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하 '오적(五賊)'◈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된 작품이다. 담시(譚詩)라는 독창적인 장르를 택해 전통적 해학과 풍자로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한 풍자시이다.
1970년대 초 부정 부패로 물든 한국의 대표적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조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오적(五賊)에 비유해 적나라하게 풍자함으로써,
문단에 파문을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시인의 존재를 널리 알린 문제작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사상계》는 폐간되고, 작가와 편집인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시인은 이 작품을 통해 1960년대의 시에 대한 강렬한 비판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작품 속에서 일제 통치 시대의 수혜 특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오적'이라 일컫고, 이들을 모두 '犬(개 견)'자가 들어가는 신조어 한자로 표현함으로써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등장시킨다. 짐승스런 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 장안 한복판에서 도둑질 대회를 벌이는 것으로 사건을 전개시키며 고대소설처럼 등장 인물들을 차례대로 풍자해 나간다.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 들의 부정부패와 초 호화판의 방탕한 생활은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게다가 부정 부패를 척결할 임무를 부여받은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의 비유)이란 인물은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을 잡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에게 매수되어 오적을 고해바친 죄 없는 민초 '꾀수'를 무고죄로 몰아 감옥에 집어넣고 자신은 도둑촌을 지키는 주구로 살아간다. 작가는 포도대장과 오적의 무리가 어느 날 아침 기지개를 켜다가 갑자기 벼락맞아 급살한다는 고전적 기법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시기에 소실되어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진 작품이다. 창작 서사시로서 한국의 현대시문학사에 '담시'라는 새로운 형식과 전통적인 풍자 기법을 되살렸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야기를 소리로 형상화함으로써, 특권 지배층을 날카롭게 공격하고 피지배계층의 한을 드러낸 점과 판소리를 계승 발전시킨 점은 높이 평가된다.
"꼭 읽어야할 현대시 222선"에서 퍼왔습니다
이 시는 1970년 5월 '사상계'를 통해 '담시'라는 독창적인 이름으로 발표, 파문과 물의를 일으키며 김지하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오적'은 민중의 집단적 창조력에 의해서 긴 역사적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예술 형식의 하나인 판소리 양식으로 뒷받침되어 있으며, 일제 식민 통치의 암흑기 속에서 쇠잔하고 소실되어 버린 민족의 가락을 되찾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뚜렷한 목적 의식 아래 씌어졌다. 그것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민족 문학의 새로운 진로에 큰 빛을 던져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 시를 대할 때에는 그 안에 담긴 내용 못지 않게 양식과 가락에 대해서도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담시란 '단형 서정시보다 길고 단편 소설보다 짧은' 길이 속에 당대의 정치적 문제를 기습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 시'의 독특한 장르이다. 기습성(담시의 발표 연도와 정치적 사건의 맥락에서의), 공격성(반민중적 소수 집단을 향한 정치적 풍자시라는 점에서), 이야기 전달성(담시의 형식적인 면과 감추어진 진실의 폭로라는 의도에서) 등의 특성을 지닌 이 새로운 장르의 출현은 역사적 현실의 가장 첨예한 내용의 요청에 부응하려는 시도에서 그 정당성을 지닌다.
'오적'을 보면 대뜸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은 표면 구조에 있지 않고 심층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적이라고 못 박은 사람들 즉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한 마디로 말해서 일제 식민 통치의 수혜 특권층이라 할 수 있다.
이 오적을 통해서 의도한 바는 이 작품에 그린 과장되고 희화화되고 풍자의 대상이 된 모든 인물들의 행태가 바로 불식되지 못한 일제 식민 유산의 부산물로, 진정으로 자율적이고 근대화된 통치 질서를 이 땅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식민 잔재의 완전한 청산을 통한 새로운 인간에 의한 새로운 통치 이념의 구현이 필요하다는 방향 제시였다고 할 수 있다.
1
시(詩)를 쓰되 좀스럽게 쓰지 말고 똑 이렇게 쓰럇다.
내 어쩌다 붓끝이 험한 죄로 칠 전에 끌려가
볼기를 맞은 지도 하도 오래라 삭신이 근질근질
방정맞은 조동아리 손목댕이 오물오물 수물수물
뭐든 자꾸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으니, 에라 모르겄다
볼기가 확확 불이 나게 맞을 때는 맞더라도
내 별별 이상한 도둑이야길 하나 쓰것다.
옛날도, 먼 옛날 상달 초 사훗날 백두산아래 나라선 뒷날
배꼽으로 보고 똥구멍으로 듣던 중엔 으뜸
아동방(我東方)이 바야흐로 단군 아래 으뜸
으뜸가는 태평 태평 태평성대라
그 무슨 가난이 있겠느냐 도둑이 있겠느냐
포식한 농민은 배 터져 죽는 게 일쑤요
비단옷 신물나서 사시장철 벗고 사니
고재봉 제 비록 도둑이라곤 하나
공자님 당년에도 도척이 났고
부정부패 가렴주구 처처에 그득하나
요순시절에도 시흉은 있었으니
아마도 현군양상(賢君良相)인들 세상 버릇 도벽(盜癖)이야
여든까지 차마 어찌할 수 있겠느냐
서울이라 장안 한복판에 다섯 도둑이 모여 살았겄다.
남녘은 똥덩어리 둥둥
구정물 한강 가에 동빙고동 우뚝
북녘은 털빠진 닭똥구멍 민둥
벗은 산 만장 아래 성북동 수유동 뾰죽
남북 간에 오종종종종 판잣집 다닥다닥
게딱지 다닥 코딱지 다닥 그 위에 불쑥
장충동 약수동 솟을대문 제멋대로 와장창
저 솟고 싶은 대로 솟구쳐 올라 삐까번쩍
으리으리 꽃궁궐에 밤낮으로 풍악이 질펀 떡치는 소리 쿵떡
예가 바로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 이름하는,
간뗑이 부어 남산하고 목질기기가 동탁 배꼽 같은
천하 흉포 오적(五賊)의 소굴이렷다.
사람마다 뱃속이 오장 육보로 되었으되
이놈들의 배 안에는 큰 황소 불알 만한 도둑보가 겉붙어 오장 칠보,
본시 한 왕초에게 도둑질을 배웠으나 재조는 각각이라
밤낮 없이 도둑질만 일삼으니 그 재조 또한 신기(神技)에 이르렀것다.
하루는 다섯 놈이 모여
십 년 전 이맘때 우리 서로 피로써 맹세코 도둑질을 개업한 뒤
날이날로 느느니 기술이요 쌓으느니 황금이라, 황금 십만 근을 걸어놓고
그간에 일취월장 묘기(妙技)를 어디 한번 서로 겨룸이 어떠한가
이렇게 뜻을 모아 도(盜)짜 한자 크게 써 걸어놓고 도둑 시합을 벌이는데
때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이라 날씨는 화창, 바람은 건듯, 구름은 둥실
지마다 골프채 하나씩 비껴들고 꼰아잡고
행여 질세라 다투어 내달아 비전(泌傳)의 신기(神技)를 자랑해 쌌는다.
2
첫째 도둑 나온다 재벌이란 놈 나온다
돈으로 옷 해 입고 돈으로 모자 해 쓰고 돈으로 구두 해 신고 돈으로 장갑 해 끼고
금시계, 금반지, 금팔지, 금단추, 금넥타이 핀, 금카후스보턴, 금박클, 금니빨,
금손톱, 금발톱, 금작크, 금시계줄.
디룩디룩 방댕니, 불룩불룩 아랫배, 방귀를 뽕뽕 뀌며 아그작 아그작 나온다
저놈 재조 봐라 저 재벌놈 재조 봐라
장관은 노랗게 굽고 차관은 벌겋게 삶아
초치고 간장 치고 계자 치고 고추장 치고 미원까지 톡톡 쳐서 실고추과 마늘 곁들여
나름
세금받은 은행돈, 외국서 빚낸 돈, 왼갖 특혜 좋은 이권은 모조리 꿀꺽
이쁜 년 꾀어서 첩 삼아 밤낮으로 작신작신 새끼 까기 여념 없다
수두룩 까낸 딸년들 모조리 칼 쥔 놈께 시앗으로 밤참에 진상하여
귀뜀에 정보 얻고 수의 계약 낙찰시켜 헐값에 땅 샀다가 길 뚫리면 한 몫 잡고
천(千)원 공사(工事) 오 원에 쓱싹, 노동자 임금은 언제나 외상 외상
둘러치는 재조는 손오공 할애비요 구워 삶는 재조는 뙤놈 술수 빰 치겄다.
또 한 놈 나온다.
국회의원 나온다.
곱사같이 굽은 허리, 조조같이 가는 실눈,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
털 투성이 몽둥이에 혁명 공약 휘휘 감고
혁명 공약 모자 쓰고 혁명 공약 배지 차고
가래를 퉤퉤, 골프채 번쩍, 깃발같이 높이 들고 대갈 일성, 쪽 째진 배암 샛바닥에
구호가 와그르르
혁명이닷, 구악(舊惡)은 신악(新惡)으로! 개조(改造)닷, 부정 축재는 축재 부정으로!
근대화닷, 부정 선거는 선거 부정으로! 중농(重農)이닷, 빈농(貧農)은 잡농(雜農)으로!
건설이닷, 모든 집은 와우식(臥牛式)으로! 사회정화(社會淨化)닷,
정인숙(鄭仁淑)을, 정인숙(鄭仁淑)을 철두철미하게 본받아랏!
궐기하랏, 궐기하랏! 한국은행권아, 막걸리야, 주먹들아,
빈대표야, 곰보표야, 째보표야,
올빼미야, 쪽제비야, 사꾸라야, 유령(幽靈)들아, 표 도둑질 성전(聖戰)에로 총궐기하랏!
손자(孫子)에도 병불(兵不) 후사, 치자즉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공약(公約卽空約)이니
우매(遇昧) 국민 그리 알고 저리 멀찍 비켜서랏, 냄새난다 퉤 -
골프 좀 쳐야겄다.
3
셋째 놈이 나온다
고급 공무원 나온다.
풍신은 고무풍선, 독사같이 모난 눈, 푸르족족 엄한 살,
콱다문 입 꼬라지 청백리(淸白吏) 분명쿠나
단 것을 갖다주니 쩔레쩔레 고개 저어 우린 단것 좋아 않소,
아무렴, 그렇지, 그렇구 말구
어허 저놈 뒤 좀 봐라 낯짝 하나 더 붙었다
이쪽보고 히뜩히뜩 저쪽보고 혜끗혜끗, 피두피둥 유들유들
숫기도 좋거니와 이빨꼴이 가관이다.
단것 너무 처먹어서 새까맣게 썩었구나, 썩다못해 문들어져
오리(汚吏)가 분명쿠나
간같이 높은 책상 마당같이 깊은 의자 우뚝나직 걸터앉아
공(功)은 쥐뿔도 없는 놈이 하늘같이 높이 앉아 한 손으로 노땡큐요 다른 손은 땡큐땡큐
되는 것도 절대 안 돼, 안될 것도 문제 없어, 책상 위엔 서류뭉치, 책상 밑엔 지폐 뭉치
높은 놈껜 삽살개요 아랫놈껜 사냥개라, 공금은 잘라먹고 뇌물은 청(請)해 먹고
내가 언제 그랬더냐 흰 구름아 물어보자 요정(料亭) 마담 위아래로
모두 별탈 없다더냐.
넷째 놈이 나온다
장성(長猩) 놈이 나온다
키 크기 팔대장성, 제 밑에 졸개 행렬 길기가 만리장성
온몸이 털이 숭숭, 고리눈, 범아가리, 벌룸코, 탑삭수염,
짐승이 분명쿠나
금은 백동 청동 황동, 비단 공단 울긋불긋, 천 근 만 근 훈장으로 온몸을 덮고 감아
시커먼 개다리를 여기차고 저기차고
엉금엉금 기나온다 장성(長猩)놈 재조 봐라
쫄병들 줄 쌀가마니 모래 가득 채워놓고 쌀은 빼다 팔아먹고
쫄병 먹일 소돼지는 털 한 개씩 나눠주고 살은 혼자 몽창 먹고
엄동설한 막사 없어 얼어죽는 쫄병들을
일만하면 땀이 난다 온종일 사역시켜
막사 지을 재목 갖다 제 집 크게 지어놓고
부속 차량 피복 연탄 부식에 봉급까지, 위문품까지 떼어먹고
배고파 탈영한 놈 군기 잡자 주어패서 영창에 집어놓고
열중 쉬엇 열중 열중 열중 쉬엇 열중
빵빵들 데려다가 제 마누라 화냥끼 노리개로 묶어 두고
저는 따로 첩을 두어 운우서수공방전(雲雨魚水攻防戰)에 병법(兵法)이 신출귀몰(神出鬼沒)
마지막 놈 나온다
장차관이 나온다
허옇게 백태 끼어 삐적삐적 술지게미 가득 고여 삐져 나와
추접무화(無化) 눈꼽 낀 눈 형형하게 부라리며 왼손은 골프채로 국방을 지휘하고
오른손은 주물럭주물럭 계집 젖통 위에다가 증산 수출 건설이라 깔짝깔짝 쓰노라니
호호 아이 간지럽사와요
이런 무식한 년, 국사(國事)가 간지러워?
굶더라도 수출이닷, 안팔려도 증산이닷, 아사(餓死)한 놈 뼉다귀로 현해탄에 다리 놓아 가미사마 배알하잣!
째진 북소리 깨진 나팔소리 삐삐빼빼 불어대며 속셈은 먹을 궁리
검정세단 있는데도 벤쯔를 사다놓고 청렴결백 시위코자 코로나만 타는구나
예산에서 몽땅 먹고 입찰에서 왕창 먹고 행여나 냄새 날라 질근질근 껌 씹으며
켄트를 피워 물고 외래품 철저 단속 공문을 휙휙휙휙 내갈겨 쓰고 나서 어허 거참
달필(達筆)이다.
추문 듣고 뒤쫓아온 말 잘하는 반벙어리 신문 기자 앞에 놓고
일국(一國)의 재상더러 부정(不正)이 웬 말인가 귀거래사(歸去來辭) 꿍얼꿍얼, 자네 핸디 몇이더라?
4
오적(五賊)의 이 절륜한 솜씨를 구경하던 귀신들이
깜짝 놀라서 어마 뜨거라 저놈들한테 붙잡히면 뼉다귀도 못 추리것다
똥줄빠지게 내빼 버렸으니 요즘엔 제사지내는 사람마저 드물어졌겄다.
이라한참 시합이 구시월 똥호박 무르익듯이 몰씬몰씬 무르익어가는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나라 망신시키는 오적(五賊)을 잡아들여라
추상같은 어명이 쾅,
청천하늘에 날벼락치듯 쾅쾅쾅 연거푸 떨어져내려 쏟아져 퍼붓어싸니
네이- 당장에 잡아 대령하겠나이다, 대답하고 물러선다
포도대장 물러선다
포도대장 거동봐라
울뚝불뚝 돼지코에 술찌꺼기 허어옇게 묻은 메기 주둥이, 침은 질질질
장비사돈네팔촌 같은 텁석부리 수염, 사람여럿 잡아먹어 피가 벌건 왕방울 눈깔
마빡에 주먹혹이 뛸 때마다 털렁털렁
열십자 팔벌이고 멧돌같이 좌충우돌, 사자같이 으르르르릉
이놈 내리훑고 저놈 굴비 엮어
종삼 명동 양동 무교동 청계천 쉬파리 답십리 왕파리 왕십리 똥파리 모두 쓸어모아다
꿀리고 치고 패고 차고 밟고 꼬집어 뜯고 물어뜯고 업어 메치고 뒤집어 던지고
꼰아 추스리고 걷어 팽개치고 때리고 부수고 개키고 까집고 비틀고 조이고
꺾고 깎고 벳기고 쑤셔대고 몽구라뜨리고
직신작신 조지고 지지고 노들강변 버들같이 휘휘낭창 꾸부러뜨리고
육모방망이, 세모쇳장, 갈쿠리, 긴 칼, 짧은 칼, 큰칼, 작은칼
오라 수갑 곤장 난장 곤봉 호각
개다리 소다리 장총 기관총 수류탄 최루탄 발연탄 구토탄 똥탄 오줌탄 뜸물탄 석탄 백탄
모조리 갖다 늘어놓고 어흥 -
호랑이 방귓소리 같은 으름장에 깜짝, 도매금으로 끌려와 쪼그린 되민중들이 발발
전라도 갯땅쇠 꾀수놈이 발발 오뉴월 동장군(冬將軍) 만난 듯이 발발발 떨어댄다.
네놈이 오적(五賊)이지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날치기요
날치기면 더욱 좋다. 날치기, 들치기, 밀치기, 소매치기, 네다바이 다 합쳐서
오적(五賊)이 그 아니냐
아이구 난 날치기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펨프요
펨프면 더욱 좋다. 펨프, 창녀, 포주, 깡패, 쪽쟁이 다합쳐서
풍속사범 오적(五賊)이 바로 그것 아니더냐
아이구 난 펨프이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껌팔이요
껌팔이면 더욱 좋다. 껌팔이, 담배팔이, 양말팔이, 도롭프스팔이, 쪼코렛팔이 다
합쳐서
외래품 팔아먹는 오적(五賊)이 그아니냐
아이구 난 껌팔이 아니요
그럼 네가 무엇이냐
거지요
거지면 더더욱 좋다. 거지, 문둥이, 시라이, 양아치, 비렁뱅이 다 합쳐서
우범오적(五賊)이란 너를 두고 이름이다. 가자 이놈 큰집으로 바삐 가자
애고 애고 난 아니요, 오적(五賊)만은 아니어라우. 나는 본시 갯땅쇠로 농사로는
배고파서 돈벌라고 서울 왔소. 내게 죄가 있다면은
어젯밤에 배고파서 국화빵 한 개 훔쳐먹은 그 죄밖엔 없습네다.
이리 바짝 저리 죄고 위로 틀고 아래로 따닥
찜질 매질 물질 불질 무두질에 당근질에 비행기태워 공중잡이
고춧가루 비눗물에 식초까지 퍼부어도 싹아지 없이 쏙쏙 기어나오는 건
아니랑께롱
한 마디뿐이겄다
포도대장 할 수 없이 꾀수놈을 사알살 꼬실른다 저것 봐라
오적(五賊)은 무엇이며 어디 있나 말만 하면 네 목숨은 살려주마
꾀수놈 이 말 듣고 옳다꾸나 대답한다.
오적(五賊)이라 하는 것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란 다섯 짐승, 시방 동빙고동에서
도둑시합 열고 있오.
으흠, 거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이다. 정녕 그게 짐승이냐?
그라문이라우, 짐승도 아조 흉악한 짐승이지라우.
옳다됐다 내 새끼야 그말을 진작하지
포도대장 하도 좋아 제 무릎을 탁치는데
어떻게 우악스럽게 처 버렸던지 무릎뼈가 파싹 깨져 버렸겄다, 그러허나
아무리 죽을 지경이라도 사(死)는 사(私)요, 공(功)은 공(公)이라
네놈 꾀수 앞장서라, 당장에 잡아다가 능지처참한 연후에 나도 출세해야겄다.
꾀수놈 앞세우고 포도대장 출도한다
범눈깔 부릅뜨고 백주대로상에 헷드라이트 왕눈깔을 미친듯이 부릅뜨고
부릉 부릉 부르릉 찍찍
소리소리 내지르며 질풍같이 내닫는다
비켜라 비켜라
안 비키면 오적(五賊)이다
간다 간다 내가 간다
부릉부릉 부르릉 찍찍 우당우당 우당탕 쿵쾅
오적(五賊)잡으러 내가 간다
남산을 훌렁 넘어 한강물 바라보니 동빙고동 예로구나
우레 같은 저 함성 범 같은 늠름 기상 이완대장(李浣大將) 재래(再來)로다
시합장에 뛰어들어 포도대장 대갈 일성,
이놈들 오적(五賊)은 듣거라
너희 한갖 비천한 축생의 몸으로
방자하게 백성의 고혈 빨아 주지육림 가소롭다
대역무도 국위 손상, 백성 원성 분분하매 어명으로 체포하니
오라를 받으렸다.
5
이리 호령하고 가만히 들러보니 눈 하나 깜짝하는 놈 없이
제일에만 열중하는데
생김생김은 짐승이로되 호화찬란한 짐승이라
포도대장 깜짝 놀라 사면을 살펴보는데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이게 어느 천국이냐
서슬 푸른 용트림이 기둥 처처 승천하고 맑고 푸른 수영장엔 벌거벗은
선녀(仙女) 가득
몇 십 리 수풀들이 정원 속에 그득그득, 백만 원짜리 정원수(庭園樹)에 백만 원짜리 외국(外國)개
천만 원짜리 수석 비석(瘦石肥石), 천만 원짜리 석등석불(石燈石佛), 일억 원짜리
붕어 잉어, 일억 원짜리 참새 메추리
문(門)도 자동, 벽도 자동, 술도 자동, 밥도 자동, 계집질 화냥질 분탕질도 자동자동
여대생(女大生) 식모두고 경제학박사 회계 두고 임학(林學)박사 원정(園丁)두고
경제학박사 집사 두고 가정 교사는 철학 박사 비서는 정치학 박사 미용사는 미학(美學) 박사
박사 박사 박사 박사
잔디 행여 죽을세라 잔디에다 스팀 넣고, 붕어 행여 죽을세라 연못 속에 에어컨 넣고
새들 행여 죽을세라 새장 속에 히터 넣고, 개밥 행여 상할세라 개집 속에 냉장고 넣고
대리석 양옥(洋屋)위에 조선기와 살쩍 얹어 기둥은 코린트식(式) 대들보는 이오니아식(式)
선자추녀 쇠로 치고 굽도리 삿슈 박고 내외분합 그라스룸 석조(石造)벽에 갈포 발라
앞뒷퇴 널찍 터서 복판에 메인홀 두고 알 매달아 부연얹고
기와 위에 이층 올려 이층 위에 옥상 트고 살미살창 가로닫이 도자창(盜字窓)으로 지어놓고
안팎 중문 솟을대문 페르샤풍(風), 본따 놓고 목욕탕은 토이기풍(風), 돼지우리 왜풍(倭風)당당
집 밑에다 연못 파고 연못 속에 석가산(石假山), 대대층층 모아놓고
열어 재킨 문틈으로 집안을 언 듯 보니
자개 케비넷, 무광택 강철 함롱, 봉그린 용장, 용그린 봉장, 삼천삼백삼십삼 층 장
카네숀 그린 화초장, 운동장만한 옥쟁반, 삘딩같이 높이 솟은 금은 청동 놋촉대,
전자시계, 전자밥그릇, 전자주전자, 전자젓가락, 전자꽃병, 전자거울, 전자책,
전자가방, 쇠유리병, 흙나무그릇, 이조청자, 고려백자, 거꾸로 걸린 삐까소, 옆으로 붙인 샤갈,
석파란(石坡蘭)은 금칠액 틀에 번들번들 끼워놓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鳥蝴蝶人物)
내리닫이 족자는 사백 점 걸어 두고, 산수화조호접인물 (山水花 鳥蝴蝶人物)
팔천팔백팔십팔 점이 한꺼번에 와글와글,
백동토기, 당화기, 왜화기, 미국화기, 불란서화기, 이태리화기, 호피 담뇨 씨운테레비, 화류문갑 속의 쏘니 녹음기,
대모책상 위의 밋첼 카메라, 산호책장 곁의 알씨에이 영사기, 호박필통에 꽂힌 파카 만년필, 촛불 켠 샨들리에,
피마주 기름 스탠드라이트, 간접 직접 직사 곡사 천장 바닥 벽 조명이 휘황칸칸 호화율율.
여편네들 치장 보니 청옥 머리핀, 백옥 구두 장식,
황금 부로취, 백금 이빨, 밀화 귓구멍 마개, 호박 밑구멍 마개, 산호 똥구멍 마개,
루비 배꼽 마개, 금파 단추, 진주 귀걸이, 야광주 코걸이, 자수정 목걸이, 싸파이어 팔지
에머랄드 팔지, 다이야몬드 허리띠, 터키석 안경대,
유독 반지만은 금칠한 삼 원짜리 납반지가 번쩍번쩍 칠흑 암야에 횃불처럼
도도 무쌍(無雙)이라!
왼갖 음식 살펴보니 침 꼴깍 넘어가는 소리 천지가 진동한다
소털구이, 돼지 콧구멍 볶음, 염소 수염 튀김, 노루 뿔 삶음, 닭 네 발 산적, 꿩 지느라미 말림,
도미날개지짐, 조기 발톱 젓, 민어 농어 방어 광어 은어 귀만 짤라 회무침,
낙지해삼비늘조림, 쇠고기 돈까스, 돼지고기 비후까스, 피 안 뺀 복지리,
생율, 숙율, 능금, 배 씨만 발라 말리면서 금딱지로 싸놓은 것, 바나나 식혜,
파인애플 화채, 무화과 꽃잎 설탕 버무림,
롱가리트 유과, 메사돈 약과, 사카린 잡과, 개구리알 구란탕, 청포 우무, 한천묵,
괭장망장과화주, 산또리, 계당주, 샴펭, 송엽주, 드라이찐, 자하주, 압산,
오가피주, 죠니워카, 구기주, 화이트호스, 신선주, 짐빔, 선약주, 나폴레옹 꼬냑,
약주, 탁주, 소주, 정종, 화주, 째주, 보드카, 람주(酒)라!
아가리가 딱 벌어져 닫을 염도 않고 포도대장 침을 질질질질질질 흘려싸면서
가로되
놀랠 놀짜로다
저게 모두 도둑질로 모아들인 재산인가
이럴 줄을 알았더면 나도 일찍암치 도둑이나 되었을 걸
원수로다 원수로다 양심(良心)이란 두 글자가 철천지 원수로다
6
이리 속으로 자탄망조하는 터에
한놈이 쓰윽 다가와 써억 술잔을 권한다
보도 듣도 못한 술인지라
허겁지겁 한 잔 두 잔 헐레벌떡 석 잔 넉 잔
이윽고 대취하여 포도대장 일어서서 일장 연설 해보는데
안주를 어떻게나 많이 쳐먹었는지 이빨이 확 닳아 없어져 버린 아가리로
이빨을 딱딱 소리내 부딪쳐가면서 씹어 뱉는 그 목소리 엄숙하고 그 조리 정연하기
성인군자의 말씀이라
만장하옵시고 존경하옵는 도둑님들!
도둑은 도둑의 죄가 아니요, 도둑을 만든 이 사회의 죄입네다
여러 도둑님들께옵선 도둑이 아니라 이 사회에 충실한 일꾼이니
부디 소신껏 그 길에 매진, 용진, 전진, 약진하시길 간절히 바라옵고 또 바라옵니다.
이 말끝에 박장대소 천지가 요란할 때
포도대장 뛰어나가 꾀수놈 낚궈 채어 오라 묶어 세운 뒤에
요놈, 네놈을 무고죄로 입건한다.
때는 가을이라
서산낙일에 객수(客愁)가 추연하네
외기러기 짝을 찾고 쪼각달 희게 비껴
강물은 붉게 타서 피 흐르는데
어쩔꺼나 두견이는 설리설리 울어쌌는데 어쩔꺼나
콩알 같은 꾀수 묶어 비틀비틀 포도대장 개트림에 돌아가네
어쩔꺼나 어쩔꺼나 우리 꾀수 어쩔꺼나
전라도서 굶고 살다 서울 와 돈번다더니
동대문 남대문 봉천동 모래내에 온갖 구박 다 당하고
기어이 가는구나 가막소로 가는구나
어쩔꺼나 억울하고 원통하고 분한 사정 누가 있어 바로잡나
잘 가거라 꾀수야
부디부디 잘 가거라.
7
꾀수는 그길로 가막소로 들어가고
오적(五賊)은 뒤에 포도대장 불러다가
그 용기를 어여삐 녀겨 저희집 솟을대문,
바로 그 곁에 있는 개집 속에 살며 도둑을 지키라 하매,
포도대장 이말 듣고 얼시구 좋아라
지화자 좋네 온갖 병기(兵器)를 다가져다 삼엄하게 늘어놓고 개집 속에서 내내 잘살다가
어느 맑게 개인 날 아침, 커다랗게 기지개를 켜다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살하니
이때 또한 오적(五賊)도 육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 허허허
이런 행적이 백대에 민멸치 아니하고 인구(人口)에 회자하여
날 같은 거지 시인의 싯귀에까지 올라 길이 길이 전해오겄다.
잡지 '思想界'를 김지하 시인의 이 담시가 실린 후 폐간되었습니다.
現代文學 지와 사상계는 꼭 사보았는데 이때 오적이 실린 사상계를 몇 달간 보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오적'이란 시는 친구 노트 필기 한 것을 처음 대한 기억이 납니다. 이때는 '오적'을 안다고 하면 가막소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현대의 오적'은 더욱 진화했습니다. 동산마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