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그리스의 이름으로 기도하라]-1)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이 구절은 기도 응답에 관한 약속들 가운데서 가장 친밀하며 가장 놀라운 성경 구절인 동시에 또한 일반적으로 가장 오해를 받는 구절이다.

여기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방법으로 기도하면 그들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다시 본문을 조심스럽게 읽어 보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이 성경 구절은 평범하고 단순하며 적극적이면서도 매우 귀중한,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생기를 돋게 하는 구절이다. 이 구절을 통해서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오늘날 기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교리들이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익하고 좋은 일을 한다. 우리가 기도한 것을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기도한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응답받을 수 있다. 혹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도한 것만큼 좋은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기도에 대한 교리에 어떤 진리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사실 종종 우리가 기도한 것을 응답받지 못하는 때가 있는데, 그것 자체가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 너무 부주의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성급하고 더 나아가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의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한 바로 그것은 응답받지 못하지만 또 어떤 때에는 그것이 더 유익할 때가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기도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가 기도한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는 어떤 의미에서 진리이지만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도에 관한 교리가 아니다.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기도에 관한 교훈은 바로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 특정한 방법으로 기도할 때, 그들이 기도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응답받고 때로는 그들이 기도한 것과는 다르게 응답받을 수 있지만, 그것보다도 바로 '그들이 기도한 그것을 응답받는다는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바로 그것을' 내가 시행하리라."

이 기도에 대한 약속에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첫째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응답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이 '누구에게' 해당되는 약속인가에 대한 사실이고 둘째로, 사람들이 기도한 바로 그것을 응답받기 위하여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실이다.


1. 이 약속은 누구에게 해당되는가

우선 첫째로 과연 기도에 대한 약속은 누구에게 해당되는 것인가? 성경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는 구절 가운데 하나는, 성경이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약속을, 성경이 결코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고 성경이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도의 약속을 그들에게 적용시켜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아무런 관심도 갖지 않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현재 공부하고 있는 이 구절을 보면서 이 구절의 앞과 뒤의 문맥을 깊이 상고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하시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너희가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는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는가? 기도의 응답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본문의 앞절과 뒷절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1. 요한복음 14:12을 주의 깊게 읽어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주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런데 이 본문에서 "너희가"라는 말은 주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첫째로 기도에 대한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해서 완전히 혼동하고 있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이 아무리 훌륭하고 정통적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믿는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완전하면서도 정확하게 믿을 수 있으나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전혀 그를 믿는 것이 아니다. 마귀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의심없이, 완전히, 올바르게 믿고 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실제로 존재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마귀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는 않는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완전히 정통하다는 이유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인격적으로 확실히 믿는 것이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믿고 그를 모셔들이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 죄를 몸으로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으며, 그로 인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분에게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치하도록 위임하게 하기 위해 그를 우리의 주인과 주님으로 영접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한복음 1:12에서 찾을 수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성경 어느 곳을 보더라도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들의 삶의 주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않으며 그와 연합되지 않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겠다고 약속한 곳이 없다. 그러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를 하나님이 결코 듣지 않으신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는 하나님이 가끔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믿는다. 그분은 내가 성경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나의 기도를 몇 가지 들으셨지만 시행하리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것을 옛 신학자들은 "계약되지 않은 하나님의 자비"라고 묘하게 말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가장 확실히, 가장 적극적으로 약속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는 결코 약속하시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리라는 기대를 가질 권리가 없으며, 하나님이 그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불평할 이유와 자격이 없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여러 번 시도해 보았는데도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불평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사람들의 기도를 응답하시지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기도하고 또 기도할지라도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믿고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한 여러 가지 좋은 결과 중의 하나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우리의 기도의 기초가 되며, 우리가 필요한 모든 시간에 언제든지 하나님께 가서 우리의 필요를 기도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것을 응답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관계가 되는 것이다. 나는 백만장자 록펠러의 엄청난 재산을 갖는 것보다 기도의 기초 위에 서 있기를 바라며, 내가 기도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응답 받을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때 이 세상의 친구들이 우리를 도울 수 없을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거대한 재물로 우리를 돕지 못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구원하시고 도우실 수 있다. 그러므로 가장 중대한 질문이 우리에게, 아니 당신에게 닥쳐 왔다. "나는 과연 정말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가?"

당신은 혹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불신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은 정말로 그를 믿고 거듭났는가? 만일 당신이 그를 믿지 않고 거듭나지 않았다면 거듭날 수 있는 가장 중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 예수를 지식적으로만 알고 머리로만 믿는 사람에게도 가장 중요한 정보이다. 그것은 바로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라는 것이다.

바로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당신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놓은 사실을 믿고 그를 당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당신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세주로 영접하라. 그리고 당신의 삶 전체를 지금 주님께 드리고 그로 하여금 당신의 생각과 행동과 삶을 지배하도록 허락하라.

2. 그러나 이 말만 가지고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의 자격에 대한 진술이 본문 다음 구절인 15 절에 나와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이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그 계명들을 잘 알아야 하며, 또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의 뜻을 계시해 놓은 그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약속은 날마다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들의 행위와 언어와 생각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그것을 항상 순종하고 행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이미 요한일서 3:22을 통해서 배웠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녀들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약속은 없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기를 기대한다면 우선 그분이 성경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그분의 말씀에 충족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날마다 진지하게 읽고 공부하여 그분의 뜻을 발견하고 항상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의 기초가 된다.

이 모든 것을 다시 한번 요약해 보겠다. "성경이 요구하는 어떤 특정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이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여 그를 사랑하며 순종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아 있는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으로 순종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우리의 기도생활에 중요한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이것은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이 두 가지가 다 요구된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아있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6에서 이에 대해 분명히 말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한편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정말 믿지 않는다면 결코 그를 사랑할 수 없다.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시작하고 그를 사랑함으로 끝난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 4:19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의무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분이 우리 사랑의 무한한 가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무한하신 분이며, 창조자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서만 그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선이 아니다.

췌닝(Channing)과 그 당시 거대한 지적인 지도자들의 인도를 받고 있었던 유니테리언(Unitarians)들은 이러한 오류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의 의무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는 의무감 때문에 억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 또 결코 사랑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같은 사악하고 무가치한 죄인들을 놀랍도록 사랑하신 것을 진심으로 믿을 때 우리는 그러한 노력 없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신뢰의 필연적인 결과다.

영국의 유명한 복음 전도자 마크 거이(Mark Guy)가 어느 날 런던에서 집회를 인도하고 있는데 어떤 소녀가 호기심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마크 거이 목사에게 와서 말했다. "목사님,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기 원했지만 사랑하게 되지 않아요.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러자 유명한 복음 전도자는 열심으로 간청하는 소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얘야, 네가 오늘 집에 돌아가거든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네 자신에게 말해 봐라. 그런 후 다음 토요일 밤이 되면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요'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일요일 소녀는 그에게와 다시 왔다. 소녀는 행복한 눈과 빛나는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목사님 저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해요. 저는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지난 주일날 제가 집으로 돌아가 목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말을 계속해서 저 자신에게 했어요. 그 뒤 저는 그분의 사랑과 그분이 어떻게 저 대신 십자가에 죽으셨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저의 차디찬 마음은 뜨거워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저의 사랑이 충만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우리 같은 사악한 죄인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죽으셨는가, 그리고 그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마음속 깊이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허물로 인해서 상함을 입었는가, 그가 어떻게 징계를 받아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는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어떻게 나음을 입었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믿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다.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신앙 생활을 시작한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의 위대한 사랑을 믿음으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사랑하므로 믿음의 끝을 맺는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구체적인 행위는 그의 말씀을 날마다 열심히 읽고 공부하며, 우리 삶에 대한 그의 뜻을 발견하며, 그것을 우리의 일상생활에 직접 적용시키고 순종하며 행하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기도할 수 있는 기초 위에 서 있게 된다.

몇 년 전, 스코틀랜드에 어떤 유명한 성경교사가 노스휠드(Northfirld)에서 사랑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요하느냐 아니면 믿음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사랑이 없는 믿음보다 믿음이 없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의 설교가 아무리 위대한 것일지라도 그런 결론은 잘못된 가정과 오해 위에서 내려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믿음 없이도 사랑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결과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는 뿌리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믿음을 갖는 것이 더 좋으냐, 아니면 믿음이 없는 사랑을 갖는 것이 더 좋으냐에 대한 토의는 마치 뿌리는 좋지만 열매가 없는 사과나무가 좋으냐, 아니면 뿌리는 없지만 좋은 열매를 맺는 사과나무가 좋으냐에 대한 토의와 같다.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말할 것도 없이 뿌리가 없는 나무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박지 않으면 사랑의 열매를 절대로 맺을 수 없고 그 사랑의 결과로 오는 순종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깊이 상고하고 있는 약속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아 있는 믿음을 갖고 순종하는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R.A. 토레이의 '기도와 영력' 중에서(131-140p)

/출처: 생명나무 쉼터 : 한아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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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우리는 사도행전 12:5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과 응답 받는 비결을 배울 수 있다. 다시 한번 5절을 읽어 보자.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기도의 응답의 비결을 다음의 4가지 중요한 단어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그 4가지 단어는 첫째로 "하나님께," 둘째는 "간절히" 혹은 "쉬지 않고," 세째는 "교회는," 그리고 네째는 "그를 위하여"이다.

이 4가지 중요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1. "하나님께"

이 네 가지 단어 중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하나님께"라는 단어다.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는가?" 아니다. 많은 기도 가운데서 오직 극소수의 기도만이 하나님께 상달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어떤 때는 100가지 중에 하나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때도 있다. 이렇게 말할 때 당신은 "아,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소. 즉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인들이 우상이나 거짓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군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말하는 기도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100가지 기도 중에서 한 가지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 당신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한다는 의미군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기도하는 사람들이란 소위 개신교 신자들을 의미한다. 나는 개신교 신자들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이제 나의 확신과 견해를 설명하겠다.

잠시동안 멈추고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일어나서 공중기도를 할 때, 혹은 무릎을 꿇고 개인기도를 할 때, 그들이 정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시며,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그렇게 기도하는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심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기보다는 그들의 기도에 어쩔 수 없이 응답하시는 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능력과 그의 무한한 지식과 사랑을 체험으로 알고 신뢰하고 있는가? 그들은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입술로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뿐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정치 않고 있다. 입술로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뿐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부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당신은 당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가?

우리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와 대화해야 한다. 우리가 공중기도를 하거나 개인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 정말로 깊은 교제가 되기까지는 결코 한 마디도 기도할 수 없다. 아니 기도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라는 단어를 당신의 마음속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 있는 임재 속에 들어가 그분께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결코 한 마디도 기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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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히브리서 10:19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는 이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온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자리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오직이 방법밖에는 없다. 다른 방법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들이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천사들도 그 앞에서 그들의 얼굴과 발을 가리고 있어야만 했다(사 6: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우리를 위해 완전한 속죄물이 되셨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과 나의 흉악한 죄를 다 짊어지시고 죄의 값을 치르셨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우리 대신 하나님 앞에 희생물이 되셨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내 마음속에 영접하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은 순간,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되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사람들 위에 계시는 하나님과 그의 유일한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그의 존전에 나아갈 때 우리의 얼굴과 발을 가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히 "그의 사랑하시는 자"(엡 1:6)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즉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우리 모든 의로움을 포기하고 내가 가장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속죄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곳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

이 땅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 인간은 자기의 선행으로는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이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언제라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 구한 모든 것을 응답 받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렇다. 이것은 진리이며 하나님의 불변의 약속이다.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에베소서 2:18에 잘 제시되어 있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또 한 분은 바로 성령님이다. 우리는 첫번째 진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과 내가 기도할 때,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며 그분께 우리를 소개하고 대면시키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신다. 본문에서 "나아감"이라는 말의 희랍어 원어는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인도하다" 혹은 "대면시키다" 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운 임재 가운데로 이끌어가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해야 한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신은 기도할 때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마치 아무도 없는 허공에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가? 기도하기 싫다고 해서, 혹은 기도가 잘 안된다고 해서 기도를 중단해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기도가 안 되고 기도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기도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말하라. "하나님, 저는 지금 기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솔직히 말할 때 벌써 그 자체가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 어떻게 해야 되는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성령님을 보내사 나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 그리고 난 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기다려라. 그때 성령님은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며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역사하실 것이다.

나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 내가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했고, 성령님을 보내 주시사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로 내가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드디어 성령님은 내 안에서 역사하셨다. 그분은 내 기도를 힘있게 도와주시며 내 영혼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하셨다. 나는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로 영적인 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며, 그 임재 속에 들어갔다는 확신을 얻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방법은 첫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고, 둘째로는 성령의 역사다.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이 문제와 병행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교리인 삼위일체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특히 우리의 기도생활에 대단히 실제적인 중요성을 갖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삼위일체 교리가 상당히 추상적이며, 비실제적인 교리이고 또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시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생활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의 기도생활 가운데 가장 실제적인 문제이며,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교리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참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올바르게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틀림없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R.A. 토레이의 '기도와 영력' 중에서(78-89p) 

출처: 생명나무 쉼터 /  한아름 발췌

[응답 받는 그리스도인-1]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앞장에서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고 함께 연구했다. 이제는 "'어떤 사람'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고찰해 보기로 한다.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서 주신 기도 응답의 약속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의 기도도 응답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그것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와는 너무나 도 동떨어진 생각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한정된 특별한 사람에게만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그의 말씀 가운데서 응답의 대상은 무제한이 아니라 한정적이라고 하신다. 당신은 나의 말에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가장 보편적으로 오해되고 있는 말씀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을 하시겠다는 약속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약속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기도의 응답에 대한 조건을 갖춘 특별한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 말을 할 때 아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실망하게 되며 기도의 응답에 대한 회의와 불안과 갈등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신들이 기도한 것을 응답받지 못하며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기도의 응답을 받는가"에 대한 해답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아주 평이한 말로 가르쳐 주신다.

이것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성경 요한일서 3:22에 제시되어 있다. 이제 그 말씀을 들어보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거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당신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이 놀라운 말씀을 눈여겨 보았는가? 그리고 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있는가? 그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응답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내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는가"라고 묻는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모두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기도한 것 중에서 '많은 부분'은 응답 받는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한 것 중에서 '몇 가지만' 응답 받는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내가 기도한 것 중 하나라도 응답을 받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마다' 응답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유를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 받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다."


1. 하나님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당신은 영어 성경에서 "왜냐하면" 혹은 "그 이유는" 그리고 "그러므로"라는 단어들을 발견할 때마다 이 단어들이 어떤 사실에 대한 이유를 지적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하시는 이유를 말하고 있다.

본문은 "우리가" 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말 속에는 사도 요한이나 당신이나 혹은 내가 동일하게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는 원인과 이유는 바로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은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은 두 종류의 사람들에게 기도의 응답을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

첫번째 종류의 사람들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이 말은 "날마다 그의 말씀을 읽고 그의 뜻을 발견하며, 그의 뜻을 항상 행하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상호관계를 요구하신다. 그는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들으면 그도 우리 기도에 응답하신다고 약속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해 아주 예민한 귀를 갖고 있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간구에 아주 예민한 귀를 갖고 들으신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해 귀머거리가 되어 있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간구에 대해서 귀가 둔하여진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실천한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요구 사항을 들어 주신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우리의 모든 기도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으신다.

이 모든 말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원한다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공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하나님의 뜻을 '항상' 실천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가장 보편적인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일에 소홀히 하는 사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특별한 목적을 아는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 또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서도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실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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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응답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경 전체에서 찾아 보면 요한일서 외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성경 구절 중의 하나는 바로 요한복음 14:13-14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구절을 인용할 때 이 부분만 생각하므로 어떤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주신다는 인상을 갖게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 구절에서 끝나지 않고 그 다음 구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이제 15-17절까지를 읽어보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만일 그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명령을 지키면(그의 말씀을 날마다 읽고 공부하며 그의 계명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항상 실천하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성령님께서 제자들의 기도를 인도하심으로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될 때 그들(그의 명령을 지키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그가 시행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성경 전체에서, 우리들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에 관한 아주 중요한 성경 구절을 하나 더 열거해 보자.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15:7에 나와 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이 말씀을 그저 이렇게 읽는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이 빠져 있다. 다시 한 번 조심스럽게 본문을 읽어 보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여기서 우리 주님은 우리가 그 안에 필연적으로 거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해야' 된다고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기도했을 때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고 주 예수님은 다시 한번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그의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우리 안에 그의 말씀이 거하지 않고, 그의 말씀을 공부하지 않으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만 가지고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며 머물러야" 한다. 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직 그의 말씀을 공부하고 성실하게 순종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9절과 10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당신이 요한복음 15장을 계속해서 더 읽어 내려가면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그의 뜻을 발견하며 그것을 항상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되고 적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기도에 대해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음으로 인해 신앙의 큰 혼란을 겪고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나타나 있다. 그 약속에는 이상이 없다. 그의 약속은 사실이며, 진리이며, 불가사의한 신비가 아니다.

당신이 지금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고 있는 중대한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깊이 공부하지 않고 그의 뜻을 발견하지 못하며, 그것을 날마다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은 행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도에 응답해야 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2. 하나님은 그의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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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토레이의 '기도와 영력' 중에서(101-111p) 

출처: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발췌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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