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되는 조건(1)
개혁주의 자료 2014. 4. 12. 15:49신자가 되는 조건(1)
최낙재 목사
(사람의 일을 생각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것)
마 16:13~28
예수 그리스도는 홀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양육하시고 생명과 영광의 길로 인도하시고,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를 때에만 생명과 영광에 이를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그 터 위에서 우리가 이 말씀을 할 수가 있습니다.
방금 낭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대화하는 대화의 두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데 각각 놀라운 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장면에서는 열두 사도 가운데 베드로 가 하는 대답을 예수께서 잘 대답하였다고 인정을 하시고 칭찬을 하셨는데 놀라운 말씀으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둘째 장면에서는 뜻이 깊고 오묘한 진리의 사실을 알려 주시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인간적인 충정에서 거기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으려 할 때에 사단이 거기서 활동하고 있다고 책망하시고,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먼저 베드로가 내놓은 그 대답을 보십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예수께 관하여서 믿고 아는 바를 말하였습니다. 주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주신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길을 돌보실 자임을 말하였습니다.
열두 제자나 베드로가 이러한 신앙 고백을 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다른 많은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여건 하에서 살았고 같은 시대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됐는데, 그러나 자기 동족들보다 훨씬 뛰어난 지식과 깨달음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처음에는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고, “이에 더러는 세례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하고 대답을 하자, 또 이어서 물으시기를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능력과 기사와 표적을 행하셨을 때에 무리들, 일반 대중도 제자들과 함께 듣고 보고 뭔가 큰 감명과 인상을 받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시고 세상에 어떤 큰 변혁을 일으키시고 새로운 시대가 오게 하시려나 보다. 그러시기에 앞서서 엘리야를 보내신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세 때부터 말한 그 선지자나 대 변혁기에 그 선지자 예레미야가 나타났는가?’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셔서 일대 변동을 일으키시고 새 시대를 오게 하실 그 기미를 느끼고, 그러기 위해서 쓰시는 선지자인가 보다 하는 만큼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공생애 초기부터 예수의 행하신 일을 보고 어떻게 하면 저를 죽일꼬 하고 원수같이 여기고 죽일 꾀를 생각해내느라 모의하곤 하였지만 일반 대중은 그렇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큰 인물이라, 선지자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결코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지는 아니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이 앞서 나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외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그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메시야를 위하여서 백성을 예비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삼십여 세 되셨을 때에 요한에게 나아가서 세례를 받으셨고, 요한에게 모여든 소수의 백성 가운데서 따르는 자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서 백성들 앞에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병자들을 불쌍히 여겨서 낫게 하시고 큰 능력들을 행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표적이 될 만한 일들을 행하실 때에 이들 군중들은 이것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고 멀리서 따라왔고, 제자들은 훨씬 더 가까이 따르며 배우고 보고 들었습니다. 출발부터 이 제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세례 요한이라, 엘리야라, 예레미야라, 또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말할 때에 이 제자들은 그리스도라 하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렇게 갈라서 물으심으로 다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뿐 아니라 바짝 따르지 아니하고 멀찍이서 따르며 환영하는 그 무리와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예수께 가까이 밀착해서 따르는 제자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자요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나타내 주시려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신 뒤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렇게 갈라서 물으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때에 그를 중보자 그리스도로 믿고 분별력이 있어서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되는 특권을 얻을 사람입니다.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많은 사람이 다 같이 그리스도의 권능 행하심을 볼지라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고 겸손해져서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주시고, 구원을 얻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접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계시의 빛을 비추어 주신 자가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이외의 다른 사람은 보기는 보아도 깨닫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 자들은 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인데 이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또 아버지를 알게 하여 주십니다. 오직 이들만 하나님을 알고 아버지라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한 것에 대하여서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고 말씀하신 것은 구원의 은혜의 선포요,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확증하시는 말씀입니다. 큰 칭찬의 말씀입니다.
또 이것은 신자가 하나님과 말씀을 주고받고 사귈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고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임을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다” 하고 후에 사도들은 말하였습니다. 주 예수께서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와 이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나타내 주셨고 그리스도께서 이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하여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심장한 칭찬의 말씀을 믿음이 있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에게 하셨고, 이러한 신앙의 소유자인 사도들의 터 위에 주의 교회를 세우실 것과 그들에게 천국열쇠를 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주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이때로부터 당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셨다” 하는 점과 이를 “그리 마옵소서” 하고 말리는 그 베드로를 아주 호되게 책망하신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이시라고 믿는 믿음을 가진 것은 진리를 안 것이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으로서 많은 외면적 유대인, 외면적 아브라함의 자손과는 달리 참 이스라엘인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별된 백성이 된 것을 표하는 것이라고 칭찬을 하셨는데, 그 이외에 중대하게 가르치실 것이 있어서 가르치셨다는 그 사실과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인간적인 생각으로 가로막으려 하였을 때에 크게 책망하신 사실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는 것을, 그것을 제자들이 더 배우고 알아야 했습니다. 제자들이 이미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지식을 가졌을지라도 아직도 더 배울 진리가 있고 그리스도의 하실 일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알아가는 데에 진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여기서 보게 됩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어둠에서 빛으로 찾아 나왔으면 그것이 큰 은혜이지마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고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자만할 수가 없고, 더욱 진리를 배우고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크신 중보자 그리스도이시므로 그의 위대하심과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가에 관하여서 배워야 할 것이 신자에게는 많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주신 그 대사명,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그 말씀을 하셨는데 이 제자를 삼는 일, 제자를 삼아서 세례로써 하나님의 백성된 표와 인을 치는 일이 있고, 그리고서는 그리스도의 가르치신 것, 명령하신 것을 모두 다 가르치는 일이 있습니다. 그 직분을 맡은 사람은 그렇게 할 것이고, 그러면 신자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다음에는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교훈과 명령을 배워서 지키는 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 앞에서 이르기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하였고,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해야 하는 것이에요. 숨김없이 다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모든 하나님의 자녀된 신자는 하나님의 뜻을 다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 전체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고 온전한 사람,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리스도의 장성의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고 신자가 된 다음에 열심히 진리를 탐구하고 남보다 앞서서 진리를 알고서 믿음의 진보를 나타내더니 어떠한 수준에 이르니까 ‘이제는 알 만큼 알았으니 봉사에 힘쓰자. 나의 사명을 찾아서 사명을 수행하고 나아가자’ 하고서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의 은혜 가운데 자라나는 일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그 일을 쉰다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 그렇게 선언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마음에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어요. 참 딱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희에게 있을지어다.” (벧후 3:17,18)
서신으로서는 베드로 사도가 마지막으로 한 말씀입니다. 한편으로 무법한 자들의 무법한 말과 행동으로 믿음에 굳게 서서 나가는 신자를 자꾸 옆에서 이렇게 건드리고 저렇게 건드리고, 이렇게 시험하고 저렇게 시험해서 곁길로 가게하고 넘어뜨리는 일이 세상에 많이 있으니까 주의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더욱 받으며 자라가고 그를 배우고 아는 데서 자라가라”그렇게 권하는 말씀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있어서나 유대주의나 헬라의 문화에 풍부한 지식과 소양이 있었지만 그리스도를 배우고 아는 일에는 평생 쉬지 않고 정진하여 나갔습니다. 빌립보서 3:5 이하의 몇 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백발이 된 사도가 그리스도를 더욱 알고 그의 능력을 더욱 알아서 의지하고 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여기서 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사명을 받아서 이루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할 일이 있으면 하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마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고 그리스도를 배우고 아는 데에서 자라가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자라가는 것을 일단 중지하고서 봉사하는 봉사란 없는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요, 중보자는 크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등이 아니시면 우리에게 중보자의 일을 하실 수가 없으신 것입니다. 크신 중보자이심을 우리가 더욱 배우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큰일을 우리를 위해서 하셨는가? 지금도 행하고 계신가? 우리는 자꾸 배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판단하실 때에 제자들이 동족 중 다른 사람과는 달리 그리스도를 알았을지라도 그리스도에 관하여서,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에 관하여서 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데, 베드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가 가시는 길을 가로막아 서는 것을 크게 책망하신 것을 보면 그 가르치시려 한 것이 얼마나 중대하였던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로 알았다고 칭찬을 받은 베드로가 깨닫지 못하므로 걸림돌이 되는 것을 보면 베드로나 제자들 앞에 있는 그 문제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을 짐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그리스도께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 하셨단 말씀입니다. 이것은 복을 받은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큰 무지 가운데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이것은 또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은 아무도 도울 이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홀로 짊어지시는 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시고 특별히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오셨지마는 다들 깨닫지 못하고 심히 반대하고 죽이려는 사람도 있고, 소수 제자들도 그리스도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말씀하셨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막아선다면 천지간에 하나님의 일을 함께 이룰 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오직 그리스도 홀로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그 일을 이루시러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에 책망을 들음으로써 주를 따르는 제자로서 부족한 것이 무엇이고, 장성하기 위하여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드러났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고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 도덕적으로 저급한 일을 생각한다든지 주를 따르는 일에 비겁하다든지 해서 책망하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태도는 인간 사회에서는 오히려 고상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후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께서 잡히실 때에 그 검 하나를 가지고서 그리스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많은 군사들과 그냥 싸우려고 한 것을 보면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고 또 주를 위해서 헌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간적으로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계시의 빛 가운데서 움직이지 아니하고, 주를 따르지 않는 동족들과 같은 평면에서 생각하고 움직이고 하였을 뿐인 것입니다.
동족들도 악한 일만 일삼아서 그리스도를 배척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다 애국을 할 줄 알았고,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바로 들을 귀가 없어서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대신에 들을 귀가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해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여 버리고 사람의 계명으로 바꾸어 가르치고 바꾸어서 지켰던 것입니다. 십계명 하나라도 마음으로부터 깨닫고 지키지를 못하고 외형적으로만 지켰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다니 이놈 혼 좀 나봐라’하고 이제 누가 법정으로 끌고 간다며는 그러한 경우에 끌려가서 처벌을 받지 않을 정도로 그만큼만 지키면 지켰다고 생각하는 그러한 수준에서 살았던 것이 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받고 산 이스라엘의 대중들이었습니다.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따르며 빛을 받아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왔지만, 일상생활에서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교훈을 받고 고침을 받아서 바르고 선하고 아름답게 되었느냐 하면 아직 그러지를 못하고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준에서 왔다갔다 활동을 하고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선지자 때도 있었던 현상으로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고치라고 하셨던 점입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사55:6-9)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일이 있고, 이스라엘을 포함해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경영하시며 행하시는 일이 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람들이 그것은 생각지도 않고, 그것은 전혀 모르고 그냥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평면에서 선한 것과 의로운 것, 아름다운 것과 진실 된 것을 찾고 그것을 세워 나간다고 아무리 힘쓰고 애쓴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그냥 넘어지고 무너질 뿐입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의 경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요. 사람의 생각으로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되겠다 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만들고 세상 학문의 도움도 받고 그러지만 그런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못하고 그냥 넘어지게 하고 무너지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는 이미 예부터 가르쳐지고 예고되었던 바입니다. 잠언 19:21,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사람의 생각과 이 세상 나라가 경영하는 일들은 언뜻 보기에 좋은 것 같고 곧 이루어질 것 같지만 이 세상과 인생사를 다스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 하나님이 생각하시고 경영하시는 일이 이루어지고 그 일만이 마침내 이루어지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지는 하나님의 백성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온 생각이나 위대한 사상이라도 어떤 선행이나 영웅적인 행위도 주 예수께서는 다 물리치시고, 오직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일에 소망을 두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이루는 데 자신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할 일임을 뚜렷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을 명백하게 드러내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사단은 한사코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일,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막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훌륭한 생각, 도둑질하려는 생각이 아니고 이 사회를 위해서 어떻게 할 건가. 염려하고 의를 행하고 선을 쌓는 일, 그런 일을 자꾸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에요. 다만 하나님의 생각하는 것, 하나님이 지금 이루시려고 도모하는 것 그것만은 생각하지 마라라 그것입니다. 사단의 속임이란 그런 데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행동, 베드로의 주님을 만류하는 것. 그것 참 인간 사회에서는 아름다운 일 아닙니까? 다만 예수님의 가르침, 하나님의 일을 지금 예수님께서 계시하여 주시는데 그것만 막는 것입니다. 거기는 가지 마라라. 자꾸 선을 행하고 하라. 그런 데에 사단의 시험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텐데 그것이 곧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 당신에 관하여서 가르치기 시작하시면서 하신 그 말씀에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그렇게 하셨어도 무방한 듯한데, “살아나야 하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뜻, 특별히 자기 백성에게 언약하신 바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므로 반드시 이뤄지는 그 필연성을 표시하는 말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항상 ‘이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뤄지리라. 이 하나님의 뜻이 반드시 이뤄지게 하리라’ 하는 이 거룩한 필연성에 자신의 발걸음을 항상 맞추셨습니다.
당신을 가리켜서 ‘인자’라 칭하신 것도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것을 성취하시는 자로서의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하신 말씀입니다. 다니엘서에 예언된 바 세상 나라가 한때 기세를 올리지만 그 악함과 강포로 인해서 다 차례로 하나님의 심판에 해당하는데, 그런 가운데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어서 영원한 나라의 권세와 영광을 받는 사실이 이제 바야흐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서 다니엘의 본 바 그 환상 가운데서 이 인자의 칭호를 만드시고 당신을 위해서 그 칭호를 사용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선을 추구하고 자선을 행해서 자기의 의를 쌓는다하여도 자기나 이 세상의 중생을 그 죄에서 또 사망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구원의 일을 이루려 하실 때에 먼저 선지자들을 통하여서 예언으로 알리시고 이 큰일을 인류 역사의 가도에서 일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아모스 선지자의 말씀입니다.(3:7) 예언은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요 따라서 예언은 현실 세상에 확실히 실현되고 열매를 맺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은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으로써 널리 온 세상에 전파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눈을 사람의 일에서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일로 돌리려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신자가 장성하기 위하여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이 어떤 생각을 하시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자라고 능력이 있으려면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가르치고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깊이 있게 풍부하게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에 힘 있게 전파되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빛을 발휘하던 1세기에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그렇습니다.
복습문제
1. 제자들이 자기 동족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식과 깨달음을 가지게 된 배경을 정리해 보십시오.
2.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이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의 칭찬 후에 이어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을 가르치신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첫째로 알게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4. 교회 안에서 지극히 안타까운 일은 무엇이고, 누구보다도 그리스도를 풍부하게 알았던 백발이 된 사도도 어떻게 하였습니까?
5. 그리스도의 길을 가로 막으려고 하였던 베드로의 태도에 대한 사회적인 평가와 그러나 이에 대한 그리스도의 책망이 가지는 의미, 그리고 교회에 대한 사단의 은밀한 속임은 어디에 있는가를 간단히 정리해 보세요.
6. 신자나 교회가 장성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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