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기초

(고전 3: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건물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기초가 관건입니다. 어떤 건축가가 아무리 빠르고, 솜씨 있게 건물을 지었다 하더라도 기초가 부실하게 되었다면 그는 엉터리 건축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건물을 짓더라도 기초가 튼튼하다면 그는 자랑할 만한 건축가인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로 기초가 가장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폭풍우가 몰아치면 휩쓸려 가버리듯이, 파멸적인 종말을 맞게 됩니다. 반면에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깊게 파고 암석 위에 놓은 기초와 같아서, 아무리 시험의 비가 내리고, 박해의 홍수가 닥치고, 사탄의 유혹 바람이 아무리 휘몰아 친다 하더라도 끄덕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이라 할지라도 기초작업이 부실하다면 무너져 버립니다. 기초가 불안전한 건물은 높이 세우면 세울수록 그만큼 빨리 무너져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있어서 기초가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에 대해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상부를 세우는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취향이나 판단에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기초는 유일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또한 건물의 상부구조에 있어서는 다양한 스타일을 구사할 수도 있겠지만, 기초작업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기초는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으니"(사 28:16) 라고 말씀하신 불변의 하나님께서 놓으셨기 때문에 영원히 불변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의 마음과 삶이 꼭 같은 형태와 스타일을 잦추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건축가 (기독교인)들을 모아 놓는다 하더라도 그들 간에는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으로 건물을 지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은으로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값 비싼 돌로 건물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초에 관한 한 그들은 모두 꼭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만유이며 만유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넘쳐 흐르는 삶은, 그것이 황금궁전처럼 호화롭든지, 은희당처럼 순결 하든지, 대리석탑처럼 견실하든지 간에 관계없이 또한 그것이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넓든 좁든 관계없이 모두 같은 기초인 영원의 암석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라." 여러분은 상부구조에 관해서는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초에 관한 한은 일치해야만 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이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극단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라." 이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다양한 교사들이 서로 다른 기초를 놓았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기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럴 만한 자격이 없으며, 얄팍한 속임수를 부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모래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버리면, 그것은 기초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썩은 나무나 쓰레기가 잔뜩 섞여 있다면, 그 어떤 건축가도 그것을 "기초"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로지 하나의 기초만이 있을 뿐이며,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유일의, 불변의, 부동의, 영원한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그 어떠한 기초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 어떠한 다른 것과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유일한 것 입니다. 예수님이 아니라면 제아무리 훌륭한 근거나 원리라 하더라도, 기초로 자부한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주 예수만이 배타적으로 기초가 될 수 있으며, 모든 기초적인 것은 그분에게 집약되어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12) 영원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를 기초와 초석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그 깊이는 무한하여서 모든 사물의 본성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이미 그는 기초로 예정되었기 때문에 그 이외에는 어떠한 기초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잠 8:23).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서 난 하나님이므로 이 기초란 바로 다름 아닌 하나님이다라고 본다면, 두 분의 하나님이 있을 수 없듯이 두 개의 기초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두 개의 기초를 믿는다는 것은 두 가지 구원을 상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 구원이니, 두 분의 구세주, 그리스도 같은 것이 도대체 있을 수 있을 법이나 한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두 개의 기초가 있으려면, 그런 것이 있어야만 합니다.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아닌 기초라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 모든 영혼은커녕 단 하나의 죄지은 영혼의 무게도 제대로 지탱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실 수 있으며, 영원한 진노로부터 구원하여 영원히 축복받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예수라"(딤전 2:5). 예언서에서도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으니라" (사 43:11) 고 말씀하고 계시며, 예수님께서도 직접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으니라" (요 14:6)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부터 말씀드릴 설교를 네 가지로 요약해 보겠습니다.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각각의 주제는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쉽게 구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없다. 둘째,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복음은 없다. 셋째,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구원의 희망은 없다. 넷째,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신자는 없다. 

첫째로,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교회란 참된 교회를 말합니다. 세상에는 교회라고 불리는 것이 많이 있지만, 오로지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만이 참된 교회입니다. 어떤 공동체, 모임, 성직자단, 교파, 법인체가 자신을 교회라고 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제 아무리 사람이 많고, 오래되고, 재산이 많고, 지식이 높고, 자랑할 것이 많고, 견고하고, 유력하고, 독보적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건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주 예수님이 첫째이며, 최고이십니다. 그의 백성은 그분께서 몸소 선택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선택하여 백성으로 삼으시는데, 그리스도와 무관한 자를 백성으로 삼는 경우는 결코 없습니다.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엡 1:3~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택함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시며"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 교회가 하나님의 특별한 재산이 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리스도는 내가 처음 택한 자라.' 그 후에 우리의 영혼을 우리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네." 그리스도와 관계하여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택함을 받을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영생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영혼도 택함을 받았다 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백성들의 머리가 되시고 대표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영원한 뜻과 분리된 하나님의 교회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기초는 가장 먼저 놓여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먼저 놓여져야 합니다.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으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사 28:16).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사 42:1). 영원한 축복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고서는 결코 택함을 얻었다 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기초는 모든 것을 지탱해 줍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탱해 주시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총 이외의 것에 의지하여 구원과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는 것은 확실한 진리입니다. 구세주는 교회의 초석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유일한 기반이시며, 우리의 힘이 되어 주시는 유일한 대들보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집을 지을 때는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능력을 줍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 2:36). 각자 개인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위대하신 구속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하심은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첫째가 되는 가장 위대한 교리로 선포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엡 1:7). 그리스도의 구속하심이 없다면, 교회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공동체가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돌아가심으로써 우리를 구속해 주셨음을 부정하거나 무시한다면, 그 공동체는 종교 클럽이라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지만 교회는 아닙니다. 전능하신 구세주 이외의 것에 의지하여 현재의 능력과 미래의 발전을 얻고자 하는 공동체는 결코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요 14:19)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의 불멸하심에 의지하여 하루 하루의 생명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으며,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의 백성을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약속에 의지하여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천상과 지상의 모든 권능이 그분께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만방에 나아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고 예수님께 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온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가 아닌 육의 병기, 세속적인 권세, 육적인 지혜, 교육, 웅변술, 명성, 또는 우리 자신의 열정이나 열의에 의지한다면, 이는 마치 암석대신 모래를 취하는 격이어서 결코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니, 지으려고 마음조차 먹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살아계시는 그리스도만이 교회를 살아있는 교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집을 세울 때는 오직 그리스도 위에 세워야 하며 그리스도께 의지하여만 합니다.

그렇지 않은 건축물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립니다. 우리 교회는 돌아가신 그리스도에 의지할 뿐만 아니라, 영광 받으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 통치하시며, 곧 흩어진 자들을 불러모으셔서 그 중에서 지배하실 그리스도께 또한 의지해야만 합니다. 참된 교회는 포도나무와 같이 오직 줄기가 되시는 예수님께로부터만 수액을 공급받아 가지를 살게 합니다. 그런 교회는 영광의 구세주를 찬양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영혼 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 도다"(시 62:5). 다른 공동체는 군주에 의지할 수도 있겠지만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지합니다. 다른 집회는 인간의 위대함에서 도움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교 회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에게서 도움을 얻습니다.

 다음으로 기초는 건물의 모양을 규정합니다. 참된 교회는 기초계획과 개요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지하여 모양을 결정합니다. 건물의 모 양은 대체로 기초에 의해 결정됩니다. 옛 수도원이나 성의 기초들을 조사해 보면 같은 토질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기초가 어떻게 되어있나를 보면 그 건축물의 모양을 추리해 낼 수 있습니다. 여기는 귀퉁이였고, 저기는 둥근 탑이 있었고, 또 여기는 버팀목이 있었고 저기는 후미진 곳이 있다는 사실들을 알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는 기초선에 따라야만 하듯이 모든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지하여 세워져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과 명령을 최선의 지혜로 알고 따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곧 교회의 법입니다. 교황과 종교회의의 법령, 총회나 장로회의 또는 각종집회의 결의, 그리고 개개인들의 법령등은 제 아무리 훌륭하고 또 한번에 다 모은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법과 다르다 면 그것들은 공허한 바람이나 휴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손상하는 것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권위를 벗어나서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마치 기초 닦아놓은 곳을 벗어나서 건물을 짓는 것과 같아서 그 건물은 무너져버릴 것입니다. 참된 교회에서는 그리스도만이 법이요 권위가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속하는 목사, 종이기 때문에 군주나 법률가의 종이 아닌 교회의 종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법을 충실히 따로는 교회만이 모든 일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입법자가 아니라 섬기는 종입니다. 교회의 법이나 의식 방법 등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취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명할 때에, 우리에게 명한대로, 우리에게 명한 것을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교회 안에서는 아무런 권위도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오로지 그리스도께서만이 지배하십니다. 만일 교회에 그리스도에 기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위대한 건축자이신 하나님의 계획을 망치는 것이며,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집을 손상시킬 뿐입니다. 그리스도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권위에 의해 세워진 교회에 여러분이 속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참으로 은혜로운 일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법령을 따를 때는 안심이 되지만, 관습이나 인간의 권위를 따를 때는 불안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리를 믿을 때는 안심이 되며, "이것은 인간의 생각이나 현명한 자의 판단 혹은 무슨 회의의 결의 등이 아니라 주님께서 선포하신 것이다"하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말씀은 한 마디도 빠짐없이 모두 기초가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늘 하늘나라에 거하며,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 후나 마찬가지로 꼭 같으시기 때문에 주님의 권위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충실히 따르는 교회는 견실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가르침과 권위를 벗어나는 교회는 기초를 잃게 되어 교회가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건축에 있어서는 기초가 필수불가결한 것이듯이, 참된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가옥의 경우에 창문 하나쯤 없어지고, 문을 폐쇄하고, 지붕 일부를 옮긴다 하더라도 여전히 그것은 가옥일 수 있지만, 기초가 없어져 버린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가옥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 지로 기초와 초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가 없어져 버린다면 그것은 이미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설교를 놓고서 "그것은 신자의 설교였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기가 됩니다. 만일 그리스도는 뒷전에 쳐박아둔 가르침에서 기쁨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그런 따위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여러분은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서 달려 나오면서 외쳤듯이 "그들은 주님을 없애 버렸다. 도대체 그들이 주님을 어디로 가져갔는지 모르겠다"고 외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의 설교는 유대인들과 마호메트인들이 칭찬했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신앙이 좋다고 하는 목사나 은혜에 넘친다고 하는 예배도 실제로 가보면 그리스도를 소홀히 다루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결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 이십니다. 그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시며, 시작이자 끝이신 분입니다. 참 된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충실히 섬깁니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있어서 전부입니다. 그들은 목사와 전도사에 대해서는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 들이니라" (고전 3:5) 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진리를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계셔야 할 곳에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적 그리스도입니다. 참된교회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지식과 웅변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설교하여 주십시오. 그러나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 거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참된 배우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주님께서 모욕 당하는 것을 보고도 만족할 수 있는 교회라면, 그것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순결한 배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첫 번째 주제를 몇 마디로 요약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시거나 결합의 끈이 되시지 않는다면, 아무리 인간들끼리 서로 결합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목적을 위해 친목회나 연맹 또는 연합회 등을 구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스도에 기초하고 있지 않는 한 교회는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모두의 희망의 근거와 기초가 되시는 분입니다. 신자들과 목사가 결합했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도들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은 몹시 좋은 일이며, 목사와 성도들 사이가 완전한 사랑으로 충만 되어 있다는 것은 몹시 유익한 일이지마는, 그 관계는 명확한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만의 사이에서는 어떠한 영광도 있을 수 없으며, 거기에는 맹목적으로 숭배해야 할 대상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신앙의 선생의 이론이나 견해에 의지하여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서는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바울이 나아볼로나게바에 기초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그리스 도의 권위에 기초해서 세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루터나 칼빈이나 웨슬레 혹은 휘트필드 등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 도를 믿는 자들로 구성될 때만이 참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특정의 형식이나 의식을 따른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같은 신앙을 가지며, 같은 세례식을 행합니다. 따라서 의식에 있어서도 우리는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의식을 행한다고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간에 서로 의지하면서 충실하게 결합을 이루고 함께 결속하는 것은 좋지만 교회의 구성원들이 그리스도의 인격과 결합되어 있지 못하다면 그 모임은 교회가 아니라, 정통을 주장하기 위한 결합체이거나, 어떤 종교사상을 지키기 위한 연합체에 불과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주님만 계셔야 합니다. 물론 목사, 장로, 집사, 교사, 복음주의자들도 하나님의 집을 구성하는 귀한 돌들이지만,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것은 기초가 없는 것과 같아서 결코 교회가 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이 집 전체가 바로 세워질 수 있으며, 거룩한 집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배태시키는 씨앗이며, 교회라는 가지가 뻗어 나오는 줄기이며, 교회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는 머리이며, 교회를 먹이는 목자이며, 교회를 통솔하는 장군이며, 교회의 남편이 되십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서 구원해 주신 교회의 만유속에 계시는 만유이십니다. "하나님께서 확실한 기초를 주셨네. 하늘 법령처럼 굳건한 불변의 영원한 반석에는, 폭풍, 번개도 당하지 못하네. 지옥 문이 헛되이, 반석에 대항하네. 그리스도는 반석, 초석이시며, 하나님께서 그 위에 아름다운 집 짓네."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진리를 모든 사람에게 알려서,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복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사이비 복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바울은 한 때는 "다른 복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었으나, 곧 수정하여 "다른 복음은 없다"고하였습니다. 복음은 오로지 하나이며, 둘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복음은 단 하나인 것입니다. 두 분의 구세주가 없었고, 두 번의 구속하심이 없었듯이 두 개의 복음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분의 구세주와 한 번의 구속하심은 복음에 있어서 절대 불가결한 것 이며, 복음은 단 하나뿐입니다. 복음의 기초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다른 기초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을 중보 하시는 분은 오로지 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5).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명하시기를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신 어떤 것을 너에게 전하라 하셨다"고 말하면 그것은 거짓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나는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는 사이비 예언자이며 하나님과는 무관한 자입니다. 그리 고 또 설사 주교의 말이 종교회의나 교회에서 행해진 말이라 하더라도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과 다르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이전과 그리스도 이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꼭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둘이나 셋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실 말씀이 있을 경우에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시며, 하나님은 계시를 봉인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다른 음성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는 비참해질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실로 그리스도의 양떼들이라면, 낯선 목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요 10:5) 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복음은 오로지 중보자 이신 그리스도만을 통해서 선포됩니다. 그렇지 않은 복음은 복음이 아닙니다.

 

 참된 복음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찬양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신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이 충만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우리 의 병을 고쳐주시고 슬픔을 없게 해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니라거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고 하는 복음이 있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찬양되지 않는 설교는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복음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는 복음의 중보자이실 뿐만 아니라, 복음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우리가 그분을 통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한 구원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의해 얻어진다는 것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우리는 죄 사함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는 의롭게 되며,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 우리는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신자들에게 완전한 구원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죄인들에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 그리고 거룩함, 구속하심이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들려 올려져서 영원히 그곳에 머물 수 있도록 되는 모든 축복은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충만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절정이며, 본질이며, 극치이며, 자랑거리이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간의 자유의지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사람의 행위나 목사가 행하는 의식이 근본적인 위치를 점하는 그런 복음을 듣게 된다면, 그런 가르침은 거부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 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고후 5:19). 우리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설교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설교할 수 있도록 합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고 하신 말씀은 복음 중의 복음입니다.

 

 성도 여러분 중에서 복음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오늘의 본문을 상기하셔 서 그리스도와 무관한 복음은 결코 가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교리에 대한 가르침이 그리스도와는 무관한 건조한 훈계조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택함을 받음에 관한 교리를 설교하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교한다면 그것은 기초를 무시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기초를 무너뜨려 버리게 되면, 벽은 휘고 담은 휘청거릴 것입니다. 제가 최후의 은총에 관해 설교할 경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사는 것이며, 모든 성도들의 은총은 예수님과의 결합에 달려있음을 설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의로움에 대해 가르치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의를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의로움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본 교회의 이전의 목사님들이 설교하신 것들을 모아 보면, 그들은 구세주의 삶 속에서 실제로 일어 났던 사건에 집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울처럼 위대한 교리들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점에서는 오히려 바울을 능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됨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교 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의 값진 피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이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거듭남에 대해서는 그렇게 명쾌하게 설교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로 인해 성도들이 누리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에 관해서는 풍부하게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용서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또한 거듭남은 그리스도께서 부르시는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일어나신 것이 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구세주의 실제 삶과 죽음에서 일어났던 사실에서 도출해 내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복음을 설교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경탄하는 바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에게 있어서 복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으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 보이셨으니" (고전 15:1~5).

 바울에게 있어서 신성이란 사시고 돌아가셨던 육화된 신성, 즉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선포할 때는 그 복음을 주신 주님과 밀접하게 결합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포도밭에서 싱싱한 포도를 확인하여 바로 짜낸 즙이라면 그 포도즙은 대단히 맛이 좋을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포도주는 싱싱한 포도송이로 담글 때 가장 달콤한 술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교리를 설교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에 대하여 설교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 교리는 주님 무덤 입구에 있었던 돌과 같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교리는 솔로몬이 앉았던 상아왕좌와 같아야 되며, 주님이 거기에 앉았을 때 찬연히 빛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설교하는 것도 괜찮지만, 그럴 경우에는 예수님을 현저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특히 주의해야만 합니다. 설교를 거의 다 경험으로 채우는 사람들에 대해서 저는 그들을 저주하지는 않겠지만, 궁핍한 죄인들의 경험이 뭐 그리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것을 통해서는 그가 저와 같이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지를 알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겠지만, 훨씬 더 유용한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느끼시며, 나의 형제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알고 싶습니다. 경험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난다면 그것은 오히려 훌륭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성공이든 실패든 그리스도가 뒷전에 밀려나 있는 경험은 오히려 복음을 손상시키게 됩니다. 예수님은 복음의 유일한 기초이십니다. 그 분을 떠나서는 결코 복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실행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많은 설교를 해야 하고, 이 시대의 죄악에 대해 단호하게 비난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시대적인 죄악을 비난하고 선행을 찬양하는 데 그친다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에게는 충분하겠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불충분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선포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모범은 죄악을 퇴치하고 선행을 고무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완벽한 귀감으로 삼으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복음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하셨을 줄로 믿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셋째로,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구원의 희망은 없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은 말씀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이비 희망에 대해서 잠깐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릴 때부터 높은 신분으로 자랐으며, 자신들의 부모들은 훌륭한 신자들이었기 때문에 만족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은 잘못된 일을 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믿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희망이 이와 같은 것이라면 여러분은 죄로 인해 죽은 몸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제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육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야만 하며, 출생 이후 여태까지의 삶에서 가질 수 없었던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만 합니다.

혹자는 "나는 교회의 모든 의식을 다 거쳤는데"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식에 기초해서 집을 짓는다면, 그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며, 여러분 영혼의 무게도 지탱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례식이나 성찬식 그 밖에 수많은 의식들, 이것들은 여러분을 조금도 도와주지 못합니다. 영혼의 희망은 그런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리스도에 기초해야만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부지런히 많은 선행을 행했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열 배나 더 많은 선행을 행한다 하더라도, 단 한 번의 죄를 범한다면 그 선행은 여러분을 구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또 제 아무리 많은 선행을 행한다 하더라도 만일 그들이 그들의 선행에만 의지하려 한다면 그 모든 선행은 부패한 기초에 불과할 것입니다. 선행을 많이 행했다고 해서 곧 바로 그 사람을 신뢰하지는 마십시오. 인간의 공로란 모래기초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특별한 영적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정신 없이 울기도 하고, 또 무한한 기쁨을 느끼기도 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물론 지옥 문에 이르거나 하늘 문에 이르는 느낌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느낌이나 흥분이 희망의 기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없어서 고민입니다"라고 하면서 고민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하지 마시고, 느낌이 느껴지든 말든, 무조건 그리스도에게 나아가서 그분에게 의지하십시오. 그 어떠한 느낌이라 하더라도 만일 거기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망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선행과 마찬가지로 느낌에 의지하여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놀라운 꿈을 꾸고 소리를 듣고 환상을 보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 소리, 환상! 그 따위 것은 다 쓸데 없는 것입니다. 다 내팽겨쳐 버리십시오. 그런 것은 전혀 의지할 만한 것이 못됩니다. "그리스도를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것 아닙니까? "하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보았지만 결국은 죽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꿈은 확실히 나를 구원해 줄 것입니다"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꿈은 여러분에게 헛된 희망을 줄뿐입니다. 여러분이 다음 세상에서 깨어나면 그 꿈은 깨져버릴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으며,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이 말씀,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오로지 이 말씀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신자들의 죄를 구속해 주시기 위해서 돌아 가심으로 해서, 그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죄가 용서받았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믿는 자는 그로 인해 의롭게 된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의롭게 되었음을 믿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는 저주받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에 나는 자신이 구원을 얻었음을 압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을 신뢰한다는 것을 뜻하며, 그분을 기초로 의지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신뢰하며, 그분은 나의 기초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분의 말씀이 거짓이라는 결과가 됩니다. 나는 그분의 말씀이 진실됨올 압니다. 그러므로 저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저는 멸망치 않을 것이며 결코 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나는 결코 멸망치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구원의 희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희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런 하나님을 모욕하는 구역질 나는 희망 따위는 똥 더미에 내팽겨쳐버리십시오. 위조지폐를 갖게 된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버리고는, 혹시 다른 사람이 자기가 아직도 그 위조지폐를 갖고 있지 않는가 하며 의심할새라 재빨리 도망쳐 버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이외에 믿는 것이 있다면, 그 따위 믿음은 땅에 묻어버리고 재빨리 그것으로부터 도망쳐 나오십시오. 그런 믿음은 사이비 믿음이며, 영혼을 병들게 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붙잡도록 하십시오. 모든 구원은 바로 그런 신앙에 달려 있습니다. 영원한 구원이란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라."

 

 

끝으로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지지 않은 신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그가 아르미니우스파이든 칼빈파이든 관계없이 오로 지 그리스도만을 기초로 삼아야 합니다. 여기에 카톨릭 신자, 개신교 신 자, 침례교신자가 있다고 합시다. 이 중에서 누가 기독교인이겠습니까?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에 기초하여 세워진 사람은 기독교인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좀더 설명해 봅시다. 첫째,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영원한 구원을 위해 자기 영혼 전체를 그리스도에게 맡겨야만 합니다. 거기에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어야 하며, 불순 물이 (목사든 의식이든) 섞여서는 안됩니다. 깨끗하고 곧은 길과 같이 그리스도는 신자들의 전부이며 유일한 희망이어야 합니다. 그 길에서 조금 이라도 벗어난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십자가는 죄진 영혼의 유일한 희망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기독교인이라면 그리스도를 모범으로 삼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의 도움을 받아 여러분이 처해있는 지위나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대로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경우에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결코 그리스도의 지도력을 망각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십자가만을 붙잡고 주님만을 따라야 하는 기독교인이 되기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는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구세주이기도 하지만, 여러분을 지배하는 왕이기도 하십니다. 참된 신자들은 기초 뒤에 벽을 세우듯이, 그리스도에 기초하여 자신의 모범을 세우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하나님의 집이 자라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집이 자란다는 말이 약간 이상하게 들릴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집은 살아있는 집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건축물의 경우에 왕왕 놀랍게도 마치 자연적으로 자라난 것과 같은 건물이 있습니다. 평범하고, 솜씨 없는 건물의 경우에는 석공이나 목수가 손댄 흔적이 많이 드러나지만, 완벽한 건축물은 마치 저절로 자라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의 백성들이 자라므로, 그리스도의교회도 자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라는 것은 모두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아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몇 년 전에는 같이 즐겁게 예배를 드리던 사람들이, 이제 내가 공부를 많이 하고 보니, 영 형편없게 보인다"고 말하는데, 그 사람은 은혜가 아닌 자신의 자존심을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참된 신자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참된 신자는 크게 성장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확고하게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만 합니다. 참된 신자는 현명해지면 현명해질수록 더욱 더 그리스도의 지혜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참된 신자는 그가 아무리 발전한다 하더라도 결코 그리스도를 능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발전하면서 자신은 점점 작아지고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가 점점 커져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기초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참된 신자는 결코 그 기초를 벗어나지 않으며, 오로지 그 기초 위에다가 집을 세웁니다. 이를 철저히 고수하지 않는 자는 참된 신자가 아닙니다. 셋째,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자기 삶에서 최고의 것으로 여깁니다. 참된 신자는 예수님을 위해 사용되지 못한 시간, 그리고 예수님께 바쳐지지 않고 사용된 물질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신자는 자신 안에 살아계시는 그리스도가 없다면 자신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바로 이와 같은 참된 신자가 되시길 빕니다. 항 상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시길 법니다. 주님의 현존 하심이 느껴지지 않을 때 저는 설교가 하기 싫어집니다. 그럴 때 설교하는 것은 저에게 전혀 위안을 주지 못합니다.

월요일 기도희 때마다 저는 주님께서 거기에 계신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습니다. 참된 신자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주님께 의논을 드리고, 그분의 뜻에 따라 행합니다. 우리 교회는 대단히 분주한 교회입니다. 일 많이 하는 바쁜 교회에 다니는 성도 여러분께서는 그럴수록 항상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 사업을 하면서 주님의 귀한 사랑이나 달콤한 현존, 그리고 은혜로운 미소를 만끽하지 못한다면, 거룩한 사업이 단지 습관적이고 기계적인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르다처럼 주님을 위해 일을 함과 동시에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 앞에 있으십시오. 주님께서 교회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소망, 우리의 성격,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기초가 되어 주시기를 법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기초로 삼고, 주님의 값진 보혈에 의지하며, 감사의 기름으로 향기롭게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영원히 집을 짓게 되며, 주님의 귀한 이름을 영광되게 할 것입니다.

 

 

포도나무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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