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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이승구 교수(국제신대) | |
성경이 말하는 천국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며, 예수 재림 때 영육 부활이 최종 소망 --
이승구(국제신대 교수)
한국 교회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받은 한국 사회에서 ‘천국’이라는 말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일례로 현재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에서 이 용어가 어떻게 전달되는지 살펴보고, 성경과 성경적 신학은 이 말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생각해보기로 하자.
일반적으로 '천국'은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 죽은 다음에 가게 되는 곳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곳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생각들이 또 나뉜다.
물질적 천국관을 가진 이들
어떤 이들은 죽은 다음에 가는 그곳에 대해 매우 물질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곳은 황금으로 되어 있다느니, 살고 있는 집의 이해도 현세의 아파트와 비슷한 것으로 생각해 구체적인 평수를 언급하는 일까지 있다. 아마도 이런 생각 배후에는 죽은 다음에 가게 되는 곳이 집인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대개 죽었다가 살아난 경험을(near death experience:임사 체험) 가진 이들이 말하는 것에 이런 이해가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생각은 세상 사람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쳐 매우 아름다운 곳을 보거나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천국 같다고 하거나 천국보다 더 낫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이런 이면에는 물질적 천국관이 상당히 뿌리 깊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성경은 이런 물질적 천국관이 있을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죽은 후에 가는 곳이 없다는 이들
이런 사람과는 정반대로 죽은 후에 인간 영혼이 어딘가에 가 있게 된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런 입장을 지닌 사람들은 스펙트럼이 다양한데 △인간은 단일체여서 육체가 죽으면 존재가 소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 △단일체로서의 인간이 마지막에 부활하게 된다고 믿는 이들 △인간 영혼은 죽음 이후 심판 때까지 잠자고 있다는 영혼수면설을 주장하는 이들(종교개혁 시대의 재세례파 및 일부 이단) △사람은 죽자마자 부활체를 가지고 극치에 이른 천국을 이미 향유한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중간기(intermediate period)가 수면이라는 소극적 의미로만 있거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는 이들은 영혼수면설을 강하게 부정하고, 중간기를 부인하는 입장을 옳지 않은 것으로 본다.
중간기에 대한 영적 이해를 가진 이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중간기 동안 그리스도인의 몸은 무덤에서 썩지만, 영혼은 하나님 앞에 있음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 영혼은 의식을 가지고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나라가 극치에 이르도록 기다리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중간기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고, 이때는 몸이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오직 영혼의 상태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몸이 부활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 뜻이 역사 가운데서 온전히 성취되기까지 기다리면서 쉬는 것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해 앞에서 우리는 성경이 어떤 견해를 보여주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떤 견해를 가졌는가' 또는 '굉장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어떤 견해를 말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표하는지가 중요하다. 그것이 성경 원리에 충실한 개신교인다운 태도일 것이다. 천국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경은 '천국'이라는 말을 하늘에 있는 나라와 동일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한다(단순한 예로 마 4:17을 막 1:15과 비교해보라). 성경과 성경적 신학을 가진 이들은 천국은 하나님 나라와 동일한 것이며,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 세상에 영적으로 이미 임했으나, 아직 극치에 이르지 않은 상태 즉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 상황 가운데 있다고 이해한다.
영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미 이 땅 위에' 있다. 그러나 아직 물리적으로 오지 않은 상태에 있어 영적으로 이 땅에서 천국 백성으로 사는 이들은 그 나라의 원리를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드러내도록 부름 받은 사명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적 실재로 지금 여기 있고, 그리스도인은 지금 여기서도 천국 백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지금 여기서' 그들이 이미 속해 있는 천국 질서를 드러내야 할 책임이 있다. 이 세상에 대해 못 박혀 죽은 천국 백성은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의(義)의 실현을 위해서만 사는 것이다.
둘째, 이렇게 임했으나 아직 극치에 이르지 않은 '하나님 나라'[天國]에 사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죽는 것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경험의 일부로 그것은 그들 영혼의 성화를 완성시키는 최후의 징계(chastisement)가 된다. 죽음 이후 그리스도인의 몸은 무덤에서 썩지만 영혼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있게 된다.
그들이 행한 일이 그들의 뒤를 따르므로 그들은 잠시 쉬며[安息], 형제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을 누리는 그곳, 하나님께서 계시며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계신, 따라서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온전히 있게 되는 곳을 영어에서는 'heaven'(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 46문, 50문, 52문, 57문) 또는 'the highest heaven'이라고 부르며(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2장1항), 이전 선배들은 이를 '천당(天堂)'이라고 번역해왔다.
하나님 백성인 사람들이 죽는 즉시 하늘에 있게 되며, 예수님과 바울은 그곳을 낙원이라고 부르셨다(눅 23:43, 고후 14:4). 이때는 영혼만 성화되어 온전하고 기쁜 상태 가운데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죽는 것도 경험
따라서 셋째, 천국 백성에게는 영원히 하늘에 있거나 죽어서 하늘에 있는 것이 최종이 아니고 ,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에 살아 있던 영혼과 땅 속에 있는 몸이 다시 결합하여 부활하게 되는 것이 최후 소망이다.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오며"라는 기독교적 고백의 성취는 그리스도 재림 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언급한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부활체를 가지고, 온 세상이 새롭게 된(마 19;28) '새 하늘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 '새 하늘 새 땅'을 극치에 이른 천국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의 성취가 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 이승구 교수. ⓒ뉴스앤조이 신철민
그때는 모든 것이 의, 영광, 생명으로 가득 찰 것이므로 그때를 가리켜 신앙 선배들은 '영광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를 즐겨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극치에 이른 천국의 성취를 바라보면서 지금이나 천상에서나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는 것이고, 결국 천국이 우리들의 최종 목표가 된다.
이같은 성경적 가르침을 성경은 분명히 하고, 과거의 신한 책들도 분명히 제시해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과 성경적 신학의 가르침에 따라 종교적 개념에 관한 언어 생활도 바르게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천국 원리에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고, 그 나라가 극치에 이르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부디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한다.
이승구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wminb@dreamwiz.com
본문과 사진은 뉴스앤조이에서 퍼옴/생명수 쉼터/한아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