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평우 변호사님의 탄핵결정 후
   쓰신 글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제2건국의 행군을 시작합시다!

1.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8인 재판관 전원이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여 박근혜 대통령님을 파면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너무나 쇼킹한 판결입니다. 저들은 우리 법치 애국시민들의 마지막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습니다.


2. 여러분, 이번 탄핵은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 개인에 대한 탄핵이 아닙니다. 이번 탄핵은 대한민국의 국시 자유주의, 법치주의, 개인주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짓밟고, 민주, 민족, 민중의 삼민주의 즉 김일성의 주체사상으로 대한민국의 국시를 바꾸려는 반역세력들의 대한민국 국시에 대한 도전입니다.

또한, 여성 대통령의 자유와 인격,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무시하고 인격살인을 서슴지 않는 인간성에 대한 도전입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은 직권남용, 강요, 뇌물의 더러운 범죄를 잔뜩 저지른 그 더러운 손으로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아무런 스캔들 없이 가장 깨끗한 대통령 박근혜 님을 이 세상의 가장 더러운 인간으로 만들어 발가벗기고 돌을 던지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사건 2016. 12. 9. 국회가 저지른  탄핵소추입니다. 이는 “너희들 중에 죄없는 자만이 돌을 던져라”는 역사상 가장 신성한 명령에 대한 도전입니다.

아무 고의(故意)없는 인간의 개인적 실수, 허물을 처벌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神)만이 할 수 있는 신의 영역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 신 앞에 죄 많은 피조물입니다. 저들은 마치 지신들이 신이라도 되는 양 인간 박근혜, 여성 박근혜를 발가 벗기고, 단두대에 올려 목을 치고, 공을 만들어 순진한 어린 아이들에게 공놀이를 시켰습니다. 이것은 북한에서 하는 짓입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닙니다.

여러분, 박근혜 대통령님은 우리 국민들이 2012년 직접, 평등, 비밀, 보통 선거에 의하여 적법하게 선출한 완벽한 민선 대통령입니다. 이 완벽하고 깨끗한 대통령을 대통령직에서 쫓아내고, 생명까지 빼앗으려는 사람들 저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입니까?

3. 여러분, 저는 지난 며칠간, 기자회견과 광고문을 통하여 헌재가 정원 9인이 아닌 8인으로 탄핵소추를 심판하여 결정을 내리는 것은 헌법 제 111조 규정으로 보나,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들의 종전 판결례를 보나, 여러 원로법조인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보나 명백한 위헌이라 원천무효임을 만천하에 알렸습니다. 지금까지 이점에 대해 “아니다. 합헌이다. 유효하다” 라고 말한 법률가는 단 한사람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8인 재판도 합헌이고 자신들의 말을 뒤집으면서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이유를 댔습니다. 그동안 검찰과 특검이 조사하였다는 “최순실”의 비리와 부정 소위 언론이 말하는 “국정농단”이 아무런 실체가 없는 그야말로 촛불 기자님들의 “소설”이라는 것이 점차로 드러나고 있는 시점입니다. 따라서 최순실의 비리, 부정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고는 박 대통령에 대한 이건 탄핵소추는 올바른 결정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순실의 비리가 고영태 일당의 조작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 일당이 달아나 잠적을 하였습니다.

필시 특검이나 검찰 또는 촛불이 이들을 숨기고 보호해 주고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고개를 들고 드러나려는 바로 이 시점에서 박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을 내리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재판을 하려는 재판관들일까요? 저는 의문입니다. 최순실 비리, 부정을 직접 재판하는 형사법원조차 사실을 가리지 못해 재판을 끝내지 못하고 있는데 소위 그 공범자라고 하는 박근혜 대통령부터 그것도 형사법원도 아닌 헌법재판소에서 형사법원보다 앞질러 판결을 내리는 재판은 도저히 양심있는 법관의 재판이 아닙니다.

4. 지금 이 나라 언론, 국회, 지도층은 우리 국민들에게 무조건 헌재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리 판별도 못하는 애들입니까? 승복하고 안하고는 각자가 판단하여 결정할 일이지 언론이, 국회가, 원로가 국민들에게 명령할 일입니까? 여러분, 이 사건 탄핵심판은 국회가 대통령 박근혜를 소추한 것입니다. 따라서 재판 당사자는 국회와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따라서 두 사건 당사자는 국가의 헌법절차에 따른 판결에 대해 승복할 법적의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주권자로서 그동안 이 나라 언론, 국회, 검찰, 법원에 대해 각자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주어진 책무, 심부름을 제대로 했는지 심판하여 잘못한 사람들은 처벌, 탄핵의 심판을 내릴 권리, 즉 주권이 있습니다. 주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할 종들이 주인인 우리에게 무조건 승복을 하라니 이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 


5. 사랑하는 법치와 애국시민 여러분, 지금 우리는 나라 잃은 백성입니다. 우리의 의사와 말을 대변해줄 언론이 없고, 우리의 재산을 지켜줄 국회가 없고, 우리의 자유와 신체, 생명을 보호해줄 검찰이 없고, 우리의 주장과 증거를 들어줄 법원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같이 손을 잡고 일어나야 합니다. 3월 11일 저와 함께 태극기 애국집회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며 힘차게 선언합시다.

1. 우리는 더 이상 촛불언론, 촛불국회, 촛불검찰, 촛불법원의 지배를 받는 2등 국민이 아니다.

2. 우리는 1948년 우리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인 개혁가 이승만 박사께서 세우신 자유, 민주, 법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애국시민임을 세계만방에 고한다.

6. 헌법과 국민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은 헌법에 위배된 8인 재판일 뿐만 아니라, 헌법의 적법절차의 조항을 대통령과 국민들에게는 적용하면서 국회에 대하여는 “의회 자율권”이라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적용하지 않고 면죄부를 주는 反헌법적인 판결로서 원천 무효임을 선언하고 제2의 건국을 향한 행군을 시작합시다.
아! 나의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 영원하리라 !!


                            2017. 3. 10. 
                             김평우 변호사


신년 말 시리즈 ① 판단하는 말을 하지 말자

지난 해 10월, 이철호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성회가 "입술의 열매로 복과 행복을 누리고 삽시다(잠언 18:20-21)"라는 주제로 뉴욕과 뉴저지에서 열렸다. 10월 2일부터 3일간은 뉴저지 필그림교회에서, 16일부터 3일간은 뉴욕만나교회에 열렸다. 강사 이철호 목사는 예장 합신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강성장로교회 담임목사로 33년동안 목회를 하고 있다.

이철호 목사는 성회를 통해 저주 받는 말, 축복을 받는 말, 행복을 주는 말, 불행을 주는 말에 대해 설교하며, 신앙생활을 할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해 나갔다. 이 목사는 성경적인 근거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숨김없이 나누어 큰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데 ①판단하는 말 ②비방(비판)하는 말 ③대적하는(거스리는) 말 ④원망(불평)하는 말 등이 있다고 전했다. 신년에 사용하리라고 저장해 놓은 파일을 이제야 풀며, 4번에 걸쳐 신년 시리즈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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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철호 목사

복받는 대신 저주를 받게하고, 행복대신 불행하게 만들고, 사명자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만들기위해 마귀가 우리를 공격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말이다. 모세의 예를 들면 40년을 충성하고도 무엇때문에 가나안의 축복을 못받았는가. 시편 106편에는 재난이 모세에게 임했는데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세가 홧김에 한마디를 한 것으로 인해서 40년을 충성하고도 재난이 모세에게 임했다고 했다. 말 한마디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데 구원은 받지만 상이 없는 인생을 만들어 버린다.

그런데 악한 말이 무엇인가? 인생의 바퀴를 불태워 하루아침에 인생을 곤두박질하게 만드는 말이 무엇인가. 마귀가 우리 인생을 저주받게 하는 말을 하게 한다. 대표적으로 모세도 그렇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원망하다가 결국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민수기 14:28-29에 나오는대로 입술의 열매가 맺혀지는, 말하면 그대로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말을 듣고 그대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렇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면 저주가 그냥 들어온다.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든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하나님를 대적하라고 한다.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의 말을 듣지 말고 네가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면 저주가 그냥 오는 것을 마귀가 알기에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아담을 속였던 것 처럼 오늘날도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우리를 속인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생각을 꿈에도 안한다. 말에 대한 설교를 준비하다가 제가 깨진 사람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 ①판단하는 말

저주를 받게 하는 말중에 가장 먼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중 첫번째는 판단하는 말이다.

유다서 1:8-10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을 보면 하나님이 천사장 미가엘이 사탄에게 조차 판결의 말을 하지 못하고, 다만 하나님이 너를 꾸짖지기를 원하신다 정도만 말했다. 판결의 말은 왜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것인가.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니 망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를 알아야 한다. 배드로후서 2:10-11도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판결의 말이 무엇인가? 야고보서 4:11-12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을 보면 형제를 비방하지 말고 판단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하는 자는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라 재판관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를 비판하고 판단하면 내가 지금 재판장 노릇을 하는 것인데 재판장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네가 무엇인데 판단하느냐는 것이다. 누구를 판결하는 말은 스스로 재판장이라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를 교만하게 만든다. 선악과 사건은 하나님 자리에 서라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서라는 것이다. 사탄은 아담에게도 시켰고 오늘도 우리에게 하나님 자리에 서라고 시킨다.

로마서 14:10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우리들은 누가 어떻고, 어느 교회가 어떻고 너무 쉽게 판단을 한다. 그리고 판결을 내가 내린다. 저는 이것이 죄인줄 몰랐다. 성경을 읽다가 이 부분이 너무 회개가 되었다.

고린도 전서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는 주님이 오실때 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는 심판하러 오신다. 재판장으로 오시는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하시니 우리가 심판장과 재판장 노릇을 하지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는 것이고 죄가 되기에 하나님이 너를 형벌하실 수밖에 없기에 겁없이 판단하다가 망한다는 것이다.

칼춤이 특기인 목사가 새벽에 만난 하나님

84년에 교회개척을 했다. 개척해서 2-3년지나고 김창인 목사가 퇴계로에 있던 충현교회를 강남에 옮기면서 백 억을 들여 예배당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100억은 지금 1,500억보다 큰 돈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교인들에게 "유럽을 보라. 200년 걸려 수많은 돈을 들여 예배당을 지어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관광지로 레스트랑으로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무슨 예배당을 짓는데 그렇게 돈을 많이 들이는가. 그런 돈이 있으면 선교나 하시지"라고 말했다. 맞는 말인가 틀린 말인가?

그때만해도 천막을 치고 개척하는 교회가 가끔 있었다. 저는 상가에서 개척을 했는데, 천막을 치고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 우리 동네에 있었다. 천막앞에 교회간판을 달았는데 옆에 신학교 간판도 같이 붙어있었다. 우리동네 천막 개척교회가 신학교까지 하는 것이다. 알아보니 신학박사라는데 6개월만에 목사가 되어 무인가 신학교를 세워 놓은 것이다. 무자격 목사가 무인가 신학교를 만들어 무자격 목사를 양산해 내면 한국교회 어떻게 되겠는가. 큰일나겠다고 생각했다.

1998년 새벽에 하나님이 내가 그동안 판단했던 말들을 하나씩 생각나게 하셨다. 당시 저는 30대 목사로서 주특기가 칼춤이었다. 성경본문을 가지고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찾았다. 한국교회는 이것이 문제이고, 선배목사들은 이것이 문제이고, 장로들은 이것이 문제라고 비판하는 주특기가 칼춤이었다. 4대째 믿는 집안의 장로 아들로 태어나서 자라면서 부모님에게서 날마다 교회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썩어 냄새를 피우는지, 왜 거친 돌을 만들어 놓아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지를 비판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은 아닌데 선명히 보여주셨다. 어떤분들이 산 하나를 깍아내는 것이다. 힘들어 하면서 혹은 죽어가면서 꼭갱이질과 삽질을 하며 큰 산 하나를 깍았다. 그런데 웅덩이에는 물이 섞어 냄새가 나고, 남겨진 돌멩이에 걸려 사람이 넘어진다. 그런데 옆에서 팔짱을 끼고 '이게 무엇이야, 한국교회가 왜 이 모양이야' 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았다.

한국교회가 문제있다고 생각하고 총신을 다니다가 합신에 간 사람이다. 한국교회를 개혁하자고 간 사람이다. 선배 목사들이 교권주의, 세속화되어 있고, 돈 밖에 모른다고 비판했다. 당시 합신 출신이 대부분 다 그랬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판단쟁이 목사가 본 자신의 모습

그런데 기도하는데 내가 팔짱끼고 '왜 그래' 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잘 보였다. 그런데 성령께서 내 안에서 "철호야, 5천년 무속사상에 찌든 이 민족에게 불교와 유교사상이 찌든 이 민족에게 복음이 들어왔고, 그 복음의 힘으로 산 하나를 깍아낸 사람들이 다 너희 선배목사들 장로들 성도들이다. 그들은 순교하면서 그것을 다 깍아냈다. 그런데 웅덩이와 돌맹이 남아있고, 웅덩이에 물이 섞어서 냄새나고 돌맹이때문에 넘어지는 사람이 나오지. 그런데 네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순교했겠냐. 처자식 다 포기하고 희생시키면서 순교를 했겠냐"고 말씀했다. 제가 그 아침에 통곡을 안할 수 없었다. "네가 그 시대에 있었으면 순교했겠느냐. 처자식 다 희생하면서 산하나 없앴겠는가. 선배들이 그렇게 했다. 남은 것은 이제 네 몫이다. 네가 이제 웅덩이 메꾸고 돌맹이를 치우고 기초하나 잘 파놓고 너는 끝내고, 이후에는 후배들이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내 뜻이 아니겠니!"

비판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책임을 지고 사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박윤선 박사는 신학교에서 우리들을 가르칠때 날마다 말씀하신 것이 있다. 박윤선 박사는 "개혁은 다른 사람을 개혁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개혁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앞에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같이 날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개혁"이라고 했다. 비판은 쉽다. 그런데 비판이 무서운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 새벽에 하나님이 하나하나 생각나게 하시는데, 충현교회 김충인 목사님을 비판한 것이 생각났다. 상가에서 개척한 젊은 목사도 교회가 조금식 성장하니 나도 예배당을 지었다. 나도 두 번 지었다. 규모의 차이이지 나도 1만명 모이면 천억짜리 예배당을 지을 것이다. 문제는 내가 목회해 보니 나도 예배당 지었다. 내가 충현교회 김창인 목사를 비판했던 것이 떠 오르자 마자 잘못했다고 회개했다.

그런데 무인가 신학교 세웠던 그 목사가 생각나는데 성령께서 "네가 무엇인데 그 사람이 자격없다고 하니"라고 물으시자 "그래도 주님 좀 문제가 있잖아요. 그것은 문제가 있잖아요. 그것은 아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준이 무엇이냐"라고 성령님이 물으셔서 "어떻게 6개월만에 목사가 되요"라고 하니 "그런데 기준이 무엇인가. 무슨 기준으로 네가 자격없다고 이야기 하니"라고 물으셨다. 그래서 "그래도 그것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니 "그러면 기준을 말해 봐. 그 기준이 너희나라 정부가 기준이냐, 아니면 총회법이 기준이냐. 무슨 기준으로 너는 자격있고 그는 자격없다고 하는가"라고 물으셨다. 그래도 그것만은 쉽게 항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래도 주님, 그것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하며 나도 버텼다. 이번에는 주님게서 내 안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바울처럼 그 시대에 가장 학벌을 가진 사람도 사용했고, 베드로 처럼 평생 고기를 잡던 사람도 불러 제자로 사용했다." 찬스였다. 그래서 "주님, 그때는 초대교회 시대이잖아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6개월만에 목사가 되요"라고 나도 버틸만큼 버텼다. 그랬더니 성령님이 "그래, 근대사에도 있다. 요한 웨슬리처럼 영국 최고 명문대 출신도 사용했고, 무디처럼 초등학교 중퇴한 사람도 사용했다"고 말씀했다. 그래도 나는 항복이 안되었다. 그래서 "그래도 주님, 그것은 아닌데요"라고 했는데, 마지막 주님의 한마디에 항복을 하고 주님앞에서 울었다.

"그래... 그러면 너는 자격이 있니?"

이 한마디에 그날 새벽에 더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님 저도 죄인입니다"라고 회개했다.

교회다운 교회가 없다고요?

어떤 분이 강남 유명교회를 다니다가 부평으로 이사와서 우리교회에 등록하고 면담을 하는데 이 동네에 이사온지 1년되었고, 지난 1년동안 동네 교회들을 다녀보아도 교회다운 교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교회에 등록하는 것은 우리교회는 그나마 동네에서 교회다운 교회라는 것이다. 듣는 목사는 기분이 좋을 수도 있지만, 나는 하나님께 배운 것이 있다. 그래서 "집사님, 기준이 무엇이예요. 교회다운 교회의 기준의 뭐예요"라고 물었다.

이것은 다 다르다. 기준이 다르다. 성경을 해석하고 보는 관점이 다 다르다. 그래서 신학도 다르고 교단도 다르다. 합동신학교대학원만 제대로 된 신대원인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신묘막측하다고 하셨다. 세계 70억 인구중 같은 사람이 없다. 이것은 창조의 다양성이다. 하나님은 기가 막히게 창조하셨다. 그러면 이렇게 다양하게 만든 인생들을 불러 모으신 교회들중에 똑같은 교회가 있겠는가. 없다.

사람은 크게 나누면 지적인 사람, 정적인 사람, 의지적인 사람으로 나눈다. 기질에 따라 세밀하게 46가지로 나누기도 한다. 지적인 사람은 언제 은혜가 되는가. 지적인 분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면 은혜가 되고 받아들인다. 정적인 분은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정적인 분들은 필이 꽃혀야 한다. 가슴이 뭔가 찡하고 감동이 되면 은혜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의지적인 사람은 필이 꽃혀도 소용이 없다. 의지적인 행동을 강조한다. 사회가 이렇게 썩어가는데 앉아서 성경공부하고 설교듣고 은혜받았고만 하고 구경만 하는 것이 무슨 신앙이냐며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의지적인 사람은 행위를 강조한다. 지적인 사람은 장로교, 정적인 사람은 순복음교단, 의지적인 사람은 감리교나 기장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교단이 제대로 된 교단인가?

어떤 분이 옷을 입었는데 너무 멋있다. 그래서 다른 분이 그 옷을 사 입었는데 정말 아니다. 그러면 사람이 문제가 있는 것인가 옷이 문제인가. 나하고 안어울리는 옷을 입었다고 내가 문제있는 사람인가. 그것은 아니다. 문제있는 것이 아니고 안어울리는 것이고 안맞는 것이다.

당회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교회에는 장로가 21분이 있는데 당회에서 어떤 안건을 내놓으면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 있다. 당회는 어떤 안건을 놓고 내 생각을 말하는 데가 아니다. 그러면 분리가 된다. 생각은 누구나 다 다르다. 21분의 장로가 각자 다르다. 그렇다고 다수결로 하면 소수는 불만이 생긴다. 우리교회 당회는 다수결로 해 본 적이 없다. 그런것은 일반회사나 사회에서 하는 것이지 교회는 그런데가 아니다.

당회는 어떤 안건이 나오면, 이 안건에 대해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실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성경적인 원리가 무엇인가 질문하고 우리끼리 답을 찾는 곳이다. 어떤 안건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우리가 먼저 고민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드러나면 가부논쟁을 중단하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생각대로 가면 교회는 타락이다. 그러니 항상 교회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의 최대 관심사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물어야 한다.

한국교회 상당수가 주식회사로 바뀌고 있는 이유

저는 한국교회 상당수가 주식회사로 바뀌고 있다고 표현한다. 교인들이 헌금한 것이 자기의도대로 사용되지 않으면 난리가 난다.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시다. 예를 들면 예산을 세우는데 금년 예산이 10억이라고 하자. 다음해 예산은 교인 증가율을 따져 5%, 인플레율 5% 해서 금년 예산에서 10%가 늘어난 11억을 내년 예산으로 세운다. 그리고 11억의 범위에서 이런 일 저런 일을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일반회사에서나 하는 일이다. 교회는 아니다.

교회는 당회부터 제직회가 "하나님, 내년에는 우리교회를 통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를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을 하려고 하니 예산이 20억이 든다. 그런데 한계를 넘어간다. 12억이면 해보겠는데 20억은 안된다고 하면 그 교회는 하나님이 존재의미가 없는 집단이 되어 버린다. 교회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데 20억이 든다면 20억을 예산으로 세워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이 20억을 여러분을 축복하시든지 누구를 통해 그일을 하신다. 그것이 교회이다. 주식회사를 만들지 말라. 우리가 헌금한 돈 우리가 마음대로 쓴다가 절대 아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리다고 말하면 안된다. 그 집사님에게 교회다운 교회가 없다고 하는 기준을 물으니 대답을 못한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교회가 문제있다고 하면 안된다. 생각은 다 다르다. 부부지간에도 생각이 다르고, 내 배에서 난 자식도 다르다.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라. 그것이 겸손이고 사랑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비와이 ‘성경말씀’ 수상소감, 온라인서 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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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가수 비와이가 수상소감에서 성경말씀을 인용해 온라인 SNS와 크리스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방송 캡처 화면 

 

지난 22일 ‘2017 가온차트 K-POP 어워드’에서 ‘올해의 발견상 힙합부문’에 선정된 비와이가 수상소감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해 온라인 SNS는 물론 크리스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비와이는 수상소감에서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나서 어릴 때부터 꿈꿨던 것이 있었다”며 “그것을 오늘 전해보려 한다. 오늘 꿈을 하나 이루고 내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제가 진리라고 믿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는 여기서 말하고 싶었어요. 많은 분들이 제가 하는 음악과 제 신념을 되게 많이 비웃으시지만 저는 이게 멋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을 오늘 말하고 내려가려 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이 저에게는 굉장히 큰 감동이었어요. 저는 사장님도 없어요.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서 감사드릴 분은 하나님뿐이고 진심으로 저를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들어오게 해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이 상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여기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비와이의 수상소감은 온라인에 빠르게 퍼졌고, ‘공개석상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다니 용감하다’, ‘주님 고백하는 모습 멋있다’는 등 호응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관심도 없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런 말 들으니 기분 나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 해 Mnet <쇼미더머니 시즌5>에 출연해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랩으로 화제를 모은 바 있으며, <데이 데이>, <자화상> 등의 노래가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김주련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유는

수백가지가 넘는다.

수백가지 이유로 하나님을 떠난다.

수백가지 이유로 지옥에 들어간다.


그래서 지옥은 항상 만원이다.

너에게 옳은 것은 너에게만 옳고,

나에게 옳은 것은 나에게만 옳다면,

절대진리란 있을 수 없다.


어떤 것은 한 사람에게는 참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거짓이 될 수 있다는식의 주장은

자기 모순적이며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


인간이 만들어 낸 그릇된 지식은

책임전가를 꾀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다는데

그 중에는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고,

또 한 사람은 능력의 부족이나 환경의 차이로

지옥에 보내는 것은 살해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것들은 기독교를 혼란에 빠트리기 위한

새롭게 등장한 이론들이다.


악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지옥에 보낸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부정한다.


이런 관점을 신봉하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좋을 만한 일종의 핑계거리다.


이런 형식의 논증은 역사도 오래되었고,

다양한 사상가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제시해 왔다.


특별히 기독교가 비판의 중심이 되는 이유는

기독교만이 죄를 지적하고 지옥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계만 하더라도

선와 악, 범죄와 선행이 함께 존재하는 것은

전혀 모순이 되지 않는다.


만약 완벽한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도덕규범을 주시고 단 하나의 길이 있다고 해서

배타적이라 바난받을 일이 아닌 것은,

내가 아는 지식이 완벽하지 않은데다

각자의 불순종으로 죄를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악과 불공평이 존재함으로

하나님이 부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유는

악과 죄의 존재가 구원을 수반했다는 것과

선을 더욱 선되게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적인 더 큰 선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선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악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


이것은 믿는 자에게 전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자들에게 문제가 되기 때문에

그들은 이 문제를 이슈화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했고,

- 바리새인은 안식일과 율법 때문에,

- 부자들은 돈을 포기할수 없었기 때문에,

-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같은 동네 사람이라는 이유로 예수님을 배척했다.


현재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복음을 거절하는 목록이 더 많아졌다.


- 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다.

-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으시다.

- 거짓지식(진화론,무신론,인본주의)에 미혹되어서

- 동성애를 반대하는 성경 때문에

- 성경의 권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 그리스도인의 부도덕한 행실 때문에

- 헌금과 십일조가 부담되어

- 잘못된 교리 때문에


이런 이유들로

하나님과 복음을 거부하는 것을 두고 성경은 어떻게 진단하는가?


예수님은 억지로 이들의 마음을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표적을 구하며 하나님의 신임장을 요구하는

바리새인들의 요구를 거절하셨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세계인류 중에는 의인과 악인이 있고,

양과 염소가 있으며,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가 있고,

알곡과 쭉정이가 있고, 천국의 아들들과

악한 자의 아들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첫째, 그들은 이 세상의 신, 세상의 영으로부터 미혹되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마 16:6)


누룩이란 세상으로부터 나온 거짓지식,

세상의 가치기준으로 판단하는 교훈을 말하는 것으로

이 세상의 지혜와 지식은 어리석게 자기꾀에 빠진다.


인간이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키기 위해

스스로 어떤 기준이나 표준을 설정할 수 없다.


인간의 표준은 언제나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법에 근거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가 존재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선의 기준은

하나님이 그것을 선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선이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믿으면 영생이요, 믿지 않으면 심판이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복음은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체험적 증거인데,

어리석은 자들은 이론적 변론과 다툼거리를 일삼는다.


내가 만약 마귀라도

성경보다 다른 이론이나 논리들에 더 관심 갖게 만들 것이다.



둘째, 가라지라는 나쁜 씨가 뿌려졌다.


사탄이 뿌려놓은 많은

나쁜 씨(거짓이론,사상,논리)를 마음밭에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위에서 언급한 하나님을 거절하는 목록들이다.

악한 자들, 멸망할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이런 거짓논리에 더 끌린다.


나쁜 씨가 뿌려진 사람을 가라지라고 하는데,

성경은 이들을 일컬어 악한 자의 아들들이라고 한다.

 

미혹의 역사를 보내는 이유는

악한 자들이 그것을 믿고 심판에 이르게 하기 위함이다.


진리를 믿지 않고

거짓이론을 좋아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게 한다.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는데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자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이 속한 말을 선호하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에 순종하기보다

불법을 행하기를 좋아하는데 불법은 죄다.


 

셋째, 길에 뿌려진 씨앗은 사탄이 빼앗아 버렸다.


길위에 뿌려진 씨앗도 있고,

돌밭에 뿌려진 씨앗,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이 있다.


오직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만이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한다.


잘못된 마음밭에 뿌려진 씨앗들은

사탄이 빼앗아 가버리거나

어려움이 닥치면 넘어지거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결실하지 못한다.

 

세상은 악의 지배 영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류가 포진해 있다.


이들은 여러기 올무를 놓아 사람을 타락시키거나

미혹하여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은근히 진리를 탐구하는 척 질문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기들의 거짓사상을 선전하고 미혹하는 역할을 하는 자들이다.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요 6:6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고 다시 그와 함께 하지 않았다.


왜 예수님은 이런 위험한 말씀을 하셨을까?


지금도 이런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공평을 의심하는 빌미를 주고 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다.

천국의 시민은 하나님께서 선택할 권한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말씀하셨다.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한다" (요 6:37)


떠나갔던 사람들은 스스로 떠난 것이지

예수님이 그들을 내쫓은 것이 아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 (요 5:24)


미혹의 영에 미혹되는 것은 자신이다.

죄를 사랑하여 죄에서 떠나기를 싫어하니,

각종 반이론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악하므로 거짓 이론에 더 끌리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스스로 돌이키고 살라' 말씀하신다.


우리가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 바라보기를 멈추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중심적으로 볼 때

비로소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방식에 순종할 수 있다.



출처: 카이로스 / ars

신년 말 시리즈 ② 비판하는 말을 하지 말자

지난 해 10월, 이철호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성회가 "입술의 열매로 복과 행복을 누리고 삽시다(잠언 18:20-21)"라는 주제로 뉴욕과 뉴저지에서 열렸다. 10월 2일부터 3일간은 뉴저지 필그림교회에서, 16일부터 3일간은 뉴욕만나교회에 열렸다. 강사 이철호 목사는 예장 합신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강성장로교회 담임목사로 33년동안 목회를 하고 있다.

이철호 목사는 성회를 통해 저주 받는 말, 축복을 받는 말, 행복을 주는 말, 불행을 주는 말에 대해 설교하며, 신앙생활을 할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해 나갔다. 이 목사는 성경적인 근거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숨김없이 나누어 큰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데 ①판단하는 말 ②비방(비판)하는 말 ③대적하는(거스리는) 말 ④원망(불평)하는 말 등이 있다고 전했다. 신년에 사용하리라고 저장해 놓은 파일을 통해 4번에 걸쳐 신년 시리즈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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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교회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철호 목사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민수기 12:1)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민수기 12:8)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리시는 것을 보면서, 4번째까지는 애굽의 술사들이 흉내를 냈는데, 그 다음부터는 흉내가 안된다. 일방적으로 애굽이 당한다. 당시 대제국이었던 애굽의 신은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 신이 여지없이 여호와께 깨지고 있다. 이집트 원주민들과 이집트에 와 살고있던 여러나라 사람들은 끝내는 항복을 하고 출애굽을 시키는 것을 보면서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신이고 최고의 신이라고 믿고 자신들도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애굽까지 따라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광야에 들어가 광야생활을 하니 너무 고달팠다. 예수믿으면 좋겠다고 믿기 시작했는데, 금방 힘든 일이 생기면 하나님을 믿어도 안된다며 떨어지는 사람이 나오는 것 처럼 따라나온 사람들에게서 먼저 불만불평이 터졌다. 그 섞여있는 자들의 불만을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화뇌동해서 같이 원망불만을 터트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섞여있는 무리가운데 구스 여자, 즉 이집트 여자를 모세가 취했다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교회이다. 교회 지도자가 이방 여자를 취했다. 그러니 시대개념으로 보면 잘못했다. 그런데 아무도 이야기를 못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직접 계시를 받고 능력이 나타났기에, 뒤에서 불만불평은 터트리지만 누구도 대적하기 쉽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못하니 미리암과 아론이 나섰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이고, 아론은 모세의 형이다. 항상 주모자는 앞에 기록된 사람이다. 미리암이 나선것이다. 아론에게 "동생 모세가 잘못했는데 누군가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 지도자가 잘못했으면 누군가가 나서야 하는데 누가 나서나. 우리밖에 나설사람이 없지 않느냐"고 하자, 아론이 "맞아. 우리밖에 없다"고 했을 것이다. 아론은 동생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고 있었지만, 이때는 형으로서 누나로서 가서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러면 보라.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한 것을 무슨 말이라고 하는가. 바른 말이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하는 말이 있다. 바른 말이다. 그런데 성경은 바른 말을 했다고 안하고 비방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 보니 누가 화를 냈는가. 비방을 받은 모세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미리암에게 저주가 임하는데 문둥병에 걸렸다. 아론도 모세앞에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한다. 아론은 두 아들이 제사장으로 제사드리다가 잘못 제사드리다가 죽었다. 아론은 하나님앞에 망령된 것이 대적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을 아니 아론은 딱 엎드렸다. 중요한 것은 미리암은 여성 지도자이다. 출애굽기 15장에 홍해를 건너고 찬양할때 미리암은 맨앞에 찬양을 인도했던 여성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후에 미리암은 사라진다.

바른 말은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진노하시는가. 그것도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 총대를 맨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노를 하신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주관하는 이가 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오늘도 그분이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임을 믿는가. 정말 믿는가. 하나님이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고 계시는데 왜 네가 나서는가 하시는 것이다. 심판해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모세가 잘못했으면 하나님이 그에게 재난을 주신다는 것이다. 내가 나서서 개혁을 하겠다는 것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태복음 7:3-4)

주님께서 마태복음 7장에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고 하셨다. 비판은 남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것인데,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비판하지 말라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주님이 네 눈에는 들보가 들었다고 하신다. 기둥 하나가 들어있으니 앞이 잘 안보인다. 희끗보니 김집사 눈에 티가 보인다. 그래서 "김집사. 어떻게 눈에 티를 넣고 살아. 내가 빼줄께" 그럴 수가 있는데, 주님은 비유로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유는 들보가 들어있어 제대로 안보이는, 가끔가다 살짝 보이는 그 눈을 가지고 김집사 눈의 작은 티를 뽑다가 눈알을 뽑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은 오히려 네가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나는 죄수중의 괴수"라고 고백한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신다.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다른 사람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겠다고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누구를 비판할 의로운 존재가 없다. 주님은 그 말씀을 하고 계신다. "너는 지금 들보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남의 티를 뽑겠다고 나서는가. 주제파악을 좀 하라. 너는 남을 판단하고 비방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엣날 재래식 화장실에는 구더기가 산다. 구더기들중에 시멘트 벽을 타고 올라오던 구더기가 아래에 있던 구더기를 보고 "어떻게 인생 그렇게 더럽게 살아"라고 말한다면, 그것을 보고 "너는 참 깨끗하니 어서 올라와라"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끼리 보면 좀 더 성화되고 안되고, 우리끼리 보면 좀 더 고상하고 안하고, 우리끼리 보면 좀 더 믿음이 있고 없지만 하나님이 보시면 다 죄인이다. 누가 누구한테 "인생 그렇게 살면 안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다. 철학자의 말이 아니라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얼마나 죄인인지 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하루동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을 영상화시켜서 주일예배후 상영한다고 하면 친구들을 초청할 수 있겠는가. 제가 하루동안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을 영상화시켜 주일예배후 상영한다면 저는 은퇴해야 한다. 만약 상영하려고 하면 결사반대할 것이다. 목사... 생각하는 것 추하다. 꼴사납게 굴면 무시하고 멸시할 때도 있고,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저주가 나간다. 몇일전에 혼자 맨하탄에 있는 박물관에 가서 관람하고 왔는데, 백인여자들을 보면서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저런 여자와 살면 어떨가를 생각하게 된다. 순간순간 무슨 생각을 안하는가. 주님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속이 썩어있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지금 그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이용걸 목사 ② 목회 위기관리 / 교회규모에 관계없이 목회자의 생활은 만나

    지난해 10월, 35년의 목회를 마치고 은퇴한 이용걸 목사(필라영생장로교회 원로목사)가 “실천적 이민목회의 철학과 교회부흥”라는 주제로 2월 20일(월) 뉴욕교협 사무실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다. 이용걸 목사는 △바울의 목회철학 △목회 위기관리 △레위기에서 본 목회자상 이라는 제목의 3가지 목회철학을 나누었다. 다음은 “목회 위기관리”에 대한 두 번째 강의내용이다. 첫 번째 강의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첫번째 강의 보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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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걸 목사를 존경하여 교회집회에도 초대하고 이제 뉴욕교협 회장이 되어 목회자 세미나 강사로 초청한 김홍석 목사와 이용걸 목사 부부 

     

    스트레스 ② 인간관계

     

    목회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이다. 교인들 간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A라는 교인을 편들 수 없고 B도 편들 수 없다. 필라지역 어느 교회 목사는 교인간의 분쟁을 해결하려고 A를 만나서는 A의 주장을 동의하고 B를 만나서는 B의 주장을 동의했다. 그러다 A와 B가 만났는데 대화하다 보니 들통이 나 양쪽을 다 잃어 버렸다. 목사가 중요한 것은 주관이 있어야 한다. 교인 간에 싸우더라도 누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잘못했다고 말을 해주어야 하고, 아니면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가서 말을 들어주는 것은 좋다.

     

    사실 목사는 말을 안해도 성도들은 목사가 했다고 한다. 나는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지만 목사님이 그랬다고 한다. 목사님이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도 뒤늦게야 알게 된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렇게 말한 교인에게 가서  따지지 않았다. 35년간 한번도 “내가 언제 그랬니. 왜 그런 이야기 했니. 나는 그런 말 안했다”라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다 아시니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자연적으로 알게 되고 그것을 알게 된 사람은 다음에 절대 오해를 안한다. 인간문제는 이렇게 문제가 참 많다. 그래서 목사가 교인들 사이를 화해시키는 것이 참 어렵다.

     

    옛날 젊었을 때 기도원에 가면 원로들에게서 “이 목사, 장로들과 눈싸움에서 이겨야 해. 눈싸움에서 지면 지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목회하면서 보니 그것도 맞는 이야기이다. 한번 장로에게 지면 계속해서 양보해야 한다. 그러면 장로가 주관을 가지고 목사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목사는 웬만한 것은 다 양보를 하지만 선을 넘으면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 제가 나가라고 한 장로들도 있었고 내 보낸 집사도 있었다. 목사는 보스 기질이 있어야 하고 종의 기질이 있어야 한다. 두 가지 기질이 다 있어야 한다. 목사가 인내할 수 있는 선을 넘을 때는 가차 없이 짤라내야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다 종이 되어야 한다.

     

    제직회 같은 모임에서 목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제직회를 하면 마당을 펴고 쓸데없이 발언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문제이다. 가능하면 회의는 적게하라. 영생교회는 제직회를 6월에 한 번 한다. 그리고 연말에 예산 세우는 제직회와 연초에 제직 임명하는 제직회로 모인다. 원래 제직회는 6월에 한 번 하는데 우리 법을 보면 사실 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제직회를 만약에 자주 한다면 무슨 방법을 통해서라도 가끔씩 하도록 하라. 제직회는 짧게 해야 하고 기도회는 오래 해야 한다. 제직회를 하면 쓸데없이 말을 하게 되고 교회가 말을 하게 되면 말이 번져 나간다. 가능하면 말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 좋다.

     

    목사가 회의에서 무슨 안을 제시했다면 그것은 그대로 통과되어야 한다. 통과하지 않을 것은 아예 말도 하지 않아야 한다. 35년 동안 영생교회에서 제가 제시해서 통과 안된 것이 하나도 없다. 만약에 당회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도로 연기하자고 하면서 독대로 만나 설명하면 다 해결된다. 그런 경우가 서너 번 있었다. 그러니 목사가 당회나 제직회에 안건을 낼 때 앞뒤를 재고 이것은 누가보아도 다 동의한다고 할 때만 제안해하지 번복되거나 반대되거나 하면 습관이 된다. 그래서 눈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이해가 된다.

     

    그리고 목사는 무엇보다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기에 정직해야 한다. 빌립보서 4:8을 보면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을 생각하라고 했다. 하나님이 99세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우리 지역에 있는 교회의 장로님이 목사님을 내쫓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목사님이 목회학 박사학위를 공부한다고 해서 타주에 있는 신학교에서 공부하도록 교회에서 도왔다. 그런데 그 목사는 공부하러 가지 않고 다른 곳에 간 것이 드러났다. 아무도 모를 텐데 교회 차를 타고 가서 사고가 났기에 보험 처리하는 과정에서 장로가 알게 되었다. 분명히 다른 주에 있는 신학교에 공부하러 간 사람이 엉뚱한 주에 간 것이 들통이 났다. 친구가 와서 놀러간 것.

     

    그러면서 결국은 장로가 저한테 목사를 내보내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니, 장로는 목사가 거짓말을 한 것을 안 이후에는 목사의 설교에서 은혜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 말을 여러분에게 전해주고 싶다. 우리 목사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탄로가 나면 교인들에 설교로 은혜를 끼칠 수 없다. 그래서 결국 그 목사는 교회를 쫓겨나 한국으로 돌아갔다. 목사는 어떻게 하던지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

     

    스트레스 ③ 설교

     

    목사들은 설교에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목사가 설교를 잘하면 교인들이 불평이 없다. 애가 배고프면 우는 것처럼 목회자가 설교를 잘하면 불평이 없는 것이다. 목사가 설교를 잘하면 웬만한 것은 다 커버가 된다. 그래서 목사는 설교를 잘해야 한다. 그런데 설교는 은사도 은사이지만 자기 훈련도 필요하다. 저 같은 경우 중학교 때부터 웅변을 하고 바닷가나 산에 가서 소리도 지르고 했다. 또 문학을 좋아했다. 책을 보고 문학을 하는 것이 목회에 도움이 된다.

     

    의사나 목사가 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저는 수술실에 교인과 같이 한번 들어간 적이 한국에서 있다. 내가 없으면 수술을 안하겠다고 해서 같이 들어가 수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수술이 끝나고 의사는 수술한 후 비린내가 나서 담배를 피거나 술을 마셔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해결한다. 목사나 의사나 스트레스를 동일하게 받는다.

     

    목사는 설교에 부담을 가지지 말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설교해야 하는 시간이 왜 그렇게 빨리 오느냐는 생각이 들면 설교가 스트레스이다. 설교시간이 기다려져야 한다. 그저 나 설교 안시키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로 기다려져야 한다. 그리고 설교시간이 즐거워야 한다. 그래서 설교를 통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풀어야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없다고 하면 위기가 온다. 다른 사람이 와서 강단에 안지켜주나 하는 생각이 들면 위기가 온다. 

     

    설교하면서 먼저 내가 은혜를 받아야 한다. 내가 은혜를 받으면 성도들이 다 은혜를 받는다. 제가 미국에 오기전 목회했던 후암제일교회에 처음 가니 80명이 모였다. 5년을 목회하면서 장년 출석이 760명이 되었다. 당시 제일 많이 모인 교회는 영락교회나 충현교회는 1천1백~1천2백 명이 모이는 정도였다. 당시 우리 신학생들의 목표가 다 1천명이상 목회하는 것이라고 했다. 졸업반 설교학 시험은 설교를 하며 교수와 학생들이 채점을 한다. 여러 지적들이 나오는데 설교학 교수는 저에게 1천명을 목회할 전도사라고 칭찬했다. 열심히 설교를 개발해야 하고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

     

    항상 설교하고 나 잘했다고 하면 발전이 없다. 못한 것을 자꾸 개발해야 한다. 한국에서 목회할 때 설교를 잘했다고 생각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전임 목사에게서 그 따위로 설교하면 되겠느냐는 호통을 받았다. 큰 소리로 했는데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 다음부터는 설교하고도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항상 겸손하게 나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설교가 개발된다.

     

    제가 전도사 때부터 친구로부터 설교 코치를 받았다. 오늘날은 사모님들이 남편 목사의 설교를 코치를 해주어야 한다. 목사 본인이 설교하고 본인이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정착되면 설교를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닐 수 있다. 교인들은 목사의 설교를 비판하기가 힘드니 사모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아내는 저의 설교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한다. 토시 하나 틀려도 뭐라고 한다. 1부에서 설교하고 2부 예배에 들어가기 전에 방에 들어와 “목사님, 성도들 톨비가 아깝지 않도록 설교하세요!”라고 지적하며 설교교정을 해 준다. 우리 교회는 델라웨어나 뉴저지에서 오기에 톨비를 내야하는 교인들도 있다. 아내의 지적 때문에 자꾸 저의 설교가 발전한다. 배우자에게 자꾸 설교지적을 당해야 설교가 발전이 있고, 설교가 발전이 있어야 설교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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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강사 우창환 장로, 이용걸 목사, 김경원 장로


    스트레스 ④ 건강

     

    한인 이민 목회자는 통계가 없어 모르겠지만 한국 목회자의 30%가 건강문제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대표적인 건강문제가 간이다. 1980년에 미국에 와서 신학교에 만난 40대 목사는 간계통 질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내 손목을 붙잡고 “이 목사님, 목회는 마라톤이니 건강 유의하세요. 열심히 하는 것만 중요한 줄 알았는데 먼저 갑니다. 건강관리 잘하세요” 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심각하게 들었다.

     

    어떻게 하던지 정기진단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필요하면 조기 치료를 받으면 된다. 왜 요즘같이 좋은 건강보험 시스템에서 정기진단을 안 받는가? 목사가 건강을 잃고 떠나면 제일 불쌍한 사람이 사모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가 돌보아 주겠는가? 어느 교회에 가니 목사가 떠나고 6개월 만에 사모에게 사택을 비워달라고 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목사가 건강해서 오래 즐겁게 목회해야 하니 건강에 유의하라.

     

    목회하면서 교인들을 보니 항상 하나님이 사인을 주신다. 뭔가 피곤하고 어렵다 하면 멈추어야 한다. 미국 사람은 눈을 치우다가 사인이 오면 그대로 멈춘다. 그래서 회복되는 시간을 가지는데, 우리는 마저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일하다 쓰러지고 만다.

     

    스트레스 ⑤ 경제문제

     

    대부분 목회자가 경제적인 문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이민 목회자의 사모 40%가 교회밖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12%가 파타임으로 일한다. 일을 안하는 사모는 48%이다. 이민 목회자의 경제적인 안정에 대한 질문에서 괜찮다 18%, 보통이다 8%, 어렵다 74%이다. 목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뿐만 아니라 목사는 교인들이 어려울 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에 61%가 동의했다. 강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에 20%, 상관없다는 1.2% 이다. 교인이 어려울 때 목사의 80% 이상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들은 이야기인데, 뉴저지에 사는 목사의 아들이 책을 사달라고 했는데 목사가 돈이 없어 못 사준다고 하니, 아버지는 왜 책을 사느냐 하면서 아버지 서재를 불을 질러 버렸다. 아버지가 충격을 받아 죽었는데, 장례식때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관에다 꽃을 놓는데 아들이 침을 뱉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자녀들도 어려워진다. 

     

    그러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경제적인 문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 빌립보서 4:13에는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바울은 이런 저런 형편가운데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다. 우리 목회자의 생활은 만나이다. 제가 개척할 때 받은 사례나 교회성장후 받은 사례는 다 같은 것이다. 그저 그것이 그것이다. 하루 세끼도 교인이 많으면 잘못 먹는다. 교인이 많아지면 그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 목회자 생활은 만나이다.

     

    둘째,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다. 성전을 건축하면서 가진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먹이셨는가 체험해보자고 다 바쳤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아내가 어느 날 “목사님, 나는 두렵습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생각만 하면 다 응답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까지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의 생각까지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생각만 해도 은혜를 주신다.

     

    셋째, 목회자의 경제문제는 교인들이 부자되도록 기도해 주어야 한다. 처음 교회를 시작하고 어느 교회 부흥회를 갔는데 십일조가 1만 불이 나오는데 우리교회는 1천 불도 안될 때였다. 그렇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응답해주셨다. 어느 교회는 한 교인이 1만 불을 십일조를 한다고 해서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다 응답해주셨다. 교인이 부자이면 목사도 부자이다. 경제문제를 위해 계속 성도들이 잘되도록 기도하기 바란다.

     

    될 수 있는 한 사모는 일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사모가 일하면 목사가 목회에 전념할 수 없다. 두 사람이 올인하다 만일 먹지 못해서 굶어 죽는다면 순교이다. 그래서 부부가 열심히 목회하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지금 일하는 것을 당장 때려치라고 하지는 마라. 어느 교회에 가니 예산을 세울 때 사모의 수입을 참고해서 목사의 사례를 정한다고 한다. 가능한 두 분이 열심히 목회에 전념하기 바란다.

     

    스트레스 ⑥ 가정문제

     

    사모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제일 사모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것은 목사님이 너무 TV와 비디오를 많이 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오래전 필라 지역에 있는 사모가 교회 앞에서 남편 목사는 가짜라고 양심선언을 했다. “목사가 좋지 못한 TV와 비디오만 보고 기도도 안하고 성경도 안본다. 다 다른 교회에 가라. 여러분들이 불쌍하다”라고 말하고 이혼하고 가버렸다. 목사님들 조심해야 한다.

     

    남편 목사가 심방을 억지로 한다는 것도 사모님들의 고민이다. 심방을 억지로 하지 말라. 저는 배달부처럼 심방을 했다. 교회개척하면서 오전 9시부터 심방을 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하루종일 심방을 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다 있다. 큰 교회 목사일수록 위기가 더 많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배구할 때 상대가 강 스파이크를 날리면 블러킹해서 막아내야지 받으면 내가 죽는다. 스트레스를 스폰지처럼 받으면 목사는 죽는다. 그러나 빗물이 창가를 흘러내리듯이 내 보내면 산다. 중요하다.

     

    흑인가를 심방하면 아이들이 계란을 자동차에 던진다. 차에 뭍은 계란은 닦기 힘들다. 내려서 싸울 것인가 아니면 집으로 갈 것인가 하는 선택이다. 저는 집에 가서 닦았다. 우리 지역에서 권사 한 분이 흑인이 비즈니스에 들어와 난리치니 화가 나서 권총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했다. 그러다 흑인 여자가 권사의 총을 뺏어 권사를 쏘아 죽였다. 그리고 정당방위로 처리됐다. 스트레스를 받느냐 쳐 내느냐는 여러분에게 달려있다. 

     

    그러면 우리 목사들이 어떻게 스트레스를 쳐 내는가 하는 것은 기도제목이다. 하나만 알려드린다. 저는 매일 아침마다 어려운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네가 그 문제 때문에 그렇게 마음이 아프냐. 원래부터 죄인인 네가 죄인취급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죄 없으신 주님이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일부러 죄인이 되셨는데 원래부터 죄인이 네가 그것가지고 섭섭하게 여기면 되겠느냐"하며 스스로 기도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며 오늘까지 목양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러니 지금 72세인데 건강을 주셨다. 중요한 것은 목사는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 한다.

     

    예정된 강의 시간이 지나 이용걸 목사는 “스트레스 ⑦ 성공과 명예” 부분을 생략했고, 그리고 결론인 △사명감 확인 △영성개발 △적당한 휴식도 언급하지 못했다. 이 부분은 제목을 놓고 이용걸 목사가 하고자 하는 강의내용이 무엇일까 묵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정치적인 혼란속에서도 뉴욕교계 단체들 성숙한 모습 보여

     

    조국 대한민국의 혼란속에 특히 대통령 탄핵 결정을 앞두고 “탄핵을 탄핵하자”라며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시위가 2월 18일(토)과 19일(주일) 연속으로 열렸다. 주일 오후 4시 노던 155가에서 한인자유민주수호회 주최로 열린 태극기 시위에 뉴욕교계의 한 단체가 단체차원에서 참가한다는 정보를 듣고 처음으로 시위 취재를 나갔다.

    뉴욕교협, 뉴욕목사회, 뉴욕장로연합회 등 뉴욕교계 단체들은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에서도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고 하늘만 바라보며 조국을 위한 기도를 계속해 왔다. 그런데 한 단체가 단체의 이름을 걸고 특정 성향을 띈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은 심각한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오해였다. 그 단체가 참가한 것이 아니라 회원들이 개인의 양심의 자유에 따라 참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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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 집회 사진들은 아멘넷의 입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날 태극기 집회에서는 10여명의 목회자들과 다수의 장로들이 참가했다. 또 상당수의 성도들도 참가하여 태극기를 흔들었다. 또 일반 교계단체가 아니라 우측 색깔을 분명히 한 회원들로 구성된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 뉴욕지회(회장 안창의 목사)에서는 회원들이 피켓을 직접 만들어 참가했다. 안창의 목사와 현영갑 목사는 강단에 나와 탄핵을 적극 반대하는 발언을 하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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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기 집회 사진들은 아멘넷의 입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크리스찬이라고 해도 개인의 양심에 따라 태극기나 촛불 시위를 하는 것은 말릴 수 없겠지만, 뉴욕의 교계단체들은 한순간의 울분이나 정치적인 목적으로 단체를 이용하는 것을 자제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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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지난해 10월, 35년의 목회를 마치고 은퇴한 이용걸 목사(필라영생장로교회 원로목사)가 “실천적 이민목회의 철학과 교회부흥”라는 주제로 2월 20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뉴욕교협 사무실에서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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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강사 우창환 장로, 이용걸 목사, 김경원 장로. 영생교회 백운영 담임목사도 세미나에 참가하여 인사했다.

     

    이용걸 목사는 △바울의 목회철학 △목회 위기관리 △레위기에서 본 목회자상 이라는 제목의 3가지 목회철학을 나누었다. 또 영생교회 부흥사례 발표를 통해 김경원 장로는 영생교회 부흥비결로 예수사랑 총동원주일 사례발표를, 우창환 장로는 전도의 방법으로 새생명운동 사례발표를 했다. 뉴저지교협도 이용걸 목사를 초청하여 같은 세미나를 5월 1일(월) 개최한다. 먼저 목회 위기관리를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 이용걸 목사의 세미나와 성회 아멘넷 기사보기(22개) 

    - 전체 이용걸 목사에 대한 아멘넷 기사 보기(88개)

     

    목회 위기관리 ①

     

    목사는 자신을 잘 다스리는 가운데 무엇보다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목회하면서 화를 낼 수 있다. 그런데 화를 내면 결과는 어떤가? 이익이 하나도 없다. 어떤 교인은 아무개 장로가 기도하는 주일은 교회에 안 나온다. 그 장로가 화를 낸 것이 인상이 박혀서 기도하면 은혜가 안 되어서 아예 안 나온다고 한다. 목사가 아무리 감정이 날지라도 화를 내면 안된다. 화를 내고는 유익이 하나도 없다. 목사는 자기를 잘 다스려야 한다. 

     

    오래전에 버지니아에서 목사가 장로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 그리고 장로가 하는 비즈니스에 가서 불을 지르는 대단한 사건이 있었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장로가 그 목사를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그런 결정을 할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지만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어떤 목사는 너무 화가 나서 장로를 외딴 곳에 불러 오늘은 목사장로 간판 떼고 한판 붙자고 했다고 한다. 그러자 놀란 장로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그렇게 하지 말고 목사는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고 화가 났을 때 화를 다스리는 것이 문제이다.

     

    한 의학박사는 우리 몸에는 스트레스를 담는 통이 있어 웬만한 것을 그곳에 담는데 넘칠 때는 병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통이 차면 쓰레기를 버리듯이 통을 비워야 한다. 즉 우리안의 스트레스를 빨리 버려야 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다. 목사는 목회의 어려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린다. 

     

    목사가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떻게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가? 디모데 후서 1:6 “그러므로 내가 그대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대에게 안수할 때 하나님이 그대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을 불일듯 되살아나게 하시오.(현대인의 성경)”을 보자. 목회자는 날마다 안수 받을 때 감격을 다시 기억해야 한다. 정말 눈물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때의 감격을 바울 사도는 계속 반복하라고 말한다. 그것이 우리 목사들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다. 목사가 믿지 않는 사람처럼 술을 마시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 않는가.

     

    목회를 할 때 1년에 15번 부흥회를 했다. 2년 전부터 부흥회 약속을 했는데 부흥회 6개월 전쯤에 일정을 확인하면 보통 1년에 2-3교회는 집회를 못한다. 그 이유는 목사가 떠나는 경우도 있고, 교회에 어려움이 새롭게 생겼기 때문이다. 이민교회가 2년을 버티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런 상황에서 목사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현실이다.

     

    목사들이 교계신문을 보면 목사구인 광고를 가장 먼저 본다. 혹시 좋은 교회에 자리가 나왔는가 보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가 목회하는 교회에 만족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있는 교회에서 만족하고 충성하고 성실하게 섬기면 하나님이 보시고 때가 되면 하나님이 목회지를 옮겨 주신다. 그런데 우리가 옮기려고 일부러 하다 보니 섬기는 교회에 모든 힘을 쏟지 못한다. 한 모퉁이에서 목회하는데 누가 알겠느냐 하지만 다 안다. 하나님이 아시고, 적은 일에 충성하고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보내시니 너무 다른 교회와 다른 목회자 부러워하지 말고 내게 주신 양에게 최선을 다하라. 비록 몇 명이 안 되지만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다. 감사하면서 목회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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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의 기능

     

    목사의 영적 기능은 설교와 예배와 교육과 전도이다. 목사의 목회적 기능은 심방과 상담과 돌봄과 훈련과 인관관계이다. 행정적 기능은 교회행정과 당회운영과 인사관리와 재정관리이다. 목사는 이 모든 면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다 보니 얼마나 목회가 힘들겠는가. 의학적으로 보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의사가 있다. 그렇게 본다면 목회도 설교, 행정, 심방 등 한 가지씩 전문가가 담당해야 한다. 한 분야를 담당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인데 많은 분야를 다 하려니 스트레스를 받는다. 목사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위기가 온다. 

     

    이병욱 장로는 외과의사로서 1천명의 암환자를 수술했다. 그런데 수술후 보니 항암치료로 삶의 질만 떨어지고 결국은 거의 몇년 안에 죽는다고 한다. 장로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암환자를 수술해서 고치려 하지 말고 예방을 시키겠다고 결심하고 예방의학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암을 이기는 5가지 방법을 이야기했는데 ①기뻐하기 ②감사하기 ③기도하기 ④잘먹기 ⑤잘자기이다. 이 5가지만 잘하면 암 예방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에게 매일 암세포가 생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암세포를 잡아먹는 세포도 만들어 주셨는데, 위의 5가지를 할 때 그 세포가 활성화가 되어 암세포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암에 안 걸리려면 기뻐해야 하고, 눈물이 날정도로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들은 모든 스트레스를 기도로 하나님께 다 맡겨야 한다. 그래서 목사는 새벽기도를 못하면 목회를 못한다. 그리고 암으로 절대 안 죽으니 잘 먹어야 한다. 그리고 잘 자야 한다. 이 5가지를 교인들에게 가르쳐 주라. 목회자들도 이런 자세를 가지고 목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이겨야 한다.

     

    목회를 하다 보면 관계가 나쁜 사람이 전화오거나 만나자고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이런 분들은 참 만나기 싫은 사람이다. 저도 1980년에 미국 와서 처음 간 교회의 장로가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 용서는 했지만 지금도 만나기 싫은 감정이 있다.

     

    목사에게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먼저 신경질적이 된다. 그러면 목사는 교인에게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니 가족에게 신경질적으로 푼다. 그래서 사모가 힘들다. 사모는 남편 목사와 교인 양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저는 될 수 있으면 교회 일을 아내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 교회 일을 가정에 가지고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가정이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목회에 대한 적극성이 사라지고 대충 한다. 그리고 기쁨이 없어지고 감사도 없어진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누적되면 건강이 약해진다. 그래서 목사 중에 손을 떠는 사람이 있고 우울증이 생긴다. 목사가 교회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스트레스 몇 가지가 있다.

     

    교회성장 스트레스

     

    목사가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교회성장이다. 교회성장이 힘들다.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적고 나가는 사람이 많다. 교회가 성장이 안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한 사람을 전도해서 교육을 시키면 이사 가고 다른 이유로 교회를 떠나갈 때 목사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가. 제가 목회한 35년 동안 영생교회를 떠난 사람은 1천명이상 될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난다. 떠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다른 교인들과의 인간관계 때문에 떠나도 목사를 걸고넘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교인이 떠난다고 하면 반드시 심방하고 축복해준다. “그동안 나 같은 사람에게 신앙지도를 받으려고 얼마나 힘들었느냐. 고맙다”하고 축복하면 두 가지 유익이 있다. 다른 교회에 가도 담임목사 욕을 안한다. 다른 하나는 다시 교회로 돌아 올 수 있다. 장로님들 가운데에서도 떠났다가 다시 돌아 온 사람이 있다. 돌아올 때는 혼자오지 않고 대부분 데리고 온다. 떠날 때 그냥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잘 보내야 한다. 축복해주면서 보내기 바란다. 

     

    한국 총신 선후배 동창생들을 만나면 사실 열 받는다. 과거에는 동창생들 중에 쟁쟁한 사람들이 미국에 왔다. 80년에 미국에 올 때 동기들이랑 부러워했다. 그런데 요즘은 반대현상이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청빙을 받아 들어가면 다 부러워한다. 시대가 바뀌었다. 요즘 한국가면 동창들이 얼마나 잘사는지 모른다. 최신형 고급차를 타고 이민목회가 얼마나 힘든가 하면서 퍼 준다. 목사는 그런 것이 비교되고 어렵다.

     

    그리고 세미나 가서 강사가 아주 그럴듯하게 이것을 하면 교회가 부흥할 것같이 이야기하면 그것에 꿈이 부풀어서 교회에 돌아와서 바꾸려 하다가 어려움을 당한다. 너무 세미나만 쫓아다니지 말고 주어진 시간에 더 심방하고 더 성경 많이 보고 더 설교준비 충실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교회성장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아니라 교회성장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니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기다리면서, 내게 맡겨주신 양에게 나에게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목회에 충성한다면 교회성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가 받은 은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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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가 교회부흥에 50% 영향

     

    어떤 분은 설교로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다고 한다. 신학교 다닐 때 설교학 교수였던 이성헌 목사에게서 당시에는 목회성공은 70%가 설교에 있다고 배웠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지금은 그렇게는 안되는 것 같다. 그러나 50%는 좌우되는 것 같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회하는 시간의 50%를 설교에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에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다. 신학생들한테 기회가 있으면 문학을 많이 하라고 한다. 문학을 한 사람은 대개 설교를 잘하고 목회를 잘한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설교를 잘하는 전도사는 어른을 목회해도 설교를 잘한다.

     

    설교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교해야 한다. 설교가 어려우면 실패이다. 회중들이 듣다가 저것이 무슨 소리이지 생각한 이후부터 설교가 안들어 온다. 설교는 쉽게 해야 한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 같은 사람은 하녀에게 설교를 먼저 했다. 하녀가 알아들으면 되고 못알아 들으면 안된다. 그래서 신학교 교수의 설교가 은혜가 안된다고 흔히 말한다. 어렵게 하려니 은혜가 안되는 것이다. 쉽게 부담 없이 설교하라. 화장실에 가는 것도 ‘화장실’ ‘남자여자’라는 단어가 너무 부담스러워 글로 표시하지 않고 그림으로 보여준다. 부담 있는 설교를 하면 안된다. 

     

    은사를 개발하라

     

    설교에 은사가 있는 목사이면 좋고, 설교에 은사가 없다면 교회가 부흥이 안되는가? 아니다. 심방을 철저하게 해야 한다. 나는 심방이 참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담임목사와 부목사나 갈라진다고 할 때 교인들이 누구 편에 서겠는가? 설교 잘하는 담임목사 편에 서겠는가 아니면 심방 잘하는 부목사 편에 서겠는가? 교인들은 부목사 편에 가서 선다. 부목사가 어려울 때 가서 심방했기 때문이다. 심방은 담임목사가 해야 한다.

     

    임동선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의 앞머리가 하얀 것은 장로들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회를 하다가 한 장로라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 당회가 끝나고 임 목사가 그 장로의 집을 찾아갔다. 목사가 그렇게 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찾아갔는데 그 장로가 없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가족을 데리고 바닷가에 낚시하러 간 것이다. 낚시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니 차고 앞에 차가 하나 서 있었다. 누구 차인가 보니 임동선 목사가 차에서 자고 있었다. 장로가 돌아올 때까지 오랫동안 기다리다 잠인 든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장로가 무릎을 꿇고 “목사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고 사과했다.

     

    이만큼 심방이 효과가 있다. 다시는 그 장로가 임 목사를 괴롭히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우리 목사 가운데 그런 상황이 된다면 안가던가 다른 장로님들이 보기 때문에 억지로 갔다가 없으면 잘되었다 하고 돌아 왔을 것이다. 하지만 임동선 목사는 밤새도록 장로가 돌아올 때까지 차에서 자면서 까지 기다렸다. 그것이 결국은 장로의 무릎을 꿇게 했다. 그러니 심방을 잘해도 목회에 성공할 수 있다.

     

    행정과 교육을 잘해도 목회성공이 가능하다. 누구라 이야기를 안 하겠지만 설교 잘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도 행정과 교육이 능해 그 교회는 성장했다. 워싱톤DC 지역에 교회가 분쟁나면 교인들이 이원상 목사가 목회하는 교회로 간다. 고 이원상 목사가 설교를 잘한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입을 가진 사람이면 이원상 목사가 “훌륭한 사람이다. 진실한 사람이다. 인격이 훌륭하다”라고 다 이야기한다. 그러니 무엇이든지 자기가 받은 은사로 교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은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목회 위기관리 2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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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멘넷 뉴스(USAamen.net)

    트럼프의 반 동성애 정책 본격 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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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정부가 트랜스젠더(성전환자) 학생들의 학교 내 화장실 권리보호 지침을 폐기한다. 트랜스젠더 학생 화장실 권리보호 지침은 전임 오바마 정부에서 성전환 학생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침 폐기를 승인했으며, 법무부와 교육부는 일선 학교에 관련 서한을 발송하여 2월 21일부터 적용된다. 이에 따라 친동성애자 정책을 펼쳐온 오바마와는 달리 반동성애 견해를 밝혀온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보가 관심을 끌고 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한목윤,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바람직한 관계' 세미나

    "원로와 후임자의 관계, 역지사지로!"

     

    한국교회 130년의 전통을 이어오면서 담임목사 세대교체는 목회현장의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로목사와 후임목사간의 갈등 문제 역시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교우들 전체가 공동으로 노력하며 갈등의 공동체가 화합과 평화의 공동체로 변할 수 있도록 하는 ‘원로목사와 후임목사의 바람직한 관계’와 관련된 다양한 이슈가 논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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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위원장 전병금 목사)에서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주제로 16일 오후 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 뉴스파워 윤지숙 기자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위원장 전병금 목사)에서는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바람직한 관계’라는 주제로 16일 오후 2시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세미나를 가졌다.

     

    이날 김승호 교수, 백장흠·손인웅 목사, 강준모·최성은 목사가 ‘원로(은퇴)목사가 은퇴 이후에 어떻게 보다 의미 있는 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후임목사가 새로운 교회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공고히 세워나갈 수 있을 것인가’, ‘교우들이 원로목사와 후임목사가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등에 대해 발제와 발표를 맡았다

     

    주제발제에서 김승호 교수(영남신대, 기독교윤리학)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교회는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사이의 갈등이 보다 첨예한 이슈로 부각되어 왔다. 이러한 갈등은 심리적·문화적·역사적·신학적 원인들과 교회 내외의 다양한 원인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어 “전국적으로 이러한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교회들이 많다. 평생 목회에 헌신했던 원로의 명예를 실추시켜 본인과 가족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게 하거나 후임목사의 목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어 목회본질에 열정을 쏟지 못하고 사임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갈등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교회 교인들 전체가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했다.

     

    사례로는 △목회철학(교회성장중심vs사회적책임중심)의 차이, △목회방식(심방중심vs설교중심, 선교중심vs지역사회봉사중심, 예배형식, 교회조직 운영, 회의진행, 시간사용 등)에 대한 이해의 차이, △심리적(허탈감과 공허감v열정과 목회능력 증명) 차이, △교인들 시각(친분과 새로운 기대, 과도한 칭찬)의 차이 등을 갈등의 원인으로 분석했다.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 원로목사가 숙고해야 할 사항으로 △리더십을 이양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은퇴한 교회를 떠나 가급적 새로운 교회에 출석, △은퇴이후 직면할 복잡한 심리적 감정에 대해 예상하고 미리 대비할 것, △교회도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줄 것 등.

     

    후임목사가 숙고해야할 사항으로, △원로목사에 대한 교우들의 향수 인식, △원로목사의 목회에 대한 계승과 새로운 목회에 대한 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 △목회에 대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날 경우, 원로목사가 평생토록 가꾸어 온 터 위에 자신의 목회가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 △일반교우들과 중직들의 요구, 원로목사와 함께 해 온 교회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 잘 고려한 변화와 속도 조절, △특별행사나 명절에 원로 목사 초청 설교나 축도의 기회 제공 등은 원로와 후임 뿐 아니라 교회 전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원로목사의 입장에서 발언한 백장흠 원로목사(한우리교회)는 “‘세습의 문제에 대해 각 교단이 법으로 제재하는 이유는 아버지 덕으로 편하게 큰 교회에서 사역하게 하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라며, “원로목사도 후임목사도 ‘주님의 교회지, 내 교회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원로는 “은퇴가 무언지 깨닫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라. 섭섭한 마음이 들지라도 ‘은퇴했으니 그게 정상이다.’라고 받아들이라. 후임이 오면 잘하는 것도 보이지만 잘 못하는 것도 보인다. 그럴 때 기도하라. 교인들이 후임목사에 대해 안 좋게 말하더라도 ‘더 기다려 보세요. 잘하겠다는 의지가 보이지 않습니까?’라며 후임 편에 서서 항상 관용을 베풀라!”고 전했다.

     

    후임에 대해서는 “자신이 대단한 능력이 있어 교회에 부임했다고 착각하지 말라. 또한 급하게 당장 교회를 바꾸려 하지 말라. 원로도 ‘잘하겠다.’고 몸부림치다 은퇴했다. 더 공부하고 분석하며 천천히 바꿔가라.”며, “특히 원로를 부담으로 여길게 아니라 협력자로 삼으라. 원로의 필요와 요구를 들어주며 사랑으로 배려해 드리라. 자신도 언젠가는 원로가 된다.”고 조언했다.

     

    손인웅 원로목사(덕수교회)는 교인들의 역할에 대해 “전임목사에 대한 정과 친분을 소중히 간직하면서 항상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을 품고 가르쳐주신 신앙을 잘 지켜서 교회를 잘 섬기는 성도가 되는 것이 원로목사에 대한 최고의 보답이다. 후임목사를 사랑하고 위하면서 목회를 잘 돕는 것도 성도들의 도리다.

     

    이어 “원로목사들이여! 노욕을 부리지 말고 후배들과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서 남은 여력으로 연합과 일치, 갱신과 섬김의 사역에 매진하자. 교인들이여! 원로와 담임을 절대 비교하지 말고 한결 같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력만 해야 할 것이다. 이간질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큰 죄악이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리고 교회를 생명처럼 사랑하자!”고 권면했다.

     

    후임목사의 입장에서 발언한 강준모 목사(남성교회)는 “전임자는 어려운 목회를 이어갈 후임자를 보면 짠한 마음을 갖게 되고, 후임자는 전임자가 남기고 간 흔적을 따라가며 그 수고에 경의를 표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아름다운 관계였다.”고 세대교체에 대한 정황을 이야기했다.

     

    이어 “역지사지(易地思之)! 이 시대, 전임자와 후임자의 바람직한 관계를 위해 이 정신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 영원한 전임자도 없고, 영원한 후임자도 없다. 무엇보다 공동체의 화평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전임자이건 후임자이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며 교인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성은 목사(남서울교회)는 ‘바람직한 은퇴문화 정립’을 위해 “느보산에서 모세가 40년간의 여정을 끝내고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리더십을 전수하는 장면은 목회의 은퇴와 지도력이 어떻게 연속적으로 계승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전통”이라고 전했다.

     

    이어 “마치 가족이 서로 헤어질 수 없는 것처럼 원로목사와 담임목사 사이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줄 믿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한 길을 가야한다.”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위해 세우신 주님의 교회 속에서 십자가의 사랑을 교인들에게 강론하기 전에 교인들이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담임과 원로 목사가 서로 주님의 은혜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부터 세상과 다른 하나님의 나라의 질서가 세워질 것”이라고 피력했다.

     

    *‘원로목사’는 한 교회에서 20년 이상을 계속 시무하던 목사가 시무를 사면할 때 교회가 그 명예를 보존하기 위해 원로목사로 추대된 목사를 말한다. 원로목사는 공동의회에서 투표하여 노회의 허락을 받아야하고 그 예우는 교회의 형편에 따른다.(예장통합 헌법 제2편 정치 제27조 7항 참조)

     

    윤지숙  ⓒ 뉴스파워

    가져온 곳: USA 아멘넷

    신년 말 시리즈 ③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지 말자

    지난 해 10월, 이철호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성회가 "입술의 열매로 복과 행복을 누리고 삽시다(잠언 18:20-21)"라는 주제로 뉴욕과 뉴저지에서 열렸다. 10월 2일부터 3일간은 뉴저지 필그림교회에서, 16일부터 3일간은 뉴욕만나교회에 열렸다. 강사 이철호 목사는 예장 합신 총회장을 역임했으며, 강성장로교회 담임목사로 33년동안 목회를 하고 있다.

    이철호 목사는 성회를 통해 저주 받는 말, 축복을 받는 말, 행복을 주는 말, 불행을 주는 말에 대해 설교하며, 신앙생활을 할때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선포해 나갔다. 이 목사는 성경적인 근거와 함께 자신의 경험을 숨김없이 나누어 큰 도전을 주었다. 이 목사는 우리들은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하는데 ①판단하는 말 ②비방(비판)하는 말 ③대적하는(거스리는) 말 ④원망(불평)하는 말 등이 있다고 전했다. 신년에 사용하리라고 저장해 놓은 파일을 통해 4번에 걸쳐 신년 시리즈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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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교회 성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이철호 목사

    교회 지도자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교회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신본주의


    민수기 16:1-3은 고라 이야기이다. 고라는 250명의 장로들을 규합해서 당을 지어 모세에 대적한다. 자신들도 같은 제사장 지파인데 왜 모세와 아론이 마음대로 하는가. 우리 의견도 반영하라는 이야기이다.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이만큼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위해 세력을 규합해서 모세앞에 나왔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사건을 놓고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민수기 16:11)"라며 "거스르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신다. 그리고 이들을 멸하셨다.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이다. 소수보다는 다수, 다수보다는 진리이다. 교회는 100명 가운데 99명이 이렇게 하자고 해서 하면 안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수결 원칙에 의한다. 그러나 교회는 99명이 이렇게 하자고 해도 한 명이라도 진리가 아니라면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러니 항상 성경 말씀에 맞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다수결로 하면 왜 문제인가. 다수가 진리편에 선 역사가 별로 없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것이 쉬운가 아니면 불순종하기가 쉬운가. 불순종은 하지말래도 자연스럽게 한다. 그런데 순종하려면 기를 쓰고 해야 한 번 순종할까 말까 한다.

    그만큼 우리는 타락한 인간이기에 구조가 비뚤어져 있다. 우리는 이미 부패한 인생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진리의 길은 좁은 길이고 좁은 길은 찾는 자가 적다고 했다. 기독교 역사상 다수가 진리편에 서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다수결로 하면 교회는 타락한다. 기독교 역사상 항상 소수가 진리를 선택했다. 고라의 사상은 다수결로 하자는 것이다.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셨고, 그것에 순종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고라는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의견이라며 이를 반영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타락이다. 이것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표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나온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너와 너의 무리가 다 모여서 여호와를 거스르는도다 아론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너희가 그를 원망하느냐(민수기 16:11)" 그러면서 결국 모세를 대적했는데, 여호와를 거스르다고 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우리 의견대로 하자고 나오는 것이 오늘날 고라이다. 오늘날도 당을 짓는다. 자신들의 의견대로 교회가 가도록 하자고 한다. 그것이 바른 길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를 거스리는 자들은 엎으신다. "주께서 주의 큰 위엄으로 주를 거스르는 자를 엎으시니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니 그 진노가 그들을 지푸라기 같이 사르니이다(출애굽기 15:7)" 그리고 진노를 하신다고 했는데, 무서운 이야기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40-50년해도 하나님의 축복에서 벗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진정한 교회의 개혁은 무엇인가?
    어떤 개혁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가?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직접 나서지 말라는 것이다. 저는 4대째 믿으면서 문제있는 목사를 장로들이 쫓아내는 것을 보았고, 문제있는 장로를 젊은 집사들과 청년들이 쫓아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일에 앞장선 사람들이 잘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다 똑 같은 이야기를 했다. 교회를 위해서, 개혁을 위해서, 교회를 정화시키기 위해서 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로마서2:8-9)" 그래서 신약에서도 당을 짓지 말라고 하신다. 지기 의견을 관철하기 위해 당을 짓지 말라고 하신다. 당을 짓는 사람에게 진노와 분노, 환난과 곤고가 있다고 했다. 장로교이면 목사와 장로가 당회를 구성한다. 당회는 어떤 주제를 놓고 당회원들의 생각을 묻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계속 묻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노력해야 하고, 드러나면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결과는 이것이라며 동조하며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 당회이다. 그래서 정말 당회는 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 기도를 안하고 당회하면 꼭 시험에 들고 마귀에게 지게 되어 있다.

    기도를 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주장하다 관철이 안되면 사람들을 규합해서 당을 짓는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했다. 장로님들이 세워놓았다면 당회를 존중하라. 그리고 당회는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도록 결정해야 하고 성도들은 그것에 순종하라는 것이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3:17)"

    특히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했다. 그리고 인도하는 자들이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목사와 장로가 여러분때문에 근심으로 목회를 하면 여러분에게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지도자를 위해 기도할때 함께해서 감사하다는 기도가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익이 없다. 하나님이 세우셨지만 여러분들이 장로를 세웠다. 인도자들이 즐거움으로 일하도록 여러분들이 도와주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대적하지 말라고 한다. 성경은 말다툼을 하지말라고 한다. 교회에서 분쟁이 생기면 유익이 하나도 없다. 좀 바보가 되더라도 말다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자기주장을 관철하겠다고 말다툼이 일어나면 그것을 보고 초신자들은 시험들고 실족하고 교회밖에서 안온다. 전도문이 막힌다. 그런 자리에 가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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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교회 성가대

    목사와 장로가 타락할 수 있다.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


    "왕이 좌우의 호위병에게 이르되 돌아가서 여호와의 제사장들을 죽이라 그들도 다윗과 합력하였고 또 그들이 다윗이 도망한 것을 알고도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나 왕의 신하들이 손을 들어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한지라(사무엘상 22:17)" 다윗을 도운 제사장들을 사울이 죽이려고 하자 신하들이 안나선다. 여호와의 제사장들 죽이기를 싫어했다고 나온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 왕의 명령을 어기는 것 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는 것이다. 안나서니 이방인이 나서 다 죽인다.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 24:5-6)" 동굴에서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셨다고 말한다. 악령이 든 왕이라도 하나님이 세우셨다면 자신이 손을 댈 수 없다며 말씀을 붙잡는다. 신앙은 다른 것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은 성경적인 신앙이 아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삼상 26:9-10)" 이번에는 완전히 포위가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사울왕의 군대를 다 잠들게 하셨다. 다윗의 부하들은 하나님께서 죽이라는 뜻이라고 해석하나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자는 타락한 왕이라도 내가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했다. 죽여도 망하게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이 타락할 수 있다. 목사와 장로가 타락할 수 있다. 그래도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이다.

    교회를 개혁한다고 나선다면 월권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것


    그러면 이것이 기름부은 왕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니다. 성경은 악한 부자 나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나발은 심보가 비뚤어진 부자이다. 나발이 다윗 부하들을 짐승 취급을 하고 쫓아냈다. 그 소식을 들은 다윗이 그를 죽이려고 쫓아갔으나 나발의 부인이 음식을 준비하고 "왕이 될 사람이 악한 사람의 피를 뭍히면 되겠는가"라고 만류한다. 다윗은 그녀를 지혜롭다고 칭찬하며 직접 복수하는 것을 막았다고 말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삼상 25:33)" 결국 하나님이 치신다.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삼상 25:38)" 인생의 재판장은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이 교회를 개혁한다고 나서면 그것은 이미 월권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정하는 것이고, 오늘도 심판자로 여러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성경은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나발이 죽었다 함을 다윗이 듣고 이르되 나발에게 당한 나의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나발의 악행을 그의 머리에 돌리셨도다 하니라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말하게 하매(삼상 25:39)"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요한 고백을 한다.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했다. 다윗은 친히 복수하는 것을 '악한 일'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자기에게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을 직접 복수하고 원수를 갚는 것이 악한 일이라고 한 것이다. 베드로전서 3:9에도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앞장서 문제있는 교회 지도자를 쫓아내고
    버려질 부지깽이로 사용되지 말라


    제가 이 부분을 교회에서 자라면서 많이 보았다. 어느 교회 장로의 처신에 대한 상담을 받았다. 교회 담임목사가 심각한 사고를 친 것을 장로들이 알고 당회 장로들이 회의를 해서 사건이 드러나면 전도의 문도 막히기에 조용히 사고친 목사님을 다른 목회지로 가게하고 새로운 분을 담임목사로 모시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장로에게 "똥친 막대기 노릇하지 말라"고 말해 주었다. 시골에서 해가 넘어가면 엄마가 먼저 들어와 마당에 아이들과 동물들이 싼 똥을 치우는데 사용하는 막대기는 다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똥을 버리면서 같이 버린다.

    구약에는 '부지깽이' 또는 '몽둥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스라엘이 타락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때리시는데 부지깽이로 이방나라를 들어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매를 들어 회개하게 하시고, 몽둥이와 부지깽이로 사용했던 이방민족을 멸망을 시키신다. 사용하고 벌하시는 것이다. 성경은 그들의 죄악이 차고 넘쳤다고 한다. 그 민족의 죄악이 차고 넘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시킬 민족 하나를 들어 사용하시고는 버리시는 것이다. 부지깽이는 아궁이 불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것인데 사용하다 보면 점점 불이 붙어 짧아져 손이 뜨거우면 아궁이에 던져버린다. 쓰고 버려지는 것이 부지깽이이다. 그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분명히 잘못했지만 여러분들이 잘못한 것을 치우는 도구가 되면 안된다.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때는 버릴 사람을 한 번 들여 사용하시는 것이다. 가롯 유다는 제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마귀가 들어가니 안좋은 역할을 맡았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기를 축복한다. 오늘도 사탄은 교회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역사하고 있다. 그때 사탄의 도구가 되면 안된다. 깨어서 기도하기를 축복한다.

    아버지의 간증이 주는 교훈
    내가 가장 많이 교회를 생각한다고?


    아버지는 어느 교회에서 초대 장로가 되고 같은 교회에서 장로로 은퇴하셨다. 어느 날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 초대 장로가 되면서 앞으로 3년은 당회에 참여해서 듣고 배우겠다고 기도했다. 당시 담임목사는 아버지보다 10살이 젊었다. 당회에서 목사가 안건을 내놓고 두 장로의 생각을 물어보면, 아버지는 목사님 생각을 먼저 물어보고 목사님 생각대로 하면 좋겠다는 자세였기에 항상 목사님 생각대로 일이 진행됐다. 속으로는 저렇게 목사님 생각대로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텐데 걱정도 되었지만 3년간은 말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을 안했다. 아버지가 예상했던 문제가 생길때도 있었다. 그런데 일이 진행될때 가만히 보니 아버지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되어가는 것을 체험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아버지는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하니 하루종일 얼마나 교회생각과 교인생각을 하겠는가. 사업과 직장은 주님이 맡긴 사명으로 그것에 신경이 많이 쓰는 것이 정상이다. 장로가 하루종일 자기의 직업에는 신경을 안쓰고 교회를 걱정하고 하나님 말씀을 묵상한다면 그것은 안된다. 하루종일 교회와 말씀을 생각하는 사람은 빨리 신학교가서 목사하실 분이다. 장로는 하나님이 주신 직업에 충실해야 하고, 하루에 한두시간 교인과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반면 목사는 생활이 계속 교회를 생각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교회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목사와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하는 장로중 누가 하나님의 뜻을 더깊이 깨닫겠는가. 아버지가 경험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보다 젊은 목사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하고 그것이 되어지는 것이 반복되게 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다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목사가 자신보다 더 훨씬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자신이 못보는 하나님의 뜻을 보았다는 것을 획신하고, 3년이 아니라 은퇴까지 아니라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날 울었는데 그 다음 말 때문에 울었다. 평생 아니라고 하지 않은 이유가 또 있었다. 인생은 심은대로 거두는데, 내가 목사에게 아니요 하면 내 자녀들 인생에서 아니요가 나올까 싶어서 그렀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울었다. 우리 교회 당회에는 장로 21분이 있는데 당회에서 아니요가 없었다. 저는 제가 목회를 잘해서 그런줄 알았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눈물이 흘렀다. 우리 아버지가 심었구나.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니라고 할 것 없다. 내가 정말 담임목사보다 더 교회를 깊이 생각하고 있고 더 많은 시간을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있다면 아니라고 하라. 그러나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사람이라면 성령은 하나님과 통하게 되어 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것처럼 교회가 위험한 것이 없다. 묵상하고 기도한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을 서로 고민하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당회이고 제직회이다. 그렇게 가기를 축복한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反이민 행정명령에 중동권 美 선교사들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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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퍼거슨 워싱턴 주 검찰총장이 시애틀 연방법원의 트럼프 대통령 행정명령 중단 결정에 환영하고 있다. 

       

      미국 反이민 행정명령이 기독교 선교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정명령 대상국인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 이슬람권 7개 국가가 속해 있는 중동 지역 민심이 악화되면서 현지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들의 신변에 적색경보가 켜진 상태다. 

       

      중동 사람들은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전체 무슬림 혐오로 받아들여 미국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백인 선교사들은 아이에스(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에게 직접적인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미국 선교단체들은 소속 선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람 많은 곳에 다니지 말 것‘과, ’눈에 띄는 행동을 자제할 것‘ 등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뜨거운 트럼프 대통령의 反이민 행정명령은 최근 시애틀 연방 지방법원이 잠정 중단 결정을 내려,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백악관은 대법원에 상고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명령 작성을 포함한 다른 옵션을 갖고 있다고 말한 만큼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이민 규제를 지속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연희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최홍준 목사 "구별되어야 하는 목사의 위치와 권위"

       

      17회 목양장로 사역 컨퍼런스가 10월 1일부터 2일간 뉴저지 한소망교회에서 열렸습니다. 목양장로란 무엇입니까? "목사와 장로의 행복한 동행"이라는 모토에서 보듯이 권위적인 장로의 형태가 아니라 장로가 목회자와 같이 목양사역을 나누어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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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양장로 전도자 최홍준 목사

      컨퍼런스의 마지막 강의는 목양장로를 전파하고 있는 최홍준 목사가 했는데 그 강의제목이 "구별되어야 하는 목사의 위치와 권위"이었습니다. 그 강의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양장로의 특성상 마지막에 그 강의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컨퍼런스를 마치며 소감을 밝힌 한 장로의 발언에서 그것이 나타났습니다. 그 장로는 강의를 들으며 장로가 목양사역을 하니 장로와 목사가 같은 계급이구나 하고 상당히 고무가 되었는데, 마지막 강의에서 목사와 장로의 틀린 점에 대한 내용을 들으니 혼돈이 된다는 발언이었습니다. 물론 농담도 포함된 발언이었지만, 목양장로란 장로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지 결코 또 다른 계급은 아닙니다.

      강의는 흥미로웠습니다. 강의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 보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분쟁의 이유중 특히 목사에게 분쟁의 책임이 클때 어떻게 장로와 평신도들이 성경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강의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오늘날 교회분쟁의 90%는 목사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교회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두 말씀은 상반된 내용입니다. 하지만 수없이 일어나는 교회분쟁속에서도 어떻게하든지 바른 방향으로 성경적으로 교회를 끌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목사가 잘못해서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홍준 목사는 멘토인 고 옥한흠 목사가 평신도에 대한 책을 인용하여 "교역자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해서 평신도가 교역자의 이런 행동때문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도 그것이 교직제도로 걸고 하는 것까지 발전한다면 그들의 행동 역시 교권주의와 다를바 없고 최고의 법전인 성경앞에서 절대로 성숙할수 없을 것"이라는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또 목사직은 엄연히 그리스도께서 그의 교회에 허락하신 직분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행동을 함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으며,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사람'이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사랑의교회 초기 부교역자로 사역하면서 한국교회의 투명성과 정직의 상징같은 옥한흠 목사와의 일화를 전했습니다.

      옥한흠 목사 같은 분도 부부싸움을 하여 갑자기 수요예배에 오지 않아 최홍준 목사가 대신 설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최 목사는 옥한흠 목사는 참 훌륭한 분이었지만 예수님만이 온전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기에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잘못을 한 목사는 누가 책벌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들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그것은 장로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최 목사는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구분하여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영역임을 알아야 한다고 전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교회들의 분쟁은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인듯이 인위적인 행동을 하는 목사, 그리고 자신이 재판관이 되어 목사의 잘못을 확대 생산하는 장로들을 일컫는 말일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현실적으로 물론 목사의 잘못을 있어도 그와 같은 문제는 노회 총회에서 제도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에 대해 당신의 자녀에게 조언한 말씀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목사의 불의한 것을 본다면 권위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도저히 교회가 시끄럽고 문제가 있어 은혜가 안되어서 견딜수 없다면 조용히 교회를 옮길지라도 다투고 싸우지말라고 했습니다.

      최홍준 목사는 강의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최 목사가 청소년 때 부흥회에 참석하면 부흥사는 바뀌지만 공통점은 주님의 종을 섬기면 복을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어서 늘상 담임목사님과 짜고치는 고스톱같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최 목사는 내가 주님을 만나고 난후 성경을 보면서 그러한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았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시니컬한 평신도는 최홍준 목사도 다른 목사들과 같이 짜고 고스톱을 친다고 생각할수 있을 것입니다. 최홍준 목사는 이 강의에서는 그렇게 접근할수 밖에 없었다고 믿습니다. 만약 목사를 대상으로 하는 목회자 세미나였다면 주님처럼 후배 목회자들을 강하게 탓했을 것입니다. 그러한 어려운 점이 있어서인지 최홍준 목사는 강의를 시작하며 이 강의는 조심스럽게 하는 강의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목사의 독특한 위치에 대한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한 강의요약입니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정립

      주님의 몸된 교회, 주님의 피값으로 산 교회가 영적질서가 흩어지면 사탄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린다. 한 평생 목회를 하며 그동안의 경험한 바에 의하면 영적 질서만큼은 절대로 바로 세워져야 한다. 이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으며 종교개혁자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

      성경은 교직은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직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칼빈은 "성직의 중요성은 교인들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중요한 열쇠로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로 주님 자신이 현림하시는 제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성직자체를 반대하는 행위는 용납할수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교역자에게 평신도와 다른 귄위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루터는 "목사와 다른 신자사이에 어떤 차이 특히 신분상의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특별한 명령으로 목사의 직분은 다른 것과 확실히 구별된 직분이다"고 말했다, 칼빈도 "목사는 단순히 교회에 고용된 직원처럼 취급을 당해서는 안될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사람들의 변덕에 이리 저리 끌려 다니지 않는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을 받아야 할것이다"라며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이 세운 종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로마서 13:1-2)"

      목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반응으로 장로들이 지나친 반응을 벌임으로 해서 교회에 혼란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그 책임은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들도 져야 한다.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현재를 중요시 하신다. 바로 알고 바로 하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세운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이런 안목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함으로 하나님이 분노하심을 많이 볼 수 있다.

      민수기 12장에는 모세가 이방 여자인 구스 여인을 취하자 이를 비방하는 미리암에게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내용이 나온다. 하나님은 모세를 지도자 세우시고 권위가 모세에 있다고 확실히 말씀하시고 진노하셨다. 왜 이런 사건이 기록되어서 오늘날 읽혀지는가. 하나님이 주신 권위에 대해 존중하라는 것이다. 그 권위를 존중하지 않고 도전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용납하지 않으신다.

      사무엘상 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구원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여기에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 하나님이 세운 권위에 대해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을 하나님에 대해 경멸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히브리서 13: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인도하는 자에게 순종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손해본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운 주의 종들이 성도들을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가. 그러니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다. 유익이 없다는 것은 손해본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특별히 관리하고 있는 대상, 그래서 영적인 질서를 잡기위함이 아닌가 생각한다.

      목회자를 귀히 여겨라

      목회자를 귀히 여기라고 하면 베드로전서 2:9(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을 들어 반박할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셨을때 지성소에 휘장이 찢기면서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았던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특권을 가짐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런데 여기에 무슨 차별이 있는가 반문한다. 할아버지가 예수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손자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한다면 이들은 다 같은가. 가정에는 질서가 있다. 우리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을 하나님이 용납하지 않으신다. 영적질서가 교회에 섰을때 그 교회에 어둠의 세력이 침범할수 없다.

      나이가 어린 담임목사가 부임하는 경우도 있다. 40대 초반 부임했던 교회에서 13-15살 나이가 많은 장로님이 "목사님은 제 동생과 나이가 같습니다"라고 기를 죽였다. 그런데 그 연소함을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바울이 디모데에게 말했듯이 하나님이 주신 권위가 그 교회 질서를 바로 세운다. 영적질서가 잡혀있지 못한 교회는 메말라간다. 성경에 그런 극단적인 이야기가 많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처참하게 가난한 사르밧 과부의 집으로 가게 된다. 그 과부는 마지막 남은 음식을 엘리아에게 먼저 줌으로서 기적을 보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순종이다. 왜 이런 만화같은 기사가 성경에 적혀있는가. 만약 하나님의 사자에 대한 각별한 예우가 기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한다면 비성경적이다.

      한평생 목회하면서 훌륭한 목사를 많이 만났지만 한 분도 온전한 분을 만나지 못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온전한 분'은 없다. 온전하지 못하다 해도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셨다. 하나님을 보고 그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다윗과 사울의 관계이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사울을 제거할 절호의 기회를 잡지만 사울을 죽이지 않았다. 다윗이 귀를 기울인 것은 주위의 여론이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에 말씀이었다.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우심을 받는 자'라는게 이유였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오직 칭함을 하셨다.

      하나님의 영역과 우리의 영역이 다르다. 하나님의 영역은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의 영역은 사랑하고 기도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그럴때 하나님이 대신해 주신다. 이와같은 영역을 잘지킨 사람이 요셉이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가도 형이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형들은 요셉이 복수할까 두려워 요셉을 찾아가 엎드렸을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했다.

      요셉은 하나님의 역할과 인간의 역할을 분명히 알았다. 심판하고 복수하고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고, 사랑하고 기도하는 것만 우리의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나의 아버지요, 내 인생을 주관하시고 나와 함께 하셔서 축복을 하신다고 믿는다면 그분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을 사는데 우리는 믿음으로 산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말씀에 순종하며 살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교회안에 영적 질서를 세우는데 장로와 목사가 중심을 잡고 교회를 건강하게 영적질서를 잡아갈때 성령님이 함께 하실 것이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Clergy Tax

        '주머니의 돈이 쌈지돈'이란 의미는 쌈지에 든 돈이나 주머니에 있는 돈이나 다 한가지란 뜻으로 그 돈이 그 돈이라서 구별할 필요가 없는 즉 공동의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머니의 돈이 쌈지돈'이라는 말을 개인의 비상금과 같은 뜻으로 알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큰 교회 목사님들은 교회의 헌금을 마치 하나님이 목사에게 비상금으로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목사는 헌금으로 '황제 골프'를 쳤다고 자랑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오늘은 Clergy Tax 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국인들은 법 앞에 기본적으로 모두 평등합니다. 세금내는데 목사나 장로나 집사나 구별하지 않고 기본적으로 똑 같이 IRS에서 개인 소득세에 대한 세금을 최소한 거두어 갑니다.

        개인 소득세가 $118,000 미만이면 연방 세금 15% 정도, 주 정부 세금 5% 정도, 그리고 노후 보장제도로 Social Security and Medicare Tax 가 있습니다. Tax 법은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좀 복잡합니다.

        FICA는 고용주가 7.65% 를 부담하고, 고용인이 7.65%를 개인의 소득에서 공제하여 IRS에 15.3%를 세금으로 내는 것입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반반으로 부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들은 'dual status' 로 교회의 장이면서 고용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목사님들은 Self-employment Tax 를 내야합니다. 이것이 Clergy Tax 인데 FICA 와 비교하여 SECA 라 말합니다. 목사님들은 고용주이면서 고용인이기 때문에 15.3%를 IRS에서 세금으로 징수합니다.

        기업체의 사장은 영업 수입에서 지불하면 되지만 , 교회는 사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결국은 교회가 헌금 수입에서 목사님들에게 15.3%를 Benefit 으로 지불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교회가 목사님들을 청빙할 때 목사님들의 Salary 와 Benefit 을 명확히 약정해 드려야 합니다.

        많은 교회가 목사님들의 은사비, 활동비, 사택비를 책정하여 은사비만 소득으로 생각하여 연방세금, 주정부 세금, CECA 나 FICA 15.3% 를 세금으로 내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목사님들의 SECA 는 '은사비 + 사택비' 의 15.3% 를 IRS 에 내야합니다.

        또한 많은 교회가 목사님들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지출내역도 없이 고정적인 지급을 하면서 세금을 안내는데 불법입니다. 더 전문적인 내용은 회계사와 꼭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나가면서 결론은 교회 Tax 나 한국정치 문제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 정치는 문재인이 문제입니다. 대선주자 문재인씨가 쓴 안경은 한국산이 아니라 덴마크 린드버그 사의 명품안경입니다. 최소 아주 제일 싼게 60만원 이상입니다. 그래봤자 정치인의 색안경일 뿐이지 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국가발전의 기회를 매처럼 민첩하게 낚아채는 안목과 분열된 사회를 하나로 봉합하는 혜안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http://www.freechurchaccounting.com/clergytax.html

        출처: USA 아멘넷/Clergy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5)


        마태복음 15장의 열처녀 비유는

        휴거를 기다렸던 신부들과

        그 중의 일부가 혼인잔치에 성공적으로 들어간

        신부들에 관한 대표적인 이야기다.


        이 비유에서 드러난 핵심 사안은,

        첫째, 신랑이 더디 왔다는 것이다.

        둘째, 더디 오므로 열명의 처녀 모두가 잠이 들었고,

        셋째, 그 와중에 슬기로운 처녀들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으며,

        넷째, 마침내 신랑이 왔다는 것이다.




        신랑은 왜 더디 왔을까?


        준비하는 천사들이 농땡이를 부려서일까?

        아니면 준비가 미처 덜된 예비신부가

        더디 와달라고 센 기도를 한 이유때문일까?


        말씀에는 짝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벧후 3장 9절에 이에 대한 답이 성경에 있다.


        어떤 이들은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오래 참으사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단 더디 오시는 이유를

        모두 회개하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에 두도록 하자.


        지금 상황은 더디 오는 걸까? 속히 오는 걸까?


        준비된 신부들에게는 더디 오는 것이겠지만

        준비가 덜된 신부들은 속히 오는 상황일 것이다.



        준비한 열 명의 처녀들이 모두 잠이 들었다.


        어떻게 슬기로운 처녀들까지 잠을 잘 수 있을까?

        그들은 잠을 자고도 어떻게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잠을 잤다는 것은 깨어 있다는 것과 반대상황이다.


        아무리 건강체질이라 하더라도

        1년 내내 24시간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주님을 기다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잠을 잤다는 것도 영적인 의미로

        10처녀 모두 깨어 있지 못하고 영적으로 잠을 잤다는 의미라면,

        10처녀 모두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잠을 잤다는 의미는

        늦은 시간까지 신랑이 오지 않아서

        육신적으로 잠을 잤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일상의 삶에서

        주님만 기다리는 상황을 요청받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상의 삶을 소홀히하고

        예상한 시간에 집중했고 예상한 시간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육신적인 일상의 삶과

        깨어 있는 영적인 삶의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슬기로운 자들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등불을 들고 나간 처녀는 10명이었지만,

        그 중 5명은 그 날이 지연되자 등불이 꺼져갔고,

        5명의 등불은 신랑이 오는 시간까지 꺼지지 않았다.


        미련한 자와 슬기로운 자의 차이점은

        여기서 확연히 드러난다.


        포기하는 미련한 자들과 일편단심 슬기로운 신부들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한다면 일편단심이 아니다.


        한결같이 주를 신뢰하는 까닭에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켜주신다(사 26:3).

        그들의 태도는 한결같고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하나님을 굳게 굳게 의지한다.

        바르게 사는 이들의 길을 평탄하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닦아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달하거나 조급하거나 서두르지 않는다.

        주께서 결정하시는 길을 느긋하게 걸어 간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결정하시든지 그 분을 신뢰하며 걸어간다.



        결말은 마침내 신랑이 왔다는 것이다.


        신랑을 기다린 이 스토리에서

        만약 신랑이 끝까지 오지 않았다면,

        혼인잔치 이야기는 실패한 신부들의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딘 처녀들과

        도중에 포기한 처녀들의 성공담과 실패담이 교훈을 주는 것이다.


        비록 더디 올지라도 버텨라.

        포기하지 말아라.

        끝까지 신뢰하라.

        신랑은 반드시 신부들이 기다리는 상황에서

        약속대로 오신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소망이고 결말이다.



        글쓴이: 카이로스 / ars

        박성일 목사 “이 시대의 종교개혁 3가지 포커스”

        한편 미주한인예수교장로회(KAPC)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이 시대의 종교개혁"이라는 주제의 컨퍼런스를 4월 6일부터 2일간 필라 기쁨의교회(박성일 목사)에서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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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퍼런스 준비위원장 박성일 목사는 1.5세 목회자로 웨스트민스터신학교와 웨스트민스터신학교 박사과정(조직신학)을 마치고 1998년 기쁨의 교회를 개척했다. 또 2003년 필라에서 웨스터민스터 동문인 박성일 김한요 송영재 정대성 목사 등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근거하여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개혁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목사들이 주축이 된 신앙운동인 '열린 말씀 컨퍼런스'를 시작했다.

         

        아멘넷은 박성일 목사와 종교개혁 500주년을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Q.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여러가지 행사가 열리는 것을 보면서 10여년전 평양대부흥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부흥을 기대하며 한국과 미주한인 교계에서 열렸던 여러 가지 행사가 떠올랐습니다. 전시성 행사는 피해야겠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인교계와 교회의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종교개혁은 목숨을 걸고 복음과 교회를 지켜낸 역사 입니다. 이미 루터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위클리프와 후스 같은 위대한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바친 개혁의 첫 단추를 끼웠습니다. 우리가 종교개혁의 후예들이라면, 순수한 복음과 거룩하고 순전한 교회 공동체를 지키고 전파하기 위하여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민족 교회의 문제는 부흥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 물량주의, 성공주의, 인물중심주의로 인하여 계속 본질로 부터 이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했던 중요한 것은 “근원으로 돌아가자”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도 “성경적 기독교”가 뭔지를 이해하고 그것으로 방향을 정하고 가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종교개혁 전야인 500년 전과 오늘날의 상황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어떻게 이 시대를 보고 있습니까?

         

        종교개혁의 전야는 무엇보다도 교권이 타락하고 교황들이 정치적인 싸움에 이기고 업적을 세우기 위하여 자금이 필요했고 구원을 돈으로 바꿔먹는 시대였습니다. 교인들은 무지한 자리에서 스스로 나오지 못하는 정책 아래에 머물러 있어야 했고, 신학자들은 교권의 도움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양심선언을 할 수 없었던 시대입니다. 오늘 한민족 개신교회의 현주소가 어딘가 생각해 보면, 이제는 옛 모습을 벗고 새로운 길로 나가야 하겠다는 열망이 끓어 넘치려는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교인들은 다 아는데, 목회자들 만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도적 교회를 위하여 존재하는 교인이나 교리가 아니고, 목사에게 충성하여 교회에서 보직을 얻고 자리매김을 하는 정도의 사고에 빠져 있는 교인들이 아니어야 할 텐데, 아직도 목회자들이 자기가 주도하는 제도적 교회가 견고해지고 확장하면 성공했다고 착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강력한 복음의 회복과 교회의 갱신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Q. 주제가 “이 시대의 종교개혁”입니다. 이 시대에 종교개혁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면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몇 가지 다시 정리하자면 첫째 신학적/교리적 정체성의 확립, 둘째 목회자 및 교회의 윤리성 회복, 특히 돈에 대한 투명성이 요구되지 않을까 하고, 셋째 제도적이고 인물 중심적인 권위주의에서 오직 성경의 권위 앞에 모두가 순복하는 정상적인 질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아멘넷은 “한인교회는 개혁되어야 하지만 그 누구부터가 아니라 나부터 개혁되어야 한다”라는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 책임을 돌릴 것이 아니라 오늘날 위상이 추락된 교회문제는 목회자와 성도가 같이 책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개혁의 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목회자가 교회에 대한 공공성을 회복하고, 오직 주인 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신앙양심이 비추임을 받고, 성경말씀을 잘 해석하고 본질대로 전달하여 성경적으로 건강하고 건전한 교회와 성도들이 세워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Q. 미주한인교회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오는 영적인 도전과 함께 이민유입 금지라는 물리적인 도전을 함께 받고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주한인교회들이 진정 변화되고 갱신되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딴 것 보다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의 방향이 자기우선주의의 타당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낙태나 동성애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민감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배타성과 이기주의적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죄악된 것인지 깊이 성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돈이 우선되는 생각도 심히 우려가 됩니다. “먹고사는 것이 문제다”라고 매번 외치던 한국의 대통령도 결국은 정신세계가 피폐해 있음을 여실 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시대의 교회가 한국이던 미국이던 하나님나라의 가치에 대해서 선포하고 모든 교우들이 그 정신으로 무장하고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루터란 청년들의 외침 "교회가 세상의 대안 되자"

        루터가 로마가톨릭의 부패상을 고발하는 95개 반박문을 내걸고 신앙인의 갱신을 촉구한 지 올해로 500년이다. 그런 루터의 정신을 이어 가는 루터교회가 전세계에 퍼져 있다. 한국에도 기독교한국루터회란 이름으로 교단이 존재하고 50여개의 교회가 소속돼 있다. 

         

        작지만 '오직 믿음으로' 복음의 한 획을 담당하고 있는 이곳에 루터처럼 한국교회 갱신을 열망하는 열정의 청년들이 있다. 이런 열망은 그들을 종교개혁의 발상지 독일 비텐베르크로 이끌었고, 한국교회 개혁과제 10가지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동행한 청년들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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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터의 정신을 잇는 루터교인을 '루터란'이라 부른다. 루터란 청년 후예들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있는지 지난 25일 만나 들어봤다. (왼쪽 박영국, 오른쪽 이수산나 청년)ⓒ데일리굿뉴스 

         

        10박 11일 일정 속에서 느낀 루터의 마음

         

        31명의 청년들이 11일 일정으로 루터의 흔적을 더듬으며 숙고해낸 한국교회 개혁과제는 △십자가 부활 경험 △하나님 뜻 분별 △바른 교육 △물질 숭배 배척 등이었다. 

         

        이수산나(26·여·예수사랑교회)청년은 “1년간 준비하면서 루터의 생애를 밀접하게 느끼고 배웠다. 루터가 어떤 마음으로 종교개혁을 시작했는지 그리고 할 수밖에 없었던 절심함을 알게됐다”면서 “예수님과 하나님, 성도들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수산나 청년은 “그 사랑으로 독일어 성경을 번역했고, 영적으로 잠자던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며 깨어나는 귀한 경험을 했다”면서 “한국교회도 초심을 잃지 말고 성경을 가까이 하고 개인 신앙생활을 깊이 있게 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영국(25·남·평택제자들교회)청년에게는 일방적 회개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뻔뻔한 일인지 느낀 시간이었다.

         

        그는 “루터가 면죄부의 허상을 꼬집은 것은 철저한 회개를 위한 역설이었다. 말로만 ‘나는 구원 받았다’, ‘나는 죄씻음 받았다’ 하고는 말아버린다 "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통렬히 부르짖으며 자신을 내려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금 강요 문화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다. 박영국 청년은 “지금은 중세 가톨릭이 판매했던 것처럼 눈에 보이는 면죄부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자기만의 면죄부가 있는 것 같다"며 "고액의 헌금을 하면 그만큼 뭔가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 팽배한데, 적은 돈이어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신다는 점도 가르쳤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또한 헌금 문제를 지적하며 독일교회를 방문했을 때 겪은 일화를 들려줬다. 청년들이 현지 교회에서 헌금시간에 늘 했던 것처럼 지폐를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교회 목회자가 다가와 ‘하나님은 동전 소리를 더 좋아하신다’며 부담감을 내려놓게 했다는 것.

         

        박영국 청년은 “사실 충격이었다"며 "교회가 하나님은 돈의 크기보다 동전일지라도 기쁘고 신실하게 내는 헌금을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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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 앞에서 한국교회 10가지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루터교청년연합회 제공) 

         

        루터란 청년의 입장에서 본 한국교회 과제

         

        루터교는 한국에서는 작은 교단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세계 개신교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전세계 98개국 145개 교단이 존재하며, 약 8천만명의 교인이 있다. 국내에는 1958년 세워졌고 전국에 50여개 교회를 두고 있다. 청년들이 교단에 바라는 점은 뭘까 궁금했다.

         

        이수산나 청년은 “한국 루터교단이 다른 나라보다 역사가 짧고 교회와 교인수가 적은 게 사실지만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루터의 후예(루터란)로서 자부심을 갖고 조금더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고 전했다.

         

        박영국 청년은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한다”면서 “루터교회에서 모태신앙으로 자랐는데 루터의 만인제사장설은 많이 들어 알고 있지만, 종교개혁을 외쳐야 했던 심정, 발걸음 등 그의 정신에 대해서는 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럽의 루터교회를 방문했을 때 루터교회만의 아름답고 경건한 예배의식이 있음을 보고 감동했다"며 "한국교회에 우리만의 소중한 예식을 널리 널리 전파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루터교단에서 기획한 이번 독일 방문은 각 교회를 통해 청년들을 모집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처음엔 20명을 예상했지만 31명이 지원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교단에서 경비 50%를 지원했고, 오직 독일만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청년들은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함께 기도하고 묵상하고 서로 삶을 나누면서 달라졌다고 고백했다. 개혁과 갱신을 향한 루터의 뜨거운 심장소리를 들은 것이다. 청년들은 한국교회 개혁과제를 논의했고 10가지로 추려 500년전 루터가 대자보를 붙였던 비텐베르크 교회 앞에서 발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교회가 듣고 행하는 일이다.

         

        한연희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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