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변종길 박사)| 개혁 신앙 자료
박상현 조회 31 |추천 0 | 2007.11.03. 09:49

 

가정 교회는 성경적인가?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소그룹 모임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다. 성도는 소그룹 모임을 통해 교제와 사랑을 나누고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예배를 잘 드리고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소그룹 모임을 통한 교제가 없으면 신앙생활에 만족과 기쁨을 느낄 수 없다. 나아가서 소그룹 모임은 교회 성장에 있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설교와 뜨거운 기도가 있다 하더라도 소그룹 모임이 활성화 되지 않으면 교회 성장에 제동이 걸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래서 소그룹 모임을 어떻게 운영하는가 하는 것은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왔다.

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기관별 모임과 구역 모임을 통해 이러한 요구를 충족해 왔다. 그러나 남여 전도회와 청년회 등의 기관별 모임은 사업과 행사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구역 모임은 대개 예배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개인별 신앙 교육과 돌봄과 권면, 상담, 전도 등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그래서 상당 부분 형식화되고 제도화된 기존의 소그룹 모임 대신 새로운 소그룹 모임을 추구하게 되었다. 각종 성경 공부 모임, 제자 훈련, 순 모임, 셀 모임, 가정 교회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특히 어떤 교회들에서는 지나치게 제도화된 당회 조직 외에 좀 더 유연하고 교회 성장에 도움이 되는 대안으로 ‘가정 교회’ 모임을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가정 교회야말로 신약 성경이 제시하는 바람직한 모델이며, 초대 교회는 다 가정 교회 형태였다고 주장한다. 그 가정 교회들이 모여서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었으며, 가정 교회들 전체가 모이는 연합 모임은 대개 한 달에 한 번쯤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면 과연 신약 교회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 신약 교회는 정말로 가정 교회 형태였을까? 그리고 과연 그러한 많은 가정 교회들이 모여서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었을까? 그리고 소위 연합 예배는 한 달에 한 번쯤 모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사실일까? 과연 신약 성경은 이러한 주장들에 어떻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신약 성경이 오늘날 침례교회의 최영기 목사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가정 교회 운동과 이에 대해 신학적으로 동조하는 주장을 펴고 있는 신학자들의 견해에 대해 성경적으로 살펴보고, 신약 성경이 제시하는 교회의 실상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그리고 나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방향은 무엇인지 그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 가정 교회란 무엇인가?


그러면 가정 교회란 무엇인가? 오늘날 무엇보다도 ‘가정 교회’라는 용어의 혼란이 심각하다. 통일교는 지난 1997년경부터 ‘가정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교단명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에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바꾸었으며. ‘참 가정’을 세운다는 것이 그들의 모토이다.1)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지금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다.

  

어떤 이들은 성도의 가정에서 모이는 성도들의 모임을 ‘가정 교회(house church)’라고 부른다. 신약 성경에 나타나는 많은 교회들이 그러하였다. 예를 들면 로마 교회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였으며(롬 16:5), 고린도 교회는 아마도 바울과 온 교회의 식주인이었던 가이오의 집에서 모인 것으로 생각된다(고전 16:23; cf. 고전 1:14). 골로새 교회는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으며(몬 2절), 라오디게아 교회는 눔바라는 여자의 집에서 모였다(골 4:15). 또 에베소 교회도 처음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였다(고전 16:19). 이처럼 초대 교회는 성도의 집(가정)에서 모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 경우의 ‘가정’이란 장소로서의 가정을 말한다. 즉, 교회당 건물이나 빌딩이 아니라 성도의 집에서 모였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단순히 성도의 집에서 모였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가정 교회’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 미국 휴스턴의 최영기 목사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말하는 ‘가정 교회’가 그러하다. 신약 성경에 그들이 말하는 가정 교회의 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장소로서의 가정 교회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교회당 건물이나 상가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영기 목사가 주장하는 ‘가정 교회’는 그런 장소적 의미가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장소적 의미보다 새로운 구조로서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 즉, 그가 말하는 ‘가정 교회’는 교회 안의 한 소그룹 모임으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곧 ‘교회 안의 교회’로서 ‘가정 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사실 어디에서 모이느냐 하는 장소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며 ‘새로운 교회 구조’가 그 핵심이다.2) 이 ‘새로운 교회 구조’는 성령의 역동적인 역사(役事)를 제한하는 ‘전통적인 교회 구조’와는 달리 ‘성령의 힘을 제한하지 않는 교회 구조’인 초대 교회를 말하는데, 그 당시에는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 안에 가정이 중심이 된 수많은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3) 그래서 최영기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쨌든 저는 신약 교회가 성령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는 조직, 즉 가정 교회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를 통하여 폭발적인 능력이 나오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4) 그리고 1996년에 나온 책에서 그는, 자기 교회에는 32개의 ‘가정 교회’가 있다고 말한다.5)

  

이러한 ‘가정 교회’의 핵심은 교회 안에 있는 ‘가정 교회’ 하나하나가 다 ‘독립된 교회’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6) 그래서 그것을 ‘구역’이라고 부르기를 거부한다. 그러면서 가정 교회와 구역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로, 구역은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을 묶어 조직되지만 가정 교회는 가정 교회 회원들의 선택에 따라 결성된다. 둘째, 구역 모임은 친교와 서로를 돕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가정 교회에서는 예배, 성경 공부, 제자 훈련, 선교, 전도, 친교 등 교회가 하는 모든 역할을 다 한다.7) 따라서 가정 교회는 자그마한 개척 교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8) 이처럼 최영기 목사가 주장하는 가정 교회는 교회 안에 있는 또 하나의 작은 교회이며, 그러한 가정 교회들이 모여서 하나의 전체 교회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교회 안의 교회’라는 구조가 중요하며 어디에서 모이는가 하는 장소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안의 교회’, ‘2층 구조로서의 교회’ 구조는 신약 성경에서 발견되는 가정 교회와는 거리가 멀다. 예루살렘 교회가 “집에서 떡을 떼고”(행 2:46),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였다”(행 5:42), “마리아의 집에 .... 모여 기도했다”(행 12:12)는 말은 있어도 그 각각이 완전한 교회였다는 증거는 없다. 예루살렘 교회는 수많은 가정 교회들의 연합체였다기보다도 하나의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가정에 모여서 모임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가정에서의 모임은 오늘날의 구역 모임과 비슷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로마의 교회나 고린도의 교회 등에서도 오늘날 ‘가정 교회’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은 그런 ‘새로운 교회 구조’의 증거는 없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좀 더 자세히 논할 것이다. 


II. 교회란 무엇인가?


그러나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도들의 가정에서 모이는 모임을 왜 ‘교회’라고 부를 수 없는가라고 반문한다. ‘신자들의 모임’이 교회인데 왜 그런 모임이 ‘교회’가 아니냐고 항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무엇인가를 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벨직 신앙고백」이 교회는 ‘참 신자들의 거룩한 모임’이라고 했을 때, 그 ‘교회’는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보편적 교회’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 또는 일반적 교회를 믿고 고백한다. 그것은 참 신자들의 거룩한 모임이다.”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표현을 따르자면 ‘택자들의 총수’를 의미한다.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는 불가시적인데,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 하나로 모였고, 모이고 있으며, 모일 택자들의 총수로 구성되어 있다.”10) 따라서 성도들 몇 명이 모였다고 해서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아공화국의 개혁주의 교의학자인 헤인스(J. A. Heyns) 교수가 잘 표현한 대로 “참 신자들이 모여 있다고 해서 또는 그들의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다.”11) 

  

모든 성도는 어떤 특정한 장소에 있는 ‘지역 교회’12)에 속해야 하며 그 교회의 가르침과 치리를 받아야 한다(「벨직 신앙고백」 28조). 우리는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해야 하는데, 참 교회의 표지는 복음의 순수한 전파와 성례의 순수한 거행과 권징의 시행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순수한 말씀을 따라 시행되어야 한다(29조).   

  

참 교회는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운영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성례를 거행하는 수종자(목사)가 있어야 하며, 목사와 함께 교회 회의를 구성하는 장로들과 집사들이 있어야 한다(30조). 그리고 말씀의 수종자들(목사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은 교회에 의해 적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31조).

  

따라서 이러한 선출 절차를 따르지 아니하고 목사나 당회에 의해 임명되는 ‘목자들’(가정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가정 교회’를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성경적인 의미에서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가정 교회의 ‘목자들’은 대개 교회 성도들에 의해 투표에 의해 선출되지 않으며 당회를 구성하지도 않는다. 물론 장로들이 다 ‘목자들’이 된다면 이런 문제는 없어지겠지만, 가정 모임을 ‘가정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여전히 문제로 남게 된다.     


III. 초대 교회는 다 가정 교회였는가?


최영기 목사와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초대 교회는 ‘가정 교회’였다고 주장한다. 최영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정 교회라고 하면 평신도가 지도자가 되어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를 말합니다. 신약 성경을 읽어 보면 우리는 당시의 교회 형태가 가정 교회였음을 발견합니다.”13) 신약에서의 가정 교회에 대해 깊이 연구한 홍인규 교수도 “사실, 신약 성경에 나타난 교회는 모두 가정 교회이다.”라고 말한다.14) 교회 건물 형태로서의 가정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정용성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신약의 교회는 가정에서 모였고, 그 이후 초대 교회도 주후 4세기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주후 313년) 이전까지는 가정에서 모였다. .... 이는 신약 시대의 교회는 모두가 다 가정에서 모임을 가졌음을 시사하여 준다.”15) 침례신학대학교의 장동수 교수도 이와 마찬가지로 말한다. “신약 시대에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공동체들은 그야말로 어떤 개인의 집, 즉 가정에서 만나고 예배하고 활동하는 가정 교회로 모였다. .... 주후 3세기까지 교회의 모임만을 위한 교회당 건물은 없었다.”16)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의 조병수 교수는, 조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 “신약 성경(그리고 속사도 시대 문서)을 살펴보면 초기 기독교가 가정집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초기 기독교는 가정 교회의 시기였던 것이다.”17)

  

그렇다면 초대 교회는 다 가정 교회였는가? 신약 성경은 오직 성도의 가정에서 모이는 교회 형태 외에 다른 것은 말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필자는, 신약 성경은 가정 교회에 대해 많이 말하지만 그것이 전부 다는 아니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신약 성경은 가정 교회 외에 다른 형태도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였다.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권함을 받은 3천명의 성도들이 모인 장소는 바로 성전이었다. 누가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3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 모일 수 있는 장소는 성전이 가장 적합하였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절기 때에는 수십만 명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아마도 성전의 동편에 있는 솔로몬 행각이었을 것이다(행 3:11). 사도행전 5:12은 이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 솔로몬 행각은 이방인의 뜰 동쪽에 있었는데, 미문(美門, 니카노르 문)이 있는 곳과 같은 방향에 있었다. 동쪽에서 미문을 통해 들어와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거기에 솔로몬 행각이 서 있었다.18)

  

사도들은 이 성전에서 가르쳤다(행 2:42, 5:21, 25, 42). 성도들은 여기서 기도하고(행 2:42, 3:1, 4:23-31), 하나님을 찬미하고(행 2:47), 전도하였다(행 5:42). 오순절 성령 강림이 있기 전에도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늘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눅 24:53).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오순절 전이나 후나 신앙생활의 중심지였다.

 

물론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집’에서도 모였다. 그들은 날마다 ‘집’에서 모여 떡을 떼며 음식을 먹었다(행 2:46). 또 성전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가르치고 전도하였다(행 5:42).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의 ‘전체 교회’와 많은 ‘가정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집에서 모인 것을 두고 ‘가정 교회’라고 말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다시 논할 것이다. 어쨌든 예루살렘 교회는 처음에 ‘성전’에서 모였으며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2. 에베소 교회


에베소 교회는 처음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였다.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난 그들은 바울을 따라 에베소로 왔다(행 18:18,19).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한 후 곧장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 그리고는 얼마 있지 않아 곧 가이사랴로 떠났다(행 18:19-22). 따라서 바울이 떠난 후에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스럽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 모였을 것이다.

  

3차 전도여행 때 바울이 다시 에베소에 들렀다. 그는 관례를 따라 회당에 들어가서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강론하였다(행 19:8). 그러자 어떤 이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비방하므로 바울은 그들을 떠나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다. 2년 동안을 그리하니 아시아에 사는 많은 사람들 곧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행 19:9,10).

  

따라서 에베소 교회는 적어도 2년 동안 ‘두란노 서원(hJ scolh; Turavnnou)’에서 모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서원(書院)’으로 번역된 헬라어 ‘스콜레’는 원래 ‘여가(leisure)’를 뜻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강의실(lecture hall)’을 뜻한다.19) 칼빈은 이에 대해 ‘두란노(Tyrannus)’라는 사람이 비용을 대어 설립하여 시에 기증한 ‘김나지움’일 것으로 추정한다.20)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해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어쨌든 에베소 교회는 ‘두란노 서원’이라는 강의실에서 모였으며 그곳에서 말씀을 듣고 배웠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6:19에 보면 에베소 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였다고 한다. ‘그들의 집에 모이는 교회(hJ kat! oi\kon aujtw'n ejkklhsiva)’라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 몇 번 나타나는데(롬 16:5, 골 4:15, 몬 2절), 초대 교회가 성도의 집에서 많이 모였음을 나타내 준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의 경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도 모이고 두란노 서원에서도 모이고, 두 곳에서 모였다는 말인가? 주일 예배와 친교 및 기도 모임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에서 가지고, 주중의 성경 강론은 두란노 서원에서 한 것일까? 우리는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다. 두란노 서원으로 분리해서 나가기 전에 바울은 그의 관례를 따라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강론하였다. 안식일 날 드리는 회당 예배가 곧 그들의 공식 예배였다. 따라서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명확하게 구별되기 전에는 기독교 예배와 유대교 예배가 공존하고 있었다. 처음에 유대인들은 바울과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들을 유대교의 한 분파로 인식했으며, 따라서 유대교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되었다(행 28:22). 그러한 시기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집은 그리스도인들의 교제와 교육과 기도의 장소로서 역할하였을 것이다. 두란노 서원으로 분리되어 나온 후에도 그들의 집은 계속해서 교제와 교육과 기도의 장소로서 역할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식일 또는 주일 날 예배를 어느 곳에서 드렸는지, 또 성찬식을 어디서 어떻게 행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어쨌든 오늘날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성도의 가정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만이 신약 교회의 모습이라고 하는 주장은 지나치며 사실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신약 교회는 ‘의도적으로’ 가정에서 모였다고 하는 주장도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정용성 교수는 “신약 시대에 교회는 단지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가정에 모였던 것이 아니라, 상당히 의도적으로 가정에 모였음을 특히 누가-행전은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21) 곧 가정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예배를 위한 가장 역동적인 무대 환경을 제공하여”22) 주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가정에서 모였다는 주장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신약 교회가 가정에서 많이 모인 것은 자연발생적이고 현실적인 이유 때문으로 생각된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생겨나는데 마땅히 모일 곳은 없고, 또 예배당을 건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감당할 재정 마련도 쉽지 않으며, 또한 적은 무리를 위해 굳이 그렇게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성도의 가정에서 모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가정이 가지는 따뜻함과 친밀감, 자연스러움의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가정에서 모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성도의 수가 많을 때는 ‘성전’에서 모이기도 하고 또한 ‘강의실’에서 모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목적에 맞게 장소를 선택하였으며, 장소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어디’에 모이느냐보다는 ‘무엇’이 전파되느냐, 그리고 ‘어떻게’ 행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 즉, 외적 환경보다는 복음의 내용과 삶이 더 중요하였던 것이다.


3. 야고보서의 수신자 교회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디아스포라에 있는 열 두 지파’라고 되어 있다(약 1:1). 여기서 ‘열 두 지파’는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인데, 여기서는 유대인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에 “디아스포라에 있는”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어서 이 전체 표현은 팔레스타인과 인근의 수리아 지역에 있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23) 

  

그러면 이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서 모였을까? 2장 2절에 보면 ‘회당’이란 표현이 나온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 신약에서 ‘회당(sunagwghv)’은 원칙적으로 ‘건물’ 또는 ‘모임’을 뜻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들어오다’는 동사와 함께 사용되었으므로 건물적 의미라고 생각된다. 야고보서에서 ‘모임’을 뜻할 때에는 ‘교회(ejkklhsiva)’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약 5:14).24) 비록 여기의 ‘회당’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임(assembly)’을 가리킨다고 보더라도, 거기에서 장소적 개념 또는 건물적 개념을 배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떤 장소, 유대인의 회당처럼 예배하기 위해 정해진 장소에 모인 모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3절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는 표현이 그러한 장소성과 건물 구조를 시사하고 있다.25) 따라서 여기의 ‘회당’이란 표현은 건물로서의 ‘회당’이란 개념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이 ‘회당’은 물론 유대인들의 회당은 아니다. 왜냐하면 야고보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의 회당을 빌려 사용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야고보서는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인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의 회당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따로 사용한 건물을 뜻한다. 오늘날 용어로 말하자면 ‘예배당’ 또는 ‘교회당’이 되겠으나 당시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 사용하던 용어인 ‘회당’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초기 기독교 예배 형태가 유대인의 회당 예배 형태에서 유래했으며, 동일한 유대인들이 예배드리게 된 것을 생각해 볼 때 ‘회당’이란 용어 사용은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에 팔레스타인과 인근의 수리아 지역에 곳곳마다 교회당 건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로서 예수를 믿는 자들은 처음에는 유대인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이내 분란이 생겨서 분리하여 나왔을 것이다. 처음에는 믿는 자들의 가정에서 예배들 드리다가 얼마 가지 않아서 그들이 전에 예배드리는 건물인 유대교 회당을 본떠서 그들 자신의 (기독교) 회당을 마련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야고보가 이 편지를 기록할 즈음에는 유대의 마을 곳곳에, 그리고 수리아 지역의 곳곳에 기독교 회당 건물이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학자들은 야고보서의 기록 시기를 대개 로마서보다 이른 시기로 보는데,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대략 주후 50년대의 어느 시점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 당시에 이미 유대 지역 곳곳과 수리아 지역 여러 곳에 교회당 건물이 세워져 있었으며 그곳에서 예배드렸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의 교회는 다 가정 교회였으며 콘스탄틴 대제의 밀라노 칙령(주후 313년) 이전까지는 가정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주장26)은 지나친 것이며 신약 자체의 증거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약 성경에 나타난 초대 교회는 처음에 성도의 가정에서 모임을 가진 경우가 많이 있으며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신약의 ‘모든 교회’가 다 가정 교회였다는 주장은 지나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약의 교회는 환경과 형편에 따라 ‘성전’에서 모이기도 하였고, ‘강의실 홀’에서 모이기도 하였고, 또한 따로 짓거나 빌린 ‘교회당 건물’에서 모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신약의 교회는 ‘의도적으로’ 가정에서 모인 것은 아니며 형편에 따라 가정에서 모이기도 하고 홀에서 모이기도 하고, 또는 별도의 건물에서 모이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초대 교회는 획일적으로 다 가정 교회 형태였으며 또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교회 형태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것이며 사실에 맞지 않음을 알 수 있다.

 

IV. 한 도시에 여러 가정 교회가 있었는가?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도시에 여러 가정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최영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신약 시대에는 지금처럼 한 도시에 여러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도시에는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로마에는 로마 교회 하나밖에 없었고 골로새에서는 골로새 교회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 밑에는 가정이 중심이 된 수많은 교회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27) 또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한다. “각 도시마다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도시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에베소에는 에베소 교회 하나, 로마에는 로마 교회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도시마다 집집에서 모이는 수많은 가정교회가 있었습니다.”28)

  

그러면 과연 신약 시대에는 한 도시에 교회가 하나밖에 없었고 그 안에 수많은 ‘가정 교회’가 있었는가? 아니면 한 도시에 여러 ‘교회들’이 있었는가? 아니면 한 도시에 ‘하나의 교회’가 있고 그 안에 여러 개의 ‘가정 모임’이 있었는가? 이 문제는 쉽사리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각각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1.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 교회는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성도들이 ‘성전’에서 모이고 또 ‘집’에서도 모였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행 2:46) 5장 42절에서도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가 수많은 가정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원문을 조심스럽게 살펴보아야 한다. 2장 46절에서 ‘집에서(kat! oi\kon)’라고 하는 것은 ‘성전에서(ejn tw'/ iJerw'/)’와 대비되고 있다.29) 따라서 누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모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집에서도’ 순전한 마음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은혜와 기쁨이 충만하여서 ‘성전’에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순전한 마음으로 교제하고 형제 사랑을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이 성도의 집에서 소그룹 모임을 가졌다거나 가정 교회 모임을 가졌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은 각자 집에서 가족끼리 모였을 수도 있고, 몇몇 사람이 같이 모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모였다’는 것이 꼭 무슨 공식적인 순서를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모여서 함께 식사를 나누고 교제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초점은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는 데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였다. 따라서 초대 교회에 역사한 성령의 능력은 성전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는 것이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칼빈도 “집에서 떡을 떼고”에 대한 주석에서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누가가 말하는 것은 그들은 참 경건의 표시를 단지 공적으로만 보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사적 생활의 진행과 분위기도 동일한 것이었다는 것이다.”30)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 42절과 46절의 “떡을 뗀다”31)는 표현에 대해 ‘성찬’32) 또는 ‘애찬’33)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성도의 가정에서 ‘성찬식’을 거행하였고, 따라서 ‘가정 교회’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성경에서 ‘떡을 떼다’는 표현이 성찬 또는 애찬의 의미로 사용된 곳들도 있지만(행 20:7, 고전 10:16), 이 구절의 표현을 성찬으로 이해하는 것은 문맥에 맞지 않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42절에서 ‘떡을 떼다’는 말은 ‘교제하며’ 다음에 나오며 또한 접속사 ‘카이(kaiv)’가 없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 즉,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다음에는 ‘카이’가 나오고 ‘떡을 떼며’ 다음에도 ‘카이’가 나오지만, ‘서로 교제하며’와 ‘떡을 떼며’ 사이에는 ‘카이’가 없다. 그래서 ‘교제 하는 것’과 ‘떡을 떼는 것’은 하나의 개념으로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떡을 떼는 것’은 ‘교제하는 것’ 다음에 나오는 새로운 항목으로 볼 것이 아니라 ‘교제하는 것’에 속한 항목으로서 교제의 구체적 방법을 말한다고 보아야 한다.34) 즉,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떡을 떼는 것’ 곧 함께 식사하는 것을 통해 ‘교제’를 실천했던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은 성도들이 교제를 실천하는 방편으로서 ‘함께 먹는 것’을 의미하며 ‘성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35)

  

46절의 “날마다 ...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도 마찬가지로 이해된다. 여기에 ‘서로 교제하며’가 따로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떡을 떼며 음식을 먹는 것’이 바로 교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가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초점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어디에서든지 다 ‘한 마음’이 되었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교제하였다는 것이다. 칼빈도 이 점을 잘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본문에서 떡을 떼는 것이 성찬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의 견해로는 누가의 의미와는 매우 다른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우리에게 그들은 자주 함께 먹었으며 또 검소하게 함께 먹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36)

  

따라서 우리는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공적인 모임을 성전에서 가졌으며, 집에서는 성도간의 교제와 기도와 전도를 하였다고 본다. 성도의 가정에서의 모임은 가족간의 식사였거나 또는 이웃들과 함께 하는 공동 식사였다고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 이것은 오늘날의 구역 모임이거나 비공식적인 교제 모임 또는 사랑방 모임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 좀 다른 각도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만일 예루살렘 교회가 각각의 독립된 가정 교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예루살렘 전체 교회에 대해 ‘복수’가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약 성경은 ‘지역 교회’에 대해 사용될 때 하나 이상의 여러 교회를 가리킬 때에는 ‘교회’라는 단어가 항상 ‘복수’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갈 1:2, 고전 16:1), ‘아시아의 교회들’(고전 16:19), ‘마게도냐 교회들’(고후 8:1), ‘유대의 교회들’(갈 1:22)에서처럼 여러 교회를 가리킬 때에는 복수로 사용된다.37)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 말할 때 항상 단수로 말한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행 5: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일어나서 ...”(행 8:1),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행 8:3),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행 11:22),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행 12:1),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혀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 12:5),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행 15:4). 이처럼 예루살렘 교회에 대해 말할 때에는 항상 ‘단수’가 사용되고 있다. 이 사실은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의 단일한 교회였음을 시사한다.


2. 로마 교회


  홍인규 교수는 도시 로마에 적어도 세 개의 가정 교회들이 있었다고 본다. 첫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서 모이는 가정 교회이고(롬 16:3,5), 둘째는 아순그리도와 블레곤와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의 교회이고(롬 16:14), 세 번째는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있는 성도의 교회이다(롬 16:15; cf. 16:5,10).38) 

  

조병수 교수도 “로마 교회 안에는 여러 개의 작은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39)고 하면서, 그 증거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든다. 1)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가정(롬 16:5); 2) 아리스도불로의 권속(롬 16:10); 3) 나깃수의 권속 중 주 안에 있는 자들(롬 16:11); 4)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롬 16:14); 5)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 자매와 올름바와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롬 16:15).40) 이러한 사실에서 조병수 교수는 로마에는 여러 가정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으며, 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중심으로 ‘가족 교회(Family Church)’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가족 교회에 방문자들과 손님들이 가담하여 ‘가정 교회(House Church)’가 되었으며, 이 가족 교회들 또는 가정 교회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지역 교회’를 이루었다고 본다.41)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는 조심스럽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로마서에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교회’ 또는 ‘교회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라고 부르고 있을 따름이다(롬 1:7). 따라서 이 표현만으로는 로마에 하나의 교회가 있었는지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칼빈은 로마서 16:5의 ‘그들(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이는 교회’라는 표현에 대해 그들의 ‘가족’을 가리킨다고 본다. 바울은 그들의 가족을 ‘교회’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에 대해 커다란 존경을 표하고 있다고 말한다.42)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교회’라는 표현은 신약에서 그런 개인적인 가정에 대해 사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43)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로마의 모든 성도들이 다 모였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들의 집에 로마의 성도들 중 일부가 모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중에서 첫 번째 것은 로마 시의 크기로 보아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로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한 집에 다 모이는 것은 거리상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44) 그렇다면 로마에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의 집에 모이는 교회 외에도 몇 개의 가정 교회들이 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는 개혁주의 주석가들의 견해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45) 물론 로마서 16장 14절의 ‘저희와 함께 있는 형제들(tou;" su;n aujtoi'" ajdelfouv")’이 ‘교회’를 뜻하는지 그냥 말 그대로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15절의 ‘저희와 함께 있는 모든 성도(tou;" su;n aujtoi'" pavnta" aJgivou")’란 표현도 꼭 ‘교회’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들과 함께 지내고 있는 ‘성도들’을 뜻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우리는 로마 교회에 대해 더 이상의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실상을 알기 어렵다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태도가 될 것이다. 

 

3. 고린도 교회


어떤 사람들은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홍인규 교수는 고린도에도 여러 가정 교회들이 있었다고 본다. 곧,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집(행 18:1-3), 디도 유스도의 집(행 18:7), 아볼로가 머문 집(행 18:27-28), 가이오의 집(롬 16:23, 고전 1:14), 스데바나의 집(고전 1:16, 16:15-16), 그리고 에라스도의 집(롬 16:23).1) 이처럼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이면 거기에 ‘가정 교회’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 점은 조병수 교수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는 가이오가 로마서에서 ‘온 교회의 식주인’(롬 16:23)으로 소개된 사실에서, 가이오의 집이 가정 교회로 사용되었지만 때때로 전체 교회의 회집 장소로 제공되었다고 본다. “만일에 이런 추측이 옳다면 고린도에는 하나의 지역 교회와 여러 가정 교회들이 병존했으며 다양한 회집 형태가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다.”2) 여기서 우선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조병수 교수가 주장하는 견해는 순전히 ‘추측’에 근거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고린도에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경우에 다 마찬가지다. 오늘날 소위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부분 ‘추측’에 근거해 있으며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추측’이 타당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며 나중에 다시 논의할 것이다. 조병수 교수는 또 사도 바울이 스데바나의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전 1:16)는 사실에서 그곳에 가정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한다.3) 물론 고린도전서 16:15에 보면 “스데바나의 집은 ...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고 말한다. 여기서 ‘성도들 섬기는 것’이 꼭 ‘가정 교회’를 통해 섬기는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의미에서 성도 대접하기를 힘쓰며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한다는 뜻인지 우리가 알기 어렵다. 미국의 고든 피(Gordon Fee)도 여기서 이 ‘섬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단어는 가르치는 것과 설교를 포함해서 많은 봉사(섬김)들을 포함할 만큼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4)

  

그러나 홍인규 교수나 조병수 교수는 ‘교회’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성도들이 어디에 몇 명 모여 있으면 거기에 ‘교회’가 있다고 추정하는 것 같다. 그래서 조병수 교수는 ‘가족 교회’, ‘가정 교회’, ‘지역 교회’에 대해 말하고 있다.5) 그러나 교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교회에 대한 개혁주의적 견해를 무시하는 것이다. 개혁주의 교회관에 따르면, 교회가 되려면 교회의 표지가 있어야 한다. 곧 순수한 복음의 전파, 순수한 성례의 거행, 권징의 실시, 이런 참 교회의 표지가 있어야 한다(「벨직 신앙고백」 29조). 그리고 교회에는 직분자들이 있어야 한다. 곧, 하나님 말씀의 수종자, 장로와 집사들인데 이들은 교회에 의해 적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되어야 한다(제31조; 엡 4:11). 그냥 성도들이 모였다고 해서 다 교회는 아니다.6)

  

우리는 고린도 교회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다. 고린도전서 1:2에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게 편지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교회(hJ ejkklhsiva tou' qeou')’는 단수로 되어 있다. 여기서 ‘교회’는 지역 교회(local church)의 개념이다.7) 고린도후서 1:1에서도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도 ‘교회’는 단수로 사용되었다. ‘가정 교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로 구성된 하나의 ‘지역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지만, 만일 고린도 교회가 각각의 독립된 완전한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고린도에 있는 교회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신약 성경의 용법이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인데, 수신자에 대해 ‘갈라디아의 교회들(aiJ ejkklhsivai th'" Galativa")’이라고 복수로 말하고 있다(갈 1:2).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대의 교회들’이라고 할 때에도 복수를 사용하였다(갈 1:22). 마게도냐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말할 때에도 ‘마게도냐의 교회들’이라고 복수를 사용하고 있다(고후 8:1).8) 그리고 사도행전은 바울과 실라가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하였다고 말한다(행 15:41).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교회들’이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였다고 한다(행 16:5). 이처럼 신약 성경은 여러 지역에 있는 교회들을 말할 때에는 복수로 ‘교회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에서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이라고 말할 때에는 아주 분명하다(계 1:4, 11, 20). 이 일곱 교회에 대해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분명히 복수로 말한다(계 2:7,11,17,28, 3:6,13,22, 22:16).

  

그런데 여기 고린도 교회에 대해 말할 때에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단수로 말하고 있다(고전 1:2, 고후 1:1). 이것은 고린도 교회가 하나의 지역 교회로 되어 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가정 교회는 아마도 ‘가이오’의 집에서 모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롬 16:23). 여기서 ‘식주인(xevno")’이란 말은 원래 ‘나그네, 손님’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손님을 대접하는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렇다면 바울은 고린도의 가이오 집에 머물고 있었으며, 그 때 로마서를 기록하였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가이오는 바울뿐만 아니라 ‘온 교회(o{lh hJ ejkklhsiva)’를 대접하였다. 여기서 ‘온 교회’가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분명치 않다. 고린도 교회의 전체 성도를 가리킬 수도 있고, 아니면 좀 더 넓은 의미로 고린도뿐만 아니라 그밖에 당시에 존재하던 모든 교회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9) 어쨌든 가이오는 예수 믿는 자로서 바울뿐만 아니라 여러 성도들을 대접하기를 힘쓴 고린도의 유력한 성도로서, 고린도 교회는 그의 집에 모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가이오의 집 외에 다른 집들에도 가정 교회가 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를 들면, 조병수 교수는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리스보는 회당장으로서 ‘그의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었다(행 18:8). 이것은 그가 자신의 집을 가정 교회로 제공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10) 그러나 이것은 그야말로 추측에 불과하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당장 그리스보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지 그 이상은 없다. 어떤 사람이 온 가족으로 더불어 예수를 믿었다고 해서 그 집에 가정 교회가 모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며 잘못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한 300명쯤 되는 교회에 온 가족이 다 믿는 가정이 약 50 가정쯤 있다고 치자. 그러면 그 50 집이 다 ‘가정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새로운 한 사람이 온 가족으로 더불어 새로 등록했다고 치자. 그러면 “아, 거기에도 하나의 가정 교회가 모였을 것이다.” - 이렇게 추측할 수 있겠는가? 어떤 한 가정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과 거기에 가정 교회가 모였다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그런데 이 둘을 묶어서 같다고 보는 오류를 오늘날 학자들이 많이 범하고 있다.

  

V. 연합 모임이 있었는가?


만일 초대 교회가 오늘날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한 도시 안에 작은 여러 가정 교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그들은 어떻게 서로 관련을 맺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홍인규 교수는 그들 가정 교회들은 때때로 전체 모임을 가졌을 것이라고 본다. 그 증거는 고린도전서 14:23의 ‘온 교회(hJ ejkklhsiva o{lh)’가 함께 모였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로마서 16:23에도 고린도 교회에 대해 말하면서 ‘온 교회(o{lh hJ ejkklhsiva)’의 모임 장소가 가이오의 집에 있었다고 말한다. 홍 교수는 여기의 ‘온 교회’란 고린도에 있는 모든 가정 교회들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을 의미한다고 본다.11) 그리고 ‘온 교회’의 회합은 이교도의 모임들의 경우를 따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12)


1. 온 교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해석에 대해 큰 의문을 가진다. 첫째로, ‘온 교회’에 대한 이해이다. 고린도전서 14:23의 ‘온 교회’가 과연 그런 ‘연합 예배’의 의미인지는 의심스럽다. ‘온(whole)’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홀로스(o{lo")’는 ‘범위에 있어서 전체에 속하는(pertaining to being complete)’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온, 전체의, 완전한(whole, entire, complete)’으로 번역된다.13) 즉, ‘부분’에 대해 대비되는 ‘전체’의 개념이다. 따라서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는 문장에서 ‘온 교회’는 가정 교회들의 ‘연합 모임’이라기보다도 교회가 전체로, 즉 공적으로 모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 모임에서 성도들이 다 방언으로 말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가정 교회’에서는 방언을 해도 되는데 ‘연합 모임’에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교회의 공적 모임에서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것은 28절의 말씀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거기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여기서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은 ‘연합 모임’에서 잠잠하라는 말이 아니다. 바울은 지금 “연합 모임에서는 잠잠하고 가정 교회에서는 방언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바울은 “너희 중 누가 방언으로 말하려고 하거든 혼자서 개인적으로 하라”는 뜻으로 말한다. 꼭 교회의 모임에서 하려거든 통역자가 있는 가운데 두 세 사람이 순서를 따라 하고 통역하라”고 말한다(27절). 따라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바는 ‘가정 교회’와 대비되는 ‘연합 모임’에서 잠잠하라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기도’와 대비되는 ‘공적 모임’으로서의 교회에서는 (통역이 없으면) 잠잠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23절의 ‘온 교회’는 가정 교회 주장자들의 주장처럼 가정 교회들의 연합 모임으로 볼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다 모이는 공적 모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온 교회’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또 다른 구절들인 사도행전 5:11과 15:22을 살펴보자. 사도행전 5:11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있고 난 후에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온 교회(o{lh hJ ejkklhsiva)’란 교회의 일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말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어서 온 교회 성도들이 두려워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 무슨 ‘연합 교회’의 개념이 들어갈 게재가 아니다. 이 본문 전체에서 소위 ‘가정 교회’와 ‘연합 모임’ 사이의 대비를 찾을 수 없다. 이 사실은 여기의 ‘온 교회’에 이어서 나오는 ‘듣는 사람들이 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다. 앞의 ‘온 교회’가 조직체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말한다면,14) ‘듣는 사람들이 다’란 표현은 개별적으로 이 사건에 대해 듣는 자들을 가리킨다. 이 일을 듣는 자들은 다, 예외 없이 두려워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불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믿는 자든 믿지 않는 자든, 누구든지 예외 없이 다 놀라고 두려워하였다는 뜻이다. 여기에도 마찬가지로 무슨 ‘가정 교회’나 ‘연합 모임’에 대한 시사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여기의 ‘온 교회’는 말 그대로 온 교회이지 다른 뜻이 아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5:22의 ‘온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란 표현에서 ‘온 교회’란 말 그대로 ‘온 교회’이지 다른 무슨 ‘연합 교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표현의 뜻은 사도들과 장로들과 온 교회가 일치단결하여 결정하였다는 것이며, 교회 안에서 의견이 나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다른 표현인 ‘온 집(o{lo" oJ oi\ko")’도 마찬가지다. 사도행전 7:10의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에서 ‘온 집’이란 바로의 집에 속한 사람들 전체와 집안 일 전체를 가리킨다. 그리고 18:8의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에서 ‘온 집’도 그리스도의 집에 속한 사람들 전부 곧 그의 가족 전부를 말한다.

  

로마서 16:23의 ‘온 교회’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라는 표현은 바울뿐만 아니라 교회 성도들 전체에 대해서도 식사를 제공하고 대접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온 교회’는 고린도 교회 전체 성도들을 말할 수도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 오는 '외지인 그리스도인들(Christian strangers)’을 가리킬 수도 있다.15) 왜냐하면 여기에 ‘식주인’으로 번역된 ‘크세노스(xevno")’는 원래 ‘낯선, 외국의(strange)’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가이오는 외지에서 오는 낯선 그리스도인들을 재워주고 대접하는 일을 많이 하였는데, 단지 바울에게뿐만 아니라 로마나 다른 곳에서 오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하였다는 말이다.16) 그렇다면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에 연합 모임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2. 모임의 회수


그리고 소위 그러한 ‘온 교회’의 모임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근거가 없다. 홍인규 교수의 그러한 주장은 로버트 뱅크스의 추측에 근거한 것인데, 뱅크스는 이에 대해 그저 추측으로 말할 따름이다. “온 교회가 모였다고 언급할 때 바울이 취한 다소 분명치 않은 표현은 그 모임들이 한 주에 한 번 꼴로도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자발적인 이교도들의 회합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큰 모임들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예를 따랐을 것이다.”17) 그러나 이것은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더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도들의 회합을 따랐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교도들의 제사 행위에 대해 우상 숭배이며 귀신과 교제하는 것으로 보았다(고전 10:7, 20). 따라서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이교도들의 회합을 모방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홍인규 교수도 로마 교회에 대해서는 어떤 한 장소에서 전체 모임을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인정한다. 아마도 로마라는 도시의 크기 때문에 전체 모임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본다.18) 그렇다면 중요하게 문제되는 것은 고린도 교회인데,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 하나의 교회가 있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에 대해서는 ‘연합 모임’ 또는 ‘전체 모임’을 논하는 것 자체가 합당치 않다.


VI.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초대 교회는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한 도시에 여러 개의 가정 교회들로 구성된 하나의 지역 교회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교회 안의 교회’로서의 ‘가정 교회’는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성도의 가정에서 교회가 모이는 경우는 많았다. 이것은 성도 수가 많지 않은 초기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획일적인 것은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이는 경우도 있었고 강의실이나 건물에서 모이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그들이 속한 도시나 마을의 형편에 따라 모이는 장소는 달랐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현재 논란되고 있는 ‘가정 교회’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의 취해야 할 대안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로 하자.


1.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소그룹 모임은 교회 생활에 있어서 중요하다. 따라서 각 교회가 형편에 따라 소그룹 모임을 가지는 것은 자유에 속하며 적극 권장할 만하다. 어떤 형태의 소그룹 모임을 가질지는 시대와 형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며, 각 교회가 자유롭게 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소그룹 모임을 가지든 간에 그것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가 되려면 참 교회의 표지인 말씀의 전파와 성례의 거행과 권징의 실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직분들(목사, 장로, 집사)이 선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립적인 당회와 집사회(제직회)가 조직되어 운영되어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아직 당회가 구성되지 않은 미조직 교회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조직 교회를 향하여 나아가는 과도기적인 것이다. 따라서 미조직 교회는 조직된 교회 안의 하부구조로서의 소위 ‘가정 교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소위 ‘가정 교회’는 조직된 교회 안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소그룹 모임이며 장차 독립된 교회로 나아갈 의사가 애초부터 없다. 이에 비해 미조직 교회는 비록 당회는 없지만 당회장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정규적인 예배와 성례식을 거행하며 필요시에 권징도 실시한다. 제직회와 공동의회도 모인다. 따라서 ‘가정 교회’와 미조직 교회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의 것이다.

  

만일 교회 안의 소그룹 모임을 ‘교회’라고 부르게 되면, 그것은 ‘교회 안의 교회(ecclesiola in ecclesia)’가 되고 만다. 이러한 교회 구조는 신약 성경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가정에 모인 교회’는 한 교회 안의 소그룹 모임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교회이다. 비록 성도의 집에서 모였지만 하나의 독립된 교회로서 예배와 성찬과 권징 등 교회로서의 모든 기능을 다 수행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자들이 몇 명 모이면 다 교회가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개혁주의적 교회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참 교회의 표지와 직분을 무시하면 교회가 혼란스러워지고 무질서해진다. 그렇다면 굳이 소그룹 모임만 ‘교회’라고 부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유초등부 모임도 ‘유초등부 교회’라고 부르고, 중고등부 모임도 ‘중고등부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성도들이 부엌에 몇 명 모여 있으면 ‘부엌 교회’라고 부르고, 화장실에 모여 있으면 ‘화장실 교회’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교회’라는 용어를 남용하는 것은 개혁주의 교회 개념에 맞지 않다. 개혁 교회는 참 교회의 표지와 직분을 중요하게 여기며 교회의 질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2. ‘장로’가 소그룹 모임을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장로회 정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장로교에서는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의 지도자에 ‘장로’를 세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옳다. 왜냐하면 장로의 직분이 양들을 치는(돌보는) 것이기 때문이다(행 20:28, 벧전 5:2). 그래서 목사 혼자서 다 돌보기 어려운 성도들을, 구역을 나누어서 장로들이 각각 자기 구역의 성도들을 돌보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따라서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의 장은 장로가 맡는 것이 원칙이다. 참고로 화란 개혁교회에서는 장로가 구역장을 맡는다. 구역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일들은 일차적으로 구역장 되는 장로가 돌아보며, 그 중에서 중요한 일이 있으면 목사에게 보고하고, 필요할 경우에는 당회에서 의논한다. 그래서 장로는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자기 구역 식구들을 심방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그래서 장로직을 수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한 3~4년 정도 봉사하고 나면 장로직을 그만둔다. 휴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장로직을 완전히 벗어버렸다가 1년 쉰 후에 다시 장로로 선출될 수 있다. 그러나 장로로 선출하려고 해도 본인이 사양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하면 그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한국 교회의 경우에 구역은 많고 장로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경우 장로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럴 때에는 두 가지 해결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장로 수를 늘리는 것이다. 이것은 원칙적인 해결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장로를 세우신 목적은 양들(교회 성도들)을 돌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돌보고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함이다. 구역 모임 또는 소그룹 모임을 하는 목적도 바로 성도들을 효과적으로 돌보고 가르치고 권면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구역을 맡아서 지도하는 사람이 바로 장로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것이다. 화란 개혁교회에서는 교인이 늘어나서 구역이 늘어나게 되면 그 늘어난 구역 수만큼 장로를 더 뽑는다. 장로 선출과 임직 순서도 간단하여서 변화하는 상황에 빨리 대처한다. 그러나 한국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해결책을 시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교회의 구역은 대개 규모가 작으며 장로 수가 적고 또한 장로 선출 절차와 임직 절차가 번거롭고 거창하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두 번째 해결책은 몇 명의 구역장(소그룹 인도자)을 한 장로의 지도하에 두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한 장로가 3~4명 또는 5~6명의 구역장을 자기 관할에 두고 지도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장로가 매주 한 구역씩을 돌아보면 한두 달에 한 번씩 자기 관할하의 식구들을 다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몇 개의 구역으로 이루어진, 한 장로가 돌아보는 영역을 예를 들어 ‘지역’ 또는 ‘지구’라고 이름 짓는다면 장로가 ‘지역장’ 또는 ‘지구장’이 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성도들을 돌아보고 지도하는 일에 장로가 소외되지 않으며, 당회가 제 기능을 감당하게 되므로 장로교의 정치 원리에 벗어남이 없다. 오히려 장로들이 단지 결정만 하고 감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성도들을 돌아보고 지도하는 일에 나서므로, 이것은 성경의 원리에도 맞고 장로교의 원리에도 맞다. 이렇게 하는 것은 구역은 많고 장로 수는 부족한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해결책이기도 하다. 


3. 소그룹은 소그룹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구역 또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소그룹 모임은 그에 맞는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교회는 교회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고, 구역은 구역으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 공예배와 성례식, 권징은 교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재정 운용과 교회적인 행사, 공동의회와 제직회와 당회도 다 교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구역 모임에서 세례나 성찬을 행해서는 안 되며, 구역 모임이 공예배를 대신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헌금 사용에 대해서도 각 구역에서 독립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당회의 지도를 받아서 해야 한다. 그리고 권징이나 치리에 관한 문제는 당연히 당회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구역에서 다루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주된 것은 교제와 교육, 권면과 상담 등이 될 것이다. 교제는 중요한데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집에서 떡을 떼는 것(식사)을 통해 성도의 교제를 실천했다(행 2:42,46). 나아가서 서로 물건을 통용함으로써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참된 사랑을 실천했다(행 2:45, 4:32).

  

그리고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에서는 공예배 시의 설교에서 자세히 배울 수 없는 것을 소그룹 성경 공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모르거나 궁금한 것을 질문할 수도 있고, 서로 의견을 나누면서 말씀을 배우는 것은 설교 못지않은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다. 이것이 또한 소그룹 모임의 장점인데, 이것을 통해 성도들 각자의 신앙상태와 생활을 점검하며 개인적으로 적용하고 권면할 수 있다. 성경에서도 장로(감독)는 “가르치기를 잘해야” 한다고 말한다(딤전 2:2). 장로의 주된 임무가 ‘양을 치는 것’인데 양을 치는 일이 곧 양을 먹이는 것이다(행 20:28, 벧전 5:2, 요 21:15-17). 곧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장로는 양을 치는 자로서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한국 교회의 장로는 그 동안 너무나 회의하는 일에만 치중하고,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거나 구역을 돌보는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장로의 본분을 소홀히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의 소그룹 운동이 성경 공부를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임무를 장로들이 맡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구역 모임(소그룹 모임)에서 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것은 권면과 상담이다. 디도서 1:9에 보면 장로(감독)의 직무 중에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는 것”이 들어 있다. 장로는 성도들을 각각 돌아보고 그들 개개인을 권면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 때 권면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해야 한다. 자기 생각이나 인간적인 교훈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교훈을 가지고 해야 한다. 그래서 장로는 말씀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갖추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 거스려 말하는 자가 있으면 필요한 경우에는 책망도 해야 한다. 이런 권면과 책망은 구역 모임과 같은 소그룹 모임에서 하는 것이 매우 적절하다. 물론 문제가 심각한 경우에는 모든 장로들이 모이는 당회에서 의논하고, 또 필요한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책망하거나 시벌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구역 모임에서 장로가 권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성도들의 개인적인 고민이나 갈등,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 상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점들에 있어서 소그룹 모임은 전체 모임이나 예배에서 할 수 없거나 부족한 것들을 보충하고 가르치며, 성도간의 교제를 촉진하며, 개인적인 권면과 상담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며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일들의 성격상 그러한 것은 기본적으로 신약에서 말하는 장로의 직무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장로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본래의 임무인 성도들을 돌보는 일(양을 치는 일 곧 목양)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며, 그리할 때 현재 ‘가정 교회’와 관련하여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며 오히려 더욱 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

1) 최병규, “한국 이단들의 종말 사상에 대한 비평과 제언”, 「바른 신앙」 11호, 서울: 유사기독교상담소, 2007, p.32

2)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서울: 나침반 출판사, 2006(초판 1996), p.29.

3)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p.30.

4)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p.30.

5)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p.19

6)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pp.19, 148, 165; 또한 최영기, 「가정 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 서울: 두란노, 1999, p.69: “그러나 가정 교회는 그 자체가 교회입니다. ... 그러나 가정 교회는 예배, 교육, 친교, 전도, 선교 등, 교회가 해야 할 모든 사역을 포괄적으로 다 합니다.”

7)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p.20.

8)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p.21

9) 「벨직 신앙고백」 27조: “Wij geloven en belijden één katholieke of algemene kerk. Zij is een heilige vergadering van de ware gelovigen.”

10) 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XXV,i: “The catholick or universal church, which is invisible, consists of the whole number of the elect that have been, are, or shall be gathered into one, under Christ the head thereof;” 

11) Cf. J. A. Heyns, Dogmatiek, Pretoria: N. G. Kerkboekhandel Transvaal, 3판, 1984, p.387: “Die kerk is nie oral daar waar gelowiges saam is of hulle geloof bely nie.”

1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XXV,iv)은 이것을 “particular churches”(개별적 교회)라고 부른다.

13) 최영기, 「가정 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 p.39.

14) 홍인규, “바울과 가정 교회”, 「한국 복음주의 신약학 연구」 제2권, 서울: 도서출판 바울서신, 2003, p.228.

15) 정용성, “신약 가정 교회와 21세기 한국 교회를 위한 제언”, 「개혁 신학」(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논문집 제13권), 202, p.65.

16) 장동수, “신약 성서의 가정 교회”, 「복음과 실천」 37 (2006년 봄호), 대전: 침례신학대학교 출판부, p.43.

17)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 「신학정론」 38(20권 1호), 2002, p.59.

18) F. W. Grosheide, Handelingen, I, Amsterdam: H. A. van Bottenburg, 1942, p.107. 

19) W.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3rd ed., rev. and ed. by F. W. Danker,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0, s.v.

20) J. Calvin, The Acts of the Apostles, II, tr. by J. W. Fraser, Grand Rapids: Eerdmans, 1966, p.154(행 19:9 주석 중).

21) 정용성, “신약 가정 교회와 21세기 한국 교회를 위한 제언”, p.66.

22) 정용성, “신약 가정 교회와 21세기 한국 교회를 위한 제언”, p.67

23) Cf. F. W. Grosheide, De brief van Jakobus, Amsterdam: H. A. van Bottenburg, 1927, pp.401-406.

24) Cf. Grosheide, Jakobus, p.452. 

25) 가버나움에서 발굴된 주후 2, 3세기경의 회당에는 옆으로 쭉 나 있는 2층으로 된 긴의자들이 발견되었다. 어떤 사람이 바닥에 앉는다면, 그의 머리는 제일 높은 의자에 앉은 사람의 발 위치에 오게 된다고 한다(Dibelius; cf. Grosheide, Handelingen, I, p.453 n.4).

26) 예를 들면 정용성, “신약 가정 교회와 21세기 한국 교회를 위한 제언”, p.65.

27) 최영기, 「구역 조직을 가정 교회로 바꾸라」, p.30.

28) 최영기, 「가정 교회로 세워지는 평신도 목회」, p.41f.

29) 여기에 사용된 헬라어 편사 te도 대비를 나타낸다. 여기에 사용된 kat! oi\kpon은 어떤 학자들의 주장처럼(예를 들면 Polhill, Acts, p.121 각주 152; Bauer) ‘집집마다’(from house to house, 배분적 의미)가 아니라 그냥 ‘집에(at home)’를 뜻한다. Cf. Grosheide, Handelingen, p.100 각주 1; J. A. Alexander, A Commentary on the Acts of the Apostles, Carlisle: Banner of Truth, 1857(repr. 1991), p.94f.: “But the best authorities are now in favour of explaining it to mean in the house or at home, as distinguished from the foregoing phrase, in the temple. This philological decision is confirm!ed by the repeated use of the same Greek words in Paul's epistles, to describe a church, or stated meeting of believers, in a private dwelling. (See Rom. 16,5. 1 Cor. 16,19. Col. 4,15. Philem. 2.)” 

30) J. Calvin, The Acts of the Apostles, I, tr. J. W. Fraser and W. J. G. McDonald, Grand Rapids: Eerdmans, 1965, p.89(사도행전 2:46 주석 중). 

31) 행 2:42에는 hJ klavsi" tou' a[rtou(the breaking of the bread)라는 명사적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신약에서 눅 24:35에 한 번 더 나온다. ‘떡을 떼다’는 동사적 표현은 자주 나타난다(눅 22:19, 24:30, 행 2:46, 20:7, 11, 27:35, 고전 10:16 등). 

32) 가톨릭 주석가들은 대개 ‘성찬’으로 본다. Cf. J. A. Fitzmyer, The Acts of the Apostles, New York etc.: The Anchor Bible, 1998, pp.269, 270f.; J. Keulers, De handelingen der apostelen, Roermond en Maaseik: J. J. Romen & Zonen, 1952, p.73. 개신교 주석가들 중에서 이런 견해를 취하는 것으로는 I. Howard Marshall, The Acts of the Apostles, Leicester: Inter-Varsity Press, 1999, p.83을 보라.

33) 대개는 ‘성찬’ 또는 ‘애찬’으로 본다. Cf. J. B. Polhill, Acts, Nashville: Broadmann Press, 1992, p.119(성찬을 좀 더 선호); Grosheide, Handelingen, I, p.95(애찬을 더 선호). 

34) 따라서 행 2:42을 정리하면, 1) 사도의 가르침을 받음; 2) 서로 교제함; 3) 떡을 뗌; 4) 기도함, 이렇게 네 항목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1) 사도의 가르침을 받음; 2) 서로 교제함 곧 떡을 뗌; 3) 기도함, 이렇게 세 항목으로 나누어야 옳다.

35) 이렇게 보는 학자로는 E. Haenchen(Acts, p.584), H. Conzelmann(Acts, p.23) 등이 있다. Cf. Fitzmyer, Acts, p.270f. 박윤선 박사도 그의 사도행전 2:42 주석에서 ‘떡을 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사랑의 교제’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먼저 사도들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을 들었으며, 또 그들은 사랑스러운 교제를 가졌으며, 또한 기도를 힘썼다는 사실이다.”(「성경 주석 사도행전」, 12판, 서울: 영음사, 1981, p.75)

36) Calvin, Acts, I, p.89(행 2:46 주석 중). 칼빈이 여기서 ‘검소함’의 개념을 끌어내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칼빈은 여기의 ‘순전한 마음으로(ajfelovthti kardiva")’를 ‘절제(temperance)’의 개념으로 이해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오히려 ‘다른 의도 없이’, ‘순수하게, 정직하게’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Cf. Grosheide, Handelingen, I, p.100. 곧 오순절 날에 강림한 성령을 받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의 감동과 능력으로 모든 인간적인 장벽을 극복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하고, 성령이 주시는 순수한 기쁨으로 서로 교제하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음을 보여준다(cf. 행 4:12). 

37) Cf. 로버트 뱅크스, 「바울의 공동체 사상」, 장동수 옮김, 서울: IVP, 2007, p.68.

38) 홍인규, “바울과 가정 교회”, p.237.

39)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p.48.

40)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pp.48-51.

41)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pp.51.

42) J. Calvin, The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Romans and to the Thessalonians, Grand Rapids: Eerdmans, 1973, p.322 (롬 16:4 주석 중)

43) Cf. F. L. Godet, Commentary on Romans, Grand Rapids: Keregel, 1977, p.490.

44) W. Hendriksen, Romans, I, Edinburgh: Banner of Truth, 1980, p.23; 

45) 예를 들면, S. Greijdanus, De brief van den apostel Paulus aan de gemeente te Rome, II, Amsterdam: H. A. van Bottenburg, 1933, pp.663, 670; J. van Bruggen, Romeinen, Kampen: J. H. Kok, 2006, p.233(그는 세 곳의 모임 장소가 있었다고 본다) 등. 

46) 홍인규, “바울과 가정 교회”, p.236f.

47)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p.53.

48)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p.53.

49) G. D. Fee, The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Grand Rapids: Eerdmans, 1987, p.830.

50)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p.52.

51) J. van Genderen-W. H. Velema, Beknopte Gereformeerde Dogmatiek, Kampen: J. H. Kok, 1992, p.627(여기서 저자들은 Heyns의 Dogmatiek, p.387을 참조하라고 제시하고 있다).

52) F. W. Grosheide, Eerste brief aan Korinthe, Amsterdam: H. A. van Bottenburg, 1932, p.40.

53)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회’를 말할 때에는 단수를 사용하였다(살전 1:1).

54)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논의를 참조하라.

55) 조병수, “초기 기독교의 가정 교회 - 자료 분석”, p.52.

56) 홍인규, “바울과 가정 교회”, p.237f.

57) 홍인규, “바울과 가정 교회”, p.238

58) Bauer, A Greek-English Lexicon, s.v.

59) Cf. Grosheide, Handelingen, I, p.163.

60) Cf. Godet, Romans, p.501. Greijdanus도 Godet의 이 견해를 따른다.

61) Greijdanus, Romeinen, II, p.677.

62) 뱅크스, 「바울의 공동체 사상」, 장동수 옮김, 서울: IVP, 2007, p.75.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Paul's rather vague way of referring to meetings of the whole church suggests that it met less than once a week. Voluntary and cult associations met on a monthly basis; these larger Christian gatherings may well have followed suit.”(R. Banks, Paul's Idea of Community, rev. ed., Peabody: Hendrickson, 2004, p.34)

63) 홍인규, “바울과 가정 교회”, p.237 각주 25. Cf. Banks, Paul's Idea of Community, p.32.

출처: 생명나무 쉼터


 

바울에 대한 새 관점학파 유감

     < 송영찬 국장, dan7777@dreamwiz.com >

  지난 40-50년 동안 신학계에서는 소위 바울에 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f Paul, NPP) 학파들로 인해 신학적 학문의 열기가 고조되어 왔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이 학파의 거장으로 알려진 톰 라이트의 저서들이 거침없이 번역, 소개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세계적인 신학계의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다.

 반면에 바울에 대한 새 관점안에 담겨 있는 미묘한 신학적 해석의 차이점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이 가져다 줄 위험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이라는 말은 바울이 말한 신학의 새로운 관점'이 아니라 몇몇 학자들이 말한 '바울 이해에 대한 (그들의) 새로운 관점'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이 말은 바울이 그렇게 말하거나 이해했다는 것이 아니라 몇몇 학자들이 바울을 그렇게 말하거나 이해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몇몇 학자들이 바울을 '어떻게 이해했는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너무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를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교회가 고백해 온 신앙고백서들 및 교리문답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교회의 공적인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서들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밝혀서 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울에 대한 새 관점학파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면 먼저 교회의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서들이 과연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이 주장하는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을 주장하기에 앞서 신앙고백서들과 교리문답서들에게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에 대한 신학적 오류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교회의 신앙고백서들 및 교리문답서들이 가장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어떤 신학적 논제들이라 할지라도 교회의 신앙고백서들 및 교리문답서들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가 성경이 성경으로 말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며, 이것이 곧 성경을 성경으로 보존하는 교회의 준엄한 사명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개혁신보

 출처: 개혁주의마을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HMLI/34

 

신앙과 행위 - 제네바교회 교리문답>

[참된 신앙]
[18주일]
111문: 이제 우리는 신앙이 설 수 있는 기초를 소유하고 있으므로 이로부터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겠군요?
답: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이란 성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구원자 되심을 그분의 복음으로 친히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성령의 은혜를 통해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아는 것입니다.

112문: 우리는 이 신앙을 우리 자신의 힘을 통해서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얻는 것입니까?
답: 성경에서는 이 신앙이 오직 성령님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분명한 것입니...다.

113문: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십시오.
답: 우리의 이해력은 너무도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적 지혜를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의심에 빠지거나 자기 자신이나 여러 가지 피조물에 대한 잘못된 신뢰에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밝히셔서(조명) 우리가 그 어떤 방법으로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이 신앙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즉 성령님께서는 구원의 약속들을 우리의 마음속에 확증해 주시고 인쳐주심으로써 우리를 강한 확신 속에 굳게 새워 주십니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 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14문: 우리가 이런 신앙을 소유하게 될 때 이 신앙으로부터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답: 이 신앙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해 줌으로써 우리로 영생을 얻게 해 줍니다.

115문: 뭐라고요? 인간은 거룩한 삶과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이런 선행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답: 만일 어떤 완벽한 사람이 발견된다면 우리는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가련한 죄인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대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 외의 다른 곳에 우리의 의로움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롬3:10-11)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19주일]
116문: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에게 혜택을 입힐 수 있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정죄를 받았다는 것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성으로부터 행하는 모든 일들은 죄악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모두 정죄하십니다.
(시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117문: 당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은혜로 우리를 받아주시기 전에는 마치 악한 나무가 악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가 죄만 지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비록 우리의 행위들이 외적으로 볼 때에는 아름다운 모습을 띠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들은 정녕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감찰하고 계시는 우리의 마음이 부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8문: 그러면 당신은 우리가 우리의 공로와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의 호감을 사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도록 할 수가 없고 오히려 그와 정반대로 하나님의 진노를 부추기는 일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위는 전혀 고려해 넣지 않으시고 오직 당신의 순전한 긍휼과 자비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기쁘게 용납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리시며, 우리의 죄악을 조금도 우리에게 돌리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딛3:5-7)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19문: 그러면 당신은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답: 우리가 복음의 약속들을 믿고, 이를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신뢰로써 받아들일 때 이 ‘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20문: 당신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해서 이 '의'를 우리에게 제시한 것처럼 이 '의'를 받는 수단까지(도구)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즉 우리는 오직 믿음을 통해서 이 '의'를 받는다고 말입니다.
답: 그렇습니다.

[행위]
[20주일]
121문: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받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에 의하여 행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답: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행위들 자체가 지니고 있는 가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관대하심으로 이 행위들을 용납해 주시는 것입니다.

122문: 뭐라고요? 이 행위들이 성령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용납되어질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의 육신 가운데에는 언제나 어떤 결함이 항상 있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들은 이것에 더럽혀 지는 것입니다.

123문: 그러면 이 행위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하게 만드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답: 그것은 신앙 안에서 행해질 때 그렇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엄격하게 심사치 않으시고 모든 불완전함과 오점을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을 가지고 덮어 주시며 그 행위를 온전한 것으로 간주하시며 받아들여 주신다는 것을 마음에 확실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124문: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신 이후에는 그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말입니까? 또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게 되어 구원이나 은혜를 얻는다는 말입니까?
답: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성경에는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떤 자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지 않으시도록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진 빚을 계산하지 않으시도록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시143:2)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125문: 그러면 성도들의 모든 선한 행위는 무익하다는 말입니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와 천국에서 이 선행들에 대해 보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무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보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써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두시되 기억하지 아니하신다는 전적인 자비와 은총으로 되는 것이지 우리의 공로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126문: 그러나 선한 행위를 하지 않고도 의롭게 인정받는다고 믿을 수 있습니까?
답: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분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단순히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키고 자기의 무죄하신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구출해 내시고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화목하게 해 주시겠다고만 약속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를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서 우리가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해주시겠다고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127문: 그렇기 때문에 신앙은 우리로 하여금 선행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게을러지지 않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선행들이 만들어지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는 말입니까?
답: 그렇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복음의 교리는 신앙과 회개의 두 가지가 모두 포함되는 것입니다.

가져온 곳 : 
카페 >개혁주의 마을
|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칭의와 선행의 관계

-루터의 '선행에 관하여'(1520)를 중심으로-


1. 시작하는 말


올해는 루터 서거 450년 주년되는 뜻깊은 해로 독일에서 "루터의 해 '96(LUTHER-JAHR '96)"이라는 표제 아래 대대적인 행사가 있었다. "루터 도시(Lutherstadt)"라는 별명을 가진 비텐베르크(Wittenberg)를 위시하여 루터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여러 도시들을 관광할 수 있는 상품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필자가 지난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3번째의 루터 유적지 방문에서 이번의 루터 전시회는 신학적인 측면보다 오히려 루터의 인간적인 측면을 더욱 부각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루터를 이제까지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굴레에서 신학적으로 해방한 인물로 보는 입장에서 더 나아가 루터를 새롭게 발견하고자하는 시도라고 보여졌다.

그 가운데 루터가 라틴어 학교를 다녔던 아이제나흐(Eisenach)에 있는 루터 하우스(Luther Haus)의 "목사 사택 기록(Pfarrhausarchiv)" 전시회는 성직자들의 결혼이 금지되었던 카톨릭의 세계에 성직자도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선물을 준 루터의 업적으로 16세기부터 현대까지 목사 사택의 생활상을 자세히 알려주는 흥미있는 전시회였다. 비텐베르크에 있는 루터 홀(Luther Halle)에서는 "루터와 백조"라는 제목의 특별 전시회가 있었는데 이것은 "후에 백조가 나타나서 교회를 개혁하리라"는 보헤미아의 종교개혁자 후스(Johannes Hus, 약 1370-1415)의 예언이 루터의 출현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 교회 개혁의 중심 사상은 바로 칭의론(Rechtsfertigungslehre)라 할 수 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3가지의 '오직'(sola)을 통해서 가능하다: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 3가지의 '오직'으로 루터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과"라는 신앙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은총과 공로, 믿음과 행위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 루터의 이런 사상은 오늘 우리에게도 전승되어 우리는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신앙에 대한 강조는 자칫 행위는 불필요하며 구원에 있어서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변이 바로 루터가 1520년에 쓴 글인 '선행에 관하여(Von guten Werken)'라는 설교이다.

본 소고는 루터의 이 설교를 중심으로 신앙과 선행의 문제를 접근하고자 한다. 이 글은 또한 오늘 한국 개신교에서도 계속 대두되는 신앙과 행위의 문제에 대한 좋은 답변이 되리라고 여겨진다. 루터의 명제인 '오직 믿음'을 그 당시의 종교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없이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문제에 부딪히게 됨은 당연하다. 이러한 전이해가 없이 개신교인들에게 항상 용서해주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만 부각된다면 죄에 대한 아픔도 없이 언제나 죄를 범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죄를 범해도 주일날 교회에 가서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주신다는 잘못되고 안이한 생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개와 믿음을 감정적으로만 이해하는데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요즘은 부흥회 때도 회개를 강조하지 않지만 부흥회 때에 울고 짜고 기도하면 용서를 받고 믿음이 생긴다고 알고 있다. 과연 루터가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계속 죄를 범한 인간을 간단히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말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신앙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어떤 감추어진 면이 있었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한 루터의 견해를 알기 위해 이 글에서는 루터의 칭의 이해 그리고 선행과 신앙의 관계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2. '선행에 관하여'(1520)의 배경과 구성


2.1. '선행에 관하여'(1520)가 나오게된 배경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루터의 사상은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468년 사망)의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인쇄가 예전보다 훨씬 쉬어지자 팜플렛(Flugschriften)을 통하여 급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성서신학 교수로서 대학의 강단에서 뿐만 아니라 비텐베르크 시교회(市敎會, Stadtkirche)의 설교자로서 매주일 설교한 목회자이기도 했다. 루터의 설교는 평신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었고 특히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루터의 주장은 이제까지 행위를 통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신자들의 인식에 많은 변화와 혼돈을 초래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선행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루터가 선행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루터는 이에 대해 어떻게 선행이 행해져야 되며 어떻게 이것이 인식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설명해야할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선행에 관하여(Von den guten Werken, 1520)'라는 설교가 나오게 되었다.

루터는 이 글을 작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Kurfürst Friedirch)의 비서이며 궁중 설교자인 슈팔라틴(Spalatin)의 권고로 프리드리히의 동생인 작센의 제후 요한(Herzog Johann)에게 헌정하였다. 루터는 1520년 3월 25일 슈팔라틴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것은 설교라기 보다는 작은 책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까지 쓴 책 가운데 "최고의 책"이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루터는 이 글을 1520년 2월 26일부터 쓰기 시작했으며, 1520년 5월말 혹은 6월초에 비텐베르크에 있는 멜리호르 로터 2세(Melchior Lotter d.J.) 출판사에서 초판이 발행되었다.


루터는 이 글을 신학자들을 위해 쓴 글이 아니라 평신도를 위하여 썼다. 그러므로 그는 이 글을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썼다. 그는 평신도들이 신앙에 대하여 오도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를 바로 잡아 주고자 했으며, 또한 자신이 배우지 못한 평신도들을 위해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설교하고 글을 쓴 것에 대하여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그는 그 당시 라틴어로 설교하고 글을 쓴 성직자와 비교해볼 때 민중의 편에 선 목회자요 교육자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2. '선행에 관하여'의 구성


루터의 '선행에 관하여'라는 설교를 뢰베니치(W. v. Loewenich)는 복음주의적 윤리의 가장 아름다운 진술이라고 평가하였다. 이 설교를 통해 루터는 자신의 새로운 윤리의 근본을 제공하고 있다. 이 설교는 선행이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하여 모세의 십계명을 해설하고 있다. 우리는 루터가 십계명의 분류를 우리와는 달리 제1,2계명을 제1계명으로 그리고 제10계명을 제9,10계명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글에서는 루터의 분류법을 그대로 따르기로 하겠다.


이 글은 십계명에 의거하여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모세의 첫째 돌판(제1계명부터 제3계명까지)에 관해서, 제2부는 둘째 돌판(제4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제1계명인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과 우상 숭배를 하지 말라는 것에 관하여 1-17항목에 이르는 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제1항과 2항은 이 책의 요지라 할 수 있다. 1. 선행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이 금하셨던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었으로 우리는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 2. 첫째되며 최고의 선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기도, 금식 그리고 종교 재단을 설립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선행이나 사람들 가운데서 선한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라고 묻겠지만 우리는 이런 선행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알 수 없으며 이런 것들은 신앙이 아니다. 하나님 야웨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2계명에 관하여 18-31항에 걸쳐서 해설하고 있으며 제2계명에 해당되는 4가지 선행을 언급하고 있다. 첫째 선행은 하나님을 은총을 찬양하는 일이다(제21항). 둘째 선행은 일시적인 존경과 영광에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제21-24항). 셋째 선행은 모든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제25항). 넷째 선행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든지, 저주하든지, 거짓말 하거나 속이거나 마술하거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지 않은 것이다(제28항). 제3계명인 안식일 성수에 대한 계명에 대한 설명은 1-25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예배(제1항), 미사(제2항), 설교(제3항), 기도(제3-16항), 안식일 성수의 영적인 의미(제17-18항), 금식(제19-23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2부: 제4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는 것에 관하여 4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제1-6항), 둘째, 교회를 섬기는 것(제7-11항), 셋째, 세속 권위에 순종하는 것(제12-17항), 넷째, 상관에게 순종하는 것(제18-19항) 그리고 결론(제20-21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머지 제5계명부터 제10계명까지 비교적 짧막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부정적인 금지보다는 긍정적인 내용으로 바꾸어 말하고 있다. 제5계명인 살인금지의 계명은 원수에 대해서 갖고 있는 악한 마음 대신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자비로 온유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으로, 제6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순결과 깨끗함을 지키는 것으로, 제7계명인 도적질하지 말라는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부터 물질에 대한 관대함(Freigebigkeit)으로, 즉 인간이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물질에 자신의 신뢰를 두지 않는 것으로, 제8계명인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진리와 복음을 위한 경주가 교황, 감독, 군주 그리고 왕에 대하여 요구되어짐으로 해석하고 있다. 제9계명과 10계명에 대하여 루터는 아주 짧막하게 이웃의 것에 해를 입히지 말라고 언급한다.

3. 루터의 칭의에 관한 이해


3.1. iustitia Dei


루터에게 있어서 신앙(fides)과 하나님의 의(iustitia Dei)는 톱니바퀴 처럼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앙은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통로이며 하나님의 의는 신앙을 통해서만 전달되어 진다. 루터가 신앙이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는 통로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그는 어거스틴 은자회 수도원에서 구원에 대한 절망으로 인한 자기 자신과의 투쟁(Anfechtung), 옥캄주의와의 결별 그리고 성서 연구에의 몰두라는 오랜 세월을 보내게 된다. 루터는 근대의 방법(via moderna)으로 대표되는 옥캄(Wilhelm von Ockham, 1285-1347)의 가르침에 충실한 수도사였다. 옥캄은 "인간 안에 있는 힘으로 선행을 할 수 있다(facere quod in se est)"라는 명제 아래 이미 고대 교회에서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 사이의 논쟁에서 펠라기우스가 패배한 논제를 다시 끌여들었던 것이다. 루터는 수도원에서 옥캄이 가르친대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 선을 쌓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던 것이다. 그는 수도사에게 요구되어지는 두가지의 선, 즉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완전한 사랑을 성취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 속에 잠기게 되었다. 그가 끊임없이 자신과 투쟁하였던 것은 자기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하려는 것이었다. 그가 자신의 무력함에 대하여 절망하고 있었을 때 그를 더욱 절망 속에 빠뜨린 것은 어거스틴의 예정론에 관한 글이었다. 그는 여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멸망으로 예정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성서를 통해 구원관에 대한 확신이 서기까지 그는 불안과 번민 가운데 지냈던 것이다. 왜냐하면성서가 말하는 구원의 의미를 깨닫기 전까지 그가 구원을 얻기 위해 인간의 행위를 중요시여긴 바로 그 당시 교회의 가르침과 신학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이점에 있어서 루터는 중세 후기에 속한 사람이었다.


루터에게 언제나 의문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롬 1:17에 나오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였다. 그는 하나님은 인간이 지킬 수 없는 구약의 율법이라는 의를 주셨는데 복음에도 하나님의 의를 주셨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하나님에 대해 루터는 미워한다고 표현하였다. 루터는 성서를 "복음"으로서가 아닌 "율법"으로 읽었던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를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처럼 의롭게 되어야할 의로 이해하였다. 루터는 "하나님의 의"에서 "하나님의"에 해당되는 속격을 하나님의 속성에 도달해야하는 주격적인 속격(genitivus subjectivus)으로 이해했다. 그러므로 이 의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성취해야 할 의이다. 이 의에 의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죄인과 불의한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의이다.


루터는 이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낮이고 밤이고 오랫동안 씨름하였으며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특성(Qualität)으로서의 이 의로 여기던 이제까지의 관념을 깨고 "하나님의"라는 속격을 목적격적인 속격(genitivus objectivus)으로, 하나님에 대한 의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의는 인간이 능동적으로 성취하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덥입혀주는 수동적인 의이다. 이 의는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는 선물이며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의이다. 루터는 이 사실을 깨달은 다음 자신의 심경을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으며 낙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그가 죽기 1년전인 1545년 출판된 그의 라틴어 저작 전집의 제1권의 머리말에서 술회하고 있다.


3.2. justificatio et justificare


루터에게 있어서 justificatio와 justificare는 하나가 아니다. 의롭게 여긴다는 동사인 justificare는 루터에게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루터는 이 말을 한편으로는 하나님에 의해 인간이 정당하다고 선언(die Für-Gerecht-Erklärung)을 받음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이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로 무죄 판결을 받아 새롭게 변화된 사건(Geschehen)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의를 선물하심으로 이 의를 통하여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자신의 선행의 실행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의로 여겨진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루터는 "낯선 의(iustitia aliena)"라고 한다. 의롭게 된 것이란 그리스도의 의로 인하여 하나님이 은혜로 죄를 더 이상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의는 인간 "밖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 의는 오직 신앙을 통하여 가능하다. 이 신앙과 더불어 그리스도가 인간 안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하여 이 의는 하나님이 인간과 교통하게 된 유일한 통로가 된다. 이로써 루터는 중세 신비주의, 특히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327년 사망)의 입장인 그리스도가 인간 안에서 탄생한다는 것과 확실한 결별을 나타내고 있다.


루터는 롬 3:4을 다루면서 우리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 하나님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겨지게 된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또한 롬 4:7에 대한 해석이기도 하다.


루터는 의롭게 됨이라는 명사인 iustificatio는 두 가지 이유에서 불가능하다고 본다. 첫째, 어떤 사람도 마음에서 나온 순수한 헌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인간은 선한 행위를 하려고 하지만 그 자신이 선하지 않으며 그의 마음은 순수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분열되어 있고 죄에 얽매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합당한 선한 행위를 하려면 인간은 일치되어 있고 하나님을 향해 완전히 열려 있어야만 할 것이다. 둘째, 인간이 은총의 도움으로 순수하고 완전한 헌신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윤리적으로 완전한 의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구원의 수단으로 참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왕이 베푸는 것과 같은 은총에 속한 자신의 자유로운 행위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 그러므로 iustificatio는 이 땅에서 완성되지 않은채 심판 날에야 완성된다. 이것은 종말에 실현될 희망 속에 남겨져 있다.


4. 루터에 있어서 신앙과 선행의 관계


4.1. 최고의 선행으로서 신앙


신앙과 행위라는 주제는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설교된 이후부터 불가피하게 대두된다. 루터는 이에 대한 답변을 '선행에 관하여'라는 설교에서 십계명을 해석함으로써 얻어낸다. 이 설교는 신앙과 선행에 관한 새로운 관계 정립이다. 루터는 이 설교의 서두를 하나님이 명령하신 계명을 지키는 것 외에는 더 나은 어떤 선행이 없다는 것으로 장식하고 있다. 이것은 선행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임을 명시한 복음서의 내용(마 19:17)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선행이란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루터는 역설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첫째되며 최상의, 가장 귀한 선행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는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루터에게는 왜 신앙이 최고의 선행이 되는 것일까? 루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이 내적인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내적 연관의 근본이 바로 신앙에 있음을 갈파하였다. 그러므로 신앙 외에는 어떤 선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루터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십계명의 제1계명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 신앙이란 선한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갖는 것이다. 제1계명이 지켜지고 있지 않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이 계명이 가장 근본적인 계명이며 구원에 이르는 계명인데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 신앙을 외형적이고 종교적인 것에서 쁹고 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는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금식, 기도, 교회 안에서 구제하는 행위등을 통하여 선행을 쌓아 의에 이르려고 하지만 이런 일들은 거짓되고 위선적이며 바리새적이고 비신앙적인 선한 행위이다. 이것이 비신앙적인 선한 행위인 것은 그 근본이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십계명의 제1계명을 범한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십계명의 제1계명은 바로 주기도문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한 신앙고백이다. 이것은 제1계명의 말씀이며 이 신앙에 대한 간구이다. 이것은 은혜로우신 하나님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우리의 아버지로 모신다는 것이며 여기에 어떠한 다른 것이 끼어들어 갈 수 없는 것이다.


제1계명으로부터 야웨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제2계명의 선행이 흘러 나오게 된다. 즉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의 은총을 고백하고 오직 그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주기도문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게 되고 존귀와 영광을 받게되는 것이며 모든 곤경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신앙이다. 다음으로 제3계명이 뒤따른다: 기도와 설교를 들음으로써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고찰하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여기에 고행과 자신의 육신을 억제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제3계명은 주기도문의 "나라이 임하옵시며"와 연관되어 있다. 이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일에서 휴식을 취하고 우리 안에 오직 하나님께 대한 행위만 있도록 하며, 눅 17:21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자신의 나라를 다스리는 안식일과 휴일이 올바로 지켜지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주기도문의 4번째 간구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모세의 둘째 돌판에 새겨진 나머지 7개의 계명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둘째 돌판에 있는 7개의 계명들을 따르고 지키도록 간구하는 것이다. 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은 이웃에 대해 행위로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다.

결국 루터에게 있어서 로마 카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선행 의인은 인간 스스로 노력한 힘으로 구원에 도달하려는 우상 숭배로 여겨진다. 루터에게 있어서 신앙은 모든 선한 행위의 원천이며 근거가 된다. 선행은 신앙과 연관되어야 한다. 신앙과 연관되어 있지 않은 선행은 선행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 신앙은 모든 행위의 "주된 행위(Hauptwerk)"이다. 그렇다면 신앙은 이미 행위를 내포하고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루터는 1522년 독일어로 번역된 신약 성서 로마서 서문에서 신앙과 행위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믿음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이 역사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태어나게 하며(요 1장) 옛 아담을 죽이고 우리를 마음, 기질, 감각, 그리고 모든 힘에서부터 전혀 다른 인간으로 만들며, 성령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오! 믿음은 살아있고, 굳세고, 강력한 것이다. 믿음이 선한 일을 끊임없이 하지 못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믿음은 선한 행위들이 행해져야 될 것인지 아닌지를 묻지 않고, 오히려 이미 선한 행위들을 했으며 언제나 하고 있는가를 묻는다."

 


4.2. 선행에 대한 두 가지 구분


루터에게 있어서 선행은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이것은 십계명이 하나님에 대한 것과 인간에게 대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다.


4.2.1.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선행


하나님께 대한 신앙 선행은 인간의 구원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다. 루터가 1517년 10월 31일 제시한 95개 조항도 인간의 죄의 해결을 위한 종교적인 행위인 고해 성사의 세번째 단계인 소위 "선행의 보속(satisfactio operis)"에 대한 논쟁이었다. 루터 당시는 신앙이 쇠약해진 시대가 아니라 사람들의 종교적인 관심이 최고조로 달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신앙적인 행위에 열심을 냈던 것은 사실이다. 루터가 태어났던 중세 후기를 가리켜 괴팅엔(Göttingen) 대학교 신학부의 교회사 교수인 묄러(B. Moeller)는 "중세 후기는 교회화의 최고조의 시대이다"라고 평가하였다. 그 당시 사람들이 신앙의 문제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영원한 구원이었다. 인간이 구원을 받기 위해 애쓰는 것 중의 하나는 종교적인 행위이다. 이 종교적인 행위를 루터 당시의 카톨릭 교회는 제1계명을 지키는 선행으로 가르쳤다. 찬송부르는 일, 미사 참석, 아침 기도회와 저녁 기도회를 지키는 일, 매일 정해진 기도 시간을 지키는 일, 종교 재단을 세우는데 헌금하는 일, 교회, 교회의 제단 그리고 수도원들을 꾸미는 일, 로마와 성자들의 유적지를 순례하는 일 등이 신앙이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인 행위는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불완전한 사랑의 표현으로 보였다. 이것을 남녀 간의 사랑을 비유로 들어 말하는데 상대방이 서로 진심으로 사랑할 때는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지만 상대방에 대하여 의심하게 되면 크고 작은 모든 일에 있어서 상대방을 여러 면에서 조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종교적인 행위는 하나님에 대한 의심을 무마해보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오늘 한국의 개신교회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보다는 종교적인 행위의 열심이 구원을 이루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지 저으기 의심스럽다.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게 된 것도 신앙적인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것을 주로 공격의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루터는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철학이나 윤리의 범주가 아닌 신학적인 입장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루터는 이러한 종교적인 선행은 결국 우상 숭배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닌 인간의 공로가 우선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십계명의 제1계명을 범하는 행위이다.


루터는 기도, 금식 등 종교적인 선행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다는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인간의 직업 상의 일, 휴식, 먹고 마시는 일, 잠자는 일 등 일상의 생활 또한 선한 행위 임을 주장한다. 선한 행위다, 선한 행위가 아니다는 인간이 정해 놓은 것이요, 하나님에게는 이런 차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로써 루터는 세속의 일과 종교적인 선행의 구분을 철폐하고 모든 행위가 차별없이 선한 것임을 천명하였다.


4.2.2.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서 윤리적 선행


루터에게 있어서 선행은 하나님과 관계된 영역 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에서 언급되어진 것으로 기독자의 윤리 문제를 다루게 된다. 루터는 십계명의 제4계명부터 제10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인간의 윤리적인 선행의 내용들을 언급하고 있다. 제4계명에서 루터는 부모와 지식들에게 그들의 의무를 엄하게 가르치고 있다. 루터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의 관계가 성립되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제4계명에서 세속의 권위와 교회의 성직자들의 해악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사치, 매춘 그리고 고리대금업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루터는 다른 계명들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면서 언제나 이러한 계명이 신앙과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루터에게 있어서 인간이 윤리적 행위를 할 수 있는 근원은 신앙에서 나와야 한다. 신앙으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은 후에 인간은 새로운 인간이 된다. 이 사람은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자연적으로 맺는 것처럼 선한 행실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이 선한 행실을 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역사이다.


루터는 인간의 윤리적인 선행의 한 부분을 시민적 정의(iustitia civilis)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의 도덕적 가능성을 협소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시민적 정의는 인간 사이의 도덕적이고 시민적이며 외적이고 정치적인 의이다. 우리는 이것을 완전무결하게 이룰 수 없다. 이 의는 아리스토텔레스나 치체로(Cicero)가 가르친 정치적인 덕의 총괄이다. 이러한 의는 이방인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국민들의 질서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이 의의 영역을 허락하셨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의는 사람들 앞에서 유효하며 영광을 가지고 있지 하나님 앞에서 유효한 것이 아니다. 루터는 여기에서 신학적인 의와 정치적인 의 사이를 구별하고 있다. 세속에서 재판관으로부터 의롭다고 선고를 받는 정치적인 의는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는 선고를 받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의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의 심판 앞에서 인간을 전혀 도울 수 없다. 이 의는 가면이요 위선이요 거짓이다. 왜냐하면 여기에 진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외적인 행동은 시민적으로 정치적으로 가능하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모신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영웅적인 덕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루터는 윤리적인 행위가 신앙인에게 불가피하게 따르게 됨을 주장하고 있다. 신앙인이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능력에서가 아닌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이해된다. 성령은 인간 안에서 선행을 하게 하는 원동력의 역할을 하며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을 사람의 마음에 불어 넣는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이 성령의 활동 때문에 강제적이 아닌 자율적으로 선행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 선행을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신앙이 없다는 것이다. 삶은 신앙의 훈련으로서 나타나게 되므로 행위는 신앙의 모습이다.


5. 끝맺는 말


루터의 '선행에 관하여'는 선행이 무엇이라고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신앙이 무엇인가를 변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참 신앙이 무엇임을 변증하기 위해 행위의 근본이 되는 십계명에 대하여 해설하고 있다. 루터는 신앙과 선행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제시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최고의 선행임을 천명함으로써 세속적인 일들과 성스러운 일들 사이의 차이를 허물어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 안에서 선행의 차이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선행이 신앙에 종속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루터에게 있어서 신앙에 우선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죽은 것이며 이 행위로 구원에 도달하려는 것은 우상 숭배에 해당된다. 신앙은 행위를 가능케하는 원천이 되는데 그것은 인간에게 그런 능력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설교는 무엇보다도 먼저 믿음의 열매로서 선한 행위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선한 행위가 결코 인간을 의롭게 할 수 없으며 이러한 행위는 오직 하나님의 행위임을 주장하고 있다. 인간이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첫 번째 창조가 아닌 두 번째 창조인 거듭남(regeneratio)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루터는 인간의 전적 타락과 자유의지를 부정함으로, 그에게서 신인협동(神人協同)을 전혀 쁹아볼 수 없다.


루터에게 있어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신앙적인 선행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려는 당시의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구원관에 대한 반박의 역사적인 배경에서 먼저 조명해야 할 것이다. 루터는 선행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선행이 신앙과 은총보다 선두에 있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선행과 신앙의 문제는 경건주의자들에 의해 다시 제기되었으며, 경건주의자들은 살아 있는 믿음에 관한 루터의 가르침을 다시 주장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들이 강조한 것은 루터와 달랐다: 경건주의자들에게는, - 루터가 원했던 것처럼 - 신자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고 신뢰하여 그의 전체로 하나님을 만족시키는 믿음 자체보다, 생동력을 가진 선행이 더 중요하였다.

카페 >창골산 봉서방
|
글쓴이 : 봉서방| 원글보기


'샌더스 혁명'과 새 관점 학파

길성남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시작하는 말

지난 20여년 사이에 출간된 신약성경 연구서들과 주석들에는 E. P. 샌더스라는 이름과 함께 '바울에 대한 새 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이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샌더스와 새 관점 학파의 학설을 알지 못하면, 신약성경, 특히 바울서신 연구서들의 상당 부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1977년에 샌더스가 Paul and Palestinian Judaism(「바울과 팔레스틴 유대교」)이라는 신기원을 이루는 저서를 출간한 이래, 많은 성경학자들이 바울과 이신칭의 교리에 대한 '새 관점' 학설을 열렬히 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 관점의 틀 안에서 바울과 그의 서신들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신약학계에도 새 관점 학설을 적극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이라는 표현은 영국의 성경학자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이 1982년에 처음으로 사용하였지만, 새 관점 학설을 서구 학계에 최초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제시한 사람은 앞서 언급한 미국 텍사스 출신의 E. P. 샌더스이다. 오늘날 샌더스와 함께 소위 새 관점 학파(샌더스 ‘학파’라고도 함)를 이끄는 대표적인 학자들은 제임스 던과 N. T. 라이트인데, 이들을 가리켜 새 관점 학파의 삼총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세윤은 종교 개혁 이래, 어떤 학파도, 심지어 불트만 학파조차도 새 관점 학파보다 바울 학계에 더 큰 영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샌더스의 저서 Paul and Palestinian Judaism(1977)의 출간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할 만큼 제2 성전 유대교와 바울 연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샌더스의 영향력의 지대함 때문에 최근에는 '샌더스 혁명'(the Sanders revolution)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학자들까지 있으며, 바울 연구의 역사를 ‘샌더스 이전’과 ‘샌더스 이후’로 양분한다.

E. P. 샌더스와 유대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그러면 샌더스가 제시한 새 관점 학설이란 무엇인가? 이 학설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바울 당대의 팔레스틴 유대교를 율법주의 종교가 아니라 '언약적 신율주의'(covenantal nomism)로 규정하는 것이다. 언약적 신율주의란 샌더스의 신조어로서 유대교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을 중시하고 율법 준수(nomism)를 언약의 범주 안에서 이해하는 언약적 종교임을 뜻한다. 샌더스는 주전 200년에서 주후 200년 사이에 기록된 유대 문헌들을 분석하면서, 그 문헌들에 모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으로 언약 백성이 되며, 율법 준수란 단지 언약 백성의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상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을 발견한다. 샌더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대교에서 율법 준수란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것'(getting in)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약 안에 '머무는 것'(staying in)과 관련이 있다. 이는 1세기의 유대교가 율법을 준수하여 자기 의를 세움으로써 구원을 얻으려 한 율법주의적 종교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유대문헌 분석에 근거하여 샌더스는 유대교의 종교 유형을 언약적 신율주의로 규정하면서 유대교가 기독교와 매우 흡사한 은혜의 종교라고 결론을 내린다.

샌더스의 이런 주장은 종교개혁 이래 5백년 가까이 바울 연구 분야를 지배해온 개신교의 전통적인 견해를 뒤엎는 가히 혁명적인 것이다. 만일 샌더스의 견해가 옳다면, 사도 바울의 유대교 비판은 물론,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신칭의 교리도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유대교가 하나님의 선택과 언약을 강조한 은혜의 종교였다면, 대체 바울은 무엇 때문에 유대교와 유대주의자들을 그토록 격렬하게 비판했는가? 샌더스는 유대교에 대한 바울의 비판을 율법주의, 또는 선행으로 구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는 것은 유대교뿐 아니라 바울 자신을 크게 오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샌더스에 따르면, 바울이 유대교를 비판한 것은, 유대교 자체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기독교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즉, 구원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거부한 것이 유대교 비판의 근본 이유라는 것이다. 이렇게 샌더스는 바울에 대한 개신교의 전통적인 해석 체계에 대대적으로 도전하였다. 그의 도전은 1세기 유대교의 적절한 역사적 상황에 비추어서 바울과 칭의 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임스 D. G. 던과 율법의 행위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

'바울에 대한 새 관점'이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한 영국 덜햄의 신약학자 제임스 던은 유대교가 은혜의 종교라는 샌더스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바울이 유대교를 비판한 이유를 샌더스와는 다른 각도에서 설명한다. 그는 “율법의 행위들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는 바울의 진술에 주목하고, ‘율법의 행위들’을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들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에 의문을 제기한다. 샌더스가 '율법의 행위들'을 언약을 유지하거나, 또는 언약 안에 머무는 수단으로 간주한 것에 비해, 던은 마카비 시대 이래 가장 분명하게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별해 주는 일종의 경계 표식들(boundary markers), 즉 할례, 안식일, 음식법 등을 지키는 행위로 본다. 바울 당대에 이것들은 특정 개인이 유대 언약 공동체에 속해 있음을 보여주는 사회적 신분 표지(badges of identity)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유대 언약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는 이방인들은 반드시 할례를 받고 모세 율법을 지켜야 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바울이 유대교를 비판한 것은, 율법의 일부 규정들을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는 경계 표식으로 여기고, 이방인을 배제한 채 유대인만을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간주하는 민족적 배타주의 때문이었다.

율법의 행위들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근거하여 던은 바울의 칭의 교리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를 배격한다. 던에 따르면, 이신칭의는 신자 개인의 구원을 규정하는 교리가 아니라, 안디옥 사건(갈 2:11-14) 이후에 바울이 확립한 일종의 논쟁적 교리, 또는 이방인 선교를 위한 교리다. 즉, 유대인들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반대하여, 이방인들이 율법의 행위들 없이 믿음만으로 하나님의 백성 안에 포함된다는 것을 옹호하기 위한 교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신칭의는, "어떻게 개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어떻게 이방인들이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N. T. 라이트와 이신칭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

새 관점 학파 삼총사 가운데 개혁주의와 복음주의 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영국 성공회 덜햄의 감독인 N. T.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이다. 라이트는 유대교와 바울에 대한 샌더스의 새 관점을 최초로 지지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1978년에 유대교는 행위-의를 추구한 율법주의적 종교가 아니며, 유대교에서 ‘선행’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자 언약적 신실함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하였다.

'율법의 행위들'과 관련해서 라이트는 전통적인 견해를 거부하고 제임스 던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율법의 행위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율법 일반을 준수하는 행위들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이방인들과 구분하는 기능을 가진 율법의 일부 조항들을 준수하는 행위들이다. 따라서 1세기 유대교의 문제는 율법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만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고 믿는 배타적 민족주의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바울의 이신칭의를 유대교의 율법주의에 반대한 것으로 이해한 종교개혁자들은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라이트는 종교개혁자들이 1세기의 상황이 아니라 로마 천주교와 투쟁하는 자신들의 상황에서 바울을 읽은 결과, 바울이 비판한 유대교, 또는 유대주의자들을 (은혜와 함께) 행위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 한 로마 천주교의 원형으로 잘못 보았다고 지적한다. 또한 로마 천주교와의 투쟁을 바울 서신에 투사함으로써 잘못된 바울(a false Paul)을 만들어냈고, 이신칭의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에도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라이트는 1세기의 유대 상황에서 칭의 개념은 어떻게 개인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 또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누가 하나님의 백성 안에 속해 있는지를 종말적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샌더스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언약 안으로 '들어가는 것'(getting in)이 아니라 그 언약 안에 '머무는 것'(staying in)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이신칭의도 어떻게 개인이 구원을 얻는가, 또는 어떻게 개인이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가는가에 관한 것일 수 없다. 라이트에 따르면, 바울의 이신칭의는 어떤 개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그리스도의 언약 공동체(교회) 안에 있음을 강조하는 교리다. 이런 점에서 이신칭의는 구원론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교회론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또 놀랍게도 라이트는 이신칭의가 바울이 의미한 '그 복음'(the gospel)이 아니라고 역설하는데, 이것은 이신칭의를 바울 복음의 핵심으로 간주한 마틴 루터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을 뒤엎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의미한 '그 복음'이란 무엇인가? 라이트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the lordship of Jesus Christ)의 선포다. 이신칭의란 단지 그 복음이 함축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인종에 관계없이 이미 하나님의 백성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교리에 불과한 것이다.

새 관점 학파에 대한 평가

지금까지 살펴본 새 관점 학파, 특히 샌더스의 중요한 공헌은 유대 문헌 분석을 통해 제2 성전시대의 팔레스틴 유대교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을 중시한 종교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또한 바울과 그의 서신들을 종교개혁자들의 관점이 아니라 바울 당대의 상황에 비추어서 읽고 이신칭의의 사회적 차원에 주목한 점도 공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20세기 초에 독일 학자 브레데(William Wrede)가 이신칭의의 논쟁적이며 사회적인 성격을 이미 지적한 바 있으며, 새 관점 학파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던의 신약학자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도 1960년대 초에 이신칭의를 이방인 선교라는 1세기 상황에서 이해할 것을 촉구하였다. 따라서 샌더스를 포함한 새 관점 학파가 이신칭의의 사회적 차원에 주목한 것을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공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관점 학파가 바울 이해와 관련해서 유대 신학의 중요성과 상황적 접근을 강조함으로써 ‘바울신학’의 배경 연구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동시에 새 관점 학파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몇 가지 문제를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성경관의 문제

첫째, 새 관점 학파는 유대 문헌 분석에 근거하여 정립한 제2 성전 유대교 신학에 비추어서 바울 서신들을 읽고, 그것과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서신들의 중요한 내용을 설명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바울 서신을 유대 문헌에 종속시킨다. 또한 샌더스는 제2 성전 유대교의 성격을 규명하면서 랍비 문헌, 외경, 쿰란 문서 등 유대 문헌들을 중요하게 취급한 반면 신약성경의 증거는 무시하였다. 이것은 새 관점 학파가 성경관과 관련하여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2 성전 유대교에 대한 이해

둘째, 새 관점 학파는 1세기 유대교의 은혜의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행위-의의 요소를 무시한다. 샌더스는 유대 문헌의 증거에 근거하여 유대교를 ‘언약적 신율주의’로 규정하였으나, 오늘날 상당수의 학자들은 그의 유대 문헌 분석에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독일 성경학자 프리드리히 아베마리(Friedrich Avemarie)는 탈무드와 미드라쉬와 같은 랍비 문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념, 즉 인간의 행위에 근거한 구원 개념과 선택에 근거한 구원 개념이 풍부하게 나타나는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랍비들이, 샌더스가 했던 방식으로, 행위에 근거한 구원 개념을 선택에 근거한 구원 개념에 종속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쿰란 문서와 외경에도 하나님의 선택과 자비에 대한 강한 강조와 행위에 따른 심판 개념이 함께 등장하여 서로 긴장을 이루고 있다.

또한 마크 엘리옷(Mark Elliott)은 위경 문서들과 쿰란 문서들을 검토한 뒤에 쿰란 공동체를 비롯한 다양한 유대교 분파들이, 모든 유대인은 자동적으로 언약에 속한다는 민족주의적 사상을 배격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동료 유대인들 대다수를 언약 밖에 있는 배교자로 간주하였으며, 율법에 근거한 구별된 삶의 양식을 충실하게 따르는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남은 자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엘리옷의 주장이 옳다면, 제2 성전 유대교는 모든 유대인이 은혜로 선택되었다고 믿은 획일적인 은혜의 종교가 아니다.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에 강한 행위-의의 요소가 있었다는 것은 누가복음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눅 18:9-14)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바리새인이 자기를 의롭다고 생각한 이유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렸을 뿐 아니라 토색과 불의와 간음을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율법 준수에 근거한 자기 의 때문에 그는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다. 또한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관원이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 것에서도 1세기 당시에 행위-의를 구원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는 유대인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마 19:16-30; 막 10:17-31; 눅 18:18-30). 회심하기 전에 바리새인이었던 사도 바울도 동료 유대인들이 행위에 의지하여 자기 의를 세우려 했음을 증언한다(롬 9:31-32; 10:3). 이러한 성경의 증거는 1세기 당시 유대교에 행위-의의 요소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상과 같은 사실은 팔레스틴 유대교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믿은 언약적 신율주의의 종교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유대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에 대한 믿음 위에 세워진 종교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율법 준수를 언약적 약속들과 동등한 구원론적 요소로 간주했으며 인간의 노력으로 얼마든지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Sirach 15:14-17; Psalms of Solomon 9:4-5; 2 Apocalypse of Baruch 54:15-19). 이것은 유대교의 구원론이 신인협력설에 근거한 이중적 구원론임을 뜻한다. 유대교의 이런 성격에 주목한 핀란드 신약학자 티모 에스콜라(Timo Eskola)는 제2 성전 유대교가 신인협력적 신율주의(synergistic nomism)였다고 옳게 주장한다.

인간의 철저한 타락과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낙관적인 인간론을 견지했을 뿐 아니라, 인류의 구속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 유대교가 신인협력적 구원론을 가르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유대교의 신인협력적 구원론을 배격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그리스도중심적인 구원론을 주창하였다.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죄와 죽음의 세력 아래 놓여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의 근본 원리이다. 게다가 인간은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는데 어떻게 신인협력적 구원이 가능하겠는가? 죄와 죽음의 세력 아래 놓여 있는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이신칭의의 문제

셋째, 바울 연구 분야에서 새 관점 학파의 가장 큰 문제는 이신칭의 교리를 지나치게 1세기의 유대인-이방인 문제와 관련하여 해석한 점이다. 앞에서 지적한 대로, 새 관점 학파는 이신칭의를 이방인 선교를 옹호하기 위하여 안디옥 사건 이후에 확립된 논쟁 교리나 선교 교리로 간주하는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새 관점 학파가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지만, 이신칭의는 사도 바울이 1차 선교사역 중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행한 설교에 등장한다(행 13:39). 이는 이신칭의가 후대에 확립된 교리가 아니라 바울의 선교사역 초기에 복음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레샴 메첸이 1920년대에 주장한 것처럼, 이방인 선교 때문에 이신칭의 교리가 정립된 것이 아니라, 이신칭의 교리 때문에 이방인 선교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시고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심으로 이방인들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입증하셨다(행 10:1-11:18; 15:7-11). 이것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분간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여 죄인들을 받는다는 칭의 교리가 바울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뜻한다.

다음으로, 새 관점 학파는 바울의 이신칭의를 일방적으로 1세기의 유대인-이방인 문제와 결부시켜 이해함으로써 이 교리의 교회론적 의의를 크게 부각시킨 반면, 더 근본적인 구원론적 차원을 애써 무시한다. 로마서 1-5장의 논증에 근거할 때, 이신칭의의 근본적인 의미는 죄에도 불구하고 신자 개개인이 그리스도의 사역 때문에 죄를 용서받고 의의 신분을 부여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가 필요한 것은, 인간이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지 못하며 지킬 수도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칭의에 관한 바울의 가르침은 단지 누가 언약 공동체의 구성원인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문제, 즉 죄와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오직 이러한 이신칭의의 근본적인 구원론의 틀 안에서만 이신칭의의 교회론적 의의(어떻게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 안에 포함될 수 있는가?)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먼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어야 교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 안에 포함됨으로써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비로소 그의 백성 안에 자리를 얻는 것이다.

맺는 말

이상에서 오늘날 바울 연구 분야에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새 관점 학파를 소개하고 그 학파의 공헌과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새 관점 학파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해서 긍정적인 점까지 무시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닐 것이다. 제2 성전 유대교를 전적으로 은혜의 종교로 규정하는 새 관점 학파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도, 유대교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과 언약을 중시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의 이신칭의가 어느 정도 1세기의 유대인-이방인 문제와 관련이 있음에 주의를 기울이고 개인적인 무죄선언으로만 이신칭의를 해석하는 전통적인 견해를 적절하게 보완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는 바울 연구와 관련해서 새 관점 학파의 긍정적 공헌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배우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유대 문헌 분석에 근거하여 종교개혁자들이 전해준 전통적 견해를 배격하는 새 관점 학파의 학설을 면밀한 검토 없이 수용하는 것은 신학도의 바른 자세일 수 없다. 성도들에게 바른 진리를 가르치고 교회를 말씀 위에 든든히 세워야 할 신학도들은 신대원 시절에 새로운 신학 이론과 학설을 평가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성경적・신학적 사고력과 분별력을 갖추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개혁주의마을


 

새롭게 번역한 사도신경 / 서철원 교수  |개혁파 신학
쉐퍼 | 조회 106 | 2009.02.25. 12:24 http://cafe.daum.net/CPI2002/C2ck/393 
 
 
 

새롭게 번역한 사도신경
 
서철원
다음은 서 교수가 새롭게 번역한 사도신경이다. 굵은 부분이 수정 부분.

1. 전능하신 천지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 서 교수는 기존의 사도신경의 '만드신'이란 부분이 기존의 물질로 현상의 세계를 만드셨다는 사상을 전달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은 세상을 무(無)에서 창조하셨는데 이 단어는 그 뜻이 정확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창조주'란 고백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2 . 그의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사오며
- 원래 사도신경의 본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의 외아들, 우리 주를 내가 믿사오며'이지만 현행 본문을 존중해 이 같이 바꿨다.

3. 이는 성령으로 수태되시고
- '잉태하사'는 능동태이기 때문에 성령이 잉태하거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잉태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다. 비록 앞에 '성령으로'가 있지만 '성령으로 잉태하사'는 잉태의 주체를 혼동하게 하므로 정당한 번역이 아니다. '수태되시고'보다 더 잘 이해될 수 있는 단어는 '임신되시고'인데, 임신은 부부간의 관계에 의한 수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태되시고'가 합당하다.

4. 동정녀 마리아게서 나시고
- 동정녀가 젊은 세대에게 약간 생소하지만 '동정녀'가 사도신경의 본래의 뜻을 전달해 바꾸지 않았다.

5. 본디오 빌라도 아래 고난 받아
- 현행 본문은 '본디오 빌라도에게'이지만 라틴어와 희랍어 본문에 '아래'로 되어 있기 때문에 고쳤다. 본디오 빌라도가 직접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고 그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래'가 합당하다.

6.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시었다가,
-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 손으로 묻혔기 때문에 '장사되시었다가'란 수동태로 써야 한다 .

7. 삼일에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고
- '삼일에'는 서수를 썼다. 즉 '셋째날에 부활하셨고' 그러므로 '삼일에 부활하셨고'이다. 또 '고난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장사되시고'는 다 수동태인데, 이번에는 '부활하셨다'고 능동태를 사용하므로 주님 자신이 부활하셨음을 말한다.

8. 하늘에 오르사
- 원문 그대로는 '하늘들에 오르사' 이지만 하늘을 복수개념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하늘에 오르사'가 합당하다.

9.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는데
- 라틴어 본문대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로 하는 것이 바르다. 왜냐하면 신인 중보자가 아들로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으시기 때문이다. 신인 중보자가 아들로서 아버지의 우편에 앉는 것은 아버지의 통치권에 동참하고 하나님이 통치권을 행사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10. 거기로부터 산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 현재의 '저리로서'는 장소적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또 '오시리라'보다는 '오실것입니다'가 합당하다.

11. 성령을 내가 믿사오며
- 라틴어 본문에 있는대로 '내가'를 첨가하는 것이 더 바르다.

12.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들의 교통과
- '공회'가 무엇을 뜻하는지 의미 전달이 쉽지 않다. '공교회'는 주의 초림시 세워진 교회로부터 재림시까지 존재하는 모든 교회를 다 포함한다. 그러므로 '공회'라 하지 말고 '공교회'라고 해야 한다.

13. 죄들을 사해주심과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믿습니다.
- 그냥 '죄를 사해주시는 것'으로 하면 처음 믿을 때 죄를 용서받는 것만을 전달하기 쉽다. 모든 죄를 다 용서해주시는 것이므로 '죄들을 사해주심'으로 해야 정당하다. '몸이 다시 사는 것'으로 하면 부활의 본 뜻을 바로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기사입력: 2009/02/01 [13:01]  최종편집: ⓒ 리폼드뉴스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18) 사자처럼 설교한 데이비드 몰간

2013/07/02 (화) 13:47 ㆍ추천: 0  ㆍ조회: 17      

사자처럼 설교한 데이비드 몰간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18)

1859 웨일즈 부흥의 역사를 일으킨 데이비드 몰간과 험프리 존스

부흥의 땅 웨일즈 교회는 다시 침체되어 있었고, 기도모임은 생명이 없고 약화되어 있고, 설교는 정통적이지만 별로 영향력은 없었다. 이러한 때에 1858년부터 1860년까지 웨일즈에 불어온 부흥의 불길은 1859년에 절정을 맞이하였기에 지금까지 ‘1859 웨일즈 부흥’으로 부르고 있다. 웨일즈 부흥의 역사를 일으킨 주역으로는 데이비드 몰간 (Dafydd Morgan) 목사와 험프리 존스 (Humphrey Jones)목사이다.

존스는 감리교 (Wesleyan Methodist) 출신으로 미국에 잠시 있다가 돌아온 후 1856년 6월부터 웨일즈 트레돌 (Tre'r-ddol) 에서 '부흥 모임(revival meetings)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858년 10월에 험프리 존스가 설교하는 것을 데이비드 몰간 목사가 듣게 되고 그는 자신의 영적 궁핍함을 깨닫고 마음의 찔림을 받는다. 그는 그 후 자신의 영혼과 씨름하게 되고 며칠 후 그는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된다. 하나님은 몰간 목사에게 새로운 생명력과 새 권능을 부어주셨다. 그리하여 몰간 목사와 존스 목사는 웨일즈 전역을 다니며 부흥의 불길을 지피게 된다.



사자처럼 설교했던 평범한 목회자 데이비드 몰간

데이비드 몰간 (Dafydd Morgan, 1814-1883)은 웨일즈 카디간 주 보드콜 밀 (Bodcoll Mill) 에서 태어나 칼빈주의 감리교인 (Cavlinistic Methodist) 으로 경건하게 성장했다. 그는 어떠한 은사도 지니지 아니했고 매우 평범하고 잘 알려지지 않는 목회자로서 아무도 그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의 능력이 그 사람에게 임하였다. 그는 2년 동안 사자처럼 설교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붙잡고 사용하셔서 1859년 웨일즈 부흥의 주역이 되게 하셨다. 그는 1836년 에반 에반스 (Evan Evans) 교회에서 회심한 후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몰간은 1841년 그 지역에 일어났던 부흥으로 큰 영향을 받고서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1857년에 안수 받은 후 그는 부흥이 시작되기 전부터 성령 충만함을 구하고, 항상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했다. 몰간의 설교 비법은 이중설교 (double sermon)이다. 그는 전통적인 설교를 했지만 그러면서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예배 때 찬양을 하고 아주 뜨거운 설교를 전했다. 초신자들이 남으면 앞자리로 초정을 하고 몰간은 그들 한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가족관계, 직업들, 개인적인 것을 묻고 조금 친숙해지면 강력하게 그들에게 권면하고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판정하고 그에게 맞는 ‘처방’을 내려주고 기도해 주었다.

웨일즈 부흥의 전문가 에피온 에반스 (Eifion Evans) 박사는 그의 저서 ‘Two Welsh Revivalist’에서 “그는 칼빈주의 감리교인의 영성을 가지고 있었고, 설교는 자기 최대의 능력 안에서 예화를 잘 썼고, 기도는 부흥을 항상 염두해 두면서 기도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순회 설교자로서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며 그가 설교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복이 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었다.

웨일즈 부흥사 험프리 존스 

험프리 존스 (Humphrey Jones, 1832-1895)는 웨일즈 가디건 주 트레 돌 (Tre'r-ddol)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1854년 이후로는 미국 뉴욕과 웨일즈 웨슬레안 공동체 교회에서 목회하였다. 27세의 감리교 목회자인 존스의 사역은 그 당시 미국에서 일어난 대각성 운동과 찰스 피니 (Charles Finney)의 부흥론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 이후로는 부흥사 험프리 존스로 알려졌다. 1858년 여름, 존스는 그의 조국 웨일즈에 부흥의 역사를 일으키고자 하는 소망을 품고 돌아와서 먼저 고향인 Tre’r-ddol에서 설교하였다. 그때 교회에 사람이 꽉 차고, 교회 주변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마차가 지나갈 수 없었다. 교회는 부흥하고 밤에는 기도 모임이 열렸다. 이것이 몇 주 동안 반복이 되었고, 그 마을에 51명이 회심했다. 하나님께서 매 예배 때 마다 그의 메시지에 기름을 부으셔서 능력있는 말씀이 선포되었다.

또한 그는 은밀한 중에 기도를 많이 하였으며 매번 기도할 때 마다 마치 이번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적으로 기도하였다. 그의 설교와 충만한 기도생활과 열정은 이웃하고 있는 두 마을 들을 일깨우는데 사용되었다. 존스 설교의 핵심은 두 가지인데 즉 교인들을 깨우려는 의식적인 시도와 교회일이나 책임을 회피하거나 잘못하는 성도들을 설득하는 것에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는 기도와 말씀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여, 새로운 설득의 방법들을 구상하곤 했다. 존스가 영향을 끼친 곳들은 Mynydd-bach, Ysbyty Ystwyth, Ystumtuen, Pont-rhyd-y-groes 이다.

1859 웨일즈 부흥의 현상/특징

1859 웨일즈 부흥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기도의 회복이다. 성령께서는 몰간 목사와 존스 목사의 순회 설교 사역과 기도 모임에 큰 은혜를 부어주셨다. 하지만 동시에 웨일즈 전국에서는 많은 기도모임들이 생겨서 성도들이 기도에 힘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기도 운동을 인도하고 주관한 사람은 없었다. 사람의 리더십이 드러나기 보다 성령의 역사라고 고백해야 할 것이다. 그 당시 빅토리아 여왕이 웨일즈에 있는 채석장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채석공들과 여러 직원들은 여왕을 보러가는 것이 아니라 연합 기도모임을 여러 곳에서 가지게 되었다. 어느 공립학교에서는 선생과 학생 모두가 정오까지 계속 기도하는 일도 벌어졌고, 개인과 가정 직장 학교 어디서나 기도회가 열렸다. 모든 기도회에 성령이 임재 하셨으나 특히 연합집회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셨다. 이렇듯 1859년 부흥은 두 목사의 설교 사역과 동시에 기도의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또 하나의 특징은 모든 모임과 예배 가운데 성도들과 회중들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강력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이 경이롭고 거듭된 축복의 홍수로 성찬예배 가운데 임하였다. 그들은 상당한 감동과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끝이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무한하신 하나님과 그의 영광 앞에 사라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 것이다. 성도들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위대한 장엄함과 영광 앞에 항복하였으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게 되었다.

모든 부흥의 현장을 따르는 특징 중 하나는 물론 영적 생활의 생명력이다. 성도들의 '죽어 있던' 영적 생활과 신앙은 다시금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이것 또한 1859 웨일즈 부흥의 특징이다. 이 점은 성도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가장 중요한 예로 몰간 목사를 들 수 있다. 그는 신실한 좋은 목회자였지만 그의 설교가 특별히 뛰어나거나 '살아'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흥의 시기 때 그의 친구들은 그를 '불타는 공 (a ball of fire)' 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부흥의 불을 부어주실 때 죽어있고 잠자고 있던 모든 성도들은 살아나며 깨어난다.

1859 웨일즈 부흥의 결과

첫째, 풍성한 회심의 역사이다.

매 주일 그저 교회에 나와서 앉아있던 회중들부터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눈물 흘리며 진심으로 회심하며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 또한 상상 할 수 없었던 죄인들과 술주정뱅이들, 부인을 폭행하는 자들, 욕쟁이, 도박꾼,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이 모두 회개하며 주님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웨일즈 부흥 시기였던 1858년부터 1860년 까지 2년 동안에 십 만명의 초신자가 새로 웨일즈 교회로 들어왔다. 카디간 지역에 있는 교파 한 곳에서만 약 8000명이 증가되었다. 카디간 지역에서의 부흥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고 웨일즈 전체가 부흥의 땅이 되었다.

둘째,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회심자들 때문에 웨일즈에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으며 확장공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아버리 스위쓰에서 500개, 폰티드팬디가이드에서 400개, 트래가론에서 400여개, 랑게스튜드에서 약 200여개, 랭드로드에서 약 200여개의 교회가 증가하였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각각 200여명 이상의 회심자들을 받아들였다.

셋째, 부흥은 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범죄의 숫자는 웨일즈에서 크게 줄어들었다.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웨일즈에서는 주일날 술집(pub)이 영업을 할 수 없다는 법이 통과 되기도 하였다. 어떤 한 할머니는 "주일에는 새 하늘을 경험하고 평일에는 새 땅을 경험하고 있다'라고 고백하기도 하였다.

1859년 웨일즈 부흥의 부작용

1859 웨일즈 부흥은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부흥들과 공통점들이 많다. 기도의 능력과 영적생활의 회복을 꼽을 수가 있다. 하지만 그전 부흥들과는 달리 1859 웨일즈 부흥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었다. 그것은 '찰스 피니의 부흥론' 때문이다. 미국에 있는 동안 존스 목사는 찰스 피니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의 방법들을 웨일즈에서 그대로 사용하였다. 찰스 피니는 원죄와 인간의 전적인 타락성을 부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이 아니며 부흥 또한 성령의 주권적인 사역이 아니라고 믿었다.

찰스 피니는 어떤 방법과 수단들을 사용하여 환경을 잘 조성하면 인간이 스스로 구원을 선택하고 결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피니의 부흥은 하나님의 기적이 아니라, 사람의 행위다. 신적인 요소보다는 인간적인 요소가 많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도, 그것에 반응하는 것은, 그리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고 권위다. 교회를 깨우기 위해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지만, 새로운 효과적인 방법들도 항상 필요하다고 말한다. 1859 웨일즈 부흥과 그전 부흥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리와 성경의 진리들이 분명하고 올바르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험프리 존스 목사는 또한 늘 설교 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결정하고 원하는 사람들은 강단으로 나오라'는 콜링을 하였으며 앞으로 나온 사람들의 숫자를 늘 기록하고 그들을 모두 거듭난 자로 간주하였다. 지난달에 살펴보았던 맥체인 목사는 '거듭난 성도들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야 할 특징은 거룩함이다' 라고 말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특별히 이 거룩함의 시작은 거듭남이며 이때 하나님께서는 거듭난 성도에게 새로운 마음, 새로운 생명을 주신다. 하지만 찰스 피니와 험프리 존스는 어떤 외적인, 형식적인 거룩함만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율법주의로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많았다. 물론 존스나 피니를 통하여 거듭난 자들도 매우 많지만 그들은 올바르지 못한 교리와 가르침 가운데 신앙의 깊은 성숙을 이루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감정주의가 1859 웨일즈 부흥의 또 다른 부작용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물론 이전 부흥들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매우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살펴 볼 수 있지만 이전 부흥들을 '인도' 할 주역들은 감정주의의 위험을 인식하고 늘 넘치는 감정들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였다. 1859 웨일즈 부흥은 감정 그 자체를 부흥으로 인식하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갑자기 기뻐하고 노래 부르고 뛰기 시작해서 설교 시작을 방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자체를 부흥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존스의 가르침에 칼빈주의 감리교 출신이었던 몰간 목사는 반신반의하였지만 존스 목사의 열정 그리고 자신이 존스의 설교를 통하여 마음의 찔림을 받았다는 이유로 존스와 사역을 같이하게 된다.

데이비드 몰간과 험프리 존스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첫째, 1859년에 데이비드 몰간과 험프리 존스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여 졌다.

존스는 미국에서 가족들과 함께 하며 편안하게, 성공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이 멀어,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웨일즈로 돌아왔다. 성경말씀을 해석하는데 조금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더라도, 그의 열정과 진정성은 의심할 수 없다. 그는 진심으로 설교를 했고,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는 간절했다. 몰간의 설교 사역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돌아왔다. 변화된 사람들은 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고 전 웨일즈가 바뀌면서 몰간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몰간의 경험과 목회에서는 배울 것이 아직도 많고 지금도 유효하다. 데이비드 몰간은 1859년 웨일즈 부흥운동을 이끌었던 부흥 전도자이다.

둘째, 1859 웨일즈 부흥에는 '인간 중심적인' 요소들이 있었다.

이것은 1904년 부흥에도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교훈이 되는 것은 어떤 지도자가 '성공'을 이끌어내고 그의 영성이 뛰어나 보여도 성경에 비추어 보아 그의 신학과 방법론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부흥은 우리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말씀에 확인해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작용 속에서도 1859 웨일즈 부흥은 이전 부흥들의 현상과 비슷한 점이 많으며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의 기도 가운데, 그들의 삶 가운데, 그들의 예배 가운데, 그들의 설교 가운데 분명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셨다. 오늘날에도 강력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며 성경에 깊이 뿌리 내린 올바른 교리들 또한 함께 필요한 시대이다.

또 다른 부흥을 소망하며

웨일즈 부흥의 움직임은 딱 한 사람과 함께 시작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한 목회자몰간이나 존스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능한 역사를 웨일즈 교회 속에 보내셨다. 지금 우리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신실한 한 사람의 목회자요 설교자이다. 그 한 사람을 통해서 황무한 유럽 땅에 하나님의 성령이 물붓듯 다시 부어지고, 조국교회에 부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부흥이다. 우리는 이러한 부흥을 추구해야 한다. 1859년 영광스러운 부흥이 일어났던 웨일즈가 이제는 선교지가 되어 가고 있다.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웨일즈에 다시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해야 한다. 데이비드 몰간과 같은 능력있는 설교자를 통하여 조국교회와 유럽교회와 더 나아가 온 열방에 놀라운 부흥이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김현배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영국 부흥운동사를 공부했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을 맡아 유럽 재복음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도 맡고 있다.

ⓒ 뉴스파워
출처: USA아멘넷



 

“엄밀한 개혁신학과 장로교 신학에 관한 한국 교회 목회자의 교리 선언서”

(The Doctrinal Statements of Korean Ministers on the Reformed and Presbyterian Theology in a Strict Sense)

 

 

목적: 한국교회와 그 신학의 위기 앞에 680년 콘스탄티노플 세계 공의회 신조까지의 세계 공의회 신조들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도르트 신조 및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포함한 개혁교회 신조들에 대한 바른 해석에 있어서 성경적 기초를 세우는 교리적 선언과 그 모든 고백서들에서 고백되지 않은 선언내용들을 위한 성경해석 작업

 

Subjects:

1. Divine Inspiration and Inerrancy of the Original Holy Scripture,

2. God as Highest Good and Sole Reward,

3. the Substantial Unity of O.T. and N.T. in the Holy Trinity and its Structure,

4. 'Totus Christus extra carnem',

5. 'Duae voluntates Christi' in Relation to O.T. and N.T.,

6. Supralapsarianism or Infralapsarianism,

7. Practical Senses of the Eternal Decree,

8. Limited Atonement Christi and his Mediatorship,

9. Relationship of the Divine Predestination to 'ordo salutis' as 'causa remota et propinqua',

10. 'Unus' or 'Unitas' in the 'Presbyterium',

11. Refomed Worship,

12. Modern Scientific Facts and their Theological Meanings etc.

 

한국교회의 교회 선언서

 

1. Divine Inspiration and Inerrancy of the Original Holy Scripture

1) 날카로운 운동력과 은폐되지 않는 말씀 앞에 숨겨지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와 속성(히 4:12,13)이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신약에도 적용이 된다. 더욱더 큰 권위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역사 및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다.

 2) 성경이 없어지지 않고 폐하여질 수 없다(마 5:18; 요 10:35)는 것은 계시를 주신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신자로서 결국 세상도 변하고 계시를 받는 자도 없어져도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의 말씀도 여전히 폐하여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해야 한다.

 3) 성경에는 무오성에 대응하는 표현은 없을지라도 구약의 증거에 의해서 그에 해당한 성경의 완전성, 진실성, 진리성, 순수성이 증거되고 있고(시 18:30; 19:7ff) (무폐성, 없어지지 않고 폐하여지지 않는다는) 영원성뿐만 아니라 무오성도 추론할 수 있다.

 4) 하나님이 스스로 인간의 방식으로 계시하셨으나 영원히 살아계시고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으로서 그 말씀과 함께 존재하시므로 유오성을 적용할 수 없다.

 5) 성경의 일점일획이라는 표현은 구약에 적용이 될 때 모음기호와 신약에서의 액센트, 읽기기호의 무오성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문자와 그 문맥의 의미에서 신적영감의 완전성을 표현한 것이다.

 6) 성경에서의


신앙에 구닥다리가 어디있나요? 


선조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으신 하나님과 우리가 믿는 성경이 동일한데 말이죠. 요즘은 쌍둥이도 세대차가 난다며, 점차 공교회로서 공동체적 신앙고백을 멀리하고 아이들과 청년에 이르기까지 개별 교육에 개별적 예배(?)를 드립니다. 한 교회 안에서 부모 자식 간에 세대차도 극복하지 못해서야, 천국 가서 아브라함과 어떻게 교제를 합니까? 

넌센스죠... 성경이 표준이라는 말, '오직 성경'이라는 말, '전체 성경'이라는 말은 모두 우리가 성경으로부터 '동일한 신앙고백' 즉, 동일한 교리를 믿는다고 고백하는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물론 지상 교회에서 이러 저러한 교파들이 있고, 교리적 색깔도 조금씩 다르지만, 큰 틀에서 '구원에 이르는 신앙 원리'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적어도 같아야 합니다. 교회의 장면에서 이것이 세대와 세대를 잇는 가르침으로 또 부모와 자녀간에 신앙적 대화를 잇는 가르침으로 가르쳐지지 않고, 쌍둥이 간에도 세대차를 부추기는 세상의 풍조를 따라 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집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적어도 철이 들기 시작하면, 공동 예배를 함께 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말이죠. 그러려면, 철들기 전부터 습관이 있어야겠죠. 엄숙함만 강조할 께 아니라 자라나는 세대에게 부모의 신앙을 물려줄 수 없는 이런 구조는 빨리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꺼꾸로 가는 거 같습니다. '상황화 논리'를 따라 말이죠.... 그러다 보니 점차 신앙이라는 것이 '유행' 내지 '시대의 풍조'와 흡사해집니다. 스펙이 중요해지다보니, 교회에서 조차 심지어 신앙에서조차 스펙이라는 말이 등장하지요. 이게 세대차를 벌려놓는 교회 교육 때문이라고 봅니다. 

막 나가는 것을 견제할 장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장치를 갈등으로 여기고 갈등을 무마하기 위해서 세대차를 부추기는 현상이 점차 일반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굳어져 가는 거 같습니다.

출처: 루이스 목사님/개혁주의마을/카리스마프

존 오웬의 신학에 나타난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본 성격

오 창 록(개신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I. 들어가는 말

구원론적 측면에서 종교 개혁자들에게는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핵심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면, 존 오웬(John Owen, 1616-83)을 비롯한 청교들에게로 옮겨가면 이와 더불어, 그리스도 혹은 하나님과의 교제란 주제가 중요한 관심사로 등장한다.

오웬은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하여 (Of Communion with God)」라는 별도의 저작을 남겼을 뿐 아니라, 사실 그의 저술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더라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혹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루는 자리에서 동 주제는 항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오웬의 ‘하나님과의 교제의 신학’을 다루되, 특별히 보다 실천적 측면에서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하는 점, 즉 그 교제의 성격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웬에게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의 근본적 성격은 ‘봄(beholding)’에 있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면, ‘봄의 교제(communion of beholding)’가 핵심적 성격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먼저 청교도들에게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주제가 차지하는 위치를 간단히 살펴보고, 다음으로 오웬의 신학에서 찾아볼 수 있는 바 그 교제의 성격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II. 청교도에게 있어 하나님과 인간 간의 교제

위에서 언급했듯 청교들에게는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과 더불어 그와의 교제(communion)가 또한 빠트릴 수 없는 논의의 주제가 되어 있다. 원종천 교수는 이 ‘연합’과 ‘교제’라는 두 주제를 놓고 칼빈과 청교도를 비교하는 가운데, 사실상 청교도, 특히 후기 청교도들에게 이르면 이제는 아예 주된 관심이 전자(union)에서 후자(communion)로 옮겨온 느낌이라고 결론짓는다.1)

패커(J. I. Packer)는 청교도들에게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 바 있다.

청교도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는, 창조와 구속이라는 수단의 목적이다. [그들에게] 하나님과의 교제란 신학과 설교가 언제나 지향해야 하는 목표이며 참된 종교의 진수이다. 그것은 사실상 기독교의 정의이다.2)

사실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가 창조와 구속이라는 수단의 목적’이 되어 있다는 패커의 이 표현은 매우 강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선 다른 어떤 목적보다 인간과의 교제를 위해 그를 창조하셨고, 타락 후 이 교제가 불가능해 진 후, 구속의 전 과정은 다시 이를 회복하기 위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선 그의 아들을 보내사, 이 깨어진 교제의 회복에 가장 큰 장애인 죄를 제거하셨다는 말이 된다.

청교도에게 있어 이처럼 하나님과의 교제(communion)라는 주제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종교 개혁자들이 중시한 연합(union)의 주제와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칼빈을 비롯한 개혁자들의 경우 union에 집중한 나머지 communion의 개념을 찾아보기 어렵다거나, 혹은 오웬과 같은 청교도들의 경우 communion에 관심을 갖는 나머지 union을 소홀히 한다는 결론은 성급한 것이다. 칼빈의 시선이 union에 머물러 있음은 사실이지만,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의 개념이 그의 저술 곳곳에 배어 있다.3) 또한 오웬의 신학 안에서 union은 communion 못지않은 중요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communion만을 단독으로 말할 때에도 그 속에는 union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제되어 있다고 해야 옳다. 싱클레어 퍼거슨이 말하는 것처럼 오웬의 communion 속에는 union의 개념이 “포함되어(subsumed)” 있다고 함이 정확할 것이다.4)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communion을 중시하는 청교도들의 신학 일반에도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5)

III. 오웬의 신학에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본 성격

1.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봄

가. '봄'의 교제

오웬에게 있어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다 함은 실제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쉽게 말해서 그것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과의 교제의 실천적 성격은 ‘봄을 통한 교제’ 혹은 ‘봄의 교제(communion of beholding)’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오웬 자신이 하나님과의 교제의 성격을 이런 식으로 따로이 정의내린 문구는 찾아보기 어렵고, 그래서인지 이 측면은 오웬 연구에 있어서 충분히 주목을 받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이같은 성격은 오웬의 저작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확인될 수 있다. 오웬이 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책(Of Communion with God)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고, 그 외에도 그의 여러 저술들에서 그가 동 주제를 언급할 때 '본다’라는 용어가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이 그 한 증거이다. 오웬은 ‘behold, see, eye, look' 등 다양한 표현들을 동원하지만 그 기본적 성격은 동일하다. 즉 우리는 하나님을 ‘봄’으로써 그 분과 교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나. ‘봄’의 대상

오웬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다룰 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봄’이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그는 ‘봄’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의 영광,’ 때로는 ‘그리스도의 영광’이란 표현을 쓰는데, 여기서 ‘영광’이란 무엇인가? 이 영광이란 말하자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미하고 사랑하고 경배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그 분의 모든 아름다우신 성품과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6)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해서 ‘봄’의 대상은 하나님의 영광 자체라기 보다는, 이렇게 영광스럽게 계시되신 하나님 자신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격체로서의 한 신자의 교제의 대상 또한 인격(위격)이신 하나님 그 분이 되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문구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덧붙여진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이다. 오웬이 신자의 교제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제시할 때 그 분을 그리스도 혹은 복음과 분리시키고 있지 않음은 매우 중요한 일면이다. 오웬에게 있어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선명히 계시되신다. 고린도후서 4:16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은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서 우리에게 비취는 것이다.7) 여기서 오웬의 인식론, 즉 신지식(神知識)에 대한 그의 기독론적 접근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가장 선명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으며, 그 그리스도는 추상적 그리스도가 아닌 복음 속에 계시된 바로 그 그리스도이시다.8) 오웬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논할 때 끊임없이 구속의 역사(historia salutis)로 돌아가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하나님을 봄으로써 그 분과 교제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복음에 계시된 바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을, 믿음의 내적인 시선으로 주목함으로써 그 분과 참된 교제를 나눌 수가 있는 것이다.

다. 고린도후서 3:18을 통해 본 ‘봄의 교제’

오웬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논할 때 가장 즐겨 인용하는 성경 구절 가운데 하나가 고린도후서 3:18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라고 기술하고 있는 동 구절은 사실상 오웬의 ‘봄의 교제론’에 있어 핵심 요절이 되어 있다.

오웬은 이 구절을 미래의 부활과 함께 일어날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지금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적 경험으로 해석한다. 이 구절이 놓인 문맥이 이를 입증한다. 즉 바울은 여기서 현재와 미래를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약적 상황(아직 수건을 벗지 못한)과 신약적 상황을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다.9) 반면 유사하게 ‘봄’의 주제를 언급하고 있는 고린도전서 13:1210)과 같은 구절에서 사도는, 현재적 봄과 미래적 봄을 대조시켜 설명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11)

고린도후서 3:18은, 우리가 수건(veil)을 벗은 얼굴로, 즉 훨씬 더 밝고 선명하게 주의 영광을 본다고 말한다. 오웬에게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과 갖는 교제의 특성이 된다. 여기서 ‘본다’ 함은 막연한 응시가 아닌, 그 대상을 향한 영혼의 내적 주시를 가리키며, 이것이 (그 대상과의) 교제의 핵심이다. 즉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지속적으로 ‘보는’ 가운데 그 분과 교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라. 봄의 교제를 통한 성화12)

오웬은 이와 같은 봄의 교제는 신자의 성화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대상에 대한 지속적 주시는 그 대상과의 ‘닮아감’을 산출해 낸다. 위의 고린도후서 3:18에서 ‘주의 영광을 보매 주와 같은 형상으로 화한다’고 하는 표현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화한다’ 함은 그리스도의 형상(image)으로 변화됨(transformed)을 가리키는 것이다.

오웬에 따르면, ‘봄’의 교제는 닮아감의 힘(assimilating power)을 가지고 있다.13) 즉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주목하게 되면, 이 가운데 그 분을 향한 사랑, 찬미, 감사 등 여러 은혜들이 왕성히 작동하게 되고,14) 이는 우리를 봄의 대상이신 하나님께 단단히 붙어(cleave) 그 분과 하나가 되게 하며,15) 이런 가운데 그 분을 닮게하는 힘이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봄의 교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때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영혼의 눈을 구원의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를 만들어내지도, 또한 그분을 닮아감, 곧 성화의 효과를 산출해 낼 수도 없다.16)

2. ‘봄’의 성격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웬이 말하는 바 ‘봄’이라는 것의 성격을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오웬이 ‘본다’ 혹은 ‘봄의 교제를 갖는다’고 할 때 그 ‘봄’이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여기서는 크게 세 가지 중요한 특성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첫째,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믿음의 행동이다. 둘째, 이 가운데 지성의 역할이 강조된다. 셋째, 그것은 또한 영적인 봄이다.

가. 믿음의 행동

오웬이 하나님을 ‘본다’고 했을 때, 일차적으로 그것은 ‘믿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으로 봄’ 혹은 ‘믿음으로 묵상(생각)함’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믿음’과 ‘봄’의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오웬은 몇몇 성경 구절들을 가져온다. 성경에서 “우리의 믿음은 종종 그리스도를 보는 것으로 표현된다.”17) 이와 관련 그는 광야에서 있었던 모세의 놋뱀 사건을 놓치지 않는다. 모세가 만들어 장대에 매단 놋뱀을 쳐다 본 사람들은 곧 이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믿었던 사람들이었다.18) 이 경우 봄은 곧 믿음이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들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은 하나의 믿음의 행동, 곧 “믿음의 봄”인 것이다.19)

‘봄’의 근본적 성격이 ‘믿음’이라면 오웬은 왜 ‘믿는다’ 혹은 ‘믿음으로 묵상한다’고만 하지 않고 굳이 ‘본다’는 표현을 선호하는가? 오웬에게 있어 봄은 곧 믿음의 행동임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이 ‘봄’은 보다 지속성의 뉘앙스를 띤다. 즉 단회적 믿음의 행동 이상의 어떤 것으로서, 믿음 안에서 대상에 눈을 고정시켜 지속적으로 주시하는 것이 ‘봄’인 것이다. 오웬 자신의 표현을 옮겨 보면, “봄은 눈의 고정이다. 믿음은 영혼의 눈이요, 그러므로 본다는 것은 묵상 속에서 믿음을 고정시키는 행위이다.”20)

오웬은 이 ‘봄’을 혈루증에 걸린 여인이 예수님을 만진 사건과도 연계시킨다. 제자들이 말했듯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 있어 예수님과 맞닿아 있었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을 ‘만진’ 사람은 그 여인 단 한 명뿐이었다. 이것은 참된 ‘믿음의 만짐’을 의미한다. 여인이 손을 뻗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그 여인은 자신의 전 믿음을 발휘해 그렇게 했던 것이다. 이와같이 ‘봄’도 믿음의 행동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소극적 믿음이 아니라, 혈루증 여인이 특별한 믿음을 발휘해 예수님의 옷을 붙들었듯이, 그렇게 강하고 지속적인 믿음의 눈으로 대상을 주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21)

나. 칼빈이 말하는 ‘봄(beholding)’

여기서 잠깐 ‘봄’에 대한 오웬의 이런 개념과 유사한 설명이 칼빈에게서도 발견됨을 관찰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본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구절들을 칼빈이 어떻게 주해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도움이 된다. 시편의 두 구절만을 예로 들어보자. 칼빈은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한다고 하는 시편 25:1에 대해, 이는 기도 속에서 생각을 하나님께 “고정”시킴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특히 다윗이 ‘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 자신의 영혼의 전 틀, 즉 마음의 모든 정서(affections)가 하나님께 집중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22)

또한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라고 하는 시편 63:2의 주석에서도 마찬가지다. 칼빈은 이 구절과 관련하여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봄(spiritual views of God),” “믿음의 눈을 주님께로 향함,” 혹은 “마음이 끊임없이 하나님에 대한 묵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말한다. 특히 그는 ‘주를 본다’고 하는 이러한 표현은 그 봄의 대상에의 집중의 열심 혹은 진정성, 즉 마음의 전 묵상이 이쪽을 향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해하고 있다.23)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칼빈이 이와 관련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들간의 연합(union)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의 연합(union)은 중생시 단번에 이루어진 사실적 연합이라기보다는, 그 이후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더 단단해지고 완성되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경험적 연합을 가리킨다.24) 그리고 칼빈의 경우 이러한 의미에서의 ‘연합(union)’은 사실상 ‘교제(communion)’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오웬이 설명하는 ‘봄의 교제’와 유사한 개념이 칼빈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물론 칼빈은 오웬만큼 이를 체계적으로 가르치거나 강조하고 있지 않음은 사실이다.

다. 지성의 역할

오웬은, 하나님과의 ‘봄의 교제’ 속에서 지적인 기능의 역할을 중시한다. 하나님을 봄으로써 그 분과 교제한다고 할 때, 이는 신비주의적인 의미에서 직관적으로 하나님을 본다 함이 아니다.25) 이러한 직관적(intuitive) 봄에서는 생각하는 기능으로서의 마음(mind)의 역할이 현저히 약화되는데, 이는 적어도 이 땅 위에서의 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오웬은, 이사야(6장)나 밧모섬에서의 요한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직접적인 봄은 이 땅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하지도 유익하지도 않다고 가르친다.26) 우리의 구조는 이러한 강력한 봄을 견딜 수 없게 되어있는 것이다.27)

현세의 지상적 봄에서는 지성이 활발한 역할을 하게 되어있다. 앞에서 ‘봄’이란 믿음의 행동으로 제시되었는데, 믿음이란 언제나 지적인 기능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인가? 막연한 자기 상상이 아닌 말씀 속에 묘사된 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즉 복음 속에 계시된 하나님을 배워 알고,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서, 그 분을 깊이 묵상(생각)하는 가운데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웬의 다음과 같은 기술은 ‘봄의 교제’에 있어서 지성이 어떻게 적극적으로 작용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본다고 했을 때, 우리는 말하자면 성경 속에 있는 [진리의] 여러 조각들과 단편들을 하나씩 모으고 그것들을 우리 마음(minds) 속에서 비교해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들이 지상에서의 우리의 현세적 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고, 우리는 이 대상들을 영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28)

라. 영적인 봄

오웬이 말하는 ‘봄’이, 지성의 역할이 축소되는 직관적이고 신비적인 봄은 아님일진대, 그렇다면 이 봄을 간단히 규정지어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어떤 표현이 있을까? 아마 ‘영적인 봄(spiritual vision)’이라는 표현이 가장 가까운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29)

오웬이 ‘영적인 봄’이라고 했을 때는 먼저 이것이 ‘육적인 봄,’ 즉 신체의 눈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님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되, 외적인 눈이 아닌 내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이 ‘봄’이 순전히 영적인 점을 놓치고서, 이를 겉으로의 외적인 봄으로 대치시켜 버린 문제가 있다고 오웬은 지적한다. 그들은 봄의 주 대상을 십자가 모양 혹은 그리스도의 형상이나 그림들로 제시했고, 그 결과 그리스도를 향하여 영적이 아닌 “육적인 정서(natural affections)”가 고양된 측면이 있다.30)

영적인 봄이 일차적으로 외적인 봄과 대조됨은 사실이지만, 오웬이 이를 가르칠 때 그 속에는 사실 더 깊고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 여기에서 성령의 역할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영적인 봄이라 함은, 봄의 교제가 성령의 내적 조명에 의해 비로소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고린도후서 3:18에서도 이 점을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그의 형상으로 변해가되 이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이다. ‘봄’에 있어서 지성의 역할이 무시되어서는 안되지만 그것은 단지 지적인(intellectual) 봄이 아니다. 성령에 의한 영적인 봄에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및 그 분과 관련된 모든 영적 대상들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묵상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내적 빛 (a glorious internal light)”31)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대상들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생생히 볼 수 있도록 해 주신다. 여기서 오웬은 강조한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이시는 것은, 이러한 영적 대상들에 관한 “진리나 교리” 뿐만이 아니고, 바로 그 대상들의 “실체(reality)”이다. ‘봄의 교제’ 속에서 바로 이렇게 대상들의 “실체와 능력과 효력”이 우리에게 드러날 때 우리 영혼은 이 대상들에게 끌려 강력히 밀착하게 되고, 이로부터 변화시키는 힘이 나오는 것이다.32)

오웬은 영적인 봄의 강도(强度)가 신체적 눈을 통한 봄보다 덜 선명하다는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반대이다. 성령을 통한 빛은 언제나 자연적 빛보다 더 밝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승천 후 성령을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이 육체 가운데 계셨던 그리스도를 보았을 때보다 더 밝히 그 분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33)

때문에 오웬에게 있어 하나님과의 ‘봄의 교제’의 중요성은 필설로 다 형용할 수 없다. 이러한 봄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무시하는 것은 이 땅에서의 최고의 특권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이요, 또한 가장 중요한 의무를 방기하는 커다란 악(惡)이다.34)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않는 자는 누구나 그를 알지 못하는 자요, 그는 불가피하게 그 분을 멸시하는 자가 된다.35) 그리고 이것은 종국적으로 배교(apostasy)에 이르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곤 하는 것이다.36)

IV. 맺는 말

이제까지 살펴본 봐와 같이, 종교개혁자들을 지나 청교도에게 이르게 되면,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이란 주제와 더불어 이제는 하나님과의 교제(communion)가 중요한 관심사로 자리잡게 된다. 패커가 지적했듯이, 오웬을 비롯한 청교도(특히 복음적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교제는 창조(creation)와 재창조(re-creation)가 바라보고 나아가는 목표(goal)가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고에서는 특히 오웬에게 있어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본 성격이 무엇인가에 집중하였다. 오웬에 따르면 우리는, 복음 속에 제시되어 있는 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봄을 통해 삼위 하나님과 교제를 갖는다. 일차적으로 이 봄은 믿음의 행동이다. 즉 우리는 믿음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을 본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믿음 속에서 영혼의 눈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것이다. 직관적 혹은 신비적 봄과는 달리 이 속에서는 지성이 활발히 작용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은 단지 지적인 봄 혹은 윤리적 묵상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무엇보다 영적인 봄이다. 성령의 조명에 의해 영혼의 내적 눈이 밝아져 봄의 대상 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실체를 뚜렷이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 봄의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될 정도로 강력한 능력이 작용하게 된다. 그 결과는 닮아감이다. 즉 성경이 가르치듯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 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성화의 효과가 산출되는 것이다. 때문에 오웬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이 ‘봄의 교제’는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의무(duty)이다. 이를 소홀히 함은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도 없는 악(惡)이거니와, 무엇보다 이 땅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특권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어리석음이다.


1) Jonathan Jong-Chun Won, "Communion with Christ: An Exposition and Comparison of the Doctrine of Union and Communion with Christ in Calvin and the English Puritans" (Ph.D. diss.,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1989). 특히 p. 352와, 또한 오웬의 경우에 대해서는 p. 290을 보라.

2) J. I. Packer, "The Puritan Idea of Communion with God," in Puritan Papers, eds. D. Martyn Lloyd-Jones and J. I. Packer, vol. 2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 Reformed, 2001), 104.

3) 예를 들어 아래 pp. 7-8에 소개되어 있는 칼빈의 시편 주석을 보라. 또 우리는 기독교 강요에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맛볼 수 있는 깊은 정서(affection)를 칼빈이 종종 ‘달콤함(sweetness, dulcedo)’이라고 묘사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다음을 참고하라: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l, trans. Ford Lewis Battles,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20-21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60), 3.2.15; 3.2.23; 3.2.41; 3.20.28.

4) 오웬의 신학 속에서 union과 communion의 관계에 대해 퍼거슨은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status)을 제공해주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그 신분의 열매로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이 둘 모두가 교제(communion)라는 개념 안에 포함되어 있고, 바로 이것이 오웬이 보통 이 표현[communion]을 사용할 때 의미하는 바이다.” Sinclair B. Ferguson, John Owen on the Christian Life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87), 75.

5) 참고로 연합(union)과 교제(communion)에 대한 칼빈과 오웬의 개념을 조금 더 비교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우선 용어상으로 칼빈의 경우 union과 communion이라는 두 단어가 거의 구분이 되지 않고 있다. 그가 “communion, fellowship, intercourse” 등 교제를 가리키는 듯한 단어들을 사용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은 거의 대부분 의미상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별반 차이가 없는 용어들이다 (Institutes, 3.2.24; 3.2.25; 4.16.17; Calvin’s Commentaries, 22 vols. [Edinburgh: Calvin Translation Society, 1844-56; reprint, Grand Rapids: Baker, 1979], Eph 5:29, 31, 32; 또한 Dennis E. Tamburello, Union with Christ: John Calvin and the Mysticism of St. Bernard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90, 112 참조). 반면 오웬에게 이르면 두 용어는 뚜렷이 구분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가 내린 일종의 communion의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communion은 union에 “기초하고” 있으며 전자는 후자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다 (John Owen, The Works of John Owen, ed. William H. Goold [Johnstone & Hunter, 1850-53; reprint,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65-68, 1991], 2:8-9. Goold가 원래 편집한 24권은 Banner of Truth사에서 재판 시 라틴어 부분을 빼고 23권으로 조정 출판되었는데, 이하에서는 이 재판된 23권으로부터 인용하며, 또한 인용 시 간단히 ‘3:122’와 같은 식으로 권수와 페이지 번호만을 표기하기로 한다). 즉 칼빈에게서는 communion은 대부분 union과 동의 혹은 유사적 개념으로 쓰이는 반면, 오웬에게서는 union과 더불어 communion도 그 독자적 위치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칼빈의 경우 union은 두 가지 성격을 지닌다. 즉 중생시 단번에 사실적으로 이루어진 연합의 측면이 있는 동시에, 또한 계속해서 진행되고 완성되는 과정으로서의 연합이란 개념도 함께 있는 것이다. 후자에 대해서 칼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완전히 하나를 이루실 그 때까지 점점 더 한 몸이 되어가신다” (Institutes, 3.2.24; 또한 2.15.5; 3.6.5; 3.25.2를 보라). 그렇다면 바로 이 후자, 즉 신자의 일생을 통해 더욱 공고해지고 완성되는 union의 개념 속에는 communion의 개념이 녹아들어 있다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오웬의 경우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union은 일회적인 반면, communion은 지속적 성격을 띤다. 간혹 그가 칼빈처럼 점차적으로 완성되는 과정으로서의 union을 논할 경우, 이때는 union을 완성시켜가는 수단으로서 제시되는 것이 바로 communion이라고 할 수 있다 (Owen, 2:57; 11:337 참조). 이럴 경우 우리는, ‘오웬에게 있어 union은 communion을 통해 실현되고(realized) 경험된다(experienced)’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6) 7:337 참조.

7) 1:222.

8) Ibid., 392, 2:287; 또한 2:290, 303, 309 참조.

9) 고후 3:18에 대한 이같은 해석은 청교도들에게 있어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칼빈도 이 구절을 현재적 봄으로 설명하고 있다. Calvin, Commentaries, 2 Cor 3:18.

10)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 .”

11) 1:375; 6:65. 그리고 오웬은 현재의 지상적 봄과 미래의 천상적 봄의 관계, 그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해 상세한 가르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졸저 “Beholding the Glory of God in Christ: Communion with God in the Theology of John Owen (1616-83)" (Ph.D. diss.,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2006), 160-75를 참조하라.

12) ‘봄’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혹은 이 봄의 교제를 통한 하나님을 닮아감은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친밀한 주제였다. 예를 들면 리챠드 십스(Richard Sibbes)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하늘 아래서 이루어지는 모든 묵상(contemplation) 중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만큼 달콤하고 능력있는 묵상은 없다, . .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를 봄,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봄은 우리를 그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 이건 있을 수 있는 가장 달콤한 묵상이다. 우리는 이 변화가 봄(beholding)에 의해 이루어짐을 안다. 복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이것은 능력있는 봄이다. 왜냐하면 그는 여기서 말하기를 ‘우리는 봄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Works of Richard Sibbes, ed. Alexander B. Grosart [Edinburgh: James Nichol, 1862-64; reprint,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73-83], 4:269). 또한 챠르녹(Stephen Charnock)은 봄에 의한 이 변화를 두 종류의 봄에 의해 설명한다: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를 보는 일은 그의 죽으심과 부활 안에서 우리를 그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 반면 나중에 있을 봄은 영광 안에서 우리를 그의 형상으로 변화시킨다” (The Complete Works of Stephen Charnock [Edinburgh: James Nichol, 1864-66; reprint,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85-97], 3:139). 또한 다음을 참고하라: The Works of Thomas Goodwin, ed. John C. Miller (Edinburgh: James Nichol, 1861-67; reprint, Eureka, CA: Tanski Publications, 1996), 5:548; 7:420; The Works of John Howe (London: Religious Tract Society, 1862-63), 1:75-9; 6:78.

13) 3:584-5; 또한 ibid., 511-3도 참조.

14) 1:460-1; 7:341.

15) 이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란 주제를 가지고 설명해 보자면, 중생시 사실적으로 이루어졌던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러한 봄의 교제를 통해서 경험적으로 성취되며 발전, 완성되어 간다는 것이다. 위 p. 3 각주 5 참조.

16) 6:292-3.

17) 9:592. 오웬은 사 45:22, 65:1; 슥 12:10 등을 예로 든다 (9: 592-3).

18) 오웬 자신이 이 점을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 사건과 관련한 신약과 구약의 본문을 대조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우리 주님은 요 3:14-5에서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다. 그런데 동일한 사건을 민수기 기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 21:9). 신구약의 이 두 구절에서 현 논의와 관련되는 부분만을 뽑아 대비시켜 보면 이렇다. 즉 신약에서는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되어 있는데, 구약에서는 ‘쳐다본 자가 살았다’고 말하고 있다. 즉 생명을 얻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을 한 쪽에서는 ‘믿음’으로, 다른 한 쪽에서는 ‘봄’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서 ‘봄’과 ‘믿음’의 두 주제가 연계되고 있음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19) 9:592.

20) Ibid., 558.

21) 3:562.

22) Calvin, Commentaries, Ps 25:1.

23) Calvin, Commentaries, Ps 63:2.

24) 이 측면은 위 p. 3 각주 5에서, 칼빈과 오웬에 있어서의 연합(union)과 교제(communion)의 개념을 비교하면서 언급하였다.

25) 이러한 점에서 오웬이 말하는 ‘봄’은, 기도 혹은 묵상의 한 방법으로서 제시되는 관상 기도(contemplative prayer)와 다르다. 관상 기도에서의 ‘관상(觀想, contemplation)’에 ‘본다’는 개념이 포함되어있음은 사실이지만, 이는 오웬이 말하는 ‘봄’과는 차이가 있다. 먼저 용어에 대해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관상’과 관련하여 오웬의 저작을 읽을 때는 용어적 표현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영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해 보자면, 오웬이 ‘contemplation’이란 명사를 사용할 경우 이는 일반적 ‘묵상’의 의미로서 ‘meditation’과 차이가 없으며 그는 이 단어를 자유롭게 사용한다. 그러나 ‘contemplative’와 같은 형용사의 경우에는 문제가 좀 다르다. 특히 오웬이 이 형용사를 ‘prayer(기도)’ 혹은 ‘vision(봄)’ 등의 명사 앞에 붙여 사용할 때, 그는 이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서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실 그 당시 천주교 쪽에서 보다 깊고 발전된 기도의 형태로서 추천되고 있었던 ‘관상 기도 (mental or contemplative prayer)’에 대해 오웬은 대체로 부정적 입장이었다. 이 기도의 긍정적 측면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동 기도가 성경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 그리스도의 중보를 떠나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알고 즐김을 추구한다는 점(위 p. 4 참조), 그리고 특히 이 기도 속에서는 지성의 역할이 현저히 약화되는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관상 기도에 대한 오웬의 상세한 견해에 대하여는 그의 전집 4:328-50을 보라.

26) 1:408.

27) Ibid. 그러나 나중 하늘에서의 봄에서는 달라진다. 이 천상적 봄(heavenly vision)은 성격상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것이며 (1:378), 우리의 봄의 기능 혹은 능력은 변화되어 완전케 될 것이기 때문이다 (1:380-2).

28) 1:408.

29) 참고로, 앞서 칼빈도 그의 시편 주해에서 영적인 봄(spiritual views)이란 용어를 사용했음을 기억하라 (위 p. 7).

30) 1:393-4.

31) 오웬이 여기서 말하는 ‘영광스러운 내적 빛’은 퀘이커 교도들이 강조한 소위 ‘내적인 빛 (the inner light)’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사실 오웬 자신이 퀘이커들의 이 주장을 가장 강력히 반대한 사람 중 하나였는데, 그 중요 이유는 이들이 기록된 말씀의 권위를 소홀히 하고 성령의 내적 빛에 의한 인도하심만을 고집하였기 때문이었다. 오웬의 신학에 있어서 이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오웬은, 말씀 뿐 아니라 말씀과 성령 양자를 모두 붙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그의 이러한 태도는, 패커가 평가한 바와 같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예: 대요리문답 4문)의 원리에 충실한 것이었다. 이런 측면들에 대해서는 다음 글들을 참고하라: John Owen, Biblical Theology: The History of Theology from Adam to Christ, trans. Stephen P. Westcott (Pittsburgh: Soli Deo Gloria, 1994), 772, 839-54; Michael Haykin, "John Owen and the Challenge of the Quakers," in John Owen: The Man and His Theology, ed. Robert W. Oliver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 Reformed, 2002), 141-9; J. I. Packer, "John Owen on Communication from God," in Puritan Papers, eds. D. Martyn Lloyd-Jones and J. I. Packer, vol. 4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 Reformed, 2001), 136.

32) 7:447.

33) 1:381.

34) 오웬은 심지어 이 교제 자체를 포기하는 것보다는, 좀 방법이 서투르고 치우쳤더라도 열심히 추구하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천주교적인 육적 봄의 추구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비웃으면서 자기들은 그러한 오류에 빠지는 것을 피한다는 핑계 하에 아예 하나님과의 교제 자체를 포기하거나 소홀히 하는데, 이는 천주교의 경우보다 더 잘못된 상태라는 것이다. 1:393-4.

35) 2:52.

36) 7:105, 108.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 가정 & 교육

전체공개 2012.01.05 09:33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김헌수 목사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이라는 주제를 여러 나라에서 모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에서의 교육’에 대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개혁 신앙을 고백하는 부모들이 한국에서 씨름하는 특별한 과업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한국에서의 교육

 1) 전통적인 유교 교육

 한국의 전통적인 교육은 대체로 유교에 의해서 형성되었습니다. 유교는 일반적으로 공자(주전 551-479)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중국 샤머니즘의 원시적인 형태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랜 역사 가운데서 발전한 신념 체계입니다. 공자와 더불어 맹자(주전 372-289)와 주자(1130-1200)가 유교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로 꼽힙니다.


 기원전 3천 년경부터 고대 중국인들은 영과 귀신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왕가나 귀족은 상제나 하늘을 섬겼고, 평민들은 대체로 풍요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명절에 죽은 조상의 영들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자식의 출생이나 혼인이나 승진과 같은 중요한 일을 조상신에게 알렸습니다. 이처럼 죽은 자의 영혼이 동양 사람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새로운 것을 짓지 않고 고대 성현들의 사상을 전달하는 자로 자처했지만, 그는 무속적인 조상 숭배를 문민화 시킨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전달자였습니다. 그는 효의 개념을 시민 생활과 정치 생활에까지 확대시켰습니다. 효는 부모에 대한 존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연장자나 윗사람에 대한 존경으로 확대되었으며, 국가도 가정의 확대로서 이해되었습니다. 따라서 유교 체제에서의 가족은 ‘사회학적’ 단위일 뿐 아니라 ‘형이상학적’ 중심이었습니다.


 유교의 발전된 형태는 샤머니즘과 매우 다르지만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똑같이 현세 지향적입니다. 샤머니즘의 기본적인 특징은 죽은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 함께 있고, 무당을 매개로 하여 산 자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유교는 죽은 조상의 영혼의 도움으로 현세적인 수복강녕을 보장받으려는 것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유교의 조상 제사는 언제나 샤머니즘적인 신념 체계 안에서 수행되었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현세 지향적인 효와 밀접히 연결됩니다. 유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효경}에서는 조상이 물려준 신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출세하여 ‘부모의 이름을 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라고 가르칩니다. 유교 사회에서 도를 행하려 부모의 이름을 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 공부를 하여 고위 관직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의 높은 교육열은 효에 대한 교훈을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교육이 효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유교적 교육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조: 샤머니즘은 “신비적 요소”“현세적인 태도”의 혼합으로 특징되어지는데, 두 요소의 혼합은 한국 교회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효와 교육에 대한 강조가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기여했고, 어떤 학자들은 ‘유교적 자본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용어는 이론적으로나 통계적으로 검증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강한 추진력을 제공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약하면 유교적인 사회 가치관은 정치적 사회적 출세를 위한 정당한 방편으로 고등 교육을 장려했습니다. 동아시아 사람들의 심성과 유교의 체계에 박혀 있는 샤머니즘적인 신념이 성공과 물질적인 복지를 추구하는 데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2) 근대 교육의 세 단계

 근대 교육의 세 단계에서 첫 단계는 ‘한국에 근대 교육 제도를 도입한 사람은 서양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인도에서 활동한 스코틀랜드 파송 선교사 알렉산더 더프(1806-1878)의 방법론을 선교 전략으로 택하여 ‘미션 스쿨’이라고 불리는 교육 기관을 많이 세웠습니다. 이것은 교육이 존중되는 한국에서는 특히 효과적인 전략이었습니다. 1910년에는 2,250개의 학교 가운에서 882개가 기독교 계통의 학교였습니다. 미션 스쿨은 하층민이나 여자에게도 입학을 허락하여 양반과 상민의 신분 철폐나 여성의 권직 신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미션 스쿨은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에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화’‘서구화’ 혹은 ‘근대화’를 동일시했음도 지적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문을 세속화를 향해 열어 둔 셈이었습니다.


 미션 스쿨은 학교를 전도(미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교과목을 성경의 교훈이나 신앙고백과 통합하는 일은 소홀히 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언약의 자녀에 대한 교육은 차츰 뒷전으로 밀려났고, 가르치는 내용에서 기독교적 독특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미션 스쿨이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나면 불교도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입학할 수 있었고, 기독교인도 다른 세속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나 모두 교육과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별개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의 상층에 진출한다는 데서는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근대 교육의 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는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공립학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은 일본 백성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하고 일본의 신념 체계를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무속의 일본판의 신도가 교육의 중심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일본 당국은 한국 학생도 신도 사당에 절을 하게 했고, 일본 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것은 폐교를 의미했습니다. 비록 몇몇 기독교 학교들이 폐교되고 몇몇 선교사들이 추방되거나 투옥되었지만 대부분의 미션 스쿨들은 그 압력에 순응했고 심지어 교회들도 그리 했습니다.


 근대 교육의 세 단계에서 세 번째 단계는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국의 교육 체계’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일제의 공립학교 제도의 유산, 즉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는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시행했습니다. 교과 과정을 학교 이사회가 아니라 교육부자 결정했습니다.


 해방 이후에 서양적인 교육이 도입되었지만 기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여전히 유교적인 교육관이었습니다. 교육을 통한 효의 실현과 현세적인 성공의 확보가 교육열의 근본 동인이었습니다. 한국의 중고생들은 유명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입시 과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육부는 몇 차례 교과 과정을 개편하여 지금은 7차 교육 과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개혁의 관점에서의 평가

유교적인 교육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속적인 요소와 가족주의와 연결된 유교적 가치관은 한국이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하는 데에 지속적인 장애물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적절한 공적 직분의 개념이 없이 유교적인 인간관계 중심의 가치 체계를 정치 제도에 적용할 경우 쉽게 친인척 비리와 부패로 이어집니다. 정치 비리의 문제를 많은 경우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로 파악하지만, 사실은 인간관계 중심의 사고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교적인 가치관이 문화에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기독교인은 이러한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하고, 그와 같은 강력한 문화적 장애물을 타파하기 위해서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기독교인들이 유교에서 배울 것들을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와 연장자에 대한 정당한 존경은 힘써 보존해야 할 전통입니다. 십계명 제5계명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해설에서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한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가족 관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회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또한 교육과 근면함에 대한 정당한 강조는 일상생활에서 유지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그러나 효와 교육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피조계의 다른 영역을 희생하면서 한 영역을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우상 숭배입니다. 또한 국가는 가족 관계를 확대한 것으로 다 설명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가족 관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공적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사회적인 덕목은 인화를 넘어서는 요소가 있습니다. 공적인 관계와 규범을 따라서 일하는 것은 사적인 관계의 확대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2.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1) 한국에서의 개혁 교회

 1884년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첫발을 디뎠는데, 그때는 한국이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밀려오는 열강의 힘에 저항할 힘이 없던 상황에서 기독교는 일종의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요소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1907년에 한국 장로교회가 독노회를 조직했습니다. 그때 교세를 보면 선교사를 포함하여 목사 49명, 조사 160명, 장로 47명, 교인 72,968명(성찬 교인 18,061명)이었습니다. 교세로 볼 때 결코 미미하지 않았지만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요약이 12개조를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택했습니다. 그러나 한두 쪽에 지나지 않는 이 고백서는 교회를 그릇된 교훈과 이단으로부터 보호할 정도로 튼튼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목사 장로 집사에게만 12신조를 승인할 것을 요구했지 교인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교인들은 신앙고백과 무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약 60여 년이 지나서 몇몇 교회들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를 채택했지만 이 고백서에 대한 서명도 직분 자에게만 요구하고 교인은 제외되었습니다. 또한 직분자의 서명도 엄격히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좋은 신자들이 많이 있지만,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국 장로교회가 참으로 신앙고백적인 교회인가’를 묻게 됩니다. 현재 한국 인구는 20퍼센트가 기독교인으로서 자처하고 기독교가 중요한 사회 세력이 되었지만, 발표자는 이 질문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2)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을 위한 부모의 과제들

 개혁 교육에서도 우리의 역사는 너무나 짧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과 과제는 좀 저 기본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개혁 부모들이 한국적인 상황에서 힘쓰고 있는 것들을 몇 가지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의 생활 영역에서

 첫째, 부모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함축을 지닙니다. 유교 사회에서는 사회적 출세와 성공이 효를 이루는 수단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지체들 사이에 분열과 경쟁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고전12:22-23). 유교적인 가치관은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가를 알 때에야 우리는 개혁학교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부모들은 언약의 말씀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드는 것은 언약의 말씀에 대한 신실하고 정순한 강설입니다. 비성경적인 사변이 신학 논쟁에서나 삶에 강한 영향을 끼친 한국에서 언약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더 절실합니다. 믿음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는 부분적으로는 예정에 대한 결정론적인 이해에서 비롯한 것인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의해서만 적극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언약의 말씀에 신실하게 전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반응하게 이끄실 것입니다.


 셋째, 부모는 자신들의 자녀에 대한 이해에서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유교적인 세계관에서는 영원성을 후손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자녀는 개인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조상과 관련해서 의미를 지녔습니다. 줄여 말하면 그들은 부모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녀들이 삼위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가르치고(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문, 74문)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창17:7).


 넷째, 부모는 학교나 교회에서의 ‘생활’‘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나이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나 사회생활이나 서로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매우 빈번히 나타납니다. 이것은 교회의 직분 개념을 왜곡시키는 것이고 직분을 통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가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분’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을 배우고 학교와 교회의 모임에서 실천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2) 교육의 영역에서

 다섯째, 부모는 교육에 대한 관점에서도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아이들을 훈련시켜 자녀들이 사회 상층부에 효과적으로 올라가도록 만드는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더 효과적으로 섬기도록 갖추어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기 때문에 교육자는 이러한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개혁 교육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과 교회의 역사적인 고백을 잘 알아서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의 직업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개혁 교육의 정체성과 질’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이날 성도들에게 창세기 6:4를 읽고(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다음과 같이 부모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킵니까? 그들이 유명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처럼 수고하십니까? 그들이 유명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에 투자하십니까? 사랑하는 부모들이여, 창세기에 기록된 유명한 자들과 사람의 딸들의 혼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정체성의 위기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생명과 사망, 하나님의 복과 저주의 문제입니다.”


 (3) 문화의 영역에서

 여섯째, 부모는 문화의 문제와 도전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가치관을 대안으로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서양 문화의 상당 부분이 성경에서 연원한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근원에 닿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더구나 필자와 같은 동양의 기독교인에게는 서양의 기독교적 문화도 서양의 토양에서 토착화된 요소가 다소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서양 문화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통적인 유교의 토양에 서양 문화가 수입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신자로서 성경의 교훈을 토대로 동서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토착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판적 반성은 자신의 믿음을 순결하게 보존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변혁하는 데에 필痔岵都求? ‘개혁 관점에서의 토착화’는 성경과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를 요구하는 거대한 작업입니다. 그러한 작업을 거쳐서 비로소 개혁 교육의 교과 과정에도 그 결과를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도 문화에 대한 성경적인 비판은 필수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비판이 없이는 개혁 교육을 시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한국의 개혁 부모들이 위에서 열거한 내용으로 신령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여기에 있는 다른 문화에서 온 개혁의 형제들에게도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다른 단계에서 다양한 양태로 씨름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신령한 전투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여러분의 좋은 전통은 제한된 자료를 가진 우리에게도 큰 격려가 됩니다. 독자적인 건물과 개혁 교과 과정이 갖추어진 학교를 갖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두신 그 단계와 위치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갖고 이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 쉼터/한아름님

♥ 들어가며

‘개혁’(改革)이란 사전적인 의미(새롭게 뜯어 고침)에 익숙해서, 교회에서 ‘개혁주의’라 하면 기존의 체제를 부인하거나 새롭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를 봅니다.

그것은 개혁주의 신학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1. 명칭(名稱)의 의의(意義)

‘개혁주의’란 중세 로마교회가 성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1) 중세 로마교회의 비성경적 교회 운동에 반대하여 일어난 16세기 종교 개혁의 교회를 특징짓는 이름이다.

2) 프로테스탄트 안에서도 루터파 교회나 재침례파 교회에 대하여 구별된 명칭으로 사용된 것이다.

3) 오늘날 칼빈의 5대 교리를 천명하는 신학과 교회들에게 동일시되는 이름이다.

 

2.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特徵)

개혁주의 신학(Reformed Theology)이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및 교회 중심적 신학을 가리키며, ‘칼빈주의’라고도 한다.

 

1) 하나님 중심(God-centered)

인간이 중심일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자연과 인간과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것이 하나님 중심 사상이다.

2) 성경중심(Bible-centered)

성경 외의 그 어떤 것도 신앙의 표준일 수 없고 신학의 원천일 수 없다. 개혁주의는 “성경은 성경 자신이 해석한다”(Scripturae scriptura interpretum)는 원리를 고수한다.

3) 교회중심(Church-centered)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적 삶을 추구하며 교회에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려고 힘쓴다. 지상교회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의 완전을 향한 추구를 경시하지 않는데, 이것이 교회개혁운동이다.

 

3. 개혁주의의 원칙(原則)

 

1) 오직 성경(Sola Scriptura) - 성경만이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유일한 권위는 성경에 있다

2)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 구원의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효를 덧입는 것뿐이다.

3) 오직 은총(Sola Gratia) -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4) 오직 믿음(Sola Fide) - 구속의 은혜는 믿음을 통하여 받을 뿐이지 다른 어떤 것이 요구되지 않는다.

5)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 - 모든 업적과 구원의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4. 칼빈주의 5대 교리(敎理)

하나님 중심 사상을 기본 원리로 하는 칼빈주의는 5개의 중요한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칼빈주의 5대 강령'이라고도 한다.

‘알미니안주의 5대 교리’가 먼저 나오고 이를 반박하기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칼빈주의 5대 교리’이다.

그리고,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신앙 전반에 관한 것이 아니고 구원론에 관한 것이다.

 

1)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육체적인 생명만 갖고 있는 모든 자연인은 그 본성이 타락하여 구원에 필요한 믿음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2) 무조건적 선택 (Unconditional Election)

누구에게 참된 믿음을 줄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이다.

3) 제한 속죄 (Limited Atonement)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실효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다.

4) 불가항력적 은혜 (Irresistable Grace)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아니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5) 성도의 견인 (Perseverance of Saints)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리로 결코 떨어지지 않고 구원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이다.

 

5. 개혁주의 기본 교리(敎理)

 

1) 제한속죄 구원론

인간의 전적타락,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으로 구원론을 요약한다(드르트신경, 1618-1619).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을 이단으로 징계하면서 제한속죄 구원론을 완성하였다.

2)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개혁주의는 창조, 타락으로 인한 징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마지막 심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을 믿는다.

3) 하나님의 예정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작정, 예정 및 선택을 믿는다. 예정론은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택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리인바 신적 구원의 확실성을 담보해준다.

4) 언약신학

성경을 해석하는 한 체계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에 중점을 둔다. 주로 개혁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체계화 되었으며, 성경의 언약을 크게 구속의 언약(하나님과 예수), 행위언약(하나님과 아담), 은혜언약(하나님과 백성)으로 나눈다. 그리고,

(1)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          (2) 우상 숭배에 대한 신랄한 비판                  (3) 역사 속에서 이룩되는 하나님의 목적,

(4) 거룩한 신자의 생활             (5) 하나님께 대한 봉사로서의 생활                (6) 설교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97) 권징과 훈련된 생활             (8) 조직된 교회의 중요성과 목회적 관심        (9) 예배와 생활의 단순성 등을 주목한다.

 

6. 개혁주의 공통 교리서(敎理書)

 

1)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 A.D 200)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 그리스도교의 기본적인 교리가 요약된 것이다. 현재의 사도신경은 갈리아에서 5∼6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기초가 되는 로마신경은 2세기 중엽에 만들어졌다. 이단적인 가르침이 발전함에 따라 이 신경이 불신자나 이단자로부터 진정한 그리스도교도를 구별해 내는 <표증>이 된다.

 

2) 니케야신경(Nicene Creed, A.D 325)

니케야 종교회의에서 채택한 신앙 조항으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에 관하여 규정한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규정하였고, 381년에 콘스탄티노플 회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완전한 문서가 만들어졌다. 특히 성자는 성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분으로 모든 면에서 완전한 하나님 되심을 강조한 신조이다. 주로 동방 정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3) 칼케돈신경(Creed of Chalcedon, A.D 451)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해서 아폴리나리우스, 네스토리우스, 유티케스 등이 주장한 극단적인 그리스도의 단성론과 양성론을 배격하고, 신성이 인성(몸) 안에서 혼합되거나 혼란을 일으키거나 분리되지 않은 채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규정한 신조이다. 극단적인 단성론과 양성론을 모두 배격하고 둘 사이의 조화를 꾀하고자 하였다.

 

4) 아다나시우스신경(The Athanasian Creed, A.D 500)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을 계승하여 아다나시우스가 만들었다고 전해 오는 문서인데, 실제로는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5세기경에 삼위엘체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성부도 하나님이고 성자도 하나님이며 성령도 하나님이지만, 세 분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만 존재한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나오는 영원한 분이므로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가지신 분이시며,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재림하시며 최후 심판을 하실 것임을 밝히고 있다.

 

7. 개혁주의 주요 신앙고백서(信仰告白書)

개혁주의자들은 그들의 신학체계가 보다 성경적임을 증명하고, 다른 신학활동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그들이 신학을 교리화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신앙고백이었다. 신앙고백을 성경과 같이 절대화하지는 않으나 신조(信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 벨직신앙고백 (Belgic Confession, 1561)

홀란드에서 가이 드브레(Guido de Bres, 1522-67)가 작성한 것으로, 그 내용은 프랑스에서 나온 갈리칸 신앙고백과 매우 유사하며, 유럽 북서부의 저지대 국가들에서 박해받던 성도들을 위해서 쓴 변증서이다. 이 문서는 1619년 도르트 총회에서, 네델란드 교회의 신앙 고백으로 받아들이기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다.

 

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The Heidelberg Catechism, 1563)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1534-83)와 카스파르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87)에 의해서 청소년의 교육을 위한 것으로 작성된 이 문서는, 성찬에 관한 교리는 분명히 개혁주의를 따르고 있지만, 몇 가지 교리는 루터파와 개혁주의의 중간노선을 취하는 것도 있다. 칼빈이 이 문서를 검토한 후 극찬할 만큼, 아주 간단명료하고 경건한 내용이 특징이다. 이 문서는 독일 칼빈주의 신앙 고백에서 가장 탁월한 문서로 손꼽히고, 오늘날에도 개혁주의 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3) 도르트신경(Canon of Dort, 1618-9)

훌란드 지역에서 발전된 정통 개혁 신앙의 절정기에 작성된 교리의 압권으로, 알미니우스주의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조이다. 예정론을 근간으로 한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알려진 구원론에 관련된 다섯 가지 핵심 사항을 채택한 것이다. 논쟁을 거쳐서 나온 문서인 만큼, 16세기에 나온 신조에 비하면 매우 정교하고 체계적이며 논증적이다.

 

4)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Westminster Confession of Faith, 1643-8)

칼빈주의 정통 신학의 최고봉에 위치하는 가장 체계적인 문서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이 문서를 성경 다음에 표준 신앙 고백서로서 채택한바 있다. 이 문서의 특징은, 스코틀랜드 언약 신학이 반영되고, 성화와 주일성수에 대한 엄격성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이중 예정, 자유 의지, 아담의 행위 언약 등도 계속해서 중요한 교리로 인식되고 있다.

 

5)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The Westminster, Larger Catechism, 1648)

개혁주의 요리 문답 가운데서 가장 긴 문서로, 장년 교육을 위한 지침서이다. 거의 모든 개혁주의 교리를 다루고 있으며, 주기도문과 십계명도 포함되어 있다.

 

6)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The Westminster, Small Catechism, 1647)

성경 전체적인 가르침을 쉽게 비우도록 만든 신앙 고백과 교리를 포함하는 문답 형식의 교육 도구이다. 특히 소요리 문답은 교회의 다음 세대들을 교육하는 지침서로서 성경에 충실하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바 신앙 고백을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7) 제2 헬베틱(스위스) 신앙고백(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1566)

1562년 하인리히 블링거는 개인적인 신앙 고백을 작성하였다가 1565년 12월 팔라틴의 선제후 프레데릭 3세의 요청이 오자, 정통 신앙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문서로 이를 작성하여 베자의 추인을 받고자 제네바로 우송하였다. 이 고백서의 특징은 초대 교회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으며,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 다음으로 스위스 개혁파 교회들의 지지를 얻었고, 가장 널리 사용되었다.

 

8) 제네바요리문답(The Geneva Catechism, 1541)

칼빈은 제네바 교회가 신앙고백적인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기독교 강요』 초판(1534)을 중심으로 제1요리문답을 작성했다(1537). 제네바 시의회가 다시 그를 청빙했을 때 그는 권징권이 교회에 있음을 인정해 줄 것과 요리문답을 가르치도록 허용하는 것을 청빙의 조건으로 삼았다. 그는 제네바에 돌아온 후에 곧 바로 제2요리문답을 작성했다(1541-42). 따라서 우리는 요리문답 교육이 복음의 강설과 함께 개혁의 추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9) 프랑스 갈리칸 신앙고백(Gallican Confession, 1559)

박해받는 프랑스 위그노들이 칼빈이 제네바 신앙 고백을 기초로 하여 약간 수정한 문서이다. 오래 지속된 박해로 인해서 프랑스 위그노들의 힘은 크지 못하였으나, 그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순수하고 깨끗한 신앙의 정신을 따라 가리로 결의한 놀라운 의지가 담겨 있다.

 

10) 스코틀랜드 신앙고백(The Scots Confession, 1560)

스코틀랜드 최초의 신앙 고백으로, 요한 낙스와 다섯 명의 목사들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낙스가 유럽에서 경험한 것들이 반영되었고, 하나님의 창조, 성육신과 예정과 십자가, 불가시적인 교회관, 참된 교회의 세 가지 표지로서 말씀의 선포, 성례의 시행, 권징의 실시를 규정하고 있다.

 

<참고>

 

1. 주요 신학의 비교(比較)

 

1) 개혁주의(改革主義, reformism)

일명 ‘칼빈주의’라고도 하며, 개혁주의는 바울, 어거스틴을 거쳐 16세기 칼빈에 의하여 체계화된 사상운동으로, 하나님의 주권(主權)을 강조하고,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근본적 교리를 믿고 그 위에 신학을 세운다는 것이다. 개혁주의는 기독교 유신론이며 가장 순수하고 고상하며 복음주의적인 신학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근본주의(根本主義, fundamentalism)

1850년대 유럽에서 들어오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에 반발하여 기독교의 전통적인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성경의 많은 부분 특히 창조와 기적에 관한 기록을 신화나 설화로서 이해하고자 했는데, 이에 반하여 근본주의 신학에서는 성경은 그 글자까지도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서 기록되었다는 축자영감설을 주장하였다.

 

3) 복음주의(福音主義, evangelicalism)

17세기 이후 독일에서 루터교회의 ‘신앙의 고정화 현상’에 불만하여 생긴 경건주의 운동으로, 그들은 "기독교는 생활이요 체험이다"라는 표어를 가지고 성경의 생활화를 강조하였다. 성경의 무오성(inerrancy)을 주장하고 말씀의 내적 의미와 성화를 강조하여 교회 제도와 교리의 의미를 축소시킨 신학 사상이다. 성경의 윤리적 가르침을 율법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고, 성경의 교훈들에 대한 상황적 해석을 반대하는 배타성이 심하다고 하여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4) 자유주의(自由主義 liberalism)

신학의 토대를 인간의 경험에 두고, 성경을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쓴 책으로 해석하였기 때문에, 성경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아 성경에 나온 내용이라도 이성에 맞지 않는다면 거부하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선재성, 부활 승천 등에 대한 전통적인 교리를 거부하고, 예수의 인성을 강조한다. 또 인간 본성과 역사의 발전에 대하여 매우 낙관적이며 초월대신에 내재 원리를 더 강조하는 인본주의적 신학으로 진화론 등 자연과학 사상을 수용한다.

 

2. 주요 개혁주의 인물의 신학 비교

 

    구 분

     루 터

       칼 빈

   쯔 빙 글 리

 

   국적

 

 

독일

 

프랑스

 

스위스

 

 신학의 중심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의 절대적 중심

 

하나님 의지 중심

 

 신학의 출발

 

이 신 득 의

 

만인제사장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

 

 

 

예정 사상

 

이 신 득 의

 

 성 찬 론

 

 

공 재 설

 

영적 임재설

 

기 념 설

 

 국가와의 관계

 

 

교회는 국가에 복종

 

국가와 교회의 분리

민주 헌법, 교권 배격

 

  교회의 정치

 

.

장로 정치






출처: 개혁주의마을/이지명


 

개혁파 교회의 고민과 진로 /서창원목사|개혁파 신학

 

개혁파 교회의 고민과 진로 / 서창원목사

교회가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무엇인가? 요즘처럼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자는 외침이 많았던 때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과연 교회의 시대적 사명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원수인 불신자들, 하나님의 뜻하고는 전혀 상관없이 육체적이요 세상적이요 마귀적인 일에 몰두하고 있는 교회 밖의 사람들의 동정심(?)을 얻고자 미혹의 손짓을 과감하게 벌이는 것이 시대적 사명인가? 아니면 외딴 섬처럼 세상이라는 바다하고는 상종할 이유가 없이 독자적 행보를 가야하는가?

개혁파 교회 성도들도 분명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에 세상의 여파에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 사람들의 외면을 받지 않으려면 그들의 요구와 기대하는 바를 충실하게 실천하는 교회여야 하는가? 아니면 하늘에 속한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다스림의 본질에 충실할 것인가? 과연 성경은 이에 대해 뭐라 교훈하는가? 또 과거 기독교 역사는 우리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하라고 권면하는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자.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430년을 그것도 상당한 세월을 노예로 굴종의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다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을 통해서 출애굽의 대 역사를 창출하였다. 40년이라는 광야 생활을 통해서 이집트에 깊이 물든 사람들 거의 전부가 광야에서 숨지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 사람들만이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하였다. 물론 여호수아와 갈렙은 예외였었다. 그들의 올곧은 신앙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 자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하셨다.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살 때 과거 조상들이 살았던 이집트 땅의 풍속과 유행을 따르지 말라. 그리고 가나안 땅의 풍습도 따라서는 안된다. 오직 하나님이 너희에게 일러준 규례와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로 인하여 살 것이다(레 18:1-5). 하나님은 철저하게 이집트에서 온 몸에 익숙하게 박혀있는 풍습을 제거하길 원하셨다. 그리고 새 땅에 들어가서 살게 될 그 현지의 유행과 풍습도 본받을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지적하셨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바알 신을 비롯한 각양 잡신들을 섬기는 이교도들로 둘러쌓여 있다. 작은 나라 사람들이 주변 나라들을 살펴보는 것은 국가를 견고히 세워가는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스라엘은 충분히 이웃나라들과 교류를 했어야만 했고 그 필요성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삶은 주변 나라들의 삶과는 달라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할 것을 촉구하신 것이다. 이 일에 잘 순응하였던 시절은 강대국이 되었고 풍요로움을 누렸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분명하게 경험하였다. 그런데도 때로는 주변 나라들과 손을 잡고 하나님을 등지고 우상들을 받아들이는 죄를 범하였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대부분의 역사가 혼합 종교를 지지한 시대였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은 망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구약에서 주님이 보여주신 역사의 교훈이다.

신약시대라고 다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도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모하고 갈망하는 것들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을 것을 요구하셨다. 사도들도 이 세상을 본받지 말라고 가르쳤다(롬 12:2). 세상을 사랑하여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약 4:4). 땅에 것을 구하지 말고 하늘의 것을 구하라고 하였다. 아니 땅에 속한 지체를 죽이라고까지 말한다(골 3:5). 왜냐하면 그런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구약의 이스라엘이 망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성도가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해 주고 있는 답은 하나이다. 즉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거스리는 길이 아니라 오직 진리를 위한 길이다(고후 13:8). 그것이 종종 핍박을 받게 되고 심한 환난에 떨어지는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 더 좋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택한 길이었다.

이것은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가 보여주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과 동일시하거나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을지라도 결국 그러한 교회들은 망하였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에 왕성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유토피아 건설과 유지에 치중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간직하였을 때였다. 교권이나 왕권과의 결탁이 아니라 교회가 교회로서의 마땅히 내야할 진리의 소리를 외치는 시기가 교회가 왕성했던 때였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것과 교회로서의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교회가 세속에 매몰된 것은 세상의 부와 영화가 교회를 지배할 때였다. 종교개혁은 그런 교회를 벗어나 교회의 본질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진리의 재발견이었다. 그것은 교권이나 왕권과의 결탁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광야에 홀로 서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 결과 전 유럽을 놀랍게 변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었다.

지금의 유럽의 교회가 쇠퇴하고 그야말로 세속국가로 전락된 것은 자유주의 신학과 세속주의의 영향이라 할지라도 세상과 호흡을 맞춘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WCC운동이 추진했던 길이다. 지금은 그렇게 활동할 돈을 낼 만한 유럽의 교회들이 없기 때문에 아직은 여전히 부를 누리고 있는 한국 교회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한국 교회는 우리의 위세를 자랑하고 싶어 그들이 내민 손을 덥석 잡아 그들의 세계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한국 교회는 그 역사가 보여주는 길을 답습하고 있으니 그 수명이 얼마나 될지 참으로 난감하다. 지금 한국 교회는 돈 자랑할 때가 아니다. 숫자나 크기를 내세울 때가 아니다. 서구 교회의 몰락의 원인을 찾고 다시 원초적인 복음으로 되돌어가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주의 자들의 주장과 실천을 반대하는 보수주의 교회들에게는 소망이 있는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기 힘들다. 개혁파 교회도 위기에 처한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보편적으로 교회가 누려온 세속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붙들고 있는 한 교회로서의 힘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숫자적 가치, 크기와 부피의 위용을 내세워서 교권을 행사하려는 자들의 횡포는 개혁파 교회를 추구하는 곳에서도 그 미세한 진동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개혁파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일단 돈이 없다. 그리고 숫자도 미미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주는 단계에 있지 않다. 그 보다 더 아픈 것은 개혁파 교회들의 모래알 특성이다. 이상하리만큼 하나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신 주님의 기도를 외면한다. 개혁파 교회들이 하나되지 못하는 신학적 차이는 극히 일부분들이다. 그런데도 서로 협력하려고 않는다. 자기 주도적인 일이 아닌 이상 비개혁파 교회들이 가는 길을 그대로 한다. 공동전선을 펼쳐야 할 것도 그냥 방치한다. 격려하고 협력하는 일은 도움이 절실할 때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때가 되면 혼자 몸부림치는 일이 대부분이다.

오직 하나인 진리를 추구하는 개혁파 교회는 이 상황에서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성경과 역사가 말해주는 답을 붙들어야 한다. 황량한 광야의 시련을 자원해서 겪어야 한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신 하나님을 깊이 경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세상에 있으나 죽어가는 세상을 위한 살아있는 진리로 존재할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은 진리에 목말라하는 자들을 붙여줄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에 속한 사람들은 진리를 듣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개혁파 교회 목사들은 사람들의 소리, 심지어 교회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말라. 오직 진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현실적 외침이 강력하다. 세상살이에 개혁파 교회라고 해서 물만 마시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물조차도 사 먹어야 하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참된 생수는 진리이신 하나님만이 주신다. 그 하나님을 목말라하는 자가 되라.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복이라고 여기라. 그 하나님을 우리 앞에 모시고 흔들림이 없이 나아가야 한다.

목회현장에서 함께 하고 있는 성도들도 그들이 사는 세상 주변을 다 보고 있다. 성도들이라고 목사들도 아는 길이와 크기와 부피가 가져다주는 달콤함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그들이나 목사들이나 다 턱밑까지 차있다. 누군가 조금만 물꼬를 터주는 일이 되면 왕창 쏠리는 현상이 드러날 것이다. 이미 준비는 다 되어 있다. 그러나 목사들이여 정신 차리자. 그렇게 쏠려서 당장 목마름이 해결되고 당장 배고픔이 사라진다고 한들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교회가 되겠는가?

이교도들도 배고팠을 때 더 도를 잘 닦았다. 교회가 배고파야 한다. 그런데 나도 그 배고픔을 자청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개혁파 목사라고는 하지만 실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청빈한 삶은 과거 17세기 청교도들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었지 지금 경제대국의 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는 자랑할 일이 아니다. 지금의 사람들은 노숙자들이나 하층민의 사람들에게서 복음을 발견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도리어 세상 부와 영화를 누리는 곳에서 찾아진다고 믿고 있다. 아니 복음의 출발은 가난에서부터였을지라도 복음의 결과는 소유의 많음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세상에서 낮은 곳으로, 가난하고 헐벗고 힘없고 고통 중에 있는 곳으로 간다고 해서 누가 따르겠는가? 혹독한 겨울철에 은혜의 꽃이 활짝 핀다고 주장한들 누가 그 매서운 겨울을 환영하겠는가?

개혁파 교회가 안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진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목사인 내 자신이 구별된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광야보다 안락한 도시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진리이신 주님과 씨름하는 복된 시간보다 세상에서 안주하는 일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더럽히는 일들에 더 깊숙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시내 산에서의 모세, 광야에서의 석청을 먹으며 고독하게 지냈던 선지자들이 걸어간 것은 더 이상 흠모의 대상이 아니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며 좋은 집에서 살며 종종 여가 선용에 가담하는 고즈넉한 삶을 추구하는 한 구별된 성직자 상은 허울 좋은 개살구이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목사 내 자신이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그곳에서의 탈출이 쉽지 않다. 내려놓기엔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는 찬송을 쉽게 부르지 못하는 데 진리의 일군이라고 말하는 것이 염치없는 일이다. 주님보다 귀한 것이 실제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입으로의 고백과 손과 발의 고백이 다른 삶을 사는 한 진리의 영향력은 꿈도 못 꾸는 것이다.

개혁파 교회를 사랑하는 동역자들에게 할 말이 없다. 그래도 까마귀를 동원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지금의 우리의 목회사역을 신중하게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은 지금 대한민국 땅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물론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 곳에 아담과 하와를 두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시작도 우리가 일할 수 있고 살 수 있는 환경을 다 만드시고 그 속에서 일하게 하시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실 때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도 아무에게도 문안하지도 말고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평안을 빌며 그 집 주인이 주는 것을 먹고 마시되 이 집 저 집 옮겨 다니지 말라고 당부하셨다(눅 10:1-9참고). 주님께서 일군이 삯을 받아야 함을 잘 아신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위해 일하는 자들을 위해서 주님께서 직접 마련하시겠다는 약속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환영하지 않는 곳에서 자리 펴려고 기웃거리지 말고 환대하는 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자들이어야 할 것이다. 개혁파 교회의 시작은 언제나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그들의 헌신으로 귀한 열매를 맺었다. 안락한 교회당과 넉넉한 먹거리가 제공되는 것을 버리고 들판에서 비바람 맞으며 눈보라 휘날리는 곳에서 외로이 진리를 순종하는 성도들의 헌신 때문에 사람들 영혼 깊이 파고드는 진리의 역사를 남길 수 있었다. 그들의 수고에 후손들은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후손들은 그 혜택을 잡고만 있었지 나누는데 인색하였다. 더 많은 것을 탐하였다. 그것은 곧 진리를 버리는 자리로 나아갔다. 또 다시 교회는 황폐해진 것이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아니 찾아도 그대로 행하는 것은 더 어렵다. 바알에게 절하거나 임 맞추지 않은 남은 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하나님이 찾으시는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한 사람은(렘 5:1) 어떤 유형의 사람일까?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사람은(미 6:8) 어떤 사람들일까? 그런 무리를 만나고 싶고 또 내가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자신도 죽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그릇보다 못한 내게 복음을 맡기신 것은 살리는 영이신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필수인 것 같다. 거룩한 복음의 광채는 주님과 깊은 교제를 통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주님께 도움을 구한다. 오 주여! 우리를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주를 인하여 기뻐하게 하소서(시 85:6).

개혁교회의 미래는 사람의 손에 달린 것이 아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주님의 사람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워 가실 것이다. 누가 더 주님을 잘 아는가가 우리 교회의 미래의 열쇠이지 않겠는가? 오라 우리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
출처: 생명수 쉼터/한아름 

'개혁주의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0) 2013.04.26
개혁주의에 대한 바른 이해  (0) 2013.04.14
청교도의 신학  (0) 2013.01.18
율법의 세 가지 용도(권호덕 박사)  (0) 2013.01.04
개혁주의 교의학  (0) 2013.01.02

청교도들의 신앙과 생활


조엘비키 박사_청교도 개혁신학원 학장


2008년도 합신 목회대학원 여름강좌에서 ‘청교도의 신학과 설교’라는 주
제 아래 진행된 조엘비키 박사의 강의 중 일부를 요약쪾발췌한다.
-편집자 주-



성경의 가르침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해
강력한 칼빈주의 기초한 예배 중심 생활해


보통 많은 사람들이 퓨리탄(청교도)은 세상과 격리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 안에서 기쁨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이었다.
1560년에 시작된 퓨리탄은 엘리자베스 여왕 때에 일어났다. 엘리자베스는 당
시의 교회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여겼다. 그녀는 아직도 교회
가 덜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퓨리탄이라는 이름은 비난하는 이름으로 쓰여졌다. 청교도의 아버지 퍼킨스
는 이를 두고 악한 정의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적인 단어였다. 청
교도들은 청결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 중 어떤 사람은 언약 사상이 핵심이라고 하며, 어떤 이는 회심
이 중심이라고 하며, 어떤 이는 예정하시는 하나님이 중심이라고 한다. 하지
만 청교도는 이 모든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은 성경 신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I.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청교도들의 모든 신학적인 면을 함축하고자 하면, 칼빈의 신학 사상을 하나
로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듯 청교도의 사상을 정의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
다. 그러나 청교도를 정의할 때 가장 좋은 것은 그들이 다음 5가지 영역에
깊은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이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자 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읽고, 설교하며 그 말씀대로 살았
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확신을 가지
고 살았다. 그 안에 담겨진 어떤 주제를 선정하여 성경에서 발견된 말씀을
삶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적용하려 하였다. 역사를 살펴볼 때 이러한 부류는
없었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대해 그토록 관심 있어하던 사람
들이었음
을 보여주고 있다. 당시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말씀으로 적용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2. 열정적인 삼위일체의 신학을 가졌다.

우리를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우리에게 전가하시는 성령님에 대해서도 마찬가
지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성도들의 삶의 경험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
떤 사람들은 청교도가 내면적인 것을 중시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했다. 개인
의 경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경험보다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패커는 이들
이 경험을 중시하는 것은 경험으로 이것을 종결지으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며 모든 목적이 삼위일체 하나님께 영
광을 돌리는 것이었음을 갈파했다.

3. 교회의 유용성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 선포와 예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
다.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성경에 부합되는 설교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러
므로 이들은 설교에 대해 복잡하지 않고 마음에 담는 설교를 강조하였다. 그
러므로 모든 예배의 순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집중하였고 예배
의 개혁을 추구하
였다.
특별히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간략한 예배로 돌아가는 일을 시행하였
다. 제정된 예배 의식을 주장하였는데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것 이외에
는 어떤 추가적인 것도 수용하지 않았다. 동시에 교회의 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였다. 교회의 덕을 위해 교회는 신약교회와 한 선상에서 연관지어
생각해야 한다고 보았다.

4. 어떻게 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했다.

당시 시대의 정황 가운데서의 위기가 이들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하
였다. 왕이 어떤 권한이 있는가에 대해 말씀을 살펴보게 되었고, 의회는, 시
민들은 어떤 권리가 있는가를 알기를 원했다.

5. 개인의 신앙에 대해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가졌다.

개개인이 중생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설교자가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장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부딪히도록 그들의 의식을
자극하고 죄인들에게 경각심을 주라 하였으며 모든 이들이 믿음으로 회심할
것을 말하였다. 개개인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그들을 더 성숙하게, 그래
서 그들이 과연 신자로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많이 다루었다. 매

의 삶 가운데 성도들이 어떻게 적용하여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윌리암 구즈는 <가정 내에서의 의무>라는 책을 통해 어떻게 설교를 적용하
며, 참된 신자로서 예배하며, 직장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또 사회의 일원으
로 어떻게 살 것인가… 즉 모든 삶의 영역에서 어떻게 신자로서의 삶을 살
것이며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사고까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잡혀야 한다고 강
조했다.




선포된 설교는 기록하여 실생활에 적극 적용
설교에 대한 건설적 비평 설교자와 나누기도



II. 청교도들이 가졌던 관심들

청교도들의 특성은 당시 영국의 사회 속에서 그들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
결을 위한 관심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성경적 설교
당시 그들은 말만 무성한 설교에 대해 식상해하고 있었다. 교리는 강하고 능
력이 있어야 하며, 백성들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2) 경건의 필요성
성령의 역사에 대한 성경적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의 필요성을 중시했다.

3) 성경적인 단순성
특별히 모든 교회의 삶에 연관된 부분에 있어서 단순성을 추구했다. 만일

교도들이 지금 생존해 있다면 그들은 요즘 인간적인 방법들을 동원해 예배
를 수용하는 것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청교도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교리적으
로 청교도는 강력한 칼빈주의에 기초했다. 둘째, 경험적인 면에서는 따뜻하
고 힘이 있었다. 셋째, 복음적인 면에 있어서는 부드러운 면이 있었다. 넷
째, 교회적인 면에서는 하나님 중심이었고 예배를 중시했다. 다섯째, 정치적
인 부분은 성경적이었으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청교도들의 10가지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
써 그들이 우리에게 어떤 점을 공헌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실제적으로 생
각해 볼 때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이해한다면 청교도들에
대한 기본적 서론이 끝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제시된 10가지의 서론
이 끝난 후에는 이상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자 했는지도 설명될 것이다.
1.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 살아야 하는 방향

어떤 분이 말하기를 성경 66권의 책들은 성령님의 서재라 한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것은 성경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방편으로
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주신 편지와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버지의 신분으로 아들
에게 주는 것으로 자식의 삶을 훈련,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어떤 청교도는 말했다. “모든 성도들은 매일매일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누
구든 숨겨진 보화를 찾는 심정으로 읽고, 읽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잘 준비
해야 한다. 묵상하고 읽은 것에 대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리고 삶속에 적
용해야 한다. 믿음으로 기도로 행동으로...”
토마스 왓슨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기 전에
는 영적인 배고픔을 가지고, 준비된 마음으로 영향을 받을 준비를 가지고,
그리고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
한 믿음을 가지고, 그리고 집에 돌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모습을 계
속 유지하도록 그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청교도의 설교는 적용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많은 청교도
들은 말씀을 잘 기록했다. 특별히 부모들이 설교 말씀을 열심히 기록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 후에 저녁에 자기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다시 설명을 했다. 이런 점에서
한 주간에 가장 중요한 행사가 설교였다.
청교도들은 주일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시장이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시장
에 가서 음식을 사와서 한 주를 살았었는데, 마찬가지로 주일날 교회에 가
서 영적인 음식을 잘 쌓아두었다가 한 주를 살았다.
우리의 믿음과 행함에 있어 하나님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리처
드 백스터가 <성도들의 삶의 규례>라는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썼는데, 어
떻게 성도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상세하게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흥미로
운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든 상
황 속에서 어떻게 양심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핸리 스미스는 “통치를 받아야 할 모범, 규례로 성경을 두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것만 믿고, 설명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
이 말씀이 금지하는 것을 증오하고, 그밖의 모든 것은 행하지 않아야 한다”
고 했다.
청교도들의 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히 들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들은 하박국이나 레위기를 읽는 것을 복음서를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항상
읽었다. 온전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읽어야 한
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청교도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살려고 했다
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 교리와 실제적인 삶의 연결

이를 위해 3가지 일을 했다.
1) 마음을 향해 설교했다.
마음은 믿음의 궁전이라 생각했다.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척추가 없는 사람
과 같다. 개인의 경험에 대해 강조한 만큼이나 그들은 반지성적 복음이 결국
은 공허한 복음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성도들이 믿는 것
과 불신자들이 믿는 것이 유사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성도들이 은혜교리에 대한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
는 “은혜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면 조만간 성도와 불신자가 차이가 없
을 것”이라고 말했다.

2) 양심에 대한 정면 대결
청교도들은 설교자가 강단에서 말씀을 전할 때 무화과 뒤에 숨었던 아담처
럼 죄로부터 숨어 있는 성도를 잘 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죄를 잘 드러내
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세워
야 한다고 말했다.
3) 따뜻한 사랑
그들의 설교와 글을
통해 이렇게 양심을 정면 대결할 뿐 아니라 따뜻한 사랑
으로 접근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광, 맡겨준 영혼들, 그래서 예
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요소와 장엄성에 대해 그들은 항상 열려져 있었다. 그
들은 성도들에게 예수님께 와서 더 사랑하고 충실한 삶을 살고 그러한 삶을
실천하도록 도와주었다.

3. 예수 그리스도 중심

토머스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을 요약한 분이다”고 정의했다. 앰브
로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영혼이자 그 범위다”라고 말했다. 그들
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했다. 새무엘 러더포드는 “만일 이 세상의 모
든 낙원을 하나로 통합하여 모든 좋은 것을 한 곳에 모아 둔다 해도 그리스
도의 아름다움과 비교했을 때 아무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토마스 굿윈은
“천국에 가지만 그곳에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곳은 지옥과 같다”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사랑하고 싶다면 청교도의 글을 더 읽도록 하라.

4. 어떻게 역경을 성경적으로 이기는가를 강조

보통 “Happy New Year”라고 인사할 때 앞으로는 역경이 없기를 바라는 마
음으로 한다. 하지만 청교도는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라
고 인사했다. 이것은 어려움과 역경을 주실 때 이 역경을 통해 당신이 더 성
화되기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고난을 피하지 않고 선물로 여겼다. 고난은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
을 더 의존하고, 죄가 무엇인지 잘 가르쳐주고, 하나님께 인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들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당신에게로 더 잘 이끄신다고 말했다.
고난을 통해 그리스도의 모형을 잘 그려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청교도들은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이다. 그들은 이 고통으로 성화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5.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두 세계를 잘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제


하나는 도래하지 않은 세계, 다른 하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성경적으로 살
아가야 하는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미래에 초점을 두고 있는 눈은 바로 이
세상의 초점에 의해 제어를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원성이라
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여기서 성도가 어디로 여행하고 있는가? 그것
은 영원으로 가는 여행이다. 그 길에서의 모든 경험은 최종의 목적인 도피성

으로 가는데 방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 영원을 준비하
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배우는 제일 중요한 주제라 했
다.
특별히 모든 죄에 대해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들
은 하나님이 주신 하늘나라의 기쁨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묵상할 때 천국
은 그들이 선호했던 주제였다. 그들은 진정한 천국을 자기 집으로 삼았다.

6. 어떻게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성도의 행동을 해야 하는가

청교도들은 행동을 중시했다. 그들은 종교개혁의 모토 중 하나였던 “기도하
고 일하라”를 강조했다. 물론 기도를 제일 중시했다. 어떤 청교도는 친구에
게 말하기를 “내가 내일 할 일이 많은데, 그래서 오래 기도해야겠다”고 했
다. 청교도들에게 기도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존 번연은 “기도한 후에 더 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도
하기 전에는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기도한 후에는 행
동을 추구했다. 그들은 수동적 경건이 아닌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경건을 가
졌다. 그들은 모든 삶의 영역을 마음에 두고 살았으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

을 위해 살았다.

7. 성경적인 가족 생활

가정이 평안할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혼인 지침서로, 가정 지침서로 성경
을 삼았다.

8. 영적인 형제애

성도들간의 공유되는 친교를 말한다. 목사는 잘 조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다. 목회자들은 같은 본문으로 설교 준비를 하고 성도들과 서로 건설적 비
평을 하기도 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만나고 목회의 어려운 점을 나눴다.

9. 강단을 회복하는 것

위대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설교자 자신이 주님과 아주 좋은 관계
를 맺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어떻게 설교자로 살아
가야 하는가?”를 강조했다.

10. 오직 하나님께 영광

교회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모든 것을 언약의 관계로 이해했다. 또 한가
지 부가적으로 믿었던 것은 ‘교회 언약’, 즉 성도들의 교제를 이야기했
다. 혼인은 신부와 신랑의 언약의 관계로 이해했고, 언약과 모든 관계를 하
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이해했다. 이것이 삶의 목적이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내 생애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은 구원에 대해 확
신하던 그 순간이다. 하
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시간은 나의 모든 것을 잊
어버리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으시는 것이다”라고 했다.
삼위에서 한 분, 한 분을 강조했고 이러한 것을 근거로 이렇게 질문했다.
“내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떠한가? 성자와 성령의 관계에서 내가 성장하
고 있는가? 나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이는 지금 우리 교회에 적용할 수 있고 우리의 영성을 위해서도, 개인의 성
장을 위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정리 | 주재형 전도사

 

 

http://rpress.or.kr/xe/index.php?mid=planning_special&document_srl=5268




II. 율법의 세 가지 용도

출처:  신학자료실|2008/04/12  http://blog.paran.com/mokpojsk/25521052 

II. 율법의 세 가지 용도

 

                                                II. 율법의 세 가지 용도

 

 


                                                                                                                       권호덕 박사 (조직신학)

 

이제 우리는 율법의 세 가지 용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말하자면 율법은 인간을 위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가 하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율법의 시민적 용도에로 눈을 돌린다. 율법의 이 시민적 또는 정치적인 용도는 한 마디로 창조주인 동시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자든 아니면 이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 간에 모두에게 유익되게 적용될 수 그 무엇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멜란히톤과 루터 그리고 칼빈의 견해를 점검하면서 그 의미를 점검하려고 한다.


A. 정치적 또는 시민적 용도(usus politicus seu civilis legis)


  1. 멜란히톤은 율법의 제 1용도를 paedagogicus seu politicus usus(교육적 또는 정치적 용도) 또는 civilis usus(시민적 용도)로 표현했다.

하나님은 비록 중생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규정에 따라 살기를 원하심을 지적함으로써 그는 제1 용도를, 질서를 중요시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시각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율법은 가르치며 공포와 형벌로써 사회일원들을 규정 아래, 외적인 행위에 대한 모든 계명에 따라 지키도록 강요한다"라는 그의 발언과 통한다. 그러면 이런 질서가 유지되려면 어떤 조치가 있어야 될까? 멜란히톤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몸의 지체의 절제를 명시함으로써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 사회의 질서를 교란하는 요인임을 암시한다.

 

그는 여기서 세 가지를 지적했다.

⑴ 혀로서 하나님에 대하여 분노의 말을 해서는 안되며 동시에 이웃에게 거짓을 금하며,

⑵ 손을 남을 죽이고 남의 물건을 훔쳐서는 안되며,

⑶ 몸은 외적으로 비도덕적인 것을 행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멜란히톤의 이런 지적내용은 수직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해 바른 관계가 무너지고 수평적인 차원에서 이웃과의 관계가 무너질 때 사회질서가 무너짐을 암시한 것이다. 사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바로 이 두 가지 관계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숭배로 기울이자 이웃나라에 붙여 전쟁으로 그들의 삶의 여건을 파괴하는 것을 보았으며 또 우리는 역사를 통해 말 한 마디 때문에 또는 한 사람을 죽임을 통해 전쟁이 일어나는가 하면 정변이 일어난 것을 보았다. 멜란히톤이 여기 언급한 세 가지는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원인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면 사회의 질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기구가 필요할까? 멜란히톤은 정부가 이런 치리를 위해 법, 교훈, 형벌, 육체적인 제재 등을 제정케 했다고 지적함으로써 율법의 제 1용도가 일반은총과 연관됨을 보여준다. 일반은총이란 인간이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서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선물로 부여하신 내용을 말하는데 이를테면 태양, 물 등 자연적인 여건이나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 체제, 가정 등등 그리고 죄의 횡포를 막기 위해 주어진 것들이다. 그 중에 성도덕을 타락에 제동을 거는 성병도 여기에 속한다. 특별은총이란 인간을 구원하는데 동원된 하나님의 장치들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성경, 교회,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은혜 등등.

멜란히톤은 율법의 제 1용도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며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외적인 도덕을 지키는 것을 원하시며 그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재앙으로 벌주심을 강조함으로써 율법의 제 1용도의 주권자가 하나님임을 은연중에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는 이 제1용도가 죄용서함을 얻는데는 아무런 역할을 못함을 집고 넘어간다.

  그러면 멜란히톤은 율법의 제 1용도를 왜 paedagogicus usus(교육적 용도)로 표현하나? 그는 딤전 1:9에 근거하여 이 질문에 답한다: Lex est iniustis posita; id est, Deus coherceri vult etiam impius, ne externa delicta committant(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그는 여기서 갈 3:24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여 '율법은 그리스도 안의 교육자'(Lex est paedagogus in Christum)라고 대답함을 통해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의 기능을 율법의 제 1용도와 연관시킨다. 멜란히톤이 복음 곧 성령이 이를 통해 복음을 가르치고 듣는 것을 제 1용도에 포함시키는 것은 루터와 다른 점이다.


  2. 그러면 루터는 율법의 제 1용도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우리는 루터의 주장을 그의 갈 3:19 주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여기서 율법의 제 1용도를 civilis usus(시민적 용도)로 표현한다. 루터의 주안점은 "하나님은 시민법, 진실로 모든 법을 제정토록 하시어 죄악을 어거하게 하셨다. 따라서 모든 법은 죄를 방해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는 말 가운데 나타난다. 루터는 세상과 타락한 인간의 문제점을 깊이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이 악하고 미친 세상과 인간을 묶고 어거할 '밧줄'이나 '사슬' 등과 같은 용어를 반복해서 말한다. 또 율법의 제 1용도와 연관하여 루터의 발언 속에는 '어거하다'(cohercio)라는 단어가 매우 자주 나온다. 그러면 이 죄악을 어거하는 수단은 무엇인가? 루터는 "정부, 부모, 선생, 법, 수갑 그리고 모든 시민 규정"(Magistratus, Parentes, praeceptores, leges, vincula et omnes ordinationes civiles)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멜란히톤보다 더 구체적으로 이 수단을 지적한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루터가 이런 수단을 통해 죄악을 어거하는 것이 사단을 어거하는 것과 연관됨을 지적한 것이다. 루터는 자연 속에 사단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음과 또 이 세상이 사단의 지배를 받아 온갖 범죄를 저지르게 함을 주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루터는 멜란히톤보다 인간 문제를 더 깊이 간파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루터의 이런 인간관 곧 인간이 외부의 어떤 권세와 연관되어 있다는 인간관은 철학적인 인간관 내지 세속적인 인간관과 구별되는 것이다. 이 후자들은 인간은 단독적인 존재로서 판단하고 자의로 행동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루터의 이런 발언은 바울 신학의 중요한 면을 드러낸 것이다. 사단은 육신이 된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모두 육인 것이다. 육이란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가 단절되어 자기 마음대로, 인간의 이성의 추구함에 따라 사는 인간을 의미한다. 이런 육은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영광 또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육인 인간은 육신의 정욕에 따라 사는 자들을 의미한다. 성경은 사단이 이런 육인 인간을 지배하고 있음을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면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은 시민법을 설치하셨을까? 루터는 '공공의 평화, 만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또 복음이 전진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루터는 율법의 제 1용도가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이지만 칭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확실하게 말한다. 독일의 루터파 신학자인 Elert에 의하면 루터는 율법의 정치적 용도usus politicus(정치적 용도)가 악 그 자체 그리고 악한 인간을 붙들어 매어 이것들이 우리의 지상생활의 삶의 조건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게 하는데 있음을 지적함으로서 이 세상 법질서가 하나님의 통치 기관임을 지적함을 볼 수 있다. 멜란히톤이 율법의 제 1용도를 하나님의 통치의 시각으로 해석했다면 루터는 복음의 확산의 관점에서 해석함을 볼 수 있다.


  3. 칼빈은 루터나 멜란히톤이 말하는 율법의 시민적 용도(제 1용도)를 자기의 기독교 강요 초판은 물론 최종판에서도 두 번째 용도로 다룬다.

칼빈도 위의 두 사람의 경우처럼 그 출발점을 부패한 인간의 본성에 둔다. 이런 점에서 "율법의 정치적 용도의 이념은 실제적인 인간본성에 뿌리를 박고 있다"라고 칼빈을 해석한 Donald MacLeod의 말은 정확한 것이다. 칼빈은 자연인을 가리켜 "제멋대로 부패한 생각을 가슴속에 간직하는" "날 뛰는 정욕을 공공연하게 발산하고자 하는" "자기를 억제할수록 정열의 불길은 강하게 되며, 마음속이 뜨겁게 끓어오르는"(II,7,10) 존재 등으로 표현한다. 칼빈은 심지어 이런 인간은 율법 자체를 미워하며 입법자이신 하나님을 저주해서, 될 수만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을 없애려고 함을 주목한다(ibid.). 바로 이런 인간에게 율법이 '벌을 받으리라는 공포심을 일으켜' 죄를 억제한다는 것이다(II,7,10[1]). 또 "율법은 육의 미친 듯한 정욕, 버려두면 한정없이 뻗어 나가는 정욕을 억제하는 굴레와 같다"(II,7,10[10])라고 말함으로써 율법의 시민적 용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암시한다. 칼빈은 율법의 이러한 용도를 통해 야기된 의를 '억제된 또 강요된 의'(coacta expressaque iustitia)라고 표현한다(ibid[8]). 이로써 어느 정도 평화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율법의 시민적 또는 정치적 용도와 연관하여 칼빈은 멜란히톤과 연관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우선 이 용도의 근거를 멜란히톤 처럼 딤전 1:9-10에 두는 것이며(II,7,10[11])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을 이것과 연관시키는 것이다(II,7,11[1]). 칼빈은 율법의 시민적 용도가 자기 義사상을 지닌 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불행을 깨닫게 해서, 교만을 꺾고 겸손하게 만들어, 지금까지 자기에게 없는 줄을 몰랐던 것을 구하게 되도록 그들의 마음을 준비케 함을 지적하는 동시에 정욕이 날뛰는 인간에게 굴레를 쒸어 아직 중생하지 못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한 때까지 안전하게 보존하심을(ibid., [6]) 말하여 몽학선생으로서 율법의 의의를 지적했다. 이런 '교육적 용도'의 발언은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도 부르심을 받기 전에 또 성결의 영을 받기 전에(롬 1:4) 어리석은 육의 정욕대로 날뛰는 동안은 이런 감독을 받는 것이 유익하다'라는 말과 통한다. Inst II,7,10[9]). 라틴어 원전은 "여기 감독을 받는다는 말"을 paedagogia exerceri로 표현해서 교육의 의미를 드러낸다.

  칼빈의 주장을 요악한다면 율법이 공포심이나 수치심을 불러 일으켜서 인간의 야성을 조금이나마 꺾어서 사회를 평안하게 만드는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마침내 구원을 얻는 싯점에 도달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칼빈의 경우도 죄를 어거하는 수단으로서 율법의 용도가 드러난다.


   인간이 이 세상을 인간답게 살려고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질서일 것이다. 우리는 L.A. 폭동이나 전쟁을 통해 사회 질서가 파괴되었을 때 인간이 당하는 고통을 근래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절감한다. 필자는 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피난온 보스니아 도는 코소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눈 앞에서 부모 형제가 적에 의해 총살을 당하는가 하면 가옥이 불타고 갑작스러운 피난명령 때문에 빈털털이로 도망온 사실이나 피난 행령에 자녀들을 잃어버려 목이 쉬도록 울부짖던 일 등은 사회질서 체제가 무너졌을 때 당하는 고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 질서가 파괴된다는 것은 사실상 사망의 상태 속으로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생존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더더구나 자기 존재의의를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비로 범죄하고 타락했어도 정상적인 삷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4. 루터는 율법의 제 2용도를 legis usus Theologicus seu Spiritualis(율법의 신학적 또는 영적인 용도)로 표현했다.

루터는 모세 율법의 첫째 목적이 율법을 통해 죄가 성장하고, 특히 양심에, 번성하게 만드는데 있다고 본다. 루터에 의하면 바로 율법의 제 2 기능이 이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율법의 고유의 직분은 사람들에게 그의 죄, 맹목, 비참, 악함, 무지, 하나님을 미워하고 무시함, 사망, 지옥, 심판 그리고 잘 예비된 하나님의 진노를 계시하는데 있다". 루터는 멜란히톤처럼 제 2의 용도가 율법의 고유의 으뜸되는 직분으로 본다.


  위의 단순한 정의만으로는 루터의 의도하는 바를 다 이해할 수 없다. 루터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괴물이 있고 이 괴물을 쳐부수는 무기 내지 망치가 있는데 이 망치가 이 괴물을 어떻게 처치하는지 그 과정이 루터의 말하고자 하는 바의 내용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① 이 괴물은 무엇인가? ② 어떤 점에서 이 괴물은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것인가? ③ 이 망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④ 이 망치는 그 기능을 어떻게 발휘하는가? ⑤그 결과는 무엇인가? 등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 될 것이다.


-① 이 괴물은 무엇인가?:

루터는 이 괴물을 외식자들 또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궤변자들과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는 義(의)나 자기 자신의 義(의)의 외람됨에 따라 사는 모든 자들을 가리켰다. 루터는 이런 자들을 좀 심하게는 "자기 자신의 의의 외람됨에 술취한 자기 義(의)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한 마디로 이 세상에서 가장 널리 퍼져있는 페스트병과 같은 외식자들이다. 여기에는 물론 일반자연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해당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율법주의자들이나 의식주의자들 그리고 행위의 의에 따라 사는 승려들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와 연관하여 루터는 매우 주목할만한 발언을 한다. 즉 이런 괴물들은 결고 율법의 제 2용도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外飾하는 자들이 뻔뻔스러운 이유는 율법의 제 2용도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현대교회 내에 외식자들이 많다는 것은 현대 교회가 율법의 제 2용도에 대한 지도자들의 무지로 그것을 성도들에게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② 어떤 점에서 이 괴물은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것인가?:

루터는 이 괴물들의 이성이 이런 외람된 인간적인 義(의)사상으로 오만해져서 이 의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공상함을 지적했다. 또 이들은 바리새인들의 경우처럼 외적인 죄는 범하지 않지만 마귀들에게 사로잡힌 체, 자신의 선행에 의존하며 자기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맹세함을 지적했다. 루터는 또 이런 자들 속에 자기 義(의)사상이 남아 있는 한, 매우 교만하고, 자기를 신뢰하며, 잘난 채 하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동시에 은혜와 자비를 멸시하며 약속과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하다고 비판했다. 루터는 심지어 이런 인간을 사나운 짐승(bestia)이라 부른다. 루터는 바로 이런 사람들의 마음과 오성 속에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와 죄사함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본다.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거대하고 단단한 암벽과 같은 자기 義사상에 둘러싸여 하나님의 사역이 임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루터는 자기 義사상을 거대하고 소름끼치는 괴물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은 또 거역적이며 고집이 세며 목이 곧은 짐승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이런 자들은 자기 스스로 성(城)을 쌓고 그 성 속에서 하나님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겠다는 자율성의 인간이라는 말이다. 사실 성경이 정죄하고 타도하는 인간은 바로 이런 육신(싸르크스)인 인간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루터가 율법이 저주하는 부패한 인간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했다고 볼 수 있다.


-③ 이 망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마디로 그것은 바로 율법인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께서 이 괴물과 같은 짐승을 공격하기 위해 어떤 헤라클레스와 같은 것을 파견하신 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말이다. 루터는 율법이 견고한 바위와 같은 이 '옛 자아'를 파괴하는 것을 예레미아의 말을 이용해서 매우 정확하게 표현했다. "내 말이 불같이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셔뜨리는 방망이 같이 아니하냐"(렘 23:29) 루터에 의하면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거대하고 강력한 망치인데 하나님께서는 이 망치로 자기義-사고방식을 파괴하신다는 말이다. 루터는 견고한 성채와 같은 외식자들의 자아의 城을 파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율법의 제 2용도라고 한다. 루터는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이런 외식자들을 죽이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루터에 의하면 이들을 죽이시는 이유는 거짓선행과 자기 의(義)사상을 가진 자들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며 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내지 경외가 없는 곳에는 은혜와 생명에 대한 갈증도 없는 법이다고 한다. 루터가 옛사람의 자아의 城이 이렇게 견고하다는 사실을 매우 깊이 알았다는 점에서 그는 종교개혁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운동은 사실상 인간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인간을 회복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다.


-④ 이 망치는 그 기능을 어떻게 발휘하는가?:

루터는 율법이 죄인들에게 공포와 전율이 엄습하도록 함을 통해 자기의 비참함을 깨닫게 만드고 겸손하게 만든다고 했다. 루터는 마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번개와 천둥과 나팔소리와 벼락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두렵게 만들어 자기 義사상이라는 짐승을 불태우고 분쇄하는 것 같이 율법이 우리에게 그렇게 임한다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의 죄를 밝히며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절망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나 의 그리고 생명이 아니라 죄, 사망, 하나님 앞에서 정죄받음 우리 모습 그리고 지옥을 보여주고 밝히는 불빛과 같은 것이다. 요컨대 루터의 경우 율법의 제 2용도는 인간의 죄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분노의 사역을 수행하며, 죄를 고발하고, 공포에 떨게 만들며, 인간의 마음을 절망의 지점까지 가도록 만드는데 그 의의가 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MacLeod가 율법의 직분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동사로 표현한 것은 어울린다: accuse, terrify, condemn.


-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루터는 우선 율법의 제 2의 용도를 통해 시민적인 범죄에 제동이 걸린다고 본다. 영적이지 못하며 미개한 사람들의 방종을 율법의 두려움으로 어거한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루터의 경우 제 2용도는 제 1용도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루터에게 던질 수 있는 질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 없는 사람에게 이런 주장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시민 생활의 질서를 유지하는데 제 2용도가 도우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은 영적인 범죄를 고발하기 때문에 인간은 절망에 빠진 나머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율법의 제 2용도는, 루터의 경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에 접근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루터는 그 이유를 성경의 신관을 언급하여 설명한다. 즉 성경의 하나님은 절망에 빠져 겸손하게 된 죄인을 높이시는 분으로서 마침내 죄인을 칭의하시고 구원하시는 분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의 제 2용도가 칭의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임을 본다. 사실 루터의 경우 율법의 용도는 세 가지 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칭의론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다.


  루터의 '율법의 제 2용도론'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열거한 멜란히톤의 주장과는 달리 인죄론 중심적이다. 루터의 '율법의 제 2용도'에 대한 내용은 율법의 공포에 질려 살다가 마침내 구원의 은총을 맛본그 자신의 체험이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성경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육의 문제를 공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루터가 '율법의 제 2용도'를 율법의 으뜸가는 기능 내지 고유한 기능으로 본 것도 그는 이 속에서 성경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총체적으로 조직화 된 것을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루터의 율법의 제 2용도론은 현대인들의 값싼 은혜를 매우 강력하게 비판한 본 회퍼를 생각나게 한다. 왜 이들은 값싼 은혜론에 빠지게 되었을까? 이는 방망이처럼 두둘기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실존이 무너져 보지 않는 사람들은 죄의 심각성과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의 귀중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타락하는 현대 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인 것 같다. 또 루터가 율법의 제 2용도를 신자들과 밀접하게 연관시킨다는 점에서 현대 교회에 경종을 주는 것이다. 루터에 의하면 제 2용도는 기독인들에게 그들의 죄를 보여주며 회개를 촉구하고 구원을 받은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그 내용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이런 점에서 루터의 경우 율법의 제 2용도는 제 3용도와 밀착되어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그 동안 죄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가르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 기독인들이 이해하는 죄개념은 무속종교가 말하는 죄 또는 일반 자연종교가 말하는 죄 개념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또 이런 죄에 대해 하나님의 분노의 반응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가르치는 일에 등한히 한 것 같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율법의 제 2용도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B. 신학적 용도(usus theologicus legis)

       

1. 멜란히톤은 '율법의 제 2용도'를 proprium legis divinae et praecipuum(하나님의 율법의 고유의 특유의 용도) 또는 usus Legis divinae et praecipuus(하나님의 율법의 특유힌 용도)로 표현했다.

말하자면 그는 율법의 제 2용도를 율법의 가장 중요한 용도로 여긴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는 루터와 같은 입장에 있다. 그러면 멜란히톤이 말하는 율법의 제 2용도의 기능은 무엇인가? 그는 '부패한 본성 속에 있는 모든 인간의 죄를 보여주고, 고발하며, 공포에 질리게 하고 또 정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멜란히톤은 이것을 끝나지 않고 이 용도가 어떻게 수행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한다.

  사실 율법의 제 2용도에 대한 멜란히톤의 발언은 救贖史(구속사) 전체를 요약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분노, 죄에 대한 심판, 원복음, 그리스도의 구속, 설교' 등이다. 이 중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다. 멜란히톤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는 참지 못하고 그 분노를 쏟아 부으심을 먼저 열거한다: 사 38:13; 롬 4:15; 신 4:24; 시 58:11; 시 62:12; 시 50:3,6; 나 1:2; 습 1:12; 욥 9:2; 전 8:12,13; 전 12:13,14.

 

  멜란히톤은 이 하나님의 공의가 죄인에게 마치 화살이 과녁을 꽂듯이 죄인을 공격함을 묘사한다. "하나님은 우리 죄악의 마음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자기의 율법을 사용한다". 그러면 이런 율법이 죄인에게 전달되는 것은 무엇을 통해서인가? 멜란히톤은 여기서 설교의 직분을 언급한다. 그는 이 설교의 기원을 에덴 동산에서 범죄한 첫 인류에게 원복음을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아들에게 둔다. 그 선포 내용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죄에 대한 사망의 언도(창 3:13)와 이 사망에서 구원(창 3:15)이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설교의 직분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또 그가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창조하여 얼마나 고귀하게 취급했으며, 인간의 본성이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여 하나님을 떠나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으며 죄 안에서 더 이상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음 등에 대한 것이다.  멜란히톤은 이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한다: 죄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

 

  만일 멜란히톤이 율법의 내용을 이것으로만 끝냈다면 인간에게는 비극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 위에 우리에게 퍼부을 자기의 진노를 퍼부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지혜의 속성을 언급한다. 멜란히톤이 lex moralis(도덕법)를 하나님 자신 안에 있는 영원하고 불변한 지혜와 의로움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멜란히톤이 설교의 직분을 통해 율법이 선포될 때 한편으로는 율법의 제 2용도가 책망하는 기능을 발휘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이 전해짐을 지적한 것은 도덕법이 지닌 이런 내용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스도 자신도 십계명을 설교하고 해석하면서 그 당시 사람들의 죄악을 책망했지만 사도들도 십계명을 설교함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맹목적이고 거짓된 안전감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멜란히톤은 이 두 가지 내용을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으로 요약했다: "(Luk 24:47) (그의 이름으로 회개와 죄사함을 모든 이방인에게 전파하라, 다른 사본은 죄사함을 위한 회개를 그의 이름으로 모든 이방인에게 전파하라)". 즉 이것은 책망인 동시에 위로의 복음이다.

  그러면 멜란히톤은 율법의 이런 책망과 고발 정죄의 기능의 목적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그는 "하나님의 심판과 마음의 이런 슬픔을 잘 느낀 사람은 누구나 다 그것이,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를 다시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죽음임을 안다"라고 말함으로써 율법의 제 2용도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을 암시했다. (사실 한국교회가 알고 있는 율법은 바로 이 제 2용도인 것이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멜란히톤이 율법의 제 2용도와 더불어 성령의 사역을 결부시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그가 지적한 성령의 사역은 율법을 거울처럼 이용해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무능을 보게 만드는 사역이 아니고 죄인을 책망하는 사역이다. 그리고 율법의 제 2용도와 더불어 중생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로 선행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십계명을 설교할 필요가 없다는 재세례파(Anabaptist)를 언급했다는 점이다. 루터가 이 재세례파들 때문에 율법의 제 3용도를 고려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특이한 것이다. 멜란히톤이 루터와 더불어 율법의 제 2 용도를 최고의 용도로 여긴 것은 바로 여기에 복음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멜란히톤에 의하면 이 율법은 하나님의 분노의 책망인 동시에 위로인 것이다.


3. 칼빈은 율법의 세 가지 용도 가운데 이 '신학적 용도'를 첫 번째로 논한다(II,7,6-9).

칼빈은 여기서 이 율법의 용도의 명칭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는 모세 오경주석에서 usus theologicus(신학적 용도)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칼빈은 전형적인 명칭인 usus elenchticus(책망의 용도)를 기독교 강요는 물론 제네바 신앙교육서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칼빈은 갈라디아 주석에서 '교육적 용도' (paedagogicus usus)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는다.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율법을 파이다고스 (교육자)라 표시함으로써 '교육적 용도'를 암시할 뿐이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이 '교육자'를 '몽학선생'로 표현하고 있다.


  칼빈이 멜란히톤이나 루터의 경우 두 번째 로 다루던 내용을 왜 첫 번째로 언급하는지 우리는 직접적인 근거를 알 수 없다. 짐작컨대 기독교 강요의 내용 목차 순서의 논리적인 흐름 때문일 것이다. 이것도 우리의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칼빈은 '율법의 신학적 용도'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의 義 --즉 하나님이 받아 주시는 유일한 義--를 밝힘을 통해, 우리 각 사람의 불의를 경고하며, 알리며, 책하며, 결국 정죄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세오경 주석에서 율법이 분노의 사역을 수행하며 우리의 불의를 들춤을 통해 사망을 가져온다고 율법의 신학적 용도를 적절하게 요약했다. 칼빈 전문가 Michael Horton은 칼빈의 말을 적절하게 잘 인용했다: "율법의 생명은 인간의 사망이다.……… 율법이 그 자신을 우리 앞에 나타나자마자 하나님의 저주가 우리 머리 위에 떨어진다. ……… 이것이 율법의 신학적인 용도이다"(모세오경 1권과 3권).


  그러면 칼빈은 율법이 신학적 용도를 어떻게 수행한다고 보는가? 한 마디로 그는 루터와 비슷한 構圖로 율법이 신학적 용도를 수행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차이점은 표현방식이다. 루터의 표현이 공격의 대상에 원자탄을 떨어뜨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 칼빈은 상당히 온순하면서도 치밀하게 공격의 대상의 목을 죄는 법학자적인 징후를 드러낸다. 즉 그는 ① 율법의 공격 대상인 인간의 문제를 설명한 다음 ② 이런 인간에게 율법이 어떻게 간섭하며 ③ 그 결과는 무엇인가 하는 순서로 열거한다.


⑴ 칼빈은 율법의 공격대상으로서 인간의 문제점 세 가지를 지적한다(Inst II,7,6).

그것은 교만, 자만 그리고 탐심이다. 칼빈에 의하면 교만(prius)은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 정신이 마비되어 자기의 능력에 미친 나머지 우쭐해 있으며 자기의 판단기준으로 모든 것을 비판하는 상태를 말한다.  칼빈은 율법의 제 2용도의 공격 대상을, 후자 곧 모세오경 주석에서는 "인간은 헛된 자만심으로 부풀어 있으며 의롭게 사는 공로를 자기에게 돌린다"라고 묘사했는데 교만과 자만을 말한 것이다. 그 다음 자만(superbia)은 위선을 의라고 가장하고 가짜인 여러 가지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을 반역하며(Inst II,7,6[10]) 자신은 죄악에 오염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상태를 말한다. 세 번 째는 탐욕의 죄인데 칼빈은 이 탐욕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그 무엇으로 표현한다. 칼빈이 묘사한 인간의 이런 상태는 하나님에 대해 전혀 의존적이 되지 못하고 자율성적인 존재로서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바로 육이다. 사실 루터가 공략했던 그 대상도 바로 육인 것이다. 루터가 묘사한 인간을 고집스러움으로 거역하는 거친 존재라면 칼빈이 묘사한 인간은 교묘하게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간을 말한다.


⑵ 그러면 율법은 이런 인간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

칼빈은 루터처럼 망치로 분쇄하는 그런 묘사를 하지 않고 율법이 거울의 역할을 수행하여 인간의 마음 속에 변화가 일어나는 듯이 묘사한다. 우선 칼빈은 우리가 거울에서처럼 율법을 통해 우리의 무력함(impotentiam)과 무력함에서 생기는 죄악(iniquitatem)을 그리고 결국은 그 두 가지에서 오는 저주(maledictionem)를 본다고 한다. (칼빈은 주석에서 부패한 인간의 특징이 '연약함'과 '무능'(아두나미아)로 본다.) 율법은 이렇게 개입하여 죄를 크게 만든다(롬 5:20). 즉 인간은 율법을 통해 자기의 죄인됨을 깨닫게 되고 또 양심이 자기의 죄를 분명히 깨닫게 되면 죄가 더욱 커진다고 한다. 이는 율법의 개입과 더불어 입법자에 대한 완고한 불복종이 첨가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율법은 죄인을 멸망시키기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무장시킨다. 율법이 이렇게 인간을 압박하면 두 가지 방향으로 결과가 나타난다.


⑶ 그 결과는 무엇인가?

칼빈은 악인들의 경우 그들의 육적이고 부패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의 영적인 율법과 결렬하게 싸우며, 그 징계를 받아도 결코 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마음이 완강하기 때문에 공포심을 일으키며 율법은 죄와 죽음의 원인으로 변화는 결과를 초래한다(II,7,7[13])고 지적했다. 칼빈은 "적합한 경청자를 만나면 구원을 주기로 계획된 율법이" 이들에게는 죽음의 원인이 됨을 지적했는데 그 이유를 여기서는 설명하지는 않는다. 즉 율법이 우리 앞에 명백히 지시하는 복된 삶을 우리가 누리지 못한 것은 우리 자신의 사악과 부패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우리가 '사망의 상태' 속에 있기 때문에 율법이 제시한 복을 누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 다음 율법은 중생한 자에게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칼빈은 이들이 율법의 말씀을 들으면 또는 율법이 그들에게 개입하면 "자기의 힘에 대해 어리석은 견해를 버리고 자기는 다만 하나님의 손이 받들어 주시기 때문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벗은 몸과 빈손으로 하나님의 자비에 피난해서 완전히 그 안에서 쉬며, 그 안에 깊이 숨으며, 의와 공로를 얻기 위해서 그 자비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칼빈이 여기서 묘사한 것은 사실 믿음의 사람이다. 우리는 여기서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에게는 온건하게 대함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칼빈은 "진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 자비는 그리스도안에서 제공된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이 가련하고 무가치한 우리 죄인들을 대해서까지 은총과 인자로 빛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이라는 상태에 있으면 율법이 부드럽게 대한다는 말이다. 칼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칼빈은 이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찬양하는 데까지 인도함을 지적한다. "주여, 행동하소서, 자비하신 주여, 행동하소서, 완수할 수 없는 일을 명령하소서, 아니, 당신의 은총을 받아야만 할 수 있는 일을 명령하소서, 사랍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으므로, 모든 입이 막히고 아무도 자기를 큰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이 작은 자가 되며 온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알게 하소서"(II,7,9,7-8) 


  우리는 다음과 같이 칼빈이 율법의 신학적 용도를 요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위대한 체하는 우리를 작게 만들며, 우리 자신에게는 의를 얻을 힘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며, 무력하고 무가치하고 빈궁한 우리가 은총으로 피난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후에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한다" 율법의 신학적 용도에 대한 칼빈의 이런 발언은 그가 제빨리 성화론으로 나아가려는 인상을 준다. 만일 Beeke가 말한대로, 칼빈의 경우, 율법의 신학적인 용도가 자기 義사상과 불경건한 자기 義사상이 다시 일어서지 않도록 예방해 주며 매일 우리의 성화가 빈약함을 드러내 주고 우리 속에 육과 영 사이의 싸움을 인식시켜 준다면 이 용도는 율법의 제 3용도 내지 성화론에 밀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 율법의 공격의 대상인 육을 말하면서 그것과 긴장 관계에 놓인 성령을 언급한 것은 성령의 신학자로서 칼빈의 특징을 드러낸다고 하겠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칭의에 관심을 집중시킨 루터와 구별되는 것이다.


  위의 세 개혁자들은 율법이 구원을 얻는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함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동일한 신학적 선상에 있다. 이들은 인간의 육의 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모두가 율법의 제 2용도를 언급하면서 교회 내에 있는 외식자들의 문제를 언급한 점이다. 이 사실은 현대교회가 주목해야 할 점이다. 겉으로는 기독인인데 그 삶의 방식이 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면 육신인 외식자인 것이다. 이것은 마음 구조에 변화를 받지 못했다는 말인 동시에 율법의 신학적인 용도의 심각한 공격을 경험하지 못하고 단순한 종교인으로 산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외식자 때문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는 것은 물론 선교적인 차원에서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외식자 문제는 일차적으로는 이런 교인을 길러낸 목회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나아가 이런 목회자를 배출한 신학교가 책임을 져야 하며 동시에 신학교에 진리가 자유롭게 연구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교회 지도자들의 책임이 큰 것이다. 이데올로기 신학에 갇히어 종교개혁자들의 발언까지도 자유주의신학을 내어 몰아 세우는 풍토가 되었다면 이미 그 교단은 이단적인 기질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왜곡된 보수주의 신학자들을 옹호하는 교회지도자들 속에서 이런 위험을 보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종교개혁신학을 견지하려면 적어도 신학교 내에 정직한 신학 작업이 육성되어야 할 것이다. 왜곡된 보수주의 신학자들의 말만 믿고 그들의 견해에 추종하다가 교단은 생명이 없는 카톨릭화 될 것이고 나아가 세상사람들의 발에 밟힐 것이다. 율법의 신학적인 용도를 배우기 위해 성경의 죄개념을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이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보인다. 만일 율법의 용도가 둘째로 끝나버렸다면 기독인의 삶은 진퇴양란에 빠져 고민할 것이다. 이제 기독인의 삶에 새로운 힘을 불어 넣는 제 3용도로 들어간다.

출처: 생명수 쉼터/한아름

'개혁주의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혁파 교회의 고민과 진로  (0) 2013.01.26
청교도의 신학  (0) 2013.01.18
개혁주의 교의학  (0) 2013.01.02
오늘날도 사도.선지자가 존재하는가?  (0) 2012.12.29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0) 2012.12.24

 

개혁주의 교의학(헤르만 바빙크)

 본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종교개혁 시대 이후부터 19세기에 이르기 까지 개혁주의의 특성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21세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의 개혁주의는 역사적인 전통도 없이 교리적으로 난무한 개혁주의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본 책을 정리하면서 역사적으로 바른 개혁주의적인 특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 싶다. 

 예정론에 대한 고백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치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이미 독일 종교개혁과 스위스 종교개혁은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1529년 Marburg에서 평화 조인되었으나 다만 서류 위에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츠빙글리가 죽고 칼빈이 루터의 존경과 성만찬 교리에 있어서 그에게 가까운 접근에도 츠빙글리의 편에 서 있었을 때, 루터주의 개신교와 개혁주의 개신교 사이의 차이가 점점 더 커져 있었으며 그것은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다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새시대가 되어 둘 사이의 특징적인 구별에 대한 역사와 연구들이 거기에 원리에서부터 기초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있음을 명백히 증명하였다. 저자가 언급한 이런 차이점을 분명하게 구분하게 될 때 보다 엄밀한 개혁주의 노선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바르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들의 중요한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되기도 한다. 개혁주의자는 신론적이며, 역사 안에 서서 머물지 아니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결정에까지 끌어 올라가며, 선택이 교회의 핵심이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이루시느냐?"을 언급한다. 이것은 또한 이교주의, 우상에 반대하는 싸움이요,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결정에 되돌리고 물의 원인을 추적하며 앞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유익되게 하기 전에는 쉬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터주의자는 인간론적이며, 구원사의 중심에서 취하고 더 깊이 하나님의 성정에까지 꿰뚫고 들어감을 필요치 않으며, 칭의가 교회의 항존적이고 항상 출발하는 조항이고, 이들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인간이 축복에 이르느냐?"는 것이다. 또한 유대주의, 행위 거룩에 반대하는 싸움이요, 현상에 만족하고 그가 신앙을 통하여 부여받은 축복에 안락하는데 있다.

 

이와 같은 루터주의와 개혁주의의 차이점은 작은 차이가 아니라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됨을 배울수 있다. "인간중심"인가 ? 아니면 "하나님" 중심인 ? 가의 중요한 차이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신자의 삶에 있어서도 분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즉 개혁주의는 위의 사상에 입각해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표로 우주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개혁주의 교의학에 있어서 중요한 출발점은 쯔빙글리와 더불어 시작한다는 것이다. 쯔빙글리의 근본사상은 다음과 같다. 신학적 출발, 인간의 완전한 의존성, 예정, 그리스도의 인성, 교회와 성례의 영적인 견해, 종교 개혁의 윤리적 정치적 의미등이 그에게 이미 현존하였다. 이런 그의 신학의 약점은 그의 사상의 판명성과 명료성이 깊이에 있어서 결여를 메꿀 수 없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하나도 완전하고 종합된 체계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개혁주의 교의학은 쯔빙글리를 시작으로 이것을 체계화시킨 칼빈으로 넘어간다. 칼빈은 모든 철학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이념들을 청산하고 가능한 한 엄밀하게 성경과 결합시켰으며, 그리스도적인 종교의 객관성,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성경, 교회와 성례에 관한 객관성을 주장하였고 따라서 강하게 재세례파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다. 육과 영 사이의 츠빙글리의 대립성과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의 루터의 대립을 극복하였고 단 하나의 견해에도 금욕적인 점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적인 삶과 결합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칼빈은 계속해서 성만찬 이론과 예정론을 독자적 입장에서 끌어들였다. 이후에 베른은 제네바, 취리히, 바젤, 샤펜하우젠의 입장과 똑같이 칼빈과 관계하고 있다. 이 16세기 스위스의 교의학은 전체적으로 칼빈의 정신안에서 Beza의 신학논총(Tractationes theol 1570), Petrus Martyr Vermiglius의 보편 교의논제들(Loci communes, 1576), Muscullus의 보편 교의논제들(Loci comm. 1560, 1567), Aretius의 신학문제들(Theol. problemata 1579)에 의해 다루어 졌다.

 

이러한 칼빈의 신학은 스위스로부터 프랑스로 확장되었다. 1536년 "기독교 강요"를 한 서문을 가지고 프란시스 1세에게 헌정하였고 프랑스 종교 개혁을 목적하기도 했다.

 

이 세기에 뛰어난 프랑스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다.

 

Chandieu 1591-->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de verbo Dei), 그리스도의 제사직에 관해서(de Christi sacerdotio), 속죄에 관해서(de remiddione peccaorum)

 

Marlorat 1562--> Feugueraeus에 의해 1574년에 편집된 사실과 교의들의 보편논제들로 엮은 성경보전(Thesaurus S.Scripturae in locos comm. rerumet dogmatum)

 

du Plessis Mornay 1623--> 교회론 논고(Trait de I'Eglise 1578), 기독교 진리에 관한 논고(Trait de la verite de la religion, 1581), 부패의 신비 다시 말하면 교황주의 역사(Le myste re d'iniquite c' est a dire lhistoire de la papaute 1611)

 

영국과 스코틀랜드에서도 칼빈주의가 들어갔다. 거기에서 그것은 로마 카톨릭과의 투쟁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를 통하여 기도되었던 종교개혁과의 갈등이었다. 메리 여왕 아래서 대륙으로 피신 온 종교개혁 성향의 사람들이 여기에 와서 칼빈, 불링거, 마르티르 등의 교리와 친밀하게 되었고 그들이 돌아가자마자 영국 종교개혁에 고심하였다. 교리에 있어서 청교도들과 영국 국교도들은 근원적으로 하나인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영국 국회의 신학은 왕정회복의 17세기 초기까지에는 칼빈주의 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대학들에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가르쳤다.

 

영국의 개혁주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장로교회적 형태의 케임부리지 교수 Thomas Cartwight가 1570년에 해임되고 1603년에 사거였으며, William Perkins1602, William Whitaker1595 가 엘리자베스 자문관인 Whitgift에게 제출하였던 람베스 9개항안에 예정론을 고집하고자 했으나 고위성직적이고 펠라기우스적인 견해들이 승리하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칼빈주의가 죤 낙스(John Knox1572)와 죤 크레이그 (John Craig1600)를 통하여 강하게 영향을 끼쳤고, 궁극적으로 1581년 왕을 통하여서도 공인되였다.

 

독일에서도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은 적지않게 칼빈에게 의존적이다. 그 신학적 특색은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Pareus, Ursinus, Olevianus, Hyperius, Boquinus, a Lasco의 신학은 많은 점들에서 자신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였다. 또한 Prof. Gooszen교수의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에 대한 구 연구서들(1890,1893)과 Dr. Van‘t Hooft의 불링거의 신학(De Theol. van Heinrich Bullinger, 1888)을 통하여 취리히의 츠빙글리의 계승자로부터 그것에 관한 결론이 아주 잘 내려졌다. 하이델베르그에는 Ursinus, Olevianus 곁에 엄격한 칼빈주의자인 Zanchius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미 16세기 말쯤에 개혁주의 신학내에 스콜라주의적인 방법이 생겼다. 우리가 칼빈, 히페리우스, 쏘시니우스에게서 직면하는 대로 교의들의 단순한 취급은 계속해서 불만적이었다. 이 시대의 개혁교회에서는 교의학이 학술적인 방식으로 취급되었다.

 

17세기와서 영국에서는 고()교회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확실한 지반을 얻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감독주의를 옹호하면서 칼빈주의에 머물렀던 많은 신학자들이 영국국교회 안에 있었다.

 

영국에서는 국교 반대자들 사이에서든 영국 국교회주의자들 사이에서든 아르미니우스주의는 큰 영향을 끼쳤다. 그와 더불어서 프랑스에서 아미랄드주의가 영국에 전해졌다. 두 사상은 종종 함께 흐르며 중요하고 지루한 논쟁에 동기를 주었던 신 율법주의의 이론에 있어서 그들 사이에 연합을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일반적인 것에 관련하여 영국신학의 중심점은 교의적인 연구에 있지 않고, 성서적이고 교회사적이며 교부학적이고 고고학적인 실제적인 연구에 있다. 저절로 정치적이고 교회적인 관계들이 거기에 동기를 부여하였다. 비교적 좀더 풍부하고 강한 교의적인 생명력이 스코틀랜드에 있었다. 여기에서는 칼빈주의가 적절한 터를 발견하였고 엄밀하고 긍정적인 정신안에서 좀더 발전되었다.

 

이런 개혁 교의학의 긍정적인 발전은 확실한 의미에서 도르트회의 결정들(1618-19)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1646), 스위스 공동고백(1675), 발크 신앙조항들(1693)에서 그 절정과 동시에 궁극점에 도달 하였다.

 

이와 같은 개혁주의적 형태들은 후대에 칼빈으로 시작해서 17세기 까지의 중요한 개혁주의적 독특성을 결정하게 해주는 중요한 신학적 발전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위와 같은 중요한 신학적 발전 뿐만 아니라 반대적으로도 17세기에 이미 개혁주의 신학을 훼파하고 몰락시킨 원리들이 있었다.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주의 종교개혁과 칼빈주의 종교개혁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문주의자들 즉 윤리 종교적 원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성적이고 심미적인 원리에 의해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신학에 저항하였고 그로 인하여 헬라 로마문화의 부흥에서 인간의 조화적인 발전을 위한 한 방도를 보았던 자들 이외에도 다른 두 가지 분파들이 일어났다. 즉 그들은 바로 스위스, 네델란드, 영국, 미국의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에 모든 시대를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재세례바들과 소키누스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신비적이고 합리적인 요소들을 종교와 신학 안에 현실화시켰다. 소키누스주의는 자연과 은혜를 궁극적으로 완전히 결합하였던 모순대당 관계로 바꾸었다. 재세례파들도 같은 근본사상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즉 자연적인 것과 초 자연적인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은 서로 조화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소키누스주의는 자연을 위해서 은혜를 버렸을 지라도 , 재세례파는 자연을 은혜에 희생시켰다. 이런 정서적인 경향들은 철학적 영역에서 데카르트주의와 결합하여 원리에 있어서 모든 권위와 객관성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전 우주를 인식이론적으로 주관과 그의 생각으로부터 세워 보려고 하였다.

 

여기에 방법에 있어서 참으로 데카르트주의에 가까웠던 Coccejus주의가 일어났는데 그는 츠빙글리, 불링거, 올레비아누스 등에게서 일어났고, 네덜란드에서도 스네카누스, 고마루스, 그렐카티우스, 클로펜부르그와 다른 사람들에게서 일어 났으며, 언약론이 아니라 언약론주의적인 방법이었다. 그의 언약에 관한 교리대요( Summa doctrinae de foedere et testamento,1648)는 성경역사적인 교의학이었고 성경을 원리로 뿐만 아니라 교의학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며 성경신학을 전통신학과 대조시켰고 언약을 작정에, 역사를 이념에, 인간론적인 방법을 신학적인 방법에 대조시켰다. 이 방법의 위험은 그것이 영원하고 변치아니하는 실체(substantia foederis)를 시간적이고 역사적인 것(oeconimia foederis)의 흐름 안에 떨어뜨리고, 되어지는 것의 이념을 하나님 자신에게로 전가시키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극복하려고 하기도 했다.

 

스콜라주의는 자신의 시대를 갖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번성은 지나갔다. 코케이우스주의자들이 대부분의 교수직 자리를 차지하였다. 1720년 위트레히트에 람페의 등용은 코케이스주의자들이 승리였다.

 

영국에서는 비국교도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장로파들은 웨스트민스터회의 이후, 수에서뿐만 아니라 영향에 있어서 몰락해 갔고, 이미 16세기에 Robert Browne, Johnson, Ainsworth와 John Robinson을 통하여 포용되어졌으며 시민전쟁 동안에 그 힘과 수에 있어서 증가하였던 독립파를 위한 여지를 남겨야 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여전히 장로파들이 다수를 차지하였고, 단지 독립파들은 소수의 분할을 얻었다.

 

침례교 역시 영국에서 이미 16세기에 드물게 일어 났었으나 1633년 이래 처음 자신의 교회들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677년에 침례교도들은 교회 정치와 세례에 있어서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사보이 선언으로부터 벗어난 신앙고백서를 내었다. 이 고백서에 기초하여 1693년 William Collins에 의해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한 요리문답이 제시되었다.

 

칼빈주의적인 침례주의자들 중에는 일반적인 침례교도들과 아르미니우스주의 혹은 자유의지 침례교도들이 구별되고 있기도 하다.

 

아르미니우스적이고 침례교적이며 천년주의적이고 반율법주의적이며 자유사상적인 감정들조차도 출구를 찾았고 종교적 개인주의가 지배하고 퀘이커교 안에서 이것은 그 절정에 도달하였다. 전통과 고백과 교회연합으로부터 해방이 신자마다 자기 자신 위에 기초되어 있고, 성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며, 그 자신 안에, 영 안에, 내적인 빛 안에 그의 종교적 생활과 지식의 원천을 소유하는 것에서 성취되었다. 모든 객관적인 것 즉 성경, 그리스도, 교회, 직임, 성레는 제외시 되었다. 결국 이런 것은 이신론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위의 영향으로 대략 1750년에는 개혁주의 신학의 몰락은 어디에서나 확인되었다. 이미 전 시대에 현존하였던 결합되지 않은 요소들은 종결되었고 교의학을 손상시켰다. 네덜란드에서 코케이우스주의가 승리를 거둔 이후 1740년부터 1770년까지는 관용의 시기가 왔다. 진리의 힘은 거절되었고 사람들은 신앙 고백으로부터 성경으로 되돌아갔다. 원죄책, 행위언약, 특별한 구속 등과 같은 특별한 개혁주의 교리 내용들은 사라졌다. 다양한 항변주의적이고 소키누스주의의 오류들이 아름다운 형태와 성경적인 명목하에 등장하였다. 개혁주의 종교의 고백자들은 기껏해야 기존의 것들 안에 안주하였으나 더 이상 생명력이 없었고 소리를 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옛날 교의학은 역사적 탐구의 한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1770년 이래 신신학(neologie)의 영향은 영국 이신론과 프랑스의 불신앙, 독일의 합리주의가 수확의 터전을 발견하였다. 혁명은 개념들에 있어서 전면적인 회귀였다. 정통주의는 합리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온건한 성서적 초자연주의의 형식에서 19세기로 넘어가게 되었고, 그런 것으로서 뛰어난 대표자는 신학요강의 도식(Schema Instituutionum theol. 1773-75)을 쓴 P. Cheval!lier, 이론신학요강(Instit. Theol. theor. 1788)을 쓴 Br. Broes, 12권의 종교요강(Onderwijs in den godsdienst, 1780)을 쓴 J. van Nuys Klinkenberg, 신학의 요리문답(Katechismus der H. Godg. 1780)을 쓴 Samuel van Emdre, 신적 직관(Beschouw. Godg. 1790)을 W.E. de Perponcher 등과 특별히 기독교 신학의 이론적 부분(Pars theologiae Christ. theoretica, 1800)을 쓴 H. Muntinghe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그와 똑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18세기 프랑스에는 더 이상 특별한 개혁주의 신학이 없었다. 낭트칙령의 폐지가 나라 밖에서 최선의 힘들을 결집하였다. 18세기에서는 Paul Rabaut와 Antoine Court가 프랑스에서의 개혁주의 교회의 재건의 명예를 얻었다. 프랑스 설교자들은 대부분 로잔에서 그들의 교육을 받았고 거기에 앙투완느 큐르의 계획에 따라 프랑스 신학생을 위한 자신의 신학교를 세웠다.

스위스에서는 1675년의 스위스 공동고백(Consensus Helveticus)이 합리주의를 방해할 수 없었다. 바젤에 있었던 J.R.Wetttstein과 그의 아들, 취리히의 J.C.Suicerus와 그의 아들 Henricus, 제네바의 Mestrezat와 Louis Tronchin이 이 고백에 대한 모든 오류들을 주장하였다. 이미 1685년에 그들을 열외시키고자 하는 기도들이 진행 중이었다. 18세기 와서 이들이 제네바, 바젤, 아펜젤, 취리히, 베른 등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Neufchatel의 설교자인 J.F.Osterwald가 17세기적인 정통주의로부터 18세기의 합리주의에 이르는 전환을 이루고 있다. 그의 오늘날 그리스도인 안에 지배되고 있는 부패의 원천에 관한 논고(Traitte des sources de la corruption, qui re gne aujourdhui parmi les Chre tiens, 1700), 요리문답(Cate chisme,1702), 기독교 신학의 편람(Compendium theol. Christ. 1739)등에서 그는 죽은 정통주의와 아름답게 엮어진 교의들에 대해서 탄식하였고 많은 교리내용들, 예를 들면 선택론을 취소하며 도덕의 회복을 추구하였다.

 

영국에서는 교의학이 이신론에 의해서 정돈된 예언과 이적, 계시에 대한 의문들에 의해서 취급되었다. 변증학은 종종 합리적으로 채색되었을지라도, 그것은 많은 대표자들을 가졌고 그들 중에 역시 어떤 뛰어난 대표자들이 있었다. S. Clarke, N. Lardner, J. Butler, R. Bentley, W. Whiston, A.A. Sykes, T.Sherlock, D. Waterland, J. Coneybeare, J. Leland, J. Foster, W. Warburton, R. Watson, 기독교 변증(Evidence of Christianity,1794)과 자연 신학(Natural Theol, 1802)을 쓴 W. Paley(1805) 등이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신학자들 중에서 선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신학의 총체](A complete body of divinity, 3 vol., 1773) 4차원의 국가(Fourfold state, 홀란드 번역 1742), 은혜언약에 대한 견해(A view of the covenant of grace, 꼼리에에 의한 홀란드 번역 1741)를 쓴 토마스 보스턴(Thomas Boston), 아담 깁(Adam Gib), 첫 번째 다섯 분리주의자들이며 그들의 저서들이 역시 화란어로 번역된 피셔(Fisher), 윌슨(Wilson), 몽크리프(Moncrieff), 형제인 랄프와 에벤에젤 어스킨(Ralphen Ebenzer Erskine) 등이다.

19세기 초기에 개혁주의 신학은 어디에서나 슬픈 몰락의 길로 돌아갔다. 네덜란드에서는 신학이 초자연적인 형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통하여 실행되었다. V. Palm, V. Voorst, Borger, Clarisse, Kist, Hengel, Abresch, Cheval!lier, Muntinghe, Ypey, Heringa, Royaards, Bouman, Vinke, Dermount, Broes, D. Curtius, Senden, Egeling 등과 같은 유능하고 뛰어난 설교자들과 스톨피아 특사(1787년)를 통하여 실행되었다.

 

이런 초자연적인 경향은 이성적이기를 원하였지만, Wegscheider, Rohr, Paulus의 의미에서 합리주의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시를 주장하였고 다양한 합리적이고 역사적인 근거 위에서 그것의 필연성과 가능성과 진리를 증명하였다. 그것은 성경적이기를 원하였고, 반고백적이고 반철학적이고 반칼빈주의엿다. 그것은 신학에 있어서 이신론적이고, 인간론에 있어서 펠라기우스적이며, 기독론에 있어서 도덕적이고, 교회론에 있어서 동료적이며, 종말론에 있어서 쾌락주의적인 교의학을 가졌다. 이러한 현상들은 점점 신학 영역에서의 발전을 불신앙쪽으로 나가게 했던 것이다.

 

급기야는 현대신학에는 더 이상 교의학이 없을 정도로 치달았다. 마지막 시대에 사는 많은 현대주의자들의 경우에 교의학에 있어서는, 결핍이 있고 스스로 신앙고백과 교회조직체에 눈이 띄었다.

 

Ds. Fleischer가 1902년 4월 현대신학자들의 모임에서 그것을 천명하였고 Dr.J.van den Bergh는 1903년의 모임에서 모든 자유주의자들이 하나의 새로운 교회의 연합에 이르는 조직화에 대해서 변호하였고, Dr. Knappert가 현대고백을 선호하는 소리를 높였으며, Dr. Goenewegen은 종교철학 안에 형이상학의 권리와 철학적 교의학을 설립하였고, Dr. Bruining은 교의학의 방법에 관한 연구를 썼으며 하나님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증명을 제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교의학을 향한 이런 열망이 빨리 만족될 것 같지 않다. 지성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 사이의 차이가 현대인 사이에서도 계속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교의학적 물음에 관해서 ( 신론과 인간론, 인간의 근원과 불멸성, 죄와 그리스도의 인격, 구원관 등) 견해들이 멀리 벗어나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혼합주의 양상에 빠지고 일반 종교적 입장 때문에 기독교의 특별한 입장을 포기하였던 일 자체가 이미 일어났었고, 1903년에 암스테르담 자유주의자들의 회의에서 더 명백히 밝혀지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이 점점 더 몰락하게 되었다. 계몽주의가 일어났을 때, 칸트, 슐라이어마허 등의 철학 영향의 결과로 1718년 연합교회가 생겼고 독일에서의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을 완전히 몰라케하였다. 이 세기의 초기에 개혁주의 의식으로부터도 몇 가지 깨달음이 일어났다. 에어랑겐으 크랍트, 엘버필드의 크롬마허, 뤼벡의 가이벨, 브레먼의 말레트 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아주 크지 않다.

 

에러랑겐의 에브라르트(1888), 마르부르크의 헤페(1879)와 같은 사람들조차도 그들의 멜란히톤주의를 통하여 개혁주의적인 것에 큰 해를 끼쳤다. 할레의 비켈하우스(1858), 프랑크푸르트의 칼 쉬드호프(1865), 비인의 뵐, 스투트가르트의 짠, 데트몰의 텔레만, 엘버펠트의 콜브루게1875)와 기타 다른 사람들이 개혁주의의 기초 위에 서 있었던 인물들이다. 지금에는 독일에 개혁주의 신앙고백 위에 서 있는 어떤 신학대학이나 학교가 없다.

 

스위스와 프랑스에는 스코틀랜드로부터 거기에 심어진 부흥을 통하여 재생이 일어났다. 그 부흥은 강력한 정신적인 운동이지만, 원래 비교회적이고 반고백주의적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기독교 기초 위에 있고 좀더 개인적이고 귀족적이며 감독주의적이고 박애주의적인 성격을 통하여 인식되었다.

 

스위스에서는 선택(C?sar Malan1864, 그의 전기는 Malan Jr. Amst. Hoveker 1874에 의해서 됨)과 영감(Merle d' Aubigne', 1872, Gaussen, 1863)에 강조를 두었다.

 

Alexandre Vinet(1797-1847)는 신학적으로 생의 원리는 기독교와 신앙의 조화였고, 계시가 인간에게 종교적 도덕적 필요들을 선물하신 충만한 만족이었으며 복음의 엄밀한 '자연성'이었다.

 

기독교의 주된 진리들 위에 확고히 서서 강하게 교의와 도덕의 연합, 진리의 윤리적 편에 강조를 두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그가 기독교의 진리성을 기독교적인 경험의 기초 위에, 양심의 증거 위에 의존하도록, 그리고 선택을 버리고 신인협동설 위에 서서 일반적으로 중심점을 객관으로부터 주관으로 넘어가도록 하는데 점점 더 이르렀다.

 

E.Scherer는 처음에는 엄밀한 전통주의였으나 점점 더 자신의 마지막 것과 결별하여 완전 불신앙 속에서 그의 생을 끝마쳤다.

 

1849년 E.Scherer의 등장 이래 자유주의와 정통주의가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그 원리들이 비네로부터 철저히 연구되고 그리고 후에 칸트와 리츨의 영향이 연구되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중용적이고 온건한 정통주의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자유주의는 Pressens?, Asti?, S?cr?tan, Sabatier, Leopold Monod, Chapuis, Dandiran, Lobstein

 

정통주의는 Godet부자, Porret, Berthoud, Martin, Doumergue, Bertrand, H.Bois, Gr?tillet

 

두 파벌 사이의 논쟁은 하나는 종교에 관한 권위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즉 이것이 성경에 있는 것인지,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는 것인지 혹은 이성과 양심에 있는 것인지에 관련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련된 것으로서, 즉 아무리 역시 다른 이들에 따라 영지를 통해서 분석될지라도 그가 참된 하나님이신지 그렇지 않으면 혹은 그는 다만 인간이었는지, 그가 역시 완전하게 그리고 하나님과의 연합에 있어서 전형 흩어짐이 없이 나누어진 한 인간이었는지에 대한 것이다.

 

영국에서 감리교회의 형태는 다음과 같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John Wesley(1703-1791)는 과학적 신학자가 아니라 복음을 개인주의화하고 매 사람에게 영생물음을 묻게 하였던 능력 있는 설교자였다.

 

George Whitefield(1714-1771)를 통하여 생긴 감리교회는 우선 39개조항들에서 한 두 가지 점에서 벗어난 점에 있지 않고, 기독교 진리 전체를 두 가지 점 즉 죄와 은혜의 갑작스럽게 의식된 경험, 다시 말하면 개인적 회심과 두 번째로 전혀 새로운 형태로 새로운 삶에 대한 계시에 집중되어 있다.

 

그것은 사람이 다른 사소한 일들로부터 회심함과 다양한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만두는 것을 통하여 표현하였고 이생에서 이미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에 있다. 이런 일방성이 점점 더 다양한 교의들이 논쟁되고 변경되거나 종속적인 가치에 속한 것으로 생각되는 식이 되었다.

 

감리교회가 성공회와 장로교회, 독립교회, 침례교회에 끼친 영향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웨슬리는 영국 미국 개신교형(het Engelsche en Amerikaansche Protestantisme)의 창시자요, 그의 등장 이래 계속 개신교 안에서 반복하게 된 대각성운동의 중개역할자이며 "빈민굴의 대주교"요, 내적 선교의 아버지요, 기독교 사회운동의 기초자이다. 그러나 감리교회는 주로 민중에 제한되었다. 좀더 높은 사회층에서나, 정치, 철학, 인문학에서는 차디찬 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그와 반대로 교회적이고 신학적인 영역에서 옥스퍼드 운동 내에 옮겨진 로마 가톨릭(W.Scott, Southey, S.T. Coleridge,1834)으로부터 반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16세기로부터 기원하여 상당히 강화된 고교회적인 정파를 갖고 영국 국교회 안에 로마 가톨릭 교리와 의식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Spencer Jones는 1902년 런던에서 Right Hon. Viscount Halifax 자작의 서문을 가지고 출판된 영국과 교황청(England and the holy See)이라는 그의 작품에서 공적으로 영국 국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일치를 주장하였다.

 

세상의 빛(Lux Mundi, 1890)의 저자, Canon Holland, Moore, Illingworth, Talbot, C.Gore 등이 퓨지주의를 새롭게 하고 동시에 기독교 교의들을 새 시대의 빛에 삽입시킴을 통하여 그럴싸하게 만들고자 하였다. 고교회적인 종파 곁에 수평교회적인 종파가 등장하여 이미 17,18세기에 광교주의(het Latitudinarisme)를 통하여 준비되었다.(Thomas Arnold(1842), Hampden(1868), Maurice(1872), Ch.Kingsley(1874), Whateley(1863), F. W. Robertson(1853), A.P.Stanley(1881)) 저교회적인 종파의 감리교를 꺼려 그들 모두가 진지하고 고상한 방식에서 기독교와 문화와 화해를 향하여 노력하였다.

 

의식주의, 다양한 이단들과 분파들, 거대 사회의 필요와 특별히 이미 Colenso주교를 통하여 영국땅에 입성하게 되었고 Rob. Smith, T.K. Cheyne, S.R.Driver를 통하여 선전되었던 고등비평이 수평교회적인 경향에 우위를 제공하였다.

 

웨스트민스터 대수도원의 수석사제인 F.W.Farrar, 침례교회주의자인 J. Clifford, 구 복음주의와 신 복음주의(The old Evangelicalism and the new, 1889)를 쓴 회중교회주의자인 R.W.Dale, 런던에 있는 Joseph Parker, 현대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위치(The place of Christ in modern theology, London 1893) 기독교 종교철학(Philosophy of Christian religion)을 쓴 맨스필드 대학의 Dr. Fairbairn, 장로교 성직자들 중에는 영적 세계에 있어서 자연법(The natural law in the spiritual world) 최고 선(Summum bonum) 등을 쓴 Prof. Henry Drummond, 성경, 그 근원과 본성(The Bible, its origin and nature, Edinburgh 1905)을 쓴 Marcus Dods, 변증학 혹은 변호적인 진술된 기독교(Apologetics, or Christianity defensively stated, Edinburgh 1905」를 쓴 A.B. Bruce, 현대 기독교사상의 진보성(The progressiveness of modern Christian thought, Edinburgh Blackwood, 1892)을 쓴 James Lindsay, 알렉산드리아 신학과 카르타고 신학(Alexandrinian and Carthaginian Theology, Edinb. Clark)을 쓴 J.B. Heard, 훌시안 강의(Hulsean lectures)를 펴낸 Clark, 성육신에 집중된 대로 하나님과 세계에 관한 기독교적인 견해(The Christian view of God and the world, as centring inthe incarnation, Edinb. Elliot 1893」를 쓴 James Orr 등이 속해 있다.

 

스코틀랜드의 국교회(de Establ. Church)의 Flint, Milligan, 자유교회의 Brown, Rainy, Davidson, Salmmond, Laidlaw, G.A. Smith, 연합장로교회의 Cairns, Muir, Thomson, J. Smith가 속해 있다.

 

스테아드는 그가 사회 전체개혁을 인도하고 극장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체를 자신 안에 수용하고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종말의 교회'를 소망하였을 때, 참으로 너무 멀리 나아간 것이다. 그 때 종종 무덤 저편에 있는 만물을 회복하는 소망이 이것을 수반하고 있다.

 

엄밀한 칼빈주의는 땅에서 날마다 잃어가고 있다. 개혁주의 신학에 대한 글래스고의 헤이스티 교수의 저작은 참으로 중요하고 주의깊게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신학적 학문 안에 칼빈주의 재흥으로서 영접되기 보다는 크게 라이덴 교수인 스콜텐 교수의 영향하에 서 있다.

 

이신론이 이미 이적들, 예언들과 계시에 대한 방대한 비판을 시도한 이후 다윈이 종 이론, 스펜서의 불가지론, 스튜어트 밀의 경험주의, 틴달의 물질주의의 영향하에 이런 종교적 변질과정이 좀더 계속되었다. 기독교 교의들의 비판과 회유하며 화해하는 관계를 확증하였다.

 

미국에 있어서 개혁주의 신학은 원래 아주 다른 형식들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교회들이 영국과 유럽의 모교회로부터 미국과 캐나다에 계속적으로 전수되었다. 1607년 버지니아로 이민온 감독교회가 가장 오래되고 부유한 교회이고, 허드슨과 맨하탄 섬이 1609년에 발견된 이래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거기에 확증되고 있다. 독립교회주의자들 혹은 회중교회주의자들이 처음 1620년에 Plymouth에 상륙하였다. 퀘이커교도들은 1680년 윌리암 펜을 통하여 펜실베이니아로 안내되었다. 침례교도들은 1639년 Roger Williams를 통하여 미국의 로드 아일랜드에 확고한 발을 딛었다. 루터교 독일교회와 같이 개혁주의 독일교회도 18세기 중엽 이래 확증되고 있다. 장로교회는 다양한 그룹들으로 구분되고 있다. 거의 모든 이런 교회들과 그 안에 있는 종파들이 칼빈주의 근원으로부터 왔다. 모든 종교적 운동들 중에서 칼빈주의가 미국에서는 가장 힘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한 교회에 제한된 것이 아니었고 다양한 변화에도 회중교회, 침례교회, 홀란드 및 독일 개혁교회들 안에 생명을 불어 넣는 기본요소이다. 모든 방면에서 영국, 스코틀랜드, 프랑스, 홀란드, 독일로부터 그것이 미국으로 유입되었다. 그것이 식민지 시대 동안(1620-1776)에 뉴잉글랜드의 성격을 형성하였다.

 

미국에 웨슬 리가 이르기 전 1734년에 노샘프턴에 있는 그의 교회에서 놀라운 각성이 일어났다. 후에 그의 친구 휘트필드와 함께 여러 번 같은 각성운동을 주도하였고 변호하였다. 신학적으로 그는 특별히 뉴잉글랜드에서 Daniel Whitby와 John Taylor의 저서들을 통하여 유입된 그 아르미니우스주의와의 싸움을 주도하였다. 그는 그의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사변들을 통하여 칼빈주의를 강화하였으나 실제 이미 Cameron에게서 일어났던 자연적이고 도덕적인 중대성과 의지의 자유, 원죄와 속성에 대한 특별한 이론을 통하여 그것을 약하게 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에 대한 칼빈주의적인 교리를 주장하고 프랑스의 소무르학파의 경우와 같이 원죄의 거절과 속죄의 보편성을 그것과 연합시켰던 어드워즈주의자들, 새신학의 사람들, 새 빛들의 아버지였다. 그의 아들 조나단 에드워즈(1745-1840)는 속죄론에 있어서 사실의 본질에 있어서 그로티우스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나다니엘 에몬스(1745-1840, Works, Boston 1842)가 홉킨스주의의 가장 뛰어난 옹호자였다. Timothy Dwight,(1752-1817)와 Nathaniel W.Taylor, 1786-1858)의 경우 에드워즈의 체계가 펠라기우스적인 의미에서 변경되고 있고 '신학파'의 이름을 얻고 있다.

 

1808년에 세워진 앤도버의 신학교에서 교회사교수 에그버트스미스의 지도하에 그것은 진보적인 정통주의와 내세 시련에 관한 교리로 인도되었다. 뉴잉글랜드의 신학에 있어서 구학파는 무엇 보다도 구칼빈주의를 변호하는 Dr. Bennet Taylor(1783-1858)와 Dr. Leonard Woods(1774-1854)에 의해서 대표되고 있다.

 

그러나 청교도주의는 점점 더 도르트 회의와 웨스트민스터 회의의 수준으로부터 떨어졌다. 세인트 루이스에 있는 미국의 회중교회 대회에서 12개조항의 새고백이 준비되었는데 그 안에서 특징적인 개혁교회 교리들이 빠졌다. 이 새로운 교리성명은 25인 신학자들의 위원회에 의해서 발생되었다. 유명한 두 설교자인 W.E. Channingg(1780-1842)과 하트포드의 Horce Busnell(1802-1876)이 청교도주의에서 떨어져 나갔다. 채닝이 미국에서 유신론주의의 가장 유명한 대변자가 되었고, 부쉬넬은 삼위통일성에 관한 사벨리우스의 교리를 새롭게 하였고 속죄를 다만 하나의 도덕적 행위로 파악하였다.

 

미국 장로교회의 신학은 병행적으로 발전해 갔다. 여기에서도 구빛과 새빛의 신학자들 사이에 뿐만 아니라 필라델피아 대화와 뉴욕대회의 교회들(1741-1758) 사이에 분리가 일어났다. 첫 신학자의 한 사람은 John Dickkinson(1688-1747)으로서 그의 유명한 저서는 항변파에 반대하는 5개 조항에 대한 변증이었다. 특별히 구학파는 1812년 총회에 의해서 세워진 프린스틴 신학교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거기에서 Dr.Archibald Alexander(1772-1851), Dr. Charles Hodge(1797-1878)의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London and Edinb, 1873, 3 vol.)을 통하여 대변되었다. 찰스 하지의 계승자는 그의 아들인 Archibald Alexander Hodge(1823-1886)로서 신학개요 (Outline of Theology, ed. by W.H. Gold, London, Nelson 1866)와 복음주의 신학(Evangelical Theology, 1890)을 썼다. 이러한 형태는 17세기 칼빈주의의 재생으로 평가할 수 있다.

 

프린스턴 신학은 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스위스 공동고백에 기록되고 특별히 F. Turretinus의 담화신학(Theol. Elentica)을 통하여 보급된 대로, 17세기 칼빈주의의 재생이었다. 같은 체계가 역시 남부 신학자들인 James H. Thornwell(1812-1866), Robert J. Brekinridge(1800-1871), Robeut L. Dabney에 의해서 대표되고 있다.

 

구학파의 대표자 한 사람은 교의신학(Dogmartic Theology, 2 vol. New-York, Scribner 1888)을 쓰고 1890년 이래 뉴욕 유니온 신학교 은퇴 교수인 W.G.T. Shedd다. 그러나 하지와 쉐드 사이에는 놀라운 차이가 있다. 전자는 언약론주의자요, 창조론자였으나, 후자는 실재론자요 유전론자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선택을 아주 넓게 파악하고 그 아래 요사한 어린이들을 포함시키는 점에서 둘은 일치하고 있다.

 

교의학은 기독교 신학 체계(System of Christian Theology, ed, by W.S.Karr, 4 ed. New-York Armstrong 1890)를 쓰고 구학파와 신학파 사이의 중재를 기독론적인 입장에서 찾았던 Dr. Henry B. Smith(1815-1877)를 통하여 배웠다. 그의 제자인 Lewis French Stearns(1892)는 1893년 뉴욕에서 출판된 현대신학(Present da Theology)이란 작품을 써서 그 안에서 영감, 섭리, 영지(kenosis), 예정, 축복에 관한 새로운 사상들을 제시하였다.

 

프린스턴 장로교 신학교로서 전혀 독립적으로 대학과 함께 거기에 존속하여 교회 고백과 결합되어 있었고 교수들의 특별한 결속(Warfield, Vos, Dick Wilson, Greene)이 있었으며 신학잡지(The Princeton Theological Review) 안에서 영예로운 개혁주의 입장을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정신이 북장로 교회 안에도 침투되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질서 속에 있었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개정은 1903년에 결정되었다. 거기에 단지 적은 변경들이 제안되었을지라도, 첨가된 것들과 삭제된 것들, 수용된 성령에 대해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관한 두 개의 새로운 장들, 개혁주의 교리의 몇 가지 잘못된 견해들을 다시 헛되게 부정하는 선언문 모두가, 신앙고백 가운데 가르쳐지고 있는 특수은총론과 더불어 하나님의 사랑, 구속, 복음의 선포, 은혜의 제공, 성령의 역사, 어릴 때 죽은 모든 어린이들의 축복의 보편 은총론을 아주 강하게 강조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역시 제공된 개정은 두 측으로부터 논쟁되고 있다. 클락스빌 신학교 교수인 Dr. R.A.Webb와 같은 몇몇의 개혁주의자들과 Reev. Dr. S.M.Templeton와 같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은, 개정의 보편은총론이 원 신앙고백의 특별은총론과 충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에 일치하고 있다.

 

각각의 경우에 주목할 것은 개정이 결정된 2년후 1905년 5월에 이루어졌던 북장로교 일반대회에서, 1770년 각성운동으로부터 태어났고 그들의 신앙고백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던 컴벌랜드 장로교회와 교회연합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도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은 진지한 위기에 들어선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 삼위일체, 인간의 타락과 무능력, 제한된 구속, 선택과 유기, 영원한 형벌에 관한 교의들은 은밀히 부정되거나 역시 공공연히 거절되고 있다. 칼빈주의에 대한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위에서 처럼 종교개혁에서부터 분명하게 들어난 개혁주의는 17세기를 넘어서면서 점차로 그 독특성이 변질되어져 갔으며 급기야 19세기 미국에 와서는 전혀 다른 개혁주의적 특징을 드러내게 되었다. 몇몇 학자들을 통하여 17세기적 개혁주의 독특성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시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 흐름의 맥이 단절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개혁주의적 특성을 이어 받은 한국의 기독교도 엄밀한 개혁주의적 전통을 상실하고 변질된 개혁주의적 특색을 갖게되엇다고 생각한다. 본 책을 통해서 개혁주의적 독특성이 어떻게 시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났었는지 또한 그러한 독특성들이 어떻게 해서 단절되게 되었는지를 배우면서 이러한 역사적인 흐름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하고 신학을 배우는 나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어디에서부터 출발을 해야 할 것인가?와 또한 어떻게 그 방법을 취할 것인가?가 무엇 보다도 매우 중요한 것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출처: 생명수 쉼터/한아름

오늘날도 사도·선지자가 존재하는가?

[심층기획] 현대 성령운동 진단 / <목사와 예언자> 서평

  이승구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Wagner, Peter. et al. Pastors & Prophets (Colorado Springs, CO; Wagner Publications, 2000. 임종원 옮김. <목사와 예언자> 서울: 도서 출판 진흥, 2004. Pp. 141)

  교회 성장학파의 대변자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피터 와그너(Perter Wagner)와 그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를 따르는 몇몇 저자들이 목사와 예언자의 건강한 관계를 규정하고 제시하려는 몇 편의 글을 담은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사도들과 선지자(예언자)들이 있다는 전제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런 전제 가운데서 이들 예언자들과 목회자들은 과연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답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와그너의 <사도들과 예언자들>1) 의 자매편으로 그 책과 성격을 같이 하며 와그너 교수의 그 동안의 관심과 노력의 방향을 잘 표현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 등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이 “예언자들과 예언 사역을 위한 영적인 규약(protocol)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집중하는 것”이며 “이 일을 멋지게 완수하여 예언을 믿는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 규약이 폭넓게 받아들여지도록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25). 그래서 와그너 등은 이 책에 ‘건강한 교회를 위한 규약’이라고 하였다. 와그너 교수와 이 일단의 저자들의 견해를 성경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주장 가운데서 그래도 성경적으로 지지할 만 하며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하고 후에 그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주장 가운데서 성경적으로 긍정적인 점들

  와그너 등이 건강한 교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모든 이들과 함께 감사하게 생각한다(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건강한 교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 체계는 결국 성경적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9)는 와그너의 첫 말에는 모든 성경적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할 것이다(그러나 후에 드러나겠지만 와그너가 말하는 성경적 형태와 우리가 말하는 성경적 형태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더구나 에베소서 4장에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직분 체제와 운영 체제를 계획하시고 적절히 세워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9).

  또한 교회가 오랫동안 이 “이상적인 직분 체제와는 훨씬 동떨어진 모습으로 운영되었다”(9)는 말에도 모든 개신교도들은 동의할 것이다(그러나 와그너는 1600년이라는 말에 종교 개혁시대와 우리 시대까지의 교회의 직분 체제를 다 넣어 말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가 의도하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또 하번 다른 것임을 유의하면서 그의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목사와 교사의 관계를 상호 밀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다(12). 그리고 사제(priest)라는 비성경적 직분을 대체한 목사는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로 제자리를 되찾았다”(13)는 점을 지적한 것도 옳은 것이다.

  

또한 스테판 만스필드(Stephen Mansfield)와 마이크 비클(Mike Bickle), 그리고 톰 하몬(Tom S. Hamon)이 교회 안의 여러 은사를 지닌 이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서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72~74, 82f., 98f., 136) 바르고 건전한 것이다. 또한 킹슬리 플레쳐(Kingsley A. Fletcher) 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포된 말씀이다. 이는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기 때문이다”(109)고 말하는 것도 매우 옳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말씀과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매우 옳다. 문제는 이 말을 하는 그를 비롯하여 이 저자들이 이 원리에 끝까지 충실한가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의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시작 부분에서 성경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그들의 주장에 전적인 동의를 표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그렇게 되는 원인을 그들의 주장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제시해 보기로 하자.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주장의 문제점

  

1. 일반적 문제점들   

기본적으로 와그너는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의도에 맡도록 적절히 변경하면서 논의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신약 시대를 율법 시대와는 다른 ‘은혜의 시대’라고 언급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다(19).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두 종류의 대적자를 얻게 된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대적자들은 그의 세대주의적 해석에 반대하는 언약 신학적 대적자들이다. 또 하나는 그의 수정에 반대하는 세대주의적 대적자들이다.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좀더 심각한 일반적 문제는 “성경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이 말에 대해 부여하고 있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함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알 때까지는 선뜻 동의할 수 없게끔 하는 논술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 그 의미를 일일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상한 주장과 논의를 제시하는 이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들에 대해서 이단자들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때 느끼는 불안을 가지도록 생각하고 논술하는 것일까? 이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 그들의 성경 주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를 노출시켜 주는 것이다. 주해를 이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주해의 내용을 가지고 따지면 결국 성경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베소서 4:11 이하에 근거해서 교회의 직분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본문과 상관없는 것들을 때때로 삽입하는 것들에서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전도자’를 언급하면서 “약 150년 전에 챨스 피니(Charles Finney)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폭넓게 주목받지 못했었다”고 말한다(13). 와그너에게는 초대 교회의 전도자들이 관심이 아니라, 오늘날의 전도자들이 관심인 것이다. 더 심한 것은 그 본문이나 다른 성경 구절에 있지도 않은 ‘중보자’(intercessors)라는 직분을 그가 삽입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독특한 직분으로 이를 언급하면서 이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직분이다”고 말하고 있다(13).

  그는 이런 것이 에베소서 4:11에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러나 중보자는 촉매제처럼, 예언자와 사도들의 길을 예비하는 지극히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는 주목할만한 직분이기 때문에 꼭 언급하고 싶다”(14)고 말하면서 이를 목사, 교사, 예언자, 사도와 함께 교회의 5대 직분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그너가 말하는 교회의 5대 직분이(10~14, 29, 37) 엄밀히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임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와그너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고한 다른 이들도 이와 같은 다섯 직분에 대한 같은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57~59, 73, 107, 126). 그들은 이런 이해를 와그너로부터 배워 같이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의는 이런 용어를 사용 할 때 그들이 성경의 본래적 의미보다는 오늘날 그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지도 않고, 교회사적 전통에 근거하지도 않은 개념들을 일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것인 양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라.

  톰 해몬(Tom Hamon)은 오늘날 예언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면서 에베소서 1:17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123f.). 이 본문이 말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과연 소위 제한된 의미의 예언자들에게 있는 것이라는 의도로 바울이 말하는 것인가?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도록 해야 할 것을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본문을 주로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들에게 이를 제한하여 생각하는 것은(124, 136) 이들이 가진 성경 주해의 자의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근원적인 문제

  이들의 근원적인 문제는 역시 오늘날에 예언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그너 등의 목소리는 오늘날 가장 세련된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직통 계시파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왔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특정한 구성원들에게 허락하시는 특별한 능력으로, 거룩하게 기름 부으신 선포를 통하여 그 분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2) 그리고 와그너에 의하면, “예언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것은 예언자가 받은 은사”라는 것이다(50). 와그너는 이런 예언이 오늘날에도 있다고 생각하며 1999년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2,500명의 소위 예언자들과 예비 예언자들을 모아 전국 예언자 학교(the National School of the Prophets)를 개최하기도 하였다고 한다(41).

그는 여러 형태의 계시가 더 더해질 것이라고 제시한다. 특히 현재로서는 자신이 전도자의 은사와 직분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까운 장래엡 전도자들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통찰을 계시하실 것이라는 잠재된 예감이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31). 그리고 그는 “교회에 예언자들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다”고 단언한다(49).

  톰 해몬(Tom S. Hamon) 역시도 같은 견해를 표 한다: “…예언이 없다면 [교회가] 마땅히 드러나야 할 건강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132). 와그너는 또한 오늘날에도 있는 이 예언자들과 (후에 언급될)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라고 주장한다(49). 와그너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가 지속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 필드는 이렇게 까지도 말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예언자들만이 아니라, 예언하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지혜로운 목회자들의 사역은 진정한 예언적 교회가 이 세대에 일어나리라는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이유다”(74f.). 캔사스 시의 국제 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대표로 있는 마이크 비클(Mike Bickle)은 자신이 목회하는 메트로 교회(Metro Christian Fellowship)에는 예언적인 꿈, 이상, 그리고 환상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79). 한국 교회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유념해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성경 이외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계속된다는) 이런 생각은 그 동안 장로교 신학(개혁 신학)과 정통 신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해 온 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항 마지막에 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지되어 버렸다”는 진술과 6항 중에 진술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이든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는 말과 이런 주장들을 비교해 보라.3)

  이와 같은 노선에서 성경적인 개혁신학자들은 아주 온건한 형태의 예언 인정의 논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하여 왔다.4) 이런 문제에 대한 좋은 개혁신학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레이몬드 교수의 강한 입장을 들어 보라: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예언자들과 방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으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오직 성경의 위대한 종교 개혁적 원리를 버려 버린 것이다.”5) 그는 다른 개혁 신학자들과 함께 “신약 선지자들의 영감은 그쳐졌으므로, 선지자직도 그쳐졌고,” “선지자적 직임은 가르치는 직임 속으로 편입되어졌다”고 한다.6)

  한마디로 개혁파 신학에서는 오늘날에는 선지자(예언자)가 없고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온 것이다.7) 물론 오순절파에서는 오늘날도 예언이 있다는 식의 주장을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속 주장해 왔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장은 정통파 교회, 적어도 장로 교회의 가르침과는 대척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교 신학(개혁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 책의 주장을 비성경적이며 반성경적인 주장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다 어떤 계시의 내용을 더하려고 하는 이런 주장은 그런 식의 잘못을 범하는 다른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와그너 등은 그들이 말하는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시대에는 예언의 양상이 변했다는 점을 말한다(21).8) (구약의 참 선지자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 시대에는 참 선지자의 예언도 꼭 성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논의에 선뜻 동의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또한 와그너는 Y2K에 대한 예언자들의 예언이 전대미문의 가장 성공적인 예언이었다는 세속 학자인 테드 다니엘스(Ted Daniels)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론 내리기를 “예언은 조건적”이라고 주장한다(47). 이 말은 와그너가 테드 다니엘스의 비유적인 말을 과연 바르게 이해하고 하는 말인지를 묻게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예언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조의 말로 들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와그너가 다니엘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다니엘스가 하는 말인 “우리는 엄청나게 쏟아 부었는데 (즉, Y2K를 위해 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고 살아남았다는 겁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과연 Y2K에 예견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이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미리 잘 준비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와그너 자신이 잘 말하듯이 그들은 “핑계를 댄다”는 반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47). 또한 예언이 조건적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선포한 말씀을 바꾸신다고 표현하는 것(47)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하나님에게는 변함이 없으심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께서 구약에 선포하도록 하신 말씀 안에 회개하면 주께서 돌이키실 것이라고 신인동성론적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더 옳지 아니한가?9)

  사실 이 저자들은 소위 예언을 하는 이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예수 믿기 이전에도 일종의 영적 감지력을 지닌 사람들일 경우가 많음을 스테판 만스필드(Stephen L. Mansfield)는 이 책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59f.). 또한 이들은 흑백논리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61). 더구나 이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자신들에게 떠오르는 모든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쏟아낼 수 있지만, 자기 삶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들을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63). 마이크 비클도 이런 이들의 많은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다(92). 그렇다면 모든 이들이 이런 이들에게 “너 자신이나 고치라”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또한 마이크 비클은 소위 예언하는 이들의 말에 거짓말이 많다는 것과 회중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이들에게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데 지쳐 있다는 것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잘 알고 있다(85). 그러므로 이들은 소위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과 부딪히는 많은 경험을 하였고 또 지금도 그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다(88). 사실 이 책이 쓰여진 이유가 바로 그런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 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 자체가 이런 직통 예언파의 내재적 문제를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마이크 비클의 다음 말을 생각해 보라: “…예언하는 사람들이 교회 사역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역도 마찬가지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90). 이외에도 이 저자들은 소위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이 나타내는 수많은 문제를 잘 알고 있다(111). 톰 해몬(Tom S. Hamon)도 소위 “(오늘날에 있다고 하는) 예언은 …동시에 교회에서 가장 커다란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121)고 하며, 또한 소위 예언된 것들 가운데서는 “거짓 말씀이나 해로운 말씀이 있었다고”(133)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12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저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잘 알면서도 이런 이들을 예언자라고 하면서 그들이 교회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집단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과 교회의 오랜 성경적 전통을 벗어나 이와 같이 나아가려고 하는 이들의 문제점은 조금이라도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에 민감한 이들은 다 잘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잘 읽으면 우리는 소위 예언한다는 이들을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잘 알게 된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계시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잘 증언하고 있듯이 소위 예언한다고 하는 이들은 문제가 많으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이런 헛된 추구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섬기도록 할 것인가 하는 목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예언 사역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목회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도록 하는 목회적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3. 좀더 심각한 문제

  그러나 와그너 등의 주장은 이전의 직통 계시파보다 그런 입장의 전제에 좀더 철저한 면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1990년대 이후를 ‘신사도적 종교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 시대’라고 규정한다는 것이다(25).10) 바로 이런 입장에서 와그너는 “사도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교회에서 활동하는 공식 직분으로서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14, 17쪽도 보라). 또한 앞부분에서도 “우리가 수백 년 교회사에서 처음으로 교회의 성경적 직분 체제를 다시 한번 주목하고 있다”(10)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종교 개혁자들과 함께 의아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와그너 등이 말하는 ‘사도’라는 말은 좀더 새로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와그너 등의 주장의 좀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직통 계시파는 1세기의 사도들의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면서 예언 사역이 지속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비해, 이제 와그너 등은 그럴 뿐만 이 아니라, 그 예언 사역과 건강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오늘날의 사도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예언자들을 ‘실라’로 규정하고 그와 바울 같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자신에 대해 척 피어스(Chuck Pierce)가 예언자로 있고, 자신은 그와 바울-실라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33). 그리고 자신을 “사도이자 교사”라고 말한다(39).

  또한 와그너는 자신의 이런 입장에 근거하여 1999년부터 최소한 일년에 두 번씩 “예언하는 장로들의 사도 협의회”(The Apostolic Council of Prophetic Elders) 모임을 개최하고, 자신이 이 집단의 사도로서 의장직을 감당한다고 말한다(33f.). 물론 와그너는 자신의 사도직이 수평적 사도직(horizontal apostolic)이며, 이 사람들의 모임을 제외하면 어떤 개별적인 예언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수직적’ 혹은 지속적인 사도 직분을 감당하지 않는다고 밝힌다(34). 그렇다면 구태여 사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와그너 등은 사도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려 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오늘날도 사도가 있다는 주장을 와그너 등은 하는 것이다.

    결론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일단의 사람들이 ‘사도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에 대해 1세기의 사도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더 나아가 그 사도들을 불러서 위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게 느끼듯이 이런 식으로 지속하는 것은 결국 사도와 종교적 천재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나님 앞에 민감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여 우리 개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다. 그것에 반대할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좀더 유의해야 하고 기도에 힘써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근거를 주께서는 이미 성경의 가르침과 내주 하시는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1세기의 사도들이 죽은 이후에 또 다른 사도들이 주어질 것이라는 시사를 성경은 우리에게 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1세기의 사도와 선지자의 터 외의 다른 터를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강한 경고가 성경에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1세기의 사도들이 우리들의 사도들이며, 그 사도적 가르침에 근거해 교회와 성도들이 세워져 있음을 강조해야만 한다. 성경적 사도적 가르침에 다른 것을 더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선언하는 바울의 선포(갈 1장)가 두렵지 아니한가?

성경에 있는 사도들 외에 사도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식으로라도 자신을 사도인 것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현실이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도들과 선자지들의 사역이 그쳐진 후에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아니한 이들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 시대에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서 이렇게 현저하게 벗어난 가르침들이 난무하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영적인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이 쓰여진 이유 중의 하나도 소위 예언을 한다는 이들 사이의 혼란이 너무 심각하여 그들을 위한 일종의 영적 규약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25), 이런 예언이 지속적으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런 책 등이 그런 영적 혼란을 더 부추길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오늘날의 혼란을 막고 영적인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은 성경이 말하는 사도적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사도적 가르침에 의하면, 성경의 가르침에 무엇이라도 더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도적 가르침에 자신들을 겸손히 복속시키는 일이다. 와그너와 이 책의 저자들에게, 또한 이런 책의 영향을 받는 이들에게 이런 비성경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굳건히 서 있기를 강하게 요청한다. 그것이 성경을 영감하여 주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길이며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복속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부디 바라기는 한국 교회와 세게 교회가 성경과 성령님의 가르침에 참으로 순복하여 주께서 교회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것을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출처: 개혁주의마을/Jennifer


박일민 칼빈대학교 교수(조직신학)

 

최근 우리는 주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영서(靈書)를 받았다는 사람들을 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만나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구심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음성을 꼭 들어야 하는가, 그리고 들어야 한다면 어떻게 하면 들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성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하나님의 음성은 왜 들어야 하는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다. 그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신앙의 핵심이 하나님을 아는 데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했다(전 12:13).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명령을 잘 알아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앎은 일반적인 인생경험이나 세속적인 학문연구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은 신령한 일에 속한다. 그런데 신령한 것은 오직 신령한 것으로라야만 알 수가 있다(고전 2:13, 14). 따라서 우리는 신령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자신과 자신의 명령에 관해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어야만 신령한 것들을 분명하고 자세하게 알 수가 있다. 이렇게 해서 얻어진 진리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참된 신앙생활과 사람다운 삶이 가능할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만 알고, 서로 수군거리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자기에게로 나아와 영생을 얻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요 6:44). 그리고는 이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는 사람이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듣고 배운 사람이라고 덧붙이셨다(45). 이 말씀은 신앙의 핵심이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 준다.

 

둘째, 사람은 생활 속에서 알고 싶은 것에 부딪히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은 이론적인 지식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과 관련해서도 그 아는 것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과거나 현재의 일도 물론이지만,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여러 가지의 갈래 길에 부딪쳐서 어느 길을 선택을 해야 할지를 몰라 주저해 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그냥 지나치려 하지를 않고, 그것을 알아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다가는 자기 스스로 알아내기 어려울 때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 때문에, 사람이 사는 곳에는 점술가들의 신통력을 의지하려는 일이 거의 자취를 감추지 않아 왔다. 이러한 현상은 과학문명이 발달했다는 오늘날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성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사람의 본성에 있어서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미신을 죄로 여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는 그 구체적인 증거들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성경적 사례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하는 사례들을 정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직접 음성으로 들은 경우: 아담, 족장들, 모세, 선지자들, 사도들 등.
꿈으로 들은 경우: 야곱, 요셉, 아비멜렉, 솔로몬 등.
환상으로 들은 경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요한 등.
우림 둠밈으로 들은 경우: 출 28:  30, 민 27:21의 엘르아살, 신 33:8 등.
제비뽑기로 들은 경우: 사울, 요나, 맛디아 등.
글자로 들은 경우: 모세, 다니엘, 벨사살 등.
하나님 사자의 나타남을 통해서 들은 경우: 아브라함, 마노아, 이사야 등
천사를 통해서 들은 경우: 요셉, 마리아, 동방박사 등.
상징물을 통해서 들은 경우: 모세(불), 욥(폭풍), 엘리야(세미한 바람), 광야 이스라엘 백성 (불기둥 또는 구름기둥).  

 

우리들 주변에도 성경에 나오는 족장들이나 선지자들, 또는 사도들처럼 영적 음성이나 환상, 꿈, 또는 글씨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보거나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 같으시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를 만난다고 해서 조금도 놀라거나 이상해 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때, 매우 조심하여 신중한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타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바라는 심리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사탄은 얼마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가장하여서, 아직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성도들을 미혹하여 진리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죄를 범하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생겨나게 할 수 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또 반드시 들어야 함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다가 불건전한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때에, 다음 몇 가지 내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대부분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이용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친히 사람들에게 계시하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계시하실 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러 가지 방법들을 다양하게 이용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례들로 나타난 것들은 구원에 필요한 지식을 전달해주기 위한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이용이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이후로는 구원에 관한 지식들이 온전하게 다 밝혀졌다.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서 더 이상의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심은 모든 날의 마지막에 우리에게 밝히 말씀하심이요(히 1:2),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이루심이요(요 19:30), 또 마침이었다(마 5: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일 성경에 계시된 것 이외의 또 다른 구원의 진리를 보거나 들었다면, 그것은 원수가 몰래 뿌려놓은 가라지 즉 거짓된 것이요, 적그리스도에 불과하다.

 

우리는 구원에 관한 것이라면, 성경 이외의 무엇을 들으려고 하는 호기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만일 성경 이외의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면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우리에게는 오직 이미 계시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성령의 조명하심과 성경의 진리를 실천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할 따름이다. 그러면 이와 관련된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하면 들을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음성은 주로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중에 들려진다.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고 또 운동력도 가지고 있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좌우에 날이 예리하게 선 칼에 찔리는 것과 같이 그 마음과 생각에서 찔림을 받는다(히 4:12). 또 구원에 필요한 진리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 필요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으로 교육을 받는다(딤후 3:16). 왜냐하면 성경을 읽거나 묵상하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임하셔서 그들이 잊고 있었던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몰랐던 것을 밝히 드러내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걸어가야 할 발자국을 비춰주는 등불이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확실성을 벗겨주는 빛이라고 하는 것이다(시 119:105).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도, 그 대부분은 이미 성경을 통해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 속에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이와 같은 상황에서 가출이나 이혼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리대금업이나 주일출근은 해도 좋을까 하는 등에 대한 해답을 기대한다면,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듣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은 설교자를 통해서 들린다.
하나님의 음성은 많은 경우에 성경을 풀어 전해주는 설교자를 통해서 들린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말씀을 옛날 선지자나 사도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친히 설교자들의 입에도 넣어 주시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죽은 이후에 가서야 아직 살아 있는 다섯 형제들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부자에 관한 말씀이 있다. 그는 그의 기대와는 달리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저희에게 들을지니라" 하는 말씀을 들었다(눅 16:29).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씀을 풀어서 전해주는 설교자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임을 잘 알 수가 있다.

 

설교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나팔과 같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오직 하나님의 충실한 나팔이 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원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설교에 귀를 기울이되,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들을 수 있는 귀만 준비한다면, 우리는 설교를 듣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얼마든지 들을 수가 있다.

 

하나님의 음성은 기도와 묵상하는 중에 들린다.
기도는 주로 우리의 감사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죄의 용서와 우리에게 필요한 간구의 내용을 아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기도는 일방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는 형식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시는 것도 포함을 하는 쌍방적인 형식이 더 바람직하다.

 

우리가 기도하는 중에는 시내산의 모세나 다메섹으로 가던 사울에게 들렸던 것과 같은 음성이나, 베드로나 요한이 보았던 환상, 또는 다니엘이 보았던 벽에 새겨진 글씨가 없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큰 소리를 지르며 외치는 기도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감동으로 임하여 주시기를 조용하게 기다리는 자세를 가질 필요도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시라면 이런 경우에 과연 어떻게 말씀을 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그러면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와 같은(눅 24:32), 감동의 형식으로 임하는 하나님 음성이 들릴 수 있다.

 

다윗 임금은 묵상 중에도 이러한 경험을 했다. 그는 뜨거워진 마음으로 자신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여호와께서 알게 하여 주시기를 묵상하며 기다렸다(시 39:3-4).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밑에서 묵상을 하다가 예수님께로부터 그가 묵상을 하고 있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알게 되는 응답을 받았었다(요 1:50). 묵상을 즐기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여지는 복을 누리게 된다고 한 시인의 노래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이 분명하다(시 1:2-3).

 

하나님의 음성은 섭리적 사건들 중에서도 들린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과 목적을 따라서 천지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졸거나 주무시는 일이 없이 항상 다스리고 계신다. 우리는 이것을 섭리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는 사람들을 향하는 소리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깃들여 있다.

 

자연계에는 부지런히 일을 해야 수고의 떡을 먹는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각종 재난들 속에는 주님 재림의 때가 가까웠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의롭게 살아야 명예를 얻는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불의는 분쟁과 전쟁을 낳고야 만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우리의 양심 속에는 하나님 안에서라야 인간의 참된 행복이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때로는 우리의 나아가는 길이 형통하거나 막히는 행사 속에, 또는 이웃과의 만남이나 대화 속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 있다. 아니 우리들 주변 사방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 즉 하나님의 음성이 가득히 넘쳐흐르고 있다(롬 1:10~21).

 

하나님의 음성이 과연 어떤 식으로 들려오고 있는가 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음성을 들으려고 하는 우리의 자세가 문제이다. 들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흐르는 물이나 지저귀는 새, 터지는 화산,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 이웃의 운명 등에 스며져 있는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언어도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지만(시 19:4), 하늘을 보면서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쓰신 글을 읽었고, 해와 달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고백했다(시 8:3). 우리도 시인처럼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들려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 특히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의 본분을 다할 수 있고, 올바른 성도의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경우들처럼, 반드시 신기한 소리나 환상이나 글씨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대부분 특별계시의 수단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 자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의 메시지나 기도와 묵상, 하나님의 섭리를 통해서도 계속해서 넘쳐나게 들려오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마음의 귀를 활짝 열어 놓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문 밖에서 우리에게 많은 음성을 들려주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음성이 그리울 때는, "주 예수 대문 밖에 기다려 섰으나, 문 굳게 닫아두니 참 나의 수치라"고 부르는 찬송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겨 보자.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개혁신앙과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한국개혁신학회 '개혁신앙과 대부흥운동' 심포지엄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은선 교수 / 안양대학교 기독교문화학과

들어가는 말

올해는 평양대부흥운동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이다.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평양대부흥에 대한 학문� 평가 작업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평가 작업 가운데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을 개혁 신앙이라는 신학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작업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평양대부흥운동을 신학적인 시각에서 평가하고자 한다면 평양대부흥운동의 전반적인 진행이 어떤 신학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한 평가를 위해서는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적인 성향을 파악하는 것과 함께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난 과정에서 어떤 신학적인 조류들이 영향을 미쳤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의 배경으로 학자들은 사경회와 기도운동을 공통적으로 들고 있다. 그리고 대부흥운동의 중요한 양상은 성령의 역사를 통한 죄의 회개와 경건한 삶을 들고 있으며, 중요한 결과들로는 교회의 양적인 성장과 교육열의 고조, 반상의식의 타파, 교회의 조직의 진전과 해외선교를 들고 있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평양대부흥운동의 배경으로 거론되는 사경회와 기도운동, 그리고 중요한 양상인 성령의 역사를 통한 죄의 회개와 거룩한 삶의 모습이 과연 개혁신앙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네 가지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전성천 박사가 주장한 견해로서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은 그들의 극단적 보수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구학파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성천 박사는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이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엄격한 교리에 집착하였고, 이러한 엄격한 입장의 고수에서 진보적인 성경관을 가진 김재준과 충돌하면서 한국교회의 분열이 야기되었다고 보았다. 둘째는 한철하 박사가 주장하는 견해로서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은 부흥운동을 찬성하고 목사들의 신학교육의 수준을 낮게 잡는 것을 볼 때에, 신학파라는 것이다. 셋째로 홍치모와 김영재는 한국 초기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구학파를 대표하는 프린스톤 출신들이었지만 부흥운동을 찬성하는 점에서 신파적인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넷째는 박형용박사의 견해로서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적인 입장은 청교도의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박 형용 박사가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이 청교도들의 신학적인 유산을 이어받았다는 주장은 두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하나는 엄격한 주일성수신앙이고, 둘째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직접적인 전도를 강조하는 청교도 신앙이라는 사실이다. 박 형용박사는 한국 초기 선교사들이 사경회를 하면서 순회전도를 통해 직접 전도에 힘쓴 것은 청교도 실천신학을 이어받은 것이라 지적한다. 그런데 최근에 김 홍만 교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다.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은 청교도들의 회심신학을 이어받아 부흥을 주장하는 구학파라는 것이다.

둘째는 평양대부흥운동을 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친 신학적인 조류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는데 영향을 미친 것은 1903년의 원산부흥운동의 시발이 되었던 남감리교회 소속 선교사 하디의 회심이다. 그리고 하디의 뒤를 이어 부흥운동에 가담했던 남감리회 선교사는 저다인, 크램 등 이었으며, 하디의 회심 이후에 스칸디나비아 선교회 소속의 프란손이 입국하여 그에게 부흥회 인도방법을 가르쳤다. 박명수 교수는 프란손이 바로 심슨과 연결되어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은 인물일 뿐만 아니라 남감리교 선교사들도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로서 한국교회 부흥운동에 웨슬리안 성결운동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박용규 교수는 ”조나단 에드워즈로 대변되는 개혁파 영적 각성 운동, 맥코믹 신학교 출신들로 대변되는 무디 부흥 운동의 전통, 언더우드의 경건주의 전통, 그리고 남북 감리교회의 전형적인 웨슬리 부흥운동의 전통이 어우러져 거대한 부흥운동의 물줄기를 형성한 것“이라고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평가는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의 유형은 교파를 막론하고 미국의 무디의 학생 자원운동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로 경건주의적이고 복음주의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신학사상은 각 교파의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무디의 3대 표어인 3R(인간의 전적 타락,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 성령에 의한 중생)을 믿었다. 이러한 근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각 교파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을 보수적인 복음주의라고 부르고 있는데, 개혁주의와는 어느 정도 연관을 맺고 있을까?

셋째로 평양대부흥운동의 발생은 한국교회의 성경번역과 보급과 함께 사경회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경회의 진행이 대부흥운동과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경회는 개혁신앙과 어떤 관련을 가지고 있는가? 넷째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주요한 모습 가운데 하나는 성령의 역사를 통한 철저한 회개운동이다. 이러한 철저한 회개 운동은 원산의 하디 회심 이후에 한국교회에 지속되어온 부흥운동의 주요한 모습인데, 이러한 회심은 개혁주의에서 주장하는 중생인가 웨슬리안 성결운동에서 주장하는 성령세례인가?

1. 한국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사상과 부흥운동의 상관관계

첫 번째로 제기된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파송된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적인 관점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핵심이라고 판단된다. 한국 학계에서 19세기 미국 장로교회의 구학파와 신학파에 대한 일반적인 서술은 무엇인가? 서론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가장 대표적인 견해가 신학파는 부흥운동에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였고, 구학파는 엄격한 칼빈주의 교리를 내세우며 부흥운동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1837년에 분열한 미국장로교회의 구학파와 신학파의 실상을 올바르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김홍만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19세기 미국의 구학파와 신학파는 모두가 부흥운동에 찬성했는데, 구학파는 신학파의 새로운 부흥운동의 방법론의 사용을 반대하고 청교도 회심 신학에 입각한 신파의 부흥운동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한다.

구학파와 신학파의 부흥에 대한 진정한 견해 차이는 청교도 회심신학에 근거하여 진정한 부흥을 추구하느냐 아니면 새로운 방법을 사용하여 감정주의에 입각한 부흥주의를 추구하느냐의 차이이다. 구학파는 피니의 부흥운동을 피상적인 회심을 끌어내는 부흥주의라고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청교도 회심 신학을 바탕으로 부흥을 추구했던 18세기의 신파의 전통을 계승했다. 미국에서 18세기에 일어난 제1차 대각성운동에서 회중교회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중심인물로 활동하였고, 장로교에서는 길버트 테넌트를 중심으로 통나무 대학(log college) 출신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1차 대각성운동에서 중심 역할을 한 이러한 인물들이 장로교회 안에서 부흥운동에 반대하며 엄격한 교리를 강조했던 구파와 충돌하면서 뉴브룬스위크 노회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뉴브룬스위크 노회는 목회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동부의 하버드 대학교나 예일 대학교를 대신할 새로운 학교로 뉴저지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뉴저지 대학교는 기본적으로 부흥을 지지하는 장로교의 신파의 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학교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학을 전수하기 위하여 세운 학교이므로 뉴저지 대학교는 3대 교장으로 조나단 에드워즈를 초빙했던 것이다. 뉴저지 대학교가 개명한 프린스톤 대학교의 학생들이 점차로 신학을 지원하는 경향이 줄어들자 장로교 신파의 목회자 육성을 위해 1812년에 설립된 신학교가 프린스톤 신학교였다. 프린스톤 신학교는 18세기 1차 대각성운동의 부흥 신학을 계승하여 신학생들을 양육하고자 설립된 학교였다. 프린스턴 신학교의 제1대 교장이었던 아치발드 알렉산더는 2차 대각성운동 때에 회심한 인물로 신파의 전통을 따르는 유명한 부흥사였다. 그러므로 그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길버트 테넌트의 전통을 따르는 부흥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에쉬빌 그린과 밀러 등도 이러한 유형의 부흥운동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신파 전통의 부흥운동을 반대하면서 새로운 부흥의 방법을 사용하여 부흥운동을 전개한 사람들이 찰스 피니로 대변되는 신학파였다. 그러므로 신학파는 19세기의 새로운 시대분위기에 발맞추어 인간의 자유의지의 능력을 인정하는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찰스 피니는 감리교에서부터 발전되어 나왔던 새로운 방법들을 채용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감정적인 설교를 하였고, 즉각적인 회심을 주장하였으며, 깊은 죄의 각성에 따른 회심보다는 설득을 중심하였다. 그리고 은혜를 사모하는 자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즉각적인 결단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1837년에 분열되었던 19세기 미국 장로교의 구학파와 신학파의 차이는 부흥운동을 지지하였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부흥운동을 하되 진정한 부흥을 추구하는 기준이 무엇이냐의 문제였다. 부흥을 추구할 진정한 기준으로 18세기의 1차 대각성운동, 더 나아가 영국의 청교도 회심신학의 기준을 따를 것을 주장한 것이 구학파였다. 반면에 부흥을 판단할 기준으로 새로운 측정 방법을 주장한 것이 신학파였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러한 구학파 신학을 대변했던 학교들이 프린스톤 신학교와 시카고에 세워졌던 매코믹 신학교였다.

그런데 1907년까지 한국에 왔던 미국 장로교 선교부의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프린스톤 신학교나 그 프린스톤 신학교의 영향을 받고 있던 맥코믹 출신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신학은 부흥운동을 지지하면서도 개혁파신학을 지지하는 인물들이었다. 동시에 한국에 온 장로교 선교사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19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진행되었던 1857-59년까지의 정오기도운동과 무디의 부흥운동와 학생자원운동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부흥운동들도 찰스 피니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개혁파의 영향을 받은 유형의 것들이었다. 무디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조하고 성령에 의한 회심을 강조하면서 부흥운동을 일으키면서도 다양한 교파의 사람들과 협력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부흥운동은 다른 교파를 배척하기보다는 협력하는 복음주의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으면서 인간의 철저한 부패 교리를 강조하는 개혁파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무디의 학생자원운동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왔던 장로교 선교사들은 말하자면 복음주의적인 개혁주의자들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교리 중심의 개혁파 부흥운동의 특성은 무엇인가? 개혁파 부흥운동의 특성은 청교도 회심 신학을 이어받으면서 부흥운동이 성령의 부어주심을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라는 인식과 함께 기도를 통한 준비를 강조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조나단 에드워즈의 1차 대각성운동에서 출발한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회심, 즉 중생의 체험을 부흥운동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는 회심을 전통적인 청교도 신학의 관점을 따라 율법에 의한 죄의 질책, 자신이 죄인이라는 겸비(humiliation), 회개의 과정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중생이 이러한 준비의 과정을 통해서도 일어나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을 인정하였다. 에드워즈는 중생의 회심은 성령의 직접적인 사역으로 일어나고 즉각적으로 일어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여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으므로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회심이 일어나며, 이러한 회심 후에는 성화의 삶이 따라온다고 보았다. 에드워즈는 청교도 신학을 수용하여 이러한 회심을 위해서는 성도들의 심령을 살피는 것(searching the heart)과 마음의 종교(heart religion)를 강조하였다. 에드워즈는 중생 체험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에드워즈를 위시한 친부흥주의자들에게 하나의 결정적인 경험이 있다면 그것은 회심의 경험이었다. 이러한 청교도의 회심론에 바탕을 둔 신학사상은 알미니안주의를 수용했지만, 웨슬리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웨슬리도 근본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통한 신생을 강조한 점에서는 동일한 점이 있다. 그리고 에드워즈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한 인간의 심령의 근본적인 변화를 통한 부흥운동을 주장하였고, 이러한 부흥운동의 전통은 19세기 프린스톤 신학교를 통해 전수되었으며,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무디와도 어느 정도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무디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능력에 의한 중생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중생 내지 회심의 경험이 1903년부터 한국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판단된다.

2. 평양대부흥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신학적인 조류들

둘째로 평양대부흥운동에 영향을 미쳤던 신학적 조류들은 무엇인가? 북장로교회에 왔던 선교사들은 대부분 구학파의 신학전통을 따르는 프린스톤과 맥코믹 출신이었다. 프린스톤과 맥코믹은 모두 같은 조류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교리적으로 칼빈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부흥운동도 찬성하였고, 동시에 다른 교파와 연합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복음주의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신학적인 입장은 다른 교파와 연합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진다는 점에서는 복음주의적이었고, 성경의 영감을 주장하며 교리중심적인 설교와 가르침을 통한 회심 체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경험신학을 추구하는 청교도 신학의 원리를 가지고 있었다. 회심 신앙의 경험을 추구하는 것은 청교도 신학의 유산으로, 이러한 청교도 신학의 유산이 경건주의, 웨슬리안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며 본류로는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 미국의 구파 전통의 부흥운동을 통해 한국의 장로교 선교사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므로 이러한 경험 신학을 추구하는 신학전통은 복음주의이면서도 더 근본적으로 개혁주의적이다. 물론 복음주의의 회심 신학을 주장하는 데는 신학적인 색채에 따라 회심 신학을 주장하는 흐름들은 다양할 수 있다. 한국에 들어온 장로교 선교사들은 복음주의적인 개혁주의 신학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면 감리교 선교사들의 신학적 배경은 무엇인가? 이 덕주는 “초기 내한 선교사들의 신학”이란 논문에서 부흥운동을 주도한 남감리교 선교사들보다는 북감리회 선교사들의 신학사상을 분석한다. 북감리회의 첫 선교사인 아펜젤러를 비롯하여 감리교 협성신학교 신학교 교수로 활약한 노블(W. A. Noble)과 스웨어러(W. C. Swearer) 등을 배출한 드루신학교는 "감리교의 사관학교"(The West Point of Methodism)라 불릴 정도로 엄격한 신앙훈련으로 유명하여 “학문적 훈련과 기도 생활을 중심으로 한 개인적 경건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드루 신학교의 졸업식의 절정은 애찬식이었는데, 그 시간에 졸업생들은 자신의 종교적 체험에 대해 공개 증언을 하였다." 드루신학교는 학문(이성)과 체험의 조화, 경건주의와 복음주의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원래 개혁교회 출신인 아펜젤러는 '머서스버그 신학'의 본거지였던 프랭클린 마샬 대학 재학 중 개인적인 중생의 체험을 한 후에 감리교회로 이적하고 '경건주의 신학과 신앙의 훈련장'인 드루신학교를 찾았다. 이와 같이 드루 대학 출신의 초기 북감리교 선교사들도 신앙 경험에 대해 열린 자세를 유지하였다. 박 용규 교수도 “북감리교 출신 미국 선교사들도 좀 더 폭이 넓었던 본국의 신학적 분위기보다 복음주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부흥운동에 대해 상당히 열려 있었다”고 평가한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남감리교 출신의 선교사들은 박 명수 교수의 상세한 분석이 잘 보여주는 바와 같이 대부분 복음주의적인 웨슬리안 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디는 처음에는 카나다 장로교회의 보수적인 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 무디의 학생자원운동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 왔던 독립 선교사였는데 1898년 이후에 남감리교로 옮겨가 1903년에 성령체험을 하고 무디의 영향을 받은 프란손을 통해 무디 스타일의 부흥회인도법을 배워 원산부흥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저다인은 하디와 함께 1902년부터 1906년까지 원산에서 일했으며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여 함흥과 목표의 장로교회의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하디가 1904년 안식년을 떠난 후에 송도에서 부흥회를 인도했던 크램(W. G. Cram)은 1898년 웨슬리안 계통의 에즈베리 대학은 졸업하였고 웨슬리의 전통적인 부흥운동, 즉 중생과 성령의 능력을 강조했다. 서울 잣골에서 사역했던 무스(J. R. Moose)도 성결운동가였다. 이와 같이 남감리회 소속 선교사들은 한국에 와서 성령체험을 했거나 미국에서 성결운동에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웨슬리안 복음주의 부흥운동의 후예들이었다.

그러므로 박명수 교수도 한국의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복음주의라고 정의하면서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를 미국 복음주의의 경험적 성격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자신의 출신 교파에 따른 교리적인 차이점은 있지만, 성령의 역사를 통한 체험 신앙의 추구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1903년부터 1907년까지의 부흥운동의 공통점이다. 이 덕주는 감리교 선교사들과 장로교 선교사들의 공통적인 요소로 경건주의의 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경건주의(pietism) 신앙은 웨슬리를 통해 경건주의에 맥이 닿아 있는 감리교 선교사들뿐 아니라 장로교 선교사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현상이었다. 초기 한국 개신교 선교사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경건주의 색채가 강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한 중생의 체험과 기도와 성경공부를 중심한 신앙훈련, 그리고 선교와 사회구제로 연결되는 윤리적 실천 등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경건주의 신앙 요소는 선교사들에 의해 촉발된 초기 부흥운동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18세기 '뉴잉글랜드 신학'이 감리교 운동과 연결된 종교각성운동이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었듯 한국의 초기 부흥운동도 종교각성운동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초기 부흥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1903년의 원산 부흥운동이 하디(R. A. Hardie) 선교사의 개인적 회개와 중생의 체험에서 시작되어 집단적인 회개운동으로 발전된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때부터 시작된 부흥운동은 하나님의 임재와 윤리적 갱신이라는 경건주의 신앙 분위기 속에서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경건주의와 복음주의, 웨슬리안 성결운동, 개혁주의의 신학 사상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령의 역사를 통한 회심을 강조하는 신학적인 공통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각 교파에 따른 교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성령의 역사를 통한 신앙의 체험을 강조하는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3. 사경회와 부흥운동의 연관성

셋째로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경회는 한국에서 어떻게 생겨났으며, 사경회와 성경 번역과 보급은 어떤 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사경회는 부흥운동 발생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한국 교회의 사경회는 네비우스 선교방식에서 생겨났다. 네비우스 선교 운동의 중요한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로 네비우스는 중국선교에서 현지인들을 고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옛 방법을 비판하고 자급, 자전, 자치를 주장하였다. 그가 이렇게 자급, 자전, 자치를 주장하면서 옛 방식에 의한 신도들의 신앙양태를 청교도 회심 이론인 마음의 탐구와 위선자 이론에 입각하여 분석하여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둘째로 그는 선교지 현실에 맞는 교회 조직과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을 주장하였다. 셋째로 그는 선교사들의 순회전도와 함께 교회 지도자 육성을 위한 성경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원칙은 네비우스가 1890년 6월에 한국에 와서 한국 선교사들과 두 주간 동안 세미나를 가진 후에 언더우드와 곽 안련이 정리한 내용에 잘 나타나 있으며, 1893년 1월에 장로교 선교부 공의회에서 채택한 10개 항에도 반영되어 있다.

네비우스는 특히 중국에서 주일 오전과 오후를 위한 경건회의 형태(form of exercise)를 네 부분으로 구성하여 실시하였다. 첫째는 모든 사람이 참석하기를 요망하는 비공식의 주일학교(informal Sunday school)이다.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인도자와 그 아래 있는 사람들의 지도 아래 개인적인 공부를 하는데, 중국어 문자를 배우거나 성경 구절을 외우며, 성경 이야기를 말하거나 혹은 요리문답 혹은 성경문제집을 공부한다. 둘째로 우리는 훨씬 더 공식적인 예배(formal service of worship)를 드린다. 이 예배는 찬송과 강해나 권면을 깃들인 성경봉독과 기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45분을 넘지 않는다. 셋째로 성경 이야기 경건회(Scripture Story Exercise)가 있다. 이것은 사람들을 지정하여 연속적으로 이야기하여,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 이야기에서 교훈과 의무를 끌어낸다. 넷째는 시간이 있으면, 요리문단 경건회(Catechical Exercise)를 가진다. 이것은 이미 배운 것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도록 계획되어 있다. 주기도문, 십계명, 선택된 성경 구절, 성경의 어떤 책, 혹은 자선의 의무 같은 주제들을 다룬다. 네비우스는 자신이 사역하던 중국 산둥에서 봄과 가을에는 순회전도를 하였고 겨울과 여름에는 학생들을 모아서 교육하였다. 초신자들을 40명 전도 선발하여 반으로 편성하여 교육하였으며, 이들에게 최소한의 비용만을 지불하고, 나머지는 스스로 부담하도록 하였다. 네비우스의 경건회의 방식 가운데 첫째와 둘째는 그대로 한국에서 시행되었으며, 여름과 겨울의 사경회도 그대로 도입되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1888년 스크랜튼 부인이나 언더우드에 의해 사경회가 실시되었는데, 네비우스 방식이 채택된 후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시행되었다. 스크랜톤 부인은 1888년 1월 이화학당에서 처음으로 어린 처녀 12명과 부인 3명이 모여 성경을 공부하여 사경회를 시작하였다. 언더우드는 1888년 12월부터 그의 사랑에서 여덟 명의 청년들에게 기독교 교리와 함께 성경공부를 가르쳤는데, 선교부에 이를 ‘단기 신학 교습’이라고 보고했다. 1888년 새문안교회 주일예배에 50명이 참석할 정도로 성장하고 한국의 전역에서 복음이 확장되어 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언더우드는 한 해가 지나기 전에 몇몇 한국인 사역자들을 집중적으로 양육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막 한 해(1888년)가 끝나기 직전에 8명의 한국인 사역자들이 자신들의 고향과 사역으로 돌아가기 전 교육을 받고 성령의 권능을 힘입도록 기도하기 위해 서울에 모여 함께 한 달을 보냈다.” 언더우드는 자신의 집에서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한국인 사역자들을 교육시켰는데, 이것이 후대 사경회의 모체가 되었다. 언더우드는 1887년 9월에 서울을 방문한 로스를 통해 이미 만주에서 시행되고 있던 네비우스의 방식을 듣고 난 뒤에 이러한 사경회를 실시하였다. 1890년 언더우드는 서울에서 사경회를 개최하여 한국인 7명을 한 달 동안 훈련시켰다. 언더우드의 집 남서쪽에 있는 작은 방에서 열린 첫 사경회에 참석한 이들을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 출신이 세 명이었고, 북부 출신과 황해도 출신이 각각 두 사람이었다. 그 다음 해에는 사경회 참석자가 전 해보다 배 이상이 늘어난 18명이었다. 그 중에서 경성의 서상윤, 홍정후, 의주의 한석진, 송석준, 구성의 김권근, 양순백, 문화의 우종서, 해주의 최명오, 장연의 서경조, 비성의 김병갑 등 한국교회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경회는 처음에는 서울에서만 시행되다가 1893년부터는 여러 지역에서 개별적인 사경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사경회가 가능한 것은 로스와 네비우스의 선교정책에 따라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일학교 활동과 연결되어 오전에는 성경교육을 실시하였다. 한국교회에서 성경번역은 양반들인 지식인들이 아니라 대중들(common people)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만주에서 로스와 매킨타이어가 한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성경을 번역할 때에 “오직 대중에게 적합한 것을 목표로” 하였다. 그러므로 만주에서 번역된 성경은 완전히 한글만을 사용하여 성경을 번역하였다. 일본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양반출신 이수정은 현토성경을 만들기도 하였고, 국한문혼용체의 성경번역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서울 표준어에 맞추어 새롭게 성경번역을 시도할 때에도 일반 대중을 목표로 하여 한글만을 사용하여 성경을 번역하였다. 이렇게 한글로만 번역된 성경은 일반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일에 시행되는 성경공부와 특별한 시기에 사경회를 열 수 있는 좋은 통로를 제공하였다. 이렇게 대중에게 적합한 언어로 번역된 성경은 국내에 선교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상당량이 보급되어 언더우드는 “씨를 뿌리러 왔으나 열매를 거두고 있다”고 고백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이 보급되고 한국성도들이 성경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한국기독교인들을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다. 한국교회는 이렇게 성경을 번역하였고, 이러한 성경이 한국교회의 부흥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한국교회에 성경이 번역되어 사용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네비우스의 선교방식이다.

한국의 부흥운동의 주요한 원인으로 순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사용하여 실시한 성경공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성경 공부는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개교회에서 진행된 성경공부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교회들이 연합하여 모여 진행했던 성경사경회가 있었다. 개교회에서 진행된 성경 공부는 매주 시행되었다. 이 시기에 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에서는 주일 오전에는 성경 공부를 하고 오후에 정기 예배를 드렸다.

1898년 연례 보고서에서 마펫과 그라함 리는 평양교회들에서 “두 개의 정식 주일 오후 예배, 성경 연구를 위한 5개의 아침 모임들, 두 개는 도시 밖에서, 두 개는 도시 안에서, 하나는 강 건너에서, 여성들을 위한 수요일 오후 성경 공부반, 하나는 도시 안에 있고 하나는 밖에 있다. 토요일 오후에는 성경 교사들을 위한 반이 있다. 마지막으로 특별히 언급할 가치가 있는 것은 교회의 정식으로 임명된 직분자들인 지도자들, 집사들, 그리고 선교사들의 지도 아래 수요일 저녁 기도회가 열린다”고 서술한다. 선천에서 1902년에 성경 연구를 위한 아침 회중은 연령에 따른 반들로 나누어진다. 고린도전서를 연구하는 동안에 전체 학교는 동일한 교제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남자들과 청년들이 고린도 후서를 공부하는 동안에, 여성들과 소녀들과 소년들은 마가복음을 공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지금 함께 마태복음 공부를 시작하고 있으며, 9개 등급의 반을 가지고 있다. 교사들의 모임은 매주 금요일 밤에 열린다. 이것은 다음 겨울의 성경 연구와 연관하여, 주일학교 교사들을 위해 하루에 한 시간 수업의 정규 사경회반을 가질 계획을 가지고 있다. 1902년에 평양의 교회들의 주일 아침 성경 공부반들은 다양한 채플들과 사랑방들을 흘러넘칠 정도로 많아져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다른 반들이 조직될 것이다. Chase 양은 선천에 도착한 직후에 교도 자매들에게 지적인 방식으로 복음을 제시하는 방법을 알기를 열망하는 것을 발견하여 한 주일에 세례자와 학습자들을 위한 두 개 반을 열었다. 지속적인 참고서인 성경과 함께, 그들은 “천국에 대한 안내”(Guide to Heaven)이란 논문을 연구하였으며, 이러한 특별한 작품으로 그들을 도와줄 본문들이 날마다 교육되었다. 이와 같이 당시에 교회에서 오전에 모여 성경공부를 하면서 전도훈련도 실시하였다.

그리고 선교 지부가 있는 중심 지역에 영수와 조사와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아 사경회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사경회의 중요한 목적은 교회 지도자들의 육성과 함께 전도활동이었다. 1898년의 연례보고서에서 “조사들과 영수들을 위한 겨울 사경회들의 특징은 교회의 영적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열렬한 복음전도 정신이다. 사경회가 열리는 동안 토요일 하루는 모든 참석자들이 도시 안과 주변에서 전도 활동에 전념한다. 일부는 도시 문들까지 갔고, 일부는 주요 거리들로 일부는 그들이 전도하고 책을 팔았던 근처 마을들까지 갔다.” 그리고 이러한 사경회에서 조성된 이러한 전도 정신은 지방 교회들로 확산되어, 신자들의 많은 새로운 그룹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이 이미 1898년에도 사경회는 평양에서 개최된 사경회에서 전도정신을 육성하여 지방으로까지 확산시켜 교회를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자들을 위한 사경회가 1898년 4월에 처음으로 열렸다. 자금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평양교회들의 도움으로 해결되어 24명이 참여하였다. 두 시간 반의 찬송 이외에 세 개의 반을 운영하였다. 베어드는 아침 기도를 인도하고 누가복음을, 다음에 리 부인이 마가복음을, 오후에 베어드 부인이 구약을 가르쳤다. 이러한 공부에는 평양 여성들까지 60여명이 참여하였고 “참석했던 지방 여인들은 기쁨에 가득 차서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의 이웃들에게 복음의 전파를 위한 열정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1월의 겨울 사경회가 끝난 후에 매일 사경회를 해 달라는 요청으로 특별사경회가 열렸는데 7명에서 20명이 참석했는데, 이 반도 “복음전파 사역에서 가치있는 요소가 되었다.”

1898년의 17개의 성경 공부반이 1899년에는 52개의 사경회가 열렸다. 25개는 선교사들이 참석하였고 27개는 한국인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4개의 대표적인 사경회는 평양에서 열렸는데, 남자반이 두 개이고 여자반이 두 개다. 11월에 열리는 이러한 여성반들은 그들이 성경 연구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연초에 평균 250명 정도가 참석하는 남자 사경회 반은 너무 커서 세 반으로 분반한다. 첫째 반은 로마서와 325년까지의 교회사를 공부했고, 둘째 반은 고린도 전서와 요한복음을, 셋째 반은 사도행전, 누가복음과 성례, 안식일 준수, 십일조 등등의 다른 특별한 문제들을 연구하였다.

여성들을 위한 봄 사경회는 4월 7일에 시작해서 18일까지 지속되는데, 50명의 여성들이 참석하였다. 이 여성반들은 둘로 분반하는데, 주제는 야고보와 마가와 누가복음이다. 여름반은 조사들과 지도자들이 모인다. 이 반에서는 구약의 교훈, 교회사, 신약성경 주석, 성경 연구 방법, 위생과 소요리문답을 다루었다. 1899년 2월에 휘트모아(Whittemore)가 그라함 리의 도움을 받으며 선천에서 12일 동안 사경회를 열었는데 269명이 등록하여 평균 200명이 참석하였으며, 남녀가 같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하루 저녁에 선교사 지시없이 자발적으로 단체로 길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전했다. 1902년의 지방에서 열린 사경회도 복음서의 내용을 가르치며, 가끔씩 주제 연구들이 사용되었다. 모든 방문된 곳에서, 여성들에게 복음을 조직적으로 제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과 관련된 소책자를 연구하는 시간이 할애되었다.

이러한 사경회 제도에 대하여 1904년의 연례 보고서에는 “우리들의 사경회”라는 제목으로 전체적인 내용이 개괄되어 있다. “전체 교회의 교육, 즉 청년과 노인, 식자와 무식자 등 모든 교인들의 교육은 성경을 주교재로 사용하는 사경회를 통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사경회의 목적은 성경 공부이지만, 기도, 회의, 그리고 실질적인 복음 전도도 이 사역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경회 방식은 새벽에 기도와 찬양으로 예배를 드리고, 아침 식사 후에 30분 동안 경건회를 가지며, 그 후에 반으로 나누어 성경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다른 성경 공부 시간과 찬양을 가르치는 시간이 있으며, 종종 오후 시간의 일부는 축호 전도를 위해 사용된다. 저녁에는 모두 연합하여 부흥회나 전도 집회를 갖는다. 성경공부 방식은 주제별, 권별 성경 공부 혹은 한 절씩 주석석으로 책을 정리하는 방법들 다양한 방식이 도입되고 있으며, 마지막 방식이 가장 인기가 있다. 한국인은 천성적으로 공부하고 가르치기를 좋아하므로, 이 방법은 한국인의 알려진 특징을 제대로 활동하는 것이다. 사경회의 목적은 무엇이고 어떤 선교 이론에 근거하고 있는가?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배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성경에 근거하여 전도는 더욱 권세를 가지며,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신앙은 성경적 근거를 가집니다. 사경회는 평신도와 지도자, 조사, 선교사 간의 상호이해를 가져왔으며, 교회의 남녀를 하나님의 말씀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군인으로 만들며, 교회 전체가 전도부대가 되게 하고,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케언즈(Carl Kearns)는 선천에서 일 년을 보내서 쓴 보고서에서 “한국의 북한 지역에서 격렬한 각성(rude awakening)이 있었는데, 바로 종교적 각성과 근대적 삶을 위한 각성입니다”라고 서술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천 교회는 중단없는 한 해를 보냈다”고 기술하였다. 의주에서는 “불신자 이웃에게 날마다 복음을 전하거나, 더 멀리 있는 미전도 지역 전도를 위한 국내 전도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에 만족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더 많은 개인적인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일어나” 날연보를 하였다. 이것은 11월의 어느 사경회에서 350일을 연보하면서 시작되었는데, 3개월 동안 평안북도 전역에서 3000일 가량의 자비량 전도가 행해졌다. 날연보는 “자기 집을 떠나 불신자 마을에 가서 자신의 비용으로 정한 날 동안 그곳에서 특별한 복음 전도자의 일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경회를 통하여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 복음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경대로 살아가야할 삶을 배웠다. 여기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비롯한 교회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경회를 통하여 한국인 교회 지도자들이 육성되었다. 이러한 사경회를 통하여 한국이 조사들이 육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이 교사로서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한국인들이 지도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사경회는 한국교회에 성경의 내용의 철저한 교육, 성경의 교훈에 따른 신앙생활, 복음 전도, 기도의 훈련, 한국 지도자 육성을 통하여 교회 부흥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전도활동은 성경말씀을 통한 개인전도의 실천이었다. 박형용은 이러한 전도활동이 대중집회보다는 개인전도와 요리문답교육에 힘썼던 청교도 목회와 전도의 실천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사경회에서 성령충만을 받기 위하여 꾸준하게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경회는 부흥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사경회는 성경공부와 기도회, 전도활동이 종합되어 있으며, 특히 성경공부를 통해 성경 내용과 함께 체계적인 전도법을 배워 전도하여 부흥을 준비하였다. 네비우스는 설교보다 교육에 역점을 두었는데, 이것은 형식주의를 조장하고 위선적인 교인들을 양산하여 교회의 성장과 진보를 방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경을 잘 가르쳐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육성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이 사경회는 네비우스의 원리를 따라 청교도의 회심신학을 따라 교육과 전도가 병행되어 개혁주의 원리가 시행되었다.

사경회는 이와 동시에 강력한 기도 운동을 통하여 부흥을 준비하였다. 선교지 교회의 특성이겠지만, 한국 교회의 사경회에서 성경의 교육과 함께 기도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되었다. 이러한 기도운동은 한국민족의 특성과 연관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기도회는 한국의 전통적인 샤머니즘의 기도 습관이 기독교와 만나 기독교의 경건으로 변화된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미 옥성득 교수는 샤머니즘과 도교의 영성이 한국 기도전통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사경회는 새벽기도와 함께 시작되었다. 새벽기도가 한국에서 언제 시작되었느냐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는데, 최근에 옥성득 교수는 새벽기도회가 이미 1898년에 열렸던 사경회에서 한국인 신자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장로교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1898년 여성성경반에서 베어드가 아침 기도회(morning prayer)를 인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xxii) 번하이즐은 1901년에 황해도 사경회를 인도할 때 사람들이 새벽 4시에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1902년의 선천 보고서에는 “매우 이른 아침의 첫 번째 소리들은 기도와 찬송의 봉헌(oblation)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가 뜨기 전에(before sunrise) 예배(devotion)를 위해 교회에 왔다. 이것은 북쪽 지방에서 일반적인 관습(common custom)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하늘 아버지로 나온 모든 말들에 절대적인(implicit) 신앙과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북쪽 지방에서 새벽기도는 일반적인 관습이 될 정도로 퍼져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1906년 9월의 존스톤 목사의 소개로 통성기도가 한국교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기도회가 바로 수요기도회이다. 언더우드는 1886년 1월부터 주일 저녁예배를 부흥회 성격을 띤 주중 기도회로 확대하였다. 이 주중 저녁 기도회에 소수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참석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기도회가 발전하여 수요예배로 정착되어 갔다. 물론 주간에 모이는 기도 모임도 개최되었다. 1898년 평양에서는 주일 저녁에 3개 예배가 한국인의 인도로 드려지고, 주중 낮기도 모임(week day prayer meeting)이 4개 모였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다양한 기도 모임은 1857-9년에 걸쳐 일어났던 정오기도운동을 체험한 선교사들이 다양하게 전개한 기도회와 한국인 특유의 심성이 결합되어 발생하여 교회 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4. 성령의 역사를 통한 회개의 성격

넷째로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가장 중요한 양상은 성령의 역사에 의한 강력한 회개 운동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역사에 의한 회개 운동은 이미 1903년 하디에 의해 시작된 원산 부흥운동에서부터 시작되어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에 의한 회개의 양상에 대해 감리교 선교사들은 성령 세례라고 말하고 있고, 장로교 선교사들은 성령의 부으심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물론 장로교 선교사들도 가끔씩 성령세례라는 용어도 사용한다. 당시에 선교사들이 전했던 공통적인 메시지는 죄, 회개, 구원, 성령으로 충만한 성결한 삶, 전도 같은 주제들이었다. 이러한 주제들은 19세기 후반 미국 복음주의가 전한 핵심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성령세례는 중생과 구별되는 웨슬리안 성결운동에서 말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성령세례와 중생(회심)은 동일한 것인가?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 동안의 남감리교 선교사들과 북장로교 선교사가 참여한 기도회에서 일어났던 하디의 성령의 체험과 회개를 통한 회심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스코틀랜드의 혈통을 이어받은 하디는 1890년에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1888년에 YMCA의 후원으로 한국에 파송되었던 게일(James S. Gale)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는 토론톤 YMCA의 후원을 받아 한국에 파송되어 8년 동안 활동하였고, 계약 기간이 끝난 후에는 의료 선교사를 찾던 남감리교로 옮겨가 남감리교 선교사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디는 1903년 당시에 남감리회 소속의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가진 인물이었다. 이 사실에 대해 이 덕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캐나다 출신 초기 한국 선교사들의 신학도 보수적이었다. 게일(J. S. Gale)·하디(R. A. Hardie)·펜윅(M. C. Fenwick)·에비슨(O. R. Avison) 등을 파송한 기독청년회(YMCA)와 이들의 선교 동기를 부여한 학생자원운동의 신학 입장은 1846년 런던에서 결성된 반(反) 퓨지주의(Puseyism) '복음주의 연맹'(Evangelical Alliance)에서 발표한〈교리적 근본〉(Doctrinal Basis)에 잘 나타나 있다. 게일을 비롯한 캐나다 출신 선교사들은 성경의 영감(靈感)과 절대성, 인간의 전적 타락, 신앙의인(信仰義認), 영혼의 불멸과 육신의 부활, 그리스도의 심판 등 보수적 '복음주의 원리'를 담고 있는 이 신앙고백을 공개적으로 밝혀야 했다.

그러므로 하디가 YMCA의 보수적인 복음주의 신앙을 가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사경회를 인도하다가 성령 체험을 한 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체험에 대해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라는 사도행전 2장 33절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고, “사역이 확장되지 않아서 특별히 자기반성과 자기비판을 하며 보낸 해였지만,” “치리를 소홀리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 해 보고서에서는 “성령께서 제게 임했을 때”라고 묘사하고, “성령충만의 실재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는 같은 보고서에서 “성령 세례를 받자마자” 강원도 지경대에서의 3년간의 실패가 육신의 노력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고, 그곳에서 열린 사경회에서 기존의 거의 모든 사람들과 신입 회원 여러 명이 회심하였고, 그것을 “성령의 능력이 은혜롭게 부어짐을 통해” 자신들이 기도해 온 일이 영화롭게 이루어졌다고 기술한다. 이러한 설명의 내용을 볼 때, 하디는 치리를 엄격하게 하고 자신을 살피는 청교도적인 특색을 나타내는 가운데 자신의 성령의 체험을 성령세례라고 설명하면서 동시에 성령충만을 경험했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하디는 이미 세례를 받았으므로 그가 말하는 성령세례는 참된 회심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경회에 대해 메리 놀스는 “이 기간은 마음을 살피면서 하나님께 더 나아가는 기간”이었는데, “우리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축복이 우리 위에 부어졌습니다 --- 원산에서 부흥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프란손이 떠난 후에 하디가 인도한 집회에 대해서 “성령께서는 탐조등으로 우리교회를 철저히 살펴보시면서 “성전을 정화시키셨습니다”.” 성령의 역사는 빛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침투하여 그들의 감추어진 교만, 악의, 사기 등 갖가지 죄를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구원을 가지지 못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집회가 끝나기 전에 자기가 참으로 하나님 나라에서 태어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더 깊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몇몇 사람들은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케이블은 하디가 제물포에서 열었던 부흥회에서 “말씀 선포가 성령의 큰 능력과 임재 속에서 행해져서, 죄의 무시무시한 힘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예수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집회에서 사람들은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였으며, 주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싶다는 깊고 간절한 소망을 표현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성령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는 “이것이 우리 사역 전체에 임할 대부흥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확신한다.” 크램은 1905년 송도에서의 부흥에 대해 설명하면서 “모든 설교에서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은 개인적인 자각의 문제라는 사실을 특별히 강조했으며 거듭남과 성령의 증거와 관련된 교리를 분명하게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그러자 죄에 대한 뉘우침이 사람들을 사로잡는 “옛 시대의 부흥”이 임했다. 그는 “불신자의 마음이 구세주의 얼굴 빛을 발견하는데 여러 해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죄를 뉘우치게 하심은 확실하고, 그 분이 모든 진리 가운데 인도하시겠다고 약속했으며 우리는 그러한 인도를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한국교회가 전국으로 확산되는 부흥의 계절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설명에서 드러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죄인들의 죄에 대한 회개가 일어나며,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한 회개를 통한 회심이 그들에게 중요한 관심사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러한 성령의 체험들을 성령세례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회심의 특별한 의미로 성령세례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크램에게서 즉각적인 회심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디를 비롯한 남감리교 선교사들의 성령세례가 성결의 능력을 체험하는 경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설명들은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통해 죄를 회개하여 진정으로 거듭하는 회심의 체험과 그로 인한 성령충만의 경험을 성령세례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청교도들의 회심 신학을 가지고 진정한 회심자를 얻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진정한 회심자를 얻기 위해 복음전도 사역을 강력하게 진행하면서 철저한 교리교육을 바탕으로 한 원입교인을 위한 학습 교육과 세례교육을 통하여 참된 회심을 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자 하였다. 그리고 원입교인들부터 안식일을 철저하게 준수하도록 지도하고 엄격한 교회 치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들을 주일학교 교육과 사경회를 통해 교육하고 그러한 내용을 담은 소책자들을 저술하여 교육시켰다. 그러므로 장로교 선교사들은 청교도 유산으로부터 영혼을 깨워 회심자를 얻으려고 복음전도 사역을 시행하였다. 장로교 선교사들은 이러한 교리중심의 복음 전도 사역과 6개월에서 2년에 걸친 학습 교육을 통해 참된 회심자를 얻고 그들을 통해 참된 부흥이 일어나기를 소망하였다. 그러므로 선교사들은 성급하고 믿으려고 생각 없는 결정의 경우에 생각할 시간을 가지도록 추천하였다.

사무엘 마펫은 20주년을 기념하는 논문에서 복음전도의 이러한 규정을 확정하였다. 복음전도 사역의 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① 죄, 그리고 처벌, 죄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설명하는 것 ② 회개의 실재와 진실한 회심자에 대한 사죄의 선언을 설명하는 것 ③ 성령의 중생하는 사역의 실재, 구원의 하나이자 유일한 길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앙의 실재- 초자연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 ④ 한국인들이 하나님의 실재, 용서와 구원을 위하여 그 분에게 오는 어떤 사람이라도 구원하시는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심원한 확신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여기서 중생을 통한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는 선교정책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는 선교 정책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성경 말씀의 능력이라는 확신을 강력하게 피력하였다. 그는 심지어 개혁도, 개화도 기독교가 아니라 죄로부터의 구원이 복음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선교사는 강한 믿음을 가져야 하고, 선교사 자신의 영적인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5가지 원칙을 정한 후에 방법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그는 개인적인 접촉을 하는 사랑방 전도를 선호한다. 그는 전도와 회심을 위해 성경을 사용할 것과 세례문답교육, 지속적인 복음전도 정신 주입, 사경회, 마지막으로 훈련된 조사, 전도인, 그리고 목회자의 개발을 제시한다. 그는 특히 성경을 설명하는 도구나 성경 공부로 이끌기 위해 소책자를 사용해야 하는데, 네비우스의 예수교문답, 구세론, 장원량우상론, 천로지남을 사용하고, 글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존스 여사가 집필한 초학언문을 활동한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장로교 선교사들은 청교도 회심신학에 입각한 부흥을 추구하였으며, 평양대부흥운동 이전에도 영적 각성에 대한 여러 건의 보고가 있었다. 평양교회가 영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은 청일전쟁 직후였다. 전쟁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고 영적 각성의 움직임이 북부 전역에 확산되면서 평양은 한국 교회를 이끌어가는 중심부가 되었다. 기포드는 이와 같은 평양의 급속한 확장을 “놀라운 전진 운동”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렇게 점진적인 영적 각성의 분위기 속에서 1901년에 열린 사경회에 대해 사경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여(filled with the power of Holy Spirit)” 이러한 그룹들을 효과적으로 계속하여 가르치고 성경 지식에서 교회의 무지한 사람들을 급속도로 발전시킨다고 설명한다. 1902년에 열린 여러 사경회들은 성경 연구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과 모든 곳에서 성경 진리의 더 나은 이해는 이 사역의 포괄적이고 영적인 영향력을 증언하고 있다. 1902년에 12월 17일부터 31일까지 열린 남자들을 위한 겨울 사경회에는 713명이 등록하였는데, 이러한 성경 공부에서 성경의 각권들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사역과 주제 별 연구가 취급되었다. 이 보고서를 종합하면서 하나님이 문을 여셨으며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기회라는 서술로 끝을 맺고 있다.

북장로교 선교사들의 사역 속에서 공식적으로 보고된 첫 번째 부흥은 1903년 2월 부산 선교부의 보고였다. 이 선교부 소속의 사이드보담(R. H. Sidebotham) 선교사는 1890년 선교 시작부터 1902년까지 만족스러운 숫자적이고 영적인 성장이 없다가 1903년에 들어서 사람들이 기도회와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고하였다. 1903년 2월에 웰본(Arthur Welbon) 선교사는 배천에서 10일 동안 진행된 사경회에서 강한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사람들이 죄로 인한 괴로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렸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고, 죄에 대한 분명하고 무서운 결과를 깨닫는 새롭고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1903년 12월에 강원도 순회 전도 결과에 대해 복음이 들어간지 3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영적 각성이 일어나서 마을마다 주일을 엄격하게 지키고 복음의 빛에 충성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평양선교부는 1902년 이래 매년 1월에 신년 성경공부반을 개설했는데, 1904년에 성경공부반 참석자들이 오전에 성경을 공부하고 오후에는 가가호호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이로 인해 저녁 집회에 수백 명의 불신자들이 참석하여 복음을 듣고 도시 전체가 복음에 대한 응답이 고조되어 이 해 선교역사상 가장 많은 1436명이 회심했으며, 이러한 영적 움직임이 계속될 것이라고 하여 부흥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1904년 겨울 상인들을 위한 사경회에서 우리가 교회에서 경험했던 가장 큰 각성(greatest awakening)이 일어나, 이것은 절망감을 변화시키고 커다란 영적인 고양을 가져왔던 영향력의 절정이어서, 교회는 전보다 훨씬 더 견고한 토대 위에 서게 되었다. 이 사경회 2일째 날에는 2000명이 참석했으며, 자리가 비좁아 수백명이 돌아갔고, 기독교인들은 불신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75명이 일어나(rose) 기독교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이 집회는 러일전쟁으로 중단되었는데, 관리, 장교, 하층관리, 학자들, 상인들, 예술가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여 크게 감동을 받았다(greatly impressed).

이렇게 장로교와 감리교가 같이 부흥을 경험하는 가운데 복음주의 선교공의회에서 1905년 말에 1906년의 신년부흥회를 개최하는데, 교회 내의 사람들의 영적인 각성을 목적으로 할 것을 주문한다. 사역이 깊어지면 널리 퍼지는 일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 부흥회에서는 성경공부반을 진행하더라도, 머리보다는 마음을 가르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할 것을 권장한다. 즉 죄, 회개, 고백, 죄의 용서, 구원의 확신같은 교리를 제시하고, 교인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선물을 실제로 소유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가운데 1906년 신년 사경회 겸 부흥회가 열려 죄의 고백을 동반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 절정으로 1907년 1월 14일과 15일에 걸쳐 평양대부흥이 일어났다.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날 때, 장로교 선교사들이 이것이 지나친 감정의 고조로 이어지지 않도록 중간에 찬송을 부르며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평양의 대부흥은 단순한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역사로 일어난 회개운동이었다. 이것은 단순하게 평양 장대현 교회의 역사로 끝나지 않고 평양시내의 여러 학교들로 확산되었고, 이 부흥운동을 감정의 고조라고 비판하던 이은승의 남산현교회로도 확산되어 갔다. 그 후에 이 부흥운동을 1월에서 6월에 걸쳐 한반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만주와 중국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러므로 이 부흥운동을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 가운데 일어난 죄의 회개운동이었다. 그리고 이 부흥운동에 대하여 1908년에 이 길함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를 방문하여 부흥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던 하밀 박사(H. M. Hamill, D. D.)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일은 감정적인 것이 당신의 종교에서 강조되는 것을 믿지 않거나 허용하지 않는 당신 자신 같은 냉정하고, 차분한 장로교도들이 여러 주일 동안 인간의 감정의 그렇게 거대한 격동의 특징을 나타내는 집회를 인도했고 참석했느냐 하는 것”이라고 질문하였다. 이 질문에 대해 이 길함은 회상에 잠기는 엄숙한 표정으로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어느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관습적인 방법이 아니라고 말할 때 당신은 옳다. 그러나 당신은 ‘인간적인 것으로’ 이것을 말할 때 잘못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초자연적으로(supernaturally) 왔으며, 우리가 그것을 통제하고자 원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를 일상적인 조건들 하에서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고 대답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의 고백들을 통하여 그들은 중생의 체험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부흥운동은 인간들이 어떤 목적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였다. 감리교의 부흥운동을 개관하는 레너드의 글은 이러한 점들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평양에서 장로교에서 부흥운동이 먼저 일어났을 때 남산현 교회의 이 은승목사가 죄를 고백하는 부흥운동을 반대하였으나, 결국의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로 부흥운동에 동참하게 되었다. 다른 여러 사례들에서 반대자들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도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통해 회개의 역사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흥운동과 회개운동은 미국의 변경의 캠프 집회와 같이 불신자들을 모아 놓고 감정적인 설교를 하여 그들의 회심을 유도했던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리고 찰스 피니의 인간의 의지의 능력을 강조하던 부흥운동과도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은 청교도 회심신학을 토대로 사역을 해 온 장로교회에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통해 진정한 회개를 통한 회심을 체험한 것으로 판단되며, 이것은 1903년부터 원산부흥과도 공통점을 가지는 것이다.

나가는 말

1907년의 평양대부흥운동은 1903년 하디의 성령체험을 통한 회심으로부터 일어난 원산부흥운동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의 정점이었다. 이러한 평양대부흥운동은 개혁신앙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잠정적인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평양대부흥운동은 죄의 질책, 겸비, 회개를 통한 진정한 회심을 추구하던 청교도 신학을 이어받은 18세기 미국1차 대각성운동의 신파의 정통을 이어받은 19세기 2차 대각성운동의 구학파 전통을 가지고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의 수고의 결실로 일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평양대부흥운동은 근본적으로 청교도 회심신학을 토대로 하여 일어난 부흥운동이었다. 청교도 회심신학을 토대로 진정한 회심을 통한 부흥을 추구했던 구학파 전통을 가진 프린스톤 신학교와 맥코믹 신학교 출신들이 중심이 된 북장로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선교활동은 그들의 주일학교 교육, 사경회 교육, 학습교인 교육, 세례문답교육, 그리고 소책자들의 저술에 반영되어 나타났다. 그들은 이러한 다양한 활동에서 인간의 죄의 심각성과 죄의 두려움, 그러한 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할 필요성과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로 인한 회심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활동이 열매를 맺어 1903년부터 부분적인 영적 각성과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하다가 1905년의 장감연합의 복음주의 연합공의회를 결성하여 전국적인 부흥회를 개최한 후에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물론 1903년의 원산의 감리교의 부흥운동은 보수적인 남감리회 출신 선교사들을 통하여 진행되었다. 이들도 근본적으로 자신들을 살피며 엄격한 치리를 시행하는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통한 회개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그들은 이러한 활동을 성령의 세례라고 표현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성령세례는 중생과 구별되는 제2의 축복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진정으로 거듭나는 중생 내지는 회심으로 보인다. 그리고 평양대부흥운동 당시의 성령의 역사를 통한 강력한 회개 운동도 진정한 회심의 역사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한 회개운동으로 전개된 1903년부터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까지의 핵심적인 양상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진정한 회심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면에서 동일한 측면이 있다. 물론 그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배경이 되는 각 교파의 교리의 차이는 존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흥운동이 성령의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라는 면에서 동일하고, 그러한 성령의 역사가 회개의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도 동일성은 있다. 이러한 면에서 양 교단의 협력을 통한 복음주의적인 성격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체험적인 신앙을 추구한 점에서는 통일성이 있다.


 

터툴리안(160-220)의 진리 수호  

 

터툴리안은 로마 법정의 변호사로서 기독교인들이 순교 당하는 것을 보고 회심하였다. 그는 복음을 위협하는 이단에 대해 강력하게 변론하며 바른 교리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피력하였다. 라틴 기독교 신학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가 살던 당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46-211) 황제가 기독교를 믿지 말라는 칙령을 내렸다.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엄벌하라고 명하였다. 이때 이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방해하며 거리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시위를 하면서 기독교는 사회 악이라고 하였다. 이때 터툴리안은 기독교 신자들을 향하여 신자라면 누구나 당당히 나서야 한다며 순교를 권하였다.

 "우리는 죽음을 정복합니다. 그때가 바로 승리하는 때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자는 고난 당한 예수님의 신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핍박하는 황제와 이교도들을 향해 외쳤다.

"당신들이 우리를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교회는 더욱 풍성한 추수를 거두게 될 것이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 성장의 씨앗이다."

 그는 이교도의 영향을 받는 기독교를 향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였다. 그는 믿음은 이성을 앞선다고 주장하였다. "한 본질에 세 위격이 있으며 인격적인 면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구별되지만 한 본질로서 통일성을 이루는 한분 하나님이다." "신앙의 문제는 이성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는 사도의 교훈을 계승하는 것이다." "신앙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전투이다."

 그의 작품 <이단론>, <마르키온 논박>, <발렌티안 논박>, <프락세아스 논박> 등으로서 이단에 대항하여 복음을 수호하였다. 그의 교리는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등의 위대한 교부들에게 도움을 주었고 니케아 공의회, 칼세돈 회의 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는 고령으로 죽는 그날까지 이방인, 유대인, 마르키오파, 영지주의와 싸우며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작성자 스데반 황/ 출처: 생명수 쉼터/한아름 님

이승구 교수 “오늘도 직접계시 주어진다는 것은 정통신학 정면 배치”
박용규 교수 “요즘도 잘못된 종말론 난무…교리교육 강화 중요하다”


근래처럼 한국 교회가 이단 문제로 몸살을 앓은 적은 없는 듯하다. 과거에는 ‘새로운 이단의 발호’가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정통교회의 교단과 연합기관은 새로운 이단에 공동으로 대응하며 잘못된 신앙이 확산되지 않게 막았다. 지금은 이단들이 정통교회에 역습을 가하고, 정통교회는 이단 규정에 혼선을 빚고 있다.

“이단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 교회가 이단 문제에 너무 무질서하다. 누구보다 교수들이 나서는 것이 정확하고 공정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교회가 이단을 규정할 때 뒤에서 연구작업을 했던 교수들이 전면에 나섰다. 한국기독교사연구소 한국성경신학회에 소속된 박용규(총신대) 이승구(합신대) 김성봉(대신총회신학연구원) 박사와 전 신천지교육장이었던 신현욱 소장이 11월 26일 신반포중앙교회(김성봉 목사)에서 한국 주요 이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한국 교회 이단 사이비 운동비평 심포지엄1’은 요즘 한국에서 가장 폐해가 심각한 이단들과 주의해야 할 사상을 비판하고 대안을 마련하는 자리였다.

   
  ▲ 이단 심포지엄 발표자로 나선 박용규 교수와 신현욱 소장 김성봉 목사 이승규 교수(왼쪽부터)가 한국 교회 이단 규정과 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심포지엄은 이승구 교수가 신사도운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발제로 시작됐다. 이어 김성봉 목사가 논란이 되고 있는 <내가 본 천국과 지옥>이란 책에 대한 비판을, 신현욱 소장이 신천지의 실체와 대처방안을, 박용규 교수가 휴거설의 문제에 대해 발표를 했다.

이승구 교수와 박용규 교수가 진행한 강의의 핵심은 ‘특별계시는 성경으로 완성됐다. 더 이상 특별계시는 없으며, 특별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이단’이라는 것이다.

이승구 교수가 비판한 신사도운동이 바로 이런 경우다. 이 교수는 신사도운동의 중요한 인물인 피터 와그너(Peter Wagner)와 마이크 비클(Mike Bickle) 역시 ‘선지자’의 계시에 따라 일을 시작했다고 주장하고,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주장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계시가 주어진다고 하는 것은 장로교 신학과 정통 신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직접계시’라는 측면에서 ‘휴거설 또는 재림론’을 빼놓을 수 없다. 박용규 교수는 1992년 10월 다미선교회의 휴거 사건이 일어난지 2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한국 교회 안에 직통계시를 주장하고 신유 투시 예언이 난무하고 있으며 천국과 지옥을 직접 체험했다고 성도들을 유혹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더 문제는 당시 정통교회와 목회자 중에도 휴거설에 동조한 인물들이 상당수인데, 한국 교회는 이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렇게 잘못된 종말론에 휩싸인 이들은 이후 기회가 되면 제2 제3의 휴거설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용규 교수는 휴거설이나 유사한 사상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리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바른 계시관을 심어줘야 한다. 오늘날 직통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필요도 없다. 계시를 빙자한 예언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단언했다. 또한 박 교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경적 구원관 교육이 중요하고, 신앙생활의 기준을 환상 계시 예언 등 신비적 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봉 목사는 예장합동 교단 원로 목회자이며 신학교수까지 역임한 신아무개 목사가 쓴 <내가 본 천국과 지옥>에 대해 비판했다. 김 목사는 저자가 머리말에 “나의 지식과 함께 기도 중에 내가 본 환상과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 글을 쓰기로 한 것”이란 말을 통해서 이 책이 픽션(상상)임을 짐작케 한다고 지적했다. 즉 소설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런 자세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가 가져야 할 기본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라며, “예장대신 신학위원회에서 조사를 하고 교단 차원에서 금지하도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신현욱 소장은 신천지의 기본교리부터 조직현황, 신천지 핵심교리에 대한 반증, 신천지 포교전략, 대처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발표했다. 신 소장은 “이단의 문제는 결국 우리 자신에서 찾아야 한다.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바른 교리교육으로 이단에 대해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단 규정 ·해제 너무 무질서”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 최소한 검증도 없어


한국 교회의 이단 사이비에 대해 심포지엄을 개최한 후 발제자들은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발제자들은 한목소리로 한국 교회가 이단을 규정하고 해제하는 것이 너무 무질서하다고 지적했다. 이단 문제를 정치적 목적으로 접근하고, 회심자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도 없다고 우려했다.

박용규 교수는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교단을 가입시키는 문제가 발생한 것에서 보듯, 한국 교회에 이단 문제가 무질서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교수들이 이단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됐고, 내년 봄 두 번째 이단 심포지엄을 개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의 목적은 이단비판이 아니라 바른 신앙과 가르침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한국 교회에 이슈가 되는 이단들에 대해 심포지엄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단 문제와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이단 회심자에 대한 검증 부족과 이단을 옹호하는 세력들이다. 신현욱 소장은 “최근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교단 세탁’이다. 이단으로 규정됐거나 의심받는 사람이 회심했다고 말하고 교단 이름을 바꿔서 정통교회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를 교주처럼 떠받들던 그 교단의 목사들에 대해서는 검증도 없다. 이렇게 회심을 위장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구 교수는 이단 규정과 해제에 대해서도 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단에 대한 규정과 해제는 전적으로 교단 차원에서 진행하고, 그 권한을 기독교연합기관에 맡겨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단을 규정하고 해제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정치가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연합기관에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 기독신문
2012년 11월 27일 (화) 13:11:05 박민균 기자 min@kidok.com

시대의 대적들을 헤쳐 나가는 칼빈주의 돼야


김재성 / 합동신학교 교수



오늘의 한국교회 안에는 자신의 정통신앙과시하기 위해서 보수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신학의 원리로서는 칼빈주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그러나 명맥만 칼빈주의자로 말할 뿐이지, 역사와 사회에 책임 있는 영향을 미쳤던 칼빈주의의 정신과 신앙 을 실제적으로 알고 되새기는 경우는 매우 부족하다.


오늘의 교회는 매우 심각한 고목화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과 유럽의 동방정교회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심지어 칼빈주의 교회들마저도 생명력과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명목만 개혁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거대하고 교만한 개혁주의에 대해서 현대인들은 점차 회피하고 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에는 너무나 거대해서 어찌할 수 없는 공룡처럼, 아무런 변화와 반성이 없이 굳어져가고 있다.


이 글에서 필자는 칼빈주의가 공헌했던 신앙적 유산을 간단하게 돌아보고 미래적 과제를 제시하려고 한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가를 밝혀주지 못하고,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성공의 신학’에 휩싸여서 천박해지고 피상적이 되어가는 현상을 극복해가는 또 하나의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프란시스 쉐퍼, 「20세기 말의 교회」 39쪽 MichaelScott Horton, Made in America, 「미국제 복음주의를 경계하라」 서울 나침반, 1996을 볼것 ).

진리의 위기에 대처한 칼빈주의의 공헌

칼빈주의가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을 전후로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였는데, 이는 스위스의 독립도시에서 나타난 지도자들의 헌신과 신학적 감화 때문이었다. 종교개혁은 오래 지속된 친리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었고,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간섭으로 신앙의 부활과 삶에의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16세기에 칼빈을 중심으로 체계화되고, 17세기에 발전되었으며 20세기초반까지 그 영향이 지대했던 칼빈주의에는 중요한 신학적 원리들이 있다. 첫째는 만물이 주님에게서 나오고 주님으로 말미암고 주님께로 돌아간다(롬 11:31)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주진 강조을 강조한 것이다. 둘째로 성경을 최상의 권위로 인정, 신앙과 인생과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는 유일한 기초와 근거로 강조했다는 것이다.


셋째로 인간은 아담의 타락이후로 본질적으로 부패하였다는 성경적 인간관을 밝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게 됨을 강조한 것이다. 넷째는 구원을 주시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노력마저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주장한 것이다.


다섯째는 교회의 귄위와 성도의 자유를 완전히 인정하며, 질서를 위해서 권징을 실시하고, 목사와 성도의 대표인 장로로 당회를 구성하여 일반성도들의 참여의 자유를 존중한 것이고, 여섯째는 정부와 국가간의 관계에서국가는 교회를 지배할 수 없고,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자주권을 행사한다고 하여, 특히 정당한 교회의 저항권을 높인 것이다. 일곱째는 성도들의 성실하고, 근면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높이 승화시킨 것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여 경건에 이르는 삶을 통해서 윤리적인 생활을 권고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통해서 전인격적 구원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같은 칼빈주의의 원리들은 제네바의 교리문답서(1537, 1545),하이델베르그 신앙고백 (1563),벨직신경(1561), 제2차 헬베틱 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1643-48)등의 문서를 통해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시대마다 거센 도전에 직면하여왔다.

칼빈주의가 헤쳐나간 물결들


먼저는 알미니안주의의 도전을 들 수 있다. 칼빈주의의 영향이 확대되어가고 있을 때, 칼빈주의에 대한 중요하고도 커다란 진리의 위기는 알미니우스(1560-1609)를 추종하는 자들에게서 나타났다. 이들은 1618-1619년에발표된 「돌트신경」 을 만들어낸 칼빈주의자들, 즉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개혁신앙의 영향력에 걸려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교적 수월하게 정돈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강조했던 것은 먼 미래로 볼 때, 위기의 첫 시작이었다.돌트신경은 이른바 칼빈주의 5대교리라고 일컬어지는, 구원론을 확립하였다. 즉 인간의전적인 부패, 무조건적인 선택, 불가항력적 은혜, 제한속죄, 성도의 궁극적 견인 등이다.

또한 뉴잉글랜드에서도 칼빈주의가 헤쳐나가야 할 파도가 있었다. 그것은 청교도의 변질에 관한 것이었다.
칼빈주의는 영국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마틴 부서와 하인리히 불링거, 그리고 칼빈이 미친 영향으로 엘리자베드 여왕의 통치기간(1558-1603)을 전후로 해서 칼빈주의 사상이 널리 퍼졌다. 17세기에는 극심한 박해로 인해서 많은 청교도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1625년 죤 윈트롭이 청교도의 대표로 선호한 표어는 "언덕위에 빛나는 하나님 나라도성의 건설"이었다. 영국 국가교회(성공회)


에 대한 철저한 순수성을 부르짖었던 청교도들은 금욕적이고 세상에 대한 적극적인 개혁이 불탔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였던 루이스 (C.S. Lewis)는 말하기를 "청교도들을 매료시켰던 인물은 위대한 신학자 칼빈이었다"고 했다.


청교도들은 세가지 조건을 근거로 시민권을 보장하였다. 즉 회심체험, 건전한 칼빈주의 교리의 고백, 그리고 신령한 경건생활이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인가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하였다.


그러나 3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미국에온 초기 이민자들이 죽거나 영향력이 감퇴하자 새로운 세대는 절충주의 중도노선을 택하게 되었다. 이것은 "반언약제도(Helf-waycovenant)"라고 불리워진다. 믿지 않는 부모라도 만약 자신들의 삶이 방탕하지 않고 뉴잉글랜드 교회의 기본교리만 따른다면 그들의 자녀들도 세례를 줄 수 있다는 허락이다. 심지어는 죤 코튼의 아들이던 메터 코튼 목사에 의해서 중생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성찬은 개방되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청교도들이 채택한 국가의 제토나 체제가 그들이 영국에서 그렇게 비판하던 바로 그와 똑같은 제도와 체제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칼빈주의의 대몰락은 엘리자베드 여왕의 절충주의(via media)를 닮아 타협주의로 바뀌고 말았다.


1636년에 세워진 하바드대학에는 점차 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순수한 목표를 잃어버리고, 신학적으로 변질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회중파의 유니테리안 거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1746년 통나무대학에서 승격된 뉴저지대학이 확대되어 1755년 프린스톤대학으로 청교도사상의 명맥을 이어오다가, 다시 진화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1929년 웨스트민스터가 또 다시 설립해 나가야만 되었다.


진리는 더 이상 뉴잉글랜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고, 하나의 학설로 전락하고 말았다. 칼빈주의가 독립운동 직전까지는 희미하게 나마 빛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에드워드의 대각성운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1734-5년의 대각성운동으로 뉴잉글랜드 청교도 목사들은 심오한 신학적 깊이와 감화력 있는 설교로 큰 교육적 사명을 다해가고 있었으나, 점차 칼빈주의적 정통신학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기울이면서, 지적인 사고체계마저도 무너지고 말았다.

이성과 자유의 물결에 직면한 칼빈사상

18세기 유럽대륙에서는 독일에서 루터파의쇠퇴로 인하여 종교개혁이 영향을 잃자, 남부에서도 이탈리아, 스위스에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가졌던 인간에 대한 낭만적이고자율주의적인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쟝 쟈크 루소와 임마누엘 칸트(1724-1804)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칼빈주의는 사실상 거의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일부 소수의 신앙으로 몰락하였다. 1775년부터 1785년까지 미국의 독립전쟁이 있었고, 이 때부터 청교도의 전통은 사실상 빛를 잃었다. 이 시대를 주도한 인물들은 모두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칼빈주의에 도전과 시련은 20세기로 넘어오면서도 점증하였다. 칼 마르크스(1818-1883)와 레닌(1870-1924), 트로츠키(1878-1940, 스탈린(1879-1953)등에 의해서 점차사회주의와 공산주의로 변질되어 나타났다.

부흥운동과 감정주의의 도전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을 추구하는 칼빈주의자들에게 거센 민중종교와 대중종교의도전이 불어닥쳤다. 창조주대 피조물의 관계를 중요시했던 인간관은 사라지고,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치"라는 개념이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는 정신보다도 우위에 서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웨슬리안 부흥운동이 가져온 피해가 컸다.

18세기 영국의 사회개혁을 낳았다는 존 웨슬리(Wesley)와 찰스 웨슬리


(CharlesWesley)가 주축이 된 부흥운동은 「값없이 받는 은혜」라는 소책자를 중심으로 칼빈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 책에는 하나님의 주권이나 택하심에 대한 언급이 없다. 흔히 부흥운동이 많은 사람들을 회심시켰다는 결과만 내세우면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곤 한다. 그러나 부흥운동은 종종 진리의위기를 몰고왔다. 부흥운동이 몰고온 천박한 열정주의를 통해서 사람들은 쉽게 열광하였고, 칼빈주의는 이들을 외면하게 되자 점차사회적인 주도세력으로부터 결별하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의 교훈이자 극복의 과제로 한국교회 내에서도 부흥운동의 폐해를 주목해야만 한다.


죠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가 뉴잉글랜드와 신대륙, 그리고 영국을 오가면서 칼빈주히의 신학에 근거한 복음을 감명 깊게 전파하였다. 휫필드는 교파에 대해서는 매우 관용적이었다. 그러나 웨슬레의 신학에 대해서 크게 이의를 제기하였다. 제랄드 크래그의 설명은 정곡을 찌르고 있다.


"휫필드가 보기에는 알미니안주의는 죄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를 모두 희석시켰다는 사실이 명백하였다. 알미니안주의는 사람들을 자신만만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선택(예정)은 사람들에게 세상적인 안전을 추구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경향이 있었다. 칼빈주의가 인간의 모든 희망을 짓밟아버리고 무관심을 고조시킨다는 웨슬레의 주장은 모두 옳았는가? 그 반대인 알미니안주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생명력 있는 개념을 모두 내어버리지않았던가! 웨슬레는 자기 친구인 휫필드에게 자네의 하나님은 나의 악마야' 라고 가시 돋힌 말을 한적이 있었다"(Gerald R. Cragg, e Church and the Age Reason, New York: Penguin, 1985, P. 145).


에드워드와 횟필드는 개인주의적인 부흥운동보다는 공공에 봉사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하나님나라의 건설자로서 역사의식을 고취하였다. 개인적인 회심만이 아니라 사회의 정의와 사회복지의 이념을 함께 강조하였다.


칼빈주의는 유니테리안주의로 넘어간 뒤에, 웨슬레안 알미니안들에 의해서 세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칼빈주의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행 16:30)라는 외침에 대해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서만 가능하다는 답변이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칼 하게도 위대한 칼빈주의 설교자 죠나단 에드워드의 손자인 드와이트(Timothy Dwight)가 제1차 대각성운동의 신학을 변질 시키는 데 가장 선봉에 섰다는 점은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다. 선지자 엘리의 자손들이 타락했고, 사무엘의 자식들이 그러했으며, 위대한 지혜의 사람 솔로몬의 아들들이 그러했다는 성경의 교훈처럼 세대를 이어서 바른 신학을 전수하기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찰스 피니(Charles Finney, 1792-1875)가 쓴 조직신학에는 인간의 테크닉에 의존하는 많은 언사들이 강조되고 있다. '우리 주의 많은 종들이 역사하는 복음을 부지런히 추구해야 한다. 중생을 효과있게 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죄인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을 하기에 요구되는 각종 기능과 자연적 성품을 가지고 있다. " 피니에게는 회심과 성화의 과정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의 테크닉에 의존하고 있었다. 부흥은 기적이 아니며 수단을 올바로 사용한 결과이다(Finney,Systematic Theology, reprint: Minnea-polis: Bethany, 1976.서문).


19세기 말 드와이트 무디는 구두 세일즈맨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전도자로 회심하였다. 따라서 그에게도 역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방법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든지, 죄인들을 회심시키면 되는 것이다. 전도자 선데이도 역시 극적인 회심을 강조하면서, 어떻게든 인간의 의지를 발휘하여 회심하도록 요청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간섭보다는 인간의 인과법칙에 우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인간의 종교적인 노력에 좌우될 수는 없다. 초자연주의를 반대하는 부흥사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마치 무엇을 해야한다고 주문하고 즉시그들의 부름에 손을 내밀라고 불러일으키고, 앞으로 걸어 나오게 촉구하였다. 구원이 부흥사의 테크닉에 좌우된다는 인상을 짙게 풍기게 되었다.


한국 칼빈주의에는 연합의 과제가 우리는 바르게 질문하고 대답하고 비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올바르게 생각하는 반성의 자세을 익혀서 우리를 스스로 준엄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개혁교회의 이념들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첫째, 칼빈주의는 연합정신의 구현에 앞장서야 한다. 20세기 칼빈주의 개혁신앙의 쇠퇴원인은 세계교회협의회의 출현으로 인한 세력대결에서 명분을 일어버리게 되었다는데 있다. 이 운동은 일부의 복음주의자들이 가담하고, 자유주의, 신정통주의자들의 선창으로 영국 성공회, 로마가톨릭과 동구 유럽의 정교회등이 혼합된 종교박람회였다. 신앙고백은 달라도 하나님나라는 함께 건설할 수 있다. 교리를 너무 주장하면 기독교계는 분열되고, 세상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자고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이로 인하여 숫적인 열세에 몰리게 된 칼빈주의 교회들이 지속적으로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를 거부하게 됨으로써, 보수와 진보의 대결에서 차츰 영역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낳게 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교리는 우리를 분열시키지만, 신앙의 경험은 우리를 하나되게 한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일치운동을 정당화시킨다.


또한 만인구원론이나 보편구원에 대한 견해는 성경적인 연합의 진정한 의미를 무색케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보혈의 유일성을 사람들로 받아들이고 믿게 하는 데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대부분의 에큐메니칼운동가들은 만인구원론, 보편속죄론의 입장에 서있다. 이것은 기독교와 발트주의자의 차이를 노정시킨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루터와 칼빈의 그리스도를 대치시킨 바르트의 기독론을 극찬하면서 신.구교의 화합을 이룩하고자 한다(Van Til, Christianityand Barthianism, 1962. p. vii.).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의 유일성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같은 고백을 드릴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점에서 세계교회협의회의 교회연합운동은 교리를 무시한 채, 사역의 전략에 맞춰서 일하고 있다. 숫적인 우세를 내세우고, 세계적인 여러 국가적 교회단체들의 대표성과, 일체성을 내세우지만,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희생시킨 그들의 가는 길은 성경의 가르침과상관이 없는 걸음마이다. 오늘의 복음운동이라는 여러 종류의 연합운동이 치닫고 있는 길도 역시 교리에 대한 서로의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혼합이 가져온 혼란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연합운동에 대항하는 개혁신앙의 후예들이 내세운 단체들이 효과적으로 진정한 교리적 연합을 이룩하지 못한 점도 뼈아픈 반성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1943년 미국에서 미국복음주의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라는 단체의 태동으로 대응세력의 구심점이 되긴했다. 하지만 역시 일리노이주 휫튼에 위치한 이 단재의 '타협없는 교리를 중심으로 한 협동"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복음주의 운동역사를 들여다 보면, 권력, 인기, 성장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 환상에 대한 동경을 부채질한 결과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칼빈주의 교회들의 거듭된 교단분열 때문에 적과의 전쟁에서 내부 집안사정으로 인해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서 세칭, 총신을 중심한 합동주류, 고신, 대신, 기혁, 합동개혁, 합동 보수, 즉 서로 신앙고백에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는 교회들이 진정한 자기 반성이 뒤따르지 않은 채 계속 세포분열을 거듭하는 가운데, 교회가 가져야 할 진정한 리더십을 상실하였다. 우리장로교 교단들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지방색에 근거한 교회정치의 비극을 자주 노정하였다. 연합의 기치를 들고 있는 통합측이나 기독교장로회 등은 에큐메니칼의 장자교단임을 내세우는 까닭에 분열하지 않는다. 여성안수라는 첨예한 문제까지도 타협해나가고 있다. 연합이라는 명분을 중시하는 결과요,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협상하는 분위기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1980년의 합동신학원의 태동은 칼빈주의 교회내의 교권주의가 핵심 잇슈였다. 여전히 한국 칼빈주의 교회들이 과감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합신은 성경적인 교리의 실천을 다짐하면서 작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탄생하였다. 여전히 개혁주의자들은 분파주의자들이라는 오점을 간직하고 있다. 개혁 교단끼리의 활발한 교류와 교제를 통해서 벽을 허는 일에 눈을 떠야 한다. 같은 교단내에서 마저도 타 신학교출신자에게 먼저 악수의 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문화와 사회변혁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또한 칼빈주의 신학이 한국사회 안에서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현실에서 볼 때, 교회성장의 둔화와 함께 칼빈주의 개혁신앙은 한층 더 중요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영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한국의 국민들의 열렬한 소망이던 군사독재에서의 민주화의 염원을 위해 박해속에도 활동한 사람들은 주로 가톨릭의 신부들이었다. 따라서 사회의 존경과 신뢰를 그들에게 내어준 꼴이 되었다. 급진적인 민중신학과 로마 카톨릭의 해발신학이 서로 손을 잡고 광주사태와 대학생들의 민주화 투쟁에 선도적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이러한 영역에서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또 하나는 통일 의식을 국민의식으로 확산시키는 데 있어서 칼빈의 사상을 따른다는 한국교회는 주도권을 잃어버렸다. 더구나 고 문익환 목사의 돌연한 북한 방문으로, 젊은 이들사이에는 영웅주의적인 통일의 환상을 선망하는 분위기를 낳았다.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고서야 한국 칼빈주의 교회는 오해받을 소지가 없어졌음을 인식하고, 북한문제와통일의 과제를 선교적 중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통일을 말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매우 위험한 인물로 치부되는 분위기였다.

그동안 칼빈주의 교회들의 해외선교는 놀라운 업적과 함께, 갑작스런 선교열풍으로 그 부작용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쌓이게 되었다, 선교사와 본국 교회의 상호불신, 선교지내에서 국내 선교사들끼리 영역갈등, 주도권다툼, 국내 선교경험 미숙에서 오는 시행착오들이 많았다. 그러면서도 선교는 지상명령이요, 한국교회의 마땅한 사명으로 여겼다. 그러나 북한 교회재건과 통일의 과제는 진보정치인들의 주장이었지, 칼빈주의 교회의 핵심주제가 되지 못했었다. 방법도 없고, 정보도 없고, 공연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았다. 따라서 국민적인 열망을 신앙으로 이끌어가면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데서 주도권을 상실하였다. 반면에 급진신학의 대안논의와 활발한 접촉은 괄목할 만했다(이만열,"한국기독교의 통일운동 전개과정," 신학정론14권 1호, 11쪽).


1990년대 이후로 각종 시민운동, 환경운동과 윤리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칼빈의 정신을 따른다고 하면서 개혁신앙을 가진 한국교회들은 이제 이런 운동에도 활발하게 참여하면서 지역사회에 파고 들어야 한다. 성도들의 영혼을 돌보는 목회자로서 그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제시했다. 먼저 교회의 갱신과 설교의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신학이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지나치게 좌우된 자유주의 신학과 교회의 모습을 보충해야만 한다. 강단이 정치강연이나, 이데올로기의 전유물로 농락당한 경우를 개혁해야 한다.


동시에 개혁교회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의 신앙인격에서 우러나오는 건전한 가치관을, 통일, 교육, 범죄예방, 장애인 후원, 환경파수 ,공명선거 교통대책 등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교회와 목회자들의 건전한 의식을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심화시켜 나가야


오늘의 시대에 가장 무서운 적은 복음주의를 가장하고 나선 성장위주, 성공위주의 상업주의와 부흥운동의 열기가 빠져나간 뒤에 오는 성도들의 허탈감과 불신감이다. 외견상으로 드러난 교회의 부흥은 경쟁적으로 교회당의증축과 신축을 불러 왔지만 사회의 아픈 곳을 돌아보지 못하는 무능력한 교회로 전락하였다.


오늘의 우리 칼빈주의 교회는 이 시대을 본받지 말고, 따라가지 않으려는 비판적인 검토와 새로운 도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 칼빈주의 교회들이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시대 정신과 시대 문화에 동화되고, 방관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 세속화에 물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순히 비판자가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당당하게 사도적 신앙의 계승자로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세속문화에 오염되지 않는 기독교회의 정신을 살려나가는 일에 있다. 우리는 세상에 떡을 위해서 살지 않고, 역사적 기독교의 연속성을 지키고 살려나가는 성도들의 모임이 되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정신 차려서 지켜나갔고, 수많은 희생 속에서도 역사속에서 명맥을 이어가다가 어거스틴이 펠라기우스와 싸우면서 정립하였고, 종교개혁자 칼빈과 청교도들이 재발견하여 새롭게 역사를 변화시키고자 몸부림쳤으며, 미국의 칼빈주의자들이 전해준 평양신학교의전통을 이어받아서 면면히 살아있는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을 타협하지 말고, 확고히 지켜나가야 한다.


칼빈주의 신앙인들이 모범으로 바라보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지도자들과 성도들, 박해속에서도 역사에 푸른 신선함을 남기도 있는17세기 청교도들의 모습은 어떤 삶에서 영향을 입었던가? 바로 신약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의 삶이었다. 이들은 소수였지만, 로마가 감당치 못했고, 제국이 무너지는 혼란기에 마침내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는 놀라운 밀알이 되었다.


목회 방법론에 치우쳐서 신학교에서 배운것들은 모두 다 목회 현장에는 맞지 않는다는 식의 강변을 듣게 된다. 이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과연 오늘의 목회 현실이 신학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으며 정작 목회현실이 기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반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빈야드 운동, 신유와 치유사역, 예언과 방언의 능력 등 성도들이 원하는 남다른 체험이란 일시적 종교적, 심리적 위안에 초점이 맞춰지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개인적이고 비 윤리적이고, 공동체의 책임과 교회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가치관의 변질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칼빈주의가 많은 난관들과 싸웠던 것처럼 한국교회는 칼빈주의로 부터 이 시대를 이기는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한다. 말로만의 칼빈주의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 세상이나 그 정욕은 다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들이다. 한때의 아름다움이라는 미스 선발대회와 같이 천박하고 저질스러운 것이 인간의 영화와인기다. 유행과 인기와 평판과 명예에 휘말리지 않고, 소금과 빛이 되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살아가려는 칼빈주의의 가치관 정립이 이 시대의 대안이요,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로이드존스연구사이트


출처: 생명수 쉼터/한아름 님

2장 돌트 총회와 알미니안주의

김주호

 

 


 네덜란드 칼빈주의의 확산과 특징

 

  교회와 세속 정치

  중세 시대를 거치는 동안에 로마 가톨릭과 국가 권력은 상호 밀접히 연관을 맺고 도움을 주고받고 있었다. 타락한 로마 가톨릭 국가 내에 서는 종교와 사회가 모든 면에서 서로 얽혀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중엽, 새로운 종교 개혁 운동이 벌어지게 되면서 이러한 통일성이 깨어지고 다양성을 용납해야 할 시대가 도래하였다.

 

 저지대 국가의 종교 개혁

 유렵의 북서부 저지대 지방은 벨지카로 알려진 통일 공국으로 존재했던 이곳은 로마 가톨릭을 강력하게 신봉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에 속한 스페인의 지배와 통치하에서 많은 핍박과 영향을 받아왔었다.

 ‘공동생활의 형제단’의 영향을 입은 베쎌 간스포르트의 저서는 개혁신학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루터의 영향을 크게 입었으며 쯔빙글리의 성찬 상징설, 그리고 상당수는 메노 시몬을 중심으로 한 제세례파의 영항을 많이 받았다. 점차 종교 개혁이 영향을 미치면서 로마 가톨릭과 스페인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었지만 그 지역을 다스리던 영주들은 개혁 교회가 자유를 획득하고 기존의 로마 가톨릭이 차지했던 수도원과 토지 등 가치 있던 재산들을 차지하는데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1550년대와 1560년대에 칼빈주의 신앙인들이 급속이 증대되면서 필립 왕의 종교 정책에 대항하는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런 입장을 대변한 신앙문서가 바로 벨직 신앙고백서이다.

 

 벨직 싱앙 고백서

 개혁주의 신앙 고백서로서 네덜란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나온 문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면서 벨지움에 거주하던 드 브레가 개신교인들은 폭도들이나 반란군들이 아니라 법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임을 로마 가톨릭 군주에게 보여 주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벨직 신앙 고백서는 두 가지 특별한 내용이 핵심 사항으로 담겨있다. 하나는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제시한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교회의 본질을 바르게 정리한 것이다. 두 가지 내용을 제시하려 했던 작성 배경에는 재세례파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켜서 순수한 개혁 신앙을 인정받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총 37장으로 구성된 벨직 신앙 고백서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처럼, 그 구성을 전체적으로 볼 때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성경으로부터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설명이며, 둘째는 창조와 구속에 관한 그리스도의 사역이며, 성령의 성화와 교회의 사역에 관한 것이다. 벨직 신앙 고백서는 양심의 자유에 대해서 상당히 폭넓은 태도를 보이면서도, 참된 신앙은 오직 엄격한 칼빈주의임을 강조, 우상 숭배의 자유는 없다는 점을 천명하였다.

 이 문서는 네덜란드 개혁 교회가 1618년 돌트 총회에서 공식 문서로 채택함으로써 하이델베르크 신앙 고백서, 돌트 신경과 함게 모든 네덜란드 개혁 교회의 표준 문서로 가르쳐져 왔고, 신앙의 동질성을 제공하는 기초가 되어 왔다. 벨직 신앙고백서는 로마 가톨릭과 다른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박해받고 있던 개혁 신앙을 가진 자들이 국가에 반항하거나 반역하는 것이 아님을 변호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야콥 알미니우스와 신학자들

 처음에는 알미니우스도 열렬한 칼빈주의자였으나,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해석에서 다소 전통과는 다른 해석을 추구하였다. 종교개혁의 5대 교리를 받아 들였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는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논리를 갖고 나온 딕 크른헤르트와의 논쟁에서 종래의 정통 신앙이 가진 논리로는 합리적인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설득하거나 변호할 수 없음을 알게 외었다. 그 이흐로 그는 자신이 배워 온 개혁신학을 재점검하고 다시 평가하여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첫째로, 알미니우스는 로마서 7장 14-25절은 회심 이전의 사울이라는 상태의 인간상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인간의 의지는 아직 완전히 타락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지 못하도록 망가뜨려진 존재는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는 칼빈주의에서 가르쳐온 ‘전적 부패’애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둘째, 알미니우스는 로마서 8장 29-30절을 다루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에 기초를 둔 선택설을 부정하였다.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미리 보시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신학의 배경 속에는 에라스무스의 기독교 휴머니즘, 카스텔리오 등의 유니테리언파, 소시누스와 같은 재세례파, 그리고 널리 퍼져 있던 로마 가톨릭 신학 등 각종 사상이 혼합되어 있다.

 알미니우스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시몬 에피스코피우스는 매우 위험한 사고를 가진 자유주의 신학자로서 소시누의 영향을 입어서 그리스도의 종속설을 주장했다. ‘항론파’ 혹은 ‘항의파’로 알려진 문서를 작성한 요한네스 위텐보가르트는 처음에는 제네바에서 베자에게 공부한 적이 있었으나, 신학이 변질되어 알미니우스 쪽으로 기울어졌다. 휴고 그로티우스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가 되었으나 안타깝게도 그의 탁월한 법학 지식과, ‘국제법의 아버지’라는 찬사에 걸맞지 않게 신학적인 입장에서는 알미니우스를 따르게 되어 정통신학에서 갈라서고 말았다. 그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지불하신 형법적인 대속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예수의 죽음은 하나의 비극적인 성질과 죄라는 나쁜 본성에 대해서 형법적인 본보기라고 주장했다.

 

 돌트 총회와 신경의 채택

 돌트 총회의 결의 배경

 알미니우스파에서 전국 총회를 소집하여 신앙 고백과 요리 문답을 갱신하자는 청원을 세속 정부에 계속 제출하였다. 칼빈주의자들은 전국적인 총회의 소집 여부마저도 교회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고 맞섰으나, 네덜란드 지방에서는 알미니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여서 최고 의회에서 이를 허용한다는 결정을 발표하였다. 이 무렵, 알미니우스는 학문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로 교회를 지배하는 국가의 권위에 대해서 옹오하였다.

 1616년 이후로 반항론파가 늘어가기 시작했으며, 여러 지역의 호응자들을 규합하여 국가 전체 개혁 교회 총회를 개최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데 동감하였다.


 대표적인 신학자들

 전국 총회가 1618년 11월 13일에 돌트에서 모였다. 총회의 모임이 거듭 될수록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면모가 차츰 드러났다. 의장인 요한네스 보거만은 회의를 압도적으로 주도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성경적으로 알미니안들의 교리를 교정하고자 나선 칼빈주의 신학자의 대표는 프란시스 고마루스였다. 룹베르투스는 돌트 총회 초반에는 참여를 못했지만, 1619년 1월 17일 제 60차 회의부터 참가하여 예정에 관한 하나님의 작정 교리를 거부하는 이유를 밝히라고 주장했다. 지스베르트 보에티우스는 피란시스 고마루스처럼 엄격한 칼빈주의를 옹호하고 고수하였다. 그의 저술에서 청교도들의 영향을 보여 주었는데,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론적인 학문성과 경건을 동시에 함양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실천적인 신학을 주장하여 17세기의 대표적인 개혁 신학자로 손꼽히는 인물이 되었다.


 다섯 가지 기본 교리

 튤립 - TULIP (전적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


 예정론은 돌트 총회에서 다루어진 신학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돌트 총회가 결의한 개혁주의 교리의 핵심은 예정론으로 시작하는 선택과 유기였다. 선택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총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요, 믿음을 예견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선택과 유기는 늘어나거나 줄어들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여기에서는 상호간에 어떤 변화나 교차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성도는 자신이 선택되었느냐에 대해서 알 수 있으며, 이는 거룩한 생활로 이끌어 주며, 타락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칼빈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정은 인간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짓는 하나님의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결정을 근본적으로 높이려는 것이다.

 두 번째, 핵심 교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논쟁으로서, 죄인을 위한 대속적인 죽음이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냐가 문제가 되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특별한 목적으로 계획하신 것이요, 무한정으로 생각 없이 피를 흘리게 하신 것이 아니다. 죄에 대한 관리 신학, 혹은 통치적인 속죄설은 비성경적인 것이다. 속죄는 무제한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모든 인류를 위해서 충분한 것이지만, 그 속죄가 적용이 되어지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즉 선택된 자들만을 위하여 특별히 의도되어진 것이다.

 세 번째 교리와 네 번째 교리는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원죄를 서로 연결한 것이다. 돌트 총회는 원죄와 타락한 의지의 전적 부패에 대한 개혁주의 교리를 확고히 세우고자 했다.

 다섯 번째로, 성도의 견인에 대해서 확고한 교리를 규정하였다. 한번 선택을 받은 성도가 중생을 하였으면, 그 성도는 항상 그러한 믿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마우리스 이후의 관용 정책

 1625년 마우리스가 죽자, 그의 후계자 프레데릭 헨리는 알미니안들에게도 자유를 허용하는 관용 정책을 펴나갔으며, 이로 인해 비밀리에 알미니안들의 집회가 성행하였고, 망명했던 목사들도 다수 귀국하였다. 이들은 후에 훨씬 더 자유로운 근대 합리주의의 영향에 휩싸이고 말았다.

 돌트 총회는 또한 전반적으로 네덜란드어 번역 성경의 감수와 그 해석을 종합하는 임무도 맡고 있었다. 네덜란드어의 형성에 절재적인 영향을 미친 최초의 성경이 번역되었다.

 

 개혁 교회의 발전

 1648년 뮤엔스터의 평화 조약, 혹은 베스트팔리아에 소집된 회의에 따라서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인정하게 되자, 점차 안정 속에서 개혁 교회가 확산 되어서 연합 주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소속하였다. 점차 이 개혁 진영이 칼빈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정립하고 노력했다. 세속 정부는 전국적인 규모의 교회 회의가 결정한 사항들을 존중하도록 주장하게 되었다. ‘국가 교회’가 아닌 ‘자유 교회’라는 이름의 개신 교회가 네덜란드 칼빈주의 교회의 명칭으로 사용되어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제6장 칼빈주의 5대 교리

 

'칼빈주의 5대 교리'(five point of Cavinism)라는 말은 세 가지 점에서

오해의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5대 교리라는 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칼빈주의를 다섯 가지(五大)

교리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다섯가지 교리가 칼빈주의 입장을

드러내는 것은 분명하지만 칼빈주의는 5가지 교리만 가진 것도 아니며

칼빈주의는 5대 교리보다 더욱 광범위하며 더욱 포괄적이다.

 

둘째는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교리로 생각하는 경향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말하게 된 것은

아르미니안들의 다섯 가지 주장에 대항하여 칼빈주의적 견해를 밝히다

보니 5가지 교리를 말하게 되었을 따름이다.

 

셋째, 칼빈주의 5대 교리는 '예정론'이 칼빈주의의 중심교리이며,

그 외의 것은 부수적인 교리라는 인상을 준다.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중요한 사상은 예정론이지만, 이 예정론이 칼빈주의의 기본교리라고

볼 수는 없다. 예정론을 거부하는 아르미니안들의 저항 때문에 이 교리가

강조 되었을 뿐이다.

 

칼빈이 작성한 최초의 제네바 신앙문답서(1537)에는 예정론이 단지

짤막하게 언급되었을 뿐이었고, 같은 해에 작성된 신앙고백서에는

언급조차 없었다. 또 그의 기독교강요에서도 예정론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논쟁이 있은 후에 나온

기독교강요 후기 판에서 예정론이 취급되었을 따름이다. 칼빈주의는

'5대 교리' 뿐만이 아니라 '오직 성경'과 '모든 성경'의 사상을 나타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므로 칼빈주의를 5대 교리로 제한시키거나 다섯 가지

교리가 칼빈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리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역사적으로 칼빈주의라고 일컫는 신학체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5대 교리 혹은 5대 강령이란

이름으로 공식화되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일어났던 신학 논쟁을 이해해야만 한다.

 

1. 아르미니우스와 예정론(생략)

2. 아르미니우스파의 항의(생략)

3. 도르트회의(생략)

 

 

4. 칼빈주의 5대 교리

 

도르트회의에서 선언된 5개조를 간단히 요약하면,

A. 선택은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루어졌다.

B.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과는 택자에게만 미친다.

C. 타락으로 인간은 부패와 무능력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D. 중생은 영혼과 의지의 내적 변화이며, 하나님의 놀랍고도

    신비로운 역사이다.

E. 하나님은 택자들을 보존하셔서 궁극적으로는 은헤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신다.

로 요약될 수 있는데,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에 반대하여 5가지 교리,

전적 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된 구속, 불가항력적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 등으로 정리될 수 있다.

 

'칼빈주의 5대 교리'란 이름 그대로 5개의 교리이지만 사실 이것은

오직 하나의 교리일 따름이다. 즉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

하신다'는 교리가 그것이다. 우리는 단지 편리하게 하기 위해 5개로

구분하여 설명할 뿐이다.

 

이제 5대 교리에 대해 좀 설명해 보고자 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 5가지가 '5대 교리'가 되었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

이 교리들이 성경적 지원을 받고 있는 타당한 교리인가 하는 점이다.

5대 교리를 기억하기 편하도록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TULIP)의

영어 문자 순서로 살펴보고자 한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전적 타락이란 인간은 선을 행할 의지나 능력이 없으며 인간의 공로가

전혀 불가능하도록 전적으로 부패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가능한

모든 죄를 범하는 것도 아니고, 최악의 죄를 범하는 것도 아니며 어느

정도 상대적 선을 행할 수도 있지만, 사림이 행한 모든 것은 다 죄악된

것뿐이다.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단 한 가지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적 타락은 완전한 타락을 의미하지도 않고, 상대적 선의 결핍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 보다 더 악한 죄를 범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행하는 모두가 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을

증거해 주는 본문으로는 창2:17, 고전2:14, 고후1:9, 엡2:12 등이 있다.

 

 

타락에 대한 로마 카톨릭, 성공회, 그리고 장로교의 입장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1. 로마 카톨릭교회: 트랜트회의(1546)에서 채택한 문서에서 타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담 전부가 허물의 죄로 말미암아

   육신과 영혼으로 인해 더 나쁘도록 변화되었다."

 

2. 성공회(영국교회): 영국교회의 신조인 '39개조' 제6항에 보면,

   아담이 죄로 인하여 "인간이 원래 의에서부터 멀리 떠나 있다."고

   했다. 이 영어 본문은 라틴어 원문의 번역본인데, 라틴어문에는

   "원래 의에서부터 할 수 있는 되로 멀리 떠났다"고 되어 있다.

 

3. 장로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6장 '인간의 타락과 죄와

   형벌에 관하여' 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의 시조들은

   .... 죄로 죽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들과 기관들이 전적으로

   더렵혀지고 말았다. 그들이 온 인류의 시조이기 때문에, 그들이

   범한 이 같은 죄책은 모든 후손들에게 전가 되었고, ....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혀 가질 수 없고,

   전적으로 악을 행하는 성향만이 남아있다. ..."

 

정리하면 로마 카톨릭은 "더 나쁘도록 변화되었다"고 했고, 장로교는

"절대적으로 부패되었다"고 했으나, 성공회는 "아주 멀리 떠났다"고

하여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인간의 타락에 관한 입장은  교파의

신학과 구원관에 심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선택의 교리는 구원문제에 대한 예정론의 특수한 적용인데

인간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다.

무조건적 선택이란, 하나님은 창세전에 자기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인간을 선택하거나 유기하시도록 예정해 두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선택받은 자와 멸망 받을 자 사이에는 아무런 윤리적 차이가 없다.

그의 윤리적 행위를 보고 선택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믿음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무조건적 선택이다.

무조건적 선택은 인간의 전적타락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

 

그리스도의 속죄는 전 인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선택자만을

위한 것인가? 이 점에 대한 설명이 제한된 구속인데, 제한된 구속이란

말은 오직 선택된 자 만이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오직

구원에 이르도록 예정된 자에게만 효력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그리스도는 만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선택된 자만을 위해

속죄의 죽음을 죽으신 것이다.

 

이 점에 대해 칼빈은 "속죄는 모든 사람의 구원에 있어서 충분하지만,

선택된 사람에게만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속죄의 가치와 능력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속죄의 가치는 전 인류를 구원하기에 족하지만

그 목적과 적용에 있어서 제한되어 있음을 말 할 뿐이다.

우리가 이 교리를 보통 '제한된 구속'이라고 말하지만'한정된 구속'

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불가항력적 은혜란 중생은 전적으로 선택을 기초로 한 하나님의

효과적인 사역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때 인간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는 점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그 본래의 상태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부패되어 자력으로는

도저히 거룩하여 질 수도 없고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중생은 하나님께서 피택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산물이다.

 

불가항력적 은혜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리는 은혜란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호의인데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권적으로 일하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가항력적 은혜를 보통 영어로 Irresistible Grace로 부르지만

Invincible Grace라는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성도의 견인이란 성도의 보전이라고도 불리는데, 한번 선택받은

성도는 한 때 타락할 수 있어도 궁극적으로 반드시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은 자는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구원이 보장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여기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나 내세에서도 우리들을

하나님의 손에서부터 떼어놓을 자가 없음을 가르친다.

 

선택이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을 구원하기로 택하신

것을 의미하는데, 아르미니안주의자가 말하는 것처럼 만일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라도 믿음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다고

한다면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성도의 견인교리는

그리스도인에게 죄가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범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크게 타락할 수도 있지만

택함 받은 자는 종국에는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무효화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성도의 견인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근거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무조건적 선택에 기초한다. 신자는 이미 영생을 얻었

으며, 영원한 생명을 소유함으로 한번 구원함을 받은 사람은

계속해서 구원받을 사람이다.

 

여기서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하게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교리

아르미니안주의(Arminianism)

칼빈주의

(Calvinism)

예정

예지예정(조건적 선택)

무조건적 선택

속죄

만인을 위한 속죄

(보편구원설)

택자만을 위한 구속

(제한적 구속)

인간

자유의지 인정

전적 타락과 전적 무능력

은총

거절할 수 있음

거절할 수 없음

성도의

견인

의심함

인정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 간의 차이점에 대해

제임스 패커(James Packer)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안주의의 차이점은 근본적으로

강조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선언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신을 구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칼빈주의는 잃어버린 인류의 회복을 위한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가지 위대한 사역을 말해주고 있는데

그것은 성부에 의한 선택, 성자에 의한 구속, 성령에 의한 부르심이다.

 

그러나 아르미니안주의는 구속의 대상은 모든 인류이며,

선택의 대상은 그것을 듣고 응답하는 자들로 보며,

소명의 대상은 복음을 듣는 자들로 보고 있다.....

 

전자는 구원은 하나님의 사역에 의존하지만

후자는 인간의 일에 관한 것으로 설명한다.

전자는 믿음을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로 간주하지만,

후자는 구원을 향한 인간의 노력으로 생각한다.

 

 

개혁주의란 무엇인가?, 이상규 (고신대학교 출판부) 149~171p에서 발췌

요즘 트위터 페이스북 더보기


성경의 올바른 사용(존 칼빈)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검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 죄악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미면서 끊임없이 도전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복종해야 할만큼 말씀에서 얻는 유익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씀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런 반박을 받지 않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부인하므로 수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씀을 의심케 하려는 몽상가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항상 있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악한 모든 것은 그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모독하고 하나님께 대한 험담을 합니다.

 

우리가 율법과 예언서와 복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와 복음 속에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이 변명하지 못하도록 사도 바울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우리가 율법과 예언서 안에 내포되어 있는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영속성과 불멸성을 지닌 성경

또한 그는 누구도 작 마음대로 좋아하는 것만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부분적으로만 복종하지 않도록 모든 성경 말씀에는 존엄성이 있다는 사실과 그 모두가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기분에 맞추어 성경 말씀을 고르거나 발췌해서는 안 되고 전체를 예외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여기서 한 말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성경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 때 쓰고 있던 말씀이나 다른 사도나 전도자들이 쓴 말씀을 의미하지 않고 구약 성경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과 예언서가 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설교되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히 보존되고 남아야 할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제쳐놓고서 그것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무시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회당이나 주막에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이나 예언서가 필요 없다”라는 평범한 속담을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터키 사람들에게서처럼 그들 가운데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들에게 제동을 가하면서 만약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복종심을 증명하려면 율법과 예언서가 우리의 생활을 다스려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우리의 생활이 그것들에 의해서 규제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그 말씀은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고 또한 변화시킬 수 없는 영속적이고 불멸의 진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 동안만 유용하도록 일시적 교리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진리는 오늘날에도 권위가 있습니다. 만약 그 권위가 약해질 우려에 부딪친다면 차라리 이 세상의 멸망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말의 뜻은 우리가 자신을 성경에 의하여 다스리도록 힘을 써야 하고 지혜를 성경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좋아할 것인가를 선택할 재량을 주시지 않으시며 우리로 하여금 성경 말씀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인정하여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주는 절대적 유익

자! 여기에 제시된 두 가지 점을 주의해서 살펴봅시다. 그는 먼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고 했으며 그리고 “유익하다”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매우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할 때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통제하려고 감히 망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움을 벌이고 성경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겠습니까? 어떤 이유로 성경이 만들어졌습니까? 성경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며 그 안에 세상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반항자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째로 이렇게 첨가했습니다. 더욱이 경의를 표함으로써 하나님께 돌릴 경외심 이외에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실 때에 우리의 유익과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무익한 일로 우리를 분주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면 성경의 내용 중에서 선하지 않거나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고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그렇게 거저 주시는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권능이 성경 속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성경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후에 우리로 하여금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창출하시고 목표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깨달아 거기에서 유익을 얻겠다는 열정과 욕망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라는 것을 우리가 시인하지 않는 한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합시다. 우리가 모세나 어떤 선지자에 관한 기록을 읽을 때 그것이 유한한 한 인간의 족적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우리를 불태우는 하나님의 영이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비로소 성경에는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그가 말하는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가면과 덮개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은 처음부터 속임을 당하고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처음부터 속임을 당하고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된 교리의 독이 금제 컵에 담기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는 이 귀한 슬로건 밑에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에 만족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견고히 보증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사단의 환상이나 사람들이 꾸며낸 동화가 아니라는 사실과 성경에 담겨 있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점과 하나님께서 그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선하심에 경의를 표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를 집어넣고 밀봉하시며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를 무지한 상태로 그냥 두시므로 그들은 어차피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한 말들을 취합해 보면 하나님의 교회 그 자체에 어떤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만이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어떤 교리를 인정하려면 그 교리는 인간의 권위나 인간의 지혜에서 따온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눈여겨볼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검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법률과 규례를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의 왕이십니다.

 

말을 시키신 분은 하나님

우리의 영혼이 우연히 인도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형식적인 가장을 잘 할지라도 그것은 위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성경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세가 탁월한 사람이었다거나 이사야가 대단히 웅변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인간적인 명성을 높여 줄 만한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기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말을 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으로 즉 그들에게 맡긴 재물을 감독하는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잘 지켜졌다면 인간은 지금 천주교도들이 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혼란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은 모두 인간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는 위선 이외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들이 만든 의식을 지킵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경에만 의지하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의 권위를 배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위에 우뚝 솟은 탁월성을 소유하고 계시므로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회의 길을 택할 때는 우리를 보내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기쁜 소식을 가졌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말씀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그가 무모하게 나서거나 자기가 만든 이론으로 꿰맞춘다는 식의 인상을 주지 말고 순수한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인하여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하나님의 교훈이 사람들을 교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유익과 구원을 싫다하는 자 있는가

사람이 만든 교리가 여기 이렇게 땅바닥에 버려졌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러한 일이 다시는 허용되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것을 추방합시다. 복음의 단순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유념합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자비로우셔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것은 꽉 붙잡고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양심을 묶어서 그들 멋대로 신앙의 신조를 만들지 못하게 합시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모든 성경은 유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성경이 유익하다면 그것을 공부하는 데 전념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유익과 구원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의 행복만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화가 있을 찌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의견과 좋아하는 감정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교리 즉 성경의 전 내용에 기꺼이 복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을 설명할 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교훈에 의해서 유익이 되고 그것이 주는 그르침을 받아들이도록 제 주위를 항상 성경 말씀으로 에워싸야 합니다. 만약 제게 이런 애정이 없어서 저의 설명을 듣는 사람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면 저는 신성 모독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결과가 됩니다.
또한 어리석은 공론을 구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사람이나 기분전환을 하기 위하여 설교를 들으려고 오는 사람은 복음을 더럽히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본래의 용도에서 어긋나게 사용하여 성경을 통해서 유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 속에서 문제점만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과 구원만을 구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가장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성경을 오염시켜 성경이 우리의 환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진리에 의한 교육만이 확실성 알게 해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하게 되도록 만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아 우리는 가르침을 받으려 와야 합니다. 이제 이 유익이라는 무엇인가를 검토하고 알아보는 일이 우리들 각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이 말 한 마디만 선언하였다면 그 의미는 다소 막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매우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말의 뜻을 오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이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성경의 용도를 한 가지로만 표현하거나 사용치 않게 하기 위하여 교훈에 대해서 말할 때에 책망하기 바르게 하기 그리고 교육하기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여 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도 냉담하여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대한의 열성을 내도록 격려하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과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 안에는 죽은 교훈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께 나오도록 분발시키는 책망과 바르게 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악한 자를 교화하는 말씀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교훈에 유익하다”고 말한 후에 책망하기, 바르게 하기, 등을 첨가했습니다. 왜 교훈을 먼저 썼을까요? 그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면 권면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가르쳐진 것은 선하고 참되고 옳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훈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진리 안에서 교육되어야 하며 전적으로 진리 안에서 결심을 해야 하고 진리로 교훈을 받아 진리의 확실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교훈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어서 진지하고 의롭게 하나님을 닮아 가는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하늘나라의 생활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약한 감정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닮아야 합니다.

복음의 교리를 몇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전적으로 믿는 것이며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분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교훈 통해 과거의 참상을 보게 해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찾아가야겠다는 담대함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언자로 임명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는 죄와 악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법과 순결한 마음과 영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이 책망하기라고 말했을 때의 그 뜻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 뜻은 이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싶으면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설명될 때에 믿는 자가 교화될 뿐만 아니라 만약 믿지 않는 자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교훈을 듣게 되면 그는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비록 그 불신자가 어둠에 휩싸여 있기 자기의 무지에 만족해 왔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충분히 감화시켜서 그가 살아 왔던 과거의 참상과 죄악을 보게 만드십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한심스러운 그의 처지를 보게 될 때 그에게 실제로 하늘 문이 열려 있으며 사람은 이 지구상의 삶뿐만 아닐 더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지기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불신자들은 책망을 받습니다.


그것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비밀한 말씀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주의하지 않게 되고 우리의 마음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되고 우리 영혼의 구원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마음 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우리의 전 생활을 돌아보고 우리의 부정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준비된 선고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의 재판관이 됩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책망이라는 단어를 써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앞에 놓인 하나님의 축복을 보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그것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들 자신을 엄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석 앞으로 출두하라고 소환하시는 것처럼 하나님 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가 한 악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공기를 들여 마실 때 우리는 옳은 길에서 벗겨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복종하는 법을 깨닫게 하는 성격

그렇게 책망 받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므로 바르게 함이 똑같은 방법으로 첨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개혁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겨져 있어야하며 우리의 죄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죄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분리시키기 위해 우리는 강력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가질 때 비로소 정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은 느낌을 갖게 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강제로 그러한 경지에 끌리어 와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맛있는 음식으로 취해 있고 또 우리가 어리석은 생각이나 공상에 빠져 있어 그것에 속고 있다면 바르게 하는 일을 즉각적이고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개조하시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해 달라고 의탁하기 위함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행동이 마땅치 않고 옳지 않은 것을 볼 때 그냥 “왜 그렇게 했니?”라고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여 “한심한 녀석아! 네가 나에게 이렇게 보답하라고 너를 기르고 양육했겠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점잖게 대해 주었는데 나에게 이런 명예롭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너에게 어울리니? 너는 마땅히 교수형 집행자의 손에 넘겨져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도 우리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불효자들이 그들의 아비들에게 반항했던 것보다 하나님께 더 반항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를 내실 만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속에는 다루기 힘든 어떤 열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열정을 우리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필요하면 뜨겁게 책망하라

자! 이제 어떤 사람이 성경을 설명할 때에 성경이 단순한 역사에 불과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성경에 관해서 한 말은 아무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선하고 충성스러운 목자의 임무는 성경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힘과 권능을 나타내도록 열성과 날카로움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 교회의 목자는 성가실 정도로 열성적이어야 하며 무엇이 선한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그들을 책망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책망함에는 아무튼 바르게 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구라도 “이것은 감당하기 어려우니 이러한 종류의 것은 취급하지 말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책망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차라리 하나님 의외의 다른 주인을 찾도록 내버려두십시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들을 기꺼이 받을 것입니다.

바르게 하려고 위협을 가하면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은 온화함으로 그들의 마음이 사로잡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악마의 학교에 보냅시다. 악마는 아첨을 할 것입니다. 네! 그리고 그들을 멸망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들은 그 교훈을 받아들인 후에 겸손해져야 하며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구도 실수를 할 때면 훈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모든 죄악에서 깨끗해지기 위해서 그들이 저지른 죄와 악에 대해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교훈으로 가르침 받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제도가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함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첨가했습니다.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이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할 때 그는 모든 인간적인 것을 배제하였으며 우리가 사람이 도입한 제도를 지키는 것으로는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천주교도들이 같은 인간이 그들에게 과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킴으로써 그들이 한 모든 노력이 어떻게 허사가 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의로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가 그렇게 명령했다는 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 있는 내용 이외에는 종교도 교리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성경 안에만 의로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도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따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삶이 매우 은혜롭기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인간의 일에 뿌리를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과해 주신 것만 따릅시다.
만약 우리의 삶을 성경에 있는 가르침에 따라 규제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의 교훈은 실패하며 하나님께서 증오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의로 교육하기”라고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둡시다.
다시 그는 훌륭한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식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하는 법과 말을 잘하고 민감하게 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만약 인간이 복음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지 못 얻는지를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생활을 주목해 봅시다. 사람들은 제법 그럴 듯하게 말할 줄도 알고 나름대로 경건한 생활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유익을 얻는 법’도 배워야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고문으로 모셔서 말씀에 의해 떳떳이 행하고 또 우리의 삶을 이루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같이 할 때 하나님의 사람은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의로움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인간의 창안물들은 모두 사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증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의향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허용하시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규례 안에서 억제하지 못하는 그런 모호한 용기가 있음을 보고 그 병폐를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있으면 우리의 생활은 올바르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덕과 거룩함이 있다고 마음껏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에 계시는 재판관 앞에 나오게 되면 모든 것이 겨와 같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제도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제도와 섞어버리면 모든 것을 해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것은 무엇이나 아무 값어치가 없고 썩어빠진 것뿐이라고 결론을 내려도 됩니다.

천주교도들은 어떠한 성자를 위해 저녁에 금식하는 것,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사순절을 지키는 것, 성자에게 시중드는 것, 이 제단 저 제단을 찾아다니는 것.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문하는 것, 이사에 참석하는 것, 순례 여행을 하는 것 등을 선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법률과 규정을 만들었으나 그것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대 재판관 앞에 출두하여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명세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유익을 얻으면 모든 선한 일을 한 데 넉넉히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천주교도들이 만들어낸 전통과 제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파묻히는 것 같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만든 전통의 백분의 일만큼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전함을 측정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더 첨가한 것은 무엇이나 배격하며 그것을 인정하시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이 제정한 법규를 아무 쓸모 없이 만듭니다. 그것은 그들의 죄를 배가시켜 줄뿐입니다.

괴물이 아닌 자 라면 진리를 확신한다.

“율법과 예언서에는 그렇게도 많은 공정함이 있는데 복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음에 대해서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율법이나 예언서에 대해 일점일획도 가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복음이 전에 가르쳐 준 것을 더 분명하게 해 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살았던 선조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를 내리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문제를 더 분명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율법과 예언서에 바르게 함과 온전한 의로움이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복음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성경 말씀 즉 신약과 구약에는 이와 같은 일치함이 있습니다. 율법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사도들에 의해서 친근하게 가르쳐졌기 때문에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태초부터 명령된 것에 국한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아주 분명한 말로 알려 주셨고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할 여러 가지 이유를 말씀 하셨기 때문에 사악한 괴물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 진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유익을 얻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상에 따라 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경건하게 생활하는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생활을 규정지을 확실한 규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이 성경 말씀을 향하게 합시다. 그러면 하늘에 계시는 재판관이 우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더 많은 관심을 모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접근하셔서 당신의 뜻을 쉬운 방법으로 제시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지 아니하면 자신을 조금이라고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포도나무선교회

개혁주의마을/Grace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 마틴 로이드 존스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을 파괴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성취하러 왔노라.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절대로 없어지지 아니하고 모두 성취되리라.
(마 5:17,18)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율법을 성취하시는가? 이 질문은 너무나 놀라운 것으로 우리를 경배와 숭배로 이끕니다. 주님은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정확한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하셨습니다(갈 4:4).
우리의 제한된 마음으로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이 말씀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율법 아래 나셨다는 성육신에 관한 중요한 진리 중 하나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율법 위에 계시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고, 율법을 지키셔야만 했던 분으로 율법 아래 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율법 아래 두셨을 때 만큼 분명하게 거룩한 율법의 어길 수 없는 절대적인 특성을 보여 주신 적은 없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개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복음서를 읽으면 이 개념이 얼마나 완전하게 참된 것인가를 발견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얼마나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하셨는가를 주목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빠짐없이 순종하셨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시고, 그들에게 설명해 주셔서, 계속해서 율법을 확증하시고 율법에 복종해야 하는 절대적인 필요성을 주장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생애의 마지막 때에 '아무도 자신에게서 어떤 잘못도 발견할 수 없으며 자신에 대해 어떤 고소도 할 수 없다' 고 말씀하실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자신에 대해 고소를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율법 앞에서 그분을 고발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율법을 충분히 성취하신 삶을 사셨고 완전하게 율법에 복종하셨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어떠한 작은 항목도, 일 점 일 획도, 범하거나 성취하는데 실패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탄생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분의 삶에서 율법 아래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전(全) 믿음의 중심인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묻게됩니다.
십자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만일 율법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지 못하면,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거듭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복음주의의 본질은 십자가에 대하여 말할 뿐 아니라 십자가의 참된 교리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순전히 감상적인 태도로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께서 친히 꾸짖으셨던, 이른 바 십자가의 비극을 생각하며 슬피 울던 예루살렘의 딸들과 같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우리에게 일종의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전(全) 목적이 우리의 굳은 마음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의 의미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목적은 우리 안에서 연민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며,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일반적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궁극적으로 오직 율법의 관점에서만 이해됩니다.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일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죄를 위하여 친히 자신의 거룩한 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이 정한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정죄하며, 율법이 선고하는 판결은 사형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 대하여 죄를 짓고 그분의 거룩한 율법을 깨뜨린 모든 사람에게 필히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을 파괴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성취하러 왔노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을 성취하는 방법 중 한 가지는 죄의 형벌을 집행하는 것입니다. 이 형벌은 죽음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분께서 죽으신 이유입니다. 율법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형벌을 따로 따로 두실 수 없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심에 있어서 그분께서 법령으로 정하신 형벌을 집행하지 않기로 하심으로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모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과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죄는 반드시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며, 여러분과 제가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형벌이 그같이 죽음으로(역자주:그리스도의 죽음) 집행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형벌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법은 완전무결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갈보리 언덕 십자가 위에 있는 거룩하며 흠없고 점없는 자신의 아들의 몸으로 죄를 처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율법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만약 여러분이 율법의 성취라는 엄밀한 관점에서 십자가와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해석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십자가 위의 죽음에 관한 성경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께서 가장 이상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곧 죄로 인한 형벌을 친히 자기 안에 와 자기 위에 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그렇게 죽으심으로, 구약성경의 모든 예표를 성취하신 것을 봅니다. 레위기와 민수기를 읽어 보십시오. 태운 헌물과 희생물들에 관한 모든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장막과 성전 의식과 희생단과 씻는 물두멍 등에 관한 모든 말씀을 읽어보십시오.

이 상세한 말씀들로 돌아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차린 빵(shewbread)과 대제사장과 기구(vessel)와 기타 이 모든 것들은 다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것들을 가지고 행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히 최종적으로 성취되어질 것들의 그림자요, 예표요, 대언에 불과할 뿐입니다. 주님은 실로 이 예표들 하나 하나를 문자적으로 성취하시고 수행하시고 실행하셨습니다. 혹자는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습니다.

이 모든 세부사항을 발견할 수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원리가 되는 위대한 진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과 행하신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예표와 그림자의 완전무결한 성취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이시며, 주님은 헌물(offering)이시며, 주님은 희생물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하늘에 드리심으로 의식법의 전 항목을 그분 안에서 성취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대언자들을 파괴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요 성취하러 왔노라" 주님께서는 죽으심과 부활과 그리고 자신을 하늘에 드리심으로 이 모든 것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주님께서 성령에 의하여 우리 안에서와 우리를 통하여 율법을 성취하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로마서 8:2-4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논거(論據)입니다. 바울은 매우 분명하게 이것이 왜 주님께서 죽으셨는가에 대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약하여 할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사, 죄 때문에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느니라. 이는 육신을 좇아 걷지 않고 성령을 좇아 걷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은 가장 중요하고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는 여기서 두 가지 방법을 함께 연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주님이 친히 율법을 성취하신 방법과 그분께서 우리 안에서 율법을 성취하시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우리 주님께서 마태복음 5 장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바입니다. 그분은 율법의 의(義)를 성취하십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성취해야 합니다. 둘은 함께 역사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 안에서 율법을 성취하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과 율법으로 사는 권능을 주십니다. "육신적인 생각이 하나님께 대적이 됨이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치 아니할 뿐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느니라"라고 사도 바울은 같은 로마서 8 장에서 말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받은 우리는 이와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대적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율법에 복종합니다.

자연인은 하나님을 미워하며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율법에 복종합니다. 그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며 또한 그렇게 되는 권능을 받았습니다. "육신을 좇아 걷지 않고 성령을 좇아 걷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을 다음과 같이 보십시오. 대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
께서는 위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실상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새언약을 맺고자 한다. 새 언약과 옛 언약과의 차이는 이같으니, 내 법을 너희의 생각과 마음에 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내 법을 너희 밖에 있는 돌판에 쓰지 않고 육체의 마음 판에 쓰겠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8장에서 다룹니다. 그는 8 장에서 새 언약, 곧 새로운 관계를 자랑합니다. 왜냐하면 새 언약 아래에서 율법은 우리 밖에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율법을 성취하는데 열심이며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율법이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드림으로 이 모든 것을 요약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율법과 대언자들에 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저는 이미 대언자들의 대언이 어떻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성취되었는가를 보여드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성취되어야 할 것이 남아 있습니다. 율법은 어떻습니까? 제가 보여드린 바와 같이 의식법(儀式法)에 관해서는 이미 완전히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곳 지상에 계실 때 그분의 삶에서 의식법을 준수하셨고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준수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으로 의식법은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이것의 확증으로, 후에 성전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분께서 죽으실 때, 이미 성전의 휘장이 둘로 찢어졌고, 마지막으로 성전과 성전에 속한 것들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단이시며, 희생물이시며, 씻는 물두멍이시며, 향이시며, 그밖에 모든 것 되심을 보지 못한다면, 나는 아직 레위기의 율법 조항에 묶여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분께서 나의 태운 헌물이요, 나의 희생물이요, 나의 모든 것임을 보지 못한다면, 이 모든 의식법은 아직도 내게 적용되고 있으며, 내가 그것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실현된 것을 보며, 그분을 믿고 그분께 나 자신을 복종시킴으로 이 모든 것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식법에 관한 입장입니다.

시민법은 어떻습니까? 시민법은 본래 특별히 하나님의 신정국(神政國)으로서 그 당시 특별한 상황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더 이상 신정국가(神政國家)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께서 사역의 말기에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하나님의 왕국을 너희에게서 빼앗아, 그 왕국의 열매를 맺는 민족에게 주시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마태복음 21:43의 말씀으로, 대언과 관련하여 전(全) 성경에서 가장 중대하고 중요한 말씀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9,10 에서 새로운 민족이 교회임을 매우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신정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시민법 역시 성취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도덕법이 남았습니다. 도덕법과 관련한 입장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기서 영원하고 영구한 것,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항상 존속해야 하는 관계를 세우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첫째가는 큰 명령이라고 칭하신 것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명령은 영원한 것입니다. 이 명령은 단지 신정국가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명령은 온 인류를 위한 것입니다. 둘째 명령은 "그와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도 역시 이스라엘 신정국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명령은 단순히 옛 의식법이 아니었습니다. 이 명령은 하나님께 대한 영원한 상태요, 그분께 대한 우리의 영구한 관계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도덕법은 - 신약성경에 의해 해석된 바와 같이 - 지금까지 존속해 왔듯이 지금도 존속하고 있으며, 시간의 끝까지 그리고 우리가 완전하게 될 때까지 존속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에서 사도는 서신서를 읽는이들에게 그리스도인들 안에 있는 죄는 여전히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주의 깊게 상기시켰습니다. 요한은 사실상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여전히 율법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봅니다. 왜냐하면 죄는 율법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 3:4). 율법은 아직 거기에 있습니다. 비록 내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비록 내가 유대인이 아니었을지라도, 이방인일지라도, 죄를 범할 때 나는 율법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도덕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의 현재 입장입니다.

미래에 관하여 저는 단지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궁극적으로 왕국이 온 땅에 미칠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에서 말하는 돌이 온 세계를 가득 채울 것입니다. 이 세상의 왕국들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될 것입니다. 이 과정이 지금 진행중이며, 마침내는 성취될 것입니다. 율법과 대언자의 일점 일획도 빠짐없이 완전히 실행될 것입니다. 율법을 깨뜨린 자는 궁극적으로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결코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내 뉘우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서 죽는 자들은 율법의 정죄 아래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그들에게 내려질 선고는 "저주 받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가 될 것입니다. 그들을 그와 같이 정죄하는 것은 율법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은 모든 점에서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제시된 것을 이용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의(義)의 표현인 율법의 정죄 아래 거할 것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필히 이것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율법에 대한 관계는 무엇인가? 우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율법이 행위 언약이라는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 3 장이 논증하는 전부입니다.

구원은 그가 율법을 지키는 것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율법의 저주에서 구출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신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로서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그가 생활의 규칙으로서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율법과 은혜와의 관계에 관해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이렇게 말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율법에 대해 그릇된 견해를 가지려 하며, 율법을 은혜에 반대되는 무엇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한 때 율법의 언약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율법은 은혜와 반대될 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은혜 언약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을 은혜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율법은 그 자체로는, 그리고 홀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율법은 결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내가 지금 너희에게 율법을 준다. 너희가 이 율법을 지키면 율법이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스꽝스러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하여진 것"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요구의 참 특성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리고 죄의 심히 죄됨을 보여주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약속이 주어진 후 430 년 후에 온 것입니다. 율법은 어떤 의미에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로와 질 수 없다는 점과 우리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주어진 것입니다. 바울의 말에 의하면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선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그 속에 많은 대언과 많은 복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율법은 은혜로 충만하여 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율법과 관련한 모든 희생물과 의식(儀式)도 역시 동일한 일을 행하도록 계획된 것임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구약 성경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태운 헌물과 의식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며, 그러한 것들은 단지 유대인과 다른 이들이 사용한 것으로 비교종교의 관점에서만 설명될 수 있는 이교도 의식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신약 복음을 실지로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모든 예식과 의식은 하나님께서 상세하게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으로 부르시고 "너는 삼가 모든 것을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만들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율법에 관한 이러한 모든 관점들이 단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훈육선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율법에 관한 거짓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동시에 사람들은 은혜에 관하여 거짓된 견해를 갖습니다.

그들은 은혜는 율법과 별개의 것이며 율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소위 도덕율폐기론(Antinomianism)으로서, 죄악되고 게으르며 나태한 형태의 영적 삶을 살기 위하여 은혜의 교리를 남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나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행하든 나는 율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고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이 문제를 다루며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 안에 거하겠느뇨?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은혜에 관하여 전적으로 잘못된 거짓 견해입니다. 은혜의 전 목적은, 어떤 의미에서, 단지 우리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문제점은 우리가 자주 이 점에서 거룩에 관한 거짓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과 성화(sanctification)를 받아야 할 체험으로 간주하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거룩은 의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이 받았다고 말하는) 소위 은혜가 여러분으로 하여금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한다면, 여러분은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리적인 체험을 경험했는지는 몰라도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란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하며, 그로 하여금 율법을 지킬 수 있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셨던 것처럼 의롭게 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히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는 그분의 명령을 지키기를 열망합니다. "나의 명령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 두 가지를 분리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은혜는 감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룩은 체험이 아닙니다. 우리로 반드시 율법을 사랑하도록 인도하며 이 율법을 지키기를 열망케 하는 이 새 마음과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그분의 권능으로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성취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19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작은 이 명령 중 하나를 어기고 또 그와 같이 사람들을 가르치는 자는 누구든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것들을 행하고 가르치는 자는 하늘의 왕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죽으시기까지 삼 년의 짧은 기간 동안 주님과 함께 있었던 제자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영원히 영존하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 장에서 주님은 이를 다시 강조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주님, 주님, 하고 말하는 자마다 하늘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시는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무엇인가요? 십계명과 도덕법입니다. 십계명과 도덕법은 결코 폐기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대속하시고, 자신을 위하여 우리를 정결케 하사 선한 일들에 열심인 특유의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디도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 의가 성경기록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않고서는 어떤 경우에 라도 너희가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어려운 것이였고, 동시에 영광스러운 진리에 관여되어 왔습니다. 여러분은 율법과 대언자를 보고, 이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을 보며, 율법에 관한 보다 깊은 견해를 주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관점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 위에서 집행된 것이 하나님의 율법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처형하셨다는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속죄의 대속 교리는 그가 율법을 완전히 실행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주님은 완전무결하게, 능동적으로, 수동적으로, 소극적으로, 적극적으로 친히 율법에 복종하셨습니다. 모든 예표는 그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아직 남아있는 대언도 분명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구속 사역의 결과는 하나님을 거스려 율법을 깨뜨리고 있는 우리 비참한 반역자들에게 용서를 주는 것 뿐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 [곧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 참으로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자, 거룩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 놀라운 감정이나 체험을 경험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며, 모든 점에서 그분을 닮은 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자들로] - 만드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빈주의 5대 교리  (0) 2012.11.20
성경의 올바른 사용  (0) 2012.10.15
칼빈주석- 로마서 주제(5-7장)  (0) 2012.07.26
칼빈주석-로마서의 주제  (0) 2012.07.24
칼빈주석 -로마서  (0) 2012.07.24

5장은 믿음의 의의 열매와 결과들을 다룬다. 그러나 그가 앞서 말했던 바를 대체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해서 그의 요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준다. 구속함을 받아 하나님께 화목된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독생자를 주실 만큼 풍성하게 그의 사랑을 길 잃은 죄인들에게 쏟아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서 바울은 a mairi 논증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죄와 자유로운 의, 그리스도와 아담, 사망과 생명, 그리고 율법과 은혜를 비교시킨다. 이로써 우리의 허물이 아무리 클지라도, 그것들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선에 의하여 삼킨 바 된다는 것이 분명하다.

6장에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성화에 대해 그는 논한다. 육체가 이 은혜의 맛을 조금밖에 보지 못할 것 같으면, 그것은 마치 이제는 은혜가 끝나버린 것처럼, 그것의 악덕과 욕망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탐닉하기가 십중팔구이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여기서 성화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그리스도 안에 의를 우리가 얻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세례를 들어 그의 논증을 펴고 있다. 이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교제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의 생명을 (p.30)통하여 일으킴을 받아 새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다. 그러므로, 아무도 거듭남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을 수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바울은 이 사실을 근거로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 것을 권한다. 이러한 성결과 거룩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 큰 자유를 얻어 죄를 범하려고 하는 육체의 불경건한 방종을 제쳐 버리고, 죄의 왕국에서 의의 왕국으로 이적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져야 한다. 바울은 또한 간략하게 율법의 폐기를 언급한다. 이 율법 안에서 신약이 그 빛을 비추이고 있다. 왜냐하면 성령이 죄사함과 더불어 신약에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7장에서 그는 율법의 효용에 관하여 공명정대하게 논하기 시작한다. 그는 앞서 다른 주제를 논하면서 이것을 언급했던 바가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율법 그 자체만으로는 우리를 정죄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논증으로 인하여 율법이 비난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율법에는 아무런 흠이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그는 주장한다.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주어졌던 율법이 사망의 수단으로 둔갑한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라고 바울은 설명한다. 동시에 어떻게 율법이 죄를 더하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을 육신의 감옥에 감금되어 있는 한 경험하게 되는 영과 육의 갈등을 기술한다. 율법을 순종하는 데서 신자들을 계속적으로 빗나가게 하려고 하는 탐욕의 찌거기들을 신자들은 가지고 있다.

 
첨부

'개혁주의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빈주의 5대 교리  (0) 2012.11.20
성경의 올바른 사용  (0) 2012.10.15
율법을 성취하신 그리스도 - 마틴 로이드 존스  (2) 2012.09.18
칼빈주석-로마서의 주제  (0) 2012.07.24
칼빈주석 -로마서  (0) 2012.07.24

로마서의 주제

p.26

서신 전체가 아주 체계적이기 때문에 서두 자체마저도 기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바울은 그의 사도권을 입증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이것으로부터 복음을 소개하는 데로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이 소개는 불가피하게 믿음에 관한 논쟁을 수반한다. 그래서 복음에 대한 소개는 불가피하게 믿음에 관한 논쟁을 수반한다. 그래서 그는 전체 서신의 주요한 주제를 다룬다. 그 주제는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고 칭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그가 5장까지 해서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장들(1-5장)의 주제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유일한 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임. 그 은혜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제공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수납됨”.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의 죄 가운데서 졸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자만심이 깨져 그들이 낭패당하기까지는, 그들은 믿음의 의가 그들에게 필요없다고 생각하게 하는 거짓된 의의 개념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추어 주며 속이고 있다. 한편,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그들이 강하게 느끼기까지는(p.27), 그들은 욕정의 쾌락에 아주 도취되고, 무사 안일한 생활에 깊이 잠겨 있기 때문에, 금방 잠에서 꺠어나 의를 구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두 가지 것을 하고 있다. 하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사악함을 확신시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해 가지고 그들을 졸음에서 깨워 일으키는 것이다.

첫쨰로 그는 세계 창조때부터 온 인류를 그들의 배은망덕을 인하여 정죄한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탁월한 창조 사역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었는데도 창조주이신 그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으로, 그들이 어쩔 수 없이 그를 인정하게 되는 때에도, 그들은 합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그의 위엄을 높여 드리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허망하여져 그의 위엄을 더럽히고 손상시킨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을 이 불경건죄로 비난한다. 그런데 이 불경건은 모든 죄악들 중에 가장 가증스런 죄이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다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입증하기 위해서, 인간들이 어디서나 범하기 쉬운 더럽고 가동할 죄행들을 바울은 기록한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상실했다는 분명한 논증이다. 왜냐하면 이 죄행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증거들이요, 불경건한 사람들에게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과 어떤 이방인들은 그들의 내면의 사악함을 외형적인 거룩의 외투를 가지고 가리웠다. 그리고 이 죄행들을 인하여서는 결코 정죄 받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정죄는 면제된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것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위장된 성결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이 거룩의 가면이 자칭 성자들로 행세하는 사람들에게서 제거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일깨워 준다. 하나님의 눈은 인간의 숨은 욕망까지도 보실 수가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사도는 그의 강화에 구분을 짓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유대인과 이방인을 따로따로 세운다. 이방인들의 경우에는 그들이 무지를 핑계로 삼지 못하게 한다. 그들의 양심이 그들의 율법이었다는 것과 그것은 그들을 고발했고도 남는다고 그는 말한다. 유대인들에 관하여서는, 그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는 데 사용했던 바로 그것인 성경을 받아들일 것을 그들에게 바울 사도가 강력하게 탄원한 악함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입으로 이미 그들에 대해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바울은 그들이 만들어 낼 수도 있었던 예(p.28)상된 반대를 미리 막고 있다. 그 반대는, 만일 그들과 다른 이방인들 간에 아무런 구별도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들과 다른 이방인들 간에 아무런 구별도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 거룩의 표시이었던 하나님의 언약이 깨뜨려졌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먼저, 그들이 언약을 소유한 것이 그들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게 해 준 것이 없음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들의 불충실로 인하여 그것을 상실해버렸기 떄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불변성이 제거될까 염려하여, 그는 또한 그 언약으로 인하여 그들이 약간의 특권을 누리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며, 그들 자신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특권을 들어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모두 죄인들임을 증명한다. 그는 또한 여기서 율법의 효용을 약간 언급한다.

사도는 인류에게서 그들 자신의 선과 그들이 우쭐대는 자기 의에 대한 신뢰를 분명하게 박탈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성을 들어 그들을 낭패시킨 연후에,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그의 이전의 명제에로 이제 되돌아 온다. 그 믿음이란 어떤 것이며, 그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의를 얻게 되는 가를 그는 설명한다.

그는 3장의 끝 부분에서 이것에다 훌륭한 결론을 덧붙인다. 이는 인간의 자만심의 만행을 진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히 거스리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 큰 은총을 그들 자신의 민족에게만 국한시키지 않도록, 그는 그것이 이방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4장에서 그가 아주 분명한 것으로 단언하고, 그러기에 논쟁거리가 될 수 없는 한 실례를 들어 그는 논증한다. 아브라함이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는 한 유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것을 증거한 연후에, 우리가 바로 그 길을 좇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바울은 정반대 되는 것들을 대조하여, 우리가 좇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바울은 정반대되는 것들을 대조하여, 우리가 믿음의 칭의에 자리를 양보하는 경우 행위의 의가 물러나게 된다는 것을 여기서 덧붙인다. 다윗은 인간의 축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까닭에, 인간의 행위에게서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을(p.29) 그는 뺴앗아버리고 있다. 즉, 인간이 그 자신의 행위로는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고 다윗이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앞에서 그가 간단하게 다루었었던 주제를 보다 충분하게 다룬다. 즉, 유대인들에게는 자신들을 이방인들보다 높일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 이것은 이 축복이 둘 다에게 공통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그 주제를 보다 충분히 다룬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지 않았을 때 그가 의를 얻었다고 증거한다. 바울은 이 문구에서 할례의 효용에 관해 몇마디를 언급할 기회를 갖는다. 이렇게 한 연후에 구원의 약속이 하나님의 선(善)에만 달려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양심에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며, 그 약속은 성취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이 확실하도록 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만을 생각해야 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 자신들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점에 있어서 자기의 시선을 자신으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에로 돌렸던 아브라함의 본을 우리는 따라야 한다. 4장의 끝 부분에서 유사점을 가진 두 가지 것들을 비교한다. 이는 그가 인용한 실례를 보다 넓게 적용시키기 위함이다.

 
첨부

로마서성경주석. 존 칼빈. 성서원. 존 칼빈 성경주석 출판위원회:편역. 1998.

p.21

범사에 존경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신 시몬 그리네우스에게 드리는 헌사

......우리 모두는 간단 명료한 것이 주석가의 특별한 미덕이라고 여겼습니다. 주석가가 주해하기 시작한 그 저자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그의 유일한 과업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그의 독자들을 저자의 뜻하는 바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그는 그의 표적을 놓친 것이 되거나, 아니면 적어도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 길을 잃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원은 현재 신학의 대의를 이 종류의 과업으로 신장시키고자 계획한 많은 사람들 중에서 몇 사람만이라도 알기 쉬운 주석을 할뿐만 아니라, 길고 瀁꽁� 주석을 피함으로써 그의 독자들이 머무 지루하지 않도록 연구하고 노력해 주는 것입니다......저 자신은 간략한 것을 좋아하오며, 이 점에 있어서는 조금도 동요될 수가 없습니다......반면에 우리가 너무도 짧고 간략하다고 그들이 생각할지라도, 그들 또한 우리를 용서해 줄 것입니다.

p.22

.......이 서신을 다루고 있는 많은 고대 주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저자들에 의한 것도 많이 있습니다. 저들은 그들의 수고를 아낌없이 바치기에 가장 적합한 대상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만일 우리가 이 서신을 이해하게 되면 성경 정체를 이해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멜랑톤은.....그의 유일한 목표는, 그러나 특별히 주의할 만한 가치가 있었던 요점들만을 다루는 데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다루지만, 보통의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을 일부러 지나쳐 버리고 있습니다.

메랑톤의 뒤를 이어불링거가 나왔습니다. 그는 크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불링거는 교리를 쉽게 표현하여 이해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널리 칭송을 받았습니다.

끝으로 (p.23)뷰우처가 있습니다. 그가 그의 저서들을 출판함으로써 로마서 주석 문제에 관해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의 심오한 학문, 풍부한 지식, 예리한 지성, 광범한 독서, 그리고 현금의 아무 사람도 거의 능가하지 못하는 다른 많은 여러 가지 뛰어난 점들 외에도, 이 학자는, 우리가 아는대로, 필적할 만한 사람이 없을 만큼 월등합니다. 우리 세대에 아무 사람도 그 분만큼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정확하거나 근면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그에게 특별한 명예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바라옵기는, 지금 사람들이 한 일 중에 완벽하게 되어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후대의 사람들이 이전 사람들의 업적을 다시 가다듬고, 치장하고 또는 보충해야 할 여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멜랑톤은 주요한 요점들만을 설명함으로써 그가 의도했던 바를 달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주요한 과제에만 전념했기 때문에, 연구를 요하는 많은 문제점들을 등한시 했습니다......

뷰우청의 주석은 너무나 장황하여서 일에 쫓기는 사람들은 읽어 볼 염두도 못냅니다. 또한 너무도 심오하기 때문에 이해력과 주의력이 뒤진 독자들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한편으로 멜랑톤은 세부적인 것을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하고자 계획한 주석은 전혀 경쟁적인 성격을 갖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p.24)하지만, 이 저자들 상호간에 흔히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단순한 마음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큰 어려움을 안겨 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느 견해를 받아들여야 할지 망설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가장 좋은 해석을 가리켜 줌으로써, 독자들에게 판단을 내리는 고통을 덜어 주게 된다면, 저는 이 과업을 착수했던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자신의 판단은 다소 산만하다고 저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특별히 모든 문제점을 아주 간략하게 다룸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다른 저서들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본서에서 읽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게 하고자 결심했었습니다......저는 때때로 다른 저자들과 견해를 달리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몇가지 점에서 그들과 다릅니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서는 저를 용서해 주시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단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단히 존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성경 해석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단한 분별력을 가지고 적절하게 주해하지 않는다면, 말씀의 위엄이 다소 손상됩니다......

그러므로, 장난하듯이 하여 합당한 주의를 기울임이 없이 성경의 뜻을 변질시키는 것은 외람되고 참람한 짓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학자들이 일찍이 이것을 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비밀을 논함에 있어서 경건과 절제를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였던 사람들 중에서도 결코 만일 공통의 의견 일치가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계속적으로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이 그들의 주제의 모든 부분에 대한 충분하고 완전한 지식을 각기 소유할 만큼 그들을 결코 축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p.25) 우리의 지식을 그렇게 제한하신 목적은 첫째로 우리를 계속하여 겸허하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우리의 동료들과 교제하기를 계속하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만 아니라고 한다면, 완전한 지식을 갖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성경 구절들의 해석에 관해 영구불변의 일치된 견해를 우리 가운데서 금세에 기대하여서는 안됩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히 자기 백성들의 마음이 일치되는 것을 소원하신 경건에 대한 교훈들에 있어서는 우리가 함부로 하여서는 안됩니다. 저의 독자들께서는 제가 이 양편을 다 연구하였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1539,10,18

스트라스 부르그에서

존 칼빈.

 
첨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