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상황은 '한국교회' 영적 상황의 사영이다. 여기서 '한국교회'는 대한민국 내의 모든 교회들을 총망라한 전교회적 차원의 범위이다. '한국교회'는 하나의 유기적 통일체이다.


그 유기적 통일체 안에서 우상숭배에 동의한 교단와 교회, 선교단체들이 또 하나의 유기적 결합체로 모여 또 다른 '한국교회'의 이름과 자격으로 공식적인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은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차원에서 두 유기체가 충돌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국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죄악의 벽 뒤쪽으로 소멸되어 사라진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다.


정체성의 붕괴는 곧 메타 코스모스의 붕괴다. 성령의 결합이 아닌 우상과 뒤섞인 몸으로의 변질 말이다. 통일 대한민국을 부르짖는 모든 깨어있는 이들은 이 구조 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일부 기관일 뿐 몸으로서의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끼리 모인다 하여 우리가 '한국교회'의 몸을 초월한 주체적 자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속한 교회가 WCC에 귀속되어 당신이 그 죄를 막는 중보자로 섰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교회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서서 죄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내고 회중에게는 회개를 외쳐 돌을 맞는다. 대신 죄를 짊어져 금식으로 나아가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교회가 끝내 회개를 이루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당신의 모든 중보가 교회와 무슨 상관이 있게 되겠는가? 당신은 중보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지고 영적으로 깊어지며 지경도 넓어질 수 있다. 그리고 교회의 죄악도 당신이 중보하는 동안만큼은 씻겨져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사 존재인 교회가 계속 그런 죄악에 머무르고 있다면, 중보는 사실상 별다른 소용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중보는 끼리끼리 모여 부르짖는 차원을 넘어서야만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국교회'로서 전교회적인 회중을 모이게 하여 유기적 통일체로써 회개의 주체적 존재로 세워서 또 다른 '한국교회'인 유기적 결합체, 즉 우상 세력을 반드시 교회안에서 내치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중보가 이것을 할 수 있도록, 방향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조명해줘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교회'의 현 상황은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없어진 것과 다름 없다. 이미 존재하는 '한국교회'가 모여서 그 안에 있는 죄를 씻자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다시 만들도록 모이게 해야 한다.


회중이 만들 유기적 존재는 회중의 인식과 믿음 안에 있는 상정된 존재로 이뤄진다. 믿음을 두고 바라보는 포커스가 현 상황에 대한 어물쩡한 믿음으로부터 야기된 것이라면, 다시 말해 '한국교회'의 존재 자체가 박살난 현상황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한국교회'로서 모이자는 대주제 아래 만들어질 그 어떤 '한국교회'라는 존재도 어물쩡한 존재가 되버린다.


유기적 존재들의 충돌 현장에서 상반된 두 존재에 대한 인식이 회중에게 필요하다. 유기적 결합체의 정체성은 특정한 개별 존재를 초월한 곳에 있다. 그것은 존재들끼리의 결합을 형성하고 있는 연결고리, 사슬이다. 즉, 회중의 인식을 위해 유기적 결합을 이루는 사슬을 조명해야 한다.


유기적 존재를 나누는 잣대 역시 이 사슬을 드러내는 것이고 충돌시키는 것이다. 사슬의 충돌은 사슬끼리 이뤄진다. 유기적 차원의 문제는 유기적 잣대가 있어야만 드러난다. '한국교회'는 오직 예수, 그분을 알리는 성령의 결합체이다. 


그런데 예수 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이 교회안에 우상숭배자들의 사슬이다. 회중의 믿음 가운데 이 사슬의 충돌을 인식시키려면 '한국교회'의 깨져버린 사슬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어둠의 사슬을 덮고 있는 가증한 덮개가 걷혀져야 한다.


'한국교회'에 일어난 공식 우상숭배의 죄악으로 미혹의 역사가 대부분의 회중 가운데 계속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미혹의 영을 걷어내지 않으면, 회복해야 할 '한국교회'는 영영 회복하지 못할 수 없다.


가증한 덮개는 곧 그들이 '한국교회'인 척 하게 만드는 가증한 옷이다. 그것이 그들의 유기적 결합을 합당하게 여기게끔 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유기적 차원을 이루는 각 존재들의 사슬에 대한 조명은 '한국교회'로서 분명한 잣대(오직 예수)를 세우는 것과 더불어 그들의 사슬을 덮은 가증한 옷을 치우는 것, 그리고 유기적 존재의 에토스와 페르소나를 박살내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그 가증한 옷이 무엇일까?

바로 WCC와 세월호 참사의 영적 인과를 덮은 가증한 의, 그것을 수놓은 노란 리본이다. 그것이 최초의 겉옷이다. 이 인과 관계를 밝혀 가증한 옷을 벗기는 것이 저들의 유기적 에토스를 박살내고 그 밑에 있는 사슬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WCC를 덮고 있는 가증한 옷을 드러내야 저들의 사슬이 드러난다. 어둠의 사슬이 드러나야 가증한 옷 가운데 함께 얽혀져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회중이 깨닫기 시작한다. 회중이 인식해야 '한국교회'를 이루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본래의 사슬에 대한 잣대로써 끊어버릴 수 있는 현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식 우상 숭배에 대한 회개는, 회중이 이룰 유기적 존재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당사 차원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끼리 부르짖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매듭의 사영은 실제 매듭이 있는 차원에서 해결해야만 한다.


현 상황에서 방법이 없는 것 같아도 길은 있다. 아직 우리가 행하지 않아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뿐이다.


대한민국과 연결된 것은 '한국교회'이지 그 일부인 우리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과 그 차원의 범위에 맞는 대응과 중보가 필요하다. 전교회적 범위 차원의 존재에 포커스를 제대로 맞춰야 그에 따른 대응의 길이 보인다. 우리는 우리만의 중보를 넘어서서 회중 차원의 사슬과 부딪쳐야만 한다.



글 & 이미지 출처: InSung Koo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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