공정책의 실천을 위한 ‘제19대 기독국회의원 초청 성공적 의정활동 기원 예배’를 드리다.

 

7. 기공협은 201년 7월∼8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제19대 국회의원 대상으로 우리 사회와 기독교 공공정책에 대한 인식도 조사를 실시, 중요 기독교공공정책 방향이 인식도 조사와 합치함을 확인하다.

 

8. 2012년 9월 21일, 연동교회 다사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제19대 국회의원 인식도 조사 결과를 발표하다.

 

9. 2012년 11월 16일, 4.11총선 시 양 당의 회신공문과 국회의원 인식도 조사를 바탕으로 하여 제18대 대통령 후보들에게 제안할 기독교 공공정책 10대 제안서를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에 전달하고 11월 27일까지 정책 제안에 대한 회신을 요청하다.

 

*한국기독교 공공정책 10대 정책: 1. 근대 기독교문화유산의 체계적 보호 및 활용지원(문화관광부) 2. 종립학교의 종교교육권 보장(교육과학기술부) 3. 정부 종교관련 예산의 편향성 지양(문화관광부) 4. 공직자의 개인적인 종교자유 보장(행정안전부) 5. 동성애, 동성혼의 법제화 절대반대(법무부) 6. 국가와 공공단체의 일요일 시험실시 폐지(행정안전부) 7. 종교단체의 재산권에 대한 별도규정 마련(국세청) 8. 교과서의 기독교관련 및 인간기원에 관한 공정한 서술보장(교육과학기술부) 9. 선교사역에 대한 정책당국의 인식전환과 지원책 강구(외교통상부) 10. 방송매체의 종교관련 언론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

 

10.2012년 11월 19일, 연동교회 다사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선후보들에게 제안한 기독교 공공정책을 발표하다.

 

11. 2012년 11월 28일, 양 당으로부터 10대 공공정책에 관한 대선후보 공약을 회신을 받다.

 

12. 2012년 11월 29일, 국민일보 우봉홀에서 한국 교회 지도자, 여야정당 선대위 관계자를 초청하여 제18대 대선을 위한 기도회 및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를 갖다.

 

13. 2013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방문하여 정책 실무협의를 진행하다.

 

14. 10대 정책 중 국가에서 주일에 시행하는 시험을 평일 변경 요구 중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에시 주관하는 37개 자격시험을 평일로 변경하여 실시(공무원은 이미 토요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는 등 근대 기독교 선교유적 보존 및 기념관 건립 지원 등이 성과를 거두다

 

15. 역사교과서 기독교 서술의 축소, 왜곡 시정을 위하여 교육부장관을 면담하는 대처활동을 하여 성과를 거두다.

 

16. 2013년 4월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안 철회운동을 하여 자진 철회를 하게 하다.

 

17. 2016년 2월부터 매주 토요일 정책위원회 모임을 갖고 정책을 준비하다.

 

18. 2017년 4월 12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 등에게 10대 기독교 공공정책 제안서를 전달하고 회신을 요청하다.

19.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로부터 회신을 받다.

 

20. 4월 20일, 서울 여의도 CCMM 12층 컨벤션홀에서 한국 교회 지도자, 각 당 후보 선대위 책임자를 초청하여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독교 공공정책 발표회’를 갖다.

 

김다은 ⓒ 뉴스파워

가져온 곳: USA 아멘넷

개혁주의의 구원의 서정
orthosim | 조회 34 |추천 0 | 2006.04.06. 14:40

 

 

박형룡 박사는 『교의신학V-구원론』(서울:은성문화사,1972)에서 구원의 서정(ordo salutis 오르도 살루치스) 9단계를 제시했습니다. 그가 텍스트 북으로 크게 의존하였던 루이스 벌코프는 양자를 독립적인 단계로 제시하지 않았고, 마지막 영화단계도 생략하고 있습니다. 박박사는 1950년대에 구원론을 저술한 H. Kuiper아 J. Murray등의 저술을 읽으므로서 벌코프의 구원 서정론을 약간 수정 보완하게되었습니다. 아래에서 요약적으로 제시하는 구원서정론은 누군가 입시준비를 위해서 요약한 것입니다. 박은제 목사님이 제게 보내준 많은 자료중에 속해 있습니다. 후일에 시간을 내어 본격적인 정리를 해 보고자 하나 당분간 임시적으로 아래의 요약으로 대체합니다.


① 소명 : 그리스도에 의하여 이룩된 구원을 신앙으로 수납하도록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역이다(롬 8 :30).

② 중생 : 사람안에 새 생명의 원소를 심고 영혼의 주관적 성향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행위(요 3 :3-5)

③ 회심 : 죄인이 죄에서 더나 하나님께 돌아가는 의식적인 변화(요일 1 :9)

④ 신앙 : 죄와 죄의 결과로부터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영혼의 운동으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심적으로 신뢰함이다(막 1 :15).

⑤ 칭의 :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기초하여 죄인에 관한 모든 율법적 요구가 만족된 것을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재판적 행위이다(롬 8 :30).

⑥ 수양 : 사람을 외계의 세속적 가족으로부터 하나님 자신의 가족 중에 전입시키는 행위(요 1 :12)

⑦ 성화 : 칭의된 죄인을 죄의 오염에서 건지셔서 그의 전성품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닯게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다(롬 8 :14).

⑧ 성도의 견인 : 택함을 받은 자들을 기어코 구원을 받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딤후 4 :18).

⑨ 영화 :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구원의 완성이다(롬 8 :30).

 

 

루  터

로 마 가 톨 릭

펠라기우스

1

준비단계

소 명

충족한 은혜(저항, 차동가능)

회개(죄인자력)

2

조 명

협력은혜(칭의준비) 하나님의 말씀접수. 죄악상태통찰 긍휼희망. 하나님사랑시작 죄의 증오. 계명순종결실 세례받을 욕구

순    종

3

회 심

 

4

중 생

 

5

신  앙

 

6

칭  의

 

7

신비적 연합

주입은혜(칭의의 은혜) 세례와 고해성사를 통해서 온다.

 

8

갱  신

 

9

보  전

 

 

 

 

 

개혁파

알미니안파

칼빈

1

소  명

소명(순웅, 저항)

소명

2

중  생

회  개

신앙

3

회  심

신  앙

중생

4

신  앙

칭의(의의전가)

회심

5

칭  의

중  생

성화

6

수  양

성  화

칭의

7

성  화

견  인

예정

8

성도의 견인

 

부활

9

영  화

 

 

 

 

2. 소명이란 복음을 죄인들을 부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초청이다.

명사의 의미로는 καλειν, κλησι?, κλητο?, εκκλησια가 있다. 소명의 발령자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특히 성부이시다.

실물적 소명과 말씀의 소명으로 구분되며, 외소(external calling),와 내소(internal calling)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외적소명이란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 제시하여 사죄와 영생을 얻기 위하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진실한 권고인데, 이 경우에 죄인은 응답을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는 소명이다. 그러나 이 소명에는 성령의 특별한 역사가 없다.

외적 소명의 요소로는 복음적 사실과 이념의 제시, 신앙과 회개로 그리스도를 받으라는 초청, 그리스도를 믿으면 죄가 용서되며 구원에 이른다는 약속의 제시 등이 있다.

외적 소명의 특징으로는 외적 소명은 일반적이며 보편적이다. 즉, 이것은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는 모두 아무 차별없이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외적 소명은 성실한 소명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이 복음으로 죄인을 부르실 때,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진정으로 바라신다.

내적 소명이란 복음이 제시될 때, 죄인이 믿음으로 응답하는 경우로서, 이 소명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소명이다. 외적 소명에서 전해진 그 말씀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내적 소명을 받은 죄인의 마음 속에서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내적 소명의 특징은 도덕적 설유의 방법으로 역사한다. 즉, 하나님은 권능의 말씀으로 인간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수용하도록 설득하신다. 인간의 의식생활에서 역사한다. 즉, 인간의 의지를 효과적으로 감화시킨다. 항상 한 목적지로 향하게 한다. 즉, 성령께서 피택자를 인도하여 확실하고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게 한다.


3. 중생에 대하여 약술하라.

 

중생의 정의 : 협의 - 죽은 영혼을 일깨워 새생명의 원리를 심어주는 성령의 역사이며, 광의 -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사람의 첫 번 응답. 즉 말씀에 응답하여 새생명의 모습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약1:18, 벧전1:23). 칼빈의 경우에는 회심과 성화의 전과정을 포함하는 인간 갱신의 전과정을 말한다. 중생한 사람이라도 일생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죽고 사는 것을 계속한다.

중생의 본질 : 중생은 영혼의 지배적인 성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며,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고, 인간의 잠재의식 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므로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중생의 논리적 순서 : 말씀전파(외소) - 성령의 역사(새생명의 발생) - 유효적 소명 - 거룩.

중생의 필요성 :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하나님과 평화하고 교제할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영혼의 전 성향을 갱신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중생의 역사가 필요하다.

중생은 하나님 편의 단독 사역이다. 중생의 도구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 하지만 말씀이 있어도 성령의 일깨우는 역사가 없이는 중생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중생은 엄밀한 의미에서 성령의 단독 역사이다.


4. 회심(conversion)에 대하여 약술하라.

 

회심의 성경적 의미 - 국민적 회심(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니느웨 등), 넓은 의미의 피상적 회심 = 일시적 회심(자시 동안은 진정한 회심인 것 처럼 보이나, 허식적 회심에 불과), 좁은 의미의 진정한 회심(중생자가 자기의 의식생활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믿음과 회개를 계속해 나가는 것을 의미) = 반복 회심 등이 있다.

회심의 특징 : 회심의 특징은 구원과정의 한 부분이며, 회심은 재창조의 동작, 각성의식에서 회심하며,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음이며, 단번적인 변화, 돌연적 회심과 점진적 회심이 있다. 이는 성령의 초자연적 사역에 의해서 일어난다.

회심의 정의 : 회심은 죄악의 길을 떠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이다. 구약의 개념으로는 ??? ‘후회하다’의 뜻으로서 계획과 행동의 변화를 수반하는 회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는 ‘떠났다가 돌아오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회심의 구약적인 개념은 계획과 행동을 수반하는 하나님께로의 돌이킴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약의 개념에서는 μετανοεω 는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를 가리키며, επιστρηφω는 ‘방향을 돌려 되돌아 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신약적인 개념에서 회심은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로 방향을 돌려 되돌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의 요소 : 知(생각의 변화로서 자신의 생활이 죄로 가득찬 생활이었음을 인식하는 것), 情(감정의 변화로서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반역하여 범한 죄에 대해 슬퍼하는 것), 意(목적의 변화로서 죄에서 떠나 전격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의 돌이킴을 의미한다.

로마 가톨릭의 회개의 개념 - 통회, 고명(고백), 보속이 있다.

통회 - 죄에 대해 진정한 애통과 비애를 느끼는 것

고백 -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는 것

보속 - 죄인의 행동의 회개로서 자신의 죄를 인내와 선행으로 속량하는 것

회심의 특징 : 회심은 상태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회심은 인간의 의식생활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죄를 벗고 하나님을 향하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은 좁은 의미로는 단회적이며, 넓은 의미로는 반복적이다.

회심의 창시자와 선행자는 하나님이지만 사람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한 인간의 협력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회심은 회개의 복음, 구원에 필요하며, 사죄에 필요하다. 회개의 과실(열매)로서 성실한 자백 수복과 개선, 깨어 죄를 대적함, 하나님 사랑이 진정한 회개의 열매이다.


5. 신앙에 대하여 약술하라.

 

신앙(πιστι?)란 하나님의 진실성에 관한 확신이다. 그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이다.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중심으로 그에게 신뢰하는 것 등을 지시한다. 그러므로 구원적 신앙이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일으켜진 바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실한 신뢰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앙의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구원의 약속이다.

일반적 기초적 의미의 신앙 : 자아헌신, 의견보다 강함, 즉각적 확정, 증언에 기초하고 신뢰를 포함하는 확신을 의미한다.

종교적 구원적 신앙 : 신앙의 개념은 역사적 신앙, 일시적 신앙, 이적의 신앙, 진정한 구원적 신앙으로 구별된다.

신앙의 조성자 : 신앙의 조성자는 성령의 중생하게 하심으로, 그리고 성령의 조명(illumination)으로, 성령의 증언으로 신앙이 조성된다.

신앙의 본질과 자리는 마음이다.

신앙의 성분 : 신앙은 지성적 성분, 감정적 성분, 의욕적 성분으로 구성된다.

다른 파들의 신앙관 : 로마 가톨릭의 신앙관 : 역사적 신앙과 구원적 신앙의 구별이 없다. 표명적 신앙과 묵종적 신앙, 비형성적 신앙과 형성적 신앙으로 구별한다. 알미니안주의 신앙관은 하나의 칭의하는 행위로 만든다. 불완전한 행위를 완전한 행위로 계정한다. 사람이 창시한다. 칭의의 원인과 근거이다. 자아 충족 경향.



6. 칭의에 대하여 약술하라.

 

칭의의 정의 : 칭의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근거로 하여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정적 행위이다.

칭의의 중요성 : 칭의가 미치는 영향은 죄인의 상태가 아닌 신분에 해당한다.

칭의의 성질 : 은혜성, 법정성, 선언성, 제정성, 즉각 완전 최종성.

칭의의 특징 : 1)죄책의 제거, 2)외계에서 단행, 3)단번에 단행, 4)성부의 선고

칭의의 구성과 구별 : 1)사죄 - 중요성, 포함성, 무차별성 2)영생권 3)능동적 혹은 객관적 칭의와 수동적 혹은 주관적 칭의로 구별된다.

칭의의 때와 관계 : 1)영원부터의 칭의 - 도덕폐기론자들은 죄인의 칭의가 영원에서 혹은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단행되었다고 주장한다. A.Kuyper, Herman Hoeksema 등이 주장하고, H.Bavinck가 이에 반대하였다. 2)그리스도의 부활에서의 칭의 3)신앙으로 칭의 - 성경에 의한 신앙과 칭의의 관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칭의된다.

칭의의 근거 : 1)사람의 선이 아니다. 2)그리스도의 의다 3)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롬5:17-19)

칭의의 다른 견해들 : 로마 교회는 칭의와 성화를 혼동하고 있다. 오시안더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를 부인한다.  알미니안파는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를 강조한다. Schleiermacher는 우리 안에 구속의 시작의 주관적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Ritschl은 은혜로 죄인을 영접하여 자기와 교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신정통(Barth)주의는 칭의를 순간적 행위로 말하나, 오히려 칭의는 성화와 제휴하여 전 노정을 행진하는 것으로 보았다.

칭의 교리에 이의 : 1)행위에 의한 심판 2)은혜의 제외 3)불경건한 처사 4)방조에 인도한다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칭의의 요소 : 소극적 요소 - 죄의 용서를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전가된 의를 기초로 해서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 용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모든 죄책과 모든 형벌을 제거한다. 적극적 요소 - 자녀됨과 영생에의 자격을 부여한다. 하나님은 신자를 그의 자녀로 삼으신다. 그래서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될 때, 그들은 자녀의 모든 법적 권리를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후사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가 된다. 그래서 영원한 기업과 영원한 생명을 유업으로 보증받는다.


7. 수양(收養;Adoption)에 대하여 약술하라.

 

수양의 개념 : 사람을 외계의 세속적 가족으로부터 하나님의 자신의 가족 중에 전입시키는 행위이다.

수양의 절차와 자격의 함의 : 아들(子)격의 함의 - 1)하나님의 독생자 혹 맏아들 2)하나님의 총애받는 피조물 3)하나님의 파견하신 권세를 받은 재판장 4)신적 수양의 대상들로서의 사람들(일반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특정적으로는 영적으로 구속된 양자들,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되는 자들)

양자의 기업 :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기업


8. 성화(Sanctification)에 대하여 약술하라.

 

신약 명사 : 동사 ?γιαζω의 다양 의미, 거룩의 관념을 표현하는 형용사들, 성화와 성결을 표시하는 명사들

구약 관념 : 위엄적 거룩, 윤리적 거룩, 파생적 의미의 거룩.

성화의 정의 :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고 분리시키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성화란 성령께서 죄인을 죄의 부패에서 깨끗하게 하시며, 그의 전 본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갱신하여 죄인으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로우시며 계속적인 사역이라 정의할 수 있다.

성화의 특징 : a.성화의 창시자는 인간의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노력이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어 하나님과 협력할 수 있으며, 또한 협력해야 한다. b.성화는 칭의와 달리, 법정적 행위가 아니라 도덕적이고 재창조적인 행위이다. c.성화는 오랜 기간의 과정이어서 현세에서는 결코 완전에 이르지 못한다. d.그러므로 성화는 죽을 때 완성된다.

성화의 성질 : 1)하나님의 초자연적 공작 2)신자들이 협력하는 하나님의 공작 3)의식적 협력 4)거룩한 생활의 실제이다.

성화의 특징 : 1)옛사람과 새사람 2)온사람에 영향을 미친다. 3)현실적인 변화이다. 4)성장성 5)장구한 과정이다. 6)완성기는 죽음과 부활의 때

성화의 조성자와 방편 : 1)삼위 하나님, 특별히 성령이 조성자이시다. 2)신적 조성자 강조의 필요 3)성령에 전적 의뢰 4)성령 공작의 신비 방편으로서는 하나님의 말씀, 성례, 기도와 묵상, 섭리적 지도, 방편의 고집적 사용을 통해 성화된다.

완전론 : 어떤 사람들은 신자가 현세에서 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거룩한 신자라도 그가 육체를 입고 있는 한 결코 완전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지라도 자백과 사죄기도가 계속적으로 요구된다. 중생한 신자는 매일 그 속에 있는 죄와 싸워야 한다. 중생함으로 죄는 그 지배력을 상실하였으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와 말씀과 성령에 의지하여 죄와의 전쟁을 계속함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날마다 닮아가야 한다.

성화와 율법 : 율법은 신자 생활의 규범이다. 율법에 의한 선행이 강조된다. 이는 강요없는 생활지도의 기준이다. 뿐만 아니라 자발적인 순종이 요구된다. 율법은 폐하여 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감사 생활의 규칙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9.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

 

교리의 진술 :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받아들이시고, 그의 영에 의해 유효적으로 부르시고 성화하신 자들은, 은혜의 상태로부터 전적으로도 최종적으로도 타락할 수 없고, 그 상태에서 끝까지 확실히 견인하여 영원히 구원 얻을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 ⅩⅤⅠⅠ. 1)

견인의 정의 : 견인(끝까지 인내함)이란 성령께서 신자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속하여 마침내는 그것을 완성케 하시는 성령의 계속적 역사이다.(요10:28-29, 롬11:29, 빌1:6, 살후3:3, 딤후1:12, 4:18)

추론적 증명 : 1)선택의 교리 2)구속언약의 교리 3)그리스도의 공로와 중재대언의 효력 4)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 5)마음에 성령과 말씀의 역사 6)구원의 확신

견인 교리의 이의 : 1)사람의 자유에 모순 2)나태와 방종에 인도 3)부도덕에 인도 4)성경에 위반 5)이의의 결과-견인 교리는 성도에게 큰 위안과 능력의 원천이 된다.


10. 영화에 대하여 약술하라.

구성과 시기 : 영화는 현세가 아니라 죽음과 부활에서이다. 죽음에서 영혼의 완전성화와 부활에서 신체의 영화가 이루어진다. 죽을 때 영혼의 성화가 완성되는데, 성령의 순간적 행동과 하나님이 구원의 조성자이기에 죽을 때 영혼의 성화가 완성된다. 또한 신체의 부활에서 구속이 완성되어 온사람의 최종 완성한 구속으로 그리스도와 유사하게 영화된다. 영화의 시기는 개인별로 다른 때(성화의 완성)와 모든 성도들이 동시에(구속의 완성) 곧 죽음과 부활 때에 이루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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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과 함께하는 36.5(사단법인)가 공동으로 기획한 '헬스조선 건강대학원의 마지막(다섯 번째) 강의가 어제(19일) 광화문 TV조선 1층 라온홀에서 열렸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가 '아!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었어?'를 주제로 강의했다. 참가자들의 다양한 궁금증도 풀어줬다.

[헬스조선]청중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사진=헬스조선 DB
[헬스조선]청중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사진=헬스조선 DB

몸속 호르몬 4000가지, 알려진 것은 100개 정도

호르몬은 혈관 속에서 혈액을 타고 흐르는 일종의 화학 물질이다. 우리 몸은 여러 장기로 구성돼 있는데, 호르몬은 이 장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원활한 활동을 하게 돕는다. 실제 '호르몬(hormone)'은 그리스 말로 '불러 일으키다', '북돋아 주다'라는 뜻이다.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는 "우리 몸에는 호르몬은 총 4000가지 정도 있다고 알려졌는데, 우리 같은 전문가가 아는 것이 80~100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하지만 알려진 호르몬의 작용들을 잘 이해하고 관리하기만 해도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장수의 열쇠도 호르몬에 있다"고 덧붙였다.

호르몬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 잠을 유도하거나 쫓고, 식욕을 높이거나 낮추고, 혈압을 높이거나 낮추는 것은 신체에 작용하는 기능이다. 반면 처음 보는 사람의 인상을 결정하고, 우울함·행복감을 끌어올리거나 내리는 일을 하는 것은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여성호르몬의 일종인 프로게스테론 농도가 높아지면 공간감각능력이 높아져 주차 실력이 좋아지기도 한다고 한다.

한편, 호르몬과 비타민은 모두 몸속 대사 과정을 원활히 하는 작용을 한다는 데서 비슷하다. 이 둘의 차이는 몸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려있다. 안 교수는 "호르몬은 몸속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반면 비타민은 건강기능식품 등으로 보충해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햇볕을 받으면 몸 속에서 저절로 생성되는 비타민D를 호르몬의 일종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갱년기 한 번 아냐… 제2·제3의 갱년기 찾아와

호르몬과 관련 있는 대표적인 신체 증상이 '갱년기'다. 갱년기는 남녀가 각각 남성 호르몬, 여성 호르몬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몸에 이상 증상을 보이는 시기를 일컫는다. 여성은 폐경이라는 눈에 띄는 증상이 생기고 열감이 오르거나 우울감을 겪는 등 남성에 비해 이상 증상이 명확히 나타나는 편이다. 여성 갱년기는 보통 50대 초반에 생긴다. 그런데 갱년기 증상은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안 교수는 "60~70대가 돼서 몸이 갑자기 달아오르는 등 갱년기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특정 호르몬이 급감하면 이를 대체하는 호르몬이 원활하게 분비된다"며 "감소한 호르몬을 대체한 호르몬이 약 10년 주기로 분비량이 줄어드는데 그때마다 갱년기 증상이 생겨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초반에 여성호르몬이 급감하면 성장호르몬이 활발히 작용하고, 60대 초반에 성장호르몬이 급감하면 스트레스호르몬(부신호르몬)이 왕성해지고, 스트레스호르몬이 급감하면 멜라토닌 호르몬이 왕성해지는 식이다. 여성호르몬뿐 아니라 성장호르몬, 스트레스호르몬 등이 급감할 때도 갱년기 유사 증상을 겪을 수 있다.

한편 남성은 여성보다 이른 40대 초반에 갱년기가 찾아온다. 남성은 이때 갱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두고 증상을 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대표적인 남성 갱년기 증상은 성욕감퇴, 우울감, 기억력감퇴 등이다.

"당뇨병 환자, 호르몬 검사부터 합니다"

호르몬 상태를 검사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거나, 병의 전 단계를 진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안 교수는 당뇨병 환자가 찾아오면 무조건 호르몬 검사를 한다. 안 교수는 "당뇨병을 유발하는 8가지 호르몬이 알려져 있다"며 "이들을 조절하면 당뇨병 치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뇨병은 당(糖)을 분해하는 인슐린 호르몬이 제 기능을 못 하는 것이 주요 원인인데, 이 밖에 간에서 나오는 글루카곤, 소장에서 나오는 인크레틴 등 다양한 호르몬이 병을 유발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당뇨병 환자의 식욕을 조절하기 위해 식욕 억제 호르몬을 사용하기도 한다. 안 교수는 "당뇨병 환자에게서는 식욕을 높이는 '그렐린'이라는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 편"이라며 "이 호르몬을 줄이지 않으면 식사량을 제한하지 못해 병 치료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르몬 검사는 혈액 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정적인 검사와 동적인 검사로 나뉜다. 각각 몸이 안정적일 때 호르몬 분비량, 특정 자극을 줬을 때 호르몬 분비량을 측정하는 것이다. 안 교수는 "특별한 질환이 있는 것은 아닌데, 몸이 피곤하고 힘든 사람들이 호르몬 검사를 통해 원인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며 "병의 전 단계인 미병(未病)을 진단하고 치료하거나 병으로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호르몬 균형 유지하려면 '6가지' 지켜야

[헬스조선]청중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사진=헬스조선 DB
[헬스조선]청중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안철우 교수/사진=헬스조선 DB

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균형적으로 작용하려면 6가지 생활습관을 길러야 한다.

▷매 끼니를 같은 시간 비슷한 양으로 먹기=

식사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는 게 좋다. 더불어 과식하지 않는다.

▷5대 영양소 충분히 섭취하기=

5대 영양소(탄수화물·지방·단백질·미네랄·비타민)를 충족시키는 식사를 하고, 호르몬 분비 체계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 푸드를 피한다.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하루 30분씩 주 5회 이상 운동해야 한다. 유산소운동, 중저강도의 근육 운동,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늦어도 밤 11시 전에 자기=

늦어도 밤 11시 이전에 자고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과 성장호르몬이 정상적으로 분비될 수 있다.

▷자신만의 스트레스 관리법 만들기=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법을 알고 있어야 세로토닌이나 엔도르핀 등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 분비를 촉진할 수 있다. 이는 건강을 촉진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근육을 이완시키거나 스트레스를 줄이는 명상, 반신욕, 음악, 미술 감상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약물 오남용 주의하기=

여성호르몬, 남성호르몬,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비롯한 특정 약을 오래 복용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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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보수패당 재집권 절대 막아야” 홍준표 맹비난



북한 정권이 다음달 9일 치러지는 한국 대선에서 “괴뢰보수패당의 재집권을 절대로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대남 선동에 나섰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노골적인 대선개입에 나선 것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과감한 반미반보수 투쟁에 자주, 민주, 통일이 있다'는 제목의 논설에서 “4.19인민봉기자들의 염원은 자주, 민주, 통일이지만 그것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역도는 권력의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역도의 공범자들은 아직도 기가 살아 미국을 등에 업고 매국과 반역에 열을 올리고 있다”“괴뢰보수패당을 그대로 두고서는 자주, 민주, 통일에 대한 남조선 인민들의 간절한 염원을 실현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또한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이 박근혜 역도를 탄핵시킨 그 기세를 조금도 늦추지 말고 괴뢰보수패당을 단호히 심판하며 새정치, 새생활을 안아오기 위한 전민항쟁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보수우파 진영을 ‘역사의 무덤속에 처넣어야 할 백해무익한 존재’라고 헐뜯었다.


노동신문은 “자주, 민주, 통일은 남조선인민들의 단결된 투쟁으로써만 안아올 수 있다”“각계층 인민들은 4.19항쟁용사들의 투쟁정신을 계승하여 반미자주화 반파쑈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려 나가야 한다”고 선동했다.


앞서 18일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도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제외한 특정 후보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이에 사실상 북한이 ‘문재인 지지선언’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홍성준 기자 | blue@bluetoday.net



출처: 블루투데이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15275)





사진: 주님오시는 발자국 소리

 

구원의 서정

개혁주의 교리에 있어서 구원의 서정은 항상 신적 작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으로 부터 서술되지 않는 모든 구원의 서정에 대한 주장들은 거짓 교리이다.

구원의 서정에 대한 역사적 정통 교리는 항상 변함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신적 작정으로 부터 서술되어야 한다.

신적 작정의 교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원의 서정에 대한 교리도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구원의 서정은 신약 성경의 교리가 아니라 신구약 성경의 교리이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강림 이후에 신자들에게 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구약 전체 신자들에게 해당한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이스라엘도 모두 신적 작정 가운데 유효적 부르심을 받아서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의 과정을 거쳐서 영화에 이르렀다.

구약 모든 선택받은 백성들은 신적 작정을 따라서 신약의 성도들과 동일한 구원의 과정을 따라서 영화로움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구원의 서정 교리는 단지 신약의 교리가 아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포함하는 교리이다.

가장 먼저 구원의 서정은 하나님의 신적 작정 가운데 은혜 언약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기업으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이 있다.

그리고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기업으로 예정된 자들에게는 유효적 부르심이 있다.

그리고 중생과 희심과 신앙과 칭의에 이르는 전 과정은 항상 논리적일뿐 시간의 순서는 아니다.

신자들의 구원은 시간의 순서를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시간이란 인류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의 삶의 한 방편일뿐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나님의 신적 작정을 따라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기업으로 예정이 되는 것은 불변하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의 선택이다.

인간 편에서는 공로는 전혀 없다.

다만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가 없지만 개혁 교리는 반율법주의를 거짓 교리로 단죄하기에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 당위법 조차 없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신자편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마땅히 해아할 도리는 있다.

그것이 당위법이다.

신자의 공로로 행할 수 없으나 행하여야 하는 영원한 도덕법이 있다.

그것이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인간이 자기 의로 자력으로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니다.

전적으로 무능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인류는 어느 누구도 십계명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당위법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

거기에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이 있다.

중생한 신자들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간다.

결국 중생한 이성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간다.

그 중생한 이성으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자들의 삶이 영원한 도덕법을 성취해가는 삶이다.

거기에는 반드시 순종이라는 과정이 요구된다.

신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행함이 있는 신앙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영원한 도덕법에 순종하는 것이다.

중생한 신자들이 영원한 도덕법을 따라서 살아갈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은총이다.

거기에 인간의 자리는 없다.

인간의 공로도 인간의 자기 의도 없다.

영원한 도덕법은 인간이 지킬 수 있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들이 영화로움에 이르는 법으로서 십계명은 그것을 지켜가는 과정을 통하여서 영화로움에 이른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성화란 영화의 시작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화로움에 이르기 전까지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부단히 영화의 완성을 향하여서 달려가는 선수와 같다.(갈 2:2)

그때에 사도 바울이 푯대로 삼은 영원한 도덕법이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셔서 신자들에게 믿음을 통하여서 마음에 심기워주신 영원한 도덕법이다.

신자들은 십계명을 온전하게 지켜가면서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되어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부단히 신자들 안에 하나님의 계명으로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영역의 개념 보다 통치의 개념이 앞선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가시적 교회에 모여 있다고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때에 하나님 나라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는 한 신자라는 허울을 뒤집어 쓰고 아무리 교회 안에 머물러 있어도 그곳이 결코 하나님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구원의 서정의 교리는 교회론과도 연결된다.

하나님의 교회란 중생한 신자들이 하나님의 법에 순응하여서 세워진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응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러나 가시적 교회가 하나님의 법에 순응하지 않으면 그것은 이방 종교로 전락한다.

하나님의 법을 잃어 버리고 철저하게 세속화 되어 버린 로마 카톨릭 교회는 기독교라는 색채를 띄고 있는 서양 종교이다.

성모 마리아를 숭배하고 교황을 신의 대리자로 여기는 로마 카톨릭 교회는 비참하게도 하나님의 법을 상실하여서 그렇게 되었다.

그러므로 참된 구원의 교리는 참된 교회의 교리와 맞물려 있다.

참되게 구원받은 성도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이다.

그렇게 참된 신자들이 없는 교회는 그야말로 복마전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서 사데 교회를 책망하셨을때에 그러한 교리가 드러났다. (계 3:1~6)

결국 참된 신자가 사라져 버린 시대가 아닌가 우려 스럽다.

로마 카톨릭 교회 처럼 참된 신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개신교 분파주의 교회들이다.

지금의 개신교는 종교 정서주의 만 남아서 예배시에 꽥꽥 거리며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육신의 쾌락을 추구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나라의 계명에 순종해야하는 교리들이 가르쳐지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적 작정 가운데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서 그의 기업으로 예정된 신자들에게 구원이란 자신에게는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교회론적이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 기록한 증거들을 살펴 보면 알 수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4~12)

 

출처: 개혁주의마을/Grace

가져온 곳: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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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모님사모님/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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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진적 성화(Progressive Sanctification) / 존 머레이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가져오는 죄와의 확정적인 단절과 성령 안에서의 새 생명에 대한 강조는 죄가 점점 더 멸해지고 거룩함에의 일치가 점진적으로 획득되는 금욕과 성화 과정의 여지를 남겨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로마서 6장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죄의 권능과 더러움으로부터의 결정적인 옮김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같은 서신에서 바울은 내주하는 로 인해 계속 갈등을 묘사한다.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라고 스스로를 고발해야 했다는 것은 의미 심장하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7:23, 24), "내 자신이.....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5). 로마서 6장에서도 우리는 죄의 잠식(蠶食)에 끊임없이 깨어 있을 필요를 함축하는 권면들을 거듭 듣는다.

 

신약 성경 기자 가운데서 사도 요한보다 더 신자의 성화의 확정적 성격을 강조하는 사람은 없다. 요한의 용어들은 너무 강렬해서 우리는 그것들을 신약 성경의 다른 곳에서의 가르침 또 그리스도인의 체험의 명백한 사실들과 조화시키기에 아주 커다란 어려움을 겪는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요일 3:9).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요일 3:6).

 

그런데 이와는 달리 요한은 같은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그는 신자가 죄 없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신자가 범죄할 때 신자에게 위로가 되는 것을 제시하기 때문이"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그리고 요한은 신자의 삶에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는 측면이 있음을 말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신자 안에 여전히 내재하는 죄와 신자가 아직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현세에서의 신자의 상태는 정적인 현상(status quo) 유지의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진보의 상태 즉 성격상 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측면 모두를 포함하는 진보의 상태라는 것을 보여 주는 풍부한 증거가 있다. 그것은 금욕성화 양자를 포괄한다. 

 

금욕과 관련해서 신약 성경에 그 구절들이 등장하는 문맥으로 인해 특히 두드러지는 두 개의 구절이 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이 두 구절들은 죄에 대한 단번의 죽음과 그로 인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명의 영역으로서의 이전이 강조되고 있는 문맥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더욱 도움이 된다. 로마서 6장은 이 확정적 성화를 강조하는데, '너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라는 말이 핵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로마서 8:13에서 바울은 신자들을 향해 말하면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데 신자들 자신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밝힌다. 이것은 그가 이미 죄의 몸이 멸하여졌다고 말했었기 때문에 더욱더 주목되는 것이다(롬 6:6). 이 활동은 성령의 힘과 은혜 안에서만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이 '영으로써'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점을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자들이 참여해야 하는 활동이며,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 격렬한 활동이다. 골로새서 3:5의 문맥도 그리스도의 죽음에 의한 죄에 대한 단번의 죽음이라는 같은 사고를 포함하고 있다.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골 2:20).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3).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라는 권면은 선행하는 범주적 명제들로부터 나온 권면이다. 로마서 8:13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서 신자의 활동이 요구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골로새서 2:20; 3:3에 언급된 죄에 대한 확정적인 죽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사욕과 더러움으로부터 신자가 해방되지 않기 때문에, 신자는 자신의 죄들을 죽이는 도살장의 일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에 대한 확정적인 죽음을 말할 때 쓰였던 어법이 수동의 어법인 것같이-너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 너희는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롬 6:2; 골 2:20; 롬 7:4)-이제 그 용어들은 신자 자신 편에서의 활동의 용어이다. 고린도후서 7:1의 권면도 같은 취지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여기의 주장은 더 적극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육과 영의 더러움이 있으므로 우리 자신을 그 더러움으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금욕과 정화(淨化)의 과정은 신자에게 여전히 붙어 있는 죄 및 더러움과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의 목표는 육과 영의 모든 더러움의 제거다. 이러한 죄 됨의 완전한 근절(根絶)은 신자의 목적 즉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에의 일치와 양립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은 거룩하고 흠 없고 점 없고, 죄인들과 구별되었는데, 그들은 그를 닮아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형상과도 일치해야 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그리고 요한도 아버지에 대해 말한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 3:2). 우리는 아버지를 닮을 것이다. 요한이 이 소망에 열중하고 있을 때 그가 곧장 우리의 죄 됨과 관계가 있는 이 소망의 의미의 주의를 집중시켜야 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곧장 덧붙인다. "주(아버지)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근절과 이것에 기여하는 금욕의 요구는 구원을 누리는 것과 그 구원이 향해 있는 목표의 성격에 내재해 있다.

 

성화의 과정은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것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죄의 근절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는다. 바울이 고린도후서 7:1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라는 말을 덧붙여야 했던 것은 뭔가 더 적극적인 측면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완전의 총합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완전의 농축으로서의 거룩함에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점진적인 변화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용어는 다음 두 경우에서 바울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고후 3:18). 예수님의 변형과 관련하여 사용된 것도 바로 이 용어다(마 17:2; 막 9:3). 하나님의 백성과 관련된 전 구속 과정의 목표는 형제들 중에서 처음으로 난 그리스도의 형상에의 일치이기 때문에, 고린도후서 3:18보다 점진적 성화의 방법을 더 정확히 규정하는 성경 구절은 없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주 그리스도의 영광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든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본다는 것이든, 두 가지 모두가 함축되어 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반영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는 요한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 영광을 보기 때문이요, 보면서 점점 더 변화되어 그를 닮아가기 때문이다. 마음의 눈은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며 그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에(참고. 히 1:3), 비길 데 없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고정되어, 우리는 점점 더 한 수준에서 다음 수준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의 특성들을 띠게 되고, 마침내는 온전히 변화되는 것이다.

 

우리가 관심과 의욕을 갖고 몰두하는 것을 닮는 것은 심리학의 법칙이고, 이 경우에도 그 법칙은 적용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자연적 요소들은 이 변화의 비밀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변화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 우리가 이 표현을 '영이신 주로 말미암음이니라'로 해석한다 할지라도 성령에 대한 암시가 배제되지 않으며, 성령의 깨우는 권능과 효과적 사역을 새 언약의 탁월성을 특징 짓는 일례로 늘고 있는 6절과 8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여기서 바울이 '영이신 주'를 말하고 있다면, 그는 성령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고 구속 과정의 목표를 완성하려는 목적 안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더 두드러지게 나타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님 자신의 말씀을 상기한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 14).

 

적극적 측면에서의 점진성은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된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한다(빌 1:9).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말씀의 순전한 젖으로 말미암아 구원 즉 종말에 완성되고 계시될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 가라고 말한다(벧전 2:2; 참고. 1:5). 그는 또한 그의 독자들에게 "우리 주 곧 그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8)고 권면한다.

 

에베소서 4:12-16은 특히 에베소서 전체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고찰할 때 이 점에서 가장 도움이 된다. 여기서는 성장 즉 지식과 사랑으로 구체화된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11절에 규정된 직분들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향하고 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13, 14절). 신자들은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5절)는 것도 동일한 권면이다.

 

그러므로 성장의 법칙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영역에 적용된다. 하나님은 과정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의 성화에 이 원칙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를 쓸모 없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기괴한 일일 것이다. 어른이 어린 아이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비극일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서 참이라면, 그리스도인의 행위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리스도 안에는 어린 아이가 있으며, 청년도 있고, 노인도 있다. 그런데 성장의 법칙을 무시함으로써 기괴하고 비극적인 일들이 교회의 증거를 얼마나 손상시켜 왔던가!

 

이 과정은 특히 지식사랑으로 구현된다. 진리에 관한 지식과 이해로서의 지식과 이해력의 개화(참고, 엡 1:17, 18; 4:13-15; 벧후 3:18)에 대한 강조는 이러한 것들이 증진됨에 따라 사랑, 희락, 화평 등 성령의 열매가 증진될 수 있다는 교훈을 강화시켜 준다. 이 둘의 상보성(相補性)은 그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분변함 속에서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 바라는, 빌립보 신자들을 위한 바울의 권고에 예시되어 있다. 요한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그러나 사랑은 정적인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점점 더 증진되고 풍성해져야 한다(참고. 빌 1:9; 살전 3:12; 4:10).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신 분, 사랑 자체이신 분의 영광을 점점 더 알게 됨으로써 자라간다.

 

이러한 진보는 개인뿐만 아니라 통일성과 연대성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도 연관되어 있다. 실제로 개인의 성장은 성령과의 교제와 마찬가지로 교회와의 교제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신자들은 결코 독립된 단위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속에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받았다(엡 1:4). 그들의 구속이 성취되었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다(고후 5:14, 15; 엡1:7). 구속의 적용에서 그들은 그리소도와의 교제로 인도된다(고전 1:9). 그리고 성화 자체도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온전하고 전적으로 흠 없고 점 없이 나타날 때에야 비로서 개인에게 실현되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온 몸의 성화를 계발하고 진전시킬 필요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책임, 특권, 호기(好期)에 대한 실제적인 의미들이 명백해진다.

 

개인이 다른 사람들의 성화에 무관심하고 은혜, 사랑, 믿음, 지식, 순종, 거룩함 안에서의 그들의 성장을 촉진시키려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그 자신의 성화를 방해한다. (1)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부족 자체가 영적 성장의 밑동을 갉아먹는 악덕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안에서의 성령의 열매에 관해서 갖지 않거나 깨어 있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영예롭게 하는 데 거룩한 열심으로 불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모든 단점과 죄는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사람들의 결점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식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2)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대한 그의 무관심은 그가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행해야 할 사역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그가 하지 않는 만큼 다른 사람들을 메마르게 하며, 이러한 메마름은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마땅히 해야 할 지지, 격려, 가르침, 교화, 권면을 충분하게 그에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의 교제 안에서의 상호 작용과 상호 소통이 하나님의 백성의 점진적 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측면들을 보게 된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고전 12:26). 그리스도의 몸의 연대성 안에서의 우리의 상호 의존의 진리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 성화에만 몰두하는 것의 위험성과 모순됨을 밝혀 준다. 다음과 같은 사도의 말은 독립성과 초연성의 반대되는 덕목을 얼마나 웅변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가!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1-13; 참고. 롬 12:4 이하; 고전 12:12 이하; 골 2:19). 

 

성장에 있어서의 이러한 교제는 방금 인용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라는 표현에 유의할 것을 요구한다. 이 표현은 성화 과정의 목표에만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정 자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약 성경에서 그리스도의 충만의 나눠 줌과 받음보다 이 과정의 특징을 더 잘 나타내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충만은 무엇인가?

 

골로새서 1:19부터 살펴보자.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이 본문은 존재론적으로 해석되어 왔기 때문에, '모든 충만'은 영원한 성자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본질적으로 속해 있는 충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해석을 논박하고, 경륜과 관련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적이고 중보적인 정체성 안에 있는 충만을 언급하고 있다고 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18절이 그리스도가 '몸인 교회의 머리'라고 말하면서 특히 메시야로서의 경륜적인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2)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이라는 표현은 존재론적 명칭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그리스도에게 속하게 된 명칭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의 영원한 성자의 신분과 신성에 고유한 탁월성이 아니라 이 역사적 사건에 의해 그에게 발생한 탁월성이며, 나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라는 계획된 결과라고 분명히 진술된 탁월성이다.

(3) 19절은 탁월성의 획득의 인과 관계를 밝히고 있다. 이러한 탁월성이 그에게 속하게 된 것은 아버지께서 모든 충만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본질적으로 그것을 소유하고 행사할 만한 자격이 없었다면, 즉 신성의 충만이 본질적으로 그의 것이지 않았다면, 그러한 탁월성은 그에게 부과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진정 사실이다. 그러나 19절이 그 탁월성을 만들어 내는 수여(授與)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것은 경륜에 대한 문맥에 있어서의 강조와 더욱 부합한다.

(4) 만약 19절을 존재론적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전혀 만들 필요가 없는 중대한 신학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은 신성의 모든 충만이 성자 안에 거하는 것은 성부의 뜻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성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독자적으로 그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골로새서 1:19이 말하는 충만은 구원의 경륜 안에서 그리스도의 메시야로서의 정체성에 부여된 충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골로새서 2:9은 이러한 결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골로새서 2:9은 영원한 성자로서의 그리스도에게 본질적으로 속해 있는 신성의 충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도 바울의 주된 의도는 이 충만이 그의 성육신된 상태 안에 거하며, 육신이 말씀으로서의 그의 육체적 정체성으로 인해 삭감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있다. 신성의 충만이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은 그가 메시야 직분의 수행으로 인해 얻게 될 충만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 충만은 생명, 은혜, 진리, 지혜, 지식, 선함, 자비, 의, 권능의 충만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우리에게 그토록 많은 논란이 있어 왔던 바울의 본문을 쉽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은 성화의 교리에서 핵심적인 설명이다.

이제 에베소서 1:23로 돌아가 보자.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첫번째 문제는 여기서 '충만케 하다'로 번역된 용어의 의미다. 그것은 능동태 또는 수동태 중 어느 것으로 해석되어야 하는가? 수동태로 해석되어야 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충만케 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만물 안에서 만물을'은 충만케 된다는 개념을 강조할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서, 그가 온전히 충만케 되고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된다. 그렇다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그에게 적용된 충만이 가리키는 것으로 계속 충만케 된다는 것이 된다. 이 견해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그리스도를 충만케 하는 것이 하나의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 충만은 그리스도 안에 영속적으로 거하는 것이 아니던가?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엡 4:10). 이것은 최소한 나눠 주심이 완료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능동적인 의미를 택한다면,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만물 안에서 만물'은 우주적 관련성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이다(엡 1:22). 그리고 만물을 충만케 하신다(엡 4:10). 그러나 '만물 안에서 만물'은 단지 교회를 가리킬 수도 있다. 그는 교회를 온전히 충만케 하신다. 문제가 되고 있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결정하기란 어려운 것 같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충만'의 선행사는 무엇인가? 22절에 언급된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교회인가?

그리스도가 선행사라고 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 거의 유지될 수 없는 견해다.

(1) 구문론적으로, '충만'의 선행사를 22절로 소급해 찾는 것은 조악하다. 그러므로 다른 견해들이 극복되지 않는 난점을 갖기 전에는 이러한 구성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2) 그리스도 자신이 '충만'이라면, 이어지는 문맥을 보아 그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으로 인식되고 있는 또 다른 위격의 충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셔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 성경의 관념, 특히 바울의 관념에 이질적인 개념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스도는 결코 성부의 충만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충만이 거한다. 그러나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 또 다른 위격의 충만으로 얘기되지는 않는다.

(3) 이 견해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충만이 되는 그 위격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로 간주되어야 한다. 하지만 바울에 따르면, '만물 안에서 만물'이 우주를 가리키든지 교회를 가리키든지,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다. 같은 서신에서 이것은 그리스도의 속성으로 명백히 표현되어 있다(엡 4:10). 그러므로 이것이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은 해석학적으로 방어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특히 두번째와 세번째의 이유로 인해, 문제가 되고 있는 해석은 기각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유일한 대안은 교회를 '충만'의 선행사로 보는 것이다. '그의 몸 된 교회'가 밀접하게 선행한다는 사실은 이것을 자연스러운 구성이 되게 한다. 그리고 강력한 증거가 다른 해석을 요구할 때까지는 이것을 논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충만이라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충만이다. 어떻게 교회가 그럴 수 있는가?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케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신약 성경의 가르침 특히 바울의 가르침에 반한다. 반대로, 그리스도의 충만으로부터 우리 모두가 받는다(요 1:16). 모든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골 1:19; 2:9). 그리고 교회는 때를 따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된다(엡 4:13). 하지만 충만은 온전케 하는 것 즉 보충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참고. 마 9:16; 막 2:21). 경륜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자격과 직분은 결코 그와 연합된 자들과 분리해서 생각될 수 없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다. 몸과 분리된 머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교회는 항상 서로에 대해 보완적이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은 이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기 때문에, '충만'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통해 보충 관념을 나타낸다고 하는 것은 적절하다.

 

'충만'은 또한 어떤 것을 저장해 두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 서신에서 이 의미는 두 번 나타난다(3:19; 4:13). 그리고 이 두 경우에 유일하게 적절한 의미는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으로 충만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라는 요한복음 1:16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엡 4:13) 된다고 인식될 때, 그 의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충만이 그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이를 때, 이 상태는 그리스도가 구현한 은혜, 덕목, 진리, 지혜, 의로움, 거룩함으로 충만하게 되는 상태다. 이러한 전달은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신 자의 형상을 닮아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에베소서 1:23의 바울의 가르침의 유비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분여(分與)되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충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교회는, 영속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이 동일한 전달의 목적과 실현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경륜에 의해서 그 안에 거하는 의로움, 지혜, 지식, 권능, 은혜, 선함, 인내, 사랑, 진리, 자비의 충만의 수혜자다. 이 충만을 신자들은 분리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통일성과 교제 안에서 받는다.

 

그러므로 점진적 성화가 수반하는 과정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닮아 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외적으로 모방하는 동화(同化)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의 충만의 분여, 우리가 지상의 삶 속에서 익숙해 있는 유기체나 생물보다 무한히 높은 차원에서 살아가고 행동하는 살아 있는 유기체를 통하여 흘러 나오는 분여에 의해서 획득된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과 특권에 적용될 때, 그것은 점진적 성화에서 기본적인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연합과 교제 또 그로부터의 전달의 의미들을 점점 더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라는 것을 뜻한다. 우리들의 필요, 그리스도 예수 안의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에서 연유하는 절박한 요구, 그의 몸의 지체가 됨으로써 생기는 요구, 그리스도와 교회를 섬기는 데서 행해야 할 직분 등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으로부터 제공된다. 성화의 목표가 수반하는 모든 요구의 실행에 있어서 그의 은혜의 총족성을 의심하는 것은 모든 충만이 거하는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맏아들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는 것 즉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생각한다면, 궁극적인 성취의 소망과 자신감을 생기게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충만뿐이다.

 

'존 머레이 조직신학'에서 발췌(307-318p)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언론이 말하지 않는 5.9 대선의 섬뜩한 진실!
포장만 선거일뿐 실제는 체제전쟁.. 민중혁명 완성 맞서는 큰 게임 직시할 때


대선 레이스 3일째인 4월 19일 언론의 고질병인 이른바 경마장식 보도가 다시 도졌다. 어느 후보가 어디 가서 상대 후보를 뭐라고 헐뜯고 고함쳤다는 식의 겉핥기 보도가 반복되면서 정작 이슈-정책은 실종된다. 여기에 세몰이식 여론조사가 대세론을 부추긴다.


이 통에 문재인-안철수 양강 구도만 조명하고 홍준표-유승민을 투명인간 취급하니 유권자 선택의 폭은 더욱 줄어든다. 이런 구조에서 역대 대선과 전혀 다른 성격의 5.9 대선의 숨겨진 진실이 조명될 리 만무다. 숨겨진 진실이란 게 무엇일까? 재확인하지만 이번 대선은 포장만 대통령 선거일뿐이며, 실제는 전쟁이다.

정확하게는 체제 전쟁인데, 대한민국 정체성을 흔드는 체제변혁-민중혁명으로 넘어가느냐, 그 흐름을 끊어내느냐가 관건이다. 1948년 건국 이래 유례없는 위기 국면이지만, 1987년 체제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사실상의 국공합작을 해왔다.


1987년 이후 국공합작이 깨진다

민주화 세력으로 포장된 인민민주주의 세력 혹은 사회주의 세력이 체제 안에 스며들었고, 그게 지난 30년 이 나라 항구적 위기의 뿌리다. 그동안 민노총-전교조 등으로 힘을 비축해온 좌익세력은 '좌우익 동거'를 끝내려고 용트림이다. 그래서 저들의 눈에 지금은 영락없는 '혁명의 만조기(滿潮期)' 국면인데 왜 이런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을까?

언론이 엉터리인데다가 다른 요소가 가세한 탓이다. 즉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고조된 정치환멸, 이념지형의 완전 붕괴, 한반도 주변상황에 대한 정보 부재 등의 요소가 지금 우리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있다. 선거란 공동체의 오늘을 직시하는 시민교육의 장인데, 현 상황은 정반대다.

 

 
▲ 언론의 고질병인 이른바 경마장식 보도가 다시 도지면서 이슈-정책은 실종되고 세몰이식 여론조사가 대세론을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오른쪽)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유세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어리석은 유권자들이 좌파 정치인, 얼치기 지도자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한 채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는 눈먼 공멸(共滅)의 게임을 벌인다.

그걸 부채질하는 세 요소 중 정치 환멸이야말로 큰 덩어리인데, 죄 없는 대통령을 '마녀'로 몰아 내쫓아낸 이후 유권자들은 적대적 정치의식으로 똘똘 뭉쳤다.

이후 그들 나름으로 만든 해결안이 이념적 정체성이 불투명한 두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율을 몰아주는 선택이다. 그게 이른바 대세요, 양강 구도라는 것의 섬뜩한 뒷모습이다.

두 후보란 홍준표의 지적대로 좌파 하나, 얼치기 좌파 하나를 말한다. 그들을 통상적이고 정상적인 정치지도자로 착각한 채 즐거운 마음으로 그냥 뽑아도 될까?

그동안 뭔가가 찜찜하셨다고? 그럼 원로 정치학자 양동안 교수의 가슴 철렁한 다음 경고를 경청해보라."공산주의 위험이 문 앞에 와있다. 대선에서 보수세력이 패배한다면 부역자 청산을 신호로 공산화의 문을 여는 체제변혁이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념지형의 붕괴현상도 매우 위태롭다. 이념지형의 붕괴란 유권자들이 이젠 좌익도 괜찮다고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정당지지율을 묻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운동권 정당’민주당이 과반에 육박하는 46%로 당당 1위로 나타난다. 자칭 보수라고 말하는 유권자들의 46%가 안철수를 찍겠다고 응답하고, 나머지 18%가 문재인을 찍겠다고 말한 다.

이념의 아노미 현상이 갈 데까지 갔다는 뜻이다. 그런 정치환멸-이념붕괴에 브레이크를 잡지 않을 경우 이 나라는 민중혁명-체제변혁을 향해 거침없는 질주를 거듭할 것이다.

반복하지만 지금 상황은 1970년 중남미 대륙 최초로 선거를 통해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칠레 아옌데 정권의 재판(再版)이 될 가능성이 높다.

   
▲ 혼돈의 대선판이다. 최악(문재인)보다는 차악(안철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 홍준표의 보수진영 표만 결집할 경우 승리할 수 있다는 자강론(自强論) 사이에서 유권자의 판단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때다. 사진은 유세전을 펼치고 있는 홍준표(오른쪽)·유승민 후보. /유승민 홍준표 후보 공식사이트


한국의 자살민주주의가 완성되는가

대선이란 포장 속의 체제전쟁을 눈치 채지 못하는 우리 수준은 한반도 주변 국제상황에 대한 정보 부재의 깜깜이 구조에서 다시 반영된다.

일테면 주요 출마자 5명 전원이 당선될 경우 한일 위안부협정을 파기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우물 안 개구리도 이럴 순 없다. 왜 어느 누구도 한미동맹의 초석인 한일관계 개선을 말하지 않는가?

방어무기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데 전세계가 알고 있는 '한반도 4월 위기설'을 우리만 애써 외면하는 꼴이다. 동태평양을 담당하는 미 3함대 소속의 칼빈슨 호가 한반도 주변을 찾은 것은 2차대전 이후 처음이고,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은 기정사실이다.

그런 상황인데도 우리 언론의 시야는 여전히 '광화문에서 여의도까지'에 갇혀있다. 청와대와 국회 사이를 맴맴돌이할뿐, 한반도 전체 구조를 지켜볼 능력이 안 된다.

건국 이후 69년, 아직은 젊은 대한민국이 이렇게 공멸하고 말 것인가? 그걸 묻지 않을 수 없다. 촛불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해 10월 이후 나는 그점을 반복해 지적했다.

조중동-종편 등은 대통령을 내쫓은 걸 시민혁명이라고 포장하지만 그건 거짓이며, 헌법 4조가 명문화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민중혁명-체제변혁이 진행 중이라고 걱정했다. 저들이 볼 때 대선은 승리의 고지다. 좌익은 최후 승리의 깃발을 꽂으려 총공세다.


드디어 한국의 자살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대한민국 패망의 불길한 징후가 본격화되는가? 요즘 어딜 가나 묻는다. "누굴 찍어야 합니까?"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우회적인 답이다.


최악(문재인)보다는 차악(안철수)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론, 홍준표의 보수진영 표만 결집할 경우 승리할 수 있다는 자강론(自强論) 사이에서 중심 잡으시길 새삼 기대한다.



- 조우석 미디어펜 주필

출처: 미디어펜 (http://www.mediapen.com/news/view/257958)

다니엘서에 예언되어 있듯이 지구상에 대부분의 공산주의 나라는 없어졌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산정권인 북한이 있습니다.


트럼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봅니다. 북한이 트럼프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한다면, 트럼프는 최후의 버튼을 누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날은, 북한에게는 해방의 날이, 남한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녁을 사먹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집에 다왔을 즈음, 갑자기 성령께서 동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오라는 마음을 주셔서 즉시 순종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기도하고 왔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닌, 오직 성령을 순종하며 따라 행해야 합니다.



몇년 동안 확인했던 일과 현재 정황을 다 따져보고 진지하게 기도해보면, 더 큰 재앙이 덮치기 전에 테러집단인 북한 정권을 먼저 붕괴시키는게 맞다란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아니 더 자세히 말해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 평화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갖고, 십자가 지기 싫어하고 내가 피해볼까봐 죽어가는 동포를 그대로 두려는 악함과 이기심이 들어있단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과거 미국에 흑인 노예제도가 팽배했던 시절, 경제 때문에 안일하고자 노예제도 폐지에 침묵하고 방조하며 반대 했던 역사와도 겹칩니다.


악에는 공의와 심판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되 거룩 그 자체이시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예수를 입으로만이 아닌 진정 아는 자라면 악과 화평하지 않고 싸우며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무슨 답을 주는 지 분명히 압니다.


평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악과의 싸움은 불가피한 것이 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들을 무시하는 평화는 평화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테러집단을 붕괴시켜 북한 동포들의 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이제라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부르짖고 행동하기를 촉구합니다.



글 출처: Esther Haejung Lee님 페이스북

아부 오마르(Abu Omar, 보안상의 이유로 변경된 이름)는 수년 동안 종교 학자이자 중동에서 높은 존경을 받는 시민이었다. 그는 모스크와 이슬람 학교에서 코란(Koran), 하디스(Hadith)와 샤리아(Sharia) 법을 가르치고 설교했다.

 

이슬람 사원에서 저녁기도 후 그가 차를 탈 때 차창에 붙어있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떼어 내고, 그의 차에 올라타 빛을 비추고 그것을 읽기 시작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그는 분노해서 그것을 구겨 버렸다. 그리고 총을 들고 그것을 붙인 사람을 찾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 종이를 던져 버렸다.

 

돌아 오는 길에 그는 쇼핑몰 앞에서 멈춰 섰다. 한 장의 종이가 그를 향해 날아가 그의 옷에 달라 붙었다 : 같은 성경 구절! 그는 그것을 찢어서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에 넣었다.

 

쇼핑을 마치고 그는 차에 다시 와서 문을 열었을 때 쓰레기통에서 종이 조각이 튀어 나와서 찢어져 던져 버렸다. 그는 격분하여 그들을 모아 라이터로 태워버렸다.


그는 집으로 운전하다가 왼쪽 어깨에 뭔가를 느꼈다. 그는 그것을 꺼내 불에 탄 종이 한 장을 보았다. 그는 차를 멈추고 그것을 읽었다 : "죄의 삯은 사망이다." 끔찍한 공포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부는 두 명의 기록 천사를 믿었다. 하나는 선행을 기록하는 천사이고, 다른 하나는 악행을 기록하는 천사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죄와 나쁜 행동을 기록하는 천사 'Atid'가 그의 왼쪽 어깨에 앉아 있다고 추정했다.

 

갑자기 그는 오른쪽 어깨에 뭔가를 느꼈다. 거기에서 그는 불에 탄 종이 조각을 또 발견했다. "하나님의 선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는 선행을 기록하는 천사인 "Raqib"가 오른쪽 어깨에 머물렀다고 생각했다.

 

아부 오마르는 밤에 겨우 잠이 들수가 있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대해 계속 생각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예수님께서 꿈속에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 : 17-18)”

 

아부 오마르 (Abu Omar)(못으로 인해서) 가운 데가 뚫린 손을 보았고 그가 예수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즉시 침대에서 일어나 자신 앞에 엎드렸다. 그가 머리를 들 용기를 찾았을 때, 예수님은 사라졌다. 그는 모스크에서 아침기도를 부탁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그는 불에 탄 종이를 꺼내기 위해 차에 달려갔다. 그는 종이의 뒷면에서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리고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을 자신의 개인 구원자이자 주님으로 받아 들였다


출처: bibles4mideast https://goo.gl/p30hI3



가져온 곳: 갓톡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캅의 순교사화 -

 

* 서머나 교회가 빌로멜리움(Philomelium) 교회에게 보낸 편지이다.

* 신약성경 밖에서 쓰인 기독교 순교사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 명백하게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15:1) 사건 후 오래되지 않아 기록되었다.

*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캅(86)에 대한 박해, 체포, 심문, 그리고 처형을 기록하고 있다.

* 2세기 중엽의 박해받는 교회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언이다.

* 기독교인들의 국가관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그리고 이것을 기록하게 된 데에는 매년 열리는 순교기념일에 참석하게 하려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 폴리캅의 순교의 신앙은 311년과 313(밀라노 칙령)의 관용의 칙령들과 교회에 승리를 가져올 때까지 많은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 불행하게도 그리스어 사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 10세기경의 것으로 유세비우스가 전하는 내용과 조금 다르다.

- 후기 사본은 폴리캅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대조시켜놓은 내용을 싣고 있다.

 

1. 폴리캅의 순교 시기 - 두 가지 견해

1) 내적인 증거 : 21장과 폴리캅 순교사화의 내적 자료에 따를 시기

폴리캅은 산티쿠스(Xanthicus) 달의 첫 번째 부분의 둘째 날, 3월 달 전 7일째 날, 큰 안식일 오후 2경에 순교했다. 그는 트랄레스의 필립이 스타티우스 쿠아드라투스의 지방 총독직의 재임 기간 동안 대제사장이었을 때...,“

 

* 스타티우스 쿠아드라투스(Statius Quadratus)의 지방 총독직의 재임 기간을 근거로 156222, 아니면 아마 23일로 채택해 왔다.

* 이 시기는 폴리캅이 체포되기 직전에 로마의 감독 아니세투스 감독을 방문했다는 사실과 잘 일치한다.

 

2) 유세비우스의 증거 :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한 시기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Marcus Aurelius verus)의 통치기간으로 보아 167년경으로 보는 견해.

이 무렵 피우스(Pious)라는 성을 가진 안토닌(Antonine)황제는 22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Marcus Aurelius verus)에게 양위하였다. 베루스 역시 그의 형 루시우스(Lucius)와 함께 안토니누스(Antoninus)라고 불리었다.”

* 쇠델은 21, 22장을 후대의 첨가물로 보고 유세비우스의 견해를 지지, 155-160년경임을 주장한다.

 

2. 폴리캅의 인물 관

1) 폴리캅(Polycarp)

A.D 80년에 태어나 165년경에 86세로 순교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다.

신약시대 이후 널리 알려진 첫 순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사도들에 의해 아시아의 서머나(Smyrna)교회의 감독으로 임명받았다.

폴리캅은 사랑의 사도 요한의 수하에서 공부했기에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만난 사람과 그 후 세대를 연결해주는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언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2세기경 그는 서머나에서 열심히 목회하고 있었으며 노예들과, 지방 호족들, 총독의 관리들이 한 데로 잘 조화되어 구성된 교회였다.

50년 동안 감독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온유하였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겸손의 귀감이 되었다.”

그는 비록 요한의 제자였지만 자신을 사도들과 동등시 하지 않았다. “형제들이여, 나는 이 편지를 자랑함으로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요청했기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나는 바울처럼 진리의 말씀을 능력 있고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지 못 했습니다.”

2) 폴리캅의 신학적 입장

불신자들에 대한 전도에 너무 열심이었으므로 그는 무신론자, 우리 신들의 파괴자, 소아시아의 선생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사도요한에게 들은 예수의 기적과 교훈에 대한 그의 설교와 저술들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저서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 이 편지의 핵심은 = ‘그리스도론이다.

그리스도는 주님이시고 그는 현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에게 굴복한다.”

 

3) 폴리캅 순교의 의의

신약시대 이후 널리 알려진 첫 순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폴리캅의 순교의 결과는 기독교의 깨끗한 승리였다.

서머나 교회는 지도자를 잃었으나 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다.

용기없는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신앙을 북돋아 주었다.

폴리캅의 순교로 아시아에서 박해에 종지부를 찍었다.

 

4) 폴리캅 순교의 특이점

폴리캅은 처음에는 피신하였다는 것이다.”

* 이 사실은 오히려 순교의 진실성을 보여주며, 거짓 순교자와의 차이점을 보여 준다.

* 거짓 순교자 : 당시에는 자발적으로 재판정에 나아가 순교의 기회를 찾았던 거짓 순교자들이 있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나섰던 참된 순교자들도 있었다.

 

5)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교에 대한 이해

순교는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순교는 인간들이 선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에게 주시는 특권으로 생각했다.

순교는 그리스도의 용기와 격려로서 끝까지 충성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이 용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것으로 이해했다.

순교자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하나님의 운동선수, 신앙의 수호자, 사탄과의 투쟁자, 신앙의 옹호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자 등으로 불리었다.

순교자는 피의 세례를 받기 때문에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순교를 앞둔 사람이 감옥에 갇히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사람에게 죄 사함을 받는 기도를 부탁했다.

순교하는 것은 곧 신자의 특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일부러 순교를 하는 자발적 순교’(voluntary martydom)라는 말이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영광의 면류관이요, 구원의 지름길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빨리 이루기 위해서 무리를 지어 로마 총독에게 가서 우리는 기독교인이니 처형해 달라고 했다.

- 교부들은 이러한 자발적인 순교를 일종의 자살 행위로 보고 이를 말렸다.

 

6) 폴리캅의 교회사적 중요성

폴리캅은 로마에서 말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인 발렌티누스 추종자들을 정통주의로 회심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았다.

* 폴리캅이 로마에 간 이유 - 부활절 논쟁을 위하여.

* 논쟁 과정

- 동방교회는 유대교력에 의해 유월절인 닛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킴.

- 162년 로마의 감독 아니케투스(Anicetus)는 닛산월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로 지켜야 할 것을 주장함.

- 폴리캅이 로마 방문 - 닛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킬 것 주장함. - 무시됨.

- 190년 로마 감독 빅톨이 폴리캅의 의견에 반대해 - 아시아의 교회를 파문.

-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서방교회 견해를 채택함. - 교회분열을 가져옴.

클레멘트이그나티우스보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을 잘 알고 있었다.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다는 성서적 칭의론을 말하고 있다.

폴리캅은 실천적인 인물이었다.

 

3. 역사와의 대화

1). 폴리갑을 통해 본 초대교회 신앙관

순교자(martyr)는 어원적으로 증거하다’(to testify),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 순교하다는 말로 바뀌었다. 초대교회는 약 280년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 수많은 순교자가 생겼는데, 그러면서 싹튼 것이 순교의 신앙이다. 박해기간 동안 순교자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신앙의 수호자, 사탄과의 투쟁 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자 등으로 불리었으며, 기독교의 신앙을 존속하게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순교는 신자의 특권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일부러 순교를 하는 자발적 순교’(voluntary martydom)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순교를 영광의 면류관이요, 구원의 지름길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는 행동으로 이해되었다.

 

오리겐은 "만일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신비적으로 참여하는 시작이라면, 순교는 그의 죽음과 부활에 완전히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순교의 신앙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지지와 비호를 받게 되면서 자연히 순교할 일이 없어지게 되고, 교회가 대중화 되어감에 따라 점점 완화되었다. 하지만 순교의 신앙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도원 운동으로 이어졌고, 순교 정신, 순교 신앙은 자신의 경건한 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순교의 신앙은 초대교회 박해시대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사실 순교의 신앙은 그리스도적 전통이며, 2,000년의 기독교 선교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 이어져서 교회를 교회되도록 하였으며 신자를 신자되게 하는 신앙적인 기초가 되어왔다.

오리겐은 영적인 순교’(spiritual mantyrdom)라는 말을 통해 꼭 피를 흘리는 것만이 순교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괴로움을 당한다면 그것 자체가 순교라고 할 수 있다.”는 순교 신앙을 보편적으로 이해하였다.

 

오리겐의 주장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순교 신앙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 넘어 기독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어 가야 할 소중한 신앙의 유산임을 교훈하여 주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신앙의 뿌리는 순교의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여 주고 있다. 또한 21세기 새로운 종교개혁교회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자리역시 순교 신앙이어야 함을 동시에 말해 준다.

 

2). 폴리갑 순교와 의미

속사도 교부시대에 밀어 닥친 아시아교회의 박해와 순교신앙이 발생되었으며 그중에 하나인 폴리캅의 순교의 역사적 배경에는 청년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의 용기있는 순교가 있었고 폴리캅의 순교 이후 아시아교회에서는 순교기념일을 지키며 순교자 적 신앙으로의 훈련을 하였고 순교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갔다.

폴리캅의 순교사화는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와 비교해 볼 때 후대로 전승되면서 약간의 첨삭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3). 적 용

무기력한 한국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영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성을 바르게 하여 준다.

물량주의화 된 한국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있는 신앙의 모범을 제공한다.

오늘날 교회개혁에 대한 요구가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젊은 교역자로서 개혁에 주도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의 방향에 순교자적 신앙으로의 무장은 개혁을 더욱 힘있고 능력있게 할 것이다.

선교전략에 있어서 순교자적 신앙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미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교권 국가들에서의 선교활동은 극히 제한적이며 은밀한 중에 진행되고 있다. 사실 성과가 거의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떻게 이슬람교권을 복음화 시킬 것인가? 순교하는 것이 최상의 선교전략이 될 것이다. 순교적 신앙은 오늘날에도 요청 되고 있다.

폴리캅 순교사화는 우리에게 순교적 신앙으로 초대하고 있다.

순교는 부활을 현세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다” (오리겐)


 
빛과 흑암의 역사/진리탐구

 

2017, 누가 대한민국의 윌버포스가 될 것인가?


전쟁을 두려워하여 우리 육신의 안위를 생각하기보다, 고통과 신음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북한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하루 속히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여 저들에게도 진짜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을 달라고, 미국의 링컨, 영국의 윌버포스처럼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 한반도 땅에 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사야 58장 6~11절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려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춸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며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글쓴이: 진리는타협하지않는다 님

사막은 은혜의 땅 20

친구 정규는 그날 이후로 동거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다시 시작하면서 가족 초청을 마무리 지 었다. 그리고 이듬해에 아내와 아이들을 모두 미국 땅으로 불러 들여 재결합할 수 있었다. 다 깨어졌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가 바로 내 눈앞에서 벌어졌던 것이었다. 정규의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뉴욕에서 행복하게 살며 교회의 귀한 일꾼으로 사역을 감당하면서 은혜 가운데 잘 살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동료들과 함께 회식하는 날이었다. 고된 일과에 시달리는 것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 러나 한 달에 한 번 회식을 하는 날이면 음식을 잘 먹고 노는 것 까지는 좋은데, 꼭 술병이 따라 붙기 때문에 나로서는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동료들 가운데는 술 마시기를 거절하고 한 쪽 구석에서 콜라잔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나를 보고 "김 목 사, 그래도 딱 한 잔만 해보지 그래. 예수님도 포도주는 많이 마셨다고 하던데…. 뭐 술 마시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하며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나는 성령 체험을 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술과 담배를 즐기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약속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약속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직장 동료들도 나의 그런 신앙적인 결심을 이해해 주었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술, 담배를 즐기는 교인들과는 좀 다르다는 인정을 해주기 시작했다.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술, 담배의 문제는 하나님 앞으로 나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접대 문화가 잘 발달되어 있는 한국에서 종교적인 신념을 고집 하여 술, 담배를 거부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왕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숨어가면서, 또 어떤 이 들은 이중적인 모습으로 이 문제를 피해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술, 담배의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는 관점, 또는 개인의 건강 문제 등으로 보고 본인의 상황에 따라 결정할 문제이지 이를 신앙적인 문제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한국 개신교에서 술, 담배를 절대 터부시하는 것은 한국적인 개신교만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영국 등 개신교의 뿌리가 되는 국가에서도 청교도적인 삶을 강조하는 종파에서는 술, 담배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적인 상황과 좀 다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술, 담배 문제는 개인적인 소신, 또는 건강 문제로 개인이 알아서 결정해야 될 사항이지, 종교적인 신념으로 이해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아직까지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혼자만 마 음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문제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을 권면하고 싶다. 사단은 늘 우리 마음 가운데 죄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너 같은 인간이 무슨 크리스천이 될 수 있겠나'는 식의 참소당하는 마음이 들게 하고 이를 통해 신앙인들을 좌절시키고 있다.

 

술, 담배 문제 때문에 늘 좌절하면서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단이 가장 원하는 결과가 아니겠는가. 끊을 수 있다면 끊는 것이 가장 좋지만, 만일 그렇지 못할지라도 술, 담배 문제로 자기 스스로에게 이중인격자,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간 등의 참소 딱지를 붙이는 일이 없게 되길 바란다. 술, 담배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일이다. 또한 하나님 앞에 날마다 가까이 나아가다 보면 술, 담배의 문제는 성령의 도움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받게 된다. 사단은 참으로 영악한 영물이다. 그래서 늘 우리의 생각을 앞서간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하는 우리 의 원수다. 믿음 위에 잠시 선 듯하면 다시 쓰러뜨리려는 존재가 바로 사단이다. 술, 담배의 문제를 개인 의지의 결정 문제로 생각하지 말과 영적인 문제로 바라보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기 시작하면 보다 쉽게 그 문제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풍성하게 받으면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척 사모하기는 했으나 그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철저히 인정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깨닫고 있었지만 그 분의 신묘막측한 놀라운 말씀에 어떻게 좀더 체계적으로 다가가야 할지에 대한 이렇다 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나름대로 개발한 방법이 아침 출근 전 라스베이거스식(?) 성경 읽기였다. 라스베이거스식이라고 하니까 말이 좀 그런데, 집을 나서기 전에 나는 성경책을 들고 기도한 후에 아무 페이지나 열리는 대로 말씀을 한 구절 찍어 보고 그 말씀이 바로 오늘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기 원하시는 말씀이라고 믿고 그 말씀을 계속 암송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요 행수를 바라는 라스베이거스 심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라스베이거스식 성경 읽기라고 스스로 재미 삼아 이 름을 붙였다. 그런데 이런 엉뚱한 방법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를 주셨다.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는 정말 내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시곤 해서 나는 이런 식으로 성경 읽는 방법에 대해 묘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내 주위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그렇게 읽는 것은 성경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남들이 뭐라하든 나는 어떤 말씀이 어떻게 떨어질지 모르는 라스베이거스식 매일 성경 읽기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고 많은 말씀을 암기할 수 있었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은 봉제 공장에서 함께 일하던 한 여자 집사님이 적극적으로 다리를 놓으면서였다. 그때까지 만 해도 나는 다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일에 정말 자신이 없었다. 이미 호적상 세 번 결혼에 실패했고, 아들까지 한 명 딸려 있는 홀아비에게 과연 누가 시집을 오겠냐는 자격지심마저 심해서 다시 결혼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함께 일하던 집사님 한 분이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 신앙심만 좋다면 다른 조건은 아무것도 안 보고 결혼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꼭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예수에 미친 사람끼리 만나서 이야기도 나눠 보고, 또 좋으면 함께 가정을 이뤄서 사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냐며 무조건 중매를 밀어붙였다. 그렇게 떠밀려서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난 곳은 맨해튼 봉제 공장 앞 버거킹 햄버거 가게에서 였다. 맞선을 보기에는 분위기도 좀 그렇고 적절한 장소도 아니었지만 우선은 공장에서 가까웠고 무엇보다도 특별히 분위기가 좋은 장소라고는 한 곳도 아는 곳이 없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창 50) 천년을 하룻밤 같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광야에서 25년을 행하게 하신 다음 이삭을 주셨으며 이삭의 기다림을 지나 야곱에 이르러 열 두 아들로 열 두 지파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 두 아들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부끄러운 죄를 범한 르우벤이나 잔혹한 만행을 저지른 시므온과 레위까지도 말입니다. 이들 열 두 지파로 나라를 이루게 하시었으며 유다의 계보를 통하여 마침내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부르심이요 택하심이요 은혜 베푸심이었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부끄럽고 흠 많은 죄인들을 불러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케 하사 그리스도의 신부, 교회로 삼으시고 주님이 오시기까지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이제 야곱은 아들들을 축복하기를 마치고 자신의 시신을 가나안 땅에 메어다가 아브라함이 헷 사람에게서 산 막벨라 굴, 아브라함과 사라, 그리고 레아가 잠들어 있는 그 굴에 장사하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147년 일생을 하나님 앞에서 걸어온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다 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갑니다. 이제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날까지,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그 모든 잠든 자를 일으키실 먼 훗날, 그 날까지 긴 기다림 속으로 잠들게 될 것입니다.

야곱이 죽자 요셉은 아비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을 맞추고 그 수종의사에게 명하여 향재료를 그 아비의 몸에 넣게 합니다. 사십일 동안 향재료를 넣고 애굽사람들은 칠십일 동안 곡을 하였으며 바로의 허락과 분부로 온 집안과 바로의 궁의 신하들과 장로들과 군사들로 거대한 무리를 이루어 야곱의 시신을 가나안 땅으로 옮겨 헤브론, 마므레 앞 막벨라 굴에 성대하게 장사합니다.

(그로부터 3,5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 이 막벨라 굴 위에는 건물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건물의 절반은 유대인들의 기도처소로, 절반은 무슬림들의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지하에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의 무덤이 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다림입니다.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기다림입니다. 아브라함은 광야를 행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씨를 주시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이삭은 광야에서, 장막에서 기다렸습니다. 야곱은 일생 동안 하나님 앞에서 나그네길을 걸으며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실로가 오시기까지 기다릴 것입니다. 교회도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는 막벨라 굴에서 지금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도 곧 그들과 함께 누워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그리스도는 언제나 다시 오실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그 때는 천사도 모르고 그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께서만 아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는 땅속에 누워 지금쯤 기다림에 지쳐 있을까요? 우리보다 앞서간 수많은 성도들도 기다리며 지루해 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죽은 자에게는 아무리 긴 시간도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수천 년, 수만 년이 지난다 해도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시는 순간, 마치 방금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아무리 긴 시간도 하룻밤처럼, 잠깐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의 생각, 우리 편에서 보는 기준일 뿐입니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길게 느껴지는 아득한 세월도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십억 년, 수백억 년 우주의 역사 가운데 우리 인류의 역사는 하룻밤이요 순간일 뿐입니다. 시간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시간이란 다만 피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 긴 시간을 지루하게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천년, 만년, 억년, 수십억년, 아무리 긴 시간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면 그만입니다. 영생이란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수 만 년, 수 백 만년이 아닙니다. 수 백 억년 수 천 억년도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끝이 없는 영원이란 긴 시간입니다. 우리의 영생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도 잠 든 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도 곧 같은 약속 안에서 잠들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천년을 하룻밤같이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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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은혜의 땅 19

 

한국에 나가서 돈 때문에 혼인신고를 하고 이민 수속을 시작한 것은 하나님 앞에 서 명백히 죄를 범한 것이라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며 통사정을 했다. 이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지겹고 나도 좀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가지고 그것을 용납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그렇게라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마음에 고통이 쌓여 갔다. 한국에서는 왜 빨리 이민 수속에 필요한 서류들을 보내지 않느냐고 매일 독촉을 해 왔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그냥 차일피일 핑계를 대면서 마음에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민 서류 보내는 일을 미루기만 했다. 그러면서 수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한국에서 소포 뭉치가 도착했다. 여자 쪽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다른 파트너(?)를 찾았으니 나와는 이혼 수속을 빨리 진행시킬 수 있도록 서류에 도장을 찍어 보내 달라는 편지와 함께 말이다.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어 돌려보낸 후에 마음이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그동안 위장 결혼 문제로 나의 양심을 찍어 누르고 있던 죄의식이 사라지고 이제는 다시 성령과 교통할 수 있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참 죄송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멍청한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 
  
그때 나는 아직 20대의 나이였는데, 호적상으로는 벌써 세 번이나 이혼한 보기 드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내가 하나님 앞에 서원한 작은 봉사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대상 꽃 봉사 였다. 당시 나는 적은 수입에 아파트비를 내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황이 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에 잠잘 곳이 없어서 노숙자 신세로까지 전락했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해 볼 때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충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작은 정성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고 그렇게 시작한 봉사가 주일 강단 꽃 당번이었다. 작은 개척 교회에서 누구 하나 주일 강단을 꾸미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그 일을 맡겨 주셔서 기쁨으로 매주일 감당하게 하셨다. 토요일 아침이면 도매시장에 가서 꽃 장식에 사용할 꽃을 구입해서 교회 강단에 장식을 했다. 장식을 마치고 나면 일주일 동안 때 묻고 사회생활에 찌들었던 몸과 영혼이 다 씻김을 받고 꽃처럼 아름답게 변하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꽃을 어떻게 장식하는 줄 몰라서 그냥 눈에 좋은 대로 이리 저리 꽂으면서 엉성하게 장식을 하곤 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꽃꽂이에도 일가견이 생겨서 주일 꽃 장식을 마치고 나면 여러 성도들이 마치 전문가가 해 놓은 것같이 아름답다고 칭찬을 해주기도 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작은 부분으로나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드려서 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뻤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느낌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 줄을 그때까지 깨 닫지 못했다. 
  
직장 동료 가운데 한국에 부인을 두고 먼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왔다가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던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가로막고 있는 '불륜'이라는 큰 벽이 놓여 있었다. 나이도 나와 동갑이었던 그는 해서는 안 되는 외도를 하면서 한국에 두고 온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거의 매일 술독에 빠져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 가운데 그 친구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강한 감동을 주셨다. 물론 그 사이에도 전도를 위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던 적은 있었지만 그 친구 형편 도 있고 해서 그렇게 강압적으로 권유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그 친구에게 또 다른 마음의 큰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너무도 인간적인 발상이었다. 모든 일에 능통하신 하나님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현실에 적응하는 데는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불편한 느낌 때문에 그 친구를 강권적으로 주님 앞에 인도하는 일을 계속 보류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규야,우리 이제부터라도 예수 잘 믿고 신앙생활 같이 한 번 잘 해 보자." 
  
"또 그 얘기냐. 제발 집어치워라." 
  
"그리고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동거 생활은 청산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 
  
그 이야기가 나오자 그 친구는 곧바로 눈을 부릅뜨고 잡아먹을 듯이 말했다. 
  
"너는 속사정도 모르면서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하지 마라." 
  
"절대로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예수님이 나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시는 것처럼 나도 너를 친구로서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위해서 그리고 나의 영혼을 위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말문을 열어 놓고 나는 곧바로 그 친구의 손을 잡고 큰 목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에는 얼떨결에 잡힌 손을 잡아 빼려고 움츠리기도 했으나 조금 지나자 그대로 손을 내게 맡겨놓은 채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친구 정규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친구의 삶을 형통케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비록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살다가 가는 아침 이슬과 같이 허무한 것이지만,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맛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이 시간에 친구 정규를 위해 기도하오니 하나님의 영을 넘치게 부어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어떤 잘못된 행실이 있었다면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게 길을 열어 주시옵고 또한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가아 할 것인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밝히 보여주시옵소서. 우리들은 너무도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강하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 영혼을 들어 당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얼마 동안을 그렇게 기도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다 보니 언제부턴가 정규가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마음에 덮여 있던 죄의 흔적들이 기도하는 가운데 드러나며 성령님께서 씻어주시고 치유하고 계셨던 것 이었다.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였다. 
  
나는 그날 성령님께서 왜 내게 정규를 다시 전도하라는 강한 감동을 주셨는지 그렇게 함께 기도하고 난 다음에 깨달을 수 있었다.  

 

출처: 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400만명이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죽었고, 800만이 넘는 사람들이 영양실조다. 정치범 수용소라는 곳에서는 감히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잔인함과 혹독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간다.


말 그대로 인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죽은 영이 지배하는 가련한 땅...


돈이 없어 기차가 제대로 운행도 못하고, 밤 10시가 되면 전기가 끊어져 암흑세계가 되는 등 전력난에 허덕일지언정 금으로 쏟아 부어 만든 4만 여개에 달하는 김일성ㆍ김정일 동상에는 밤새도록 불을 환히 밝혀 놓으며, 인간을 신(神)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는 이런 미친 짓이 행해지는 곳... 이곳이 바로 북한 땅이다.


그런데 이런 북한에 대해 한국교회와 크리스챤들은 침묵한다.

고통당하는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과 인권 유린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사안이라고 애써 외면하면서 오히려 '사랑의 하나님'을 핑계로 북한 정권을 감싸고 옹호하며, 북한이 주장하는대로 '대화'를 통해 '평화'를 지켜야 한다며, 또 다시 돈과 식량을 북한에 제공하자고 외치는 앵무새들만 있을 뿐이다.


그렇게 '사랑'을 좋아하면서도 정작 핍박당하고, 잔인하게 죽어가는 정치범 수용소의 사람들과 지금도 북한 곳처의 지하교회에서 목숨걸고 예배드리며, 오직 악랄한 북한 정권으로부터 해방될 구원의 날만 기다리는 가련한 북한 성도들에 대해서는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한다.


아무데나 '하나님의 사랑' 운운하며,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가장 비겁하고 비열한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은 안해 봤는가?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민간단체 차원으로 시행했던 북한에 대한 지원... 그 수많은 돈과 식량은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독재 체제를 연장시키는 수단이 되고 있다.


가련하고 불쌍한 북한 주민들, 특히 북한의 지하교회 크리스챤들은 더욱 핍박받고, 비참하게 처형당하며 죽어가고 있으며, 이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 댓가로 대한민국에게 핵과 미사일로 보답(?)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미국과 온 세계를 향해 협박과 위협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어디 그 뿐인가? 북한의 특권층 자녀들만이 다니고 있는 북한 유일의 사립대인 평양과학기술대학은 한국 교회가 설립했으며,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400억 원이 넘는 돈이 여기로 흘러 들어갔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갈 때... 북한 내의 크리스챤들이 잔인하게 죽음당할 때... 평양과학기술대학의 특권층 자녀들은 한국 교회가 보내 준 돈으로 이곳 기숙사에서 삼시 세끼 아주 잘 먹고 잘 지냈다.


너무 아이러니하지 아니한가?

한국 교회가 북한 선교의 명목으로 가져다 준 수많은 돈이 되려 북한 정권의 독재 체제를 더욱 더 강화, 유지, 연장시켜주는 결과를 가져온 반면, 70여년 가까이 자유의 날만 기다려 온 북한 내에 숨어있던 크리스챤들은 오히려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이전보다 더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으니...


북한으로 들어갔다던 돈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수치가 400억원 정도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 열 배, 그 스무 배가 더 될런지 어찌 알겠는가? 또한 북한 선교의 목적으로 보내졌다는 돈이 1500억 원을 들인 김정은 별장을 짓는데 사용되지 않았다고 그 누가,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행하려는 나눔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나눔이고, 누구에 대한 사랑의 서약인 것인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지만 동시에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는(히 9:27) 말씀처럼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다.


따라서 인간이라면 개돼지가 아닌 정말 인간이라면 무엇보다 진리와 정의 위에 바로 서야 하며, 사랑만을 앞세워 진리와 정의되신 하나님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불쌍한 북한 주민들의 비참함은 아예 모른체 하면서 여전히 북한 독재정권을 정당화하고, 사랑과 평화라는 이름으로 옹호하고 감싸는 자들이 만일 이 나라의 정권을 잡고, 또 그들이 한반도 통일의 주축세력이 된다면 이 나라의 운명은 어찌될까? 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친다.


선악을 분별해야 한다. 선한 것에는 선하다고 인정하고, 악한 것에는 당당하게 대항할 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침묵했고, 지금까지 외면했으면 충분하다.


아름다운 대한민국의 완성,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악랄한 북한 정권의 궤멸이다. 김정은 정권은 심판과 척결의 대상이지 결코 대화와 평화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그래야만 불쌍한 북한 주민들을 하루 속히 구원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리했을 때만이 비로소 한반도에 진정한 '자유통일'과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 절대 잊으면 안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바쳐 죽어간 수많은 분들이 흘리신 고귀한 핏 값임을...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며, '평화' 역시 '힘'이 있을 때에만 지킬 수 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지금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 지구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었던 자유월남이 지금의 대한민국과 너무나도 닮은 그 모습에 자칫하면 대한민국도 제2의 자유월남이 되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서글픔과 두려움에 매일 밤 숨이 막혀 온다.


그런데 지금 나라가 무너지고 있는게 뻔히 보이는데...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는 게 보이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의 앞날이 피바다가 된다는 게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정말 안 보이는걸까?


오히려 사람들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평온하게만 보인다.


특히, 아직도 침묵하고 있는 한국교회와 크리스챤들... 그들은 더 '샬롬'하다. 난 이게 너무 끔찍하고 소름끼친다.




글 출처: Jaehee Kim님 페이스북




무엇을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는가!


국가를 위해 회개한다 말하면서 무엇을 회개할 지 난망한 이들이 많다.


간단하다.

거짓 평화-가짜 평화, 이기적 안락에 빠져 북한 주체사상 정권-우상숭배 체제를 지지-지원-강화해 온 죄.


세계적인 대북압박 분위기 속에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북한을 돕자며 핵 개발의 동지가 되려는 죄.


일제시대 신사참배로 배도했고 wcc를 통해 배도하며 나아가 한국 상당수 교단이 "김일성이 신"이라는 봉수-칠골교회와 연합-연대-동행하자며 결의해 온 죄.


한국 대다수 교단이 북한인권 문제에 철저히 침묵해 온 죄.


온갖 수용소와 거리에서 동족들이 죽어가는 데도 주체정권-우상체제 종식을 위해 기도하지도 행동하지도 않은 죄.


그 결과 복음파가 아닌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 주사파가 한국의 정치적 대세로 굳어져 혼란과 심판과 재앙을 자초케 한 죄.


빛과 어둠의 분별을 잃어 북한 주체정권과 남한 주사파를 악이라 말하지 않은 죄.


복음통일, 선교하는 제사장 나라의 비전을 잊고 음란과 죄악, 안일 속에 절망해 버린 죄.


한국 교회가 유물론 사회주의 세계관에서 복음주의 세계관으로 회복될 때 이 땅에 부흥이 다시 임할 것이다.


* 국가적 위기의 원인과 절박한 기도의 제목을 외면한 채 애매하고 모호한 방향으로 교회를 인도하는 것이 미혹이다. 사탄은 기도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버린다.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히 3:8)



- 김성욱 대표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기도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 도움이 되는 3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의무감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기도하라.


때로 우리는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기도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린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나아가 쉼과 안식을 얻고자 하지 않고, 기도를 일이나 하나의 의식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에게 쉼과 안식을 주는 방법이 된다면,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잘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기도에 대한 열정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더욱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말하라.


기도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정치적으로’ 옳고 좋아보이는 말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기도를 살펴보자. 그는 하나님 앞에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편 42:9~11)라고 기도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으며, 이는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기도에 잘 드러나 있다. 시편을 읽다보면, 다윗이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쏟아내는 구절을 자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다윗과 동일하게 당신 앞에 나아오길 원하신다. 있는 모습 그대로 정직하게, 신실하게,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나아오길 원하신다. 이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항상 더 나은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준다.


기도는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에 대한 것이다.


기도를 하든지 안 하든지 여러분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함에는 변함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마 6:8)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필요한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의 초점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성장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더 간절히 우리와 소통하길 원하신다.


기도를 통해 더욱 그분의 뜻과 능력과 신실함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잘 되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다.



출처: 크리스찬 투데이

北 "오산·평택 미군기지와 청와대, 몇 분이면 초토화"(종합)

 

 

 

북한은 14일 최근 군사적 압박에 반발,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남조선의 오산과 군산, 평택을 비롯한 미군기지들과 청와대를 포함한 악의 본거지들은 단 몇 분이면 초토화된다"고 주장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4일 대변인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엄중한 군사적 도발 광기가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단계로 치달았다"며 "미국의 날강도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도발 책동을 우리 군대와 인민의 초강경 대응으로 철저히 짓부셔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 최자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초강경 대응, 선제타격 포함"

미국 본토도 언급…'김정은 지시' 시사

남한 군사 요충지 언급하며 '협박' 노골화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북한은 14일 최근 군사적 압박에 반발, '선제타격'을 언급하며 "남조선의 오산과 군산, 평택을 비롯한 미군기지들과 청와대를 포함한 악의 본거지들은 단 몇 분이면 초토화된다"고 주장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14일 대변인 성명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엄중한 군사적 도발 광기가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단계로 치달았다"며 "미국의 날강도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도발 책동을 우리 군대와 인민의 초강경 대응으로 철저히 짓부셔버릴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미국이 걸어오는 도발의 종류와 수위에 맞는 우리 식의 적중한 초강경 대응이 그 즉시 따라서게 될 것"이라며 "초강경 대응에는 지상, 해상, 수중, 공중 기동을 동반한 우리 식의 불의적인 선제타격안을 비롯한 여러 안이 들어 있다"고 강조했다.

 

또 한반도로 급히 방향을 돌린 칼빈슨호와 관련해 "핵 항공모함을 포함한 덩지(덩치) 큰 목표들이 가까이에 접근해올수록 섬멸적 타격의 효과는 더욱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은 이번 입장 발표가 '위임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고 밝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임을 시사했다.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은 지난해 9월 22일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성명이 언급한 오산, 군산, 평택 미군기지에는 공군 부대가 있다.

북한은 주한미군 공군의 정보수집 능력을 무력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성명은 "우리 군대와 인민은 핵 타격 수단을 포함한 모든 초강경 대응을 따라 세울 수 있게 만단의 격동 상태를 항시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며 "얻어맞고서도 즉시적인 대응이 없는 시리아처럼 우리를 대한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 나아가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 괌을 비롯한 미군기지들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우리의 전략 로켓군의 조준경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ksw08@yna.co.kr

[경향신문]

지난 11일 전북 전주 완주군의 한 야산에서 피의자 김모씨(53·여·왼쪽)가 시신 유기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 제공

진돗개를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세살배기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신도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아이의 어머니는 시신 유기에 동참하고 거짓으로 실종 신고를 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아이를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사이비 종교 신도 김모씨(53·여)를 폭행치사·사체유기·사체손괴 혐의로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은 또한 시신 유기를 도운 모친 최모씨(41·여)와 교주 부부 안모씨(55)와 이모씨(49·여)도 사체유기·사체손괴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또 시신 유기를 도운 다른 김모씨(71·여)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2014년 7월7일 오전 11시쯤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연립주택에서 김씨는 최씨의 아들(당시 3세)이 전날 바지에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혼을 냈다. 아이가 울자 김씨는 “악귀가 씌었다”며 나무 주걱으로 머리와 입술 등을 때려 숨지게 했다. 모친 최씨는 이 상황을 보고 있었지만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이들은 진돗개를 ‘영물’로 숭배하는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서울과 전주 지역에서 진돗개 10여 마리를 키우며 공동생활을 했다. 경찰은 이 종교집단의 신도가 20~30명쯤이며 이중 10여명이 공동생활을 한 것으로 파악했다. 최씨는 2014년 2월 남편과 이혼한 뒤 딸(10)과 아들을 데리고 이 종교집단에서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부터 김씨는 “악귀가 씌어 아이가 고집이 세고 말을 듣지 않는다”며 최씨의 아들을 수차례 폭행해왔다.

아이가 죽자 범행이 들통날까 두려워진 김씨와 최씨는 교주의 아내 이씨와 함께 아이 시신을 나무 상자에 넣어 이 종교집단의 다른 주거지가 있는 전북 전주 완주군으로 가서 근처 야산에 묻었다. 사흘 뒤 교주 안씨가 멧돼지가 시신을 파낼 것을 걱정하자 이들은 시신을 다시 파내 그 자리에서 화장하고 임실군의 한 강변에 유골을 뿌렸다.

 

최씨는 범행 후 한 달이 지난 2014년 8월 경찰에 ‘경기 부천의 한 백화점 앞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거짓 실종 신고를 했다. 경찰은 이 백화점 주변을 집중 수색하고 탐문을 벌였지만 아무런 단서가 잡히지 않았다. 경찰은 최씨가 아들이 실종된 지 한 달 후에 신고한 점, 아들이 실종된 시간과 장소 말고는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점, 수사에 비협조적인 점을 의심해 수사를 종결하지 않고 최씨의 주변을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 3일 전주에서 김씨의 지시를 받아 시신을 유기할 땅을 팠던 다른 김씨를 설득해 진술을 이끌어냈다. 이 종교집단은 2015년 서울과 전주의 주거지를 없애고 경기 용인으로 모였다. 지난 7일 경찰은 서울 모처에서 최씨를, 다음날인 8일 용인의 한 연립주택에서 김씨 등 3명을 검거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는 처음엔 자신이 아들을 죽였다고 거짓 자백하며 김씨를 감쌀 정도로 미혹당했다”며 “최씨는 뒤늦게 ‘죽은 아들에게 미안하다’며 김씨를 원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My confession in the Cross

(십자가 안에서 내 고백)

                                     written by - The true _




 

I've been the first to point fingers,

to bring up someone else's fault to light,

and to argue for changes.

I was hoping and convinced this was how I would make
our faith better and do a service to our Lord.

This was my way of justice.

나는 처음에 손가락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끄집어 내어,
빛으로 들고 나오기도 했으며,
변화를 위해 다투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을 잘 섬기는 길이요
우리의 믿음을 보다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라
확신했고 소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내 방식대로 의로움이었습니다.

Then,

I came to realize that I was pointing

fingers to myself exposing my own faults.

I saw myself on the very person

who I was pointing fingers at.

다음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 자신의 잘못들을 드러내며
지적하는 손가락들이 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손가락질하며 지적했던 그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Then,

I saw our Lord still weeping in the Cross

after all this time while I was claiming

being on the true side

I saw it was I keeping Him up there.

그리고,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진리 편에 서 있다고 주장하던 내내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여전히 눈물 흘리고 계셔야 했음을...

나는 보았습니다,

내가 남을 정죄하는 그것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 위에 계속 매달아 놓는 것임을.

Then,

I realized that the silent suffering of Him

in the Cross for someone else's sins was and

is His way of doing justice.

그리고,

나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이들의 죄를 위하여

그분께서 묵묵히 고통의 십자가를 지셨고,
그것이 의로움을 위한 그분의 방법이란 것을...
                     
  < 번역/ 최 송연 >



 




이 詩의 작가님이신 The True님의
깊은 신앙심을 다시금 배우길 원하면서...
                                      

                        

 

 


우리가 전한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 하였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53:1,3,5,6)

 

사막은 은혜의 땅 18

나는 교회생활이 그렇게 기쁘고 재미있는 것인 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말씀이 꿀송이처럼 달고 오묘하게 받아들여지며내 영혼을 쪼개고 다스리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교회생활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에 온 사람 같았다. 몇 주 동안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기도하는 가운 데 아주 선명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너는 환난 가운데 늘 감사하고 기뻐하라." 
  
그 음성을 들으면서 지난날 나의 삶이 슬라이드처럼 스쳐갔다. 한국에서 겪었던 수많은 환난과 고통의 순간들이 가시가 되어서 내 몸 곳곳에 화살처럼 박혀 있는 환상을 보았다. 사랑하는 둘째 누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아픔, 삼청교육대에서 경험한 지옥 훈련의 고통, 그리고 폐병을 앓으면서 거의 매일 한 사발씩 각혈을 토해내던 때의 고통스런 순간들, 자식까지 버리고 나간 아내에 대한 분노, 아이를 구타하는 아내 등등….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있던 아픔의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 순간 나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온몸을 떨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그 아픔은 한꺼번에 나를 짓눌러 왔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절규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같은 말씀을 주셨다. 
  
"너는 환난 가운데 늘 감사하고 기뻐하라." 
  
그 순간 나는 하나님이 내 마음 가운데서 모든 고통들을 치유해 주시기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리고 그 날 이후부터 나는 며칠 밤낮을 울면서 뜨겁게 회개의 기도를 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참된 선과 악이 무엇인지 확연하게 구별하는 영적인 분별의 눈을 갖게 되었다. 내 의식 가운데 선과 악이 확실하게 구분되면서 마음 속으로 이제는 더 이상 악의 편에 서지 않아야겠다는 결단을 했다. 
  
기도할 때마다 뜨거운 성령의 체험이 있었다. 수년 전 폐병 3기에서 치유되던 그날 새벽에 내 코를 통해 뭔가 액체 같은 것이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을 회개의 기도를 할 때마다 느꼈다. 그것은 환상적인 영적 체험이었다. 성령의 실체가 그렇게 분명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성령의 존재를 잘 믿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나는 매순간 성령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는 신비하고 뜨거운 경험을 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면서 직장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교인의 소개로 뉴욕 맨해튼에 있는 봉제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뉴욕 맨해튼 8가에 있는 봉제공장은 미국에 이민온 한인이민자들이면 누구나 한번씩 거쳐가는 코스였다. 미국에 와서 잡은 첫 직장에서 나는 주급150달러씩을 받으면서 열심히 일했다. 직장이라고는 했지만 성령의 불을 남달리 강하게 받은 내게 있어서 직장은 또다른 전도와 예배의 장소였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정도로 내 마음 가운데는 복음을 전하고 불신자들에게 예수를 영접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용광로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일하는 시간 동안 찬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마쳤으며, 집에서 맨해튼으로 출근하는 지하철에서도 노방전 도를 시작했다. 영어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였지만 그래도 성경책을 들고 지하철 안에서 "Jesus Loves you, Believe in Him. He will give you a happy life!"를 외치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렸다. 씨앗을 뿌리면 거두시는 이는 성령님이시라는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했다. 둘째 누님이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먼저 돌아가신 아픈 상처가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나는 더 미친 사람처럼 열심을 내서 전도했던 것 같다. 복음을 듣지 못하과 아니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어서 예수를 영접하지 못했다면 물론 그 영혼도 불쌍하다. 그러나 나중에 천국에 가서 먼저 예수를 믿게 된 자로 부지런히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는데 대한 책망을 하나님에게서 듣게 될 것이 공연히 겁나기도 했다. 여러 사람에게 미친 사람 같다는 손가락질도 당했다. 직장에서 전도하다가 램을 맞기도 했다. 
  
"야, 너나 잘 믿어. 나는 필요 없으니까." 
  
"아저씨, 그래도 예수 잘 믿으시고 꼭 천당에 가세요. 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극성스럽게 전도하면서 알게 모르게 전도의 열매들도 많이 얻게 되었다. 이민 초기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에 미쳐 돌아가는 나를 보고 형님은 당장 나가서 따로 살라고 고함을 지르곤 했다. 그리고 형님 집에 함께 있던 어머님도 근심스런 눈으로 "너는 왜 그렇게 요란하게 예수를 믿냐"라고 하시며 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몇 달 정도 형님 집에 얹혀 살던 더부살이 살림을 청산하고 근근이 모은 월급을 가지고 플러싱 인근에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구해서 이사를 나왔다. 형님이 미국까지 불러 준 것도 고마운데 그 집에서 계속 신세를 지고 있는 것이 미안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자립을 하고 싶었다. 아들 성민이는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는데 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돌봐 줄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유치원에 보내기에는 형편이 되질 않아서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궁리 끝에 안정이 될 때까지 한국에 있는 셋째 형 님 집에 아이를 좀 맡겨 놓고, 나는 일하는 시간을 좀더 늘려서 저축을 더 한 후에 아이를 다시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아이를 형님 집에 맡겨 놓기 위해 한국에 잠깐 나가 있던 동안 계획에 없던 일이 벌어졌다. 큰 형수가 중매를 서겠으니 사람을 한 번 만나보고 가라는 것이 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서 가정을 다시 이룬다는 것이 아직도 마음 가운데 큰 부담으로 남아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형수는 상대방 쪽에서 미국 영주권자라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아들이 하나 딸려 있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며 한사코 꼭 만나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그 여자 쪽 집안이 돈이 많은 집안이라는 말이었다. 
  
"돈이 많은 부잣집이라고…" 
  
너무도 세상적이고 얄팍한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 당시 여자 집안이 부자라는 말에 혹해서 맞선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 두어 번 만난 후에 일단 혼인신고를 먼저 하고 미국에 들어가서 초청 절차를 밟기로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이제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아들 성민이에게도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열심히 교회생활,  전도 활동을 시작하는 등 한국을 방문하기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가운데 한순간 성령님의 질책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출처:김동욱 500/김태훈 목사

무슬림과 기독교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기독교보호

 

 

 

무슬림과 기독교에 대한 트럼프의 입장
#기독교보호



































이 이야기를 트럼프가 하는 동안 아나운서  표정이 일그러진다.
'오오~그건 아니야!'하는 표정으로-







그러다가

이 아나운서는 정치적올바름 현상때문이라고 한마디를 꼬집는다.
(사실 몇몇 영상을 통해 느낀건, 이 아나운서는 트럼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허나, 미국에서 기독교가 은연중에 박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동성애와 무슬림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나, 정작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기독교는 벼랑 끝에 몰린 상태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단호히 "NO"라고 이야기한다.





정부차원에서 기독교를 억압했던 것을
트럼프가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기독교적 목소리를 높이면, 정부차원에서 세금감면 혜택을 없애는 등
불이익을 주려고 했었던 것을 트럼프는 거론했다.

(오바마 정부는 무슬림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고, 무슬림에 대해 우호적이다.)
언론에서는 오바마를 좋은 이미지로 포장했지만,
실은 그의 정책들은 사회적으로 많은 혼란을 가중시켰다.

미국은 도덕이 무너졌고, 분열되었다.
학교에서는 국기를 계양할 수 없으며, 국가를 부를 수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미국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는 이유로-)
성탄절에는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대신 happy holiday라고 인사하도록 강요되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다른 종교인들이 불쾌할 수 있으므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거나,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면 감옥에 들어가는 일이 생겼다.

트럼프는 이렇게 변해가는 미국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미국이 기독교적 초석을 다지며 다시금 하나님이 사랑하는 국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다.


출처 : 옛적 그 선한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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