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그리기

 

목회 생활에 연륜이 더해질수록 말씀을 준비하고 전하기가 쉽지 않다. 이제는 전과 달리 각종 매체를 통해 설교가 얼마나 빈번히 유통되는지 설교자인 나 자신도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리고 설교의 텍스트가 성경이다 보니 이 설교가 저 설교 같고 이 말씀이 저 말씀과 같을 때도 적지 않고 예화 역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중복되기 십상이다.

그렇게 설교가 엇비슷하다보니 교회를 성장시키는 수단으로의 설교도 한 물 간듯하고 전통적 설교의 패턴에 인간적 메스를 가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언필칭 설교의 또 다른 해석이라든지 설교의 신출(神出)한 능력자나 귀몰(鬼沒)한 영력의 대가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상을 싸잡아 비난한다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어차피 기독교 진리의 본질이 성령의 역사에 있으니.

그러나 주님은 말세의 현상 중에 하나가 믿음의 내용과는 관계없는 믿음의 형식을 지적하셨고 여기저기서 예수가 나타나고 신비로운 도사들과 요란한 이단사설을 많이 보게 될 거라고 언급하셨다.

한마디로 영적 능력을 가장한 속빈강정들이 판을 친다는 예언이다. 말씀을 중심으로 한 순수한 복음 전파에 식상한 시대적 요청이 이런 증빙할 수 없는 능력을 횡행시키고 있다 하여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지나친 영성의 강조가 빚는 부작용이다. 특히 우리 한국 사람은 다분히 감정적이어서 밋밋한 설교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부흥회 강사도 웃기고 울려야 인기가 있고 간증도 막장 드라마 뺨칠 정도가 아니면 문안도 못 드린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옛날 얘기 중에 재미난 얘기가 있다. 제나라 왕이 유명 화공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그림이 제일 어려운가?” 화공이 대답했다. “인물화도 어렵고 개나 말도 어렵습니다.”  “그러면 무슨 그림이 제일 쉬운가?” 이 질문에 화공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일 쉬운 그림은 도깨비나 귀신을 그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굴은 모르는 이가 없고 개나 말 역시 사람이 그 구조를 잘 알뿐만 아니라 조석으로 보기 때문에 똑같이 그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귀신은 형체도 없고 뚜렷하게 본 사람도 없으므로 아무렇게나 그려도 사람들은 그것을 따지지 않고 믿습니다.”  

이 말에서 “귀매최이(鬼魅最易)”라는 말이 나왔다. 말씀을 전하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진리를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 보편적이고 평이하다 하여 지나친 조미료를 첨가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 나아가 사람을 일시적으로 흥분시키는 “능력” 쏠림 현상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양식도 일용할 양식이 구할 축복의 기본이며 요체이기 때문이다.  

부활의새빛교회 신석환목사

'동성애' 이슈에 대한 2017년 연합감리교 한인총회 입장

 

 

2017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가 4월 24일부터 27일까지 캘리포니아 주 LA 힐튼 공항호텔과 LA연합감리교회(이창민 목사)에서 열렸다. 연합감리교회 공보부에 따르면, 동성애자 감독에 대한 총회 사법위원회의 결정을 앞두고 인간의 성 이슈와 관련된 논의가 이번 한인총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인간의 성' 혹은 '동성애' 이슈에 대한 2017년 연합감리교 한인총회 입장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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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오전에 열린 주제토론 시간에는 5명의 패널 중심으로 교단에서 논의되는 인간의 성 이슈로 인한 앞으로의 전망과 개체교회의 이해와 상황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한인목회강화협의회 장학순 목사는 이슈에 관한 교단의 상황을 “어떠한 선택을 하든 난처한 지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딜레마”라고 설명하며, “장정의 입장유지”, 진보적 견해에서의 “변화”, 타협적 입장의 “잠정적 포용론”과 “지속적 포용론” 등의 예상할 수 있는 4가지 측면의 선택 가능성과 그에 따른 한인교회의 대안에 대해 참석자들에게 설명했다. 패널로 나온 홍삼열 목사, 임찬순 목사, 류재덕 목사, 박미숙 목사 등이 이 이슈에 대한 경험했던 각 개체교회들의 이해와 반응에 대해 발표했다.

 

한인총회가 끝난 다음 날 (28일) 오후 늦게 연합감리교회 사법위원회가 동성애자인 카렌 올리베토 감독선임은 위법이라는 판결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사법위원회의 제1341 판결문에 의하면 올리베토 감독은 행정절차나 사법절차가 종결될 때까지는 감독의 직위를 유지하게 된다. 4월 28일에 발표된 이 판결문에 따르면 “적법성에 관한 오랜 원칙하에,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교회법을 위반하거나, 무시, 혹은 무효화 할 수 없다. 지역총회나 해외지역총회의 어떠한 지역감독회가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동성애의 생활하는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위법이다”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한인총회 수요일(26일) 오전에는 갑자기 사법위원회의 결정이 벌써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총회장 김광태 목사가 그에 대한 논의를 위해 예정에 없던 특별세션을 소집하기도 했다. 사법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부분의 논의는 앞으로의 대응에 관한 논의보다는, 한인교회의 동성애에 대한 입장만을 확인하는 데에 집중했다. 일부 목회자들은 한인총회의 입장을 교단 전체에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고, 참석자들은 지난 2015년 발표된 한인총회 성명서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인간의 성' 혹은 '동성애' 이슈에 대한 2017년 연합감리교 한인총회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17년 LA에서 개최된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는 최근 교단일치의 뿌리를 흔드는 '인간의 성' 혹은 '동성애' 이슈와 관련하여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의 '언약'인 현 장정이 밝히고 있는 입장을 지지한다는 2015년 한인총회의 성명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에 의거하여 현재 교단 사법위원회(Judicial Council)에서 다루고 있는 Karen Oliveto (현 Mountain Sky Area 주재감독)의 감독선출이 장정의 규정을 위반하여 진행된 위법사안이라는 입장을 밝히는 바이다.”

 

2015년 한인총회 성명서는 교단의 동성애 이슈와 관련한 10가지 입장을 밝힌바 있다. 이번 논의에서는 또한 한인총회의 정체성에 대한 재정립이 건의되었고, 임원진은 중앙위원회 등을 통해 내년 한인총회 전까지 그에 관한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2015년 한인총회에 선언한 성명서는 아래와 같다.

 

연합감리교 한인총회 (The Korean Association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는 2016년도 교단총회 (General Conference)를 앞두고, 교단 분열의 조짐마저 불러 일으키는 현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연합감리교 장정은 전 세계 연합감리교회를 하나로 튼실하게 묶어주는 끈이며, 우리들의 살아 숨쉬는 역사요, 믿음의 고백이다. 현 장정은 분명한 언어로  동성애, 동성결혼 및 주례, 동성애자 목사안수를 금지하고 있지만, 최근들어  의도적으로 장정을 거부하는 하려는 도전이 있다. 이는 장정이 개인의 신학적 입장에 맞지 않으면, 거부해도 된다는 전례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장정을 각 나라 및 지역의 실정에 맞게 고치려는 움직임 역시 장정의 보편적 가치를 상대화 시키려는 시도이다. 만약 동성결혼 주례를 허용하고, 현직 목사가 동성애자 임을 공개적으로 표명해도 제재할 수 없도록 장정이 개정 된다면, 한인연합교회는 엄청난 갈등에 직면해 전도와 선교에 큰 어려움이 예견된다.   

 

이런 현 상황 속에 한인총회가 책임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인교회를 지키는 사명’ 이다.

 

한인총회는 더 이상 ‘동성애 이슈’에 관한 소모적인 찬/반 논쟁에 휘말리는 것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인교회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야 될 때 임을 자각한다. 이에 한인총회는 전체 연합감리교회와 교단에 진정한 웨슬리 정신의 회복을 촉구한다.

 

우리는 연합감리교회가 ‘성서적 경건’으로 세상을 변화 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교단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한인 연합감리교회로서 130년 전 조선을 찾아와 복음을 증거한 선교사들의 순교적 신앙의 뿌리가 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연합감리교회가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미 전역에서 120 여년 전부터 교회개척 및 지원에 선구자적 역할을 감당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우리는 동시에 성서의 권위와 성결을 기반으로 한 연합감리교의 근간을 뒤흔드는 모든 시도들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우리는 한인교회 미래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사안들에 대해서 조차 이민교회와 소수민족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적 차별’에 대해 가슴 아파하며,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에 연합감리교 한인총회는 아래와 같이 우리의 입장을 밝힌다.

 

우리는 내년 총회가 ‘본질에는 일치, 비본질에는 자유, 모든 것에 사랑으로’ 의 정신을 존중하길 바란다.

 

우리는 현 장정에 기록된 동성애, 동성결혼 및 주례, 동성애자 목사안수에 대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성서적 교회의 가르침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동성애자들이 가지는 아픔을 이해하며, 그들의 인권을 존중한다.

 

우리는 연합감리교 공동체 안에 ‘동성애 이슈’에 대한 분열된 의견이 있음을 이해한다. 동시에 이 사안이 교단 존재의 본질이 아닌, 비본질로 인식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우리는 전도와 선교에 걸림돌이 되는 비생산적인 찬/반 논쟁이 이제 중단 되길 바란다.

 

우리는 ‘동성애 이슈’로 혼돈과 갈등이 증폭되는 것을 바람직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동성애 이슈’로 인해 주님의 몸된 교회가 나누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교단 분열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다.

 

우리의 간절한 바램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교단총회가 ‘동성애 이슈’와 관련 첨예한 찬/반 논쟁을 불러올 결정을 내릴 경우, 그 선택을 각 연회에 맡기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동성애, 동성결혼 및 주례, 동성애자 목사안수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교회들에게 자유롭게 연회를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줄 것을 요청한다.

 

만약 한인교회가 미래를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경우, 한인 총회는  불가피하게 선교적 필요에 따라 교단 안에서 언어와 문화적인 특성을 인정받는 창의적인 구조를 마련하도록 한다.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총회장 이성현 목사

한인총회 미래 대책 위원회  위원장 김정호 목사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어떻게 하면 점도 흠도 없는 신부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람은 선하게 살기에는 세심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지만 악한 길은 내리막길과 같아서 별다른 노력없이도 목구멍으로 달콤하게 술술 내려간다.


원수 사탄마귀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에 조금의 틈도 주지 말아야 한다. 생각의 틈, 세속주의 틈, 탐욕이나 음란의 틈, 게임이나 영상의 틈, 내가 연약하게 반응하는 것들이다.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악한 것들은 비집고 쏟아져 들어온다. 그리고 점점 은밀하게 구멍을 넓혀 넘어뜨린다.


지금은 과연 노아의 때와 같다. 먹을 것, 마실 것, 즐길 것이 풍족하여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기도보다 세상의 것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기도로 깨어있는 신자의 경우, 성령께서는 민감하고 즉각적인 경고 싸인을 보내신다. 이때 즉시 순종하고 돌이켜야 하지만 경고를 자꾸 무시하면 무디어지고 미끄러진다.


성령님의 생명력이 충만하게 흘러 넘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만의 그리스도와 친밀감을 이루는 타이밍과 리듬의 비밀이 있어야 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나 도우심이 없다면 올바른 길을 걸어 갈 수 없을 것이다. 성령이 심령에 충만할수록 심령은 정결해지고 의의 열매는 무르익는다.


노아는 눈에 보이는 방주를 준비하였는데 120년간 인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령의 방주를 짓기 때문에 인내하기 더 어렵다. 불같은 의심과 무디어짐에 분투해야 한다.


신부들의 가는 길목에 이런 장애물과 덫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유혹한다. 우리는 직장을 다니고 일로 분주하게 살면서 베드로나 바울처럼 엄청난 사역을 이루어내기 어렵다.


그런데 엄청난 일을 성취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작은 일이라도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새벽기도나 특정한 사역을 한두번 하는 것은 큰 일은 아니지만 이 일을 10년 또는 수십년간 지속하여 축적된 결과는 엄청난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을 깨닫고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한 가지 목표 곧 예수만을 바라보는 삶을 통해 이루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늘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그 목표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가 기뻐하는 길을 믿음으로 걷다보면 어느새 열매를 맺는 것을 보게 된다.



출처: 카이로스 / ars

욥기를 보면

사탄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열리는 장자의 회의에 참석할 뿐 아니라,

사탄이 욥을 참소하자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셨다.

사람의 짧은 일생은 고난과 죄에 대한 유혹과 끊임없이 투쟁한다.


천국에 거주하는 천사들조차

루시퍼의 유혹이 허락되어 수많은 천사들이 타락하여 귀신의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유혹이 있을 가능성을 허락하셨는데,

에덴동산에 거주하던 최초의 부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 인성측면에서 사탄의 유혹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가장 센 유혹인 세가지 시험을 받으셨다.



그리스도인이 거듭났다고 하여 유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도 만약 지속적으로

죄의 유혹에 빠진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은 육체의 몸을 입고 살아가며

세상은 욕망과 정욕으로 끊임없이 신자를 유혹한다.


오스왈드 챔버스는 <죄와 구원>에서 사람이 세 가지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안일해지려는 경향과 옛품성으로 복귀해지려는 경향, 반란을 일으키려는 경향이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도덕적인 것은 도덕적이지 못한 것으로,

영적인 것은 영적이지 못한 것으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죄의 성향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스리시는 것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반란이다.

그 성향이 남아 있는 한 유혹은 내 안에서 죄의 습성을 찾아낸다.


그러나 주님께서 죄의 성향으로부터 나를 구원하시면

유혹은 내 안에서 죄의 습성을 찾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단지 가능성을 시험해 볼뿐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유혹 자체는 죄가 아니다.

사람은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오히려 유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유혹하는 자는

유혹당하는 자가 연약하게 반응하는 요소를 잘 찾아낸다.


탐심, 간음, 교만, 술취함, 비방, 명예같은 것으로

모든 사람은 각가 속성에 맞게 유혹을 받는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유혹은 죄와 달리 원하는 목적의 경로에서 복잡한 상황으로 인도한다.

사람은 그 딜레마 가운데 어느 쪽을 따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죄지을 가능성과 죄를 짓는 습성은 서로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지만 살인하는 습성은 없다.

죄의 습성은 그것이 실천에 옮겨지든 아니든 행위 자체와 다름없다.

천사나 사람이나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불순종의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선택의 유혹이 왔을 때

그 유혹은 그리스도 안에서 불순종의 습성을 찾지 못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죄의 성향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인간중에 없다.


그리스도안에서 죄의 습성은 제거되었지만

죄를 지을 가능성까지 제거된 것은 아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도

언제든지 죄로 돌아갈 경향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유혹에 넘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욕심이나 탐욕 때문이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약 1:14)


욕심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특별히 보암직하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종착지는 파국적이다.


그리스도인이 욕심의 결과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심지어 각자가 이해하는 자기 상황에 맞추어 자기 방식대로 성경을 해석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유혹 자체를 막아주지는 않으신다.


대신 유혹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시험이 오는 것을 막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각자 선택하는 환경도 중요한 요소중의 하나다.


아브라함은

안락한 우르라는 도시를 떠나 가나안 초원으로 갔고

반대로 롯은 소돔 도시로 들어갔다.


솔로몬은 부귀와 많은 이방여자들에 둘러싸여

종교적으로 타락의 길을 자초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선택의 상황에서 딜레마에 빠질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신앙의 유익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신자가 하나님의 방식을 우선순위로 놓을 때

유혹이 더 많은 길을 피하여 평강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보다 평강의 삶을 추구하자.



출처: 카이로스 / ars

홍준표, 서민이었기에..
'서민 대통령'을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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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율법과 복음 서론 / 홍인규 교수

 

 

서론

 

율법은 바울에게 있어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율법은 바울의 신학과 윤리의 여러 주제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의 율법관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바울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일이다.

 

바울 서신에서 율법이라는 주제는 극도로 복잡한 문제이다. 쇠프스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아마도 "바울의 신학에서 가장 난해한 교리적 이슈"일 것이다.1 그 난점은 주로 바울의 율법관에서 나타난 외견상의 모순에 기인한다.

 

한편으로, 바울은 율법을 부정적으로 말한다.

(1) 칭의는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는다(갈 2:16; 3:11; 롬 3:28).

(2) 율법은 약속보다 열등하다(갈 3:15 이하).

(3) 율법은 범법함을 (생산하기) 위해서 주어졌다(갈 3:19).

(4) 율법은 죄를 더하기 위해서 주어졌다(롬 5:20; 7:5, 8-13; cf 고전 15:26).

(5) 율법은 생명을 공급해 주지 못한다(갈 3:21).

(6)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갈 2:19; 롬 7:4). 그리고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다(갈 3:25; 5:1 롬 7:6).

(7)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다(롬 10:4). 등등.

 

다른 한편으로, 바울은 율법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1) 율법은 거룩하고(롬 7:12), 영적이다(롬 7:14).

(2) 율법은 지식과 진리의 (구체적) 표현이다(롬 5:20).

(3) 계명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롬 7:10; cf 갈 3:12).

(4)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롬 3:31)

(5) 모든 율법은 사랑 안에서 완성된다(갈 5:14; 롬 13:8, 10; cf 갈 6:2; 롬 8:4) 등.

 

그러므로 지금까지, 특히 지난 수십년 동안에, 바울과 율법에 대하여 막대한 양의 글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학자들의 이와 같은 엄청난 수고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의견의 일치는 이루지 못하고, 각양각색의 상이한 견해들만 양산해 내었다는 것은 불행한 알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여기서 모든 의견들을 소개하지 않겠다. 다만 현재까지 제안된 해결책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것들만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2

 

1. 잘 알려진 대로, 수많은 학자들은 율법주의적으로 사용된 율법과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서의 율법을 구분하거나3, 의식법과 도덕법을 구분하거나4, 또는 모세의 토라와 메시아의 토라 사이를 구분하여5 바울의 율법관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으려고 시도하였다.

 

2. 어떤 학자들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진술에서 불일치(inconsistencies)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진술들을 발전적인 구도(developmental scheme) 안에서 조화시키려고 한다. 드레인에 의하면,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압력을 받으면서 쓴 갈라디아서에서 자유방종주의자(libertine)로서 율법을 완전히 비난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고린도전서에서는 율법주의자처럼 보인다. 이 서신에서 바울은 영지주의자로 기울어 가는 자유방종주의자들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함으로써(고전 7:19) "법적인 언어 형식"을 다시 도입한다.6 그러나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자유방종주의(libertinism)와 고린도전서의 율법주의를 결합시킨다. 이러한 종합은 바울 신학에 대한 균형 있고 중립적인 표현(자유방임주의도 율법주의도 아닌)이 나타나는 로마서에서 좀더 충분히 이루어진다.7 로마서에서 바울은 율법의 구원 능력은 부인하지만, 그것의 신적 기원(롬 7:22, 25, 8:7)과 믿는 자의 생활 속에서의 긍정적 역할(롬 8:3-4, 13:8-10)은 인정한다.8

 

휘브너도 비슷한 이론을 제시하는데 그의 기본 명제를 보면, 율법에 대한 바울의 사상은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기록 사이에 중요한 발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쓸 때 율법에 대하여 전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였다고 주장한다. 즉, 율법은 범법 행위를 유발하기 위하여 타락한(demonic) 천사들이 주었으며(갈 3:19),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계명 외에는 율법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갈 5:14).

 

이러한 과격한 입장은 예루살렘 교회의 격렬한 바난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것 때문에 바울은 그의 율법관을 재고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로마서에 나타나 있다. 로마서에 보면, 율법은 신적인 것이며, 그 기능은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롬 3:20, 7:7) 죄를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로마서에는 모세의 율법과 사랑의 계명 사이의 대조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랑의 계명은 여전히 유효한 모세 율법의 요구 사항들을 요약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롬 13:8-10).

 

휘브너는 로마서 10:4을 주석하면서, 갈라디아서에서는 "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지만, 로마서에서는 "그리스도가 율법에 대한 육적 오용의 마침"이라고 하였다.9

 

빌켄스도 마찬가지로 바울의 율법 이해에 어떤 발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갈라디아서의 논쟁적 상황에서 바울은 율법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와 율법, 믿음과 율법의 행위, 약속과 율법 사이의 대조를 발전시킨다. 동시에 그는 교회를 이스라엘과 대립시킨다. 그러나 로마서에서 바울은 율법을 하나님의 법으로 제시하면서, 율법은 믿음으로 폐지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성취된다고 말한다(롬 3:31, 13:8-10). 그리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심판 아래로 끌어 간다.10

 

3. 이와는 대조적으로 샌더스(Sanders)는 갈라디아에서 로마서로 직선적인 발전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는 로마서에서의 율법에 대한 바울의 진술에 내적 긴장과 불일치가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롬 1:18-2:29에서 바울은 우주적인 죄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2:14-15, 25-29에서는, 어떤 자는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로마서 로마서 2장에서는 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율법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해놓고, 5:12-14, 18에서는 율법이 없던 아담과 모세 사이의 시대에도 죄가 인정되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로마서 5:20-21과 7:7-13, 14-25에서 죄와 관련된 율법의 기능에 대하여 상반되는 세 가지 설명을 제시한다.11

 

센더스가 보기에, 이상의 모든 것들은 바울의 신학적 사유가 "곤경에서 해결로 나아가기보다는 해결에서 곤경으로" 나아가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12 다시 말해서, 바울의 율법관은 인간의 곤경을 분석한 다음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을 내린 데서부터 형성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는 것이다.

 

레이제넨도 비슷한 노선을 취한다. 그러나 그는 샌더스보다 상당히 더 과격하다. 그는 "모순과 긴장은 율법에 대한 바울의 신학에서 항구적인 특징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것들은 "바울이 개인적으로 신학적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13 비일관성이 포착되는 주요 영역은 율법의 개념과 지속적 유효성, 성취 가능성, 기원(origin) 그리고 기능이다. 레이제넨은 바울이 일관성 없는 율법관을 갖게 된 것은 선교 사역을 하는 중에 이방인의 율법관을 수용하여 자기 것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4. 던은 자신이 이전의 한 논문에서 제시한 논증을 사용하여,14 위에서 살핀 샌더스와 레이제넨의 해석에 불만을 표시하고, 그들은 모두 바울 서신들의 사회적인 정황 속에 충분히 파고 들어가지 못했고, 당시의 율법이 발휘했던 사회적 기능의 온전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던이 보기에 바울은 율법 자체를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공격한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구분하는 율법의 사회적 기능이다. "율법의 행위"라는 어구는 일반적인 선한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수하게 이스라엘의 정체의 독특성에 날카롭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요구 사항들"을 가리키다.15 이러한 이유로 할례와 음식법, 안식일 준수가 "율법의 행위"에 대한 논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기능을 제외하면, 율법은 계속해서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사랑 안에서 성취된다. 

 

5. 위에서 언급된 바 바울의 율법관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법들에 반대하여, 웨스터홈( Westerholm)은 루터의 바울 이해를 부활시키고자 한다. 그의 견해로는, 바울에게 있어 율법은 기본적으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세세한 요구 사항들의 총합"을 가리킨다.16 이 모세의 율법은 생명을 위하여 "행함"(doing)을 요구한다(갈 10:12; 롬 10:5; 레 18:5).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일은 이스라엘의 구원의 길로 이해되어야 한다.17 그러나 바울은 인간이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대조시키고 있다. 웨스터홈은 계속해서, 율법은 그리스도에 의해 완전하게 대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율법의 교훈에 매달릴 의무가 없고,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필자의 생각에는, 위의 해결책 가운데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바울과 율법이라는 주제는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 과학적인 탐구를 계속 요구하는 문제이다. 이 점에서 필자는 근래의 해석학 분야의 발전에 비추어 이 문제에 새롭게 접근해 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았다.

 

바울의 율법관에 대한 포괄적인 취급은, 그의 서신들 각각에 나타나 있는 율법에 대한 발언들을 전반적이고 철저하게 조사한 것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확신이다. 그 이유는 바울의 각 서신은 특정한 수사학적(rhetorical), 사회적 정황 속에서 기록되었고, 따라서 각각 그 나름대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율법 문제의 복잡성을 감안하여, 필자의 연구는 율법이 처음으로 취급되었던 갈라디아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다.18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아무도 이 서신에 표현된 바 율법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심층적으로 파헤치려고 진지하게 시도한 적이 없었다.

 

본서는 7개의 장으로 이루어졌다. 제 1장에서는 갈라디아서의 표면 구조를 분석한다. 여기서 사용한 주요 도구는 강화 분석법(discourse analysis)이다. 그러나 고대 서간문 형식과 수사학적 구조도 참작할 것이다. 제 2장에서는 구조 분석에 의하여 드러난 주축적(pivotal) 진술들을 탐색하여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바울의 신학적 관점을 파악한다. 제 3장에서는 적대자들의 주장과 정체를 재구성해 본다. 갈라디아서의 구조와 바울의 신학적 관점으로부터 도출된 함의들(implication)이 이 작업을 위한 기준으로 활용된다. 이상의 3개 장이 제 1부를 구성한다.

 

이러한 예비적 고찰에 근거하여, 제 2부에서는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어떻게 취급하였는가를 다룬다. 이것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제 4장에서는, 갈라디아서의 "율법"(ν?μο?)은 두 가지 예외를 제외하면(갈 3:21b, 4:21b)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모세의 토라를 가리키며, 그것은 하나의 완전한 단위로 간주된다는 것을 간단하게 주장하려 한다. 제 5장에서는, 율법을 시내(Sinai) 언약의 의무로 보지,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한 요건으로 보지 않는다. 제 6장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율법이 수행하는 기능을 조사한다. 제 7장에서는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다룬다. 결론 부분에 가면, 갈라디아서의 율법에 대한 필자의 논의에 따르는 결과들이 요약된 형식으로 제시되고, 그 후에 바울과 율법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과 관련 있는 몇 가지 함의들이 필자의 연구로부터 도출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 논문이 율법에 대한 바울의 여러 가지 진술들을 좀더 명료하게 밝히는 데 기여하게 되기를 바란다.

 

 

홍인규 교수의 '바울의 율법과 복음'에서 발췌(13-20p)

각주 1

Schoep 1961:168.

각주 2

바울의 율법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을 전반적으로 개관하려면, Moo 1987:287-307을 보라.

각주 3

예를 들면, Burton 1921:443-60; Cranfield 1964:43-68; Moule 1967:389-406; Ladd 1968:50-57.

각주 4

예를 들면, Haufe 1966:171-78; Kaiser 1983:307-14; Schreiner 1989:47-74.

각주 5

예를 들면, Davies 1948:71-72, 136-46; Longenecker[1964] 1976:128-32, 183-96.

각주 6

Drane 1975:65.

각주 7

Drane 1975:4.

각주 8

Cf. Drane 1974:167-78.

각주 9

Hubner 1968:148-49.

각주 10

Wickens 1982a:154-90; Wilckens 1982b:17-26

각주 11

Sanders 1983:74-75.

각주 12

Sanders 1983:150; cf. Sanders 1977:442-47.

각주 13

Raisanen 1983:11, 12.

각주 14

Dunn 1983a.

각주 15

Dunn 1985:531; cf. Dunn 1983a:107-11; Wright 1978:61-88.

각주 16

Westerholm 1988:108.

각주 17

Westerholm 1988:142.

각주 18

Cf. Cranfield 1964:62.

  1. Schoep 1961:168. [본문으로]
  2. 바울의 율법에 대한 최근의 논쟁들을 전반적으로 개관하려면, Moo 1987:287-307을 보라. [본문으로]
  3. 예를 들면, Burton 1921:443-60; Cranfield 1964:43-68; Moule 1967:389-406; Ladd 1968:50-57. [본문으로]
  4. 예를 들면, Haufe 1966:171-78; Kaiser 1983:307-14; Schreiner 1989:47-74. [본문으로]
  5. 예를 들면, Davies 1948:71-72, 136-46; Longenecker[1964] 1976:128-32, 183-96. [본문으로]
  6. Drane 1975:65. [본문으로]
  7. Drane 1975:4. [본문으로]
  8. Cf. Drane 1974:167-78. [본문으로]
  9. Hubner 1968:148-49. [본문으로]
  10. Wickens 1982a:154-90; Wilckens 1982b:17-26 [본문으로]
  11. Sanders 1983:74-75. [본문으로]
  12. Sanders 1983:150; cf. Sanders 1977:442-47. [본문으로]
  13. Raisanen 1983:11, 12. [본문으로]
  14. Dunn 1983a. [본문으로]
  15. Dunn 1985:531; cf. Dunn 1983a:107-11; Wright 1978:61-88. [본문으로]
  16. Westerholm 1988:108. [본문으로]
  17. Westerholm 1988:142. [본문으로]
  18. Cf. Cranfield 1964:6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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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간표 '이스라엘'

- 김종만 목사님 (남원교회) -


성경 계시 자체가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인간이나 세상은 유한한 인간이 논리적으로 다 설명할 수가 없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주의자들은 역사가 어떤 법칙에 의해 진행하고 발전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수 없이 확인되었습니다. 역사를 논리와 법칙으로 다 설명할 수 없듯이 성경의 진리도 논리와 법칙으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논리와 합리적 영향을 받은 헬라 문화권 사람들의 눈에 복음을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면서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들은 헬라 문화권 사람들에게 성경의 진리를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리와 신학은 그러한 노력의 긍정적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설명의 부작용 중 하나가 이원론적으로 성경의 진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이원론의 매력은 설명이 안 되는 성경 진리를 이원론적으로 설명을 하면 설명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원론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큰 설득력으로 어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헬라 철학의 이원론이나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은 몸과 영혼,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존재론적으로 구분하여 영혼은 거룩하고 육체는 속되다고 생각합니다.

 

이원론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존재론적으로 구분하여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속되며 예배는 거룩하고 상업은 속되고 찬송은 거룩하고 유행가는 속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원론적인 구분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교육을 상당히 받은 사람이나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이들도 기독교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이런 이원론적인 영향을 분별하지 못하고 어떤 것은 속되고 어떤 것은 거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같은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였고, 구약의 선지자들도 제사와 구제와 금식 자체까지도 악이라고 질타한 것을 보면 어떤 것이 존재 자체로 거룩하거나 속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스토어에서 장사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배를 드리는 행위 자체가 악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이라고 한 것은 성경 계시가 구원 얻는 도리를 충분히 계시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의 삶의 온전한 규범이라는 뜻이지 성경 말씀이 아닌 모든 것은 속되다고 무조건 거부하고 무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천지창조에서 시작되었고 영원히 지속될 나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영역은 교회뿐 아니라 온 우주입니다. 교회의 역할은 하나님 나라에 비해 제한적입니다. 제한된 교회의 역할을 하나님 나라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정치나 사상이나 경제를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활동을 하는 곳도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의 역할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구체적인 일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이 제한적이지만 교회는 교인들에게 구체적 현실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교인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현실은 정치와 사상과 이념과 세속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영적 싸움을 싸워야 할 현장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정치와 경제와 세상적 가치관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그 속에서 영적 싸움을 싸우려면 피아를 구별해야 합니다. 적이 누군지 아군이 누군지 알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아군 같지만 속에는 생명을 노략질 하는 이리가 많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정치와 경제와 사상이나 이념적 실력을 쌓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런 것들이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거나 역행하게 되는 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가 하나님 나라 안에 있습니다. 이 말은 창조 세계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영역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천지 창조에서 시작되었고 모든 창조세계가 하나님 나라 영역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영역은 해가 빛을 비추는 곳과 비가 내리는 곳과 그리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모두를 포함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종교개혁자들은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곳을 하나님 나라 영역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칼빈주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땅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미치지 않는 곳은 단 한 치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장소도 없고 집단도 없고 분야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인간이 만든 제도나 사상까지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거나 허용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믿는 당신의 백성뿐 아니라 불신자와 모든 창조 세계에 대해 지대한 사랑과 관심을 쏟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과 관심을 쏟으시는 바로 그 곳에 우리도 사랑과 관심을 쏟기 위해 성경을 배우고 기도하고 훈련하는 것입니다.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목사가 정치나 경제나 정의나 윤리의 용어를 입에 담기만 해도 왜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만 전하지 않고 세상 이야기를 하느냐며 걱정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원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분들에게 질문합니다. 세상은 누구의 세상입니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고 훈련하여 실천해야 할 곳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지금도 사랑으로 다스리시는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인간들을 통해 온갖 사상과 제도와 교육을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내시며 다스리고 돌보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공의 영역은 인간을 비롯한 창조 세계 전체입니다. 정치는 대학 정치학과에서 가르치고 경제는 경제학과에서 가르치지만 그것들이 노골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거스르는 것에 대한 분별력은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배워야 할까요? 당연히 교회에서 배워야 합니다. 교회에서 누가 가르치나요? 목사가 가르칩니다. 목사가 정치나 경제나 물리학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가르치나요? 목사가 정치나 경제나 물리학이나 생물학 자체를 가르치는 게 아니고 그것들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에 대해 분별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학문을 전공하지 않은 목사는 조심스럽게 분별하여 가르쳐야 합니다. 정치 경제 과학 문화 등이 하나님께 순종하는지 대항하는지 분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철학과 사상과 정치와 경제와 문화에 대해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성경만 아는 것은 성경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는 정치나 경제나 윤리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 말은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정치나 경제를 가르쳐서 정치활동이나 경제활동을 하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정치나 경제나 철학이나 문화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님께 대항하는지 여부를 분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아무리 잘 훈련된 군인이라도 적을 분별하지 못하면 싸울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신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배우고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원론으로 왜곡된 생각들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주 전체와 모든 사상과 철학과 과학과 생물학과 문화와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를 포괄합니다. 나 개인이나 우리 가정이나 우리 교회도 하나님 나라에 포함되지만 하나님 나라 공공의 영역은 창조 세계 전체라는 사실을 잠시라고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 나라 공공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통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나로서는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너무나 신비로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오늘날 정치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경제 분야에서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하나님의 통치는 어떻게 미치는지 너무나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초강대국 미국 정부와 하나님 나라는 어떤 관련을 갖는지, 우리 집 마당 텃밭 흙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생명체들과 하나님 나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우리는 관찰하고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배우며 깨달아 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한 모퉁이와만 겨우 관련을 맺고 살아가지 말고 우리의 의식 세계와 실제 몸으로 활동하는 모든 영역이 하나님 나라 공공의 영역임을 기억하고 그 나라의 풍성한 영적 생명에 참여하고 누리고 증거하며 나누며 사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허락된 은총이요 복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공공의 영역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

 

황상하 목사 (퀸즈제일교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장차 올 두 왕국


"이 여러 왕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도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망시키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단 2:44)


우리는 다니엘이 말한 이 신상의 열 발가락 시대에 살고 있다. 최근 열발가락이라 칭하는 유럽연합국 중에서 영국이 탈퇴선언을 하여 이슈가 되고 있지만 이미 다니엘이 말한 열발가락의 시대가 온 것이라면 이제 곧 산에서 뜨인 돌이 나타나 신상을 부숴뜨릴 때가 가까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가 다니엘을 공부하면서 기억해야 할 것은 느부갓네살 왕이 꿈꾼 ‘한 신상’은 그리스도의 왕국 이전까지 인류의 역사 속에 등장할 통치왕국들이다.


다니엘은 '한 신상'을 각 부분별로 나누어 이 세상을 이끌어 온 커다란 통치세력을 언급하였다. '한 신상'의 금머리는 한 사람의 모든 생각과 이상을 다루는 통치기관이다. 머리의 지혜로서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느부갓네살 왕은 금머리에 해당하는 바벨론 제국의 통치자였다. 그는 그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거대한 중동의 국가를 멸망시켰다. 그러므로 이 신상이 서게 될 철과 흙이 혼합된 열 발가락 시대에는 그 힘이 쇠약하지만 그 머리는 여전히 세계를 통치할 신의 위치에 있을 것이다.


다니엘이 말한 두 번째 나라는 은으로 된 가슴과 팔로서 메데와 바사이다. 은이란 약한 금속이지만 성전기구를 만드는데 쓰인 해독물질이며 신학적으로는 정결을 의미한다.


성경은 우리의 온전한 믿음을 일곱번 단련한 은에 비유하였다. (은은 금보다 값은 덜하지만 마음이 가슴에 있다.) 가슴은 생명의 피와 호흡을 주관하는 자율기관으로의 통치기관인 머리로도 주관하지 못하지만 생각을 지배하는 마음은 가슴 속에 있다.


또한 가슴에 연결된 두 팔은 머리의 지시를 수행하지만 두팔이 움직이는 원동력 또한 마음에서 나오며 팔은 둘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결국 금머리 느부갓네살은 메대의 디리오에 망했으며 다른 한팔인 고레스 왕이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을 종식시켰다.


셋째나라는 알렉산더 대제가 세운 헬라제국으로 놋으로 만든 배와 넓적다리로 비유했다. 놋이란 심판을 뜻한다. 또한 배는 온 몸에 필요한 영양분을 생성하여 공급하는 기관이며 넓적다리는 무거운 몸을 지탱하며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보유하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실 현대 학문과 철학의 기초는 헬라시대에 만들어졌다. 위대한 철학자, 수사학자들이 모두 이 시대에 등장했다. 이 시대야말로 인간의 철학과 지식과 신적인 요소들이 한데 뒤엉켜 바벨탑을 쌓던 시대이다. 헬라의 언어와 학문과 철학은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었다.


다니엘이 말한 네번째 나라는 종아리와 발에 해당하는 철의 시대는 로마로서 현대의 길목이다. 종아리는 머리나 가슴이나 배처럼 우리 몸의 생명력을 생성하는 기관이 아닌 넓적다리 하부기관으로 발을 잇는 중간 매개체다.


다시 말해 종아리는 몸을 움직이고 세우는 중추적인 역할이다. 흥미롭게도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다니엘이 말한 열 발가락의 시대이다. 열발가락은 종아리와 함께 발을 이루었다. 이로서 한 신상이 완성되었고 이제 우뚝 서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광체가 찬란한 신상이 이끄는 세상에서 노예로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발가락의 구성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과 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철은 강하여 모든 것을 부수지만 진흙은 쉽게 부셔진다. 어쩌면 철과 진흙은 철학이 만들어낸 이념과 종교와도 같아 사람들이 서로 화합되지 않아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서로 대두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지금 발가락의 시대에 살고 있고 하나의 신상은 세워졌다. 이제 곧 세상은 느부갓네살이 꿈꾼 광체가 찬란한 두려운 한 신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것을 움직이는 자가 곧 적그리스도이다. 이미 그가 크고 찬란한 한 신상을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때에 사람의 손대지 않은 돌이 쇠와 진흙의 발을 쳐 신상을 무너뜨리고 영원하 망하지 않는 하나님의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 약속하셨으니 그가 곧 만왕의 왕이며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날이 이미 우리 발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아멘!



- 이요나 목사님


출처: Coming Out Again(탈반시티) 원문보기   글쓴이: 요나짱

(워싱턴=연합뉴스) 이승우 특파원 =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전략인 '압박 작전(pressure campaign)'이 마침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막 들어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력 증강과 경제제재라는 '양수겸장'을 통해, 핵 도발을 이어온 북한과 '암묵적 조력자'로 지목한 중국을 강력히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 해군 태평양사령부의 해리 해리스 사령관은 26일(현지시간) 한국에 배치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곧 가동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날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한 자리에서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무시한 채 어떤 일이 있어도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과 미국 본토의 영공을 방어하는 동시에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셈이다.

이 같은 미군의 움직임은 대외 정책을 총괄하는 국무부가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대체하는 대북 기조로 '압박 작전(pressure campaign)'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쓴 지 불과 하루 만에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전략(strategy') 대신 굳이 '작전(campaign)'이라는 군사 용어를 사용한 것도 심상치 않다.

미군은 단순히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있다.

해리스 사령관은 이날 청문회에서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당분간 한반도 해역에 머물게 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공격을 격퇴하는 한편, 하와이에도 사드와 같은 미사일 방어 체계를 추가 전개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한반도 주변은 물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체에서 미사일 방어 능력을 위시한 군사력을 대폭 증강함으로써 어떠한 북한의 도발에도 동맹국과 미 본토를 보호하고, 북한을 초전에 초토화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는 북한이 실제로 미국을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위기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해리스 사령관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적 제재를 통한 '고사 작전'도 조만간 실행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이날 오후 미국 상·하원 의원 전원을 상대로 비공개 브리핑을 열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대북정책을 설명한다.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진행해온 대북정책 리뷰의 결과물이다.

대북정책만을 설명하기 위해 상하원 의원들을 모아놓는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인 데다 상원의원 브리핑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백악관에서 진행되는 점도 매우 이례적이다.

 

의회의 초당적이고도 전폭적인 협조를 구하는 동시에 미 행정부와 의회가 일심동체로 북핵 문제라는 '실체적 위협'에 대응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보여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완전 비공개로 진행되는 브리핑에서는 이날 해리스 사령관이 밝힌 아태 지역에서의 군사력 증강과 함께 북한은 물론 중국까지 겨냥한 전방위적 경제제재 조치가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적지 않은 중국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이는 '세컨더리 제재'와 중국의 대북 원유공급 및 북한과의 석탄 거래 전면 금지, 관영 고려항공 항공기의 공항 이용 금지, 공해 상에서의 북한 선박 불시 수색 등이 고려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테러지원국(sponsor of terrorism) 재지정도 검토 대상이다.

leslie@yna.co.kr

"北 칼빈슨호 공격시 격퇴할 수 있어"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미군은 주한미군이 전격적으로 성주골프장에 반입한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가 조만간 가동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미 태평양사령부의 해리 해리스 사령관은 26일(현지시간)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 출석해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가 "곧 가동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해리스 사령관은 또 "미국은 한반도 해역에 재배치한 핵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공격이 있을 경우 이를 격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와이에 미사일 방어 능력을 추가 전개를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리스 사령관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한미군은 한국시간으로 26일 새벽 성주골프장에 차량형 이동식 발사대, 사격통제 레이더, 교전통제소 등 사드 장비를 배치했다.

앞서 지난달 6일 발사대 2기를 오산기지에 공수한 것을 시작으로 발사대를 6기 한국에 들여왔지만, 이날 성주골프장에는 2기만 들어갔다. 나머지 4기는 국내 기지에 있다가 다음달 초 성주골프장에 반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해리 해리스 미국 해군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왼쪽에서 두번째) [EPA=연합뉴스

지난 수십년간 사회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은 사람 관점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착하기 때문이고,

악한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사람의 행동은 그가 처한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는 상황 관점이다.


만일 상황이 원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악을 저질러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누구나 예외 없이

선을 행해야 하는데

우리 주변에서 악을 행하는 사람은 소수이고,

선을 행하는 사람도 소수라는 것이다.


그런 류의 사람만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람 프레임이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미국 미시간 대학에는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학생들의 연례행사가 있는데

'누드 마일' 또는 '네이키드 마일'이라고 불리는 행사로

매년 마지막 수업날 밤 12시에 학생들이

옷을 벗은 채로 1마일을 뛰는 것이다.


자발적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학생들이 이 행사에 참가한다.


혼자서는 절대 하지 않을 이런 행동을

그들은 왜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군중이라는 상황의 힘 때문이다.


평소에는 자제하던 행동들을

군중 속에 들어가면 충동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정답을 알 수 있는 많은 실험에서

다수가 오답을 선택하면

오답을 따라간다는 실험결과도 많다.


중국인들이 집단으로 사드를 반대하고

보복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수준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공격용 핵을 만든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더니

방어용 사드를 도입하는 것에는 보복까지 하면서

반대하는 모양새가 우습게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볼 때

한국인의 집단 행동도

중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광우병 때문에 미국 소고기를 집단으로 반대한 것이나

해상교통사고인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나,

법치로 판결하기 전에 촛불을 드는 행위나

뇌물을 받은 증거가 없음에도 판결이 나기도 전에

구속수사를 하는 모습들이 바로 그렇다.


성경은 상황관점을 무죄라고 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상황논리에 몰리자 세번이나 부인하였고,

가룻유다는 영원히 돌이키지도 못하였다​​ .


히틀러의 치하에서 많은 독일 시민들이

히틀러를 지지하고 그 정책에 참여했지만,

끝까지 히틀러를 반대하며 옥에서 죽은 의인들도 있다.


일본의 기독교 박해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일런스(침묵) 영화에서는

고난의 순간에 침묵하시는 신에게 질문한다.


신자들을 위해 배교할 것인가?


성경은 한번도 이런 상황 논리에서

배교를 선택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만약 이런 상황논리가 허용된다면

적그리스도 치하에서 가족을 위해

짐승의 표를 받는 것도 용납될 것이다.


그러나 인본주의 가치관은

상황논리를 적극적으로 선호한다.

어둠이 빛으로 선포된다.



요한은 증언하기를

참 빛이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고

신자들은 세상의 빛이라 하셨다.


빛의 자녀들은 세상에서 빛이 되어야 하고,

이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이 근원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신자들도

다른 빛을 따르기 시작하였는데,

예를 들어 촛불은 참빛에 기인한 것이 아니었으며,

대중의 상황관점이라는 인본주의 촛불에서 발원한 빛이었다.


신자들이 서 있는 장소와

상대해야 할 대상은 세상의 상황이다.


그 곳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대신에

대중의 상황논리와 군중심리가 지배한다.


군중이 이해하는 정의도

성경적 가치관과 다른 세상의 가치관에 기인한 것이다.


문제는 신자들이 성경적 가치관보다

이런 세상적 가치관을 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둠이 빛으로 선포되고, 빛으로 둔갑하였고

많은 신자들이 거짓의 빛에 미혹되었다.


광우병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던 사람들도

당시엔 그것이 옳은 일이고 진실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나고보니 거짓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군중과 상황의 논리를 따라가다보면,

거짓에 선동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신자는 세상의 가치관에 속지 않기 위해,

언제나 하나님의 관점과 성경적 관점으로 봐야 하는 것이다.




출처: 카이로스 / ars

"끝까지 가보자" 다시 강경 태도로 선회한 北..속내는?

 

<앵커>

안정식 북한 전문 기자와 좀 더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앞서 보도를 보면 중국이 미국의 군사개입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중국과 미국이 공조하고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북한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내용도 있다고요?

<기자>

네, 북한이 어제 오늘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강경한 입장을 내놨는데,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 장단에 춤 추는 것이 그렇게 좋으냐 북중관계의 파국적 결과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는 발언을 내놨습니다.

<앵커>

중국에 대해서는 꽤 세게 얘기했는데, 그럼 미국에 대해서는 뭐라고 얘기를 했나요?

<기자>

먼저 외무성 반응을 하나 보시죠.

[북한 외무성대변인 담화 : 미국이 우리와의 대결을 바란다면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부동한 의지이다.]

끝까지 가보자, 갈 때까지 가겠다, 이런 얘기잖아요. 외무성 뿐 아니라, 아태평화위, 노동신문 등을 동원해 강경입장 내놨는데요.

이번주 초에 외교관들을 총동원해서 전쟁 할 테면 해보자 라고 하고 나서 소강 상태를 보였었는데, 고심 끝에 다시 강경입장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 같습니다.

<앵커>

네. 분위기가 좀 바뀐 것 같은데, 사흘 뒤인 25일이 인민군 창건일이잖아요. 도발 가능성이 있을까요?

<기자>

방금 전 북한 반응을 보면 핵실험까지는 몰라도 미사일이라도 한 두발 정도는 쏘지 않겠느냐, 이런 예상이 가능하겠죠.

한성렬 외무성 부상도 지난 18일 BBC 인터뷰에서 주단위, 월단위, 연단위로 미사일을 쏘겠다고 했는데, 이 말대로 주단위로 쏜다고 보면 지난 16일, 일요일날 미사일을 쐈기 때문에 다음 일요일인 내일 미사일을 쏠 거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북한 도발에 대해 국제사회가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잖아요.

지난 16일 미사일 발사가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보리에서 언론 성명이 나왔단 말이죠. 

이런 걸로 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상황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이 어제 오늘 내놓은 반응이 창피하지 않게 후퇴하는 방편의 일환이 아니냐, 이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원칙적으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면서, 실제 행동은 하지 않는 이런 방편일 수도 잇는데요.

인민군 창건일인 25일까지, 즉 내일 모레 글피 3일 동안 북한이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가 4월 정세를 가늠하는 중요한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

트럼프 “나는 말로 안 끝낸다” 현실 외면하는 한국!



6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찬 도중

시리아 정부군 공군기지 공격


지금 한국 사회는 5월 9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몰두해 있다. 그 다음 뉴스는 ‘세월호 인양’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소식이다.


국내 언론들의 보도만 보면, 한반도는 국내 문제 외에는 별 탈이 없어 보인다. 중국의 ‘사드 압박’에도 무역 흑자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빠진 자리는 무슬림과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채우고 있다고 한다. 이런 뉴스들 사이에 간간이 섞여 나오는 뉴스가 바로 트럼프 미 정부의 북한 문제 언급이다.


국내 언론들의 편향된 보도와 달리, 외신 보도를 직접 찾아보면 한반도 주변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의 이어지는 탄도미사일 발사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추가하는 것은 예전과 같지만, 미국의 대응은 예전과 크게 다르다.


▲ 싱가포르 인근 남중국해에서 기동하다 호주로 가던 항로를 바꿔 한반도 주변 해역으로 향하고 있는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함 / 연합


지난 6일(현지시간), 트럼프 미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만난 직후에는 “친목을 다졌다”면서 웃었지만, 곧 이어진 회담장에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군사행동을 명령했다.


지중해에서 작전 중이던 미해군 이지스 구축함 2척에 “시리아 민간인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가한 정부군 공군기지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다. 회담에 이은 만찬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시리아를 공습했다”고 밝혔다. 웃으면서.


미 주요 언론들은 국방부와 백악관의 공식 발표를 인용해 시리아 공격 사실을 속보로 전했다.  미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지스 구축함 ‘로스’함과 ‘포터’함이 시리아 서쪽에 있는 정부군 공군기지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9발을 퍼부었다고 한다.


미 국방부는 “사상자와 파괴한 목표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았지만, 공군기지의 연료공급시설 등 주요 인프라는 모두 파괴했다”고 밝히고, 미사일 발사영상을 공개했다.


백악관은 “정부 관계자가 시리아 공격 직전 하원의원 20여 명에게 관련 내용을 브리핑했고, 공격 당시 백악관 상황실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배석해 있었다”고 밝혔다.


미 이지스 구축함이 시리아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공격을 퍼부을 때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시진핑 주석과의 만찬에 참석했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행사 직후 미국 언론들과 만나 밝은 표정으로 “이번 시리아 공격은 매우 합당한 것으로, 대통령께서 정확하고 적절하게 판단하셨다”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의 주요 관계자들은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격하면서 아무 일도 없는 듯 웃으면서 밥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과의 만찬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이 긴급 기자회견에서 한 말도 주목을 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리아 독재자 알 아사드가 무고한 민간인들에게 화학무기 공격을 가했다”면서 “알 아사드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지난 수 년 간 노력했던 것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은 2013년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의 화학무기 문제에 대해 합의한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을 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중국 정부 관계자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들어 북한에 대해 했던 발언들을 모아보면, 중국 정부는 모골이 송연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해결 안 하면 내가 할 것”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월 취임 이후 줄곧 “북한의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은 미국과 세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며 “이 문제에는 중국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다.


▲ 지중해상 미 해군 구축함에서 시리아군 공군기지로 토마호크 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만난 직후에는 “친목을 다졌다”면서 웃었지만, 곧 이어진 회담장에서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군사행동을 명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2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던 때 북한이 ‘북극성-2형’이라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행동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아베 총리의 발언에 붙여 “그의 말을 100%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을 향해 강경한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현지시간)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의 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는 북한을 아주 강하게 다룰 것”이라며 북한을 맹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짧았지만 그 충격은 컸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아베 일본 총리는 NHK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 당시를 떠올리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이 오바마 때보다 더욱 거칠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2월 25일(현지시간) 미 국무부는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북간 반민반관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입국하려던 최선희 북한 외무부 부국장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2월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NBC26, 덴버 7, KSHB 등 지방 언론사 기자 18명과의 만찬에서 김정은을 가리켜 “미친X”이라고 부르며 “조만간 손 좀 봐줘야겠다”는 말을 했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세계의 악이자 세계적 문제”라며 “북한 문제를 곧 해결해야겠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3월 1일(현지시간)에는 미 언론들이 “트럼프 정부가 기존 대북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꾸기 위한 검토에 들어갔다”고 백악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당시 언론들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진행 중인 대북정책 재검토에는 대북 선제타격부터 유관 3자 제재(세컨더리 보이콧) 등 모든 옵션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중순부터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큰 중국이 핵무기 및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라며, 북한 문제와 중국을 ‘하나의 문제’로 묶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의 태도 변화는 없었다. 특히 북한은 공공연히 미국을 도발하는 듯한 행동을 했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용으로 쓸 수 있는 대형 로켓의 지상연소시험을 실시하고, 핵실험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미국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상업용 위성이 찍은 사진을 분석,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 실험장에서 6차 핵실험을 준비 중인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트럼프에 대한 세계의 평가 바뀐 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수위는 점차 강해져 4월에 들어서는 중국에게도 ‘경고’를 날리기 시작했다. 지난 4월 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영향력이 큰 중국은 북한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그들이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4월 6일부터 7일까지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을 불과 나흘 앞두고 나온 말이어서, 중국 정부에게는 상당한 충격을 줬다.


하지만 세계는 북한과 중국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를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8년 동안 오바마 정부가 온갖 경고 발언을 한 뒤에도 행동을 하지 않거나 적과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덮는 모습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도 있었고, 1994년 7월 이후 미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물리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던 과거도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분명 과거와 달랐다.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 플로리다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시작했을 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외를 맞이했다.


환담에 이어 만찬이 시작되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합참에 명령을 내린다. 시리아 공군기지에 대한 미사일 공격 명령이었다. 지중해에 있던 미 이지스 구축함 ‘로스’함과 ‘포터’함이 시리아 중부에 있는 알 샤에렛 공군기지를 향해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59발을 발사했다.


정상회담 하루 전인 5일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이 ‘반군 점령지 소탕’을 명목으로 민간인 거주지에 화학무기인 ‘사린’ 가스 공습을 한 데 대한 응징이었다. 미군이 시리아를 공격할 당시 상황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백악관 상황실에서 직접 지켜봤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시리아를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후 중국 관영매체를 비롯해 주요 외신들은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시리아 공격을 이해한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세계는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를 믿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조차도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방 먹었다”고 표현했다.


미군 이지스 구축함의 시리아 공군기지 공격이 끝난 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시리아 공격 2시간 전에 러시아 정부에 관련 사실을 알렸고, 해당 공군기지의 연료 공급시설 등 주요 인프라는 모두 파괴됐다”고 밝혔다.


시진핑 주석과 만찬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도 특별 기자회견을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무고한 민간인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는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은 미국의 안보와 세계 평화에 위협 요소로, 이들의 세력이 확산하는 것을 예방하는 행동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내용이었다.



시리아 다음은 북한?


권력을 세습해 온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은 테러조직 IS와 알 카에다 추종 세력을 소탕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서방 국가들이 지원하는 ‘자유시리아군(FSA)’과 이들이 머무는 지역에 화학무기를 종종 사용했다.


2013년 8월에도 민간인 거주지에 ‘사린’ 가스가 실린 로켓탄을 발사, 1300여 명을 살해한 적이 있다. 화학무기는 대량살상무기로 분류돼 사용할 경우에는 국제사회 전체를 적으로 만들게 된다.


이런 알 아사드 정권은 북한, 러시아, 이란, 중국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는 알 아사드 정권을 도와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상태고, 이란 또한 알 아사드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북한 측은 확인해주지 않지만, 외신과 서방 정보기관들은 북한도 알 아사드 정권을 돕기 위해 수백여 명 이상의 병력을 파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보도도 나왔다. 2016년 3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중재로 열린 ‘시리아 평화회담’에서 ‘아사드 알 주비’ 고위협상위원회 단장은 “북한군 2개 부대가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을 도와 참전했으며, 부대 이름은 각각 ‘철마 1’과 ‘철마 2’로 불린다”고 언론에 밝혔다. ‘아사드 알 주비’ 단장은 북한군은 모두 특수부대로 월 500만 원 가량을 받고 참전했다고 폭로했다.


2014년 10월 북한군사문제 전문가인 브루스 벡톨 미 앤젤로대 교수는 “2012년 초부터 2년 동안 북한의 대 시리아 화학무기 판매가 증가했으며, 군사 고문단이 시리아 군에 화학무기 사용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쳤다”고 주장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알 아사드 정권 공격은 그가 ‘세계의 골칫거리’라고 지목한 중국, 북한, 이란과 관련이 있으면서 가장 약체인 세력을 먼저 때린 것이었다. 미국 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 정권들과 달리 말로만 경고하지 않고 행동으로 ‘응징’한 데 대해 환호했다.


2016년 대선 레이서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던 CNN을 비롯해 공화당의 ‘안티 트럼프 의원들’까지 모두 그의 결단을 칭찬했다. 동시에 ‘트럼프의 다음 타깃은 누구인가’를 두고 다양한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CNN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은 “중국 정부가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북한도 시리아처럼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전했다.


지난 4월 8일 영국 로이터 통신이 “싱가포르에 머물던 미국 항공모함 ‘칼 빈슨’함이 항모강습단을 이끌고 한반도로 향했다”고 보도하자 이런 의견은 더 주목을 받았다.



대선·세월호에 집착하는 ‘연작처당(燕雀處堂) 대한민국’


이상과 같은 일 때문에 세계의 이목은 한반도로 쏠려 있지만, 정작 한국은 조용하다. 이는 한국 정치권과 언론, 정부, 학계의 관심이 오는 5월 9일 치러질 대통령 선거와 ‘세월호 인양  수습’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지금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를 찾아보면 전체 뉴스의 절반 가까이가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등 소위 ‘대선 후보’의 행보와 전남 목포 신항에서 이뤄지고 있는 ‘세월호 지상 수습작업’,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을 다룬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중국 비판이나 미국의 대북 전략, 유엔과 EU, 일본 등의 대북정책 변화 등은 거의 ‘가십’처럼 다뤄지고 있다. 주요 일간지와 공중파 방송의 ‘분석기사’라는 것 또한 한반도 유사 상황을 ‘스포츠’처럼 다루고 있다.


물론 해당 기사의 기저에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거나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대선에서 ‘진보적 후보’를 뽑아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 같은 언론계의 주장에 소위 학계 전문가와 정부 관료들, 정치인들은 부화뇌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를 서고, 중단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고 있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재개에는 부정적이지만, 북한과 ‘대화’를 해야 한다는 데는 원론적으로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들은 북한보다 더 큰 문제, 즉 문재인, 안철수, 홍준표 후보 모두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국을 압박하는 중국 정부의 행동에 대해서는 강력히 항의하거나 대응할 뜻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세 후보 모두 중국발 초미세먼지 문제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세 후보가 모두 ‘적폐청산’만 외칠 뿐이다.


이런 한국 정치권과 언론계, 학계를 두고, 국민들은 ‘연작처당(燕雀處堂)’이라는 고사성어를 떠올리고 있다. 1880년 일본을 찾은 조선 수신사 김홍집은 청나라 외교관 황준헌으로부터 ‘조선책략’이라는 책을 얻는다.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에 맞춰 고도의 외교 전략을 발휘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이때 황준헌은 조선이 ‘연작처당’과 같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처마 밑의 제비와 참새가 대들보에 불이 붙었음에도 자기네 둥지에는 영향이 없으리라 착각하고 희희낙락하다 모두 불에 타죽었다는 설명이었다.


현재 한국 사회는 좌익은 물론 우익마저도 미국의 대북전략 변화가 어떤 충격과 변화를 불러올 것인지에 대해 현실 감각을 잃은 상태다.


좌익 진영은 “거대 강국 중국이 버티고 있는데, 설마 미국이 중국과의 전쟁을 불사하고 북한을 공격하겠느냐”고 생각하고, 우익 진영은 “곧 트럼프 정부가 북한 김정은을 제거하기 위해 나설 것”이라며 “그러면 통일이 될 것”이라고 꿈을 꾼다.


북한 김정은 체제를 계속 유지하자는 말이 아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조치’를 취할 때 한국은 어떻게 미국과 보조를 맞출 것이며, 한국 국민들의 희생과 통일 이후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어떤 일을 계획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함에도,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도 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라는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은 어쩌면 대한민국이 건국한 이래 통일과 민족 번영에 있어 가장 큰 기회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회에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이는 가장 큰 위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전경웅 미래한국 객원기자


출처: 미래한국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711)

무신론자들과 거짓종교를 신봉하는 자들은

모두 지옥(불못)에 들어가나요?


무신론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는데,

지옥이 존재한다면 자신들은 지옥에 들어갈 확률이 100%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무신론자들은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지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증명할 수 없으니

지옥을 주제로 조롱거리로 삼는다.


다음도 타임지에 무신론 학자가 기고한 사례다.



"에밀,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지?"

"​맞아"

"너는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 지옥에 가겠네"

"맞아"

"​그럼, 간디는 지옥에 갔겠네"

"어, 그렇게 생각해"

이 무신론자는 ​비폭력과 평화의 상징인 간디가

지옥에 가는 것은 불공정하니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증을 펴고 싶은 것이다.


​이 무신론자는 하나님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니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인데 많은 무신론자들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자기 의로움으로 구원을 받는다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와 생명체가 저절로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불가능하니 신이 있다고 가정한다.


모든 정경중에서 유일하게 성경만이

창조,속죄,심판,종말을 언급하고 있으니

기독교의 신이 참이라고 가정한다.


미스테리는

왜 어떤 사람은 이런 사실이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반면에

어떤 이는 이런 진리에 귀를 닫아 버리는 것일까?


전자는 천국에 들어가고 후자는 불못에 들어간다는

성경의 지적을 감안하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우연은 불가능한 논증이므로 하나님은 존재한다.

우주와 세상은 내가 창조했어.

미래에 일어날 일도 미리 알려주고 성취했지.​


우연은 어떤 경우에는 가능할 수도 있으므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담의 범죄는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데

내가 왜 지옥에 들어가야 하는가? 지독한 독재 아닌가요? 

 

아담의 범죄가 있기는 하지만

네가 지옥에 들어가는 이유는 너의 선택 때문이야

하나님이 없다며 나를 부정하는 너를

굳이 내 나라에 들이게 할 이유는 없지 않니?


나도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댁이 나를 지옥에 들어가게 할 권리는 없어요

 

네가 지옥에 가는 이유는

스스로 지옥의 왕을 따랐기 때문이야.


네가 그에게 속아 지옥을 선택한 것이지

내가 보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법을 만든 것은

사랑의 신이라고 자처하는 당신이잖아요.

사랑의 신이 지옥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모순이지.

 

그 법을 만든 것은 내가 맞다.

그런데 너는 좋은 법을 따를 기회도 있는데 왜 불평하고 있느냐.


내가 너희를 로봇처럼 만들었어야 했느냐.

그랬다면 너의 악함을 보건대 선택할 권리를 달라고 파업했을 것이다.

래도 지옥과 사랑은 어울리지 않아요.

둘 중 하나를 포기해 주세요.

너는 지옥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나를 부정하는 것이냐?

내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옥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내가 지옥도 만들었고 천국도 만들었고 모든 존재하는 것을 만들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만들 권리도 있고 삭제할 권리도 있다​.

너는 스스로 무엇을 만들 수 있느냐?

네가 누구기에 내 앞에서 따지는 거냐?

너의 논리를 세우려고 나를 부정하는 것이냐? 

아버지 학교는 보통 교회에서 개설하는데

가끔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이 오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도망치듯 가버린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끝까지 과정을 마치고 신앙까지 얻는 계기가 된다.


전도를 하다보면

어떤 이는 아예 들을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귀를 막아버린다.


밭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데 두 명이 씨를 뿌린다.


예수 그리스도는 좋은 씨를 뿌리고, 사탄은 가라지라는 악한 씨를 뿌린다.


세상에는 좋은 씨와 악한 씨가 주위에 가득하다.

어떤 사람은 좋은 씨에 반응하고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다.

어떤 사람은 악한 씨에 반응하여 악한 자의 아들이 된다.

이것은 미스테리요 신비다.

 

더 신비한  일은

어떤 사람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깨닫거나 발견하는 것을 허락받고

어떤 사람은 허락받지 못한다.

이 두 종류의 사람 모두 본향이 있다.


본향이란 영원히 거주할 처소를 말하는데

좋은 씨에 반응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국의 본향에 기대를 두고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는다.


가라지의 본향 불못은 세상보더 더 악한 곳이기에

그곳을 소망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더 좋은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산다.


그렇다면 악한 자의 아들들과 하나님의 아들들은 선천적인가?


성경의 증언에 의하면 그렇지 않다.

특별하게 선택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주신다고 기록한다.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이고

그들이 사탄의 메시지에 더 끌림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을 성경은 어리석은 자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유롭고 악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메시지에 관심을 갖는 대신

최신 유행하는 무신론의 신에 온통 관심을 기울인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국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보배를 발견한 자들이다.


어떤 경우에는 좋은 씨가 뿌려지기는 했지만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뿌리가 약한 돌밭, 딱딱한 길밭, 세상의 가시떨기밭에 뿌려졌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무신론자들과 거짓종교를 따르는 사람들은 지옥에 들어갈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 날에 육체까지 부활하여 불못에 들어갈 것이다.


이슬람은 술도 마시지 않고 여자도 금하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천박한 천국에 들어가면

70여명의 처녀를 하사받고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다고 가르친다.


불교는 짐승이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짐승과 사람의 형체를 동일시한다.


무신론자들은

신은 없으며 만물은 우연의 산물이니 인생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조금만 더 지혜를 발휘하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삶의 열매를 보면

거짓의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열매를 보면 미래가 보인다.


그들이 불못에 들어가는 이유는

스스로 그 곳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원하지 않을 뿐이다.



출처: 카이로스 / ars

다니엘서에 예언되어 있듯이 지구상에 대부분의 공산주의 나라는 없어졌지만,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공산정권인 북한이 있습니다.


트럼프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봅니다. 북한이 트럼프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한다면, 트럼프는 최후의 버튼을 누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날은, 북한에게는 해방의 날이, 남한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저녁을 사먹고 집으로 걸어가면서 집에 다왔을 즈음, 갑자기 성령께서 동네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고 오라는 마음을 주셔서 즉시 순종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기도하고 왔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때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아닌, 오직 성령을 순종하며 따라 행해야 합니다.



몇년 동안 확인했던 일과 현재 정황을 다 따져보고 진지하게 기도해보면, 더 큰 재앙이 덮치기 전에 테러집단인 북한 정권을 먼저 붕괴시키는게 맞다란 답이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아니 더 자세히 말해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 평화에 안주하려는 마음을 갖고, 십자가 지기 싫어하고 내가 피해볼까봐 죽어가는 동포를 그대로 두려는 악함과 이기심이 들어있단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과거 미국에 흑인 노예제도가 팽배했던 시절, 경제 때문에 안일하고자 노예제도 폐지에 침묵하고 방조하며 반대 했던 역사와도 겹칩니다.


악에는 공의와 심판이 따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되 거룩 그 자체이시며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예수를 입으로만이 아닌 진정 아는 자라면 악과 화평하지 않고 싸우며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이 무슨 답을 주는 지 분명히 압니다.


평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악과의 싸움은 불가피한 것이 원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들을 무시하는 평화는 평화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테러집단을 붕괴시켜 북한 동포들의 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이제라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부르짖고 행동하기를 촉구합니다.



글 출처: Esther Haejung Lee님 페이스북

서머나 교회 감독 폴리캅의 순교사화 -

 

* 서머나 교회가 빌로멜리움(Philomelium) 교회에게 보낸 편지이다.

* 신약성경 밖에서 쓰인 기독교 순교사화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 명백하게 직접 목격한 사람들에 의해(15:1) 사건 후 오래되지 않아 기록되었다.

* 서머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캅(86)에 대한 박해, 체포, 심문, 그리고 처형을 기록하고 있다.

* 2세기 중엽의 박해받는 교회에 대한 설득력 있는 증언이다.

* 기독교인들의 국가관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 그리고 이것을 기록하게 된 데에는 매년 열리는 순교기념일에 참석하게 하려는 특별한 목적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 폴리캅의 순교의 신앙은 311년과 313(밀라노 칙령)의 관용의 칙령들과 교회에 승리를 가져올 때까지 많은 신자들에게 모범이 되었다.

* 불행하게도 그리스어 사본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 10세기경의 것으로 유세비우스가 전하는 내용과 조금 다르다.

- 후기 사본은 폴리캅의 죽음을 예수의 죽음과 대조시켜놓은 내용을 싣고 있다.

 

1. 폴리캅의 순교 시기 - 두 가지 견해

1) 내적인 증거 : 21장과 폴리캅 순교사화의 내적 자료에 따를 시기

폴리캅은 산티쿠스(Xanthicus) 달의 첫 번째 부분의 둘째 날, 3월 달 전 7일째 날, 큰 안식일 오후 2경에 순교했다. 그는 트랄레스의 필립이 스타티우스 쿠아드라투스의 지방 총독직의 재임 기간 동안 대제사장이었을 때...,“

 

* 스타티우스 쿠아드라투스(Statius Quadratus)의 지방 총독직의 재임 기간을 근거로 156222, 아니면 아마 23일로 채택해 왔다.

* 이 시기는 폴리캅이 체포되기 직전에 로마의 감독 아니세투스 감독을 방문했다는 사실과 잘 일치한다.

 

2) 유세비우스의 증거 :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한 시기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Marcus Aurelius verus)의 통치기간으로 보아 167년경으로 보는 견해.

이 무렵 피우스(Pious)라는 성을 가진 안토닌(Antonine)황제는 22년간의 통치를 끝으로 아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베루스(Marcus Aurelius verus)에게 양위하였다. 베루스 역시 그의 형 루시우스(Lucius)와 함께 안토니누스(Antoninus)라고 불리었다.”

* 쇠델은 21, 22장을 후대의 첨가물로 보고 유세비우스의 견해를 지지, 155-160년경임을 주장한다.

 

2. 폴리캅의 인물 관

1) 폴리캅(Polycarp)

A.D 80년에 태어나 165년경에 86세로 순교한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다.

신약시대 이후 널리 알려진 첫 순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사도들에 의해 아시아의 서머나(Smyrna)교회의 감독으로 임명받았다.

폴리캅은 사랑의 사도 요한의 수하에서 공부했기에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만난 사람과 그 후 세대를 연결해주는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언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2세기경 그는 서머나에서 열심히 목회하고 있었으며 노예들과, 지방 호족들, 총독의 관리들이 한 데로 잘 조화되어 구성된 교회였다.

50년 동안 감독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는 온유하였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겸손의 귀감이 되었다.”

그는 비록 요한의 제자였지만 자신을 사도들과 동등시 하지 않았다. “형제들이여, 나는 이 편지를 자랑함으로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요청했기 때문에 쓰는 것입니다. 나는 바울처럼 진리의 말씀을 능력 있고 감동적으로 전할 수 있는 지혜를 얻지 못 했습니다.”

2) 폴리캅의 신학적 입장

불신자들에 대한 전도에 너무 열심이었으므로 그는 무신론자, 우리 신들의 파괴자, 소아시아의 선생등으로 비판을 받았다.”

사도요한에게 들은 예수의 기적과 교훈에 대한 그의 설교와 저술들은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저서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작품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 이 편지의 핵심은 = ‘그리스도론이다.

그리스도는 주님이시고 그는 현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에게 굴복한다.”

 

3) 폴리캅 순교의 의의

신약시대 이후 널리 알려진 첫 순교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폴리캅의 순교의 결과는 기독교의 깨끗한 승리였다.

서머나 교회는 지도자를 잃었으나 비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을 크게 두려워하게 되었다.

용기없는 기독교인들에게 커다란 신앙을 북돋아 주었다.

폴리캅의 순교로 아시아에서 박해에 종지부를 찍었다.

 

4) 폴리캅 순교의 특이점

폴리캅은 처음에는 피신하였다는 것이다.”

* 이 사실은 오히려 순교의 진실성을 보여주며, 거짓 순교자와의 차이점을 보여 준다.

* 거짓 순교자 : 당시에는 자발적으로 재판정에 나아가 순교의 기회를 찾았던 거짓 순교자들이 있었다.

물론 자발적으로 나섰던 참된 순교자들도 있었다.

 

5)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교에 대한 이해

순교는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순교는 인간들이 선택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에게 주시는 특권으로 생각했다.

순교는 그리스도의 용기와 격려로서 끝까지 충성할 수 있다고 믿었으며, 따라서 이 용기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것으로 이해했다.

순교자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하나님의 운동선수, 신앙의 수호자, 사탄과의 투쟁자, 신앙의 옹호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자 등으로 불리었다.

순교자는 피의 세례를 받기 때문에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믿었다. 그래서 순교를 앞둔 사람이 감옥에 갇히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사람에게 죄 사함을 받는 기도를 부탁했다.

순교하는 것은 곧 신자의 특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일부러 순교를 하는 자발적 순교’(voluntary martydom)라는 말이 나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영광의 면류관이요, 구원의 지름길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빨리 이루기 위해서 무리를 지어 로마 총독에게 가서 우리는 기독교인이니 처형해 달라고 했다.

- 교부들은 이러한 자발적인 순교를 일종의 자살 행위로 보고 이를 말렸다.

 

6) 폴리캅의 교회사적 중요성

폴리캅은 로마에서 말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인 발렌티누스 추종자들을 정통주의로 회심시키는 도구로 쓰임 받았다.

* 폴리캅이 로마에 간 이유 - 부활절 논쟁을 위하여.

* 논쟁 과정

- 동방교회는 유대교력에 의해 유월절인 닛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킴.

- 162년 로마의 감독 아니케투스(Anicetus)는 닛산월 14일 다음에 오는 주일로 지켜야 할 것을 주장함.

- 폴리캅이 로마 방문 - 닛산월 14일에 부활절을 지킬 것 주장함. - 무시됨.

- 190년 로마 감독 빅톨이 폴리캅의 의견에 반대해 - 아시아의 교회를 파문.

-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서방교회 견해를 채택함. - 교회분열을 가져옴.

클레멘트이그나티우스보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을 잘 알고 있었다.

믿음으로 의로움을 받는다는 성서적 칭의론을 말하고 있다.

폴리캅은 실천적인 인물이었다.

 

3. 역사와의 대화

1). 폴리갑을 통해 본 초대교회 신앙관

순교자(martyr)는 어원적으로 증거하다’(to testify), 신앙을 증거하는 사람이었지만 오늘날에 와서 순교하다는 말로 바뀌었다. 초대교회는 약 280년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 수많은 순교자가 생겼는데, 그러면서 싹튼 것이 순교의 신앙이다. 박해기간 동안 순교자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신앙의 수호자, 사탄과의 투쟁 자,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자 등으로 불리었으며, 기독교의 신앙을 존속하게 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순교는 신자의 특권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일부러 순교를 하는 자발적 순교’(voluntary martydom)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순교를 영광의 면류관이요, 구원의 지름길이요, 그리스도와의 연합하는 행동으로 이해되었다.

 

오리겐은 "만일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신비적으로 참여하는 시작이라면, 순교는 그의 죽음과 부활에 완전히 연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나 순교의 신앙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콘스탄틴 황제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지지와 비호를 받게 되면서 자연히 순교할 일이 없어지게 되고, 교회가 대중화 되어감에 따라 점점 완화되었다. 하지만 순교의 신앙은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도원 운동으로 이어졌고, 순교 정신, 순교 신앙은 자신의 경건한 생활에서 찾으려고 했다

 

순교의 신앙은 초대교회 박해시대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사실 순교의 신앙은 그리스도적 전통이며, 2,000년의 기독교 선교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계속 이어져서 교회를 교회되도록 하였으며 신자를 신자되게 하는 신앙적인 기초가 되어왔다.

오리겐은 영적인 순교’(spiritual mantyrdom)라는 말을 통해 꼭 피를 흘리는 것만이 순교가 아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 괴로움을 당한다면 그것 자체가 순교라고 할 수 있다.”는 순교 신앙을 보편적으로 이해하였다.

 

오리겐의 주장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순교 신앙은 오늘날까지도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시대를 뛰어 넘어 기독자의 삶의 자리에서 이어 가야 할 소중한 신앙의 유산임을 교훈하여 주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신앙의 뿌리는 순교의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이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하여 주고 있다. 또한 21세기 새로운 종교개혁교회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자리역시 순교 신앙이어야 함을 동시에 말해 준다.

 

2). 폴리갑 순교와 의미

속사도 교부시대에 밀어 닥친 아시아교회의 박해와 순교신앙이 발생되었으며 그중에 하나인 폴리캅의 순교의 역사적 배경에는 청년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의 용기있는 순교가 있었고 폴리캅의 순교 이후 아시아교회에서는 순교기념일을 지키며 순교자 적 신앙으로의 훈련을 하였고 순교의 역사는 계속 이어져갔다.

폴리캅의 순교사화는 유세비우스의 교회사와 비교해 볼 때 후대로 전승되면서 약간의 첨삭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3). 적 용

무기력한 한국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영적인 토대를 제공한다.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성을 바르게 하여 준다.

물량주의화 된 한국교회를 새롭게 변화시킬 수있는 신앙의 모범을 제공한다.

오늘날 교회개혁에 대한 요구가 늘어가고 있다. 우리는 젊은 교역자로서 개혁에 주도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할 것인데 우리의 방향에 순교자적 신앙으로의 무장은 개혁을 더욱 힘있고 능력있게 할 것이다.

선교전략에 있어서 순교자적 신앙은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미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 교권 국가들에서의 선교활동은 극히 제한적이며 은밀한 중에 진행되고 있다. 사실 성과가 거의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떻게 이슬람교권을 복음화 시킬 것인가? 순교하는 것이 최상의 선교전략이 될 것이다. 순교적 신앙은 오늘날에도 요청 되고 있다.

폴리캅 순교사화는 우리에게 순교적 신앙으로 초대하고 있다.

순교는 부활을 현세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다” (오리겐)


 
빛과 흑암의 역사/진리탐구

 

2017, 누가 대한민국의 윌버포스가 될 것인가?


전쟁을 두려워하여 우리 육신의 안위를 생각하기보다, 고통과 신음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북한의 수많은 영혼들에게, 하루 속히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여 저들에게도 진짜 하나님께 예배하며 찬양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을 달라고, 미국의 링컨, 영국의 윌버포스처럼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이 한반도 땅에 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사야 58장 6~11절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려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8.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춸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며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것이며


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글쓴이: 진리는타협하지않는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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