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을 사랑이라 부르는 이유

최송연의 신앙칼럼 2008. 9. 19. 03:06


나는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왜냐구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른 동물, 아니, 하늘의 천사들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선택의지능력’을 인간에게만 부여하셨음을 알게하여 주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요, 우리에게는 권리장전의 표식이요, 선과악을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멋진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무조건 순복하도록 창조되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짐승들에게는 하나님을 알 수도 또 그분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선택의지능력도 전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인간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도 있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율권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악을 택할 수도 있고 선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율성의 능력이라고도 부릅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사랑보다 자신이 선택한 자율적인 사랑이 더 의미가 있고 더 가치가 있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지은 인간들을 용서하시는 방법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벌벌 떨고 있는 죄인들을 향해 “너의 죄를 사하노라…”  어느 영화장면의 한 대사처럼 그렇게 말씀 한 마디만 해 주셔도 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고 그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택하셨습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요10:18절 참조) 그러길래 십자가의 사랑이 가장 고귀하고 가장 값진 사랑이라고 말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내 남편보다 훨씬 더 잘 생기고 유능한 남자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즐거이 내 남편을 사랑하며 내 가정을 지킵니다. 내가 선택한 나의 길이요 내가 선택한 내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다 미쓰 코리아는 아니며 다 팔등신 미인들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의 남편들은 자기의 아내들을 사랑하며 가정을 지키려고  애를씁니다. 내가 택한 나의 가정이요 내 아내이기 때문이겠지요…우리는 때때로 선택권을 남용해서 실낙원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 한 예로,
얼마 전, 뉴욕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 중의 한 유능한 목사님이 7계명을 범하고 추락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들(특히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잠시잠간의 쾌락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오늘의 유혹과 싸워 이길 것이냐? 선택의 능력을 사용해야 하는 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때, 자신의 정과 욕심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당당히 승리할 것을 택하는 것도 자신의 몫이요, 정욕을 택하는 것도 자신의 몫입니다. 만약, 그 목사님께서 보이지 않는 세계와 십자가의 길을 택했더라면, 가족의 행복은 물론, 그의 목회여정은 한결 더 빛이 났을 것이고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라 하는 칭찬과 예비된 상급을 주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해도 좋을 것 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보이지 않는 하늘나라 보다는 보이는 육신의 쾌락을 택했고,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대로, 사랑스런 가정을 어둡게 했으며 에덴동산같이 사랑스럽고 축복된 교회를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악을 선택할 수도 있고 선을 선택할 수도 있는 자율권이 주어진 만물의 영장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멋진 피조물들입니다!  처음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이 권리를 남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낙원, 에덴동산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만드신 하나님의 잘못이 아니라, 선택의 능력을 남용한 인간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과 나에게 주어진 이 멋진 선택의 권리를 남용하지만 않는다면 이 선택의 능력을 사용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길을 찾을 수가 있고, 그 길을 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그리스도를 택하고 실낙원을 회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로, 나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에덴동산에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 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예수 그리스도)을 택하고” (신명기 30:19)



최송연/사모



'최송연의 신앙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준비하는 마음  (0) 2008.10.15
아킬레스 건을 잡아라!  (6) 2008.10.10
윈(Win)윈(Win) 전략아래 뭉치는 성도  (0) 2008.09.05
성도가 반드시 알아야 할 구원론(救援論, Salvation)  (0) 2008.09.04
십일조는 반드시 내어야만 하는가?  (0) 2008.08.26
:
◀ PREV : [1] : [···] : [196] : [197] : [198] : [199] : [200] : [201] : [202] : NEX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