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은 절대진리가 아니다
개혁주의 자료 2018. 7. 13. 04:31엄밀히 따져볼 때,
신학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놓고보면,
"중립적 가치"의 학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신학 자체를
'절대선'의 자리에 올려놓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신학을
'절대선'의 자리에 올려놓으면,
말씀안에 신학이 종속되는게 아니라,
신학안에 말씀이 종속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자기의 신학을 공고화 하기 위해,
되려 말씀을 수단으로 이용하게 되고,
그 신학의 틀에서 벗어난 것들은
모두 반진리, 비진리 취급을 당하게 되고,
결국 신학 자체가
절대진리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진짜 중립적 가치에 있는 신학이
진리에 맞는 수단으로 적용되기 위해선,
먼저 하나님 경외함을 최우선에 두고,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속에서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자세가
중심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중심이 바로 서 있다면,
신학은 내가 하나님을 더 잘 알아가기 위한
선한 '수단'이 되는데,
이렇게 되면,
자기가 배운 신학이
말씀안에서
어떤 오류가 있고 문제가 있었는지를,
나중에 성령님과의 교제 속에서
진리에 맞게 교정될 수도 있고,
건강한 영적상태를 유지하며
믿음을 더 성장시켜나가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중심에
그런 영적 기반이 깔려 있지 않고
오로지 신학 자체가
절대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하나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고
성령의 역사가 아닌,
그 신학적 지식을 절대기준 삼아
하나님의 뜻도 다 제끼고,
성령의 역사도 다 제끼고
되려 진리와 상충되는
미혹된 흐름으로 가도록
신학을 마귀가 역이용해
악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자칫 신학을 통해서
맺어질 수 있는 최악의 열매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이런 최악의 열매가
맺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신학에 매몰되어 버리면,
현실적으로 풀어지는 문제에 있어서
영적인 접근이 전혀 안되기 떄문에,
분별 자체가 되지 않는다.
WCC 총회현장에서 그 참담한 실체들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냈음에도,
이게 영적으로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인식 자체가 전혀 되지 않기에,
자기 신학 지식만 가지고서,
WCC의 태동은 이랬고,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는,
말같지 않은 소리나 하고 있고...
또
휴거도 없고, 7년대환란도 없고,
이런건 다 세대주의자들이 만든 교리고,
이스라엘은 이미 구약에서 관계가 끝났고,
그 언약은 교회로 대체되었다는
하나님 마음과 전혀 상관없는 소리를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안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훗날,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을 때,
신학이란 간판 달고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다 하며,
미혹된 흐름을 따라가며,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까지
얼마나 그 미혹을 전염시켰는지에 대한
분명한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신학'이란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 행태다!
글: 엘샤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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