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성령론 2018. 6. 28. 21:43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성령은 자유하시지만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진리의 테두리를 벗어나 일하시지 않는다. 이것이 성령께서 예수님과의 관계, 그리고 그분을 증거하는 성경 말씀과의 관계에서 보이시는 겸손하심이다.
그러므로 어떤 영적인 현상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니면 미혹의 영의 장난인지를 분별하는 척도는 성경이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냉철한 성경적 검증과 분별을 거부할 때, 교회 안에는 봇물 터지듯 온갖 종류의 사이비 가르침과 미혹하는 영의 역사라 밀려들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굴레에서 벗어난 성령 운동은 이단들이 득실거리는 온상이 된다.
성경으로 입증되지 않은 영적인 현상과 체험을 비판이라도 하면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고 성령을 소멸한다는 식으로 위협하고 저주하는 것이 사이비 성령 운동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들은 항상 성령의 주권적이고 자유로운 역사하심이라는 허울 아래 성경의 가르침을 교묘히 피해가려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굉장한 표적과 기적이 일어났을지라도 그것을 무턱대고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할까 두려워 성경적인 검증을 회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오히려 성령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성령을 가장하는 미혹의 영의 자유로운 역사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심스러운 것은 그대로 믿기보다는 의구심을 가지는 편이 훨씬 지혜로운 일이며 성경 말씀을 신앙과 체험의 척도로 삼는 것이 올바른 신앙의 자세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특별한 성령의 감동이나 메시지가 마음에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나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확신과 마음의 감동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섣불리 그것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은 성령뿐 아니라 육신의 욕망과 마귀적인 세력에 의해 자극된 온갖 잡다한 생각과 메시지가 복잡하게 교차하는 곳이기에 어떤 생각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라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 된다..
- 박영돈 목사,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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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풍을 날리는 집사
박영돈 목사님 인터뷰 기사를 읽었었습니다.
장풍을 날리는 어느 집사님이 있답니다.
재작년에 노회고시를 볼 때, 저와 함께 봤던 어느 분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분이 투석을 하시는 분인데 치료받으려 소개받아 어느 교회에 다녔답니다.
성령춤추는 교회였는데 그 교회에서 그 집사님은 병을 치유받았고
어느날 갑자기 손만 움직이면 사람들이 나가 떨어지는 겁니다.
미국의 어느 치유 사역자와 같은 현상이랍니다.
자신도 맞아보니 꽤 아플 정도의 힘이 느껴졌고 나가 떨어지더랍니다.
그분이 그 집사님에게 기도와 성경을 더 보라고 충고했는데..
그 현상에만 집중해,
집회할 때마다 사람들을 나오라고 해서 장풍(?)을 과시하곤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것.. 즉 눈에 보이는 것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저희 처가 식구들도 그곳(?) 예배 중에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 그곳에서 나오기가 쉽겠습니까?
정말 분별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또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 아멘넷 게시판에서: 정리: 나무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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