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종교개혁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따라(5)

마틴 루터 2017. 1. 28. 01:50

루터의 종교개혁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길을 따라(5)

 

비텐베르크 시교회 설교 

 

루터는 몇 년 동안 라틴어 성경 연구에 몰두하였는데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중에 하나님의 진리를 많이 깨닫게 되었다. 루터는 수도사이자, 설교가로, 그리고 신학교 교수로 3가지 직책을 수행하였다.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교의 성경 교수로 활동하면서 1517년 까지 비텐베르크 시교회(Wittenberg Stadt Kirche)에서 사제로서 목회사역도 하였다. 

 

당시 대학과 수도원의 전통적인 언어는 라틴어였고, 도시민의 언어는 독일어였다. 그 때문에 루터는 독일어로 설교했는데 이 교회는 독일어로 설교한 최초의 개신교회가 되었다. 세인트 메리 교회(St Mary Church)라고도 불리는 비텐베르크 시교회에서 루터는 매주 정기적으로 설교했다. 

 

목회자로서의 루터는 교인들의 영적인 필요에 대해 깊이 숙고하면서 자신의 설교를 통해 신자들이 성경 진리를 잘 이해하며 하나님을 추구하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양떼 즉 신자들의 구원에 관심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심방도 열심히 했다. 이러한 루터의 신학적 및 목회적 관심은 교회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게 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 1517년 10월 31일루터가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던 이신칭의 교리는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진리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진리와 성경의 새로운 계시의 빛이 루터에게 비취어지자 그는 곧 가톨릭교회의 오류를 보게 되었다. 그 말로 다 할 수 없는 거짓과 속임수와 그리고 온갖 위선을 깨달은 루터는 결코 침묵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어두움의 길로부터 돌이키게 하고자 결심하면서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가톨릭교회의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들추어내기 시작했다. 

 

 1517년 10월 31일, 이른 아침에 긴 사제복을 입은 루터가 어디론가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한 대학 도시 비텐베르크 성교회(Wittenberg Schloss Kirche) 문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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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텐베르크 성교회     ©뉴스파워 김현배

 

대략 낮 12시가 되기 전, 루터는 가지고 온 종이 뭉치를 조심스럽게 펼쳐 들고서 라틴어로 된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못으로 박았다. 지금은 청동문으로 되어 있어 못으로 박을 수 없지만, 그 당시는 나무문으로 되어 있어서 못으로 박을 수 있었다. 이 95개조 반박문 문서는 공개 토론을 위한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신학자들이 모여 신학적 문제에 대하여 토의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때 상황은 긴박하게 돌아갔다. 95개조 논제에 대해 아무도 그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아무런 토론도 없었다. 비텐베르크의 교수와 학생들은 그 문제에 대해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95개조 반박문이 공개 된지 2주 만에 복사되고 번역되어, 전 독일에 알려졌을 뿐만 아니라, 혜성같이 등장한 금속 활자 인쇄술로 인해 4주 만에 전 유럽전역에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마치 갑자기 핵폭탄이 터져 버린 것처럼 로마 교황청을 향해 종교개혁이라는 큰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유럽과 세계사를 진동시킨 역사적인 대사건으로서 그 중심인물은 1483년에 태어난 독일사람 젊은 마르틴 루터이다. 

 

루터는 중세말의 타락한 교회를 새롭게 개혁하여 갱신하고자 했다. 루터와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영적 전쟁으로 인해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95개조 논제의 핵심 내용루터는 말씀의 진리를 위한 증거에 매우 충실했기에 교회에서 철저하게 개선되어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95개조 논제를 내걸고서 공개 토론하자는 반박문 내용의 핵심은면죄부(indulgentia) 판매이다. 면죄부 사건은 루터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죄 용서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죄인들에게 요구되는 죄책을 제거하거나 감소시키는 면죄부에 대해 루터는 당시에 교회의 가장 큰 죄악 중에 하나라고 반대했다.

  

그 당시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 완공을 위하여 막대한 공사비를 필요로 할 때, 그는 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모으기 위해 면죄부 판매를 강요했다. 판매 책임자인 도미니크 교단의 탁발수도사 요하네스 테첼(Johann Tetzel, 1465-1519)은 가는 곳마다 ‘면죄부를 사면, 살아있는 사람은 즉시 죄를 용서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는 그 은화가 헌금함 속에 떨어져 소리가 나는 순간, 곧 천국으로 올라 간다’고 하였다. 

 

이것은 완전 비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죄인 된 우리가 십지가의 보혈의 피로 죄 사함 받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루터는 비성경적이고, 구원에 아무 효과가 없는 면죄부 판매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중세교회는 죄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용서함 받는다고 가르쳐 왔는데, 가톨릭교회는 죄를 범한 인간이 신부에게 죄를 고함으로 인해 죄 용서를 받는다는 고해성사를 주장한다. 

 

또한 교황은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의 최고의 통치자이기에 절대 오류가 없다고 한다. 이것이 교황무오설이다. 또 성체숭배 사상이 있다. 성찬식 할 때 성도들이 받는 떡과 포도주는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을 화체설이라고 한다. 화체설숭배는 잘못된 것이다. 개신교는 예수님께서 육체적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종교개혁자 칼빈이 주장한대로 영적으로 임재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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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죄부     ©뉴스파워 김현배

 

또한 가톨릭교회는 영웅적인 덕행을 실천한 사람을 성인이라고 부르고 있는 성인 숭배 사상이 있다. 1984년 5월 교황 바오로 2세는 한국 방문 중에 103위의 성인 시성식을 행하였고, 2014년 1월 프란체스코 교황 방문 때는 124명의 시복미사를 거행했다. 

 

하지만 루터는 과도한 성인숭배를 맹렬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성상숭배 사상도 있다. 그들은 가톨릭교회 안에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 성인들, 교황들의 형상 등을 만들어 놓고서 그 형상 앞에서 절하고 기도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것이 성상 숭배인데 종교개혁자들은 그런 성상들을 다 부셔버렸다. 그래서 개신교 교회는 아무 형상이 없고 깨끗하다. 

 

또한 십자가 숭배 사상이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모양을 조각으로 만들어 가지고 가정이나 성단, 교인들이 경영하는 사업장이나 병원에 달아 놓고 거기에 절하거나 기도하는 행위이다. 

 

마리아 숭배 사상도 있다.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신격화 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마리아 무죄 잉태설, 마리아 종신 처녀설”을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는 “구원의 어머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천주교회에 들어가 보면 아름다운 그림들이 많다. 그들은 그러한 종교적 그림에 절하고 기도하는 행위를 하는데 이것이 성화숭배사상이 있다. 루터는 이 모든 것들이 비성경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모든 것들의 잘못된 행동들은 그 근본이 잘못된 성경관에 기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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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못박고 있는 루터     ©뉴스파워 김현배

 

가톨릭교회는 말씀도 좋지만 행위로 의롭게 되고 구원 얻게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철저하게 잘못된 구원관의 결과이다. 이와 같이 로마 천주교회의 부패와 종교적 타락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루터는 이러한 부패와 맞서 싸우게 되었다. 이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이 면죄부 비판에서 출발하여 중세 제도 전체를 흔들어 놓았다. 루터는 작은 촛불을 켰는데, 그것은 그의 원래 의도를 훨씬 넘어서 칠흑같이 어두운 중세 시대에 종교개혁이라는 불꽃으로 활활 타오르면서 멀리 멀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오늘날 개신교도들은 1517년 10월 31일을 개신교 설립일로 기념한다. 금년 10월 31일은 루터 종교개혁 498년을 맞이하게 되며, 2017년에는 역사적인 500주년이 된다.

 

김현배 ⓒ 뉴스파워

출처: USA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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