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부활에서 구원의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알자/ 아이작 암브로스
개혁주의 자료 2014. 4. 19. 23:24부활 속에서 그리고 부활하신 뒤 이 땅 위에 머무시는 동안 우리의 구원이라는 위대한 사역을 수행하신 예수님을 알자. 그것에 우리의 칭의와 성화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만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면 우리에게는 천국에 대한 소망도,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면 모든 사람 가운데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가장 비참한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면 그것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가 않다. 당신이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지를 확실히 하라. 그것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스도가 나의 머리가 되신다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식은 개인적으로 특별히 적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실 때 나도 그분과 함께, 그분 안에서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에게 임한 은혜가 당신에게도 흘러갈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열매가 당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것일 뿐만 아니라 바로 당신의 것이다! “너의 유익을 위해 그것을 알지니라”(욥5:27).
구원에 필요한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의 가엾은 영혼에 영양분과 새 힘을 주기 위해서는 진리를 소화 흡수해서 그것에서 힘을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시간 안에 많은 진리를 머릿속에 담아 둘 수는 있지만 그 진리를 모두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묵상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 많은 설교가 잊혀진다. 이 설교, 저 설교를 찾아다니면서도 파리하게 굶어가는 영혼이 되어 간다. 그것은 그들이 묵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율법을 읽을 뿐만 아니라 묵상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수1:8). 알고 있다면 그것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반추하며 묵상하라.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시간에 대해 생각하라.
그리스도가 무덤 속에서 정확히 3일을 보내셨듯이 당신은 그분에 대해 3일의 시간을 생각해야 한다. 첫째 날은 준비의 날이라고 불렸다. 둘째 날은 안식일이었고, 셋째 날은 부활절이었다. 따라서 당신의 첫째 날은 준비의 날, 수난의 날이다. 이 날에 당신은 죄와 사탄과 대적해 몸부림치고 싸워야 한다. 이 날에 당신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죄와 사탄이 쏘는 모든 고통스런 불화살을 견뎌야 한다. 둘째 날은 안식의 날이다. 이 날에 당신의 몸은 무덤 속에 있어야 하고 소망 가운데서 안식을 누려야 한다. 이 날에 당신은 나팔 소리가 울리고 당신에게 일어나 심판대 앞에 오라는 명령을 받을 때까지 “평안에 들어가고 침상에서 편히 쉬리라”(사57:2). 셋째 날은 영광으로 부활하는 날이다. 그것은 안식일 다음 날, 한 주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이 날은 결코 끝남이 없는 세상이 시작되는 첫 날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때를 생각하라. 그렇게 할 때 당신은 자신의 영혼의 양식을 위해 부활의 유익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신 이유들을 생각하라.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이 유대인들을 당황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제자들이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하자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했다”(행5:33). 자신의 죄로 매일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그분이 높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끔찍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가 그들의 심판자로서 다시 살아나신다는 사실이 그들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것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믿음을 확증시켜 주지 않았는가? 그들의 믿음은 단지 연약한 믿음에 불과했다. 지식도, 확신도, 담대함도 연약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오류 없는 많은 증거를 통해 자신이 살아나셨음을 나타내신 뒤에 제자들은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니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이 온전히 우리의 모든 빚을 지불하셨다는 증거가 되지 않았는가?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히7:22). 죽음으로 그리스도는 체포되어 감옥에 내던져졌다. 그 감옥에서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고 무덤의 빗장과 족쇄를 깨뜨리셨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만족함을 얻었고 하나님이 친히 그리스도를 풀어 주셨다는 명백한 증거다. 오! 여기에 얼마나 넘치는 위로가 있는가!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죄와 죽음, 사탄을 정복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이제 그리스도는 사망에서 그 쏘는 것을 제거하셨다. 지옥에서 그 깃발을 취하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손에 우리를 대적하는 문서를 취하고 그것을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주권과 권세를 탈취하고 사망과 지옥의 열쇠를 손에 쥐셨다. 이제 그리스도는 강한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와 드보라가 찬양했듯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 강은 옛 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삿5:21).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그리스도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첫 번째 분이 되었다. 그분의 부활의 미덕을 통해 모든 택함받은 자가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고전15:22-23).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할 이유가 되었듯이 한 사람의 부활이 우리가 다시 살아나는 이유가 된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두 머리다. 두 뿌리요 두 첫 열매다. 아담과 그리스도 모두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선포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이 그분이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그것이야말로 다른 모든 이유 가운데 가장 주된 이유다. 그것에 주목하라. 오!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그분에게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라. 이 놀라운 일을 묵상하고 반추하라.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이름에 모든 존귀와 영광을 올려 드리라!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는가?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다”(빌2:9). 오! 그렇다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 2』, pp 24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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